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냇가에는 서늘한 저녁 바람을 쏘이는 사람들이 왕래하고 그중에는 술 취해 활개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술 취한 사람들은 큰길이 좁아라 하고 활개를 내어두르고 비틀거렸다. “ 이놈, 이놈” 하고 누구를 불러서 호령도 하고 엉엉 우는 소리로 원망도 하였다.
요석궁 앞을 지나서 서쪽으로 가다가 다시 서남쪽으로 꺽으면 거기에는 저자가 있었다. 백제, 고구려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 당나라의 물건을 파는 주비전이 늘어서 있었다. 이 저자에서 좀더 서남으로 가면 두버들이라는 골목으로 술집과 계집집과 노름판이 있는데다. 시골서 올라온 장사치며 다른 나라 장사치이며 이곳 활량들도 와서 노는 곳이다.
“ 징동당동 닐니리.”
풍악 소리와 노래 소리가 길에 가득 찼다. 술집에는 높다란 장대에 길다란 파란 등을 달고 계집집에는 붉은 등을 달았다. 어두움 속에서 푸른 등 붉은 등이 흔들리고 “ 니누나누”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풀어지게 하였다.
어깨를 비기고 오고가는 사람들은 다 취하여서 관을 비뚜름히 쓰고 옷자락을 풀어헤친 사람들이었다.
대안은 으쓱으쓱 우쭐우쭐 어깨춤을 추면서,
“ 오, 스님도 좀 어울리시오.”
하고 원효의 소매를 잡아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근엄한 생활을 하여 온 원효는 이러한 곳에 발을 들여놓은 것만 해도 마음이 놓이지 아니하였다.
길로 지나가면서 대안은 기웃기웃 이집저집 들여다보았다. 등불을 단 대문을 쓰윽 들어서면 뜰이 있고 뜰을 들어서면 조그마한 연못과 석가산과 화초가 있고, 하얗게 회를 바른 담에는 그림을 그린 것이 촛불에 어른어른하였다. 방들에는 발을 늘였으나 그 속에서 먹고 마시고 노는 양이 보였다.
“ 저게 다 어떤 사람들인지 아시오?”
이렇게 대안이 원효를 보고 물었다.
“ 모릅니다.”
원효는 정직하게 대답하였다.
“ 다 우리같은 사람들이오. 스님도 저것을 보면 놀아 보고 싶지않소?”
대안은 싱긋 웃었다.
“ 소승은 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원효는 못마땅한 뜻을 보였다.
“ 허. 원효스님이 아직 터지지를 못하였군. 관세음보살님이 어떻다고 하셨소. 종종제악취 지옥귀축생 種種諸惡趣 地獄鬼畜生에 무찰불현신 無刹不現身이라고 아니 하셨소? 스님은 보살만을 제도하시려오? 지금 우리가 보는 바가 아까 말한 삼악도요.
지옥, 아귀, 축생, 우리도 잠시 아귀 축생이 되어 봅시다.
이리 오시오.”
하고 대안은 또 다른 집으로 간다. 거기는 푸른 등과 붉은 등을 대문 좌우에 달았다.
술과 계집이 다 있다는 뜻이다. 대안은,
“ 자 들어갑시다.”
하고 원효의 소매를 끌었다.
“소승은 아직 그만한 도력이 없습니다.”
하고 원효는 소매를 뿌리쳤다.
“ 무슨 도력이 없으시오?”
“ 육취 六趣중으로 자유자재로 다닐 만한 신통력을 못 얻었습니다.
물에 들어가도 물이 아니 묻고, 불에 들어가도 불이 아니 붙는 그러한 도력이 없습니다.”
“ 아난존자 阿難尊者와 마찬가지로군, 하핫하핫.”
대안은 하늘을 우러러서 크게 웃는다.
대안이 웃는 소리에 발이 들리면서 분홍 옷을 입은 젊은 계집 하나가 내다본다.
“ 누구시오? 거기 손님 오셨소?”
은방울을 굴리는 듯한 소리다.
“ 지니가던 중이오니 하룻밤 놀고 가려고 들어왔소.”
대안이 문 앞으로 가까이 가며 이렇게 말하였다.
“ 아따, 누구시라고 대안스님 아니시오?”
계집은 반가운 듯이 발을 높이 들었다.
“ 대안스님은 대안스님이오만 젊으신 한 분 모시고 왔소.”
하고 대안이 돌아서서 원효를 가리키니 계집이 한 손을 들어서 불빛을 가리우고 뜰을 바라본다. 검은 머리, 흰 얼굴, 날씬한 몸매, 분홍 옷, 자주 깃, 주홍 띠, 그리고 고개를 기울이고 불을 등지고 선 모양이 퍽 사람을 고혹하였다.
“ 아이, 들어오십시오.”
이것은 계집이 원효를 향하여서 하는 소리다.
“ 왜 거기 그렇게 장승처럼 서 계시오? 좀 들어오십시오. 창녀의 집이라고 꺼리시는 듯싶습니다마는 자비는 평등이 아닙니까. 이런 계집도 제도를 하셔야 아니 합니까.”
계집은 신발을 신고 내려와서 원효의 소매를 붙들었다.
“ 아이, 왜 자꾸만 외면을 하십니까. 서라벌 장안에 원효스님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승만여왕마마께서 그처럼 사모하셔도 까딱없으셨다는 원효스님이시오. 천하에 미인이시라는 요석 공주마마께서 일편단심 정성을 들이셔서 지어 보내신 스무 새 베옷을 보신 체 못 보신 체 상좌에게 내어주셨다는 소문을 안 들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아이, 스님도 왜 자꾸만 외면을 하십니까. ‘ 보살변화 시현세간 비애위본 단이자비 영피사애 가제탐욕 이입생사’菩薩變化 示現世間 非愛爲本 但以慈悲 令彼捨愛 假諸貪慾 而入生死(보살이 변화하여 세간에 나타나는 것은 애욕이 근본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자비로서 그로하여금 애욕을 버리게 하려고 온갖 탐욕을 빌어서 생사에 들어간 것이다)라고 아니하셨습니까. 이 몸 같은 죄 많은 중생을 건져 주시는 것이 보살행이 아닙니까. 애어동사 愛語同事라고 아니 합니까. 자 이리 들어오셔요. 원효스님이 내 문전엘 오시다니. 얘, 차 달여라. 우리 집에 귀한 손님이 오셨다. 상감마마께오서 금옥으로 꾸민 자단수레로 모시려도 아니 오실 원효스님이 오셨구나. 어서 차 달이고 다담상 차려라. 스님 자 들어오셔요. 그렇게 외면만 마셔요. 물에 드셔도 젖지 아니 하시고 불에 드셔도 타지 아니 하시는 보살님이 아니십니까. 이 몸이 설사 마등가 摩登伽라 하더라도 아난존자께서 이미 한번 치르신 일이시니 스님이 다시 빠지실 리야 있습니까. 아이 이를 어찌하나. 원효대사께서 내 문전에 왕림하시다니.”
하고 계집은 원효의 허리를 안아서 방으로 끌어들인다.
원효는 평생 처음 당하는 일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대안이란 것이 무슨 악마의 변화 變化여서 자기를 마굴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닌가 하였다. 원효는 계집에게 밀려 방으로 들어가면서 대안을 돌아보았다. 대안은 싱글벙글하고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계집의 머리와 몸에서는 향내가 났다. 촛불 빛에 보니 계집은 더욱 아름다웠다.
원효는 계집이 앉히는 자리에 앉았다. 백제 화문석에 당나라 모란 무늬 보료를 깔았다.
왕희지 王羲之의 난정 蘭亭 족자가 걸린 것도 놀랍거니와 흑단 서안 위에 남화경 南華經과 도연명 陶淵明의 시집이 놓인 것이 더욱 놀라웠다.
원효는 의상과 함께 당나라에 갈 때 호구 虎丘에서 선묘라는 여자의 방에 들어갔던 것을 생각하였다. 선묘는 그곳 청신사 서문경 徐文卿의 딸로 글을 잘 알고 불교를 잘 믿는 처녀였다. 그 아버지는 일찍 죽고 어머니를 모시고 조용하게 수도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원효와 의상은 그 집에서 삼사 일 관대를 받았었다.
그 선묘의 방에 비길 만하게 이 계집의 방은 화려한 중에 높은 취미를 보였다. 어디를 보아도 창녀의 음탕한 빛은 보이지 아니 하였다.
계집이 고구려 청자 향로에 백단향을 피워 향연이 오를 때에 계집은 마치 모든 번뇌를 다 해탈한 처녀와 같이 맑게 보였다.
원효는 다소 안심이 되었다.
다담상이 나왔다. 상을 들고 나온 계집종도 상전과 다름없는 깨끗한 차림을 하였고 그 몸가짐이 모두 법도에 맞았다. 종은 상을 놓고는 대안과 원효의 앞에 오체투지의 예를 하고 나갔다.
계집은 차를 따라서 대안과 원효에게 권하고 나서야 새삼스럽게 원효에게 절을 하면서,
“ 높으신 법사께서 이렇게 왕림하시오니 봉필蓬蓽에 생광이 옵니다. 일석상대 一席相對도 다생多生의 연이라 하였사오니 이 몸 같은 계집도 전생 어느 생에는 두 분 법사님을 모신 적이 있는가 하옵니다.”
계집은 이렇게 얌전하게 인사 말씀을 아뢰인다.
“ 스님은 모르시리다.”
하고 대안이 차를 마시고 나서 원효에게 설명하였다.
“ 주인은 삼모三毛라고 당대 해동에 으뜸이오. 유신공이 불러도 아니 듣고 지금은 상감이시지마는 금상께서 춘추공이라고 일컬으실 시절에 여러 번 불러도 아니 움직인 삼모요. 옛날 진흥대왕 시절에 이모 二毛 준정 俊貞이라는 두 미인이 있지 아니하였소? 당대 풍류랑 호걸 남자가 모두 이 두 미인에 반해서 하핫하핫.(그때 준정이 이모를 질투해서 죽였었다.) 그런데 이 주인은 삼모라고 이약 춘추공, 유신공으로도 점접을 못한단 말요. 이제 화엄종주 원효와 동냥중 대안이 삼모랑을 사모해서 이번에는 우리 둘이 질투로 피를 흘린다면 한번 볼만한 일야. 하핫하핫.”
대안은 집이 떠나가라 하고 웃는다.
대안의 말에 원효도 실소하였다.
“ 술을 내오리까.”
삼모가 대안을 보았다.
“ 술을 내와야지. 오늘은 원효스님께 삼악도 구경을 시켜 드리는 날이니 삼악도에는 술을 타고야 들어가는 거야. 안 그런가, 삼모. 술이 취해야먄 불보살의 가피력이 몸에서 떨어져서 몸이 저절로 지옥으로 데굴데굴 굴러들어가는 것이거든. 말짱한 정신으로는 아무도 삼악도에 못 들어가는 것이야. 그러니 세존께서 부질없이 ‘ 술 먹지 말아라’ 하는 계를 내리신 것이거든, 하핫하핫.”
술이 나왔다. 고기 안주도 나왔다. 원효는 고기를 안 먹었다.
삼모는 고기 한 점을 집어서 원효에게 권하며,
“ 고기도 한 점 잡수시오.”
하였다.
“ 아직도 고기가 고기로 보이니 안 먹겠소.”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 그러면 고기가 나무껍질로 보일 때까지 술을 잡수시오.”
삼모는 이렇게 원효에게 술을 권하였다.
“ 도인이 술이 취하신 양이 보고 싶소.”
삼모는 이런 소리도 하였다.
“ 삼모.”
대안은 싱글싱글 웃으며 이렇게 불렀다.
“ 왜 부르십니까.”
“ 어디, 오늘 원효스님을 파계를 시켜 보라.”
“ 파계는 벌써 하신 것을.”
“ 무슨 파계?”
“ 술을 잡수셨으니.”
“ 아니, 비구 이백오십계二百五十戒를 몽땅 깨뜨리시게 해보겠느냐 말야.”
“ 들으니 계란 가락지와 같다 하오니, 둥근 것이 한 끝이 깨어지면 다 깨어진 것인가 하오.”
삼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대안은 눈을 크게 뜨며,
“ 원효스님. 자 어떻소?”
하고 원효를 바라본다.
원효도 술잔을 든 채로 놀란 표정을 하였다.
“ 스님, 어서 그 술 잡숫고 이 몸에게도 손수 한 잔 따라 주시오.”
삼모는 원효의 소매를 당기었다. 원효는 잔을 들어 마시고 삼모의 말대로 한 잔을 삼모에게 주었다.
삼모는 원효의 손에서 술잔을 받아들면서,
“ 스님. 어찌하시려오? 손을 들어서 술집만 가리켜 주어도 오백생에 손 없는 중생이 된다거든, 하물며 법사의 몸으로 젊은 계집에게 술을 따라 주시면 그 업보를 어찌하시려오?”
하고 원료를 노려보았다.
원효는 비로소 껄걸 웃으면서,
“ 미인에게 술을 권하였으면 그만한 업보는 당연하지.”
하고 대안을 보았다.
삼모는 원효의 말에 술잔을 놓고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삼모가 고개를 들어 원효가 준 잔을 마시고 나서 원효에게 그 잔을 올리며,
“ 만일 이 몸이 스님을 못잊어 하면 스님은 어찌하시렵니까.”
하고 원효의 몸에 제 몸을 기대었다.
“ 달아나지 ”
원효는 또 웃었다.
“ 어디로?”
“ 남산으로.”
“ 그래도 따라가면?”
“ 돌아오지.”
“ 어디로?”
“ 삼모의 집으로.”
“ 정말이오?”
“ 사문이 거짓말 있나.”
“ 그러면 달아나시지도 말고 돌아오시지도 말고 오늘 밤 여기서 주무셔요.”
삼모는 간절한 정을 보였다.
“ 그러지.”
원효는 선선히 대답하였다.
삼모는 대안을 바라보며,
“ 노스님도 들으셨습니다. 지금 원효스님이 이 몸에게 주신 약속을.”
하고 따졌다.
“ 듣고말고. 제불보살이 모두 증명이 되신 걸.”
대안은 유쾌한 듯이 이렇게 말하였다.
다시 술이 나오고 삼모의 노래와 춤이 나왔다. 대안도 춤을 추고 원효도 춤을 추었다.
“ 제석천궁帝釋天宮에 우리가 너무 오래 머물렀소. 스님, 이제 술도 어지간히 취했으니 삼악도로 갑시다.”
문득 대안이 이렇게 말을 내었다. 원효도 일어나려 하였다.
삼모는 취한 눈 위에 원망하는 뜻을 품고 원효를 보며 원효의 장삼 소매를 부여 잡았다.
“ 사문도 거짓말을 하시오. 오늘 밤을 여기서 지내신다고 아니 하셨소? 못 가시오. 대안스님 혼자 가시오. 원효스님은 오늘밤은 내 것이오. 대안스님도 아기 어머니한테로 가시면서, 누가 모르는 줄 아시오. 아기를 낳으시고 젖이 없어서 젖을 얻으러 다니신단 말을 누가 모르는 사람이 있는 줄 아시오. 나도 아기를 낳으면 원효스님이 돌아다니면서 젖을 빌어다가 먹여 주시려거든 어디를 가시오. 못 가시리다.”
삼모는 화끈화끈하는 얼굴을 원효의 가슴에 대고 부볐다.
“ 하핫하핫. 원효스님 큰일났소.”
대안은 앞서서 뜰에 내려서서 이렇게 웃었다.
“ 삼모. 우리가 벌써 몇 아승지겁을 같이 살지 않았소.”
원효는 이렇게 삼모에게 말하였다.
“ 언제, 언제?”
삼모는 대들었다.
“ 지금까지. 이 찰나까지 인제는 서로 떠날 때야. 만난 자는 떠나오.”
원효의 이 말에 삼모는 부여잡았던 원효의 소매를 놓고 물러섰다.
삼모의 집을 나서서 밤거리를 걸으며 대안은 원효에게 하는 말이,
“ 어떠시오? 삼모를 보고 마음이 좀 동하셨소?”
원효의 대답,
“ 별로 동하는 줄 몰랐습니다.”
“ 그러면 스님은 아직 삼악도에 들어가기에 멀었소. 하핫하핫. 그렇지만 곁에 내가 없고 젊으신네 단 둘이만 있으면 또 좀 다르지. 아난존자도 누구 하나 데리고 둘이 갔다면 마등가에게 그 봉변은 아니 하였을 거이오. 그러매로 밥 동냥을 다녀도 혼자는 다니지 말라는 거야. 하핫하핫.”
대안은 혼자 떠들고 혼자 웃었다.
길에는 취태와 추태도 많았다. 원효와 대안에게 덤비어들어서 시비를 거는 주정꾼도 있었다. 그러나 대안이,
“ 앗핫핫하, 악핫핫하.”
하고 웃으면 시비를 걸던 자도 멀거니 바라보다가 같이 소리를 내어서 웃고 지나가 버렸다.
끄덩이를 마주 바꾸어 잡고 씨근씨근 싸우는 양도 보고, 술취한 여편네가,
“ 이놈아 죽여라 죽여, 동네방네 다 듣소. 이놈이, 이놈이.”
하고 매무새가 흘러내리는 줄도 모르고 사내에게 머리를 꺼들려서 얻어맞는 꼴도 보았다.
대안이,
“ 아, 큰일났군. 이 부인네 오늘 밤을 못 넘기겠군.”
하는 말에 때리던 사내가 깜짝 놀라서 머리채를 놓았다.
“ 아핫핫하. 잘 살지, 잘 살아. 있다가 죽을 것을 아핫하.”
하고 대안이 웃으니 싸우던 사람들도 잠잠해 버렸다.
“ 띄잉 띄잉 띄잉......”
자정의 열두 소리가 울렸다.
대안은 멈칫 서서 합장한 뒤에,
“ 스님, 어디로 가시려오? 인제는 나와 놀던 귀신들도 제 굴로 돌아갈 때가 되었는데.”
하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였다.
“ 스님은 어디로 가시려오?”
원효는 문수사가 먼 것을 생각하였다.
“ 이 몸이야 아무데서나 눈만 감으면 자지요만 스님은 그러실 수 없지 않소?
오늘은 비도 올 것 같지 아니 하니, 이 몸은 뒷산에라도 올라가서 잘라오.”
하고 대안은 어두운 골목으로 스러지고 말았다.
원효는 대안이 스러진 방향을 이윽히 바라보았으나 아무 소식도 없었다. 오직 서형산의 민틋한 산 모양이 밤빛에 어렴풋이 바라보일 뿐이었다.
원효는 대안이 터덜거리고 인가 없는 곳으로 가서 아마 무덤 틈바구니에 누워 잘 모양을 상상하고 원효 자신에게는 그러한 자유가 없음을 느꼈다.
원효는 혼자서 느릅다리를 향하고 걸었다.
밤중 거리를 혼자 걸으니 불현듯 적적함을 느꼈다. 삼모의 집 광경이 눈앞에 나올 때에 문득 삼모의 아나한 모습이 그리운 듯도 하였다.
“ 어, 술이 취했군.”
원효는 스스로 변명하는 모양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대안의 말과 같이 둘이 있을 때와 혼자 있을 때가 달랐다.
“ 아마 대안대사의 법력인가 보다.”
하고 원효는 픽 웃었다. 대안과 같이 있을 때에는 삼모가 몸에 기대어도 까딱없더니, 어두운 길에 혼자 되니 삼모의 모양이 이상한 힘을 가지고 원효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었다.
“ 응, 내가 취했어. 취했는걸.”
하면서 원효는 정신을 바짝 차리느라고 눈을 크게 뜨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큰별, 잔별들이 대단히 빛을 발하였다.
“ 다리가 허둥허둥하는 걸.”
원효는 아리내에 다다랐다. 냇가에 버드나무들이 거뭇거뭇한 모양을 보였다. 소리없이 흐르는 물에 별 그림자가 비치어 흔들렸다.
원효는 다리를 반이나 건너서 난간에 기대어서 섰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원효는 대안이 잠들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서형산 쪽을 바라보았다. 대안이 덩실덩실 춤을 추던 양을 생각하였다. 그는 전혀 아무 거리끼임이 없는 듯 춤을 추었다. 삼모의 거문고에 맞추어서 아주 익숙하고 수월하게 추었다. 삼모의 거문고 소리가 귀에 쟁쟁하였다. 그 소리는 다리 밑에 부딪치는 물소리와 하나가 되고 말았다.
문득 불빛 하나가 원효의 눈에 띄었다.
“ 요석궁이다.”
원효는 불빛 새는 데로 눈을 달렸다.
원효의 눈에는 요석궁에 혼자 잠 못 이루고 앉아있는 요석공주가 보이는 듯하였다. 또 승만여왕을 모시고 있는 아유다로도 보였다.
“ 어, 내가 취했군.”
하고 원효는 또 한번 고개를 흔들고는 난간에서 떠나서 걸었다.
걸음을 걸으나 몸은 허공에 뜬 것 같아서 정신이 진정되지를 아니 하였다. 마치 어디로 갈 바를 모르는 혼과 같았다.
이때 뒤에서 누가,
“ 거 누구?”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 사문 원효.”
원효는 돌아서며 힘있게 대답하였다.
“ 원효사마시오?”
하고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는 것은 어떤 관인이었다.
원효는 의아하면서,
“ 누구시오?”
하고 관인을 향하여 물었다. 관인은 공손히 이렇게 말하였다.
“ 이 몸은 요석궁 대사 瑤石宮大舍옵거니와 칙명 받자와 여기 대령하였소. 초저녁에 대사사마 느릅다리 건너셨다는 말씀 들으시옵고 상감마마 분부하시기를 이 몸네 이곳에 대령하였다가 대사사마 회로에 요석궁으로 모시라 하시옵시오. 이 몸네 이경부터 다릿목에서 넌지시 기다리옵더니 대사사마 이리 오심 뵈옵고도 누구신지 확실히 몰라서 대사사마 하시는 양 뵈옵고 있었소. 여기 타실 것 등대하였으니 오르시오.”
말이 떨어지자 거시(두 사람이 마주 들어 타는 것)가 원효의 앞에 놓였다.
“ 어 부질없는 말이오.”
하고 원효는 짐짓 더욱 취태를 보이며,
“ 말이 안 되는 것이, 상감마마께오서 군국만기를 살피시기에도 바쁘셔서 소의한식을 하시거든 이 몸 같은 주정뱅이 사문을 무슨 일이 있어 부르신단 말요. 또 설사 부르실 일이 있기로니 아닌밤중에 길목을 지켜서 부르실 리가 있소. 괜시리 술 취한 사람을 기롱 마오.”
하고 돌아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걸음을 옮기며,
“ 어, 금년에 또 병란이 있을 모양이로군. 심성心星이 유난히 붉은데다가 또 화성이 심성에 가까웁다. 어 취하는군.”
하고 헛트림을 하며 비틀비틀 걸었다.
관인은 재빨리 걸어와서 원효의 앞을 가로막으며,
“ 대사사마, 못 가십니다.”
하고 합장하였다.
“ 어이하니 못 간단 말요. 우리 임금님의 길을 내 발로 걸어가는데 막기는 누가 막는단 말요?”
원효는 이렇게 뽐내었다.
“ 어서 이리 오르시오.”
하고 관인은 또 거시를 원효의 앞에 옮겨놓았다.
“ 어, 아니 탄다니까? 성한 내 발로 마음대로 걷지 아니 하고 타기는 왜 탄단 말요. 어서 이녁네는 이녁네 갈 길을 가시오. 산승은 산승이 갈 길을 가겠소.”
“ 못 가시오. 위로서 분부 지엄하시어 아무리 하여서라도 원효사마를 오늘 밤 요석궁으로 모시라 하셨소. 사정을 말씀하오면 오늘 아침 한불손 유신공께서 대사사마를 찾아 문수사에 가셨다가 대사사마께서 대안대사사마를 찾아 행차하셨다 하므로 남산을 두루 찾았으나 못 찾사옵고 해진 뒤에야 대사사마께오서 대안사마와 두 분이 이 다리 건너셨다는 줄 아시고 이 몸 무리 여기서 지키고 있었으니 아무리 하여서라도 모셔 가겠소. 만일 대사사마 놓쳐 보내오면 이 몸네 목이 내일 이맘때까지 붙어 있을까싶지 아니 하오.”
“ 아무리 하여서라도 나를 데려간다?”
“ 그러하오, 아무리 하여서라도.”
“ 목이 붙어 있기가 어렵다?”
“ 그러하오, 이 목이.”
하고 관인은 손으로 목을 가리키며 웃는 양하여 이가 희끗 드러났다.
원효는 크게 소리를 내어 웃으며,
“ 하핫하핫. 그 목이 떨어지는 양이 우스울 거야. 내일 어느 시각에 떨어지는지 시각을 좀 알려주오. 나 구경 좀 하게.”
“ 큰일날 말씀 마시오. 이 모가지가 이래보여도 어떻게나 소중한 모가진데 그러시오. 소중하신 요석공주를 모시고 요석궁을 지키는 모가지오.”
관인은 또 한번 목덜미를 만졌다.
원효는 손을 내밀어,
“ 어디 그 소중한 모가지 좀 만져 봅시다. 잘 떨어지겠나, 아니 떨어지겠나.”
하고 목을 꼭 누른다.
관인은 “ 아이고.” 하고 펄썩 주저앉는다.
원효는 장사였다.
“ 그 어디 모가지 떨어질 새 있소?”
하고 원효는 관인을 다시 목을 들어 일으키면서,
“ 그 기운 가지고 어디 나를 붙들어 가겠소? 어디 나하고 기운 내기 해보아서 내가 지면 붙들려 가고 내가 이기면 안 붙들려 간다고. 자 다들 덤비어.”
하고 원효는 빈주먹으로 버티고 섰다. 원효대사가 화랑시절에 나을신궁에서 칼재주를 겨루어 장원을 하였다는 것을 아는 이는 안다.
관인과 부하 육칠 인은 물론 칼과 창을 가지고 있었다.
“ 빈주먹으로 말씀요? 장기로 말씀요?”
그중에 건장한 군사 하나가 나섰다.
그도 원효의 행사가 괘씸도 하거니와 또 심심풀이도 되리라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 무엇으로나. 하나씩 하나씩도 좋고 여럿이 한목 덤비어도 좋고,
출가한 사람이라 살생은 아니할 터이니 그걸랑 염려 말고.”
원효는 선선하게 이렇게 말하였다. 실상 원효는 웬일인지 모르게 유쾌하였다.
건장한 군사가 썩 나서며,
“ 대사사마는 칼이 없으시니 우리가 피를 흘릴 염려는 없소마는 대사사마를 상하여서 피가 나게 하면 이 몸네 목 달아나고 또 법사 피 낸 죄로 혼까지 지옥에 가게 되니 그것이 걱정이오.”
하였다.
“ 응. 그도 그럴듯한 걱정이오마는.”
하고 원효는 가사 장삼을 벗어 난간에 걸고 나서,
“ 자 이만하면 염려 없소. 청루에 가서 계집 끼고 술 고기 막 먹고 취해서 오는 파계승 하나 죽였다고 지옥 갈 리 없고, 도리어 파계승 죽인 공덕으로 왕생극락할는지 모르지,
하하핫하.”
하고 웃었다.
“ 그렇거든 어디.”
하고 육칠 명이 일제히 칼과 창을 가지고 원효에게 덤비어 들었다.
군사들은 처음에 농담삼아서 재주를 아꼈으나, 원효가 슬쩍슬쩍 걸음을 걷는 듯 춤을 추는 듯 칼과 창을 피하는 것을 보고는 차차 있는 힘을 다하여서 원효를 엄습하였다.
그러나 다들 허공만 찔렀다.
“ 어, 이 재주 가지고야 어디 백제 고구려를 치겠나. 요석궁에서 거미줄이나 치기 알맞군.”
하고 원효는 슬쩍슬쩍 몸을 비키면서 군사들을 기롱하였다.
군사들의 두목인 관인 대사는 일어 어떻게 되나 하고 옆에서 보고만 있었다.
그러면서도 어찌 하면 원효를 요석궁으로 끌어갈까 하고 그 계교만 생각하고 있었다.
군사들은 여러 합 싸움에 숨이 차고 땀이 비오듯하였다.
원효는 그중 한 군사의 목덜미를 집어서 홱 냇물로 던졌다. 연달아 셋을 던졌다.
나머지 셋은 칼을 던지고 땅에 엎드렸다.
원효는 개천에 빠져서 절벅거리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웃었다.
이 기회를 타서 대사는 원효의 몸에 올가미를 씌웠다.
“ 원효사마, 용서하시오. 아무리 하여서라도 대사사마를 모셔가지 못하면 이 몸들의 목이 달아나오.”
하고 애원하였다.
땅에 엎드렸던 군사들도 일제히 원효에게 대어들어서 원효를 묶어서 거시에 태우려 하였다.
세 사람이 몸에 붙은 기회를 기다려서 원효는 “ 응” 하고 외마디 힘을 쓰니 결박된 줄이 끊어졌다.
그러자 관인들이 “ 아차”하는 동안에 원효는 대사 하나만을 남겨놓고 다른 군사를 다 물에 집어넣고 나중에 자신도 물에 뛰어들었다.
“ 어 시원해, 어 시원해.”
원효는 이렇게 소리를 하면서 먼저 빠진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물을 끼얹었다.
군사들도 유쾌해져서 물싸움을 시작하였다. 혼자 애가 타는 것은 대사였다.
도저히 힘으로 원효를 요석궁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 꾀를 생각하여 내었다.
관인도 원효의 뒤를 따라서 물에 뛰어들어 원효와 물싸움을 하는 척 하며 원효의 옷을 잡아 찢었다.
원효는 흥에 겨워서 옷이 찢기는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두 번, 세 번 대사는 원효의 옷을 잡아 찢었다.
원효는 등과 볼기짝이 다 나오도록 옷이 가리가리 찢겼다.
이리하여서 원효를 요석궁으로 끌어들이기에 성공하였다.
“ 옷이나 갈아입고 가셔야지.”
대사는 이렇게 말하고 웃었다.
요석궁에 끌려들어간 원효는 목욕하는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백제 푸른 돌 욕분浴盆에는 더운 물이 철철 넘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은 나산 흰 옥돌로 깔았다.
원효는 욕분에 몸을 담그고 기분이 상쾌하여 졸고 있을 때 새벽 종소리가 들렸다.
한 소리, 두 소리. 원효는 스물네 소리를 세었다. 네 소리는 조느라고 못 들은 것이었다.
원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술도 다 깨었다.
지난밤 하룻밤일이 수천 겁이나 오랜 동안 같았다.
삼모의 집 일, 느릅다리에서 일어난 일, 모두 다 한바탕 장난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올 일을 생각하면 그 역시 한바탕 장난일 것이었다.
“환몽幻夢이다, 환몽이다.”
계집종 둘이 들어와서 원효의 등을 밀고 팔다리를 씻는다. 원효는 죽은 사람 모양으로 종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 또한 장난이다.”
하고 원효는 빙그레 웃었다. 목욕을 마치고 새옷을 갈아입었다.
신라의 자랑인 삼십승포였다. 이것은 왕족이 아니면 못 입는 것이었다.
이 옷이 오늘을 위하여 요석공주가 손수 지은 것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원효는 시녀가 이끄는 대로 여러 복도를 지나서 한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는 쌍학을 수놓은 이불과 쌍봉, 쌍란, 쌍원앙을 수놓은 긴 베개가 있고 요석공주가 혼자 촛불 밑에 앉아 있었다.
원효는 방에 들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공주는 원효를 보고 일어나서 읍하고 선다. 백작약 일곱 송이를 꽃병에 꽂아 놓은 것으로 보아서 원효는 이 뜻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공주는 자기를 구리선녀로 자처하고 원효를 선혜선인으로 비겨서 세세생생에 부부 되기를 청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촛불이 춤을 추고 창 밖으로는 벌레 소리가 울려 왔다.
이윽고 공주가 고개를 들어,
“ 앉으시오. 오늘은 법사로 여쭌 것이 아니오. 백의로 오시게 한 것입니다. 이 몸의 십 년 소원을 이뤄 주시오.”
하고 눈물을 떨어뜨렸다. 아무리 십 년 동안 먹은 마음이라 하더라도 입을 열어 말하기가 힘들기도 하려니와 또 무섭기도 하였다.
원효는 제 몸에 입은 옷이 중의 옷이 아니요, 속인의 옷인 것을 다시금 보고 공주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공주도 목 꺽어 한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공주는 다로에 끓는 다부茶釜에서 대국으로 물을 떠서 차를 만들어 원효에게 권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 새벽 쇠북 스물여덟 소리가 다 끝나도록 원효사마께서 아니 오시면 이 칼로 이 몸의 목숨을 끊기로 마음먹고 있었소.”
공주는 금장식한 몸칼을 몸에서 꺼낸다. 고구려 도장刀匠이 만든 칼이다(이때 상류계급에서는 남녀간에 몸칼을 지니고 있었다. 공주의 언니 고조다가 남편 품석의 뒤를 따라 죽은 것도 이 몸칼로였다.)
원효는 말이 없었다.
“ 승만마마께오서 살아 계실 때 이 몸을 보시고 원효사마 못 잊어 사모하시는 말씀을 하실 때는 이 몸은 질투로 몸이 떨렸소. 만일 원효사마가 승만마마의 뜻을 들으시기만 하면 이 몸은 칼이나 독약으로 두 분의 목숨을 끊으리라 하였소. 그러다가 승만마마 승하하심을 보고 이 몸은 겉으로는 울고 속으로는 기뻐하였소.”
원효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하고 말없이 공주의 말을 들을 뿐이었다.
공주는 띄엄띄엄 말을 계속하였다.
“ 이 몸은 옥야경玉野經을 읽어서 이 마음을 죽이려 하였으나 원효사마 생각하는 원 이루지 못하고는 아무리 하여도 성불할 것같지 아니 하였소.”
공주의 눈은 번쩍번쩍 빛을 발하였다. 공주는 또 말한다.
“ 이 몸이 지난 오월에 모란꽃과 베옷을 분황사로 보낼 때에야 얼마나 마음이 간절하였겟소. 만일 이 뜻 못 이루면 마지막 모란꽃을 원효사마께 보내고 죽어 버리려 하였소. 여기 이 꽃병에 일곱 송이 꽃을 꽂기가 몇 번이던가.”
공주는 소매를 들어서 눈물을 씻는다.
“ 그러나 아바마마께오서 어떻게 하여서라도 이 몸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 하시니 백작약이 피도록 살아 있었소. 저 이불과 베개에 저렇게 수를 놓으면서- 한 실밥 한 실밥에 원효사마를 생각하면서.”
공주의 숨소리가 높아 간다.
“ 이 몸도 원효사마 평생 한 베개 위에 모시리라고는 생각하지 아니 하오. 원효사마는 천하의 대법사, 이 몸 혼자 차지할 어른이 아닌 줄 잘 아오. 그러나 아마 여러 백천만생의 인연인 양 하여 잊을 수도 참을 수도 없는 이 원이오. 이것도 탐욕이오? 이것도 우치요? 이것도 악업이오? 악업이라도 그만이요, 무간지옥업이라도 좋으니 이 원을 이루어 주시오.
단 하루만이라도. 뜰에 저 벌레 소리 그치는 동안 저 촛불이 다 닳을 동안이라도.”
공주는 제 두 손을 비틀었다.
그래도 원효는 말이 없었다.
“ 원효사마는 이 몸을 음탕한 계집이라고 생각하시오? 나라를 위하여서 그 명복을 빌고 정절을 지킬 몸이 다른 남자에게 뜻을 두는 것을 음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책망하신다면 그 책망도 달게 받사오리다. 그러나 거진 부자가 동시에 전몰하고 그 집을 이어서 분묘를 지킬 자손이 없고, 이 몸도 죽으면 무주고혼이 되오. 다행히 갸륵하신 이의 씨를 받는다면, 거진의 집 분묘에도 향화가 아니 끊어지고 나라에도 큰사람 한 분을 길러 바칠 것 같소. 원효사마 이 가슴이.”
하고 공주는 손을 들어 제 가슴에 대며,
“ 이 가슴의 젖이 반드시 우리나라에 큰일 할 사람을 먹일 것 같소.”
하고 말을 끊고 잠깐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맑은 눈으로 엄연하게 원효를 바라보며,
“ 원효사마. 이 몸이 비록 불민하나 사마를 따라 세세생생에 닦느라면 사마께서 성불하실 최후생最後生에 이 몸도 야수다라耶輸陀羅가 되어 사마의 입으로서 일체중생 희견여래一切衆生 喜見如來의 기記를 받자오리다.”
하고 공주는 말을 끊었다.
이로부터 사흘 후였다.
새벽에 원효가 잠을 깨었을 때에는 벌써 옆에 요석공주는 없었다. 베게 위 공주의 머리 자국에서 그윽한 향기가 날 뿐이었다.
원효가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공주가 관음경을 외우는 소리가 들렸다.
“ 약유인 설욕구남 예배공양 관세음보살 갱생복덕 지혜지남 설욕구녀 갱생단정 유상지녀 숙식덕본 중인애경 무진의 관세음보살 유여시력 약유중생 공경예배 관세음보살 복불당연 시고중생 개응수배 관세음보살명호 若有人 設慾求男 禮拜供養 觀世音菩薩 更生福德 智慧之男 設慾求女 更生端正 有相之女 宿植德本 衆人愛敬 無盡意 觀世音菩薩 有如是力 若有衆生 恭敬禮拜 觀世音菩薩 福不唐捐 是故衆生 皆應受拜 觀世音菩薩名號(만일 어떤 여인이 아들을 낳기 위하여 관세음보살 께 예배공양하면 문득 복덕과 지혜를 갖춘 훌륭한 아들을 낳을 것이며, 만일 딸 낳기를 원하면 단정하고 용모를 갖춘 딸을 낳을 거신데, 덕을 심었으므로 뭇사람이 사랑하고 공경할것이니 무진의야, 관세음보살은 이와 같이 힘이 있느니라. 또 어떤 중생이 관세음보살을 공경하고 예배하면 그 복은 헛되지 않을 것이니 그러므로 중생은 모름지기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받아 지닐지니라.)”
여기까지 들리고는 소리가 끊어졌다. 필시 공주가 내불당內佛堂에서 관음공양을 하는 모양이었다.
원효가 공주와 자리를 같이한 것은 사흘이었다. 그러나 그 동안에 원효는 공주의 위인을 잘 알 수가 있었다.
공주는 새벽이면 원효보다 먼저 일어나서 관음공양을 잡숫고는 원효가 먹을 것을 손수 만들었다. 일체 육붙이을 쓰지 아니 하고 정갈한 소찬을 만들었다. 비록 잠자리는 같이 하더라도 공주가 원효를 대하는 것은 법사에게 대한 예였다. 원효가 농담을 하더라도 공주는 엄숙하게 대답하였다.
첫날 아침에 원효가 늦잠을 잘 때에는 공주는 뜰에 서서 나뭇가지에 와서 우는 새를 쫓고 있었다. 새 소리에 원효가 잠을 깰까 두려워함이었다.
그가 특히 관음경을 외우는 까닭이 아들을 구하는 것임을 원효는 묻지 아니 하여도 알았다. 원효도 공주가 덕 있는 아들을 낳기를 바랐다.
공주는 원효에게 대하여 소중히 여기고도 두려워하는 태도였다. 원효에게 무슨 말을 할 때에는 반드시 앉음을 고쳐 왼편 무릎을 세우고 그 귀에 손을 얹었다.
원효가 청하면 가얏고도 타고 노래도 불렀다. 그러나 그것이 끝나면 원효의 앞에서 물러나가서 원효가 찾기를 기다렸다.
공주는 자기 말과 같이 옥야경, 승만경, 금광명경 金光明經으로 몸과 마음을 닦았다. 원효를 남편으로 모시더라도 책잡힘이 없고자, 부족함이 없고자, 법도에 어그러짐이 없고자 십 년 수행을 한 것이다.
원효가 이것을 몰라볼 리가 없었다.
“ 나는 여자의 사랑이란 것이 무엇인 줄을 처음 알았소.”
원효는 공주를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그처럼 원효는 공주를 경복하였다.
“ 이 몸으로 해서 파계를 하신 것을 후회하시지 아니 하시오? ”
첫날 공주는 원효에게 이렇게 물었다. 원효는 웃으며,
“ 한 권 경을 읽겠소.”
하였다.
원효가 후회 아니 하는 것이 너무도 기뻐서 공주는 눈물을 흘렸다.
둘째 날 아침에 공주는,
“ 이틀 동안 지내신 것이 어떠하시오?”
하고 또 물었다. 원효는 또 웃으며,
“ 이만하면 이대로 일겁은 살고 싶소.”
하였다. 옛날 세존께서 아난을 데리시고 고개를 넘으시다가, 고개 위에 아난이 깔아 드리는 옷을 깔고 앉으시와 베나레스의 경치를 바라보시고,
“ 이만하면 일겁은 여기서 살고 싶다.”
하신 것을 비긴 것이었다.
“ 일겁만 사시고 싶다 하시니 설워라. 이 몸은 원효사마 모시고 이대로 무량아승지겁이라도 살고 싶소.”
공주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 그러나 이것이 다 실상 없는 몽환夢幻인 것을.”
“ 몽환이라도 아름다운 몽환, 즐거운 몽환이 아니오.”
“ 우레와 같고 번개와 같고 물거품과 같이 금방 있다 사라질 몽환인 것을.”
“ 번개같이 사라질 몽환이면 사라지기 전에 즐깁시다. 몽환이 나마 난 즐거운 것을. 이끼 쓴 기왓장에서도 빛이 나고 벌레 소리도 개구리 소리도 즐거운 것을. 저 보아요, 보기 흉한 두꺼비도 배암도 다 아름답고 귀엽게 보이는 것을. 제행무상이란 말도 다 거짓말인 것 같소. 원효사마 모신 이 기쁨이 사라질 리 있으리. 임 사모하는, 이 금빛 나는 사랑이 가실 리가 있으리. 원효사마 그렇다 하시오. 무상이 아니요, 상이라 하시오.”
“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는 일을 무슨 힘으로 막소. 깰 꿈을 아니 깰 수는 있나.”
“ 안 되오, 안 되오. 이 몸이 원효사마를 포로로 잡아오듯이 인연의 흐름을, 생사의 바다를 이 몸의 사랑으로 막아서 못 흐르게 하리다.”
하고 공주는 느껴 울었다.
공주는 원효와의 인연이 길지 못한 인연인 줄을 잘 안다. 원효는 자기의 품에서 늙을 사람이 아닌 줄도 안다. 공주는 잠이 들었다가도 소스라쳐 놀라서 잠을 깨어서는 옆에 누운 원효를 찾아본다. 그렇게 미덥고 힘있는 의지인 원효, 옆에 원효의 몸이 있는 것을 알고는 비로소 안심한다.
“ 아직 내 곁에 계시다.”
공주는 이렇게 한숨을 쉰다. 공주가 잠들어 있는 동안 원효가 사라질 것만 같았다.
“ 이 밤이 새기까지만, 이 초가 닳기까지만.”
이라고 한 것을 공주는 후회한다.
그런데 조만간 보내어야 할 원효였다. 가는 원효를 붙잡을 수 없는 공주였다.
“ 아들 하나만 점지받았으면.”
이래서 공주는 더욱 아들을 원하였다.
뱃속에 아기를 배고 있는 동안 낳아서 기르는 동안, 원효를 닮은 아들 하나만 있으면 원효를 떠나서도 살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아들을 썩 잘 길러서 큰사람이 되거든 원효의 기쁨을 받을 것도 같았다.
이래서 공주는 새벽이면 일어나서 찬물에 목욕하고 내불당에 들어 지성으로 관음공양을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공주의 정경을 생각하매 원효의 닦은 마음에도 은애恩愛의 실뿌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 이만하면 일겁은 살고 싶다.”
한 제 말을 생각할 때 원효는 눈에 보이지 아니 하는 은애의 실이 시시각각으로 겹겹이 몸에 감기고 있음을 느꼈다. 이것이 하루 이틀 덧감기고 덧감기면, 이 몸이 움직일 수 없이 그 은애의 줄이 끄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 물도 안 묻고 불도 안 붙는 법사의 몸이 아니시오?”
하던 삼모의 말을 원효는 기억한다. 그러나 원효는 제 몸이 은애의 물에 젖고 불에 붙는 것 같았다. 제 몸은 아직 육도를 둘 돌아도 먼지 하나 묻지 않는 그러한 보살의 몸은 아니었다. 공주의 몸의 부드러움과 향기를 무심히 볼 힘이 없었다.
고기를 씹되 나무껍질과 다름이 없고 미인을 껴안아도 시체와 다름이 없을 평등의 경계에 도달치 못한 것 같았다.
공주의 관음경 외는 소리는 솔밭에 부는 바람 소리가 아니다. 정열로 끓는 가슴에서 북받쳐 오르는 소리다.
“ 염념물생의 관세음정성이 어고뇌사액 능위작의의 구일체공덕 자안시중생 복취해무량 시고응정례 念念勿生疑 觀世音淨聖이 於苦惱死厄 能爲作依호 具一切功德 慈眼視衆生 福聚海無量 是故應頂禮(생각 생각 의심치 말라. 관세음 거룩한 성자가 온갖 고뇌의 죽을 액 가운데서 능히 의지가 되리라. 온갖 공덕 모두 갖추어 자비의 눈으로 중생을 보면 복덕이 바다처럼 한량없거니 마땅히 애경하고 존중하여라.)”
공주의 소리는 낭랑하였다. 낭랑하면서도 애원성이었다. 해탈한 소리는 아니요, 생사에 집착한 소리였다. ‘ 시고응정례’ 가 수없이 반복되는 것은 공주가 수없이 절을 함이었다. 아마 원효가 병 없이 오래 살기를 빌면서, 좋은 아들이 점지되기를 빌면서.
원효는 이 날 요석궁을 떠날 것을 생각했기 때문에 공주의 음성이 더욱 가여웠다.
아침을 먹고 나서 원효는 공주가 달여 주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화병에 꽂힌 작약이 두어 이파리 떨어졌다.
원효는 빙그레 웃었다.
공주는 떨어진 작약잎을 들어서 아까운 듯이 붙었던 자리에 붙여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한번 떨어진 자리에 도로 붙으려 하지 아니 하고 다시 떨어졌다.
공주는 눈을 들어서 원효를 보았다.
“ 나는 오늘 떠나겠소.”
원효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 일겁은 계신다더니.”
공주는 한숨을 쉬었다.
“ 벌써 몇 겁이 지났소.”
“ 일겁만 더 늘일 수는 없으시오?”
공주는 약간 낯을 붉혔다.
“ 떨어진 꽃잎과 같지.”
원효도 고개를 숙였다. 원효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는 괴로움 愛別離苦이란 것을 처음 맛보는 것 같았다.
“ 이제 가시면 언제 오시오?”
공주의 눈은 젖었다. 공주도 제가 이러하리라고는 생각지 아니 하였다.
“ 운수종적雲水踪迹을 기약할 수가 있소? 그러나 세세생생의 맹약은 잊지 아니 하리다.”
원효는 이렇게 말하였다.
“ 금생에는 이것이 마지막이오리까. 이 몸 가지고는 다시 뵈옵지 못하오리까.”
공주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 그럴 것도 없으나 생사지연生死之緣을 구태여 더 늘릴 것도 없다고 생각하오. 공주는 잘 오관五觀을 닦으시오. 어머니로 아기를 기르는 것이 오관을 닦는 길이오.”
원효는 이렇게 말할 때에 문득 자기가 번뇌를 벗고 다시 법사의 자리에 오름을 느꼈다.
공주는 원효의 말에 눈물을 씻고 앉음 자세를 고치고서,
“ 이 몸이 어미는 되오리까.”
하고 물었다.
원효는 지필을 당기어,
“ 염념물생의念念勿生疑(생각생각 의심치 마라).”
하는 관음경[法華普門品]계의 구를 썼다.
“ 고마우셔라.”
공주는 원효가 쓴 종이를 머리 위에 받들었다.
“ 이 몸이 관세음보살님 은혜로 어미만 되오면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아기를 기르오리다. 심중에 원효사마를 항상 그리옵고 그 아기가 원효사마와 같이 되도록 정성을 다하오리이다. 그러나 이 몸의 정성이 그만하올지.......”
하고 공주는 눈앞에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하신 상호相好를 그리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공주가 그린 관세음보살의 모양이 원효와 하나가 되었다.
원효는 이미 자기를 품에 안던 육신 가진 남자가 아니요,
청정법신 淸淨法身인 듯하였다.
공주는 이러한 어른을 남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무한히 고마웠다.
모두 관세음보살님의 덕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감사와 사랑으로 빛나는 공주의 눈에는 인간에서 보기 어려운 빛이 었었다.
원효는 그 눈에서 또 새로운 경 한 권을 읽었다.
원효는 이렇게 공주에게 말하였다.
“ 정성으로 보면 자녀를 구하는 어머니 정성보다 더 큰 정성이 어디 있겠소. 아까 새벽에 관음경 외우시던 정성을 그냥 가지고 계시면 반드시 소원대로 되오리다.”
“ 고마우셔라. 이 가슴에 그 아기를 안고 이 젖을 먹이는 날이면 얼마나 기쁠까. 이 소원을 성취하면 더 원할 것은 없을 것 같소. 정말 그런 날이 올까. 아니, 이 몸은 믿사오리다. 염념물생의念念勿生疑 - 의심을 아니 하오리다. 황송해라, 부처님 말씀을 의심하다니.”
공주의 얼굴에는 고마운 빛에 환희의 빛이 보였다.
“ 공주는 이 몸보다 덕이 높으시니 반드시 이 몸보다 나은 아들을 낳으리시리다.”
“ 황송하여라.”
“ 공주가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이시는 모양은 지금보다 더욱 아름답고 거룩하시리라고 생각하오.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에는 짐승도 자비의 빛을 발하는 것이니, 관세음보살의 자비행을 닦으신 공주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시는 양은 사바세계에서 볼 수 없는 자비상慈悲相일 것을 믿소. 관음상에도 아기 안으신 관음상이 있거니와 중생계의 자비상은 어머니에게 나타나는 것이오. 어머니의 자비심, 이 몸을 낳으신 어머니는 산길에서 이 몸을 낳으시고 이 몸을 싸시느라고 당신의 옷을 벗어서 그 빌미로 돌아가셨다 하오. 이 몸을 살리시느라고 당신 몸을 버린 것이오. 저를 버리는 마음 - 이것이 어머니의 마음이니 이것을 자비라 이르는 것이오. 기뻐하는 자식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이 자慈, 괴로워하는 자식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이 비悲, 외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중에 가장 간절하므로 최애일자지最愛一子地라고 하거니와 삼계중생을 모두 최애일자지로 골고루 자하고 비하는 것을 부처님네의 대자대비라 일컬었소. 공주는 지금 복중에 최애일자지를 닦으시오. 터럭끝만한 잡념, 악심이 들어올 틈이 없도록 끊임없는 염불로 마음을 막으시오. 이것이 공주의 보살행인가 하오.”
원효가 말을 그치자 공주는 일어나서 오체투지로 원효에게 절을 하였다. 원효는 앉은 대로 공주의 절을 받았다. 공주가 법사에게 드린 절의 공덕을 감손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공주는 세 번 절하고 앉으며 품에서 몸칼을 내어 서릿발 같은 칼날을 빼어 들고,
“ 이 칼로 이 몸의 심중에 일어나는 모든 잡념과 악심을 베이오리다. 복중에 든 아기를 보리 菩提와 함께 오매에 지키오리다.”
하고 맹세하였다.
이렇게 하고 나니 공주는 이별의 단장하는 슬픔이 사라지고 비길 데 없는 환희심을 발하였다.
원효는 길 떠날 준비를 하였다. 그것은 삼 일 동안 입었던 화려한 옷을 벗고 아리내에 빠져서 적신 옷을 다시 갈아입는 것이다. 그 옷은 공주가 손수 깨끗이 빨아서 정하게 말려서 손질한 것이었다.
원효가 가사, 장삼을 다 입은 뒤에 공주는 새로 차와 다식을 원효에게 받들었다. 송화다식, 깨다식, 인삼정과, 귤병 등이었다.
다로에 물 끓는 소리가 방의 고요함을 깨뜨렸다.
화병의 작약이 또 흩어졌다. 만나자 떠나는 시각이 가까움을 말하는 것 같았다.
동산에서 꾀꼬리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풀향기를 실어왔다.
공주는 원효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어먹은 마음이 흔들릴 듯 금세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이 정성을 깨뜨리는 잡념, 악심인 것 같아서 공주는 몸칼을 생각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공주는 원효에게 무엇을 주고 싶었으나 원효는 아무것도 받을 것 같지 아니 하였다. 재물을 받을 리도 없고 옷을 받을 리도 없을 것 같았다.
“ 차나 한잔 더, 이 다식 하나 더.”
이렇게나 권할 수밖에 없었다. 주고는 싶으면서 주지 못하는 마음도 괴로웠다.
원효도 차리기는 다 차리고도 곧 일어서기가 어려웠다.
원효는 공주가 권하는 대로 몇 잔이고 차를 받아먹고, 몇 점이고 다식을 받아먹었다.
그러나 떠날 길은 언제나 떠나야만 한다. 원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주도 따라서 일어났다. 원효가 신을 신고 디딤돌을 내려 설때 공주는 울음이 터지려 하였으나, 십 년 전 남편 거진을 전쟁에 보낼 때를 생각하여 힘써 억제하였다.
원효도 전쟁에 나가는 것이 아니냐. 법계 중생계를 통한 대전쟁의 길을 떠나는 것이다.
요만한 은애의 줄로 대장부를 속박하여서는 아니되는 것이라 하였다.
공주는 중문까지 나와서 합장하여 원효를 보내었다.
원효는 좌우도 돌아보지 아니 하고 대문을 향하고 뚜벅뚜벅 걸었다.
이때 원효를 붙들어 왔던 대사가 내달아, 원효의 길을 막았다.
“ 원효사마, 어디를 가시오?”
“ 산으로 가오.”
“ 왜 그 좋은 연분에 백년해로를 아니 하시고 이렇게 총총히 떠나시오?”
“ 공주께서 그만 가라고 하여서 가오.”
“ 이 몸을 기롱하시오? 공주마마 정경을 이 앞으로 어떻게나 뵈오라고 가시오. 이제 가시면 언제나 원효사마를 뵈올지.”
“ 요석궁대사 지옥 가는 날 만납시다.”
“ 무서운 말씀도 하시오. 이 몸이 왜 지옥에를 가오?”
“ 도 닦는 중 유인하여 파계시켰으니, 이녁이 지옥에 아니 가면 누가 가겠소. 파계한 중과 파계시킨 대사와 지옥길에 만나서 삼도천 三塗川에서 또 한번 물싸움이나 합시다. 그때까지 잘 있으오.”
하고 원효는 다시 걷기를 시작한다.
대사는 뒷걸음을 쳐서 원효를 막으면서 정색하고,
“ 지금까지 한 말씀은 다 실없음이나, 이 몸이 원효사마께 간청 할 일이 있소.”
하고 애원하는 듯이 합장하였다.
“ 무슨 간청이오? 벼슬자리 오르기가 원이거든 나라에 여쭐 것이오. 술이나 고기가 원이거든 공주마마께 아뢸 것이지 이 몸에게 무슨 간청이오?”
원효는 껄걸 웃었다.
“ 이 몸을 그런 사람으로만 아시오? 그러한 청 같으면야 하필 원효사마께 하오리까. 이 몸의 청은 그러한 청이 아니라 원효사마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청이오.”
“ 원효의 제자? 파계승에게서 무엇을 배운단 말이오. 주색의 길에는 아마 이녁이 스승이 되겠거든, 하핫하핫.”
“ 그런 것이 아니오. 지난날 밤에 뵈오니 원효사마 검술이 비범하시오. 그때 혼자서 빈손으로 칼 든 사람 일곱을 당하시되 그 일곱을 마치 어린애 다루듯 하시니, 이 몸도 칼을 배우기 수십 년이 되오나 아직 그런 재주를 못 보았소. 상감마마께오서 공주를 소중히 여기셔서 요석궁을 지키는 사인과 군사들은 다 무예에 능한 사람을 골라 두셨소. 이 몸도 백인지상은 된다고 남들이 허하는 터에, 그날 밤 이 몸의 부하 일곱 명이 원효사마께 그 꼴을 당하니 면목없어 이 자리에 있을 수가 없소. 나라 녹을 먹고 제 구실을 못하면 그것이 죄가 아니오리까. 그러하오니 이 몸에게 한번 무예를 가르쳐 주시오.”
대사의 말은 심히 간절하였다. 원효는 물끄러미 대사를 바라보고 섰더니,
“ 어디 칼을 한번 써 보시오.”
하고 대사의 허리에 찬 칼을 본다. 대사가 칼을 빼어 든다.
이 동안 접때에 느릅다리에 있던 군사들도 모여온다.
원효는 대사의 앞에 선 채로,
“ 어디 그 칼로 이 몸을 엄습해 보시오.”
하고 대사를 본다. 노려보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유화한 눈이나 대사는 그 눈을 보매 칼 든 손이 한번 떨린다.
‘ 이상한 눈이다.’
대사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러나 제 재주에 큰 자신을 가지면서, 칼로 원효의 정면을 범한다.
원효는 두 손을 옆구리에 늘인 채로 걸음 걷듯, 춤추듯 슬쩍슬쩍 대사의 칼을 피한다. 이리하기를 서너 합 하더니,
“ 어지간히 칼 쓰는 법을 아시오.”
하고 원효가 우뚝 선다. 대사도 선다.
“ 칼 쓰는 법을 안다고 하시나 맨손으로 막으시는 원효사마를 못 당하니 이 재주를 가지고 무엇하겠소?”
“ 이녁만 못한 사람과 싸우면 이기지 않소?”
원효의 이 말에 대사를 제하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웃는다.
대사는 땅바닥에 꿇어엎디었다. 대사가 느릅다리에서 원효에게 덤비지 아니 한 것은 부하들 손에 혹시나 창피를 당할까 두려워 그러한 것이었으나 두고두고 원효와 한번 겨루어 보기를 벼른 것이었다. 설마 빈손을 든 원효야, 하였던 것이 지금 시험한 결과로 보아 제 재주가 어림없음을 느낀 것이었다. 제일 못 당할것이 원효의 눈이었다. 그 눈을 보면 대사의 칼이 힘을 잃는 것 같았다.
“ 살려 줍소서.”
대사는 이마를 땅바닥에 대고 이렇게 말하였다.
“ 염려 마오. 그것은 예사요. 이녁이 이 몸을 시기하여서 한번 이 몸에 피를 내어 보리라 하는 것도 인정에 예사지만 이후에는 그런 마음 버리고 충의 忠義의 사람이 되시오.”
원효는 대사의 눈에서 대사의 마음을 읽은 것이었다. 마치 제것을 원효에게 빼앗긴 듯한 분노를 느낀 것이었다.
“ 그러면 살려 주십니까.”
대사는 엎드린 채, 고개만을 들어서 원효를 우러러보았다.
“ 출가한 사람은 살생을 싫어하니까.”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 이미 자비심을 발하셔서 이 몸을 살려 주시거든 검술의 비결을 일러 주시오. 비록 일시 불측한 생각을 내었지마는 본심은 충의를 숭상하오. 반드시 옳은 곳에 쓰기를 맹세하오니 칼의 비결을 가르쳐 주시오.”
대사는 간절히 말하였다. 그 얼굴에는 정성이 보였다.
이 말에 대사의 부하들도 상관보다 한 줄 떨어져서 차례차례 꿇어 앉았다.
원효는 잠시 합장하고 섰더니 입을 열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 칼은 마음이라 마음 쓰는 법으로 칼을 쓰면 틀림없소. 사람이 마음을 쓰는 법이 무엇무엇이오?”
“ 임금께 충성하고.”
대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 또 ”
“ 어버이께 효도하고.”
“ 또.”
“ 벗에게 미쁘고.”
“ 또. ”
“ 싸울 때에 물러나지 말고.”
“ 또. ”
“ 죽이되 죽일 자를 죽이는 것이오.”
“ 옳소. 칼 쓰는 비결도 그것이오. 충의를 위하여서 싸우는 자리에 서거든, 죽일 자를 대하거든 물러남이 없어. 이것이 비결이오. 충의, 필살必殺,필사必死. 임금님 위하여 이 놈을 꼭 죽여야 한다, 내 목숨을 안 돌아본다, 이것이오. 적만 죽이고 나는 살겠다 하여서는 적도 못 죽이고 나도 못 살기가 십상팔구요. 내가 죽을 것을 결정할 때에 적은 반드시 죽는 것이오. 이것이 필살필사라는 것이야. 또 필사즉생 必死則生이라는 비결이야.”
일동은 말이 없었다.
“ 마지막으로 한 가지, 선인의 곁에는 선신善神이 호위하고 악인의 곁에는 원혼들이 따르는 것이오. 그러므로 충의의 칼에는 선신의 가지加持가 있어서 공을 도우니 재주 없는 칼이 능히 재주 많은 칼을 이기는 것이다. 이 비결을 알면 천하 무적의 검객이 될것이오. 어디 이제 한번 칼을 시험해 보시오.”
원효는 이렇게 말을 마치었다.
원효의 말에 대사가 벌떡 일어나서 칼을 빼어들었다. 그러나 한번 원효를 바라보고는 도로 칼을 집에 꽂았다.
원효는 고개를 끄덕하였다. 대사는 오체투지로 원효에게 절하였다.
“ 제자의 예로 보이오.”
“ 오.”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고 미소하였다.
원효가 나간 뒤에 사인이 대사에게 물었다.
“ 아까 대사께서 칼을 빼어들었다가 도로 집에 꽂은 것은 무슨 뜻이며, 또 원효사마가 그것을 보시고 끄덕끄덕하신 것은 무슨 뜻이오?”
대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 이 몸이 칼을 빼어들고 보니 칼을 쓸 자리가 아니라, 그러므로 칼을 도로 집에 꽂은 것이오. 칼을 쓰지 아니 할 자리를 아는 것이 칼의 비결을 아는 표라 하여 원효사마께서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니 이것이 인가忍可니라.”
요석궁 문을 나선 원효는 어디로 갈 바를 몰랐다.
‘ 서로 갈까, 동으로 갈까.’
원효는 길바닥에 서서 망설였다. 사흘 전과는 천지가 온통 변한 것 같았다.
원효는 ‘ 나는 청정한 사문이다’ 하는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길로 다니는 남녀들과 다름이 없는 중생의 몸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마치 자유자재로 훨훨 날아다니던 몸이 날개를 잘리워서 땅에 떨어진 것 같았다. 몸에는 천근 무게가 달린 것 같았다.
“ 파계위타복전 여절익조 부귀상공 破戒爲他福田 如折翼鳥 富貴翔空 (타인의 복을 위해 파계하였으니 날개 부러진 새가 거북을 지고 나는 것 같네.)”
이라고 후일 원효가 후생에게 경계한 것이 이때 느낀 바였다.
원효는 대안대사나 찾아보리라 하고 동으로 향하여서 걸음을 옮겼다.
느릅다리에 다다랐다. 난간에 기대어 아리내의 물을 굽어보았다. 제 그림자가 물 속에 있는 것을 보고 원효는 고개를 돌렸다. 그것은 사문 원효가 아니요, 수염난 한 사내였다. 계집을 보면 탐심을 내는 한 수컷이었다.
“ 파계승, 파계승.”
하는 소리가 수없이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파계승’ 이란 어떻게나 부끄러운 소린가. 세상에 파계승처럼 천한 것이 또 어디 있으랴. 지금 원효의 귀에 들리는,
“ 파계승, 파계승.”
하는 소리는 어디서 누가 부르는 소리일까.
그러나 법계에 찬 모든 중생이 함께 부르는 소리다. 사문 원효가 파계하였다는 소문은 무량세계 無量世界에 널리 알려진 것이다. 위로는 유정 有頂으로부터 아래로는 무간지옥에 이르기까지 사문 원효가 파계하였다는 소문이 들린 것이다. 그래서 제불보살은 슬퍼하시고 무변중생의 고를 벗을 날이 멀어진 것을 운 것이다.
다리로는 남녀 노소가 끊임없이 지나갔다. 그들은 모두 파계한 중의 몸에서 나는 비린내를 피하여서 외면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다 지나가기 전에는 원효는 고개를 들고 걸음을 걸을 뜻이 없었다.
원효는 사람들의 얼굴을 피하여 고개를 산 쪽으로 돌렸다.
“ 요석궁이다.”
원효의 눈에는 요석궁의 회칠한 담과 우렁찬 지붕이 보였다. 정원의 나무들도 보였다.
원효는 자기가 요석공주와 한자리에 누운 양을 본다. 원효는 파계하던 순간을 본다. 원효는 이 원치 아니 하는 광경의 기억을 떨어 버리려고 고개를 숙이고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요석공주의 부드러운 살, 향기로운 입김, 그러한 것이 한사코 원효를 따랐다.
영원히 뗄 수 없는 기억이다. 세세생생에 만나고, 만나서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아니 하면 아니 될 맹세가 아니냐.
원효는 어디를 걸었는지 모르게 걸었다. 그러나 원효는 장차 어디로 도망하려 하는가. 도망할 곳 없는 원효였다.
“ 효스님, 효스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원효는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대안이었다.
대안은 여전히 누더기를 걸치고 새끼 띠를 두르고 걸망을 지고 지팡이와 요령을 들고 원효를 따랐왔다. 아이들이,
“ 대안, 대안.”
하고 대안대사의 흉내를 내며 대안의 뒤를 따랐다.
대안은 원효를 보고 싱글벙글 웃으며,
“ 잘 만났소. 그동안 어디를 가셨었소. 심상이 날마다 나한테 와 서 스님을 찾습디다. 자 갑시다. 저기 좋은 구경이 났어.”
하고 손을 뒤로 흔들어 원효를 부르면서 앞을 선다.
“ 대안사마, 무슨 구경요? 우리도 가오?”
하고 아이들도 따라선다.
“ 암, 가지. 좋은 구경이야. 무슨 구경인고 하니 재주꾼 셋이서 바가지탈을 쓰고 뒤웅박 조리박을 놀리는데 아주 우스꽝스럽게 썩 잘 놀린단 말야, 하핫하핫.”
하고 대안은 어서 보고싶어서 성큼성큼 뛴다.
대안이 뛰는 대로 요령은 딸랑딸랑하고 누더기는 너풀너풀한다.
황룡사 골목 어귀 세 길 어우름에 사람이 많이 둘러섰다. 아이들, 늙은이들, 아이를 업은 늙은이들, 또 젊은 사람들, 중들, 군사들, 장꾼들.
대안은 원효와 아이들을 끌고 사람들 틈을 뚫고 잘 보이는 자리에 들어섰다.
과연 세 사람이 흉물스러운 바가지탈을 쓰고 허리에 조롱박을 일여덟 개씩이나 주렁주렁 둘러 달고 손에는 커다란 뒤웅박 하나씩을 들고 그것을 서로 저편을 맞힐 듯이 겨낭하고 던지면 저편에서도 마주던져서 그 뒤웅박들이 공중에서 마주쳐서 따르락딱 소리를 내고는 서로 튀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재주꾼은 얼른 몸을 놀려서 저마다 제 뒤웅박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받아서는 번개같이 다른 사람을 향하고 던지는 것이다.
뒤웅박에는 채색으로 어룽어룽하게 사람의 얼굴을 사면에 그려서 웃는 놈 성난 놈 열두 놈이 공중에서 넘노는 것 같았다.
재주꾼들이 흥이 높을수록 뒤웅박들은 더욱 높이 더욱 재우 뚜드락딱하고 마주쳤다.
“ 잘한다!”
“ 얼씨구나.”
하고 능청스럽게 어릿광대 노릇을 하는 이도 있고, 또 피리와 날라리로 군악 장단을 부는 이도 있었다.
구경꾼 중으로부터 베 자투리들이 날아들어왔다. 그러면 재주꾼들은 그 베 자투리로 머리에도 감고 북두도 조르고 한 끝에 입에 물기도 하고 갖은 재주와 갖은 익살을 다 부렸다.
“ 하핫하핫.”
하고 대안이 크게 웃는 소리도 들렸다.
원효도 가슴에 뭉클하던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실컷 웃었다. 아이들은 두 손으로 턱을 고이고 정신없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재주꾼들은 우쭐우쭐, 덩실덩실, 어깨춤 엉덩이춤을 추어 가면서 뒤웅박을 놀렸다.
해는 중천에 높이 올랐다. 그것도 뒤웅박인 것 같았다. 구경꾼의 머리들도 뒤웅박인 것 같았다. 수없는 눈망울들이 공중에 넘노는 뒤웅박을 따라서 굴렀다.
재주꾼의 모가지에서 땀이 흘렀다. 구경꾼들의 이마에서도 땀이 흘렀다.
“ 휘유.”
하고 재주꾼들은 뒤웅박을 거두었다. 뒤웅박에 그려진 흉물스러운 얼굴들도 땀을 흘리는 듯하였다.
재주꾼들은 탈을 벗고 낯의 땀을 씻고 냉수를 마셨다.
구경꾼들은 그제야 제 정신을 찾아서 제제금 저 갈데로 흩어져 버렸다.
대안은 원효를 보고,
“ 스님 어떠시오?”
하고 유심하게 물었다.
“ 대단히 재미있습니다.”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눈은 그 재주꾼들을 보고 있었다.
탈을 벗고 울긋불긋한 옷을 벗어 버린 그들은 예사 사람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흉물스러움도 익살도 없고 그들의 어깨와 엉덩이에는 으쓱으쓱 덩실덩실하는 춤도 없었다. 오늘 놀음에 번 것이 얼마, 여기를 마치고는 어디로 갈까, 하는 궁리와 배고픔과 더위와 목마름이 있었다.
원효는 무엇을 깨달은 것도 같고, 또 무엇을 잃은 것도 같아서 한숨을 쉬었다.
‘ 심여공화사 心如工畵師.’
라는 화엄경 구절을 생각하였다.
원효 자신도 탈춤을 추고 뒤웅박을 놀리고 있고, 대안도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러함을 보았다.
신라, 백제, 고구려, 당나라가 모두 탈을 쓰고 뒤웅박을 놀리고 있는 것 같이 생각하였다.
원효의 몸에 걸친 장삼이나 대안의 몸에 너풀거리는 누더기나 모두 재주꾼의 익살만 같이 보여서 원효는 빙그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