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문학관

/6. 방랑(放浪)

오늘의 쉼터 2009. 6. 28. 23:58

 

6. 방랑(放浪)

 

 가상아를 떠난 원효는 정처없이 걸었다.

 이른바 거렁뱅이 생활이다.

 거렁뱅이란 ‘가사’라고도 하여 바람이란 말에서 온 것이요,

 방이란 곧 방아 또는 바가로 방아신을 섬기는 사람이란 뜻이다.

 방이 또는 바가라면 선비라는 말과 비슷하여서 대접하는 말이다.

 화랑들이 공부를 마치면 거렁뱅이가 되어서 명산대천으로 돌아다닌다.

 이것은 좋은 스승과 벗을 찾는 뜻도 있고 인정 풍속을 살피는 뜻도 있고

또 흉악한 사람이나 짐승을 만나서 담력과 무예를 닦는 뜻도 있고,

웅대하거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보아서 느낌을 기르는 뜻도 있고,

또 이름 있는 당에 가서 기도를 하는 뜻도 있다.

 이것저것 합하여서 남아의 금도를 늘리고 또 파겁을 하자는 것이 목적이지마는

그밖에도 청년 남아가 정처없이 유랑하는 것은 모험욕과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유쾌한 일이었다.

 신라에 이름 있는 사람들은 대개 젊어서 거렁뱅이 생활을 한것이었다.

 그러나 거렁뱅이 중에는 이러한 목적 이외의 목적을 가진 자도 있었다.

 혹은 먹을 것이 없어서 얻어먹으러 다니는 자도 있고, 혹은 고향에서 무슨 죄를 저지르고 피신하여

 다니는 자도 있고, 혹은 부모의 원수를 갚으려고 원수의 종적을 찾아다니는 자도 있고,

혹은 도적들이 거렁뱅이 행색을 하고 다니는 자도 있었다.

 좀더 놀라운 거렁뱅이는 고구려와 백제의 염탐꾼들이었다.

 그들은 거렁뱅이의 모양을 하고 신라 각지로 돌아다니면서 신라의 지리와 방비와 민정을 염탐하였다.

 이와 반대로 신라의 염탐꾼이 고구려와 백제로 가는 것도 물론이다.

 춘추도 젊어서 고구려로 숨어 들어가다가 말 사투리로 신라 사람인 것이 발각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거렁뱅이라면 본래의 수도하는 선비나 장수이기 때문에 신라 사람들은 거렁뱅이를 우대하였다.

 동네마다 세사가 넉넉한 집에서는 사랑문을 열어놓고 누가 오든지 한번 수작을 붙여 보아서

공부가 있는 사람이면 손님으로 대우하여 먹이고 재우고 또 노자까지도 주어 보내었다.

이렇게 사랑문을 열어놓은 것을 집의 자랑으로 여겼다.

 사랑이란 이렇게 손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었다.

 손님이란 결코 제 친척이라든지 본래부터 아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친척이나 아는 사람밖에 대접할 줄 모르는 것은 상놈으로 수치로 여겼다.

 누구나 내 문전에 오는 이는 다 손님이었다.

 

 이 모양으로 손님을 대접하는 편, 즉 주인으로 보면 손님을 대접하는 것은 인생의 낙인 동시에

큰 공부였다.

아무리 못난 나그네라도 한두 가지 배울 것과 들은 말은 가지고 왔다.

 만일 몇십 명에 하나나 몇백 명에 하나라도 큰 인물을 만나면 이것은 일생에 큰 복이다.

그러한 사람 가운데는 도학이 높은 이도 있고 학식이 많은 이도 있고, 또 장차 대신,

대장이 될 사람도 있는 것이다.

 사랑에서 하룻밤을 잘 대접한 인연으로 장래에 무슨 큰 복이 돌아올지도 모르는 것이다.

 주인은 사랑에 앉아서 앞길을 바라본다. 앞길과 사랑 사이에는 필시 수양버들이나 돌매나무가

차면 모양으로 늘어섰을 것이다.

 그 그늘로 하루 종일 사람이 지나다닌다.

 말이나 가마를 탄 귀인도 지날 것이요, 짐을 지고 소바리를 끄는 가난한 사람도 지날 것이다.

그러나 유시호 큰 방갓을 쓰고 소매 넓은 방아라를 입고 붓짐을 넌지시 지고 지팡이를 끄는

 거렁뱅이도 지나갈 것이다. 그러한 사람이 지나가면 사랑에 앉은 주인의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이다.

 ‘ 필시 범상치 아니한 사람이다.’

하고 고개를 늘여서 그 사람의 행동을 살필 것이다.

 그 나그네는 필시 나무 그늘에서 서서 부채를 부치면서 동네를 들여다 볼 것이다.

그가 정말 학식이 있는 방아라면 이 동네의 판국을 먼저 살필 것이다.

 주룡 主龍이 어떻고 청룡 靑龍, 백호 白虎가 어떻고 수구 水口가 어떻고 안산이 어떻고

향작이 어떻고, 이 모양으로 그 동네의 판국을 살펴서 이 동네에 인물이 날까 말까를 점칠 것이다.

 산을 사랑하는 이 땅의 백성은 알 수 없는 옛날로부터 산과 물의 생김생김으로 땅의 운수를 보는

것이 발달된 곳이었다.

 길게 뻗친 산맥이 우뚝 솟고 뚝 끊치며 앞으로 큰 강이 휘임하게 돌고 큰 들이 열리면

이것은 이룬바 천부금탑으로 수백만 인이 수천 년 번창할 만한 큰 터다.

만일 바다가 가까우면 더욱 좋고 흙빛이 검지 아니 하면 더욱 좋다.

 이러한 터로 말하면 한 나라에도 하나나 둘밖에 못 되지만 한 동네가 될 만한 터도 규모는

작을지언정 배포는 마찬가지다.

좌향은 남향이 좋고, 서북이 막히고 동남이 터진 것이 좋고,

화강석 花崗石 있는 데가 물이 좋고 곡식과 과일이 맛있고, 산이 험하면 못 쓰고,

터전은 평탄해야 쓰고, 흙은 조강하면서도 물은 있어야 쓰고, 물 나가는 데가 환히 보이면 못 쓰고,

 골짜기가 통일이 못 되고 어지러우면 인심이 침착하지 못하고 판국 밖의 산이 넘보면 사람들의

마음이 들뜨고, 동북방, 북방, 서북방은 신을 모시는 데요,

서남방을 더럽게 하면 못 쓰고, 이런 것이 다 조상적부터 내려오는 동네터, 집터를 보는 법이다.

 나무 그늘에 선 나그네가 동네의 산세와 수세를 살핀 뒤에는 인기를 살핀다.

인기란 거기 사는 사람들의 기상이다.

 길이 널찍하고 집들이 터전이 넓고 굵직굵직하면 인기가 힘이 있는 것이요,

 비록 초가집이라도 게딱지 같으면 그 속에 사는 사람은 보잘것이 없다.

 다음에는 개와 닭과 소와 말을 본다.

개, 돼지, 닭, 소, 말, 고양이, 이것은 이 땅 백성이 알지 못하는 옛날부터 같이 살아온 동무다.

 아마 아시아 대륙의 훨씬 북쪽으로부터 남으로 남으로 옮아오는 동안 언제나 데리고 온 동무다.

개는 강아지, 즉 햇님의 것이라 하여, 돼지와 닭은 달님의 것이라 하여, 소는 수신의 것이라 하여,

말은 또다시 일신의 것이라 하여 서로 정들게 서로 도우며 살아온 것이다.

 도, 개, 걸, 윷, 모는 돼지, 개, 가라사, 즉 날짐승과 소와 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짐승들이 번성하는 동네면 인기가 왕성한 동네다.

이밖에 동네에 같이 사는 동무로는 까마귀, 까치, 참새, 구렁이, 족제비, 고양이, 쥐가 있다.

아마 파리와 모기도 예부터의 미움받이 동무일 것이다.

 나그네가 드샐 곳을 찾을 때면 닭이 홰를 치며 저녁을 알릴 것이오,

 까막까치도 닭의 소리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때 바가지를 동이에 넣어 옆에 끼고 우물로 물 길러 나오는 처녀나 아낙네가 인물이 단정하고

몸피가 좋고, 그 뒤를 따르는 벌거숭이 아기들이 눈이 어글어글하고 콧마루가 우뚝하고 울음소리가

우렁차면 이 동네는 필시 번성하는 동네다.

 만일 살찐 송아지와 망아지가 소리를 지르고 날뛰면 더할 수 없이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는

동네일 것이다.

 이런 동네면 물도 맛있고 밥도 맛있고 장도 달 것이다.

필시 된장에는 구더기가 없고, 아궁이에는 불이 잘 들여 개묵이 타는 냄새가 아니 날 것이다.

술도 시지 아니 하고 빛이 매 눈깔 같을 것이요, 누룩에는 황금빛 옷이 입혀질 것이다.

 나그네는 어슬렁어슬렁 동네로 들어와 사랑문 열어 놓은 집을 찾을 것이다.

 그는 대문을 쑥 들어서며,

 “ 여보아라.”

하고 호기 있게 부를 것이다.

 이때 방아머리한 사내아이가 내달아 손님 앞에 무릎을 꿇고 두손을 땅바닥에 짚고,

 “ 어디서 오신 뉘시온지.”

하고 물을 것이다.

 “ 지나가던 나그넬러니 하룻밤 드새고나 가자고 댁 문전에 섰습니다고 사뢰어라.”

 “ 방이 누추하나 상관 아니 하시거든 듭시사고 여쭈어라.”

이리하여서 나그네는 사랑에 오르는 것이다.

세숫물과 발 씻을 물이 나오고, 나그네가 보에 쌌던 새옷을 내어 입을 만한 때에 주인이 나와서

수인사를 하고 혹은 차가 나오고 혹은 술상이 나오고 이러하는 동안에 주객은 서로 저편의

인물을 살피는 것이다.

 밤이 되면 이야기판이 벌어지고, 혹은 음악과 소리가 나오고,

만일 주객이 뜻이 맞으면 첫닭이 울 때까지 이야기가 끊어지지 아니 하는 것이다.

 거렁뱅이는 세상 소식을 많이 알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아는 까닭이었다. 

 사랑문을 열어놓고 손님을 대접하는 것은 이 백성이 가장 낙으로 아는 일이었다.

잘 산다는 것은 신을 잘 위하고 손님을 잘 대접하는 일이었다.

 양식이고 과일이고 무엇이든지 반드시 세 가지 그릇에 갈라 담았다.

 하나는 신께, 하나는 손님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는 식구들이 먹는 것이었다.

손님을 신의 다음가게 존중하였다.

 내 집을 찾아오는 나그네는 다 신이시거나 그렇지 아니 하면 신이 보내신 사자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 나그네가 드는 때로부터 떠나는 때까지 이 집에서는 제삿날이었다.

 집안에서는 새옷을 갈아입고 모든 부정을 꺼렸다.

그리고 집에 있는 모든 맛난 것을 대접하고 집안 사람들끼리 말도 조심하였다.

 만일 손님에 대하여서 흉을 보거나 험구를 하면 큰 벼락이 내릴 것으로 알았다.

 아이들이 울다가도, “ 손님 오셨다.”하면 울음을 그쳤다.

 홍역을 작은 손님이라고 하고 마마를 큰 손님이라고 하고 별성마마라고 한다.

이것도 눈에 아니 보이는 신이 찾아와서 머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고이 계시다가 고이 떠나소서.”

 이것이 식구들의 소원이었다.

식구는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서 티끌만한 부정도 없으려고 애를 썼다.

부부는 동침을 아니 할뿐더러 그러한 생각만 먹어도 손님을 노엽게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마치 찰찰 넘는 물그릇을 들고 걸음을 걷는 사람 모양으로 조심조심하였다.

 금줄을 늘이고 대문을 지치는 모양으로 마음에다가도 금줄을 늘이고 대문을 지치는 것이었다.

솥에서 밥이 잦는 소리나 아궁이에서 불이 타는 모양도 무심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소중한 아들이나 딸에게 크나큰 손님이 찾아와서 머무시는 것이다.

 마마뿐 아니라 무슨 병이나 그렇게 생각하였다.

 까치소리, 까마귀 소리는 더욱이나 유심하게 들어서 그 속에서 손님의 뜻을 찾아보려 하였다.

“ 닭이 서서 졸았다.”

“ 개가 대문 지방에 턱을 걸고 짖었다.”

“ 족제비가 아슬랑아슬랑 마당으로 지나갔다.”

 이런 것은 다 꿈자리와 아울러서 손님의 뜻을 알아보려는 재료가 되었다.

 늙은 할머니는 많은 지식과 오랜 경험으로 그 속에서 길흉을 판단하여서 여러 가지 신사 神事를

행하는 것이었다.

 산 사람 손님께 대한 것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손님 하나를 잘못 대접해 보내면 언제 무슨 동티가 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손님을 환영하는 것은 다만 이러한 두려움에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천성이었다.

 ‘ 손님’, ‘ 나그네’ 이것은 그들에게 심히 아름답고 반갑고 무한한 흥취를 주는 말이었다.

 원효는 이러한 속에 거렁뱅이로 나선 것이었다.

그의 허리에는 여전히 호로 여덟을 차고 바가지 넷은 달고 뒤웅박 하나는 손에 들었다.

호로 여덟은 가나다라마바사아다.

이것은 여덟 신장의 이름인 동시에 이 백성이 살아온 역사다.

그리고 모든 음악의 기초다. 옥타브다.

악기를 건드린다는 것은 가나다라한다는 말이다.

 건들거린다,

 건들먹거린다는 것은 가나다라,

 가나다라마 가락에 맞춘다는 것이다.

 짐에 탄 바가지 넷은 밥 그릇, 물 그릇, 반찬 그릇, 국 그릇이다.

큰 것, 작은 것, 더 작은 것, 제일 작은 것을 포개면 하나와 같이 된다. 손에 든 뒤웅박은 목탁 대신이다.

 길을 가다가 끼니때가 되면 원효는 세존께서 탁발하시던 법을 본받아서 어느 동네에 들어가

큰 집이라고 고르지 아니 하고, 작은 집이라고 빼어 놓지 아니 하고 골고루 찾는다.

 딱, 딱, 딱, 뒤웅박을 두드리며,

 “ 나무아미타불. ”

하고 염불을 부른다.

열 마디를 불러도 주인이 나오지 아니 하면 다음 집으로 가서 또 그와 같이 한다.

 이 모양으로 원효는 여섯 집을 찾는다.

육바라밀 六波羅蜜을 생각하는 것이다.

 여섯 집을 돌아서 얻어지는 것을 먹고 더 돌지는 아니 한다.

만일 여섯 집을 돌아도 밥이 얻어지지 아니 하면 그끼는 굶을 작정이다.

 원효는 애초에 목적한 대로 고향에 돌아가 예전에 살던 터(지금은 절이다)와 분묘를 돌아보았다.

십여 년 전에 떠난 뒤로는 처음 고향에 온 것이다.

 원효는 아는 사람을 더러 만났으나 그들은 원효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원효가 천하에 소문이 나고 나랏님의 스승이 되었다고 들은 그들은 이 거렁뱅이가 원효라고

 생각할 리가 없었다.

더구나 수염이 자라는 대로 내버려 두어서 일 년 전에 보던 사람도 알아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또 원효도 아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행색을 드러내고 싶지 아니 하여서 방갓을 깊이 쓰고 얼굴을

남에게 보이지 아니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모든 것을 파탈한 몸이라 하더라도 고향은 정다웠다.

자기가 자라난 집과 동네는 반가웠다.

자기를 낳고는 곧 돌아가셨다는 어머니의 산소 앞에서는 원효도 눈물을 아니 흘릴 수가 없었다.

 새벽에 상아당에 다녀오던 길에 밤나무 밑에서 자기를 낳고는 몸에 지녔던 아버지의 옷으로

휘장을 쳤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원효로 하여금 그 어머니를 그립게 하였다.

그 한 가지 사실에서 원효는 그 어머니의 아내로서의 마음, 어머니로서의 마음을 살필 수가 있었다.

 

  그것은 퍽도 깊은 인연이면서도 퍽도 짧은 인연이었다.

원효는 첫아들인 동시에 외아들이었다.

그 어머니는 그렇게도 기다리던 아들 원효를 낳아 놓고는 곧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었다.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들에게 젖꼭지 한번도 못 물려 보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원효는 사람의 이목에 뜨일 것을 꺼려 다 저문 뒤에 그 어머니의 산소를 찾았다.

그리고,

 “ 바바!”하고 불렀다.

어머니라는 신라 말이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 유한일 것이라고 원효가 생각한 것이다.

 원효는 수없이

 “ 바바, 바바!” 하고 불렀다.

실컷 어머니가 원하던 소리를 들리자는 것이다.

 그러나 무덤에서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 벌써 삼십사 년이다.

사람이 죽어서 삼십사 년이면 해골도 남았을 둥 말 둥 하다.

 어머니에게는 벌써 아들 원효가 부르는 소리를 들을 귀가 없다.

 “ 어머니는 지금 어디 계신가.”

 원효는 어머니가 지금 있는 곳을 내다보려는 듯이 눈을 들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첫가을 별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 바바, 지금 어디 계시오.” 원효는 애가 탐을 느꼈다.

 어머니가 계신 곳을 알기 곧 할 양이면 그곳이 하늘 꼭대기나 땅밑이라도 따라가고야 말 것 같았다.

 원효의 나던 날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이다. 그것은 무척 슬픈 이별이다.

모자간에 피차에 얼굴 모습도 모른다.

 음성도 모른다. 그러나 영원한 시간 중에 어디서 만나더라도 필시 서로 알아 볼 것 같았다.

 알아보고 말고. 그렇게 깊은 인연이요,

그렇게도 깊은 정이거든. 만나자 떠났기 때문에 그 은정이 더욱 깊은 것 같았다.

 ‘ 어머니는 나를 낳으시려고 세상에 오셨었다.

 나를 낳으시자 곧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는 당신의 목숨을 나를 낳으시기에 희생하셨다.’

 이렇게 생각하면 더욱 어머니가 그리웠고 가엾기도 하였다.

 “ 바바, 바바.”

 원효는 또 몇 번 소리를 높여서 불렀다.

 원효는 한번도 보지 못한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할 길이 없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모습은 의희하게 생각이 나지만 어머니는 생각할 길이 없었다.

 원효는 돌아가신 승만여왕을 뵈올 때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와 같으리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이제 그 어머니의 산소 앞에서도 승만여왕을 생각하였다.

승만여왕과 어머니를 하나로 보고 원효는 한숨을 지었다.

 세존께서도 나시는 날 그 어머니를 여의셨다.

‘ 나도 성불하는 최후생에 이 어머니의 아들로 나리라.’

 원효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밖에 그 어머니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무덤 앞에 선 원효는 문득 요석공주를 생각하였다.

요석공주가 만일 아기를 배었으면 그의 운명이 또 원효의 어머니와 같지 아니 할까 하였다.

 원효는 중이 되면서부터 스스로 인생의 모든 인연을 끊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무시 無始로부터 내려오는 윤회의 사슬을 완전히 끊어 버린 것으로 생각하였고,

 다시는 아무러한 인연도 짓지 아니 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스스로 아무것에도 물들지도 아니 하고[無染], 걸리지도 아니 하는[無碍]보살로 생각하였다.

선연 善緣이 나 악연 惡緣이나 다시는 맺지 아니 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이제 생각하면 원효는 벌써 다생의 업보에 졌다.

 요석공주와는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었고, 만일 그가 아이를 낳는다하면

그것은 더구나 끊을 수 없는 인연이 된다.

원효는 얽히고 설킨 인연의 동아줄이 자기를 끌어당김을 느꼈다.

 “ 무애無碍!”

 원효는 스스로 코웃음을 하였다.

 승만여왕이나. 지금은 어디가 있는지 모르는 심상이나 또 아사가나 다 지나가 버린 바람결은 아니었다. 요석공주는 더구나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깊고 얕은 정도의 차는 있을지언정 원효의 마음에 뿌리를 박고 떨어지지 아니 하였다.

다만 잊히지 않는다는 것만은 아니다.

원효의 피와 골수에 그 뿌리가 닿은 것이었다.

 더구나 살을 마주 댄 요석공주는 원효가 어디를 가거나 원효를 따랐다.

 마치 그림자와 같아서 떼려도 뗄 수가 없었다.

 원효는 남녀의 연이란 것이 어떻게나 무서운 것임을 요석공주 사건에서 비로소 알았다.

‘ 물에 있을 때에는 젖어도 나오면 그만이다’

하는 연꽃의 비유는 많이 듣고 많이 말한 것이지만 원효는 제 마음이 결코 연꽃이 아님을 깨달았다.

한 번 물이 묻으면 좀처럼 마르지 아니하는 솜과 같은 마음임을 알았다.

 요석궁 대문을 나설 때에 원효는 바람 지나간 자리라고 스스로 믿었으나 웬걸, 그렇지 아니 하였다.

 ‘ 아아, 무서운 것은 인연의 힘이다. 그중에도 남녀의 인연이다.’

 원효는 앙아당 위에서 이렇게 자탄하였다.

며칠 절식을 하여서 모든 욕망과 모든 기억이 다 사라지는 자리에서도 요석공주의 일은 도리어

더 뚜렷이 살아나왔다.

 원효는 이것이 자기를 아비지옥까지라도 끌고 가고야 말 끊을 수 없는 쇠사슬이라고 한탄하였다.

 만일 요석공주의 일에 데인 무서운 교훈이 없었던들 원효는 아사가의 사랑을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아사가는 신선하고 순진하고 그리고도 열정적이어서 그의 열정의 불길은 원효의 뼈속까지 파고들었다. 어떤 때에는 원효의 팔이 저절로 아사가를 향하여서 벌어지려고도 하였다.

 원효는 저를 원망하고 제 마음이 단련되지 못하였음을 성화하였다.

원효는 스스로 이구離垢 행자라고 생각하였다.

 아직 나는 자유자재한 자는 아니다.

억지로 억지로 저를 이기어 나가며 조금씩 조금씩 때를 벗으려는 행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다.

 ‘ 이치로는 깨달은 듯하건만 마음이 말을 아니 듣는다.’

 원효는 이렇게 자탄하였다.

 ‘ 젖지 아니 하고 물들지 아니 하는 원효.’

 이것이 되려면 많은 수련이 필요한 것을 느낀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원효는 엄청난 자존심이 푹 줄어들어서 제가 몇 푼어치 아니 됨을 느꼈다.

 원효는 어머니의 산소를 어두움 속에 다시 바라보았다.

 “ 어머니, 이 자식은 아직 어머니를 제도해 들릴 힘이 없습니다.

 저를 제도하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남을 제도합니까.

 어머니, 이 자식의 나이가 벌써 사십을 바라봅니다.

그러하건만 아직 저를 건지지 못하였습니다.”

 원효는 턱에 자란 수염을 쓸어 보았다.

“ 어머니, 세상이 이 자식을 원효대사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자식은 남의 스승이 될 사람이 아직 못 되었습니다.

다시 어머니 산소를 찾을 때에는 반드시 정말 원효대사가 되겠습니다.”

 원효는 어머니 앞에 선 어린 아들의 마음이 되었다.

 원효는 어머니를 위하여서 염불 천 번을 부르고 산소에서 물러왔다.

 원효는 자기가 이렇게 풀이 죽은 것을 파계 때문인 것을 알았다.

 왕자와 같이 패기가 만만하던 자기가 한번 요석궁 일이 있음으로부터 몸을 감출 곳이 없는 것 같았다.

‘ 계를 깨뜨리는 것은 새가 날개를 잘리는 것과 같다.’

 원효는 스스로 이렇게 한탄하였다.

 계를 깨뜨리기 전에는 어디를 향하나 누구를 대하나 부끄러운 적이 없었다.

 하늘을 향하여서도 고개를 높이 들 수가 있었고 별들을 향하여서도

그 속에 사는 무변 중생이 다 자기를 우러러보고 자기에게서 구원의 가르침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때의 자기는 가슴을 떡 벌리고,

 ‘ 오냐.’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별을 바라보기가 부끄러웠다.

 별들은 이제는 모두 자기에게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 이제는 네게서는 바랄 것이 없어.’

 하고 별들은 실망하였다.

 모든 중생이 다 그러하다.

계행이 온전하였을 때 원효의 몸에서는 빛을 발하여서 중생이

 모두 그 빛 속에서 편안함을 얻었으나 계를 깨뜨린 원효는 벌써 빛이 아니요,

 꺼먼 기왓장이다. 아무도 그것을 돌보는 이가 없었다.

 원효는 그 어머니 산소 앞에 섰을 때에

그 산속에 있는 모든 귀신들이 자기에게 손가락질 하고 비웃는 것을 느꼈다.

‘ 파계승, 파계, 히히.’

 하는 것이었다.

 ‘ 우리와 무엇이 달라. 우리나 마찬가지다.’

 귀신들이나 개나 뱀이나 버러지나 모두 원효를 저의 동류로 보았다.

‘옳은 말이오. 당신네와 다를 것이 없어. 욕심으로 움직이는 다같은 중생.’

 원효도 이렇게 자백하고 면목이 없어서 고개를 숙이지 아니 할수 없었다.

‘ 지금까지 우리가 네게 바친 공양을 도로 내어놓아라.’

 한 중생은 원효에게 이렇게 요구하였다.

 원효는 ‘ 원효대사’ 라 하여 여러 중생의 융숭한 대접을 많이 받았다.

 그중에도 승만여왕, 심상, 요석공주, 아사가 같은 이들, 그밖에도 원효가 모르는 동안에

받은 여러 중생의 대접.

 원효는 이 모든 중생의 공양을 헛받았다.

 못 받을 공양을 받은 것이다.

 보살인 줄 알고 그들은 원효를 공양한 것이었으나 무엇이냐, 원효는 한 파계승이 아니냐.

‘ 아아. 나는 못 받을 대접을 받았다. 그것은 내가 중생의 복을 도적질한 것이다.’

 원효는 가슴이 아팠다.

 원효는 걸음을 멈추고 길바닥에 꿇어엎드렸다.

“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원효는 세존을 수없이 부르며 울었다. 얼굴을 땅바닥에 비비며 울었다.

기승한 원효는 철난 이후로는 울어 본 일이 없었다.

 그는 소리를 내어 걸걸하게 웃기를 잘하였으나 운 일은 없었다.

 원효는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쏟았다.

 원효가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새벽달이 올라오고 부엉이와 소쩍새가 울고 있었다.

 가을 밤바람이 산들산들하였다.

 산 그림자가 칠같이 검고 풀잎에는 이슬이 달빛에 반짝거렸다.

 원효는 고향 사람을 만날 것이 두려워서 일어나 빨리빨리 걸었다.

 가을 벌레 소리가 어디까지든지 원효를 따랐다.

 달빛을 따라서 밤길을 떠난 기러기 소리가 들렸다.

 기러기는 가랑아다. 바람의 아들이다. 남북 몇만 리 떼를 지어 여름을 찾아다니며 제

 날개로 날고 제 입으로 주워먹는다. 남에게 의지하지 아니 한다. 웅대한 그 행로,

 걸걸한 그 기상, 원효는 기러기가 부러웠다.

 기러기는 한 스승의 지도에 복종한다.

 그 스승이 이끄는 대로 어디나 가고, 그 스승은 상하 사방을 살펴서 바른길을 찾고,

  쉴 자리를 찾고, 떠날 시각을 정한다.

 그의 끼룩하는 한 소리에 그의 제자요, 부하들은 먹던 것을 버리고 자던 잠을 깨어서

 행렬을 지어서 나선다. 그들의 행색은 보살의 행색이었다.

 원효는 제가 남을 거느리는 자도 못 되고 따르는 자도 못 된 것을 한탄하였다.

 “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원효는 다시금 세존을 불렀다.

 원효는 일찍 두타행이란 것을 자기가 실행하리라고 생각한 일은 없었다.

그런 것은 대승보살행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애행이야말로 자기에게 합당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천지간에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거칠 것이 없었다.

“ 내 평생에 어느 중생을 속인 일이 없고 해친 일이 없으니

아귀들 속에 가든지 뱀이나 뱀 속에 가더라도 두려울 바가 없고,

내 나를 위하여 아무 욕심도 없으니 아무도 나를 시기하고 미워할이가 없을 것이요,

 내 모든 중생을 자비심으로 건지려 하니 아무나 나를 반가워하고 내게 의지할 것이다.”

 원효는 이렇게 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중생의 절과 공양을 받는 것은 중생의 복전福田이 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원효는 그러한 원효가 아니었다.

 아무쪼록 중생의 공양을 받아서는 아니 된다,

 중생이 내어버리는 헝겊으로 몸을 가리우고 중생이 아까와 아니 하는 것으로 배를 채워야 한다.

그리고 보시할 재財도 법法도 가진 것이 없는 원효는 몸으로 힘으로 중생을 도울 길밖에 없는 것이다, 원효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 두타행頭陀行.’

 원효는 두타행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꼈다. 

 원효는 어느 동네에나 들어가는 대로 도와드릴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원효를 수상한 거렁뱅이로 알아서 잘 믿지 아니 하는 이가 많았으나

그중에는 고식을 져 들여 달라는 사람도있고, 가랫줄을 당기어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는 밥을 얻어먹었다.

그 밥은 대단히 맛이 있었다.

 원효가 단샘이고개[甘泉?]를 넘은 것은 구월도 거의 다 지내어서였다.

살랑살랑하던 날이 다시 더워져서 석양볕이 따가왔다.

 원효는 고개를 넘어서 동네로 들어갔다. 그 동네는 외양으로 보기에도 무척 가난한 동네였다.

산골짜구니에 매어달리듯이 열댓 집이나 드문드문 붙어 있었고, 이엉은 썩어서 지붕에

여기저기 흠이 생기고 박덩굴, 호박덩굴이 오른 집도 몇이 되지 아니 하였다.

길에는 풀이 나고 가을에 길닦이도 아니 한 모양이어서 장마에 무너진 곳이 그대로 있었다.

그렇게 음침한 동네였다.

 원효는 어슬렁어슬렁 동네로 들어가나 닭, 개소리도 없었다.

“ 동네가 다 비었나?”

하고 걸음을 멈추고 살펴보니 그래도 몇 집에서는 연기가 올랐다.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 배가 홀쭉하고 비루먹어 털이 다 빠진 개 한 마리가 꼬리를 늘이고

원효를 향하고 왔다.

그는 의외에 사람을 만난 듯이 우뚝 걸음을 멈추었느나 짖으려고도 아니 하였다.

그 비루먹은 개가 이 동네 정령인 것 같았다.

‘ 어느 집이나 하나 찾아보아야.’

하고 원효는 첫집 문전에 섰다.

 원효는 뒤웅박 목탁을 딱딱딱딱 두들기고 염불을 하였다.

“ 듣그럽다.”

하는 늙은이의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분명히 앓는 사람의 소리였으나 소리에는 모서리칠 만한 독기가 있었다.

 그래도 원효는 여전히 염불을 불렀다.

“ 누구 저 중놈을 때려 쫓지 않느냐.”

하는 늙은이의 소리가 떨었다. 웬 부인 하나가 달려나오며,

“ 웬 거렁뱅이가 남 앓는 집에 와서 까마귀 소리를 하고 있어.”

하고 바가지에 들고 나온 쉬지근한 뜨물을 원효의 얼굴을 향하여 끼얹었다.

 원효는 피하려고도 아니 하고 그 물을 맞았다.

“그래도 안가. 아 그래도 안 가네. 그래도 안 가면 똥바가지를 씌울 걸.”

하고 그 여편네가 서둘렀다.

 원효는 다음 집 문전에 서서 또 목탁을 두드리고 염불을 하였다.

 이번에는 어떤 늙은이가 지팡이를 짚고 체머리를 흔들면서 나왔다.

“ 당신이 잘못 들어왔소.

 이 동네에는 염병이 들어서 집집이 송장이 썩어 가는데 동냥을 줄 집이 어디 있소.

저기 저 고개를 넘어가면 단샘이라고 큰 동네가 있으니 거기나 가 보오. 아이고 방아라, 방아라.”

 노인은 이렇게 말하고는 들어가 버린다. 그래도 그 노인의 말은 부드러웠다.

 원효는 여러 동네에서 푸대접도 많이 받았지만 이런 동네는 처음이라고 생각하였다.

 원효는 셋째 집에서도,

“ 듣그럽다. 사람이 지금 목숨을 모으고 있는 판에 동냥이 무슨 동냥이냐. 염병이나 묻혀 가거라.”

하는 젊은 여인의 악담을 들었다.

 넷째 집 문전에서는 아무리 목탁을 두드리고 염불을 하여도 도무지 인기척이 없었다.

 굶은 개 한 마리가 마당에 누워서 짖을 기운도 없는 듯이 눈을 번히 떴다가는 도로

 감을 뿐이었다.

 원효는 이 집에서도 모두 앓아 누웠거나 그렇지 아니 하면 다 죽었는가 하고 마당으로

 들어서서,

“ 이보아라.”

 하고 크게 불렀다.

“ 그 누구요?”

 하는 소리가 모깃소리만큼 들렸다.

 그것은 남자의 소리인지 여자의 소리인지도 구별할 수가 없었다.

 원효는 기침을 하고 방문을 열고 고개를 디밀었다. 컴컴한 방에 아무것도 보이지는 아니

 하고 무슨 냄새만이 코에 받쳤다.

 눈을 크게 뜨고 한참이나 들여다보고서야 비로소

 그 방에 사람이 셋이 드러누워 있는 것을 알았다.

 원효는 방안으로 들어섰다.

“ 여보시오.”

 하고 불러 보았다.

 어느 사람이 대답할 사람인지를 모르는 것이었다.

“ 거 누구요?”

 하는 것은 맨 아랫목에 누운 사람이었다.

 그는 분명히 남자였다.

“ 지나가던 사람이오마는 대관절 어찌된 일이오?”

 원효는 이렇게 물었다.

“ 나도 모르겠소. 처음에는 내가 앓았는데 나는 아직도 이렇게 목숨이 붙어있고,

 그 다음에는 아들이 앓았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소.

 저 건넌방 문을 좀 열어 보아주오. 며느리도 어젯 저녁에 미음을 한 술 끓여다 주고는

 소식이 없으니 죽었나 살았나 좀 보아 주오.

 이게 마누란데 아까까지 헛소리를 하더니 잠이 들었나 원. 그 다음에는 누운 게 딸이오.

  죽었나 살았나 좀 보아주오.”

 그는 들릴락말락한 소리로 이렇게 원효를 보고 설명하였다.

 원효는 마누라라는 사람의 머리를 만져 보았다. 싸늘하다. 팔목을 만져 보았다. 맥이 없다.

 원효는 아무 말도 아니 하고 그 다음에 누운 딸이란 사람을 만져 보았다.

 머리가 불이었다. 분명히 살아 있는 것이었다.

 원효는 주인이 말한 대로 건넌방에 들어가 보았다.

젊은 사나이는 금방 숨이 넘어갈 듯이 거톱질을 하고 있었고 만져 보아도 알아보는 것 같지

아니 하였다.

배설물을 그냥 치우지 아니 하여서 악취가 코에 받쳤다.

그런데 기막힌 것은 그 곁에 젖먹이가 누워 있었다.

그는 살아 있으나 기진한 모양이어서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 그러기로 며느리는 어디 갔을까.’

 원효는 방에서 나와서 휘둘러보았다. 달리 방이 없었다.

 원효는 부엌문을 열어 보았다. 부엌 바닥에 허연 것이 있었다.

 원효는 부엌으로 들어가 그 허연 것을 만져 보았다.

그것은 분명히 사람이었다.

 몸이 더우니 죽지는 아니 한 것이다.

필경 먹을 것을 끓이려고 부엌에 내려왔다가 쓰러져서 인사불성이 된 모양이었다.

 원효는 며느리를 안아다가 남편옆에 누이고 곧 솥에 물을 끓였다.

그래서 우선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먹였다.

 숟가락으로 떠 넣으면 입을 벌려서 받아 먹었다.

젖먹이도 넓죽넓죽 받아먹었다.

그런데 금방 원효에게 설명을 하던 노인이 그동안 정신을 잃어버려서 물을 입에 넣어도

주르르 흘릴 뿐이었다.

그는 다른 식구들 걱정으로 해서 정신을 잃지 아니 하고 있다가 어떤 사람이 와서

 돌아보는 것을 보고는 맥이 풀려 버린 것이었다.

 원효는 그 주인 노인이 마지막 숨을 쉬고 있는 것을 알았다.

전신에서는 구슬땀이 흘렀다.

 윗목에 누운 딸이 헛소리를 하고 건넌방에서는 젊은 사람이 영각을 하였다.

그러나 원효는 죽는 사람만을 지키고 있을 수가 없어서 산 사람을 위하여 미음을 끓이고 있었다.

 그래도 쥐는 있었다.

 어두운 부엌 구석에서 소리를 하고 돌아다니고 아궁이에서 오르는 불빛에 두 눈이 반짝하는

수도 있었다.

개는 부엌문에 턱을 걸고 있었다. 퍽이나 시장한 모양이었다.

원효도 배가 고팠으나 무엇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

 건넌방 젊은 사람은 지금 고비를 넘기는 모양이어서 연방 소리를 질렀다.

 미음 솥에서는 김이 오르고 끓는 소리가 났다.

 딸과 며느리는 미음을 좀 먹었으나 젊은 사람은 ‘ 발치에 있는 화로를 치워라,

저기 선 저 도적놈을 쫒아내어라.’ 하고 호령만 하고 아무것도 먹으려 들지 아니 하였다.

 그 밤에 영감도 운명하였다. 원효는 뒤꼍에 구덩이 둘을 파고 영감, 마누라를 내다 묻었다.

 그러나 젊은 사람 셋은 살아났다.

 꼭 죽을 줄 알았던 젊은 사내는 차차 돌려서 정신을 차렸고 며느리도 그리 중하게 앓지 아니하고

살아났다.

 맨 먼저 일어난 것은 딸이었다.

그는 열여섯 살 된 처녀였다.

그러나 아직도 먹을 것을 끓이고 오줌똥을 받아내는 것은 원효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리에 없는 것을 보고 딸은 놀라는 모양이었으나 묻지도 아니 하였다.

며느리도 일어났다.

미음을 먹고 목숨을 부지한 젖먹이는 마르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죽지는 아니 하였다.

 딸과 며느리가 마당에 내려서는 것을 보고 원효는 슬며시 그 집을 떠났다. 

 날씨가 살랑살랑 추워졌다.

원효의 옷은 더러워지고 또 추웠다.

여러 날 잘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한 원효는 몸이 제 몸 같지 아니 하였다.

그러나 원효는 평생 처음으로 중생을 도와준 것이 기뻤다.

설사 그 무서운 병이 제게 옮아서 길가에 쓰러져 죽더라도 세상에 왔던 보람을 비로소 한 것 같았다.

 이렇게 생각할수록 자기의 지나간 생활이 어떻게 공허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 집 식구들은 병으로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 들어온 원효가 무엇인지 모랐다.

그는 말없이 물과 미음을 끓여주고 먹여 주고 더러운 것을 쳐 주고 늘 자기네가 누운 자리가

깨끗하고 마르게 하여 주었다.

그들이 차차 정신이 나게 되어서도 원효더러,

“ 당신이 누구시오?”

 이렇게 묻는 일이 없었다.

그것은 그렇게 묻기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었다.

 언제 눈을 떠보아도 그는 옆에 있었고, 목이 마르다고 생각만 하여도

그는 숟가락으로 물을 떠 넣어주었다.

젖먹이를 안아 재우고 그를 먹여 주었다.

 그들은 이것이 사람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필시 무슨 신장님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하기 때문에 감히 묻지 못하였다.

또 그러하기 때문에 마음놓고 그의 구원을 받았다.

 더구나 그가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볼 때 더욱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원효는 이 날 이 동네를 떠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시체를 묻어주고 병구완을 하여 주고, 이 동네에 앓는 사람이 끊어지기를 기다려서

이 동네를 떠났다.

그가 이 동네를 떠나던 날은 첫눈이 내리던 날이요,

그가 마지막으로 도와준 집은 뜨물 벼락을 맞은 집이었다.

원효에게 뜨물을 뒤집어씌운 그 아낙네의 집의 식구가 온통 병들어 누워서

원효의 구완을 받은 것이었다.

 원효가 동네를 떠나는 날 건강을 회복한 사람들은 동구밖까지 전송을 나왔다.

“ 이 다음에는 동네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주라.”는 말을 남기고 훨훨 걸었다.

 원효는 피골이 상접하도록 바짝 말랐다.

 그러나 그의 얼굴과 눈에는 청수한 기운이 있었다. 

 그것은 모든 욕심을 떠난 보살의 빛이었다.

 그러나 원효는 몸이 피곤함을 느꼈다.

 어디서 잠시 쉬고 싶었다.  

 원효는 감천사甘泉寺라는 절을 찾아갔다.

감천사는 선덕여왕적에 지은 절로 유명한 원광법사도 일시 주석駐錫한 일이 있는 절이다.

 원효는 감천사에서 불목하니의 직분을 얻었다.

원효가 단샘이 동네에서 병구완하는 두 달에 밥짓기, 미음, 죽쑤기를 배운 것이 여기서 이용된 것이다. 원효는 말없이 밥을 짓고 마당을 쓸고 있었다.

 이십여 명 중이 있었으나 아무도 그가 원효인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쇠똥아, 쇠똥아 하고 원효를 불렀다.

 원효는 밥을 잘 짓는다고 칭찬을 받았다.

 원래 중의 집 생활에는 직분에 높고 낮은 것이 없는 것이다.

조실 노스님과 제자의 계급은 있지마는 밥을 짓는 것이나 살림을 하는 것이나

다 평등한 직분이어서 서로 번을 갈아 가면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라에서 중을 대접하게 되자 어느덧 절에도 계급이 생겨서 중의 지위가 정해지게 되었다.

 밥 짓는 중은 언제나 밥 짓는 중이요, 심부름하는 중은 언제나 심부름하는 중이었다.

약간 공부가 있거나 절에 소임이나 지낸 중은 밥 짓기, 빨래하기, 소제하기, 짐지기 같은 일은 제가

하지 아니 하고 남을 시켰다.

 그러므로 불목을 지키는 원효는 가장 천한 구실이었다.

 아무도 원효의 얼굴을 바로 바라보는 이도 없었다.

 원효를 옆에 두고도 중들은 체면없는, 실없는 소리들을 하였다.

 마치 원효 같은 것은 사람 값에 치지 않는 것 같았다.

 원효는 잘 쉴 수가 있었다. 밥도 잘 먹고 마음도 편안하였다.

설거지를 다 해치우고 판도방에 들어가 목침을 베고 누으면 잠이 달았다.

 판도방에는 지나가는 동냥중이나 거렁뱅이나 짐꾼들이 들어갔다.

 그들에게는 끊임없는 이야기가 있고 웃음이 있었다. 잡소리도 하였다.

그들은 이생의 최하층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잃어 버릴 체면이 없었다.

 아무런 소리를 하여도 망신될 것이 없었다.

 그들은 자다가 고린내 나는 발가락을 남의 입에 넣기도 하고 유시호 누더기를 훔쳐 가지고

밤중에 달아나는 자도 있으나 한바탕 욕지거리를 하고 나면 또 쿨쿨 잠이 들었다.

 발가락을 입에 넣거나 코에 대고 방귀를 뀌거나 심하면 손가락으로 똥구녕을 우벼서

입에 스쳐 주더라도 그것이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한 대 쥐어박고 왁자지껄 한바탕 떠들고 나면 바람 지나간 자국과 같았다.

 원효더러 무슨 재주를 하라고 조를 때가 있었다.

그러면 원효는 뒤웅박을 놀렸다.

 다들 잘한다고 웃고 떠들었다.

“ 보아허니,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떡허다가 불목하니가 되었소.”

 원효에게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었다.

 “ 어찌어찌하다가 그렇게 되었소.”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원효는 감천사 부엌에서 편안히 한겨울을 날 수가 있었다.

 부엌은 좀 우중충하였으나 넓었고 커다란 아궁이 불이 활활 타는 것을 들여다보고 앉았으면

 정신이 황홀할 만큼 깨끗하고 편안하였다.

 큰 가마솥에 밥이 잦을 때쯤 하면 고소한 향기가 부엌에 찼다.

 

 두 팔을 부르걷고 큰 동이에 밥을 푸노라면 지팡이를 끌고 부엌으로 오는 노장이 있었다.

그는 누룽지를 좋아하여서 원효더러 누룽지를 달라고 오는 것이었다.

 이 노장은 원광법사가 이 절에 있을 적부터 있었노라고 하였다.

 다른 중들은 이 노장이 누구인지 알려고도 아니 하였다.

그렇게 이 노장은 있으나 없으나 한 노장이었다.

 그는 부엌에 오면 밥을 푸는 동안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였다.

그 이야기에 나오는 것을 주워모아서 생각하면 이 노장은 젊어서 전쟁에도 나가 보고,

또 이 절에 와서는 지금 원효가 하는 모양으로 밥도 짓고 허드렛일도 한 모양이다.

그렇게 이 절에 오래 있으면서도 무슨 소임 하나도 지낸 일이 없었다.

 누룽지에 맛을 붙인 것도 그가 불목하니를 할 때 얻은 버릇인 듯하였다.

 그래도 원효더러 스님이라고 하고 만나면 합장하고 허리를 굽히는 중이라고는 이 노장밖에 없었다.

 이 노장을 방울스님이라고 어린 중들이 불렀다.

키가 작고 다니는 모양이 동글동글 굴러서 다니는 것 같다고 해서 별명이 된 모양이다.

 목소리도 무척 여무져서 새벽에 그가 염불을 부르면 쇳소리 같았다.

그래서 방울스님이라는 지도 모른다고 원효는 생각하였다.

방글방글 늘 웃는다고해서 방울스님인지도 모른다.

“ 스님 내 방에 와 계시오.”

 방울스님은 가끔 원효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비록 성명 없는 중이나 이 절에 오래 있는 늙은이라고 하여서 독성각獨聖閣지키는 방 하나를

이 늙은이에게 준 것이었다.

“ 소승이야 젊은놈이 어디서 자면 어떱니까.”

 원효는 이렇게 번번이 사양하였다.

 원효가 큼직한 누룽지를 한 장 떠 주면 방울스님은 그것을 감추듯이 품에 넣고,

“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수없이 원효를 향하여서 절하고는 지척지척 제 처소로 갔다.

 원효는 방울스님과 대안대사를 비교해보았다.

방울스님이 대안대사보다 한 반절 더 벗은 것 같이 생각되었다.

대안대사에게는 아직도 짓는 것이 좀 남은 것 같은데 방울스님은 아무것도 짓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방울스님의 경계가 더 높고 깊은 것 같았다.  

 한번 원효는 저녁을 다 해치우고 나서 독성각에 올라갔다.

 이 날은 방울스님이 누룽지를 얻으러 내려오지 아니 한 것이 궁금하기도 하였다.

독성각에 불이 빤하게 켜 있고 그 속에서 방울스님이 염불하는 소리가 들렸다.

 독성각은 큰절에서도 비탈 하나를 올라서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독성불공이나 하러 오는 사람이

아니고는 하루에 한 사람도 오는 사람이 없었다.

독성각, 칠성각, 산신당이 제일 외딴 곳이었다.

 독성각에는 조그마한 소상이 있었다.

어깨가 꼬부라지고 한 무릎은 누이고 한 무릎은 세우고 한 손은 세워 무릎 위에 얹고 한 손으로는

땅을 짚고 빙그레 웃는 노승의 모양이다.

원효는 독성존자의 상이 방울스님 같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방울스님은 그 앞에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다.

“ 스님 오셨소?”

 저녁 불사를 마친 방울스님은 독성각에서 나오면서 원효를 보고 반가와하였다.

그리고는 원효를 자기 방으로 인도하였다.

방은 단칸방이었으나 관음상을 모신 불탑 앞에 천정에서 달린 옥등잔에 쌍심지 불이 구슬같이

빛나고 향내 났다.

 방 한편에 징과 북이 있고 다른 한편 벽에는 붙박이 화로가 있어 새오이 걸리고,

경상에는 금강경과 금강삼매경이 놓여 있었다.

 방울스님은 가사 장삼을 입은 채로 경상을 앞에 놓고 앉았다.

부엌에 누룽지를 얻으러 왔을 때와는 다른 위엄이 있었다.

 원효는 종이에 싸 가지고 온 누룽지를 내어서 방울스님 앞에 놓으며,

“ 오늘 저녁에는 밥이 잘 눌었길래 긁어 놓고 기다렸는데, 왜 아니 오셨어요?” 하였다.

“ 이런 고마울 데가 있습니까.”

하고 종이로 싼 것을 열어서 노르스름하게 눌은 밥을 보고 눈과 얼굴이 온통 웃음이 된다.

“ 이게면 또 내일 온종일 먹겠소. 이걸 마른입으로 먹어야 맛이 있을 텐데 원 이가 있어야지.

이가 이렇게 한 개도 아니 남았구려. 그러니 이렇게 끓여서 먹지요.”

하고 방울스님은 화로에 놓인 새옹 뚜껑을 열어 보인다. 그 속에는 노르스름한 것이 죽 모양으로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방울스님은 뚜껑을 다시 덮어 놓으며,

“ 이렇게 끓여도 고소해. 인중상공人中上供이오.

 이따금 마른입으로도 조금씩 입에 떼어넣고 우물우물해 보지요.

그렇지만 이가 없으니까 고 노긋노긋한 진미야 모르지. 허허.”

하고 한바탕 웃고 나서,

“ 젊어서는 오후불식午後不食도 하였지만 늙으니까 자다가도 헛헛증이 나요.

 그래서 이렇게 새옹에 끓여 놓고는 시장하면 한 숟갈씩 떠 먹지요.

 그래도 맛이 좋아. 고마운 일이지요.”

 방울스님은 이렇게 말하면서 원효가 가지고 온 누룽지를 한 조각 떼어서 입에 넣고

 우물우물하며 맛있게 침을 껄떡껄떡 삼킨다.

 그것이 마치 어린아이가 맛있는 것을 만난 것과 같았다.

 

 “ 스님 약주도 잡수셔요?”

원효는 이런 소리를 물었다.

“ 술?”

하고 방울스님은 씹던 입을 쉬고 고개를 가로 흔든 뒤에,

“ 술은 대안이 좋아하지.” 하고 웃는다.

원효는 이이가 대안을 아는가 하고 놀랐다.

“ 스님. 대안대사를 아십니까.”

“ 알구말구. 젊어서 같이 댕겼지요. 당나라에도 같이 댕겨 오고.”

방울스님이 이렇게 말하였다.

 원효는 자기의 안식이 부족함이 부끄러웠다.

 방울스님이 범상한 늙은이가 아니라고는 생각하였지만 그가 금강경을 읽고 당나라엘 다녀오고

대안대사와 친구이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저 천진난만 무식한 늙은이라고 알았던 것이다.

그러면 방울스님의 이 천진난만은 공부가 많이 든 천진난만이었던가.

“ 네, 그러셔요.”

하고 원효는 자기가 신분을 숨기고 있는 것도 잊고,

“ 소승도 대안대사를 뵈온 적이 있습니다만 대안대사가 본래 어떠한 사람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하고 호기심이 그득한 눈으로 방울스님을 바라보았다.

“ 다 서로 아는 일을 말할 필요는 있나?”

방울스님은 이렇게 말하고 웃었다.

“ 다 서로 알다니요. 무엇을 안단 말씀입니까.”

원효는 겸허한 마음으로 물었다.

“ 피차에 다 같은 행색 아니오?

어머니 배에서 나오고, 오줌똥 싸 뭉개고, 밥 먹으면 배 부르고, 술 먹으면 취하고,

계집 보면 마음 동하고, 이러기를 몇 천만 겁 해 내려온 중생들이니

서로 말 않기로 누가 누구인지 모를 것은 있나, 서로 다 아는 일이지. 하하하, 안 그렇소?

삼계 중생의 먹은 마음을 다 아시노라고 세존께서 말씀 아니 하셨소?

세존께서도 전생다생에 다 지내 보신 일이어든, 모든 중새의 마음 경계를.

다람쥐가 좋아하는 잣은 나도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누룽지는 또 다람쥐도 좋아하고,

스님이야 화엄 강백 華嚴講伯이시니 나보다 잘 아시겠지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 소승이 화엄 강백이라구요?”

원효는 놀라는 빛을 보였다.

“ 응, 아마 원효대살 걸.”

“ 과연 소승은 원효입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어떻게 소승이 원효인 줄을 아십니까.”

“ 원효스님이 아직 도력이 부족하여서 내 눈을 가리울 힘이 없은 게지.

그렇지만 감천사 수십 명 중의 눈을 가리운 것만 해도 스님의 도력이 어지간하시지.

 그렇지만 스님이 아직 신장의 눈은 못 가려. 어, 내가 또 부질없는 말을 했군.”

“ 귀신의 눈에 안 뜨이는 법이 어떠합니까?”

원효는 이렇게 물었다.

“ 내 마음이 비면 아무의 눈에도 아니 뜨이지.”

방울스님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 내 마음이 비자면?”

“ 나를 없이 해야지. 스님께 오욕五慾이야 남았겠소마는 아직도 아만我慢이 남았는가 보아.

오욕을 떼셨으니 잡귀야 범접을 못하지만 아만이 남았으니 신장의 눈에 띄어.

스님이 아주 아만까지 버리시면 화엄 신장도 스님의 종적을 못 찾소이다.

아만  내가 이만한데. 내가 중생을 건질 텐데 하는 마음이 아만야.

 이것을 깨뜨리자고 세존께서 수보리에게 금강경을 설하신 것이오.

 무주상보시 응무소주이생기심 無主相布施 應無所住以生其心이라는 거요.”

원효는 일어나서 방울스님께 절하였다. 방울스님은 앉은 대로 원효의 절을 받았다.

원효는 이로부터 밤마다 방울스님에게 금강경과 금강삼매경을 듣고 또 선禪을 배웠다.

 

 원효는 자기가 언제 귀신의 눈에 띄었는지 역력히 알 수가 있었다.

그 전은 말할 것도 없고 단샘이 동네를 떠날 때에,

‘ 내가 좋은 일을 하였다.’

한 때에 분명히 귀신들은 자기를 보았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감천사에 들어온 뒤에 지위 높은 중들을 밥 주더니,

 욕심꾸러기라고 보고 자기를 장하게 생각할 때에 감천사에 있는 귀신들이 분명히 자기를 보고

 웃었을 것이다.

그밖에도 반성하면 반성할수록 귀신의 눈에 띄운 기회가 많이 있었다.

‘ 법도 오히려 버려야 하거든 하물며 비법이랴 (법상응사 하황비법 法尙應捨 何況非法).’

“ 모든 것을 버리되 나까지 버려야 한다.

   나의 뿌리를 남겨 두면 비만 맞으면 다시 오욕의 움이 돋아나올 것이다.”

 원효는 방울스님의 몸뚱이 밑에 나의 뿌리를 파고 나의 씨를 불사르기를 힘썼다.

“ 스님 어렵습니다.”

 하루는 원효는 방울스님 앞에 이렇게 한탄하였다.

“ 어렵소?”

방울스님은 이렇게 빙그레 웃었다.

“ 소승은 평생에 어렵다는 말을 한 일이 없습니다만 이것만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죽기보다 어렵습니다.”

 원효는 이렇게 고백하였다.

“ 그야 죽기보다 어렵지.

  이 몸뚱이 하나 죽이기야 쉽지마는 영겁의 윤회를 끊는 것은 불보살의 가지 없이는 어려운 일이지요.”

 방울스님은 이런 말을 하였다.

 사실 나의 뿌리를 뽑는 행은 앙아라당이의 절식 고행에도 비길바가 아니었다.

 나의 뿌리를 찾아 들어가면 진실로 끝간 데를 몰랐다.

원효는 어려서 놀 때 진솔이라는 모래판에 나는 풀뿌리를 찾던 것을 생각하였다.

그 모래를 파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머리카락 같은 뿌리가 점점 더 많이 가지를 채워서

열 가닥이 되고 백 가닥이 되어서 한량이 없었다.

 그때 어떤 아이가,

“ 진솔 뿌리는 염라대왕 머리에 박힌 것이라더라.”

라는 말을 하였다.

 원효는 나의 뿌리의 깊고 넌출진 것이 이러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중에서 실뿌리 하나만 남겨 놓아도 또 새로운 내가 생겨서 끝없는 윤회를 거듭하는 것이었다.

 하루는 원효가 이런 말을  방울스님께 하였다. 나의 뿌리가 이렇게 빼기 어렵다는 말을 하였다.

 그때 방울스님은,

“ 나의 뿌리가 그렇게 깊다고 보는 그 마음을 떼어 버리지. 그것이 허망의 근본이 아닐까.”

 이런 말을 하였다. 원효는 이 말에 눈이 열림을 깨달았다.

 

 원효는 마치 잊어버렸던 것을 생각해 낸 모양으로 무릎을 치고

 화엄경 노사나불품의 보현보살의 게[華嚴經盧舍那佛品 普賢菩薩偈]를 외웠다.

“ 저 부처나라 꼭대기의 헤아릴 수 없는 세계는 지워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지만 생하는 것도 아니요,

 멸하는 것도 아니라. 비컨댄 모든 나무에 꽃과 잎이 피고 지듯이 이같이 모든 부처나라의

짓고 헐음도 그러하니라.

가지가지 나무에 가지가지 열매 열 듯이 가지가지 나라에 가지가지 중생이 있어라.

 씨가 다른지라 열매 같지 아니 하도다.

행업行業이 가지가지니 나라도 가지가 질러라.

마치 여의보주가 마음대로 무슨 빛이나 냄과도 같아라.

모든 망상妄想을 버리면 청정한 나라만을 보리라.

마치 공중에 구름이 용왕의 힘으로 나타나듯이 부처님 원력으로 모든 불찰佛刹이 일도다.

 마치 재주 있는 요술쟁이가 여러 가지 재주를 부리듯이 이같이 중생의 업業으로 불찰이

헤아릴 수 없도다.

그림의 상을 보고 화공의 조작인 줄 알 듯이  부처나라를 보면 마음이란 화공의 그림인 줄 알라.

중생의 마음이 같지 아니하니 가지가지 망상을 일으키나니 이같이 모든 불찰도 모두 다 허깨비

같으니라.”

 원효는 자기가 보는 세계가 자기의 행업으로 나타남이란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러나 나의 뿌리가 깊고 깊어 끊기 어렵다는 것도 결국은 내 심행心行에서 오는 망상이다.

 모든 망상을 끊는 원효의 앞에 나타난 세계는 정히,

“ 혹유칠보찰 평정주장엄 청정업력기 미묘선안온 피불찰토중 유유인천취 공덕과성취 상수제쾌락

  或有七寶刹 平正住莊嚴 淸淨業力起 微妙善安穩 彼佛刹土中 唯有人天趣 功德果成就 常受諸快樂

(어떤 칠보로된 국토 있어 평정하고 장엄한데 깨끗한 업으로 생겨 미묘하고 매우 편안하네,

 저 부처님 국토에는 사람과 하늘의 세계만 있으니 공덕의 과보로 이루어져 항상 온갖 즐거움 누리네).”

의 아름다운 나라였다.

 원효는 기쁨에 넘쳐서 옆에 있는 북채로 둥둥 북을 두드리고 또 일어나서 춤을 추었다.

 원효가 춤을 추는 동안 방울스님은 징, 북을 울렸다.

그러다가 방울스님도 일어나서 춤을 추었다.

 한바탕 두사람이 어우러져 춤을 춘 뒤에 방울스님은,

“ 유여천일출 허공비불조 이후좌도량 광명역여시

  猶如千日出 虛空비不照 離후坐道場 光明亦如是

(비유컨대 천 개의 해가 떠오른 듯이 온 허공을 두루 비춤과 같이 티끌을 여의고 도량에 앉으니

부처님의 광명도 이와 같으리).”의 게를 읊었다. 원효는 거기 화하여서,

“ 일일중생고 고행무량겁 불멸생사난 능위대도사

  一一衆生故 苦行無量劫 不滅生死難 能爲大導師

(낱낱의 중생을 위해 고행은 무량겁에 이르겠으나 생사의 고통이 끝이 없으니

 마땅히 세상의 도사가 되리라).”

하고 일체공덕승 수미산운불 一切功德勝 須彌山雲佛의 게를 읊었다.

 방울스님은,

“ 좋다. 좋다.”하고 원효의 뜻을 칭찬하고 말을 이어,

“ 진노사나 본원저고 보현신상 유여허공 의어여여 불의불국 현신무량 보응중생

  盡盧舍那 本願底故 普賢身相 猶如虛空 依於如如 不依佛國 現身無量 普應衆生.” 이라고 불렀다.

노사나불의 본원을 밑까지 다 알고 행하였으니

보현보살의 몸 허공과 같아서 여여에 의지할지언정 불국에 의지하지 아니 하여 무량한 몸을

나타내어 널리 중생의 부름에 응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방울스님이 원효를 격려하는 뜻이었다.

 무량겁 해에 보살이 쉼없이 도를 닦는 것은 저를 위함이 아니라 중생을 고에서 건지기 위함이다.

그러면서 나는 중생을 건진다 하는 생각을 가져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아상 我相이요, 인상 人相이요, 중생상 衆生相이요, 수자상 壽者相이다.

이 모든 상을 떠나는 것이 부처라는 것이다.

(이일체제상 시명제불 離一切諸相 是名諸佛 ).

  원효는 전과 같이 조석에 밥을 짓고 물을 길었다.

그리고 방울스님은 지척지척 누룽지를 얻으러 지팡이를 끌고 내려왔다.

“ 스님, 우스운 일이 있소.”

하고 방울스님은 벙글벙글 웃었다. 넓은 부엌에는 다른 사람은 오지 아니 하였다.

“ 무슨 일이오?”

 원효는 주걱으로 솥에서 밥을 푸면서 물었다. 고소한 밥의 향기가 진동하였다.

“ 지금 오다가 들으니, 여기 학인들이 스님의 대승기신론소를 배웁디다. 되긴 되었소.

원효스님이 지어 주신 밥을 먹고 원효스님이 지으신 대승기신론소를 배우니 되기는 되지 않소?”

하고 방울스님은 유쾌하게 웃었다.

 원효도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이런 때 또 귀신의 눈에 띄지 아니 할까 하고 조심하였다.

 원효는 한가한 틈을 타 강당 앞에 가서 엿들었다.

 기신론 작가인 마명馬鳴보살 이야기 끝에 원효대사 평이 났다.

“ 원효대사도 보살 화생化生이야.”

이런 말을 하는 이도 있었다.

“ 원효대사는 생이지지生而知之로 무사자통 無師自通 한 이래.”

이런 말을 하는 이도 있었다.

“ 원효대사가 보살 화신이면 요석공주 때문에 파계는 왜 해.”

이렇게 원효를 공격하는 이도 있었다.

“ 미인과 같이 자는 방편이면 해롭지 아니 한 방편인데.”

하고 모두들 웃었다. 아마 학인들끼리만 모여 앉은 모양이었다.

 원효는 쓴웃음을 웃었다.

그리고 엿듣던 자리에서 물러나려교 할 즈음 한 학인이 문을 열고 나오다가 원효와 마주쳤다.

“ 왜 여기 섰어?”

그 학인은 원효를 노려보았다.

“ 스님네 토론하시는 것 좀 엿들었습니다.”

하고 원효는 공손히 뜰에 내려섰다.

“ 그래 무슨 말을 엿들었어?”

그 학인은 원효를 기롱하려 들었다.

“ 원효 험구하시는 것을 엿들었습니다.”

“ 하하, 그래 공양주가 원효대사를 아나?”

 학인은 흥미가 동하는 모양이었다.

 다른 학인들도 두 사람의 대화에 재미를 붙여서 툇마루에 부르르 나왔다.

“ 원효란 중이 요석공주하고 자서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은 들었지요.”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 그래, 원효대사가 요석공주하고 잔 것이 잘한 일이냐 잘못한 일이냐 말야.”

 다른 학인이 이렇게 원효에게 물었다.

“ 글쎄요. 잘못했다고 생각하기로 원효대사도 중질 그만두고 거렁뱅이질 다니지요.

  그렇지만 스님네 같으면 어찌하시겠소?”

 원효는 이렇게 말하고 웃었다.

 학인들은 서로 돌아보았다.

“ 어, 그 맹랑한 손이로군.”

 한 학인이 이렇게 원효를 노려보고 방으로 들어갔다.

원효의 말이 이상한 무게로 학인들의 정수리를 때린 것이다.

봉변당한 듯이 생각한 것이었다.

도인의 말은 무심코 하는 한마디에도 사람을 누르는 힘이 있는 것이다.

사람뿐 아니라 귀신도 도인의 일언일동에 눌리는 것이다.

그것은 제 욕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자비심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월 팔일은 세존께서 사라 쌍수 밑에서 열반하신 날이었다.

십이월 팔일이 성도하신 날이었다.

십이월 팔일의 성도하신 날과 같이 이 날 감천사에서는 열반재를 올리고 열반경의 법문이 있었다.

 학인들은 오늘로 동안거冬安居가 해제된다고 기뻐하였으나 원효는 떡을 하느라고 무척 바빴다.

 마을에서 선남선녀도 많이 모여왔다.

 청명을 앞으로 며칠 아니 남긴 날씨는 무척 온화하였고 하루건너 실비가 왔다.

 열반재를 마치고 원효는 감천사를 떠나기로 하였다.

 “ 덕분에 소승이 한겨울을 편안히 났습니다.”

하고 원효는 사중에 골고루 다니면서 하직인사를 하였다.

“ 어디로 가나?”

이렇게 물어 주는 이도 있었다.

“ 어디 정처 있습니까.”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 갈 데 없으면 여기 더 있지.”

 이렇게 만류해 주는 이도 있었다.

 평상시에는 본체만체하던 사람들도 떠난다는 말을 듣고는 섭섭한 뜻을 표해 주었다.

 원효도 그것이 기뻤다.

“ 참 일을 잘했는데.”

하고 원효의 공로를 칭찬해 주는 이도 있었다.

 원효는 누룽지를 많이 싸 가지고 독성각으로 올라갔다.

 방울스님은 북을 울리며 염불을 하고 있었다.

 원효는 염불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사 장삼을 입고 징, 북을 울리고 앉아 있는 방울스님은 전혀 허공인 것 같았다.

그의 몸에서는 아무 냄새도 아니 날 것 같았다.

 더구나 그 염불 소리는 맑았다. 모든 욕심을 떠난 소리였다.

그 소리는 온 법계에 가득 찰 것 같았다.

오직 중생을 위하여 부르는 염불이었다.

고해 화택에서 오욕 번뇌의 불에 타며 허덕이는 중생이 이 소리를 들으면 당장 청량 淸凉을

얻을 것 같았다.

아무 거드름도 변화도 없는 평담한 소리건만 그 소리는 하늘 꼭대기까지 아비지옥 밑바닥까지

 울려 가서 그곳에 있는 중생의 괴로움을 식혀 줄 소리였다.

 원효 자신도 몸이 극락세계에 있는 것 같았다. 형용할 수 없는 안온함을 느꼈다.

 둥, 괭 하는 징, 북소리도 예사로운 소리가 아니었다.

 원효 자신이 두들기면 그러한 소리가 날 것 같지 아니 하였다.

북채로 북을 치는 것이 아니라, 방울스님의 법신法身을 북을 치는 것이었다.

 염불 소리와 징, 북소리는 한데 어우러져서 둘이 아니었다.

그것을 울리는 방울스님의 몸도 한데 어우러졌다.

원효는 자기가 이 동네, 저 동네로 돌아다니며 부르던 염불 소리를 돌려 생각 하여 보았다.

그것은 원효가 목구멍으로 부른 소리요, 법신으로 부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심지어 원효의 염불에는 거드럭거리는 장난 기운조차 있지 아니 하였던가.

 원효도 물론 장난으로 염불을 한 것은 아니요, 지성으로 하느라고는 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방울스님의 염불과 비길 때 자기의 소리는 한 희롱이요, 취담이요,

아무 힘도 없는 것 같았다.

 그 소리가 중생의 귀에 들어가서 듣는 이의 혼을 움직여 보리심을 발하게 할 힘이 있을 리가 없는 것

같았다.

 원효는 한숨을 쉬었다.

‘ 금과 흙이다!’

 원효는 속으로 이렇게 한탄하였다. 자기는 흙으로 만든 그릇인 것 같았다.

 대안대사의 염불에도 이러한 힘은 없는 것 같았다.

 마음에 모든 때를 벗은 사람은 아름다운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요,

높은 것 중에 가장 높은 것이다.

“ 유여천일출 허공비불조 이후좌도량 광명역여시

  猶如千日出 虛空비不照 離후坐道場 光明亦如是

 (비유컨대 천 개의 해가 떠오른 듯이 온 허공을 두루 비춤과 같이 티끌을 여의고 도량에 앉으니

  부처님의 광명이 또한 이와 같구나).”

 원효는 비로소 부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동안 무궁한 세월이 흘러간 것과도 같았다.

 

염불 소리와 북소리가 끊어지고 방울스님은 일어나서 절을 하였다.

“ 세존아일심 귀명개시방 무애광여래 원생안락국

  世尊我一心 歸命蓋十方 無碍光如來 願生安樂國

(세존이시여, 내가 일심으로 진시방 무애광여래께 귀명하여 안락국에 나기를 원하나이다).”

하는 용수보살의 게를 읊으면서 절을 하였다.

두 팔을 높이 들어 공중에 원을 그렸다가 합장하고는 절하고,

 이렇게 하기를 열 번이나 한 뒤에 고개를 돌려서 문 밖에 서 있는 원효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 소승 지금 떠납니다.”

 원효는 다른 말은 없이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고 누룽지 봉지를 방에 들여놓으며,

“ 스님께 누룽지를 공양하기도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이번에는 잘 눌어서 많이 가져왔습니다.”

 방울스님은 합장을 하엿 고맙다는 뜻을 표하였다.

 원효는 감발을 한 몸이라 방에 올라가지는 아니 하고 문밖에 선 채로 깊이 허리를 굽혔다.

 방울스님은 뜰까지 나와서 원효와 작별하였으나 피차에 말은 없었다.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말이 없어도 서로 마음이 통하는 것이다.

 아마 이것이 이생에서는 마지막 작별일 것이다.

 원효가 다시 감천사에 올 일도 없고, 방울스님이 감천사 밖으로 나올 일도 있을 것 같지 아니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작별을 이 두 사람 사이에도 몇 억만 번 하였는지 모른다.

 인연이 남으면 또 만나는 것이다. 수없는 반복이다.

요다음에는 아미타불의 안락국에도 한번은 갈 것이다. 그러나

‘일일중생고 고행무량겁 불염생사난 一一衆生故 苦行無量劫 不厭生死難

(중생 하나하나로 고행은 끝이 없으나 생사의 어려움을 싫어하지 않으리).’하는

행자로는 이 신라 나라에도 금후 몇 번을 더 올는지 도 모르고,

또 지옥과 아귀, 축생도에도 몇 번 갈는지 모른다.

그러한 길에 서로 만나고 또 서로 만날 것이다.

 이 세상에 바늘 하나 세울 만한 것도 중생을 위하여서 목숨을 아니 버린 데가 없는 것이 보살의

행색이다.

보살의 눈에는 모든 중생은 다 평등이다.

어는 중생에 대하여서도 사랑하는 외아들의 심경을 가진다.

어는 중생 하나를 건지기 위하여서도 목숨을 아니 아낀다.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그 중생을 건질 때까지 죽고 또 죽는다.

이것이 보살의 행이 완성하는 날이다.

범부는 이런 말을 들을 때 입을 딱 벌린다.

그러나 보살은 이런 일에도 진력이 아니 나는 것이다.

 

 원효는 터불터불 절 동구를 향하고 걸었다. 이때,

“ 원효대사, 원효대사.”

하고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원효는 고개를 돌렸다 방울스님이 큰방 앞 죽대 위에서 손을 혀기고 있었다.

원효는 빨리 걸어서 방울스님 곁으로 갔다.

“ 이 책을 드린다는 것을 잊었소.”

하고 퍼렁 보에 싼 책을 원효에게 주었다.

“ 금강삼매경이오, 스님께 이 책을 전하는 것이 옳을 것 같아.”

방울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 받자옵니다.”

하고 원효는 그 책을 두 손을 받들어 수그린 머리 위에 높이 들었다.

 원효대사라고 방울스님이 부르는 소리에 학인들이 몰려나와서 얼빠진 사람들 모양으로

방울스님과 원효를 보고 있었다.

 원효는 방울스님께 또 한번 절하고,

곁에 둘러선 학인들과 다른 중들께도 또 한번 하직인사를 하고 동구를 향하고 나갔다.

“ 노장님, 지금 원효대사라고 부르신 이가 누구오니까.”

한 학인이 방울스님께 물었다.

“ 지금 저기 가는 저 스님이 원효대사요.

  스님네들이 겨우내 원효대사가 지어 주시는 공양을 잡수셨으니 다들 성불하시겠소.”

하고 방울스님이 웃었다.

 겨우내 부엌에서 밥 짓던 중이 원효대사란 말을 들은 중들은 놀랐다.

그중에도 강당문 밖에서 원효를 기롱한 두 중은 더욱 놀랍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하였으나,

그보다도 천하에 이름이 높은 선지식을 옆에 두고 몰라본 것이 분하였다.

“ 노장님 정말이오?”

 원효더러 ‘ 어, 그 맹랑한 손이로군’ 하던 학인이 방울스님께 물었다.

그의 이름은 의명義明이었다.

“ 무엇이 정말이냐 말이오?”

“ 지금 그 스님이 분명 원효대사요?”

“ 그렇다니까. 스님네가 공부하시는 대승기신론소를 지으신 원효대사요.”

 방울스님은 이렇게 대답하고 웃었다.

“ 노장님은 그이가 원효대산 줄 어떻게 아셨소?”

“ 날 누룽지를 잘 주길래 원효대산 줄 알았소.”

 방울스님은 웃었다.

 의명은 곧 짐을 꾸려 지고 원효의 뒤를 따라서 떠났다. 어디를 가느냐는 동무의 말에는,

“ 원효대사 따라가오.”

하고 뒤도 아니 돌아보고 대답을 던졌다.

 의명은 거기서 이십 리나 걸어서 강가에서 나룻배를 기다리고 있는 원효를 만났다.

 의명은 봄철 축축한 강변 흙에 엎드려서 원효의 앞에 절하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인 채로,

“ 스님, 몰라뵈온 죄를 용서합시고 소승이 스님을 시봉하옵기를 허하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원효는 의명을 붙들어 일으키며,

“ 허, 방울스님이 실없는 말씀을 하신 게로군.”하였다.

“ 오늘부터 소승은 스님을 시봉하겠습니다.”

하는 의명의 눈에 눈물까지 있었다.

“ 나를 시봉하다니. 밥 짓고 빨래하고 바느질할 줄 아오?”

 원효는 농담삼아 물었다.

“ 그런 일을 해 본 일은 없습니다.”

 의명은 정직하게 대답하였다.

“ 그러면 내가 스님을 시봉하게?”

 원효는 이렇게 말하고 웃었다.

 

 강가에는 풀이 파릇파릇하고 흐린 물이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나룻배는 저편 언덕에 맨 채 사공은 어디 가고 배만 물결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봄보리 가는 농부가 있고 노고지리는 아직 소리를 아니 하였다.

 의명은 원효의 허락이 내리기를 기다리고 합장하고 서 있었다.

“ 정처없이 또 구름같이 다니는 나를 따라오면 어찌하오.

그나 그뿐인가, 감천사 독성각에 계신 방울스님이야말로 지금 동방에 으뜸 되시는 대덕이시오.

나를 따라오느니보다 방울스님께 배우시오.

아마 그 스님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배우더라도 그 스님의 높은 도력을 다 배우지 못하리다.”

 원효는 이렇게 점잖게 의명을 개유하였다.

“ 소승이 감천사에 있기를 삼 년이나 하면서도 방울스님이 뉘신 줄을 몰라뵈었습니다.

 그저 무식한 노장님이거니 하고 업수이 여겼습니다.

스님께서 한겨울을 소승네 밥을 지으셔도 사중에 아무도 스님이 원효대사신 줄 알아뵈온

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버릇없는 소리를 함부로 하였습니다.

 아까 독성각 노장님께 스님이 원효대사란 말씀을 듣고 처음에는 믿어지지 아니 하였습니다.

임금의 스승이 되시고 천하에 이름을 떨치신 원효대사가 소승네 밥을 지으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원효대사시면 귀인의 모양을 차리시고 걸어다니시지도 않으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스님께서 정말 원효대사신 줄을 안 때에 소승은 전신에 피땀이 흐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스님의 뒤를 따라왔습니다.

 어디를 가시든지 죽기까지 스님의 뒤를 따르리라 하였습니다.”

 의명은 자장율사의 배 다른 아우로서 의안義安과 어머니 같은 형제였다.

의안은 장차 중으로서 효소왕孝昭王의 정승이 될 사람이었다.

“ 형님께서 자장율사시면 왜 형님께 아니 배우고 시골로 돌아 다니오?”

 원효가 이렇게 묻는 말에 의명은,

“ 소승은 자장율사가 마음에 싫습니다.”

이렇게 대답하였다.

 원효는 의명을 데리고 물을 따라서 내려갔다.

태백산에서 근원을 발한 물줄기를 따라서 내려가면 점점 낙동강 본류로 합하는데로 가게 된다.

봄날은 길 걷기에 가장 좋은 때였다.

 아직 물것도 아니 생겨서 잠자리도 편하였다.

산골에서 벌판으로 내려갈수록 봄은 더욱 깊었다.

 원효는 풀뿌리와 풀잎도 먹고 한데에서도 자고 하였으나 의명은 싫어하지 아니 하고 원효가

하는 대로 하였다.

원효는 의명의 뜻이 어지간히 굳은 것을 보았다.

 마침내 두 사람은 일선주一善州 지경을 접어들어 냉산 도리사 冷山桃李寺에 다다랐다.

 

 도리사는 모례毛禮의 집터다.

모례는 신라 사람 중 첫 번째 불교 신자였다.

 눌지왕訥祗王때에 묵호자墨胡子라는 중이 처음으로 신라에 들어와서 모례의 집에 머물렀다고 한다.

 묵호자란 물론 그 중의 이름은 아닐 것이다.

 검은 되놈이라고 신라 사람이 그를 부른 별명인 것이다.

 검은 되라면 물론 서역 사람일 것이다.

이때는 중국에 왔던 서역중이 신라로 왔던 것이다.

 옛날 기록을 보면 묵호자는 고구려로부터 왔다고 하였다.

아무려나 그는 도를 펴기 위하여서 만리 타국에 홀로 온 것이다.

 기록을 보면 묵호자가 고구려로부터 신라의 일선군一善郡에 이르니

그 고을 사람 모례가 땅을 파고 방을 만들어서 숨겨 주었다.

그때 마침 양梁나라에서 신라에 사신을 보내었는데 그가 가지고 온 예물 중에 향내 나는 물건이 있었다. 이때 신라 조정에서는 그 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엇에 쓰는 것인지도 몰라서 중사를 보내어

이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올리라고 사방에 물었다.

그때 묵호자가 이것을 보고,

“ 이것은 향이라는 것이오. 이것을 태우면 향기가 나는 것이니 정성을 신명께 달하게 하는 것이오.

  신명이라 함은 삼보三寶 밖에 없으니 첫째 불타佛陀요, 둘째 달마達摩요, 셋째 승가僧伽시라.

  만일 이 향을 피우고 발원하면 반드시 영험이 있는 것이오.”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때 마침 공주가 병이 중하였다.

왕은 묵호자를 청하여 분향 기도하게 하였더니 공주의 병이 나았다.

왕이 크게 기뻐하셔서 묵호자에게 상사를 대단히 후하게 하셨다.

 묵호자는 모례의 집에 돌아와서 왕께서 받은 물건을 다 모례에게 주어 그동안에 진 신세를 갚고,

“ 나는 갈데가 있으니 그만 떠나오.”

하고는 간 바를 몰랐다. 이것이 묵호자에 관한 기록 전부다.

 아마 얼굴이 검고 코와 눈이 다른 인도 사람으로서 혼자 타국에 숨어 들어오느라고

그 고생이 여간하지 아니 하였을 것이다.

모례가 움을 파고 그 속에 묵호자를 숨겨 준 것을 보더라도 묵호자의 신변이 대단히 위험하던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신라는(고구려와 백제도 그러하지만) 신을 숭상하는 나라다.

가장 높으신 아, 가, 나, 다, 라, 마, 바, 사, 팔신을 위시하여

이 팔신에서 나온 여러 신을 숭배하던 나라다.

임금의 일이란 신을 섬기고 백성으로 하여금 신을 잘 섬기게 하는 일이었다.

 정치, 산업, 문화가 모두 이 신을 섬기는 것을 중심으로 또는 목표로 되어 있었다.

이러한 신라에 중국 사상이 들어오자 다소간 신에 대한 순일무잡한 생각이 어지러워졌다 하더라도,

또 일면으로는 외래 사상에 대하여서 조상 적부터의 유신사상唯神思想을 옹호하려는 배타적 감정이

강하게 일어났다.

신라가 불교에 대하여 한 여러 가지 일이 이것이었다.

 묵호자가 다녀간 뒤에 아도阿道라는 이가 또 신라에 들어왔다.

 

아도가 신라에 들어온 데 대해서는 이러한 기록이 남아 있다.

“ 비처왕毘處王때 아도화상이라는 이가 사자 세 사람과 더불어와서 머물러 경經과 율律을 외우니

   왕왕 신수 봉행하는 자가 있었다.”

 또 고기古記에는 아도화상이 신라에 온 일을 이렇게 썼다.

 양나라 대통 원년大通元年 삼월 십일일에 아도가 일선군에 이르니 천지가 진동하였다.

아도대사는 왼손에 금고리 단 석장錫杖을 들고, 오른손에는 옥으로 만든 바리때를 들고,

몸에는 안개 장삼을 입고, 입으로는 화전花詮을 부르며 신자 모례의 집에 왔다.

 모례가 나가 보고 깜짝 놀라며,

“ 접때 고구려 중 정방正方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때 임금님과 신하들이 상서롭지 못한 것이 왔다고

하여서 죽였고, 또 멸구자滅垢子라는 중이 고구려에서 왔을 때에도 전같이 죽였는데 대사는

무엇하러 오셨소? 어서 문안에 들어서오. 이웃 사람 보리다.”

 이렇게 말하고 아도를 맞아들여 외딴방에 두고 정성으로 공양하였다.

 때마침 오吳나라 사신이 신라에 와서 내물왕께 다섯 가지 향을 드리되 왕이 그것이 무엇에 쓰는 것인지 모르는지라 사자를 보내어 널리 전국 중에 물었다.

사자가 법사(아도)에게 물으매 법사는 말하되 불에 태워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니라 하였다.

사자가 법사와 함께 서울에 오자 왕이 법사로 하여금 사신(오나라에서 온)을 만나게 하였더니

사신이 법사에게 예배하고 말하되,

“ 이 먼 나라에 높으신 대사께서 어떻게 오셨습니까.”

하였다.

 이것을 보고 왕은 불승을 공경할 것임을 아시고 조칙을 내려 반행頒行하기를 허하셨다.

 이렇게 고기에 적혀 있다.

이것으로 보면 아도는 순순히 사명을 달한 것 같지만 고득상시사高得相詩史에는 아도화상도

목베임을 당하였으나 신통력으로 모례의 집에 와서 숨었다 하였고, 또 다른 책에는 아도는

본래 고구려 사람으로서 위魏나라에 들어가 현창玄彰의 문하에서 십구 년 동안 공부하여 가지고

돌아와서 그 어머니 고도녕高道寧의 명으로 신라에 와서 대궐 서쪽 동네에 살며 미추왕味鄒王께

불교를 행하기를 청하였으나 전에 없는 괴상한 일이라 하여 아도를 죽이려 하므로

속촌 모록屬村毛祿의 집에 물러와 숨으니 지금 선주善州라.

 삼 년 동안 해를 피하여 숨어 있는중에 성국공주成國公主가 병이 낫지 아니하여 사방에 사람을 놓아

공주의 병 고칠 자를 구할 새 아도대사가 거기 응하여 대궐에 들어가 그 병을 고쳤다.

왕이 크게 기뻐하여 대사에게 소원을 물으니 대사는 천경리天鏡里에 절을 지어 주시면 내 원이 족하다 하자 왕이 허하셨다.

그러나 세론과 백성이 완고하여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예삿집 한 채로 절을 삼았으나 그 후 칠 년을

지나서야 비로소 중 되려는 사람이 생겨서 와서 법을 받았고 모록의 누이 사시史侍도 중이 되어

삼천기三川岐에 절을 세우니 영흥사永興寺다.

미추왕이 붕하시자 다음 왕이 믿지 아니 하여 불교를 폐하려 하므로 대사는 다시 속촌으로 돌아와

제 손으로 무덤을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 문을 닫고 죽으니 이리하여 원종原宗이 불교를 일으켰다.

 이렇게 말하였다.

 이때는 고구려에 소수림왕小獸林王때 순도順道가 들어오고, 백제에는 침류왕枕流王 때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서역으로부터 들어와서 두 나라가 다 불교를 행하게 된 때다.

아도화상도 고구려에 있을 때에는 나라에서 흥복사興福寺라는 큰 절을 지어 대사로 하여금

거처하게 하였다 한다. 그러나 아도의 원하는 것은 편안하고 대접받는 일이 아니요,

세상에 빛을 전하는 일이기 때문에 편한 것을 버리고 어려운 것을 취한 것이었다.

 아도는 진승秦僧이라고도 하고, 혹은 천축天竺 사람이라고도 하고, 혹은 고구려 사람으로

위에 들어갔다가 신라에 돌아온 사람 이라고도 하고, 또 혹은 대사의 어머니는 고구려 사람이나

아버지는 위나라 사신으로 고구려에 왔던 굴마堀摩라고도 한다.

어느것이 옳은지 알 수 없으나 풍신이 특이하고 신변을 잘 부리고 평생을 도 펴기에 바쳤으며

그가 설법을 할 때에는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고 한다.

아무려나 아도는 내가 신라에 불도를 펴고야만다 하고 몸을 바치고 맹세한 사람인 것에는 틀림이 없다.

 아도가 간 뒤에 열한 임금, 이백 년이나 지나서 법흥왕法興王(원종)때에 비로소 국가로서 불교를 허하게 되었거니와 그때에도 이차돈異次頓이 목숨을 버리고서야 비로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보면 신라에 불도를 펴기 위하여서 순교한 이가 고구려 중 정방, 멸구자, 아도 세 사람과

이차돈을 아울러 네 사람이다.

 

 원효가 도리사로 온 것은 이러한 선인들이 도를 위하여 몸을 버린 자취를 돌아보아

첫째로는 의명과 아사가, 사사마의 뜻을 크고 굳게 하여 주려 함이었다.

 도리사에서도 원효는 본명을 말하지 아니하였다. 의명더러도 원효가 누구인 것을 발설 말라고

신칙하였다. 그것은 구태여 숨으려 함이거나 또는 이름난 사람의 귀찮음을 피하려 함이 아니요,

대중에게 공경과 공양을 받음으로 뜻이 교만하여지고 몸의 안일을 탐하게 될 것을 겁냄이었다.

 원효는 도리사에서 며칠을 묵어 대중과 낯을 익힌 뒤에 절에서 허가를 얻어 가지고 냉산

한 골짜기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기로 하였다.

 원효는 톱과 도끼와 지게를 준비하여서 의명과 단둘이서 날마다 집터를 치고 재목을 찍어 나르고

돌과 흙을 져 날랐다.

그러하는 동안에 하루에 한 번씩 마을에 밥을 빌러 내려가고 또 큰 절에 재가 들면 거기서 얻은

음식으로 하루나 이틀 양식을 삼았다.

“ 스님, 이렇게 풀과 나무를 자르고 또 벌레를 죽이는 것은 살생이 아닙니까.”

 한번은 역사를 하다가 쉬는 동안에 의명이 이런 말을 물었다.

집 한 채를 지으려면 나무도 많이 찍어야 하고, 풀뿌리도 많이 파야하고, 그러노라면 나무와 풀에

의지하여서 살던 새와 버러지도 많이 의지를 잃게 될뿐더러 직접 죽는 일도 많았다.

의명은 이것이 애처로왔던 것이다.

“ 왜 살생이 아니야.”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 그런데 사문이 살생을 해도 좋습니까.”

의명을 이렇게 물었다.

“ 사바세계가 살생 아니 하고 살아갈 수 있는 세계인가.”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 그러면 사문과 속인과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 범부는 저를 위해서 남을 죽이고 보살은 중생을 건지기 위하여서 남을 죽이나니라.

석가 세존이 열반하시기 전에 돼지 고기를 잡수시지 않았나.

그러나 석가 세존은 일찍 한 번도 살생하신 일이 없나니라.”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 어찌해서 그것이 살생이 안 됩니까?”

“ 세존은 당신을 위하여 사신 일이 없으시니.”

원효의 이 말에 의명은,

“ 알았습니다.”하고 절하였다.

“ 그러면 살생유택殺生有擇이란 무엇입니까.”

의명은 다시 물었다.

“ 그것은 세속 사람이 지킬 것이니라.”

“ 보살은 살생이 없습니까.”

“ 그렇다. 보살은 삼계 중생을 다 죽여도 살생이 아니니라. 자비니라.”

“ 알았습니다.”

하고 의명은 또 한번 절을 하였다.

또 어느 때에 의명은 원효에게,

“ 선禪이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달마존자 達磨尊者가 중국에 온 것이 양무제 梁武帝때이니

 이때로부터 오륙십 년 전이라 백제와 신라에도 달마선법이 들어오기 시작한 때였다.

지금까지는 진언 眞言과 율 律이 가장 성하였고 일부 학승 간에 화엄법화가 숭상되었으나

 달마선법은 세상 일반에서는 아직 소문뿐이었다. 그래서 의명도 이것을 원효에게 물은 것이다.

 원효는 발앞에 흐르는 냇물을 가리키며,

 “ 선이 이런 것이니라.” 하였다.

 산 시내는 지형을 따라서, 혹은 빠르게 혹은 더디게 혹은 소리를 내며 혹은 소리도 없이,

바위가 있으면 바위를 비추고 구름이 오면 구름을 비추며 아무 조작도 없이 성급함도 없고 쉼도 없이

흐르고 있었다.

의명은 원효의 말뜻을 알려고 언제까지나 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역사를 시작한 지 한 달 남짓하여서 원효의 암자가 낙성이 되었다.

방이 세 칸, 가운데 마루는 크고 좌우 방은 작았다.

그리고 부엌 한 칸이 붙어 있었다. 마당도 반듯이 다듬고 우물도 하나 얻었다.

 집 옆으로는 꽤 큰 시내가 흘러서 비가 온 뒤면 방에서도 물소리가 들리고 비가 아니 와도

가까이 가면 물소리가 들렸다.

 냇가 벼랑 위에는 정자도 하나 지어 놓았다.

여기 앉으면 달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암자에서 서쪽으로 높은 언덕에 올라가면 먼 산과 먼 벌판이 바라보였다.

도리사 큰절이 보이지는 아니 하나 아침 저녁에 종소리는 울려 왔다.

 집이 다 될 때쯤 하여서는 원효나 의명이나 목수의 솜씨가 많이 늘었다.

흙을 바르는 솜씨도 늘었다.

 이 근방에 칡뿌리가 많은 것이 다행이어서 대안스님께 배운대로 원효는 칡뿌리를 먹었다.

그것을 그냥 씹어먹기도 하고 또 갈거나 으깨어서 먹기도 하였다.

 단오 전 풀은 아무것을 먹어도 독이 없다고 한다.

산에는 먹을 풀이 많았다.

그러나 원효나 의명은 먹을 풀과 먹지 못하는 풀을 구별할 줄을 몰랐다.

 

 한번은 지나가던 늙은 중 하나가 큰절에서 소식을 들었는지 원효의 암자를 찾아왔다.

그 노승은 먹는 풀과 먹는 뿌리를 잘 알았고, 또 그것을 맛있게 조리하는 법도 알았다.

칡뿌리로 녹말 만드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원효와 의명은 사흘 동안이나 이 노장을 따라서 산으로 다니면서 봄철에 먹는 풀과 나무 순과

뿌리를 배우고 또 많이 뜯어왔다.

 여름에는 여름에 먹을 것이 있고, 가을에는 가을과 겨우내 먹을것이 있다고 노장은 설명하였다.

 도라지, 삽주, 더덕, 칡뿌리를 네 가지 뿌리라 하고 도토리, 밤, 잣, 개암을 네 가지 열매라하고

송기(소나무껍질), 누루지(느릅나무 껍질)를 두 가지 껍질이라고 한다는 말도 가르쳐 주었다.

또 꿀을 따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여름에 병이 나서 고기를 먹어야 하겠거든 뱀을 잡아서 구워 주고,

겨울이면 토끼를 먹으란 말도 하였다.

“ 세존께서도 병난 사람은 고기를 먹여도 좋다고 하셨소.”

노승은 이러한 말도 하였다.

 이 노승은 평소에 늘 입을 우물우물하고 있었다.

진언을 염하거나 염불을 모시는 모양이었다.

 이 노승이 다녀간 뒤로 원효의 암자 살림은 무척 풍성하였다.

먹을 것이 많아진 것이다.

그중 물푸레나무 백랍으로 초를 잡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은 더구나 고마운 일이었다.

 물푸레나무에는 껍질에 뽀얀 가루 반죽 같은 것이 붙는다.

이것을 긁어모아서 초를 만드는 것이었다.

“ 낮에는 해가 있고 밤에는 달과 별이 있지만 이런 것을 쓸 데도 있습니다.”

 노장은 백랍을 빚어서 초를 만들면서 이렇게 말하고 웃었다.

 또 밥을 빌어온 것이 쉬었거든 물에 여러 번 씻어서 냄새가 없어진 뒤에 쑥을 두고 끓여먹으면

좋다는 법도 가르쳤다.

또 나리 뿌리와 산약 뿌리는 먹어도 좋지만 남성南星과 반하半夏는 먹으면 몸이 붓는다는 말도 하였다.

 이름을 물으면 노승은 번히 눈만 떠 보이고, 가는 곳을 물으면 그는 발을 한 번 굴렀다.

 부득이한 것 외에는 말을 아니 하였다.

“ 스님. 그 노장님이 고구려 사람이 아닙니까. 사투리가 고구려 사람 같습니다.”

 그 노승이 골짜기로 사라진 뒤에 의명은 원효에게 이렇게 물었다.

“ 그런지도 모르지.”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원효는 그 노승의 국적보다도 그의 수행한 정도와 심경을 생각하고 있었다.

원효는 대안대사에게서, 다음에는 방울스님에게서,

 또 이번에는 이름없는 노승에게서 불도의 한량없이 넓고 깊음을 느끼고 아울러 제 도력이

아직 어떻게나 유치한 것을 한탄하였다.

“ 의명아”

원효는 문득 이렇게 의명을 불렀다.

“ 예”

“ 그 노장을 어떻게 생각하는고?”

“ 고구려 사람이라고 생각하오.”

원효는 벼락같은 소리로,

“ 가라!”

하고 의명에게 일갈하였다. ‘ 가라’는 정신차리라는 말이다.

 의명은 송구하였다. 원효에게서 이런 큰소리를 들은 것은 처음 이었다.

평소에는 웃고 농담도 하고 친구 같았다. 그러나 이번 일갈은 무서웠다.

 의명이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고 섰는 것을 보고 원효는,

“ 알았느냐”

하고 또 한번 소리를 질렀다.

“ 무슨 뜻이온지.”

 의명은 알아듣지 못하였다.

“ 가서 나무 한 짐 해오너라.”

원효는 이렇게 명하였다.

의명은 지게를 지고 낫을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 노장이 고구려 사람이란 것이 무엇이 잘못일까 하였다.

 저녁에 산으로부터 돌아와서 의명은 원효에게 절하였다.

“ 알았느냐”

원효의 말은 부드러웠다.

“ 예”

“ 어디 말해 보아라”

“ 소승이 아직 중이 못 되었습니다.”

원효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였다.

 

 사월 파일에 원효는 이 암자에 무애암無碍菴이라는 현판을 써 달았다.

그리고 제 손으로 향나무 부처 한 분을 새겨서 불탑에 모셨다.

 원효는 의명을 데리고 이 암자에서 한 해를 났다. 의명은 더욱 원효를 공경하였다.

얼른 보기에 허랑한 듯한 원효대사의 속에 있는 큰 빛을 본 것이다.

 맨 처음 원효를 냉산 무애암으로 찾아온 것은 사사마였다.

그것은 유월 어느 비 쏟아지는 날이었다.

 사사마는 비를 쪼르르 맞고 무애암으로 와서 원효의 앞에 절하였다.

 원효도 놀라면서,

“ 네 어찌 찾아왔느냐.”

하고 반가와하였다. 사사마의 말은 이러하였다.

 원효가 가상아를 떠난 뒤에 일 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사사마와 아사가는 기다리다 못하여서

그 조부에게 어찌할까를 물으니 할아버지는,

“ 대사가 떠나실 때에 너희더러 뭐라고 하시더냐.”

하고 물었다.

“ 아직 집에서 늙으신 조부님과 어머님을 시봉하여라.

그것이 불도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고 사사마가 대답한즉 조부는 또,

“ 언제 만난다는 기약은 말씀 아니 하시더냐.”

하고 손자와 손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 때가 오면 만나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때가 오면.”

하고 사상아 노인은 한참 침음하더니

“ 그것은 너희더러 찾아오란 뜻이다.”

하였다. 이때는 벌써 앓던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 이튿날 사사마의 조부는 사사마를 불러,

“ 네 오늘 길을 떠나거라. 어디를 가든지 네 스승을 찾아라.”

이렇게 명하였다. 그래서 사사마는 길을 떠났다.

“ 스님 계신 데를 찾거든 곧 돌아와. 나도 가게.”

누이 아사가는 이렇게 사사마에게 부탁하였다.

사사마는 처음에는 원효가 가던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여서 간데마다

 원효의 모습을 말하고 이러이러한 사람을 못 보았느냐고 물었다.

 원효대사라고 찾지 아니한 까닭은 원효가 행색을 숨겼으리라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 단샘에서 웬 사람을 만나서 물었더니 알겠지요.

그런 양반이면 우리 동네에서 두 달이나 계시면서 죽을 사람을 많이 살려 주시고 가셨느니라고.

그런데 그 어른이 누구신지 성명도 아니일러 주시더라고. 대체 그 어른이 누구시냐고 되려 묻겠지요.

 그래서 그 어른이 원효대사라고 제가 말하였습니다.”

 사사마는 그때의 기쁨을 다시 일으키는 듯이 눈이 빛났다.

사사마는 말을 계속하였다.

“ 그리고는 감천사에 들러서 자세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는 사사마의 말에 원효는,

“ 거기서 방울스님이란 노장을 뵈었느냐.”

하고 물었다. 원효는 이 말을 물을 때에 몸을 바르고 합장하여서 스승에게 대한 예를 보였다.

“ 네. 큰절에서 어떤 스님이 원효대사 일을 알려거든 저 독성각에 가서 방울스님을 만나뵈어라

하기로 가 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을 그 노스님 곁에서 잤습니다.”

사사마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 그 노스님이 누룽지 잡수시더냐.”

원효는 이렇게 물었다.

“ 누룽지 잡수시는 것은 못 뵈었습니다.”

사사마는 누룽지가 무슨 뜻인가 하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의명도 사사마에게 감천사 이야기를 여러 가지로 물었다.

사사마는 이삼 일 유숙한 뒤에 집으로 갔다.

조부께 원효대사의 거처를 찾았다는 말을 보고하려 함이었다.

사사마는 조부에게 크게 칭찬을 받았다.

반년 동안에 혼자 정처없는 스승의 자취를 찾아서 만난 것이 장한 일이라고 대단히 기뻐하였다.

 아사가와 사사마가 집을 떠나는 날 사상아 노인은 예복을 입어서 위의를 갖추고 신전에서

손녀와 손자를 이 나라를 건지기 위하여 큰 스승에게 보낸다는 봉고제를 하였다.

 아사가도 상아머리를 고쳐서 방아머리로 사내 모양으로 틀고 남복을 입었다.

 누이와 오라비는 형제 모양으로 조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마지막 교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부는 늙었다.

오래 수도한 몸이라 눈이 별 같고 몽이 쇠 같지만 그래도 주름과 백발은 숨길 수가 없었다.

더구나 아들은 전사하고 손자 손녀를 이제 또 정처없이 내어놓는 것은 조부로서는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러나 평생에 몸과 집을 생각한 일이 없는 사상아였다.

오직 신라의 젊은 사람들을 훈련하여 이 나라를 힘있게 하자 하는 생각밖에 없는 그였다.

 칠십 평생에 그는 가상아당의 스승으로 수천 명 청년 남녀를 가르쳤다.

그중에는 용감하게 나라를 위하여서 싸워 죽은 자도 수백 명 되었고 지금도 살아서 혹은 군인으로

혹은 관리로 혹은 스승으로 나라를 위하여서 힘쓰고 있는 자도있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에 자기의 힘은 홍로점설紅爐點雪과 같은 것 같았다.

정말 저를 잇는 큰 인물이 좀처럼 가르쳐지지를 아니 하였다.

대개는 조그마한 도력을 얻어가지고는 제 한 몸의 부귀공명을 도모하는 무리가 되고 말았다.

 그는 아들 형제를 두었었다.

큰 아들은 뜻이 갸륵하여 장래를 기대하였으나 한산 싸움에서 전사하고 작은아들은 지금도

살아있으나 한 집을 지켜 갈 만한 재목도 못 되었다.

 그가 만년에 희망을 붙인 것은 손녀 아사가와 손자 사사마였다.

아사가는 여자나 극히 총명하고 또 뜻이 높았다.

 그래서 몸소 곁에 두고 여러 가지 고생을 시켜서 가르쳤다.

그는 열다섯 살에 벌써 가상아의 가사라(구실, 두목)가 되어서 남을 지도할 힘이 있었다.

 그보다 두 살 적은 사사마도 총명하고 도량이 큰 듯하였다.

그래서  내 집을 빛내고 나라에 큰 힘이 될 자는 이 남매라고 믿고 지극히 사랑하고 소망을 붙여

온 것이었다.

 조부는 이윽고 두 소년 소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 너희 이제 떠나면 언제 집에 돌아오려느냐.”

하는 것이 조부의 첫말이었다.

“ 일 년에 한 번씩은 귀성할까 합니다.”

 사사마가 이렇게 아뢰었다.

 아사가는 여자의 도리를 찾아서 대답은 오라비에게 미루는 것이었다.

“ 안 돼!”

 조부의 어성에는 노기조차 띠었다.

“ 안 되지.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도가 차기 전에는 집에 돌아올 생각을 말아라.

 설사 내가 죽었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돌아올 것은 없어.

 너희는 할아비도 잊고 도를 이루어 나라에 큰 빛이 되는 것이 죽은 네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이 할아비에게나 효도인 줄 알렸다. 알아들었느냐.”

 이 말에 두 오누이는 눈물이 북받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손을 들어서 눈물을 씻을 수도 없고 또 외면할 수도 없어서 눈물이 쏟아져서 두 무릎에

빗방울같이 떨어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조부도 한참 동안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는 눈이 쓰라림을 느꼈다.

 “이제 그만 눈물 거두어라.”

얼마 있다가 조부는 이렇게 명하였다.

 이 경우에 그들이 눈물 흘리는 것을 조부는 자연한 정이라고 용인한 것이었다.

 허락을 얻어서 아사가와 사사마는 소매를 들어 눈물을 씻었다.

그러나 씻으면 씻을수록 새로운 눈물이 북받쳐 올랐다.

 할아버지는 그들에게는 가장 그리운 이였다.

평소에 근엄하여 좀체로 웃는 모양도 아니 보이는 할아버지건만 그러한 속에도 깊은 사랑이 있는

것을 어린 적부터도 알고 있었다.

일 년에 한번도 못 돌아오리라 하면 그들은 생전에 다시 그리운 할아버지의 얼굴을 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눈물을 씻는 소매가 젖으면 그 젖은 소매가 더욱 설었다.

“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났던 보람을 해야 한다.

 해는 빛을 주시고 용은 비를 주시고 검님들도 다 직분이 있으셔.

너희들은 그만한 총명과 지조를 타고났으니 필시 무슨 큰일을 하랍시는 방아신의 분부셔.

앞으로 우리나라에 크고 어려운 일이 많을 것이다.

백제, 고구려와 싸움도 할 것이고 싸움이 오래 끌면 사람도 많이 죽으려니와 흉년도 질병도 올 것이요, 그리 되면 백성들이 마음이 어지러워지기가 쉬워 까딱하면 나라에 큰일 날는지도 몰라.

그러한 때에 나라를 붙들고 백성들의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 도인의 직책이다.

그러한 큰 직책을 감당하자면 큰 스승의 매를 맞으며 큰 공부가 있어야 해.

벼락이 머리에 떨어져도 까딱없고 부귀가 오더라도 심상할 만한 공부가 있어야 해.

그런데 나는 그만한 스승이 못 되어. 내가 보매는 원효대사야말로 능히 너희를 두들겨서 금과 같은

사람을 만들 큰 스승인 듯 싶으니 너희들은 그 어른께 몸을 맡겨 버려라.

스승을 섬기는 법이 임금을 섬기는 법과 같아. 그러므로 임금과 스승과 어버이는 일체라는 것이다.

그중에도 스승은 임금과 어버이 섬기는 법을 가르치시는 이니 그러므로 스승은 임금도 공경하시는

 바이다.

대개 임금을 섬기는 법이 목숨을 임금께 바쳐 버리는 것이어니와 스승을 섬기는 법도 그와 같아서

스승에게다가 목숨을 바쳐 버리는 것이다.

 무슨 어려운 일을 시키시더라도 그대로 좇아가는 것이야.

그러니 일심이란 딴 생각을 아니 한단 말이요.

 정성을 들인다는 것은 거짓이 없고 꺼림이 없이 언제까지나 힘쓴단 말이야. 알아들었니?”

“ 네.”

 두 오누이는 일제히 대답하였다.

“ 장하다, 그래야지.”

하고 조부는 일어나 칼 함에서 도롱이 둘을 내어 아사가와 사사마에게 주었다.

칼의 길이는 두어 자밖에 아니 되나 오동집에 금으로 반달을 놓고,

은으로 한 칼에는 멍에다물(오리온)을, 한 칼에는 칠성을 놓고 숙녹피로 끈을 한 것이었다.

숙녹피는 오랜 세월에 빛이 변하였다. 조부는,

“ 네 그 칼을 빼어 보아라.”

하고 명하였다.

 아사가와 사사마는 칼을 빼었다. 푸르스름한 몸에 가무스름한 날이었다.

그러나 한번 공중에 들자 푸른 무지개가 뻗치는 듯하였다.

 

조부는 입을 열었다.

“ 이칼은 조부 서랑 장군께서 장군 이사부를 따라, 한번은 우산국을 칠 때에,

또 한번은 금관국을 칠 때에 세운 전공으로 나라님께서 상사로 받자오신 것이다.

서랑 장군께서 모두 세 번 전공을 세우셔서 칼 셋을 상 받으시고 넷째 번에는 한산주 싸움에서

전사하셨거니와 단잠성 싸움에서 상사받으신 칼은 네 아비가 지니고 출정하여 한산주에서

전사하여 그 칼이 간 데를 모르거니와, 너희가 만일 고구려를 쳐서 멸하면 네 아비의 칼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칼은 금으로 반달과 용을 아로새긴 것으로 진흥대왕께서 차시던 보검이라고 한다.”

 여기까지 말한 뒤에 조부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말을 이어,

“ 네 아비 장춘랑 長春郞은 그 동지 파랑 罷郞과 함께 단둘이 밤에 적진 중에 숨어들어가서 적의 장수를 베어서 위태한 우리 군사를 건졌느니라.

 네 아비는 충성 있는 장수더니라.

적도 그 충용에 감복하여서 장춘랑, 파랑의 무덤을 만들어 놓고 물러갔느니라.”

 이렇게 장춘랑의 말을 하였다.

 장춘랑, 파랑은 한산 싸움에 신라군이 백제군의 포위를 당하여서 전멸의 위기에 있는 것을 단신으로

적진 중에 들어가 적장을 죽이고 전군을 구원한 사람으로 나중에 태종무열왕이 그 공을 보아 두 사람을 위하여 장의사 壯義寺를 지어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장의사는 세검정에서 동북으로 고개 하나 넘어가서 지금도 그 절터가 있다.)

 아버지 이야기를 들은 아사가와 사사마는 한번 몸을 떨었다.

 조부는 다시 말을 이었다.

“ 아마 네 아비가 적장의 목을 벤 것이 그 칼일 것이다.

그 용을 아로새긴 칼일 것이다.

  한번 쾌하게 그 칼을 썼으니 여한이 없을 것이다. 네 아비가 칼을 잘 썼느니라.

  몸을 솟아서 나는 참새를 베었더니라.

  네 증조부님이 칼을 잘 쓰시기로 이름이 높으셨거니

  와 항상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칼 쓰는 공부는 베고 싶은 것을 무엇이나 베게 되어야 한다

  고 하셨어. 공중에 나는 티끌을 쪼갤만하여야 비로소 검객이라고 하셨어.

  또 이런 말씀도 하시더니라.

  칼을 쓰는 사람은 먼저 제 욕심 베기를 공부해야 한다고. 능히 제 목을 쌍둥

  자를 만하면 아무러한 적이라도 그 칼을 면치 못한다고 하셨어. 저를 먼저 베고야 적을

  베느니라고. 저는 살고 적만 죽이려 하면 적은 살고 저는 죽느니라고. 너희들은 아직

  이 말을 못 알아들을 것이다마는 이제 공부를 하노라면 알게 될 것이다. 들으니까.

  원효대사가 검술에도 명인이라더라. 나의 뿌리를 뺀 사람이 무엇을 하면 명인이

  아니겠느냐.

  능히 만인을 죽이고 능히 만인을 살리는 재주를 배워 이루거든 할아비를 찾아오너라.

  할아비가 그 전에 죽더라도 눈만은 뜨고 너희들이 어떻게 되나 보고 있을 것이다.”

 조부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 네 그 칼에 새긴 반달과 별을 보느냐. 네 마음이 참된 때에는 달님 별님이 네 칼에 힘을

  주시되 네 마음이 거짓될 때에는 정기를 아니 빌리시는 것이야. 유신 장군이 나라의

  원수를 갚는다고 칼을 단에 놓고 빌 때에 별빛이 칼날까지 뻗었다는 것이야.

  신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칼도 쇳조각과 다름이 없어. 재주로 칼을 쓰는 것이

  아니라 신명이 주시는 힘으로 칼을 쓰는 것이야. 신명은 맑고 깨끗한 마음을 즐겨하시

  느니라. 네 마음이 청정할 때에 신명이 네 마음에 계시느니라. 원효대사가 작히나 잘

  가르치시랴마는 할아비의 마지막 훈계로 알고 마음에 새겨 두어라.”

 하고 입을 다물었다.

 아사가와 사사마는 조부의 말을 한마디 한마디 간에 새겼다.

그말 속에 풍긴 어버이의 애정이 더욱 힘있게 두 어린 사람의 혼을 흔들었다.

“ 이제 가거라.”

 하고 조부의 명령에 아사가와 사사마가 일어나 조부의 앞에 절하였다.

 그때 새로운 눈물이 쏟아졌다.

 아사가와 사사마는 화랑으로 차렸다. 조부께 받은 칼을 차고 바랑을 지고 나섰다.

 조부는 대문 밖에 나와서 둘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있더니 곧 들어가고 말았다.

 아사가와 사사마는 조부가 들어가고 아니 보인 데를 향하여 울고 절하였다.

 이 모퉁이만 돌아서면 다시는 집이 아니 보일 굽이에 가서 아사가와 사사마는 뒤를 돌아보았다.

“ 불이야!”

 아사가는 놀라는 소리를 질렀다. 집에서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 할아버지!”

 두 어린이는 땅에 엎드려서 울었다. 오누이는 조부의 뜻을 안 것이다.

인제 집이 없으니 집 생각을 말라는 뜻이다.

 두 사람은 다시 집으로 달려가고 싶은 것을 참고 조부의 정성을 존중하여서 뒤도 아니 돌아보고

 훨훨 걸었다.

“ 누나.”

하고 얼마를 가다가 사사마가 누이를 불렀다.

“ 응.”

“ 할아버지는 안 돌아가셨을까.”

“ 안 돌아가실 것이다.”

“ 어떻게 아오?”

“ 가상아당이는 어떡허고.”

“ 그래. 할아버지는 가상아당으로 가실 거야. 거기서 돌아가시는 날까지 사람을 가르치실 거야.”

 사사마는 마음이 놓였다.

 날은 흐리건만 찌는 듯 더웠다.

 언제 큰 소나기가 쏟아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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