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무흔검(無痕劍)

29. 탐욕의 흑심

오늘의 쉼터 2014. 6. 20. 16:35

29. 탐욕의 흑심

 

 

 

"이 일을 직접 본 사람이 있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위모가 만약 가부를 공격한 그 일을 따지려 든다면

이렇게 몰래 숨어서 할 필요는 없을 거요.

당신네들이 보물을 보고 마음이 달라졌으면 차라리 시원하게 딱 잘라서 얘기하시오.

억지로 죄명을 나에게 씌우지 말고 말이오!"

 

화암상인은 무공이 심후하고 생각하는 것이 깊었다.

그가 이번에 직접 강호에 나온 것은 이 일을 철저하게 알아 보려는 마음에서였기에

이런 거칠고 난폭한 말을 듣고서도 화를 내지 않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의 말은 사실대로 일리가 있다고 볼 수 있지.

아마 다른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구나.

그렇다면 십대 문파는 이 회오리에 말려 들어서는 안 된다.'

 

그는 즉시 아미타불을 외우며 물러 내려와 이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했다.

돌연 뒤에서 외마디의 폭갈에 이어 괄창파의 일장차천이 앞로 나서서 물었다.

 

"너는 보물이 뭐가 대단하다고 탐난다는 것이냐?

우리가 찾는 것은 바로 동물을 흉살한 흉수이다.

넌 흑옥인마와 친구가 되고 또 추혼천녀를 사랑하고 있으니

우리와 같은 정도(正道)의 인물과 적대시한다는 것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데

그래도 시치미를 뗄 작정이냐?"

 

위중평은 그의 말에 하마터면 뇌가 터질 뻔했다.

그는 별안간 사나운 폭갈을 터뜨렸다.

 

"닥치시오! 당신네들이 정말 이렇게 시띠를 건다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소.

재주가 있으면 있는 대로 다 내놓으시오!"

 

흑옥인마가 한 옆에서 구경만 하다가 위중평과 일장차천이 말다툼을 하는 것을 보고

급히 그의 곁으로 가서 가로막았다.

 

"이 사람들은 내가 상대할 테니 넌 가서 저 눈도 뜨지 않은 놈들에게 손 좀 봐 주어라!"

 

역시 노강호인이라 그는 이미 과벽지호의 사람들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즉 그들이 여지껏 공세를 발동하지 않은 이유는 위중평이 십대 문파의 사람들과

한바탕 치룬 후에야 앉아서 잡은 고기를 가로채려는 심산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나

십대 문파와 위중평 사이엔 단지 오해가 있을 뿐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흑옥인마가

어찌 이들을 그냥 싸우게 내버려 두겠는가!

바로 위중평이 몸을 뒤로 물리는 순간에 구루쌍마가 이미 좌우에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에게 달려들었으며 백골홍안은 날으는 새의 발톱같은 두 손으로 오른쪽 겨드랑이를

잽싸게 잡으려고 했고 음양거사의 일기강살이 마치 쏜살같이 사혈로 습격해 들어왔다.

그러나 이 때의 위중평은 이미 살기가 동하여 홀연히 발을 미끌어뜨리며

살며시 옆으로 피하며 이어 장심을 내뻗자 순식간에 폭음이 연발하니

그 세도는 매우 위맹했다.

백골홍안은 강호에서 이름난 흑심여마라 난폭하기 그지없었기에 장풍이 닥쳐오자

피하지도 않고 새발톱 같은 메마른 손을 앞으로 내밀며 백공음풍장을 전개했고

이어서 음양거사의 일기 강살이 또 옆에서 비스듬히 밀려오자

부부 둘이서 합력을 한 셈이 되었다.

 

"꽈르르릉…"

 

폭음 소리가 나자 위중평은 남삼을 펄럭이며 비스듬히 삼 척이나 물러났지만

백골홍안은 낯이 빨갛게 상기되더니 휘청거리면서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단지 음양거사만이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안색이 과히 좋은 편은 아니었다.

백골홍안은 일 초가 실패하자 성질이 왈칵 치솟아 올라서 가늘게 소리를 지르며

또다시 앞으로 달려들자 위중평은 두 눈에서 살기를 뿜고 냉랭히 웃으며

그녀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주려고 하는데 돌연 하나의 흰 인영이 장내로 내려오더니

곧장 백골홍안한테 달려가는 것이었다.

출수는 마치 바람이 스쳐가듯 빠르고 맹렬하여 계속 십이식을 공격했다.

그리고 모두가 다 기교무비한 절학이어서 순식간에 백골홍안은 뒤로 칠팔 보나 물러갔으며

음양거사는 어떤 고인이 온지 몰라 급히 쌍장을 모으고 덤벼들었다.

위중평은 갑자기 장내에 뛰어든 사람이 바로 금루선연이라는 것을 알고 돌연 폭갈을 지르며

경도랍안 일식을 펼쳐 산을 흔드는 기세로 그의 등 뒤로 휩쓸어 갔다.

음양거사는 하는 수 없이 재빨리 몸을 돌려 일기강살을 옷소매 자락에서 내놓았다.

순간 폭음이 터져 나오며 두 사람의 일 초가 맞부딪쳤다.

위중평은 살기가 등등하여 다시 천룡장법을 전개해 눈 깜박할 사이에

빈고동지 일 초를 내놓고 장경이 아직 가시기도 전에 제 이 초인 용사구천을

또 노도같이 밀어냈는데 이 선문 절학의 위력은 정말이지 경악할 만해

음양거사가 수십 년이나 강호를 누비고 다녔어도 이런 항거할 수 없는 장법은

지금이 처음이었으나 일신의 공력을 다 써서 겨우 이 초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중평은 이 초가 지나가자 장식을 돌변시켰다.

화산파에서 수백 년이나 실전했던 절학인 일양래복장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위력을 지닌 난석붕운을 십 성의 공력을 모아서 음양거사에게로 습격해 갔다.

음양거사는 일대 종사의 신분으로 위중평에게 연신 삼 초를 공격당하고도 일 초한 번

반격할 수 없자화가 치밀어올라 무섭게 노갈하더니

쌍장에 십 성의 공력을 운공하여 홀연히 수평으로 밀어내 수십 년 동안의 공력으로

기울어진 대세를 돌이키려고 했다.

결국 그는 위중평의 이 난석붕운 일 초를 막아내긴 했지만 등 뒤에서 갑자기

한 가닥의 잠력이 밀려오는 것을 느낀 순간 머리가 어지럽고 혈기가 위로 치밀어오르자

선혈을 한 모금 뱉아내고서 비틀거리며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위중평이 일 장에 음양거사를 다치게 하자

군웅들은 일제히 격노하며 앞 뒤를 다투어 달려들었다.

천산삼로 중의 팔괴신수가 위중평을 가리키며 노갈했다.

 

"조그만 꼬마녀석이 이토록 악랄하다니,

만약 따끔한 맛을 보여 주지 않으면 하늘 높은 줄도 모르겠구나!"

 

위중평이 냉소를 쳤다.

 

"정말 노래보다 듣기 좋군요.

한 마디 묻겠는데 당신과 난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

무엇 때문에 나를 포위하고 있는 거요?

만약 위모가 이 정도의 무공을 배워두지 않았더라면

이 허리에 있는 물건을 벌써 당신네들에게 뺏겼을 게 아니오?

이런 강도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감히 누구를 어떻게 훈시한다는 얘기요!"

 

천산삼로는 강호에서 지위가 매우 높았다.

서북 일대에서는 더욱더 위명을 날리고 있는 터인데

오늘 한낱 후배에게 이런 말대꾸를 들으니 순간적으로 안색이 달라졌다.

 

"닥쳐라! 천산삼로가 너의 그 소검이 탐나서 이러는 줄 아느냐!

노부는 네가 강호에 나타나자 무공 좀 할 줄 안다고 으스대며

무림의 동료들을 잔살한다는 소문을 듣고 어떻게 생긴 놈이

어떤 재주를 가졌나 하여 견식이나 해볼까 해서 이렇게 왔다."

 

위중평은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아 다시 몇 마디 뭐라고 해주려고 하는데

돌연 홍영이 어른거리더니 추혼천녀가 자기 곁으로 사뿐히 내려서는 것이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백골홍안에게 공격하는 금루선연보고 얘기했다.

 

"동생, 빨리 이리와 봐. 조금 있다가 틀림없이 기분나게 한 바탕 할 것이니까."

 

오늘의 금루선연은 다른 날보다 말을 잘 들었다.

그녀는 냉큼 장세를 거두고 위중평의 곁으로 물러났다.

추혼천녀는 흑옥인마 곁으로 다가가며 얘기했다.

 

"흑노마,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마세요.

저쪽으로 가서 의논 좀 하고 시작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흑옥인마는 눈을 부릅뜨고 추혼천녀를 무섭게 째려보고서는 괴소를 치며

위중평의 곁으로 걸어갔다.

 

"허허허…"

 

추혼천녀가 갑자기 나타나자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질겁을 하였다.

흑옥인마와 위중평만 상대해도 이미 그들에게는 큰 부담인데

거기에다 또 어디서 왔는지 백의소녀와 추혼천녀가 자리를 같이하고 있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정세가 달라지자 사람 마다의 심정도 따라 긴장되었다.

각자 정신을 가다듬느라고 누구하나 먼저 선수를 치는 사람이 없었고

추혼천녀는 세 사람을 한 곳에다 모아놓고 나서 입을 열었다.

 

"흑노마, 남들은 당신과 나를 마왕과 마녀라고 부르고…"

 

그러다가 위중평을 보며 다시 말했다.

 

"저이는 일반들에게 마인이라고 불리우지요.

오늘 이곳에 모인 마두들과 한 번 크게 놀아나는 게 어떻겠어요?

그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주지 않으면 그들은 절대로 그녕 물러서지 않을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흑옥인마는 귀신이 밤에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내며 처절하게 웃었단.

 

"삼십 년 동안 흑옥에 숨어 지낸 터라

노부의 웅심은 이미 사라진 지가 오래다.

그런데 오늘은 어쩔 수 없으니 그렇게 하는 수밖에…"

 

이 때 위중평이 별안간 품 속에 넣었던 와황금검을 꺼내

돌연 일출강천 일 초를 허공에다 후려쳐 냈는데

순간 허공에서 무수한 금빛이 치솟더니 밖으로 밀려 나갔다.

금광이 스쳐가는 곳마다 초록빛이 난무하며 몸 주위 일 장 정도 되는 곳의 풀들이

모두가 잘리어졌고 동시에 처량하게 느껴지는 긴 휘파람 소리가 울려 나오니

듣는 이의 가슴이 마치 성난 파도처럼 물결치며 여러 사람의 귀청을 울리자

공력이 좀 약한 자는 이 소음에 안색이 창백해지고 혈기가 들끊어 급히 뒤로 물러갔다

 

"쿵!"

 

다음 순간 둔탁한 소리가 나더니 중상을 입은 음양거사가 소음에 진동되어

담이 무너지듯 쓰러지자 백골흥안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즉시 음양거사를 안아 일으키더니 죽어라 하고 미친 듯이 앞으로 달려갔다.

위중평의 장소(長嘯)는 순전히 가슴 속에 뭉쳤던 울분을 발설했을 뿐이지

절대로 내공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소음이 사라지자 그는 수중의 금검을 올리고 말았다.

 

"난 당신네 같은 욕심장이들이 천 리가 멀다 않고 달려온 것은

이 검을 뺏으려는 속셈인 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난 이것을 굳이 가지고 싶은 생각은 없소.

재주가 있으면 가지러 오시오!"

 

그러나 장내에는 고요하니 아무도 소리내는 사람이 없었다.

주위는 무거운 침묵으로 가득 찼다.

이 고요함은 바로 폭풍우가 몰아치기 전의 전주라고 할 수가 있다.

천산삼로는 탐욕의 광채를 폭사하면서 천천히 앞으로 옮겨가고

과벽지호도 살며시 운공을 했다.

또한 상강쌍영, 도문호객, 온랑자 매려, 인면갈 오행 등

성격이 오만한 젊은 수재자들도 병기를 쥐고 발동을 걸기 시작했다.

다만 십대 문파의 사람들만이 안정을 유지하며 조용히 한 옆에서 구경만 했다.

싸늘한 밤바람이 불어 오고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와 일순 많은 사람이

곳곳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는 것 같은 것을 느끼자 위중평은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바로 그가 눈을 돌리는 순간에 돌연 폭갈이 울리더니

하나의 인영이 잽싸게 위중평의 손에 든 소검을 잡아오는 동시에 일 장을 비스듬히

그의 견정혈을 내리치며 달려든 사람은 과벽지호였다.

그는 공력이 절륜할 뿐만 아니라 속셈이 매우 간사하고 교활했지만

위중평은 경풍이 얼굴을 스치는 것을 느끼자

잽싸게 몸을 구부려 번개가 번쩍하는 순간 뒤로 삼 척이나 물러나며

휘과토일 일 초를 쓰자 와황금검이 몸 앞에 일도의 광막을 형성해

과벽지호의 앞으로 내달리는 공세를 막았다.

이 여우는 일격이 맞지 않자 다시 돌격했으나 돌연 옆에서 먹처럼

새까만 음풍이 일어나더니 비스듬히 과벽지호에게로 습격해 가자

과벽지호는 신형을 나사처럼 급회전하더니 도전건곤 일 장을 후려내며

습격해 오는 음풍 쪽으로 부딪쳐 갔다.

 

"콰르릉… 콰르릉…!"

 

폭음 소리가 지나가자 과벽지호는 단번에 대여섯 걸음이나 물러나서야

몸의 균형을 잡을 수가 있었고 이어 두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휘둘러보다가

자신을 습격한 자가 흑옥인마라는 것을 알자 가슴이 섬뜩해졌다.

 

"네가 삼십 년 동안 흑옥에서 고심한 끝에 지장음공을 완성시켰다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지.

노부는 어디 한 번 얼마나 큰 위력을 지녔는지 견식해 보고 싶군!"

 

흑옥인마가 냉랭히 대답했다.

 

"만약 네가 내 손에서 십 초를 버티어 낼 수만 있다면

이삼십 년 동안 공부한 것이 헛일이라고 해두겠다."

 

하면서 잽싸게 앞으로 내달으며 발장하여 공격해 갔고

동시에 장내에 폭갈이 연속 일더니 군웅들도 일제히 공세를 발동시켰다.

 

"와와… 우… 우…"

 

천산삼로는 위중평과 붙고 추혼천녀와 금루선연은 공격해 오는 군웅들에게 달려들었다.

금루선연은 공격해 오는 순간 극렬한 혼전이 전개되었다.

천산삼로의 공력이 심후하고 무공이 각기 장기가 있어 아무리 무림에서 일등가는

고수라고 해도 그의 십 초를 막기가 어려웠다.

위중평은 즉시 와황금검을 품 속에다 넣고 일신의 절학을 다 써서

따로 자기의 보물을 약탈하려는 사람들과 싸우기로 마음 먹었을 때

팔괴신수의 장력이 배산도해의 태세를 갖추고 머리 위로 날아오자

위중평은 냉소를 치며 발을 정(丁)자로 하고 석붕운 일 초를 팔괴신수의

전력적인 일격을 받아내는 한편 빈고동지 일 초로 출수하여 옆에서 쳐들어 오는

철괴선옹의 철괴를 한 옆으로 밀려나가게 했다.

 

"휘익!"

 

바람 소리가 나자 추풍축일의 나운착월수가 또다시 등 뒤에 있는 영대,

명문 각 혈도로 찔러왔으나 조금도 자세가 흩어지지 않았다.

홀연히 몸을 돌려 손가락 세 개로 경리청화를 내놓아 추풍축일의 손목을 잡아갔는데

이 절기는 화산의 실전된 공부라서 아는 사람이 드물었기에 추풍축일은 깜짝 놀라

잽싸게 손을 거두고 옆으로 피했으나 그래도 조금 늦어 손목에 약간 스쳤는데도

피부가 갈라지는 것 같은 아픔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때 팔괴신수가 태풍을 안고 다시 쓸어왔고 철괴선옹의 괴영이

온 하늘을 메우며 등 뒤에서 공격해 왔다.

위중평은 침착하게 손을 휘둘러 장법을 전개하며 무수한 괴영을 일으키고

천산삼로에게 맹렬하게 공격했다.

이 때 장내는 이미 삼 조로 나뉘어 있었다.

흑옥인마는 과벽지호와 붙어서 연 이십여 초나 공격했으나 일시적으로

그들을 모두 처치하기가 어려웠고 추혼천녀와 금루선연은

상강쌍영, 도문호객, 온랑자 매려, 인면갈 오행 등 젊은 고수들을 대했지만

마찬가지로 옛날처럼 손쉽게 해결이 나지 않았다.

제일 위급한 상황에 접한 자는 상평이었다.

평소 때에 천산삼로 중 하나만 나타나도 강호가 떠들썩하게 놀랄 일인데

오늘 셋이서 합세를 하고 공격해 오니 그 공세가 얼마나 위맹한지 알 만했다.

바로 그들이 각자의 절학을 내놓고 한참 싸움에 정신이 없을 때 장내에 갑자기

유령처럼 두 명의 키가 늘씬한 중년 사나이가 나타났으며 청삼에 머리엔 두건을 매고

모습이 아주 냉막했다.

그들은 냉랭히 장안을 훑어보고서는 천천히 품 속에서 화살형 같은 현옥패를 꺼내며

소리를 질렀다.

 

"멈추어라…"

 

그의 소리는 크지 않으나 또박또박하고 마응을 휘어잡을 듯한 힘을 지녔고

천산삼로가 아연해 하며 먼저 손을 멈추자 잇달아 과벽지호, 상강쌍영, 도문호객 등도

서로 철수하여 시선을 돌연히 나타난 두 괴인에게 돌렸다.

두 괴인은 냉전(冷電)같은 시선으로 장내를 쓸어 보더니 옥패를 높이 쳐들었다.

"명명주재의 구사옥부를 전달하겠다.

위중평과 싸워서 이긴 자에게 와황금검의 소유권을 주겠다.

그리고 영원한 안전을 보호해 주므로 만약 그 누구라도 그를 도와 주는 자가 있으면

공개적으로 명명주재와 적대시하는 죄로 어디서든지 그에 응당한 대가를 받을 것이다…"

 

바로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동안 흑옥인마는 이미 이 두 사람이 쌍동이 형제라는 것을 알아냈다.

큰 사람은 포잔우사이고 작은 사람은 수결서생이라고 불렀는데

이십 년 전에 강호에 명성을 떨쳤고 일신의 무공은 어떤 이 인에게 전수받아

괴이무비하고 건드리기가 어려웠다.

그는 그의 말을 듣자 광소를 쳤다.

 

"하하하… 너희들 보배 형제가 명명주재의 앞잡이가 될 줄은 몰랐는데 정말 재미있구나!"

 

포잔우사는 고의 말에 대답은 않고 또 십대 문파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위중평이 감히 멸명주재의 구사독분를 겄역하다니

정말 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소행이다.

너희 십대 문파의 사람은 보검을 뺏지 않는다고 해도

그 명령에 복종하여 협력해서 그를 제거해야 한다.

자, 어서 시작해라!"

 

이것은 완전히 명령식의 말이었다.

그러나 십대 문파의 사람은 반 수 이상이 장문인을 포함해서

그 말을 듣고도 노하기는커녕 얼굴에 수심을 가득 띠고 한 곳에 모여서

소근소근대며 의논했고 한편 흑옥인마는 포잔우사가 자기의 말에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자

즉시 미친 듯이 화를 내며 음산하게 냉소를 쳤다.

 

"미친 놈, 감히 노부 앞에서 발광을 하다니…"

 

커다란 소맷자락을 휘저으며 한 가닥 먹처럼 새까만 지장음 공을 거센 풍랑처럼 밀었으나

포잔우사가 냉랭히 웃었다.

 

"다른 사람은 당신을 두려워할지 모르지만 우리 형제는 그렇지 않소."

 

이어 장을 한 바퀴 돌리더니 위맹한 강양장력을 떨쳐내 앞으로 맞서갔다.

 

"콰르릉…"

 

거대한 소리가 울리자 두 사람은 동시에 뒤로 한 걸음 물러났고 흑옥인마는

머리카락과 수염을 일제히 곤두세우고 제 이 장을 마치 전광석화처럼 잽싸게 공격해 냈다.

바로 흑옥인마가 공세를 발동한 동시에 추혼천녀도 바람처럼 수결서생에게로 달려들어

옥수를 연신 휘둘러 대며 단숨에 십이 식을 공격했다.

모든 절초가 옥탑 위에 기재되었던 절학이었다.

그러나 이 형제들은 정말 경탄할 만한 일신의 공력이 있어 이 보기드문 고수의 공격에도

교묘히 피해 내면서 동시에 폭갈했다.

 

"너희들이 감히 공개적으로 명명주재의 사자를 모욕하다니

백 번 죽어 마땅하니 어서 냉큼 멈추지 못할까?"

 

추혼천녀의 얼굴엔 이미 싸늘한 서리가 굳어 있는 것 같아

차갑기가 상대의 혈액을 얼릴 수 있을 정도여서 쌍미를 위로 치켜 세우고

삼제유공을 포잔우사의 말이 떨어질 무렵에 내놓았으나 포잔우사는

그래도 뭔가 아는지 순간 독사를 본 것처럼 뒤로 급히 일 장이나

멀리 물러가며 동시에 십대 문파에 노갈했다.

 

"의논이 되었소, 안 되었소? 어찌 아직도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게요?"

 

일순 비통하기 그지없는 불호 소리가 울려 퍼지며 화암상인은

십대 문파의 사람들을 데리고 각기 경공을 펴서 일제히 추혼천녀와 흑옥인마 등에게

공격했고 동시에 천산삼로와 상강쌍영 등 무리들은

또다시 위중평과 금루선연에게 공격해 갔다.

위중평은 정세를 살펴보고 몹시 이상하게 생각했다.

 

'명명주재라는 실물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무림 각파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토록 복종을 하게 하는 마력을 지녔단 말인가…'

 

그러나 천산삼로가 다시 공격해 오는 바람에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이 없어지자

냉정하게 천산삼로와 저항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장내의 정세를 살폈다.

추혼천녀와 흑옥인마는 비록 십대 문파의 이십여 명 고수들과 어울렸지만

아무런 패한 기색도 없는데 금루선연은 혼자서 과벽지호와 칠팔 명의

젊은 고수의 공격을 받고 있어서 정세가 약간 불리했다.

그 대신 포잔우사와 수결서생은 뒷짐을 지고 냉랭히 장내를 살펴보기만 했다.

그들의 모습은 유유하고 거만하기 짝이없었다.

보면 볼수록 더욱더 화가 났다.

위중평은 돌연 장소를 울리며 최근에 배웠던 천룡장법을 전개했다.

일순 장풍이 몰아치고 번개가 번득이는 가운데 팔괴신수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칠팔 보나 물러났다.

 

"짱그랑…"

 

곧이어 철괴선옹의 철괴가 손에서 벗어나 허공으로 떠올라갔고 추풍축일은

상황이 자기에게 불리해지자 급히 초식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돌연 뒤에서 경풍이 밀려오더니

위중평의 팔구통천지가 전개되어 추풍축일의 왼팔이 팔목에서 잘려져 나갔다.

위중평은 단시간 내에 절학을 잇달아 내놓아 천산삼로를 격패시키자

즉시 신형을 날려 금루선연의 겉으로 날아갔다.

이 때 금루선연도 쉽사리 쓰지 않는 천룡장법을 사용하자

맨 먼저 앞에선 상강쌍영이 갑자기 아무런 느낌도 없는 미풍이 체내로 투입하자

이상한 것을 느끼는 순간에 몸이 던져진 공처럼 공중으로 일 장 높이나 던져지더니

땅에 떨어지며 그 길로 황천길로 달려갔다.

금루선연은 일 장이 쌍영을 적중하자 제 이 장을 또다시 도문호객에서 후려쳐 갔으나

도문호객은 일찍 강호에서 한 자리를 잡아서인지 성격이 매우 광폭했다.

그녀의 곱디고운 섬섬옥수가 마치 태국선처럼 서서히 밀려오는 것을 보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디 한 번 얼마나 강인한 위력을 지녔는지 두고 볼까?'

 

돌연 거령장을 내밀어 추창망월 일식을 맹렬하게 밀어내자

순간 회오리가 일어났지만 장풍은 마치 망망대해 위로 부는 미풍같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섬뜩함을 느끼는 순간 한 가닥의 미풍이 장풍을 뚫고 몸으로 습격해 오자

갑자기 몸이 굳어지고 던져진 공처럼 떼굴떼둘 굴러 이 장 밖으로 굴러 나갔다.

다행히 그의 장풍이 기세를 약간 막아 주었기에 단지 중상만 입었을 뿐

당장 목숨이 끊어지지는 않았다.

바로 금루선연이 천뢰장을 써서 연속적으로 세 사람을 다치게 한 순간에

위중평이 이미 미친 호랑이처럼 과벽지호에게로 달려갔다.

지(指)와 장(掌)을 동시에 날려 영문도 따지지 않고 연속적인 칠 초를 공격했다.

이 늙은 여우는 간사하여 천산삼로가 모두 위중평의 손에 다친 것을 보자

자기의 무공이 삼로와 비슷할 뿐이지 더 높지는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가 공격해 오자 힘껏 몇 초를 상대해 주고 별안간 날쌘 토끼처럼 달아나 버렸다.

금루선연을 협공했털 사람이 셋이 죽고 하나가 달아나자

도리어 온랑자와 인면갈은 너무 무서웠으나 나머지 그 자리에서 공격하지도 못하고

달아나지도 못한 채 신색이 긴장하여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위중평은 금루선연이 십대 문파 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본 동시에

장내의 상황을 보자 깜짝 놀랐다.

흑옥인마의 핏발이 서 있는 두 눈에서 정광이 번쩍거리며

한 쌍의 철괴를 휘둘러 소림의 장문인 화암상인과 장문인 곁에 있는

네 명의 호법 영, 문, 금, 인 네 고승하고 목숨을 건 싸움을 벌였다.

추혼천녀는 전혀 무표정한 차가운 석고인처럼 인마 속을 날아다니며

거칠은 성질을 완전히 폭발시켜 앙칼지게 소리를 질렀다.

 

"흑노마, 잠시 물러가 계세요! 이 호랑이의 앞발 노릇을 하는

무림의 썩은 무리들에게 소혼마장이 어떤 맛인지 보여 줘야겠어요."

 

바로 그 때 금루선연과 위중평이 장내로 뛰어들어와 소리 높여 외쳤다.

 

"멈추시오!"

 

흑옥인마는 그들 둘이서 재삼 멈추라고 하는 바람에 장세를 거두고

위중평의 뒤로 물러섰으나 여전히 화가 안 풀어졌는지 화암상인 등을 노려보고 있었다.

위중평은 쌍방이 모두 손을 멈춘 것을 보고 십대 문파의 사람들을 가리켰다.

 

"십대 문파의 사람들은 들으시오. 위모와 당신들은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어찌하여 재삼 나에게 복수를 하려고 하시오.

그리고 당신들도 명문의 정파라고 불리우는데 어찌 남들의 앞잡이 노릇을 한단 말이오.

내가 들어도 부끄러운 일이요. 오늘 밤 위모가 먼저 말을 하겠지만

만약 당신네들이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그들의 명령에 움직인다면

위모의 수단이 악랄하다고 원망하지 마시오!"

이 열 개의 문파는 모두가 다 무림에서 역사가 오래된 문파였다.

그들이 어찌 명명주재의 명령대로 하기를 바라겠는가.

다만 어느 장문인을 막론하고 이 일로 하여금 본문에 무궁무진한

후환을 남기고 싶지가 않아서였지만 위중평의 말을 듣고

모두 다 자기들의 잘못을 깨달았다.

상대는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당당하게 명명주재와 대항을 하는데

자기들은 당당한 무림의 한 문파로서 남의 명령에 움직이다니

너무나도 창피한 일이라 생각한 화암상인은 숙연한 태도를 취하며 쌍장을 모으더니

소리 높여 불호를 낭송하고는 딱 잘라서 말했다.

 

"시주의 말이 옳다고 생각되오.

소림은 오늘 밤 이 일에 관여치 않겠소.

우리 사이의 일은 다음으로 미룹시다."

 

무당의 천현도장 금사불원도 덩달아 말을 이었다.

 

"무당도 소림사와 같은 태도를 취하겠소!"

 

무림인은 대부분 피가 그 자리에 뿌려진다 해도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 개성이 있었기에

그렇게 결정을 내리자 나머지 각파도 일제히 대답했다.

 

"십대 문파는 서로 연관이 깊으니, 우리도 같은 태도를 취하겠소."

 

그리하여 십대 문파의 사람은 옆에 있는 포잔과 수결 두 형제의 매서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밖으로 걸어 나갔는데 채 열 걸음도 가지 못해

돌연 숲 속에서 한 무리의 사람이 나와 길을 막았으며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머리에 금관을 쓴 준미공자가 걸어나왔다.

그는 여러 사람을 보며 이를 드러내고 소리쳤다.

 

"옥부사자의 전달을 감히 듣지 않다니… 돌아가라!"

 

이 외마디의 소리가 어찌나 날카로운지 마치 하인이나 부하들을 호통하는 것 같았다.

십대 문파의 사람은 대부분이 장문인과 그 파 내의 지위가 매우 높은 사람인데

어찌 한 후배의 호통을 들을 수가 있단 말인가.

적송자가 버럭 화를 내며 냉소를 터뜨려 내었다.

 

돌연-.

인영이 어른거리더니 잇달아 우렁찬 기합 소리가 들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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