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 제1장 형제 <1~5회>

오늘의 쉼터 2014. 6. 22. 20:53

 

금병매 (1)

 

 

제1장 형제 1회

 

 

주막에서 술과 약간의 안주로 배를 채운 武松(무송)은 그르륵 트림을 했다.

그 술트림 소리가 어찌나 큰지 주모(酒母)의 눈이 휘둥그래지고 있었다.

무송은 자리에서 일어나 셈을 치렀다.

그리고 옆에 세워 두었던 몽둥이를 집어들었다.

그 몽둥이는 창술(槍術)과 봉술(棒術)에 능한 무송이 언제나 지니고 다니는 호신용이었다.


 

 

그 몽둥이를 들고 주막을 나서려는 무송을 주모는 놀란 표정으로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여보, 젊은양반. 고개 위에 무서운 호랑이가 나타난다는 것은 알고있지요?”

주모가 던진 말에 무송은 뒤를 돌아보며 히죽 웃는다.

“알고 있소”

“조심하구려. 사람을 보는 족족 잡아먹는 지독한 놈이라우”

“그 놈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만나보고 싶은데요”

“어머나! 젊은이가 아무리 힘이 세고 몽둥이를 가지고 있다지만 호랑이를 당해낼 것 같수?

어림도 없어요.

 縣廳(현청)에서 사냥꾼을 수없이 풀어서 잡으려 해도 사람도 죽고 소용이 없었다오.

목숨을 부지하고 싶거든 절대로 혼자서 고개를 넘을 생각일랑 말아요”

“고맙소. 그러나 염려 놓으시구려”

무송은 빙그레 웃음으로 감사를 표하고는 몽둥이를 끌고 어슬렁 고갯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경양강(景陽岡)이라는 고개였다.

산동으로 가는 경계에 있는 높은 산등성이를 넘는 고갯길인데, 꾸불꾸불 길고도 험했다.

삼사 마장 가량 올라가니 산신묘(山神廟)가 나타났다. 아니나 다를까.

그 산신묘의 문짝에 관인을 찍은 방문(榜文)이 나붙어 있었다.

무송은 그 앞에 검음을 멈추었다.

- 고개 위에 한 마리의 호랑이가 근래에 나타났는데,

이마에 흰 털이 돋은 이 호랑이는 통행인을 곧잘 잡아먹는다.

이번에 현청에서는 각 부락과 사냥꾼들에게 널리 알려서 상금을 걸어 조속히

이 호랑이를 잡기로 하였다.

잡은 사람에게는 일금 삼십냥(兩)을 준다.

그리고 이 고개를 넘어가려는 나그네나 상인들은 사(巳) 오(午) 미(未)의 세 시각에만

무리를 지어 통행을 해야 한다.

 비록 낮이라 하더라도 그 외의 시각에는 통행을 금하며, 혼자서 고개를 넘는 일은

어느 시각이든 절대로 안 된다.

자칫하면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게 될 터이니 각자 명심하도록 하라.

 

 

형제 2회

 

 

 방문을 읽고 난 무송은 코와 입이 한쪽으로 삐딱해지는 그런 웃음을 떠올렸다.

 

빙그레 웃으면서 그는 가까이에 있는 적당한 바위 위에 궁둥이를 내렸다.

잠시 앉아 쉬면서 무송은 호랑이가 나타난다는 산등성이 고개마루를 바라보았다.

 

울긋불긋 단풍이 들고 있는 산줄기 위로 흰구름 송이가 서너개 두둥실 떠있었다.

 

술 기운이 혼혼한 눈에 한폭의 동양화처럼 비쳤다.

 

 

 

(이마에 흰털이 돋은 놈이라고? 흥! 그놈 꽤나 별종인 모양이지)

저렇게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 속에 사람을 잡아먹는 맹수(猛獸)가 도사리고 있다니,

알수 없는 일이라는 듯이 무송은 혼자 중얼거렸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팔백칠십년 전,

그러니까 12세기 초엽, 중국 송(宋)나라의 팔대(八代) 황제인 휘종(徽宗) 치세(治世) 때의 일이다.

휘종은 고구(高俅) 양전(楊戩) 동관(童貫) 채경(菜京) 이라는 네 사람의 간신(奸臣)을 총애했기

때문에 그들이 권력을 남용하고 부패를 거듭해서 조정은 평온한 날이 드물었고,

마침내 천하의 대란(大亂)을 초래하기에 이르렀다. 백성들은 일자리를 읽고 굶주리며 헤매게

되었고, 사방에 도적들이 들끓었다.

네 지방에서는 네 사람의 대도가 이어나 모반을 꾀하였다.

산동(山東)의 송강(宋江), 회서(淮西)의 왕경(王慶), 하북(河北)의 전호(田虎), 강남(江南)의

 방랍(方臘)이 곧 그들이다.

그들은 여러 주(州)를 어지럽히고, 여러 현(縣)을 휩쓸고 다니며 노략질과 살인 방화를 일삼았다.

그리고 스스로 왕호(王號)를 참칭하여 위세를 부렸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오직 한 사람 송강만은 양산박(梁山泊)에 본거를 두고 체천행도,

즉 하늘을 대신 하여 바른 일을 행한다는 기치를 내걸고서 원수를 갚고, 곳곳의 탐관오리를

척결했으며, 각 고을의 흉포한 세도가들을 무찔렀다.

그 무렵 산동의 양곡현(陽谷縣)에 성은 무(武)씨고, 이름은 대(大)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무송은 그 무대의 친동생이었다.

두 형제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우선 외모부터가 동생 무송이 칠척의 거구인데 비해서 형 무대는

그 이름과 정반대로 삼척도 채 못되는 난쟁이였다.

그리고 무송은 어릴 적부터 힘이 장사인데다가 창쓰는 법과 몽둥이 휘두르는 법을 익혀 상당한

솜씨를 지니고 있는데 비해서, 무대는 줏대도 없고 머리까지 둔해서 약간 모자라는 사람 같았다.

그러나 그는 정직하고 성실한 성격이어서 말썽을 일으키는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여러 해 흉년이 거듭되는 바람에 무대는 조상 전래의 가옥과 전답을 처분하여 동생과

그 돈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는 동생과 헤어져 처자를 거느리고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다가 이웃 고장인

청하현(淸河縣)으로 옮겨갔다.


 

형제 3회 

 

 

 형이 어디론지 떠나버린 뒤 무송은 혼자서 외로운 세월을 보내다가,

 

몇해뒤 어느날 울적한 심정을 견디지 못해서 이 주막 저 주막을 돌아다니며

 

술을 실컷 퍼마셔 버렸다.


두주불사(斗酒不辭)인 그도 워낙 대음(大飮)을 하자 그만 정신이 아롱아롱하도록 취해 버렸는데,

 

마침 길거리에서 아니꼬운 녀석 하나를 만나게 되었다. 현청의 벼슬아치였다.

 

평소에 유달리 못되게 굴고 고약하게 노는 놈이어서 속으로 별러 오던 터였는데,

 

마침 잘 만났다 싶었다.

 

무송은 그만 단단하고 넉넉한 주먹으로 그녀석의 턱이 옆으로 삐딱하게 돌아가고,

 

팔 하나가 꺾어진 채 길바닥에 벌렁 나가뻗어질 지경으로 두들겨 패주었다.

 

 

 

 

관원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줄행랑을 칠 수밖에 없었다.

무송은 창주(滄州) 횡해군(鐄海郡)에 있는 시진(柴進)의 집을 찾아갔다.

시진이라는 사람은 주(周)나라 황제였던 시세종(柴世宗)의 직계 자손으로

의(義)를 중히 여기고 재물을 하찮게 생각하며,

 천하의 호걸들이 식객들이 자기 집에 와서 머무르는 것을 기뻐하고 돌보아주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를 흔히들 전국시대(戰國時代)에 항상 수천명의 식객을 거느렸던 제(齊)나라의

공족(公族)인 맹상군(孟賞君)과 비슷하다고 해서 작은 맹상군이라고 일컫기도 했고,

시대관인(柴大官人)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 집을 찾아간 무송을 시진은 한 눈에 보통 젊은이가 아님을 알아보고서

자기 집에 머물도록 해주었다.

그 집의 식객이 된 무송은 어쩌다가 재수없게 학질에 걸리는 바람에 황달까지 생겨서

그럭저럭 일년을 넘게 그곳에서 눌러있었다.

그러다가 몸도 완쾌되고, 형도 만나보고 싶고해서 무송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고

그동안 신세진 주인에게 깊이 머리를 숙여 하직을 고하고서 그 집을 떠났다.

며칠을 걸어서 무송은 청하현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는 형 무대가 청하현으로 옮겨와 있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아직도 고향인 양곡현 어딘가에 살고 있는 줄만 알고서 그곳으로 가려고

지금 경양강이라는 고개를 넘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앉아 쉰 무송은 몸을 일으켰다.

술기운이 훈훈하게 온몸을 돌고 있어서 한결 기운이 넘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마에 흰 털이 돋았다니, 어디 어떤 놈인가 한번 만나보기로 할까”

무송은 중얼거리며 몽둥이를 쥔 손에 불끈 한 번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옆구리에 끼고서 산신묘 앞을 떠나 서슴없이 다시 고개를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해는 아직 서천에 남아 있었으나, 이미 미시(未時)도 지난지 오래였다.

여러 사람이 무리를 짓는다 해도 통행을 할수 없는 시각이었다.

그런데도 무송은 아랑곳없이 더구나 혼자서 뚜벅뚜벅 고갯길을  올라갔다.



 

형제 4회 

 

 

 이리 꾸불 저리 꾸불 길고도 험한 고갯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던 무송은

 

 저만큼 앞에 마치 황소가 엎드려 있는 듯한 넓적하고 미끈둥한 검은 바위가 눈에 띄자

 

그 위에 가서 드러누워 한숨 자고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뱃속을 가득 채웠던 술이 이제야 온통 주기를 내뿜는 듯 온 얼굴이 화끈거리며

 

눈앞이 약간 아른아른해 오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경우에 무송은 만약 어떤 상대와 부딪치게 될 것  같으면 가장 억센 힘이 몸에서

 

 뻗쳐나오는 터이지만, 그런 일이 없을 때는 절로 하품이 나오며 졸음이 오게 마련이었다.

 

 

 

"아으윽”

커다랗게 하품을 한 번 하고서 무송은 몽둥이를 그 바위에 기대어 세워놓고,

그 미끈둥한 바위 위로 껑충 뛰어 올라 번듯이 드러누웠다.

식인(食人) 호랑이가 나타나는 산중이라는 것도 어느새 잊은 듯

그는 스르르 잠이 들려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난데없이 썰렁한 바람이 휘몰아쳐 왔다.

바람에 단풍든 나뭇잎들이 우수수 나부껴 떨어졌다.

어쩐지 느낌이 보통 바람과는 다른 것 같았다.

구름이 끓어 오르면 용이 나타나고,

난데없이 바람이 일면 호랑이가 나타난다는 말이 문득 떠올라,

무송은 번쩍 눈을 뜨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니나 다를까,

우거진 숲 속에서 한 마리의 호랑이가 모습을 나타냈다.

눈이 매섭게 찢어지고, 이마에 흰 털이 수북이 돋아났으며,

얼룩덜룩 온몸의 무늬도 유난히 요란한 황소만한 호랑이였다.

“으악!”

무송은 잠이 들려던 참이었기 때문에 놀라 소리를 지르며 후다닥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얼른 몽둥이를 거머쥐고서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말라 있던 호랑이는 좋은 요기 거리가 생겼다는 듯이

어슬렁 어슬렁 바위를 돌아 다가오더니

우뚝 멈추어서 허리를 쭉 펴며 마치 하품을 하듯 아가리를 한 번 커다랗게 벌렸다.

그 시뻘건 아가리를 보자 무송은 절로 온몸에 좍 긴장이 흐르며 버르르 떨렸다.

술이 번쩍 깨는 듯했고, 몽둥이를 거머쥔 두 손에 불끈 힘이 주어졌다.

쭉 찢어진 날카로운 눈으로 무송을 노려보고 있던 호랑이는

별안간 꼬리를 번쩍 쳐들어 이리저리 두어 번 냅다 흔들더니,

“으흐흥!”

포효(咆哮)를 하며 훌떡 뛰어올라 달려들었다.

 

 

 

형제 5회 

 

 

 

 뒷발질도 실패한 호랑이는 분한 듯 다시 “으흥! 으흐흥!”

아가리를 짝짝 벌리며 포효를 하고는 이번에는 꼬리를 빳빳하게 쳐들기가 무섭게

그것으로 무송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무송은 잽싸게 그 사나운 꼬리 채찍질도 잘 피해냈다.

대체로 호랑이란 놈은 사람을 잡아 먹으려 할 때 세 단계로 공격을 한다.

첫 번째는 훌떡 뛰어서 덮치려고 달려드는데,

그것으로 쓰러뜨리지 못하면 다음은 뒷발질로 공격을 가한다.

그래도 안될 경우에는 마지막으로 꼬리를 채찍삼아 휘둘어 대는 것이다.

아무리 무서운 힘을 지닌 호랑이라곤 하지만,

맹렬한 기세로 그 세단계 공격을 치르고 나면 어느 정도 힘이 빠지게 마련이다.

무송은 호랑이의 그런 속성을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세가지 공격을 무사히 피해내자

이번에는 자기 쪽에서 반격을 가해야 된다는 생각이 번쩍 머리에 떠올랐다.

호랑이가 반원(半圓)을 그리며 몸을 돌려 다시 어슬렁 다가오자 무송은 자기도 냅다

고함을 내지르며 있는 힘을 다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런데 재수없게 호랑이는 비켜버리고, 몽둥이가 나뭇가지에 부딪쳐 두 동강이 나버렸다.

나뭇가지도 우지직 꺽어지며 낙엽이 휘날린다.

이제 무송의 손에는 부러진 몽둥이 반쪽이 쥐어져 있을 뿐이다.

무송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섭게 으르렁 거리며 호랑이가 재차 달려들자

무송은 훌떡훌떡 날 듯이 뛰어 뒤로 열 걸음 가량 물러섰다.

무송을 덮치지 못한 호랑이는 두 앞발을 쳐들어 날카로운 발톱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할퀴려는 듯이 다가든다.

무송은 반 토막이 된 몽둥이를 휙 내던지기가 무섭게 죽기 아니면 살기로

훌떡 뛰어올라 냅다 호랑이의 대가리 털가죽을 불끈 움켜쥔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내리 짓누른다.

호랑이는 버둥거리며 일어나려 했으나 이미 힘이 꽤나 빠진 듯 대가리가 차츰 밑으로 내려간다.

무송은 계속 사력(死力)을 다해 내리누르며 발길로 냅다 호랑이의 눈깔을 연달아 걷어찬다.

눈에서 피가 지르르 흐르면서 호랑이는 울부짖으며 발톱으로 마구 흙을 할퀴듯 파헤친다.

그 파헤져진 구덩이 속으로 호랑이의 대가리를 밀어넣어 콱콱 사정없이 짓이기듯 눌러댄다.

그리고 오른 손 주먹으로 쾅쾅 내리치기까지 한다. 마침내 호랑이는 축 늘어지고 만다.

그러나 아직 숨이 끊어지지는 않은 듯 꿈틀거리는 것을 보자 무송은 얼른 가서

부러진 몽둥이 토막을 주워와 그것으로 다시 뒷마무리를 하듯 두들겨 댄다.

호랑이가 이제 시뻘건 혓바닥을 축늘어 뜨리고 꼼짝을 하지 않게 되자

무송은 이마에 내밴 땀을 손등으로 썩 문지르며 냅다 환호성을 지르듯 외친다.


“야, 잡았다! 호랑이를 잡았어! 삼 십냥은 내 것이다!”

 

그 내지른 소리에 온 산이 쩌르렁 울린다.

무송은 잽싸게 몸을 날려 호랑이를 비켜 그 뒤쪽에 섰다.

 허탕을 친 호랑이는 목이 짧기 때문에 얼른 뒤돌아보질 못한다.

성질이 급한 놈인 듯 그냥 앞발로 땅을 꽉 딛고서 냅다 뒷발로 걷어찬다.

무송은 재빨리 옆으로 몸을 날려 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