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5) 형제 <21~24회>

오늘의 쉼터 2014. 6. 22. 21:39

 

금병매 (5)

 

 

제1장 형제 21회 

 

 

 

 주거니 받거니 몇 잔 마시고 나자,

 

금련은 눈 언저리가 발그레 곱게 물들기 시작했다.

“형수씨도 술을 꽤 잘 마시는군요”

무송은 주기가 도는 눈을 번들거리며 빙그레 웃는다.

“형수씨라 그러지 말아요”

금련이 불쑥 내뱉듯이 말한다.

“예?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그냥 이름을 불러줘요”

“이름을요” 형수씨의 이름을 형수씨 앞에서 대놓고 부르는 법이 있나요?“

“부르면 되는 것이지, 법이 있고 없고가 어딨어요. 금련이라고 부르세요”

“음!”

무송은 속으로 야, 이것봐라, 싶으며 약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왜 싫어요? 오늘밤만이라도 그렇게 불러줘요. 아무도 없잖아요.

첫눈도 내리고요. 얼마나 좋아요”

“야단났군”

“호호호 ... 야단나긴 뭐가 야단나요.

오늘밤은 나도 도련님을 이름으로 부르겠어요. 괜찮죠?”

“.....”

“괜찮아요, 어때요? 왜 대답이 없어요? 무송씨!”

금련은 그만 시동생의 이름을 거침없이 불러 버린다.

“헛헛허 ... 좋아요. 형수씨는 내 이름을 부르세요.

그러나 나는 형수씨 이름을 부르진 않겠어요”

“그런 법이 어딨어? 부를려면 같이 불러야지”

말까지 반말로 바뀌며 금련은 살짝 곱게 눈을 흘긴다.

그리고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발딱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살랑살랑 엉덩이를 흔들며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무송은 지그시 두 눈을 감는다.

마치 한 마리의 화사한 암 여우가 눈앞에서 살랑거리는 것 같아 머리 속이 산란하다.

곧 금련은 비파를 들고 되돌아왔다.

“무송씨, 오늘밤 내 솜씨를 한 번 보여드릴께. 자 봐요”

금련은 생글 웃으며 무송을 향해 서서 비파를 타기 시작했다.

과연 그 솜씨가 보통이 아니어서 무송은 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금련은 비파의 가락에 맞추어 노래까지 부르기 시작한다.

사춘기의 남녀가 즐겨 부르는 감미로운 연가다. 노래 소리도 제법 곱고 간드러진다.

금련은 비파를 타고 노래를 부르며 가만가만 엉덩이를 흔들기 시작하더니

가볍게 걸음까지 떼어놓는다.

춤을 추듯 몸을 이리 살랑 저리 살랑 흔들어대며 방안을 이리저리 미끄럽게 거닌다.

(야, 이것 봐라. 기생 뺨치겠구나)

무송은 속으로 감탄을 하며 입을 약간 헤벌레 벌리고서 넋이 흐늘흐늘해지는 듯

멀뚱히 바라보고 있다.

금련은 더욱 신명나게 비파를 타고 노래를 뽑으며 무송이 앉아있는 쪽으로

살랑살랑 다가간다.

 

 

 

형제 22회 

 

 

 

 무송 곁으로 다가간 금련은 비파를 멈추고, 은은히 여운을 남기며 노래를 끝맺었다.

 

살랑살랑 흔들어대던 엉덩이도 물론 멈추었다.

그리고 그녀는 한손을 가만히 무송의 한쪽 어깨에 갖다 얹으며,

 

“여보, 무송씨”

나긋한 목소리로 부른다.

무송이 돌아보자, 금련은 온 얼굴에 요염한 기색을 활짝 떠올리며

가느다란 눈으로 빤히 마주본다.

술에 취하고, 그녀의 노래에 취한 무송은 ‘여보’라는 말에

또한 얼떨떨해져서 눈을 꿈뻑이며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다.

“어때요? 내 노래가”

“썩 잘하는데요”

“아이 좋아라. 자, 술 한잔 더 해요”

금련은 비파를 놓고, 얼른 술병을 들어 무송의 빈잔에 찰찰 넘치도록 따라 준다.

무송이 쭉 들이켜자,

이번에는 젓가락으로 안주를 집어서 그의 입으로 가져다 준다.

무송은 몹시 어색하고 곤혹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바싹 입 앞에 와있는 안주를 도리 없이 덥석 받아 넣어 우물우물 씹어댄다.

금련의 얼굴에 흐믓한 미소가 떠오른다.

곧 그녀는 무송에게 몸을 기대듯 바싹 다가붙어

다시 그의 한쪽 어깨에 손을 얹으며 불쑥 묻는다.

“여보, 당신은 외롭지 않아요?”

무송은 형수의 입에서 ‘당신’이라는 말까지 튀어나오자

 다시 멍해지는 듯 아무 말이 없다.

“아내도 없는 노총각이 외롭지 않냐 그 말이에요”

“ ..... ”

“여보, 왜 대답이 없어요? 대답을 안 해도 다 안단 말이에요.

당신의 심정을 ... 그러니까 오늘밤에 외로움을 풀도록 해요.

내가 있잖아요. 난 여자란 말이에요. 당신은 남자고요.

옆에 여자가 있는데, 남자가 가만히 있을 수 있나요?

안 그래요?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란 말이에요. 알겠어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무송은 휘둥그래진 눈으로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한다.

그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끄떡도 안하고 우두커니 앉아만 있는 무송이

답답하고 안타까워서 금련은 두 눈을 힐끗 흘긴다.

그리고 서슴없이 또 반말로 아양을 떨듯, 그러면서도 명령조로 내뱉는다.

“여보, 안아줘. 날 안아달란 말이야.

안아서 저 침상(寢牀)으로 번쩍 들고 가라니까 그러네”

그래도 돌미륵처럼 아무 반응이 없자,

그만 그녀는 무송에게 안기려고 의자에 앉아있는

그의 두 무릎 위로 슬그머니 궁둥이를 들이민다.

마치 미끈한 암 여우의 궁둥이가 자기의 무릎 위에 징그럽게 와 닿은 듯해서

무송은 번쩍 정신이 들어 후다닥 의자를 뒤로 밀며 벌떡 일어서 버린다.

 

 

 

금병매 (23) 제1장 형제 23회 

 

 

 

어머나”


금련은 비명을 지르며 무송의 무릎에서 미끄러져내려

 

보기 좋게 방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무송은 우두커니 서서 금련을 내려다보다가 그만,

“헛헛헛허”

기분 좋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금련은 어이가 없고 분하기도 해서 그대로 방바닥에 퍼져 앉은 채

매서운 눈초리로 무송을 쳐다본다.

“아니, 뭣이 좋아서 웃는거야? 사람을 뭐로 아는거지?”

“짐승보다도 못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지”

무송은 히죽 코웃음을 친다.

“뭐 저런 맹추가 다 있는지 모르겠어.

사내라는 것이 덩치만 덜렁 커가지고 뭘 모르니 말이야.

아마도 고자인 모양이지?”

“뭐 고자라고? 내가?”

“그래, 고자가 아니면 사내가 그럴 수가 있어?

여자를 이렇게 무안을 줄 수가 있느냐 말이야”

“짐승보다도 못한 여자는 무안을 당해도 싸다구.

 남편이 있는 여자가 더구나 시동생한테 수작을 걸다니 ... 그게 사람이야?”

“아이 분해. 남편도 남편 같아야 말이지. 난쟁이인데다가 얼굴 생김새라고는 ... ”

“아가리 닥쳐!”

무송은 냅다 호통을 친다.

시커멓게 치솟은 눈썹이 더욱 쭈삣하게 솟구치고,

두 눈도 험악하게 찢어져 올라간다.

금련은 겁에 질려 그만 찔끔 목이 움츠러든다.

“한 번 더 우리 형님을 욕해봐, 용서하지 않을테니까.

미우나 고우나 결혼을 했으면 남편은 남편인 것이지,

무슨 그따위 소리가 있어.

그렇다고 남도 아닌 시동생한테 수작을 거는건가?”

어찌나 호통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지 금련은 뭐라고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그만 분을 못 이겨 울음을 터뜨려 버린다.

형수가 우니까, 무송은 좀 너무하지 않았나 싶어진다.

슬금슬금 창가로 가서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본다.

첫눈이 함박눈이 되어 푸덕푸덕 내리고 있다.

겨울밤의 찬 공기가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금련은 으스스 몸을 떨며 울음을 그친다.

그리고 발딱 일어나 잽싸게 도망치듯 계단을 내려가다가

우뚝 멈추어 서서 돌아보며 사납게 내뱉는다.

“나가! 시동생이고 지랄이고 한집에 살기 싫단 말이야. 당장 나가라구!”

무송은 입이 삐딱하게 이지러지는 그런 웃음을 떠올리며 대꾸한다.

“나가겠어. 그러나 당장은 안되겠고, 내일 나갈거야.

나도 너 따위 형수하고는 같이 살기 싫다구”

“흥! 저런 게 다 사내라구 ... ”

금련은 경멸하듯 눈을 흘기고는 얼른 아래층으로 사라져 버린다.

 

 

 

형제 24회 

 

 

 

이튿날 점심 때 무송은 부하 포졸 두 명을 거느리고 와서 짐을 꾸려 가지고 다른 처소로 옮겨갔다.

 

 형이 집을 비우고 없는 사이에 거처를 옮긴다는 것은 좀 도리에 어긋난다 싶었으나,

 

형이 돌아온 뒤에 옮길 경우 아무래도 일이 멋쩍게 되고 난처해질 것도 같으며,

 

또 간밤에 내린 첫눈이 무릎까지 묻힐 정도의 대설이어서 형이 그날 중으로 돌아올지

 

 어떨지도 알 수가 없으니,

 

그냥 옮겨버리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 여겨졌던 것이다.

금련은 미리 피하듯 이웃으로 놀러가 버리고 없었고,

 

 

영아만 혼자서 난데없이 짐을 꾸려 어디론지 이사를 가는 삼촌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삼촌, 왜 그래요?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우리 집이 싫어졌어요?”

“아니야, 싫어진 게 아니라 ... 현청 가까운 데로 옮기는 거야”

“여기서도 가깝잖아요”

“더 가까운 데로 ... ”

무송은 좀 씁쓰레하게 웃으며 영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니다 다를까 황아촌에 간 무대는 눈에 갇힌 듯 그날도 다음 날도 돌아오지 않았다.

무대는 사흘 뒤에야 초췌한 모습으로 해질 무렵에 귀가를 했다.

기어이 토종꿀을 구해 들어서 말이다.

세 식구가 식탁에 마주앉아 저녁을 먹는데, 영아가 불쑥 입을 연다.

“아버지, 삼촌 이사갔어요”

“뭐? 이사를 가? 그게 무슨 소리지”

무대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어서 아내를 멀뚱히 바라본다.

“나중에 얘기할게요. 아이 있는 데서 창피해서 말을 못하겠어요”

금련은 생각만 해도 정말 불쾌하다는 듯이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고개를 살래살래 내흔든다.

잠자리에 들자 금련은 남편 곁으로 찰싹 다가붙으며 시치미를 뚝떼고 나불나불 지껄이기

시작했다.

“여보, 내 말 좀 들어봐요.

참 나 기가 막혀서 ... 뭐 그런 망나니 같은 자식이 다 있는지 모르겠어요”

“누구 말인데?”

“누군 누구예요. 무송인가 뭔가 그 자식 말이지.

아 글쎄, 시동생이라는 것이 형수를 어째 볼려고 살살 수작을 걸지 뭐예요”

“아니, 그게 정말이여?”

“정말이라니까요. 내가 뭐 할일이 없어서 그런 거짓말을 하겠어요.

한밤중에 이층으로 오라기에 가봤더니 글쎄 ... 나 참 기가 막혀서 ...”

“음, 무송이가 그런 사람이 아닌데 ... ”

“뭣이 어째요?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야! 뭐야!”

금련이 냅다 반말로 쏘아붙이자, 무대는 과연 줏대가 없는 사람답게,

“알았어, 알았어. 그래서 내쫓았다 말이지? 잘했어”

이렇게 말하고는 슬그머니 돌아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