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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용신당 수련(龍神堂 修鍊)

오늘의 쉼터 2009. 6. 28. 10:07

 

5.용신당 수련(龍神堂 修鍊)

  

 원효는 사사마 소년에게서 가상아당 말을 듣고 자기도 거기 들어가서

그 시련을 한번 겪어 보리라고 생각하였다.

 개천을 끼고 올라가는 동안의 경치가 대단히 좋았다.

올라갈수록 동구는 좁아지고 물소리는 더욱 커졌다. 바위도 좋았다.

그러나 원효는 알뜰하게 이 경치를 즐길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사람 없는 시골길에 들어와 물 소리 바람 소리만 들을수록 모든 사려가 일시에 일어났다.

 요석공주는 어찌 되었을까.

원효는 요석궁에서 요석공주와 자리를 같이하는 동안에 마음이 그다지 어지러워졌다고

생각하지 아니 하였다.

어떠한 순간에도 저를 잃어버린 일은 없었고 요석궁을 떠날 때에도 문 밖에만 나서면

 지었던 짐을 벗어 버린 것 같이 아무것도 마음에 남거나 묻은 것이 없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혼자 조용히 있을 때면 요석공주의 모양이 보였다.

 당연한 일이라 하면서 그렇게 그립게는 생각하지 아니 하였다.

다만 요석공주는 언제 보아도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여자라고 생각하였다.

원효가 여자를 못잊어 한대서야 되랴 하는 생각이 앞섰다.

 그런데 가상아골에 들어서자 몹시 요석공주가 눈에 밟혔다.

 “ 어떻게 되었나, 아기를 배었나.”

 원효는 요석공주의 뱃속에 들었을는지 모를 아기를 생각하였다.

구원겁래 久遠劫來의 깊은 인연으로 원효를 따라오는 생명이다.

그 인연의 힘이 원효를 몰고 몰아서 요석공주에게로 가게 한 것이다.

원효는 마침내 그 인연의 힘에 진 것이다.

원효의 도력은 이 줄을 끊을 힘이 없었던 것이다.

 원효는 이것을 생각할 때 한껏,

 “ 졌구나 ”

하는 한탄을 발하는 동시에 전생다생에 자기와 요석과 또 낳을 아기와의 수없이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헤어진 관계를 회상해 보았다.

원효의 눈에는 한없는 허공에 한없이 긴 줄이 제 몸에 매어 있는 것이 보인다.

 “ 이 줄을 끊어 버려라, 하신 것이 석가여래의 가르치심이다.”

 원효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원효의 몸에는 수없는 인연의 줄이 얽히어서 그것이 수없는 중생에게 연하고

또 그것이 무궁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닿은 것 같았다.

그중, 이 순간에는 요석공주와 자기와의 몸에 매인 줄이 가장 팽팽하게 켕기어 있었다.

 ‘내가 지금 가상아당에 올라가는 것도 또 다른 무슨 인연의 힘에 끌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원효는 우뚝 섰다. 갑자기 물소리가 더욱 커졌다.

 ‘가자, 가자, 가는 대로 가서 되는 대로 되어 보자.’

 원효는 이렇게 생각하고 다시 걷기를 시작하였다.

길에서 원효는 몇 사람 수도하는 사람을 만났다.

바랑이도 있고, 사당이도 무당이도 있고, 젊고 어여쁜 가상이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노란 베옷을 입고 고깔을 썼다.

모두 마음에 무슨 소원을 품고 각각 신을 섬기며 도를 닦는 것이다.

“ 보아라 ”하고 서로 인사하였다.

 그들의 눈은 날카롭고 행동도 여물었다.

어디서 머리카락 하나만 움직여도 그 소리를 놓치지 아니 할 것 같았다.

백일성공(백일기도)에 강아밥(죽)을 먹은 몸이라 푸른 빛이 나도록 수척하였으나

어느 한 구석도 빈 곳이 없었다.

불교의 중과 다른 점은 눈에 자비로운 빛 대신에 살기가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눈에서는 날카로운 찬 빛이 흘렀다.

 불교의 수련이 모든 욕심을 다 끊어 버리는 데 있는 대신,

방아의 수련은 모든 욕심을 한 욕심만으로 모으는 때문이라고 원효는 생각하였다.

만일 저 눈으로 한번 미운 사람을 노려본다면 그 사람은 당장 죽어 버릴 것 같았다.

그들이 지나는 길에 잠시 힐끗 보아도 몸에 오싹 소름이 끼칠 만큼 매서웠다.

 원효는 이런 사람들을 보내면서 깊이깊이 골짜기를 추어올랐다.

 원효가 강아당에 다다른 것은 해가 낮이 되어서였다.

 가무는 유월 볕이 불을 담아 붓는 듯하였다.

 비록 물소리 나는 산골이라 하여도 전신에서 구슬땀이 흘렀다.

 원효는 사오 명 남자가 벌거벗고 개천가 바위에 앉았는 것을 보았다.

 이 사람들은 바(해)신의 힘인 방아라(바가라라고도 발음하게 된다.

 빛이라는 말이다)에 몸을 쬐어서 몸을 깡마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강아비라고 하고 궁이, 궁니라고도 한다.

 일광 속에 몸을 잠그고 나서 가만히 지난 일과 만난 일과 오는 일을 생각하여서

 일변 옛 허물을 살라 버리고 일변 우주의 진리를 궁리하는 것이다. 

 ‘ 강아바’ 라는 것은 ‘ 가’, 즉 해의 아들 강아를 본다는 뜻이다

 우리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 머리 속에 강아, 즉 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상 잡념을 버리고 몸을 가리운 옷을 벗고 발가숭이로 일광, 즉 강아 속에 단정히

 앉아서 마음을 일광과 같이 맑게 밝게 하는 것이 수련의 목적이다.

 원효는 개천물에 몸을 깨끗이 씻어 미역하고 강아당에 들어가서 강아라불을 피웠다.

 관솔에 불을 피우는 것이다.

 강아당에는 정면에 강아마(강아바라고도 한다)를 두 발 달린 상위에 놓았다.

 이것이 신주였다.

 강아마는 여덟 모 난 구리판을 번쩍하게 갈아 놓은 것이었다.

 강아라불이 강아마에 비치어서 불길이 이럭이럭하였다.

 원효는 네 번 절하고 네 번 ‘ 가사바’를 불러서 박장하고 손을 비볐다.

 가나라사(그늘=하늘)에 네 분 일신 日神이 계시어서

 내‘바리과라(日活, 발괄, 기원)’를 들으소서 하는 뜻이다.

 ‘ 가’ 는 해요, 나라사는 해의 세 분 아드님이시니, 나는 빛이요 더위다.

 나에게 오신 신을 낭아신이라 하고 니기신이라고도 부른다.

 모든 곡식을 익히고 모든 생물을 익히시는 신이시다.

 밝음의 나라의 주재시다.

 ‘ 라’, 즉 ‘ 아라’는 어두움이요, 구름이요, 용이시다.

어두움의 나라의 주재시다.

 이 신을 아랑아라고 부른다.

 ‘ 사’는 물이요, 생명이다.

상아신은 물을 주시고 생명을 주시는 신이시어니와 낭아, 아랑아 두 분이 아니고는

상아의 힘이 아니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한 분의 힘이 나, 라, 사 세 가지로 작용되어서 천하를 가나라시니

(거느리시니) 이것이 다 가신, 즉 일신의 하시는 일이요,

은혜시다.

강아라당은 원효에게 일신의 연유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원효는 강아리(꽹과리)를 들어서 네 번 울렸다.

 원효는 우선 강아마수행을 하여야 한다.

 며칠이고 몸을 씻고는 볕을 쬐이고 생각하는 행이다.

 비린 것을 먹어서는 아니 되고 잠을 자서도 아니 되고 음란한 생각을 하여서도 아니 된다.

 먹는 것은 하루 두 번에 강아밥(죽) 네 보시기뿐이다.

 이러한 설명을 듣고 원효는 반드시 그대로 지킬 것을 다짐두었다.

 다짐이라 함은 손에 먹을 묻혀서 백지에다가 눌러서 손 모양을 박는 것이었다.

 ‘다’는 손이란 말이다.

 원효는 강아라마지를 끝내고 옷을 벗고 개천에 나아가 바위 하나를 골랐다.

 그러고는 바위 위에 강아마 앉음으로 앉았다.

 두 무릎을 세우고 몸을 앞으로 약간 숙여서 두 팔을 짚어서 버티고 등에 볕을 받는 것이다.

 개가 앉는 자세로 앉는 것이니 이 역우에 등이 강알, 즉 거울이 되는 것이다.

 등은 지지는 듯 뜨겁고, 땀은 구슬같이 전신에 흘렀다.

 원효는 굳은 결심을 하였다.

설사 등이 데어 벗어지더라도 꼼짝 아니 하자는 것이다.

 다만 앞에 물에 비치는 제 그림자 돌아가는 것을 보아서 몸의 방향을 바꾸어서 해가

 정면으로 등에 비추이도록 할 뿐이었다.

 감독하는 강아당이는 때때로 회초리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자세가 바르지 아니 한 사람의 볼기짝을 후려갈겼다.

 원효는 조금도 자세를 건들지 아니 하였건만 두 번이나 후려갈김을 받았다.

 딱 소리와 함께 눈물이 쏟아지도록 아팠다.

 아플 때마다 정신이 쇠락하였다.

 

 가끔 물에 들어가기를 허락하였다. 맑은 물에 몸을 잠그고는 모래로 몸을 닦는 것이다.

 이것도 가시기라고 한다.

 해가 서산에 걸리면 강아리 쇠가 울고 바가(북)가 운다.

 그제야 수련하는 강아들은 배와 사타구니만을 가리우는 짧은 배두렁이를 입는다.

 이것을 반다라라고도 하고 반다시라고 하여 ‘필必’자를 쓴다.

 그 입은 모양이 ‘필必’자와 같단 말이다.

 그러고는 당과 마당과 개천어염을 말끔하게 쓸고 닦고,

 그리고 나서는 강아밥이라는 것을 먹는다.

 이것은 쌀과 개암이나 도토리를 넣고 함께 끓인 죽이다.

 개암이란 강아밤 또는 바사밤이라고 한다.

 바사는 해라는 신라 말로 개암의 모양이 해와 같기 때문에 이것을 강아신께

 사나바(새나밤, 풋밤-천신)로 바치는 것이다.

 죽바라(버치)에 죽을 담는 것은 먼저 강아신 앞에 놓았다가 여럿이 해 모양으로 둥글게

 돌아앉아서 보시기에 받아서 머리를 위에 이었다가 먹는 것이다.

 먹는 젓가락은 보삽나무 가지로 만든 것이다.

 보삽나무는 잎이 둥글한 나무이니 싸리도 바사라라고 한다.

 술가라(술그릇, 숟가락)는 물이나 국물을 먹는 것이다.

 강아신, 즉 방아신, 바상아신께 바치는 음식은 바사나무를 때어서 끓인다.

 사바, 즉 섶으로도 대용하고 바사리, 즉 싸리로도 대용한다.

 싸리의 싸자는 된시옷이 아니라 된비읍이다.

 죽을 다 먹고 물을 마신다.

 이 경우에는 물을 술이라고 한다.

 그리고도 보시기와 바사라와 숟가락을 깨끗이 부시어서 제가끔 제자리에 간수한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가나라사(거닐어서)를 한다.

 가나라는 것은 당을 싸고 빙빙 도는 것이다. 돌면서 입으로 ‘가나라사’를 부른다.

 “ 가나라사 가나라사.”

 하고 외우며 당을 싸고 도는 것이다. 대개는 백 번을 돈다.

 신관神官이 앞을 선다. 앞을 서는 것을 가사라(구실)라고 한다.

 신관이‘가나라(하나라)’하고 먹이면 일동은‘가나라사’하고 부르며 뒤를 따르는 것이다.

 해가 넘어가고 어두움이 오니 해를 부르는 것이다.

 가나라사는 해다.

 어서 해가 떠올라 오시라는 뜻이요,

 어서 세상을 밝히라는 뜻이다.

 “ 이어라사” 하고 구실이 부르는 것은 열 번째 돌아온 때다.

 그러면 일동도,

 “ 이어라사” 하고 받는다.

 이어라사라는 것은 아아라사로 나고 나라, 즉 생생生生이란 뜻이다.

 아는 용아로 난단 말이요, 대代란 말이다.

 이어라사는 끊임없이 나고 나라는 축수다.

 “ 사마라” 하고 구실이 먹이는 것은 스무 번째 도는 때다.

 이때는 소리를 내지 아니 하고 발자국 소리도 내지 아니 한다.

 입을 다물고 숨으라는 뜻이다. 어두움의 신을 피하는 뜻이다.

 “ 사랑아”

 이것은 서른이다. 여기서 둘씩 짝을 지어서 춤을 춘다.

 “ 마가라” 마흔이다.

 일동은 팔을 벌리고 달음질을 한다.

 떠오르시는 해를 마중하라는 뜻이다.

 해의 밝음이 사모함이 더욱 간절함을 표함이다.

 “ 사아나.” 쉰이요,

 쉬란 말이다.

 사람들은 일제히 주저앉는다.

 사는 서라, 아나는 낮추라는 뜻이니 사아나는 앉아다.

 가는 사람들이 쉰다는 뜻도 되지만 해가 어디로 다른 세상으로 가지 말고 언제까지

 이 세상에 계시라는 뜻도 된다.

 “ 아아사나.” 예순이다.

 아아는 언제까지라는 말이요,

 사나는 상쾌하단 말이다.

 사나사나는 아름답고 생기 있고 힘 있단 말이다.

 “ 나라가나(일흔).”

 “ 아아다나(여든).”

 “ 아가나라(아흔)”

 가 지나가고 점점 걸음이 빠르고 소리가 빠르다가 구실이,

 “ 마마라”

 하고 소리를 지르면 일동도,

 “ 마마라” 하고 화하는 것이다.

 머물라는 뜻이요,

 백이라는 뜻이다.

 원효도 숨이 차고 땀이 흘렀다.

 사람들은 아뜩아뜩하리만큼 기운이 진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휴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개천에 내려가서 몸을 물에 담그고,

 “ 앙아바라바다라, 아하바라바다라.” 하고 소리를 지른다.

 몸이 바래어지라 함이다.

 바래운다 함은 더러운 것을 다 씻어서 깨끗하게 희게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면 당마당에 큰 강아라불을 피워 놓고, 그것을 등을 지고 둘러앉는다.

 앉는 모양은 아까 해를 등지고 앉은 모양과 같다.

 “ 강아라, 강아라. 강강 상아라.”

 “ 방아라, 방아라. 방방 방아라.” 를 목청껏 부른다.

 가와 바는 다같이 해란 말이다.

 가는 옛날 말이요,

 바는 신라말이었다.

 “ 개어라, 개어라. 개어개어 새어라.”

 “ 바가라, 바가라. 바가바가 바가라.” 라는 것으로 다 해가 나라는 뜻이다.

 개인다는 것이나 새인다는 것이나 다 해 뜨라는 뜻이요,

 바가라는 오늘날 말로 밟아라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는 동안에 졸리게 된다.

 구실은 연해 몽둥이를 들고 돌면서 볼기를 때리고,

 그러다가는 또 물에 들어가고 또 불을 쬐고 또 망아마(맴)를 돌고

 이것을 한없이 반복하는 동안에 달이 지고 별이 숨고 바나가사(해 뜨는 곳이라는 뜻)가

 불그레하게 된다.

 새벽 바람은 산산하다.

 “ 강아라 방아라.” 를 백 번 천 번 부를 때마다 구실이,

 “ 마마라.”

 “ 다다라.” 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구실이 다시 ‘ 가나라사’ 하고 시작 할 때까지 잠깐 쉬어서 천지가 고요하여진다.

 이렇게 잠잠할 때면 산에 우는 새와 짐승의 소리도 들리고 여흘여흘 흘러가는 물소리도 들린다.

 또 여기서 조금 떨어져서 개천 하류에 진을 친 여자들이 가나라사를 부르는 소리가 청승스럽게

 들려 온다.

 해가 올라오면 일제히 해를 향하여서 절을 한다.

 절하는 법은 두 무릎을 세우고 무릎 사이를 벌리고, 두 주먹으로 땅을 짚고 네 번 몸을 숙이는 것이다.

 이러고 나면 또 쓸고 닦고 강아리불을 치우고는 강아밥을 먹고 그리고는 또 거닐고, 또 볕을 쬐고

 이것을 쉬임 없이 하는 것이다.

 그 모양으로 나나, 즉 넷넷, 즉 일곱 날 계속하는 것이다.

 그동안을 못 참는 자는 내어 쫓는 것이다.

 한 이레를 무사히 치르면 나흘을 쉬는 것이다. 

 그동안은 날마다 해가 져서부터 해가 뜰 때까지 자는 것이다.

 원효는 물론 한 이레를 잘 견디었다.

 그러나 몽둥이로 볼기를 맞은 자리가 굳은살이 박일 만하였다.

 쉰 지 넷째 날 저녁에 수련하는 사람들은 머리 정수리를 동그랗게 밀고 주홍칠을 한다.

 이것을 방아 또는 바고라고 한다.

 해를 인다는 뜻이다.

 거기서 오리나 되는 가상아당으로 올라갈 자격을 얻는다.

 강아당 수련이 끝나고 배코를 친 남자들은 이마에 곤지(가나다)를 찍은 여자 수행자와 함께

 섞일 자격을 얻는다.

 여자들은 배코를 치는 대신에 곤지를 찍는다.

 남자가‘가나라사’를 부르는 대신에 여자는‘가나다’를 부른다.

 곤지란  가나다란 말이요,

 가나다는 해가 있는 데란 말이요,

 또 하늘에 있는 달이란 말이다.

 여자가 곧 해이기 때문에 여자는 달을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라말로는 여자나 어머니를‘바’또는‘바바’라 하고

 남자나 아버지를‘다’또는‘다다’라 한다.

 달月이란 말이다.

 원효는 이레 수련에 살이 쭉 빠진 것과 같이 모든 잡념이 소멸 된 것 같았다.

 

 석양 길을 남녀 이십여 명이 어우러져서 걸어가건만 아무도 이성이 옆에 있다는 감각을

 가지는 것 같지 아니하였다.

 다들 길만 보고 걸었다.

 이레 동안은 벙어리 생활을 하였으므로 말을 할 생각이 없었다.

 마치 말을 온통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앞에 뒤에 함께 가는 남녀들이 다같이 정다웠다.

 모두 형제와 같았다.

 가상아당은 강아당보다 작으나 더 깊숙하고 엄숙하였다.

 둥근 지추, 둥근 기둥에 모두 둥근 재목을 썼다. 해의 둥글음을 보인 것이다.

 당아 앞에는 홍살문이 있었다.

 두 기둥을 높이 세우고 긴 도리[月]를 얹고 그 위에 궁형 弓形의 널쪽을 붙이고,

 그 널쪽에서 방사상放射狀으로 여덟 개의 살을 뻗게 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통틀어 붉은 칠을 하였다.

 뜨는 해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달이 해를 인 것이다.

 궁형으로 된 것을 바(해)라하고 바에서 뻗친 살을 ‘바가라’라고도 하고,‘사가라’라고도 한다.

 사가라는 상아라로서 광선이란 뜻이다.

 집을 지을 때에 도리를 걸고 서까래를 거는 것도 이것이다.

 이것은 일월신을 함께 상징한 것이어서 달이 해를 인 것을 표한 것이다.

 원효의 일행을 거느리고 온 강아당 가사라‘구실’은 일행을 당아라(홍살문) 밖에 머물게 하고

 자기만 손과 발과 입을 씻고 당아안으로 들어갔다.

 이 사람들의 명부를 바치고 문에 들어갈 허락을 청함이었다.

 그동안 원효의  일행은 홍살문 앞에 강아앉음으로 앉아서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해가 산을 넘어서 골짜기에는 안개가 돌고 산머리에만 자주빛 노을이 섰다.

 이윽고 자주 방아라에 누런 방아마를 입고 상아머리한 가상아둘이 나와,

 “ 아라.”

하고 고운 소리로 부른다.

 오르라는 말이다.

 다 열칠팔세의 어여쁜 가상아다.

 방아마라는 것은 신라 사람의 아랫도리 옷으로 치마다.

 여자는 자주나 다홍을 쓰고 남자는 누렁이나 퍼렁을 쓴다.

 마란 옷이란 말이요,

 방아는 해의 자손이란 말이다.

 백제에서는 당아마 당오리라고 한다.

 이것이 됴마, 됴고리, 즉 치마 저고리의 어원이다.

 상아머리는 일광이 흐르는 것 모양으로 착착 빗어 내린 머리다.

 머리를 해로 보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광선으로 보는 것이다.

 가상아당에는 스승을 제하고는 모든 것을 가상아라는 여자들이 하고 있었다.

 

 원효 일행은 두 가상아의 인도로 당아에 들어갔다.

 마당에는 황토와 자갈을 깔았다.

 자갈은 해도 되고 달도 되는 것이다.

 해로 볼 때에 공아(공기)가 되고 달로 볼 때에 동아(조아)가 되는 것이다.

 황토는 햇빛이다.

 원효 일행은 신전에서 처음 들어온 의식을 행하고 마아마를 먹었다.

 이것은 멀건 미역 국물에 끓인 아바(좁쌀) 미음이었다.

 바는 벼요 아바는 조다. 조는 백제말이니 다음에 온 것이다.

 미음을 먹는 잡들이는 죽을 먹는 잡들이와 다름이 없었다.

 식후에 거니는 것도 같았다.

 가상아당을 싸고 백 번 도는 것이나‘ 강강 상아라’를 천 번씩 부르고 천 번이 열 번이 되면

 ‘ 자라’라 하고‘ 자라'가 열이 되면‘ 가라’ 라 하고 ‘ 가라’가 열이 되면 ‘아아’라고 하여서

 한 나흘에 억 번을 부르기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여기서 강아당과 다른 것은 남녀가 다 눈을 봉하는 것이다.

 이것을 상아강아라고 한다.

 남녀 다 눈을 봉하고 가상아들의 음악에 맞추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이다.

 원효도 눈을 감고 그것을 촛밀로 봉하였다.

 이 소경의 무리를 인도하는 것은 가상아들의 손이었다.

 물론 말은 없었다.

 오직 손을 잡아서 끄는 것이었다.

 잠시도 쉬는 동안은 없었다.

 졸기도 허락하지 아니 하였다.

 원효의 손을 끄는 손은 언제나 같은 손인 것 같았다.

 그 손은 싸늘하였으나 무척 작고 부드러웠다.

 원효는 상아사사마의 누이 아사가가 아닌가 하였다.

 첫 나흘이 지나는 새벽에 일동은 더욱 기운을 내어서 거닐고 소리하고 춤을 추었다.

 바라, 바가(북), 방알(방울) 소리가 온 산을 흔들었다.

 원효는 정신이 황홀함을 깨달았다

 여기가 어딘지 제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잊을 지경이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자도 있었다.

 이때 눈이 열린다는 것이다.

 “ 아아사가 ” 하는 소리가 나자 일동은,

 “ 아아사가” 하고 힘껏 소리를 지르고 머물렀다.

 억이 찬 것이었다.

 억 년 창성하라는 축원도 된다.

 아아는 이야도 되고 이요도 된다.

 사가는‘ 서서가’라는 뜻으로 흥왕하라는 말이다.

 성하다는 뜻이다.

 일동은 눈을 봉한 밀을 떼고 개천에 들어가서 미역을 감았다.

 미역을 감고 올라와서 옷을 입고 아침 해가 오르기를 기다렸다.

 동천에 붉은 해가 솟았다.

 일동은 강아앉음을 앉아서 네 번 절하였다.

 나흘 만에 뜬 눈으로 바라보는 해는 마치 평생에 처음 보는 것인 듯하였다.

 그렇게도 크고 그렇게도 선명하고 그렇게도 고마웠다.

 과연 모든 생명의 원천인 것 같았다.

 이 날 아침에 비로소 스승이 여러 사람을 보았다.

 스승은 백발 노인이었다.

 낯은 불그레하고 눈이 빛나고 눈썹과 귀털이 길게 뻗었다.

 어느 모로보나 정기 있는 사람이었다.

 스승은 눈을 들어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눈치를 보아서 그들의 마음이 수련된 정도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 안광이 심히 밝고 날카로와서 마주치면 눈이 부시고 무서웠다.

 원효도 과연 스승이 라고 생각하였다.

 “ 사상아.” 하고 한탄하는 것이다.

 사상아는 스승이란 말이다.

 “ 사상아.” 하고 한탄하는 것이다.

 사상아는 스승이란 말이다.

 스승은 한 사람 한 사람 불러서 뜻을 물었다.

 “ 가가바사가.” 하고 스승이 부른 것은 열여덟 살이나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다.

 눈초리가 위로 올랐고 코가 우뚝하고 입이 한 일 자로 쫙 맺히고 얼굴이 검푸렀다.

 “ 바아.” 하고 그 소년이 일어났다.

 ‘ 바아’라 함은 보입니다로 ‘예’하는 뜻이다.

 “ 고구려를 멸하여 나라와 어버지의 원수를 갚으려 하오.”

 가가바사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 가가마나바.”

 스승은 다음 사람을 불렀다.

 마나바라는 사람은 삼십이나 되었을 수척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 앞일을 내다보고 병 고치는 힘을 얻으려 하오.”

 다음은 바가가나가라는 소녀였다.

 장히 아름다운 용모를 가진이다.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 노래와 거문고 명인이 되려 하오.”

 이 모양으로 그들은 스승 앞에서 각각 소원을 말하였다.

 혹은 점을 배우겠다는 사람, 혹은 의술을 배우겠다는 사람,

 혹은 제 병을 고쳐서 수명 장수하겠다는 사람, 혹은 아들이 없으니

 귀한 아들을 낳고 싶다는 여자, 혹은 큰 부자가 소원이라는 사람,

 혹은 축지술을 배워서 걸음을 잘 걷기를 바란다는 사람,

 혹은 칼을 썩 잘 써서 큰 장수가 되겠다는 사람,

 혹은 구름과 바람을 마음대로 일으키고 싶다는 사람,

 혹은 재주가 둔하니 총명하고 싶다는 사람,

 혹은 부모의 원수를 갚겠다는 사람, 실로 가지각색이었다.

 그중 한 사람은 나이 사십이나 넘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으로서,

 “ 이 몸은 한 나라를 편안하게는 못 하여도 내 사는 동네 하나라도 편안하게 할까 하오.”

 이러한 대답을 하였다.

 이 대답에 스승은 자리에서 일어서 부채를 한번 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람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매우 준수하고 점잖은 사람이었다.

 이름은 가나사가라라는 사람이었다.

 스승은 매우 만족한 모양으로,

 “ 너는 장차 나라를 크게 돕는 사람이 되리라. 한 분 밑이요, 만사람 위이 되리라.”

 이렇게 예언하였다.

 주위에 둘러선 가상아들은 소리를 길게 뽑아,

“ 여바라 여바라. 이야라사 이야라사. 디아디아 디아디아. 디오다 디오다.” 하고 찬송하였다.

 지화자 지화자로 천 년 만 년 살라는 뜻이다.

 마침내 원효의 차례가 왔다.

 “ 사당아앙아 曙幢元曉”

 스승은 이렇게 불렀다.

 “ 바아.”

 원효는 대답하고 일어났다.

 “ 보아하니 사문沙門인가 싶거든 어인 일로 가상아당에를 왔노.”

 스승은 이렇게 물었다.

 “ 보시는 바와 같이 이 몸은 사문이거니와 파계하고 죄를 소멸할까 하고 왔소.”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 소원은 성취하였나.”

 스승이 이렇게 묻는 말에 원효는 잠깐 말이 막혔다가,

 “ 한 이레 더 하려오.”

 이렇게 대답하였다.

 원효의 대답에 스승은 아무 관심도 없는 듯이 지나쳐 버렸다.

 끝으로 불린 이는 상아아사가였다.

 그는 이미 가상아로 있건마는 역시 이번 수련에도 참가한 것이었다.

 “ 아사가 ” 하고 스승이 부르매

 아사가는 두 손을 들어 방아라식 합장을 하고 또렷또렷한 소리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 젓사오대 아사가는 이 앙아 수련을 마치고 급제하는 남자와 배필이 되어서

    우리나라에 기둥이 될 아들을 낳고 싶소.”

 불과 십육칠세 되는 계집아이가 이런 소리를 하여도 이 좌석에서는 조금도 어색하지

 아니 하였다.

 왜 그런고 하면 강아당 수련과 가상아당 수련을 마친 그들은 벌써 세상 사람들은 아니었다.

 이제 세상에 내려가면 다시 세상 사람으로 돌아갈 사람들도 있겠지만 당장에는

 모든 물욕을 잊은 사람들이었다. 

 옆에 젊은 이성이 있어도 거기 대하여 무슨 욕심이 일어나든가 그런 일은 드물었다.

 만일 이러한 거룩한 자리에서 더러운 마음을 발한다면 큰 버력이 내리는 것이다.

 벌을 주기 위해서는 범도 있고 뱀도 있고 무서운 귀신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여러 날 죽과 미음을 먹고 또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춘 그들은 벌써 육체를 쓴 사람은 아니요.

 일종의 신이었다.

 그러하기 때문에 과년한 처녀가 이런 소원을 말하는 것도 극히 자연스러웠다.

 부끄러움이라든가, 미안이라든가, 그런 것은 이 자리에는 합당치 아니 하였다.

 신의 앞에 벌거숭이 아들이요, 딸이었다.

 원효도 이때 비로소 조상 적부터의 수련이 무엇인지를 안 것 같았다.

 이 일이 있은 뒤 한 나흘은 음악의 날이었다.

 악기를 타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북을 치는 이는 북을 치고 바라를 치는 자는 바라를 쳤다.

 방울을 흔드는 것도 음악이요 바가지를 긁는 것도 음악이었다.

 원효는 크고 작은 뒤웅박을 두드려서 가락을 맞추었다.

 합주도 하고 독주도 하였다. 그리고 춤도 추었다.

 스승은 때때로 나와서 이것을 들었다.

 누구 하나를 불러내어서 시켜 보기도 하였다.

 “ 마음이 들떴어.”

 이러한 책망을 하는 수도 있었다.

 그것은 악기 울리는 소리를 듣고 그 사람의 마음을 책망하는 것이었다.

 마음이 들떴다, 흩어졌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스승의 책망이었다.

 스승은 사람의 마음속을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말이 적으나 한마디라도 하는 날이면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말이었다.

 “ 지금 무엇을 듣고 있었느냐.”

하고 스승이 문득 제자들에게 묻는 일이 있었다.

 그러면 대답이 가지각색이었다.

 혹은 바람이 소나무에 우는 소리를 들었노라하고 혹은 물소리를, 혹은 새소리를 들었노라

하고 혹은 아무것도 들은 것이 없노라고 대답하였다.

 저마다 이렇게 대답을 하면 스승은 들을 뿐이요, 더 말이 없었다.

 

 스승은 원효더러 무엇을 들었느냐고 물었다.

 원효는,

 “ 내 숨소리를 들었소.”하고 대답하였다.

 스승은 잠깐 눈을 크게 떴다가 두어 번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상아아사가는, “ 내 가슴이 뛰는 소리를 듣고 있었소.”하였다.

 스승은 이러한 말로 각 사람의 경계를 알아보는 동시에 각 사람에게 반성의 기회를 주었다.

 한 나흘이 끝나는 날 스승은 원효와 아사가와 가나사가 세 사람에게 앙아당에 올라갈

것을 허하고 다른 사람들은 각각 집으로 돌아가서 소원대로 하라 하였다.

 강아당에서 열여섯 사람이던 것이 이제 세 사람만 남은 것이었다.

 원효 일행은 곧 스승께 하직하고 가상아당을 떠났다.

 앙아당은 여기서도 이십 리나 올라가서 바가산 상상봉에 있었다.

 미음만 먹은 몸이건만 산을 오르기에 조금도 힘이 들지 아니 하였다.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일행이다. 안내하는 사람도 없고 짐을 나르는 사람도 없었다.

 길이라고 있는 듯 만 듯. 시냇물도 끊어지고 키 작은 향나무들이 땅에 길 뿐이었다.

 새도 없었다.

 있는 것은 구름과 바람뿐이었다.

 산 상봉에 조그마한 돌성이 있었다.

 둥그스름하게 둘러쌓았는데 터진 목은 서로 어긋먹어서 구부러져 들어가면 밖이 보이지

아니 하고 오직 하늘만 보이게 되었다.

 주위가 이십 보나 될까 이른바 멍에담이다.

 어느 성문도 이러한 것이다. 용의 발톱을 모상한 것이었다.

 원효와 아사가와 가나사가와 세 사람은 우선 물 있는 데를 찾았다.

 성에서 북쪽으로 이십여 보나 내려가서 바위 밑에 조그마한 샘이 있고 나무 바가지가 있었다.

 원효는 샘물을 떠서 씻고 양치를 하여서 몸을 가아말았다.

 다른 두 사람도 그러하였다.

 그리고는 몸에 지니고 온 바가지에 물을 한 그릇씩 떠 가지고 올라와서 성으로 들어왔다.

 이 성을 시로라 하고 시로가 있는 봉을 시로봉이라고 한다. 

 시로부리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시로는 앙아신을 아라가마하는 곳이기 때문에 앙아시로,

 또는 이야시로라고도 부른다.

 세 사람은 제단 위에 물그릇을 올려놓았다.

 이 물을 상아사(정화수)라고도 하고 상아나사라고도 한다.

 앙아신은 허공신이요 창조신이기 때문에 아무 형상이 없다.

 시로 정면에 우뚝 선 동그스름한 바윗돌이 신주다.

 이 바위는 사나바위(선바위)라고 한다.

 세 사람은 이 바위 앞에 엉금엉금 기어가서 엉거주춤하게 앉아서,

 “ 앙아라, 앙아라.” 하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을 한없이 부르는 동안 해가 지고 밤이 가고 또 해가 뜬다.

 여기서는 하루 세 번 물밖에는 먹는 것이 없다. 물 세 모금으로 사는 것이다.

 밤이 되면 바람이 불어서 모래를 날려 성을 때렸다.

 그 소리가 우다딱 뚝딱 심히 요란하였다.

 밤이 깊어 갈수록 높은 산의 바람은 추웠다.

 새벽이 되면 몸이 떨리고 입이 얼어서 소리가 아니 나올 지경이었다.

 원효와 아사가는 용히 견디었으나 가나사가는 심히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는 이러한 고생이 처음인 모양이었다.

 처음 이틀 동안은 무척 허기가 져서 원효도 몸을 가누기가 어려웠다.

 가나사가는 사흘째 되는 아침에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여서 먼저 내려가고 시로에는

 원효와 아사가와 두 사람만 남았다.

 ‘ 죽든지 앙아신을 뵈옵든지’ 하는 것이 이 수련의 목표다.

 세 사람이던 것이 단둘이만 되니 더욱 고요하였다.

 캄캄한 밤에 불기운도 없는 데서 부르는 주문 소리가 모깃소리와 같이 가늘었다.

 제가 부르는 소리가 제 소리인지 누구의 소리인지 몰랐다.

 그러나 나흘째 새벽에 원효는 목 속에서 새로운 기운이 발함을 느꼈다.

 음성이 커지고 몸이 바로 서고 눈이 밝아짐을 느꼈다.

 원효는 소리를 높여서 주문을 외웠다.

 “ 심신객진종차영멸 편능내발적정경안 心身客塵從此永滅 便能內發寂靜輕安

 (몸과 마음의 번뇌가 이로부터 영원히 소멸하니, 문득 안으로 고요한 마음이 일어나네).”

 원효는 원각경 圓覺經을 생각하였다.

 원효는 더 주문을 외울 필요가 없음을 느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대로 가만히 있고 싶었다.

 그러나 곁에 있는 아사가는 심히 고통스런 모양이었다.

 그는 지금이 고작으로 허기가 지고 기운이 빠지는 모양이어서 꼬박꼬박 졸리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원효는 아사가를 도와주는 길이 그와 함께 주문을 외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큰 소리로

 다시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원효의 소리에 아사가는 적이 기운을 얻는 모양이었다.

 마지막 밤이 왔다.

 이 밤을 지나면 나흘이 차는 것이었다. 무사히 나흘을 채우면 어디선지 모르게 앙아신이

 나타나서 무슨 글을 주고 밥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앙아신의 벌을 받으면 당장 큰일이 난다는 것이다.

 이 날 밤에는 뇌성벽력을 하였다.

 귀청이 찢어지도록 우레가 울고는 눈이 부시게 번개가 번쩍거렸다.

 이러기를 한참이나 한 뒤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성안에 쏟아진 빗물이 미처 빠지지 아니 하여서 두 사람의 몸이 허리까지 잠길 때도 있었다.

 그래도 아사가는 까딱도 아니 하였다.

 폭풍우는 지나가고 씻은 듯이 구름이 걷히고 유월 보름달이 까만 하늘에 뚜렷이 걸렸다.

 어디서 호랑이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점점 가까이 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원효는 평생 처음 느끼는 상쾌함을 맛보았다.

 자기의 마음은 모든 속박과 제한을 벗어나서 자유자재로 허공에 떠노니는 것 같았다.

 원효는 옆에서 부덩부덩 애를 쓰는 아사가를 불쌍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목소리를 높여서 그를 도와주었다.

 새벽이 되었다.

 동천에 붉은 기운이 돌던 지새는 달이 빛을 잃었다.

 이때 아사가는 비로소 새 힘을 얻는 모양이어서 목소리가 살아났다.

 원효는 기뻤다.

 해가 돋았다. 천지가 환하여졌다.

 상아사 무에도 햇빛이 들고 아사가의 맑은 얼굴에도 아침볕이 비치었다.

 아사가라는 것은 아침에 난 아이라는 말이어니와 오늘 아침의 아사가야말로 아침의 아기였다.

 그의 눈과 얼굴에서 금빛을 발하고 그의 젖은 몸에서는 하늘의 향기를 발하는 것 같았다.

이때,

 “ 어마당아다(암, 좋다).” 하는 소리가 나며

 센 수염 길게 늘이고, 소매 넓은 홁 베옷을 입은 노인이 어여쁜 도령 둘에게 무엇을 들리고 시로로

 들어왔다.

 원효와 아사가는 황망히 일어나서 합장하고 허리를 굽혔다.

 “ 당아라, 당아라.” 하고 동자 둘이 네 번 불렀다.

 스승은 바위에 걸터앉으며,

 “ 아마 장하다. 사십 년 만에 처음이다.” 하고

 늙은 스승은 대안과 유신이 앙아당 수련을 마친 뒤에 한 사람도 성공한 이가 없으매,

 신라의 국운이 진하고 이 도통道統이 끊어질 줄 알았더니,

 이제 너희 둘이 이 수련을 마쳤으니 이에 신라의 국운이 흥왕할 것이요,

 또 이 도통이 후세에 길이 전할 것이라 하여 무수히 치사하고 칭찬하였다.

 “ 자, 이제는 먹으라.” 하고

 동자에게 들리고 온 그릇을 두 사람의 앞에 놓았다.

 그것은 뽀얀 가루를 물에 탄 것이다.

 원효와 아사가는,

 “ 고마우셔라, 고마우셔라.” 하고

 두 번 절하고 미음 그릇을 들어서 한입에 마셨다.

 “ 그맛, 그 맛!”

 나흘을 굶은 끝이요,

 또 아마 칡뿌리와 가얌 가루인가 싶어 달콤하고 향기가 있어 그 맛이 비길 데가 없었다.

  “ 이제 밥맛을 알았나.” 하고 스승이 웃었다.

 “ 비로소 밥맛을 알았소.”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 바른 도道를 모르고 바른 맛을 알 리가 있나. 세상 사람은 밥맛을 모르고 물맛을 모르고

   모든 맛을 모르고 살아가는 거야. 이 제 두 사람이 새로 났으니 천지가 새로 배판하는 것이야.

   두 사람이 아들딸을 많이 낳으라고. 앞으로 우리나라에 일이 많으니 사람을 많이 기다려.

   이 늙은이는 마음놓고 가네.”  하고 스승이 일어났다.

 원효는 황망히,

 “ 무슨 가르침을 내리시지요.”  하였다.

 “ 원효대사거든 이 몸이 무엇을 가르치리. 화엄경 팔십 권이나 팔만대장경이 모두

 ‘ 아래아(특수문자에서 찾을수가없음 - 고어)’자 하나에서 나온 것이야.” 하였다.

 이때에 아사가가,

 “ 이 몸은 어찌하올지.” 하고 스승에게 가르침을 청하자 스승은,

 “ 지어미는 지아비를 따르는 것이야.”

 “ 이 몸은 아직 시집가지 아니 하여 지아비가 없소.”

 “ 하늘에서 정한 연분이니 틀릴 줄이 있으리.”

 “ 이 몸의 지아비가 누구오니까.”

 “ 그대 마음에 먹은 사람.”

 스승은 두 사람에게‘아래아(이응 밑에 점)’자를 주필로 쓴 종이 조각 하나씩과 미음

 그릇을 주고 가 버리고 말았다.

 미음 그릇은 소나무 혹을 판 것이었다.

 

 원효와 아사가는 스승이 가신 곳을 향하여서 무수히 절하고 시로 안팎을 깨끗이 쓸고 씻고,

 샘을 깨끗이 하고 마지막으로 사나바위 앞에 앉아서‘ 아래아' 신께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드리고 시로를 나서서 비로소 두 사람은 말을 하였다.

 “ 아사가.”

 “ 원효대사.”

 이것이 두 사람의 첫말이었다.

 밥이 그렇게 좋던 것 모양으로 원효에게는 여자의 얼굴과 몸과 소리가 이토록 아름답던가 하고 놀랐다.

 아사가도 마찬가지였다.

 원효는 세상에서 처음 보는 남자인 것 같았다.

 그렇게 서로 이성이 아름답고 그리웠다.

 원효와 아사가는 바위에 걸터앉아서 마주보고 있었다.

 하늘과 땅이 모두 새로운 것 같고 구름도 바람도 모두 새로운 것 같았다.

 수없는 산봉우리들이 발 아래 있고 먼 산들은 파란 기운에 싸여 있었다.

 여기저기 희뜩희뜩 강굽이도 보였다.

 더구나 어젯밤 비에 산천초목이 일층 생기를 띠었다.

 멀리 남쪽으로는 지금도 비가 오는 것 같았다.

 오랜 가뭄으로 민정이 오오하떤 때다.

 흠씬 비가 와서 오곡이 소생하였으면 하고 원효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구름 한 점 없이 개인 하늘과 같은 마음으로 원효는 산천과 아사가를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이제 젖었던 옷도 다 말랐다.

 따가우리만큼 볕이 내리쬐는 것도 유쾌하였다.

 그동안 더위도 추위도 배고프고 졸리던 것도 다 잊어버렸다.

 먹은 것이 없으니 대소변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몸은 마치 마른 나뭇개비나 바윗돌과 같이 된 것 같았으되

 오직 마음은 영원히 꺼지지 않고 또 꺼질 수 없는 불이었다.

 때를 따라서 그 불 기운이 욕심과 번뇌에 가리워 빛을 잃은 일은 있어도

 천겁 흑암지옥에 묻어 두어도 꺼질 수 는 없는 불이었다.

 이 불은 저 해에서 온 불이요, 저 해와 한 불이었다.

 신라 사람들은 저 별들이 모두 해와 한 불로 알고, 또 모든 생명이 다 한 불이라고 생각하여서

 해를‘바’라고 하고, 불도‘ 바’라 하고, 사람의 혼도‘바’라 하고, 머리도, 눈도 ‘바’라 하고,

곡식과 과일도‘바’라 하고, 산과 벌도‘바’라 하고, 생각하는 것도‘ 바’라 한다.

 모두 같은 불이요 같은 빛이라는 뜻이다.

 바자에, 가나다라마바사아 등 소리를 붙여서 구별하는 것이다.

 특별히 어진 사람 귀한 남자를 ‘바가’라고 하거니와 바가는 곧 빛의 움직임이란 말이니

 잡된 것이 섞이지 아니한 움직임, 즉 밝은 사나이라는 말이다.

 어진 여자는 바바라고도 하고 바마라고 하니 밝은 빛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신라에서는 해가 여성이다.

 그러므로 여자야 말로 빛이다.

 이제 원효는 바가요 아사가는 바마다.

 수련할 수 있는 수련을 다 겪은 것이다.

 원효는 아사가의 눈을 통하여 그 속에 있는 불을 볼 수 있었다.

 때 아니 묻은 숫처녀의 불이다.

 이 세상에 있는 불 중 가장 맹렬한 세력을 가진 불이다.

 이 불은 한 불세계 佛世界를 지을 수도 있고, 또 살라 버릴 수도 있는 불인 동시에

 또 사랑의 불도 되고 질투의 불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불 속에서 모든 중생이 탄생한 것이다.

 불과 힘, 이것이 세계다.

 

 태초에 허공이 있고 허공이 불이 있고 불을 움직이자 힘이 생기니,

 이에 비로소 남자가 생긴 것이다.

 불과 힘의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천지만물이 생기고 나서 죽고 또 나는 것이다.

 이것이 신라 사람의 우주관, 인생관이다.

 생기는 것은 좋은 일이요, 죽는 것은 싫은 일이다.

 사는 것, 나는 것, 있는 것은 다 기쁜 일이요, 아름다운 일이요, 찬송할 일이다.

 그러므로 꽃은 찬송할 것이요, 처녀는 찬송할 것이요, 젊은 이는 찬송할 것이다.

 혼인은 인생에 가장 찬송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신라 사람은 청년 남녀의 사랑에 대하여서 극히 관대하다. 사랑은 신이다.

 

 그들은 생生을 찬미하기 때문에 죽는 것을 더욱 미워하고 슬퍼하였다.

 사랑하는 이가 죽으면 그들은 머리를 풀고 웃통을 벗고 소리를 높여서,

 “ 앙아, 앙아(아이고, 아이고).”

 하고 앙아신을 부르는 것이다.

 가져가는 사랑하는 이의 불을 도로 내어놓으라는 것이다.

 그 컴컴한 허공은 만물의 어머니였으나 또한 만물을 도로 삼키는 입이었다.

 그들은 앙아신 낳기만 하고 죽이지 아니 하기를 빌지마는 앙아신은 들어 주지 아니 한다.

 이리하여서 그들은 점점 앙아신을 미워하였다.

 그리고 모든 것을 살려 주시는‘바’신을 그리워한 것이었다.

 하늘에 해, 땅에서는 박덩굴, 발덩굴은 어디까지든지 뿌리를 박고 어디까지든지 뻗어올랐다.

 그리고 밤마다 꽃이 피어서 어두움을 비추고 주렁주렁 열매를 달았다.

 열매는 많고 크고 해와 같이 둥글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씨가 많았다.

 그 열매는 그릇이 되고 악기가 되고 장식이 되었다.

 박은 신라 사람에게는 생명의 물이었다.

 박씨를 땅에 심어서 싹이 나서 점점 뻗어서 하늘까지 올려닿고 거기 마디마디 박꽃이 피고

 주렁주렁 박이 달리는 것이 그들의 소원이다.

 박을 타면 두 쪽으로 갈린다. 남자요, 여자다.

 그 속에서는 옥과 같은 씨가 수없이 쏟아진다.

 이것이 부부의 소원이요 인생의 소원이다.

 그들은 박뿐 아니라, 넝쿨지고 열매 많이 달리는 것은 다 사랑하였다.

 머루, 다래 이런 것은 다 그들이 사랑하는 바요,

 바람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는 바, 노, 실을 사랑하고

그러한 뒤에는 땋은 것 낳은 것(방직)을 사랑하였다.

 끊임없이 긴 것을 사랑한 것이다.

 삼을 삼아서 기나긴 실을 만드는 것,

 짚을 꼬아서 기나긴 동아줄을 만드는 것은 젊은 남녀의 감정에 가장 맞는 일이었다.

 그리고 술을 먹고 바라를 치며 소리를 하고 춤을 추는 것은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어서

 이 좋은 것은 모두 신께 바쳤다.

 그러나 사람은 죽는다.

 모든 생물은 다 죽는다.

 ‘ 망글어진’ 것은 다 망가진다. 낳은 것은 다 가고 만다.

 그들에게 죽는다는 말이 없고 잔다고 한다.

 죽는 것을 미워하기 때문에 사람 죽은 집은 불살라 버렸다.

 나중에는 무당이 와서 가심을 하고 죽은 자의 의복과 물건을 불살라 버렸다.

 집을 가신 것이다.

 사람이 죽어도 자식이 있고, 늙어서 죽는 것은 괜찮다고 본다.

 박덩굴이 죽어도 박씨가 수두룩이 남으면 안 죽는 것과 같다.

 자식 없는 사람은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생각되고 자식을 못 기르는 어미는 큰 죄가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여자의 몸을 소중히 여겨서 남자는 여자를 욕하거나 때리지 못하고,

여자에게는 낮은 말을 아니 쓴다.

 여자는 집에서 신을 제사하는 제관인 동시에 아들딸을 낳아 길러서 씨를 번식하는

때문이다.

 여자는 힘드는 일을 아니 시키고 때묻은 옷을 입히지 아니 한다.

 안방은 거룩한 방이어서 바깥 사람과 부정한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고 여자가 해산을 하면 대문에

 금줄을 늘여서 아무도 출입을 못한다.

 젊은 여자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늙은 여자라도 지극한 존경을 받는다.

 집안에서 마을에 제사를 드리는 이는 할미다.

 할미에게는 무서운 힘이 있는 것으로 안다.

 모두가 나고 사는 것을 중심으로 된 인생관이요, 윤리다.

 

 원효는 아사가를 앞에 놓고 조상들의 인생관을 생각하였다.

 “ 바마사 ” 하고 원효가 아사가를 불렀다.

 바마사는 아가씨라는 말이다.

 “ 바아 ” 아사가는 이렇게 대답한다.‘ 보았소’하는 말이니‘네’다.

 “ 소원이 무엇이오? ”  원효는 이렇게 물었다.

 여러 날 말을 아니 하고 지나니 말이 잘 나오지를 아니 할 뿐 더러 하려는 말이 다 쓸데없는

 말인 것 같았다.

 말에는 혼이 있어서 말 한마디마다 다 사는 사람에게 복이 되고 화가 된다고 한다.

 복상스럽고 방정맞은 것이 모두 말에 있다고 한다.

 말이 족히 저와 남을 죽이고 살릴 힘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다마라’라고 한다.

 입을 다물라는 말이다.

 특별이 사람 죽은 집 같은 데서는 입을 다물라 한다.

 무슨 수련에서나‘다마라’가 가장 큰 계戒가 되는 것이다.

 원효는 평소에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농담도 잘하고 설명도 잘하였다.

 그러나 강아당에 들어온 지 세 이레에 완전한 다마라 생활을 한 원효는 입을 열어서

 말 한마디 하기가 무척 조심스러웠다.

 ‘ 머시기'‘거시기’소리를 말 허두에 먼저 하는 조상들의 심사를 알 수가 있었다.

 머시기, 거시기는 목욕제계다.

 ‘ 목욕제계하고’ 하는 말이니 허물 없으라, 바라는 뜻이다.

 아사가의 눈은 원효의 눈으로 향하였다.

 맑고 아무 거리낌이 없는 눈이다.

 “ 아사가, 소원이 무엇이오?”  원효는 또 한번 이렇게 물었다.

 “ 가상아당에서 말한 대로.”  아사가는 분명히 대답하였다.

 “ 좋은 남편 만나 좋은 아들딸 낳는 것?”

 “ 그러하오.”

 “ 마음에 둔 사나이가 있소?”

 “ 있소. 원효사마요.”  아사가의 이 말에 원효는 놀랐다.

 “ 원효, 나? ” 하고 원효는 놀라는 빛을 보였다.

 “ 하늘이 정하신 배필이라고 아까 스승님이 말씀하셨소.” 아사가는 이외인 듯한 표정을 짓는다.

 “ 나는 사문沙門인데.” 원효는 이렇게 말하였다.

 “ 요석공주 남편이신 줄도 아오.”  아사가의 이 말에 원효는 또 한번 놀랐다.

 “ 한 번은 파계를 하였지마는 두 번이야 파계를 하겠소?”  원효는 이렇게 말하였다.

 “ 원효사마가 무엇이라고 하셔도 이 몸이 한번 정한 뜻은 바꿀 길이 없소.

 지어미는 지아비를 따르라 하셨으니 하라시는 대로 하겠으나 떠나가라고만 말으시오.”

 아사가는 이렇게 말하였다.

 “사문의 행색은 뜬구름, 흐르는 물과 같아서 정처가 없으니 어찌 함께 할 수가 있겠소?

   그러니 나를 생각하시는 마음을 고쳐서 달리 좋은 선비(사나바)를 구하여 유자생녀하고

   백년해로하시오.” 원효는 이렇게 끊어서 말하였다.

 아사가는 원효의 말을 듣더니 말없이 빙그레 웃는다.

 “ 왜 웃으시오?”  원효는 정색하고 물었다.

 “ 원효대사만한 이가 눈앞에 있는 아사가의 마음을 모르실리가 없거늘 시험을 하시는 것이

   우스워서 웃소.”  원효는 말이 막혔다.

 여자들은 승만여왕, 삼모, 요석공주 등 신라에서 으뜸간다는 여자들은 다 접하였으나

 아사가와 같은 여자는 처음 본다 하였다.

 이것은 범상한 여자가 아니요, 관음화신이 아닌가 하였다.

 원효는 얼마 동안인지 모르게 아사가를 바라보았다.

 아사가도 원효의 눈을 피하지 아니 하였다.

 피할 까닭이 없었다.

 제 마음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는 까닭이다.

 지음이 없는 까닭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제가 보고 싶은 사람을 마음놓고 바라보는 심리였다.

 속에 사특한 생각이 없는 까닭이었다.

 “ 한두 사람의 어머니가 되지 말고 한 불세계佛世界의 어머니가 되시오.”

 원효는 한참이나 있다가 이렇게 말하였다.

 아사가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으나 많은 아들딸을 두라는 말로 알았다.

 구태여 파 물을 필요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왜 그런고 하면 이 세상에서 제 몸을 의탁할 사람은 원효를 두고는 다시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디나 원효가 가는 대로 따라가고 원효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그만이라고 믿어 큰 배를 탄 듯이

 마음이 턱 놓이기 때문이었다. 

 해가 어지간히 높이 올라온 때에 가상아 둘이 원효와 아사가를 맞으러 올라왔다.

 먹을 것과 갈아입을 옷도 가지고 왔다.

 가상아들은 원효와 아가사에게 공손히 절하였다. 이로부터는 스승 대접이다.

 원효와 아사가는 두 가상아의 마중을 받아 가상아당에 내려오니 스승까지도 나와서 맞았다.

 두 사람이 중도에 폐지도 아니 하고 호랑이한테 잡혀먹히지도 아니하고 어젯밤 뇌성벽력에

 벼락을 맞지도 아니 하고 또 신인神人이 주신 바가지를 지닌 것은 그들이 앙아 수련을 끝낸

 성인聖人인 증거가 되는 것이었다.

 “ 얼씨고 좋을씨고 지화자 좋을씨고.” 하고

 가상아들은 두 사람을 싸고 돌며 신을 찬양하였다.

 원효는 가상아당을 떠났다.

 스승은 원효와 아사가를 데리고 동구밖에 있는 집으로 왔다.

 그 집은 원효가 한 달 전에 하루 묵어 간 집이다.

 사사마 소년이 원효를 접대하던 집이다.

 이 날 밤에 이 집에는 큰 자노자(잔치)가 벌어졌다.

 큰 잔치라야 사람이 많이 모인 것이 아니나, 신도의 거두와 불교의 거두가 의지가 상합하여서

 금후로 신불 양교가 어떻게 조화하여 갈 것을 의논하는 자리였고 아울러 가상아당 대선생이

 원효에게서 화엄의 대설법을 받아서 불문에 귀의하는 자리였다.

 원효의 말에 의하면 고신도는 곧 고불古佛의 가르치심으로 석가세존이 성도하신 것도 고불의

 가르치심을 받으심이니 고불은 곧 우리 조상이시요,

 고불의 가르치심은 우리의 말 속에 있다고 하였다.

 “ 참 옳은 말씀이오. 이제 환하게 알겠소.” 하고 스승은 무릎을 치고 기뻐하였다.

 저녁밥을 먹은 후에 원효와 상아 선생은 도학과 나라 일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토론하였다.

 도학에 대하여 상아 선생은 풍류의 도가 점점 쇠하여서 하늘과 조상을 숭배하고 충효신용인의

 도를 닦는 자가 줄어드는 것을 한탄하고 불도를 닦는 자가 세상살이를 귀찮게 여기고 나라를

 돌아보지 않고 오직 저 한 몸의 극락왕생만을 바라는 것을 책망하였다.

 이에 대하여 원효도 동감의 뜻을 표하였다.

 그리고 불교가 결코 현세를 무시하고, 저 한 몸이 잘 되기를 바라는 교가 아닌 것을 말하였다.

 “ 대승보살행이란 그런 것이 아니오. 중생을 위하여서는 제 몸이 지옥이나 축생도에

    들어가도 꺼리지 아니하는 것이 대승보살행이오.”

 원효가 이렇게 역설하는 것을 듣고 상아 선생은,

 “ 그러면 그렇지.” 하고 상아 선생은 매우 기뻐하며 일어나서 붉은 보에 싼 책을 꺼내었다.

 그것은 『가마나 가라나 마다』라는 책으로 『신지 神誌』라고도 하고

 『신사 神史』라고도 하는 책이다.

 가나다라마바사아 여덟 권으로 나뉘어 오늘의 한글과 같으나 받침이 없는 글로 적은 것이다.

 이 글을 가나다라라고도 하고 가나라고도 하니

 가나라함은 하늘이란 말도 되고 나라라는 뜻도 되는 말이다.

 이 속에는 애초에 허공으로부터 천지가 배판하는 말이 적히고

 다음에는 가, 날, 라, 사(해, 밝음, 어두움, 생명) 네 분신의 말씀이 적히고,

 다음에는 마(미리, 용), 바(볏, 봉), 다(달), 아(허공) 등 네 분 신의 말이 적혔다.

 그리고는 사람의 첫 조상이신 사나가, 사나미의 사적이 적히고 이러한 신들의 당을 차리는 법과,

 제사하는 법과, 제사할 때에 부르는 축문과 차려놓은 재물과 또 남녀가 목욕재계하고 수도하는 법과

 인생 생활에 필요한 근본원리, 삼백 예순 가지가 적혀있었다.

 이것이 최치원이 지은『난랑비서 鸞郞碑序』에,

 ‘국유현묘지도 왈풍류 國有玄妙之道 曰風流......열교지원說敎之源

 (우리나라에는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이 가르침을 설치한 근원은 이미 신사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라고 한 그 신사다.

 

 상아 선생은 이 신사를 내어놓고 기운을 내어서 일변 읽으며 일변 설명하였다.

 “ 임금을 충성으로 섬기고, 어버이를 효도로 봉양하고, 사람들과 믿음으로 사귀고,

    전장에 나아가서는 물러남이 없고, 살생을 하되 가리어 하라 

    아무리 불교기로 이밖에 더 나갈 수가 없지 아니 하오?

    만일 이대로만 하면 사후에 극락이 있으면 극락에 나고

    천당이 있으면 천당에 날 것이 아니오?

    도는 스스로 분명하거늘 사람들이 제가 행하지 아니 하고 무슨 신통한 것을 구하니

     어리석지 아니 하오?” 상아 선생은 어성을 높였다.

 “ 옳은 말씀이오.” 하고 원효는 대답하였다.

 “석가 세존의 천언만어가 일언이폐지하면 빌공 空 자 하나니 공 이라는 것은‘나’를

   비게 한단 말이라, 속에‘ 내’가 가득 차고야 충효를 어찌 행하며 신용인은 어찌

   행하오, 한번 내가 공이라고 깨친 뒤에는 만행시삼매 萬行是三昧라, 무엇을 하나 다

   도에 맞아 저절로 충효신용인이 되는 것이니, 내가 보건대 가상아 수련이나 앙아

   수련이 무비 나를 비게 하는 것인가 하오?”

 원효의 이 말에 상아 선생은 부지불각에 일어나서 절하고,

 “ 대사는 내 스승이시오.”하고 소리를 질렀다.

 “ 옳소, 옳소. 좋다, 좋다.‘ 나’라는 욕심을 두고 백년 수련을 하기로니 도가 통할 리가 있겠소.

 아 크고 크다. 참 크다. 참도란 참말 크다.”

 상아 선생은 이렇게 찬탄하였다.

 그러고는 손녀 아사가와 손자 사사마를 불러 새로 원효에게 절하게 하고,

 “ 너희는 평생에 원효대사를 스승으로 모셔라.” 라고 명하였다.

 아사가와 사사마는 기뻐하였다. 아사가와 사사마는 스승께 대한 예로 원효에게 절하였다.

 원효는 두 남매의 절을 막지 아니 하였으나 마음에 심히 괴로웠다.

 그것은 원효가 용신당 수련에서 깊이 저를 반성하면 반성할수록 자기는 아직 남의 스승이 될 수

 없음을 느낀 까닭이었다.

 “ 내가 무엇이 남보다 나아서 스승이 되겠소?”

 원효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는 사람들은 겸사로 알았으나 원효로서는 진정이었다.

 “ 천만에 말씀이시오. 대사로 말씀하면 이름이 천하에 진동하셨거든.”

 상아 선생은 이렇게 말하였다.

 “ 그것이 다 뜬 이름이오.”

 “ 그럴 리가 있소. 당나라에까지 이름이 높으시고, 진덕여왕께서도 대사를 스승으로 존경하였거든,

    이 늙은 것이 눈이 어두워서 누구신지 몰라보았지만.”

 상아 선생은 더욱 원효를 칭송하였다.

 “ 헛된 이름은 높을수록 부끄러운 것이오.

 어떻게 하면 이 헛된 이름을 소멸할까 하고 떠난 길인데 이제 또 손자 손녀를 맡으라하시니

 진실로 어떻게 할 바를 모르겠소.”

 원효는 얼굴과 음성에 참괴한 빛을 띠었다.

 “ 겸겸군자 謙謙君子라, 좋다.”

 상아 선생은 또 무릎을 쳤다.

 “ 아니오.” 하고 원효는 앉음앉음을 고치며,

 “ 조금도 겸사가 아니오. 스승께 거짓말을 사뢸 리가 있으리까.

   앞으로 몇 해 동안 바람같이 떠다니며 마음을 닦으려 하오.

   만일 이 몸이 남의 스승이 될 만하게 되거든 손자와 손녀를 부르오리다.

   그 동안 글 공부나 시키시오.” 하고 원효는 이곳을 떠났다.

 언제까지나 따라나오는 두 소년소녀를 산모퉁이에서,

 “ 그만 들어가거라.” 하고 명하였다.

 “ 스승께서 부르실 때까지 저희들은 무엇을 하오리까.”

 아사가가 두 손으로 읍하고 이렇게 원효에게 물었다.

 “ 할아버지 늙으시고 어머니 병드셨으니 지성으로 시봉하여라.”

 “ 도를 닦는 일은 어찌하오리까.”

 사사마가 이렇게 물었다.

 “ 부모께 효도하는 것이 도니라.”

 이것이 원효의 대답이었다.

 “ 효도의 길은 어떠하나이까.” 아사가가 물었다.

 “ 그때그때 네 스스로 생각하면 알리라. 마음속에 내가 없고 오직 부모만 있으면 효도니라.”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 스승께서는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사사마가 물었다.

 “ 중생이 부르는 데로, 발이 가는 데로.”

 원효는 두 제자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 언제 저희를 불러 주십니까.”아사가의 눈에는 눈물이 어렸다.

 “ 제비는 봄에 오고 기러기는 가을에 가느니라. 잘들 있거라.

    때가 되면 내가 너희를 찾을 수도 있고 너희가 나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고 원효는 아사가와 사사마의 머리와 등을 만지고는 뒤도 아니 돌아보고 걸어갔다.

 바람결에 원효의 테장삼이 펄펄 날리는 것을 두 남매는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서 있었다.

 더구나 아사가는 원효와 떠나는 것이 견딜 수 없이 설었다.

 빈 산속에 단둘이 여러 날을 같이 지낸 것은 비록 젊은 이성이 아니라도

 잊히지 못할 깊은 정이 들 것이다.

 하물며 사모하는 이성이랴.

 아사가 자신은 그것이 여자로서 남자에게 대한 사랑만이라고는 생각지 아니 하여도,

 그래도 그것은 아사가의 남성에 대한 첫 정임에 다름이 없었다.

 “ 누나, 그만 들어가.” 하고 소매를 끄는 사사마에게,

 “ 나는 언제까지라도 여기 있고 싶다.” 한 아사가의 대답은 솔직한 고백이었다.

 사사마는 놀라는 눈으로 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고개를 까닥까닥하여서 동정 할 수가 있었다.

 “ 여기 서 있으면 무엇하오?”

 “ 그도 그렇지.”

 두 사람은 원효가 사라진 방향을 향하여서 한 번 절하고 집길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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