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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재회(再會).

오늘의 쉼터 2009. 6. 29. 00:13

 

7. 재회(再會).

 

 요석공주가 아들 설총薛聰을 데리고 원효가 사는 무애암을 찾아온 것은 칠월 칠석날 해질 무렵이었다.

큰비 뒤 끝이 아직도 개운치 아니 하여서 개었다 흐렸다 비가 오락가락 하였다.

공주는 계집종 반야와 시녀 하나와 요석궁 대사와 원효의 상좌 심상을 데리고 가마를 타고 와서

가마는 도리사에서 돌려보내고 무애암까지는 걸어올라온 것이었다.

무애암에는 아사가가 혼자 있었다.

요석공주는 듣던 바와 같다하고 마중나오는 아사가를 뚫어지게 보았다.

초어스름이라 하기에는 아직 밝은 산간 암자 앞에 서 있는 아사가는 마치 갓 벌어진 도라지꽃이나 박꽃 모양으로 아담하였다.

두 귀밑에 반달 모양으로 늘어진 귀밑머리 쪽, 발목까지 내려덮은 자주 치마, 노란 웃옷.

이러한 차림차림은 항용 일이지만 아사가의 경우에는 특별하게 아름다웠다.

요석공주는 초면인 것도, 원효에 관한 말을 묻는 것도 잊고 얼빠진 듯이 아사가를 보고 있었다.

아사가도 이것이 요석공주인 줄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공주의 눈이 자기를 뚫어지게 보는 것이 아플 지경이었다.

“들어오시지요,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아사가는 공주의 시선을 피하여 계집종에게 업힌 아기를 보았다.

그는 업혀서 오는 동안에 자다가 잠을 깨어서 눈을 뒤룩뒤룩 하고 있었다. 아사가는,

“저 아기가 원효대사 아들인가.”

하고 저 어린 얼굴에서 원효 닮은 곳을 찾으려 하였다.

아사가는 가슴이 울렁거리고 제 몸이 있을 자리를 얻지 못함을 느꼈다.

아기는 원효대사를 닮은 듯도 하고 아니 닮은 듯도 하였다.

“원효대사는 어디 계시오?”

공주는 얼마 후에야 이렇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차고도 떨렸다.

“노스님께서는 물난리 만난 사람 구제하러 가신 지 벌써 닷새가 되어도 아니 돌아오셨습니다.”

아사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번 물난리에 이 고을 일선주에서만 삼백여 명 사람이 죽었고 집이 무너진 것이 천여 호,.

논밭이 떠나가서 못 먹게 된 것이 얼마인지 알 수 없었다.

“대사 혼자 가셨소?”

공주는 다시 물었다.

이 암자에 단둘이 사는가, 또는 둘밖에 다른 사람이 있는가 넌지시 알려는 수였다.

“상좌 한 분하고 이 몸의 오라비동생 데리시고 가셨습니다.”

아사가의 이 대답에 공주는 적이 숨이 돌리는 듯하여서 자기의 속을 아사가에게 송두리째 뽑히지나

아니 하였나 하여 부끄러운 생각이 났다.

 공주가 보기에 아사가는 딸과 같이 어린 계집애지만 그 별 같은 눈이 족히 사람의 속을 꿰뚫어볼 것

 같아서 몸이 옴츠러드는 듯하였다.

“대사 계신 자리가 어디요?”

공주는 파랗게 질린 듯하던 얼굴에 홍훈이 돌고 방그레 미소를 띠면서 한 걸음 아사가에게로

 가까이 갔다.

“여깁니다.”

하고 아사가도 평생 처음 경험하는 질투를 삼키면서 공주를 원효의 방으로 인도하였다.

방에는 경상 하나가 놓이고 경상 위에는 금강경이 놓여 있고, 줄로 결은 방아사가(방석) 하나 있을

 뿐이었다.

공주로서는 평생에 처음 보는 질소한 생활이었다.

공주는 먼저 불탑에 절하였다.

마음으로 부왕 무후의 만세를 빌고 나서는 원효가 물난리에 무사하기를 빌고 다음에는

 설총의 수명장수를 빌었다. 그런뒤에 공주는 계집종을 불러 아기를 들여오라 하였다.

 공주는 설총을 경상 앞에 앉히고,

“아가. 이것이 네 아버님의 자리다. 절하여라.”

이렇게 이르고는 몸소 원효의 자리를 향하여서 절하였다.

설총도 엄마 모양으로 두 팔을 짚고 절하는 모양을 하였다.

원효의 옷을 향하여 날마다 절하게 한 것이 버릇이 된 것이었다.

아사가는 공주가 원효의 자리를 향하여서 이렇게 하는 것이 아름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

공주는 횃대에 걸린 원효의 가사와 장삼을 만져도 보고 방석을 쓸어도 보았다.

서로 번개같이 만났다가 떠난 지 삼년, 공주는 깊은 궁중에서 밤낮으로 원효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 방에서는 원효의 살냄새가 나는 듯도 하나 아사가의 향기가 더 높은 것도 같아서 고개를 돌려 곁에 읍하고 서 있는 아사가를 다시금 돌아보았다.

어차피 한데 모여서 살 수 없는 남편인 줄은 본디부터 알았던 일이지만 사람의 마음은 마음대로 아니

 되는 것이었다.

보고 싶고 그리운 마음을 공주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었다.

뱃속에 든 아이가 점점 자라서 꼼틀꼼틀 놀 때면 남편이 더욱 그리웠다.

 

 아기를 낳으려고 배가 아플 때에는 더욱 못 견디게 남편이 그리웠다.

 차차 배 아픈 것이 재우쳐서 가끔 정신이 아뜩아뜩할 때면 공주는 두 팔을 허공에 내어둘러서

 원효의 힘있는 손을 찾았다. 그 손을 한번 거머쥐기만 하면 금세 아기가 나올 것만 같았다.

 이월 기나긴 밤을 이렇게 허전한 속에서 새었다.

“앙앙.”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손에 닿는 것이면 무엇이나 할퀴고 찢고, 입에 닿는 것이면 무엇이나 물어뜯고 싶었다.

 그렇게도 약약하게 그렇게도 못 견디게 아팠다.

 진통이 잠시 뜸할 때면 못 견디게 졸렸다. 늙은 시녀는,

“졸면 안 되오.” 하고 공주를 흔들었다.

 그러노라면 또 배가 아파 오고 진땀이 부쩍부쩍 났다.

“내가 죽는 것이 아니오?” 마침내 공주는 이런 소리를 하였다.

“그런 말씀 하시는 것 아니오.

  삼신님이 지금 이 방에 계시니 그런 부정한 말씀 하시는 것 아니오.

  지금 아기께서 시각을 찾으시느라고 그러니 제 시각만 되면 언제 낳으시는지 모르게

  아기께서 나오시오.”

 인생 고락에 모르는 것이 없는 시녀는 이렇게 말하여서 공주를 훈계하였다.

 늙은 시녀는 또 이런 말도 하였다.

“아기를 낳는 것은 큰일이오. 아낙네가 아기 하나를 낳으면 전에 지은 모든 죄가 소멸된다 하오.

 그렇게 힘들고 아픈 것을 참고 새 사람을 낳았으니 마마요, 바바(어머니)라는 것이오.

 아낙네가 아기를 낳음으로 신이 되는 것이오.”

 만물을 낳으신 이가 어머니시다. 어머니는 힘들고 아프게 우리를 낳으신 것이다.

 그리고 힘들고 아프게 우리를 기르신 것이다.

 천지가 온통 으스러지고 캄캄해지는 듯한 지독한 아픔이 오자

 공주는 언제 낳는지 모르게 아기를 낳았다.

 아픈 것은 씻은 듯 부신 듯하였다.

 공주는 “으아, 으아”하는 아기의 첫울음 소리를 들을 때에 평생에 처음인 기쁨을 느꼈다.

 진실로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이것은 오직 어머니만이 아는 기쁨이다.

“공주마마. 백자 천손을 담은 커다란 불알이 분명하오.”

 늙은 시녀는 이렇게 말하고 세 번 손뼉을 치고 비벼 우선 삼신님께 빈 뒤에 삼을 가르고 아기를

 향물에 목욕을 시켰다. 아기는 웅장한 소리로 울었다.

"내가 낳기가 힘들고 아픈 것같이 제가 나기도 힘들고 아팠을 것이다.“

 공주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였다.

“힘들고 아프지 않고 되는 일이 어디 있소.”

 늙은 시녀는 이렇게 말하였다.

  태는 살라서 삼신께 도로 바치고 달님께 젖을 빌었다.

 아기가 났다는 기별을 들으시고 왕과 왕후는 요석궁에 거동하셨다. 

 유신각간의 부인이 된 공주의 동생 지소공주도 왔다.

 지소공주의 배에는 벌써 아기가 들어 있었다.

“어, 잘 생겼다. 여러 천 년 제사받을 놈이다.”

 왕이 아기를 보시고 이렇게 기뻐하셨다.

“아바마마, 이 놈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올지.”

 공주는 왕이 기뻐하심이 마음에 흡족하여서 이렇게 왕께 여쭈었다.

“이름이라, 그래 이름을 지어야지.” 하시며 이윽히 눈을 감으시고 궁리하신 뒤에,

“사라사가라고 하자. 사라는 별님이 계시다,

 오래 산다는 뜻도 되고 또 우리나라 이름도 되고, 사가는 별님의 아들이란 말도 되고

 어질고 지혜롭다는 말도 되고 번영한다는 말도 되고, 사라사가, 사라사가 어떻소.”

 왕은 문명부인을 돌아보신다.

“좋은가 하오. 천세 만세 퍼지라고 다가(당아)를 하나 더 붙이시면 어떠하올지.”

 왕후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됐어. 제 아비 이름도 사가다가라 하니 사라사가다가.” 왕은 이렇게 단정하셨다.

‘사라사가다가’에 한자를 붙여서 설총薛聰이라고 하였다 

 세 이레에 당에 빌고 네 이래에 당에 빌고, 이레 만에 당에 빌고 백날에 분황사 부처님께 빌고,

 백스무 날에 방아당에 첫길을 다녀서 아기를 신전에 바치고 당아상아(당아에서 내리신다는 말이니

 지금 말로 동정, 동정은 당에서 내리시는 종이쪽이다)를 받잡고 첫돌에 당아바(당기-당에서 내리시는

 바, 즉 헝겊)를 받았다.

공주는 얼마나 이 날을 기다렸던가. 이제는 동정도 받고 당기도 받았으니

 아기를 데리고 남편을 찾아 떠나도 좋은 것이었다.

공주는 이 뜻을 상감께 여쭈었다.

“원효대사가 지금 어디 있는지 소문을 들었느냐.”

왕은 이렇게 물으셨다.

“어디 있는 데는 모르오나 찾아 떠나면 못 찾을 줄 있사오리까.”

공주는 굳은 결심을 보였다.

 공주의 마음에는 설총을 단 한번만 원효에게 보이기만 하여도 원이 풀릴 것 같았다.

“그러면 각 고을에 영을 내려서 원효대사 있는 데를 찾아보지.”

왕은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그러하오실 것 없는 줄 아오. 요석 모자가 몸소 찾으려 하오.”

공주는 이렇게 아뢰었다.

“그러기로 있는 곳도 모르는 사람을 무턱대고 찾아 떠난단 말이냐.

  이 더운 여름날에 젖먹이 어린 것을 데리고.”

왕은 아버지로서의 근심을 보이셨다.

“그러하오나 그것이 지어미가 지아비를 찾는 도리인가 하오.”

공주의 이 말에 왕은 고개를 끄덕이시고 다시 말리시지 아니하셨다.

 다만 속으로 공주 일생을 위하여서 차비를 잘 하여 주고 수령 방백에게 공주 일행을 잘 도우라고

 분부하실 것을 생각하셨다.

 그러면 임금의 딸로서 받을 만한 대접을 받아서 어디를 가서든지 고생은 아니 되리라고 생각하셨다.

 그러나 그러한 말은 공주에게는 아니 하셨다.

 공주가 서울을 떠난 것은 유월 유두를 지난 어느 날이었다.

 이 여름이 가물어서 농사가 말이 아니요, 산에 초목도 탈 지경이었다.

 날이 잔뜩 흐려서 굵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다가는 곧 개어 버리기를 여러 번 하여서 사람들의

 목마름을 더욱 못 견디게 하였다.

 요석공주의 가마가 서울 거리로 지나갈 때 백성들은,

“아들 낳아 가지고 남편을 찾아가는 요석공주.” 라고 수군거렸다.

공주는 지향없이 갔다.

“어디로 모시오리까.” 하고 모시는 무리가 갈랫길 같은 데서 물으면 공주는,

“아무데로나 원효대사가 계실 만한 데로.”

이렇게 대답하고 좌우의 산천을 바라보았다.

 원효대사가 있는 데면 무슨 환한 빛이라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는 혹은 좌로 혹은 우로 길을 잡아서 갔다.

“원효대사 어디 계신지 모르시오?”

공주를 모시는 대사大舍는 만나는 사람마다 물었다.

“몰라요.”

“뒤옹박을 놀리고 염불하고 다니는 거렁뱅이 스님 어디 있단 말 못 들었소?” 이렇게도 물었다.

“하고 많은 거렁뱅이에 누가 누군줄 아오?”이러한 대답이었다.

공주의 일행은 모자산母子山, 보현산普賢山을 거쳐서 소문국召文國 경내에 다다랐다.

소문국은 대발병 삼십인大發兵三十人하였다는 작은 오랜 나라로서 신라에 합병이 된 나라다.

 그래도 궁궐 터도 있고 임금이 쓰시던 어정御井이라는 우물도 있다.

허어리원許於里院이라는 곳에 이르러서 점심을 먹으며 동네 사람에게 원효대사의 거처를 물었더니

 거사로 차린 사람 하나가 이렇게 말하였다.

“그런 도승이 이름을 말하오.

 세상에서 숨어서 다니지. 내가 빙산원氷山院을 지나노라니까빙산사 빙혈氷山寺氷穴 속에 이상한

 스님이 한 분 와 계시다고 합디다.

중인지 거사인지도 분명치 않고 마을에 밥을 얻으러 내려와서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그런 답디다.

노래를 썩 잘 부른다구요.

그런데 고기를 주면 고기를 먹고, 술을 주면 술을 먹는다는 것을 보니까 중은 아닌지도 모르지요.”

 

이말을 듣고 공주는 기뻤다.

그것이 필시 원효인 것 같았다.

공주는 차비를 급히 몰아서 빙산으로 갔다.

빙산사에서 물으니 과연 빙혈에 웬 사람이 들어 있다고 하였다.

중들 말에는 그는 필시 미친사람이라고 하였다.

“왜 미친 사람이라고 하오?” 이렇게 물었더니

중들의 대답이.

“얼음이 땅땅 얼어붙은 추운 구멍에 들어가서 밥도 며칠에 한 번씩 먹는지 마는지 하고

이따금 나와서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돌아다니니 미친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오?”

이러하였다.

공주는 대사와 종을 데리고 빙혈을 찾아갔다.

 

“저기 커다란 바위가 있지 않소, 그 바위 밑에 찬바람이 씽씽 불어나오는 큰 굴이 있습니다.

 그것이 풍혈風穴이라는 것이고 또 그 밑에 작은 구멍 하나가 있습니다.

 그 속은 얼마나 깊은지 아는 사람이 없소. 말인즉슨 저승까지 닿았다고도 하고 서방세계

 극락정토까지 닿았다고도 하지요.” 이러한 설명을 들었다.

과연 높이 석 자, 너비 댓 자쯤 되는 굴이 있는데 서늘한 바람이 훅훅 내어불어서 땀에 젖은 몸이

 소름이 끼칠 듯하였다.

 공주는 그 굴에 들어가 보았으나 아무것도 없었고 박쥐가 푸덕거릴 뿐이었다.

 공주는 빙혈이라는 것을 찾았다.

 겨우 몸이 들어갈락말락한 구멍이다.

 거기서는 풍혈에서보다 더 찬 기운이 훅훅 내어뿜었다.

 공주는 치마를 가뜬히 졸라매고 그 구멍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대사가 깜짝 놀라,

“안 됩니다. 소인이 먼저 들어가 보고 나오겠습니다.

 속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이런 데 흔히 긴 짐승이 들어 있습니다.”

하고 공주의 앞을 막아섰다.

“이 몸은 남편을 찾아서 위태한 데를 들어가거니와 이녁을 까닭없이 사지에 보내랴.

 아무리 무지한 짐승이기로 남편 찾는 아내의 뜻을 몰라 주랴. 너는 아기나 잘 보호하라.”

하고 공주는 굴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공주는 캄캄한 굴 속으로 더듬더듬 기어들어갔다.

이리 꼬불 저리 꼬불 몇 굽인지 알 수 없는 어떤 굽이에서는 밑으로 뚝 떨어졌다.

“밑 없는 허공에 빠져서 이 몸이 아비지옥 불구덩에 떨어지더라도.”

하고 공주는 허공에 몸을 던지기도 몇 번 하였다.

 점점 추워졌다.

 길을 더듬는 손끝이 얼었다.

머리 위에서 뚝뚝 떨어지던 물방울도 아니 떨어졌다.

 다 얼음이 된 것이었다.

얼마나 들어갔는지 모른다.

 공주는 전신이 꽁꽁 어는 듯하였다.

 발이 가끔 미끌어지는 곳은 얼음판이었다.

 굴이 넓어졌다.

 허리를 펴고 팔을 둘러도 거칠 것이 없었다.

 공주는 한번 소리를 쳐서 불러 보았다.

“아바아(여보오).” 굴속이 웅하고 울렸다.

 울리는 소리가 마치 큰 쇠북 마지막 소리 모양으로 길게 꼬리를 끌다가 스러졌다.

 그리고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공주는 낙심하는 생각이 났다.

‘그래도 끝까지 가 보아야.’ 하고 공주는 걸어들어갔다.

 어디서 불빛이 번쩍하였다.

 공주는 우뚝 섰다.

 소름이 쭉 끼쳤다.

 캄캄한 속에 있던 눈이라 불빛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얼마 후에 다시 눈을 뜨니 분명히 솔광불이었다.

 그리고는 그 불 곁에 웬 사람 하나가 앉아 있었다.

 수염이 많이 나고 눈이 빛났다.

 공주는 원효대사인가 하고 달려들어갔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공주는 우뚝 서며 두 손을 젖가슴에 대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놀라지 마시오. 나도 사람이오.”

그 그림자 같은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다.

 분명히 사람의 음성이었다.

 어떻게 청아한 음성인지. 공주는 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말은 나오지 아니 하였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렸다.

 놀람인가,

 무서움인가,

 안심함인가,

 공주 자신도 잘 분간할 수가 없었다.

 공주가 정신을 진정하기를 기다려 그 사람은 또 이렇게 말하였다.

“공주가 원효대사를 찾아오신 모양이오만 원효대사는 벌써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옮겼으니

  애써 찾을 것도 없지 아니 하오.”

이 말에 진정되려던 공주의 마음은 더욱 산란하였다.

“누구신지 모르오나 부질없는 말씀으로 이 몸을 놀리는가 하오.

 원효대사는 계집에 마음이 흔들릴 어른이 아닌가 하오.”

 하고 공주는 그 사람에 대하여 분함을 느꼈다.

“하핫하핫.”

 하고 그 사람은 배를 흔들고 어깨를 흔들며 웃고 나서,

“계집에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 하는 사람이 어떻게 요석궁 오월 밤에 공주의 방에서

 운우자락이 낭자하여서 아들을 다 낳았겠소? 하하하하, 우스운 말 다 듣겠네.”

하고 또 어깨를 흔들고 웃었다.

“아니오.” 하고 공주는 소리를 높여서,

“그날 밤에는 이 몸이 궤계로 대사를 궁중에 모셔다가.”

 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궁중에는 끌어 가더라도 싫어하는 말 물이야 먹일까.”

 하고 공주를 노려보았다.

 여기서는 공주도 말이 막혔다.

 공주의 눈앞에는 높은 도승인 원효 대신에 계집을 어르는 사내인 원효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공주는 그 사람의 노리는 눈이 범상치 아니 한 눈이라고 생각하였다.

 껄껄대고 웃던 눈과는 딴판이었다.

 대관절 이 사람이 어떻게 자기가 요석공주인 줄을 알며, 어떻게 요석궁 오월 밤이란 것을

 그렇게도 잘 알까.

 이 사람이 필시 원효와 친구로서 서로 마음을 허하는 사람인가 하여서 의지하고 싶은 생각이 났다.

“누구신지 몰라뵈었사오나 원효대사를 잘 아시는 듯하시니 원효대사 계신 곳을 일러 주시오.

 젖먹이 어린 아들에게 아비의 얼굴을 보이려고 지향없이 떠난 몸이니 어여삐 여기시오.”

  공주는 이렇게 애원하는 말을 하였다.

“허허. 안 될 말. 왜 애매한 어린 아기를 팔까.”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또 눈을 흘겼다. 그 눈흘김이 사림이 기절할 만큼 무서웠다.

“어찌한 말씀이온지.?”

 공주는 영문을 몰라서 물었다.

“사내 생각이 나서 원효를 찾아간단 말을 아니 하고 왜 어린애를 팔아? 으응.

 젖먹이가 아비를 보고 싶다 할까.”

공주는 큰 방망이로 정수리를 꽝하고 얻어맞은 것 같았다.

저도 제 마음이 그렇다고 생각한 일은 없건마는 말을 듣고 보면 그 말이 옳은 것 같았다.

그렇지만 자기가 임금의 딸인 줄 알고 하는 말버릇일까 하고 공주는 노여웠다.

“아내가 남편이 그립기로 허물 되오리까.”

공주의 음성은 떨렸다.

“암캐가 수캐를 따르기는 허물 될 것은 없지. 거짓이 허물이란 말요.

 그는 그렇다 하고 아까 말한 대로 원효는 벌써 반한 계집이 있어. 나이는 열입곱,

 이슬 먹은 꽃송아리 같은 계집이오. 아마 공주도 아사가 곁에 가면 무색하오리다.

 새 정에 미친 사람이 옛 계집을 보면 죽일 마음을 낼는지 몰라.

 원효가 그 기운에 한번 주먹으로 치면 공주는 으스러져서 고기 반죽이 되고 말리다.”

“설마 원효대사만한 이가 그러하오리까.”

공주는 그 사람의 무지한 말이 원망스러웠다.

“원효대사야 안 그럴 테지. 원효대사는 안 그럴 테지만 원효라는 사내는 그렇단 말이오.

 대사 원효를 찾아가겠거든 가보오마는 사내 원효를 찾아가겠거든 차라리 여기서 나하고

 하루 자고 가시오. 나도 오래 홀아비 살림으로 계집을 보니 생각이 나오.”

 공주는 전신의 피가 온통 머리로 끓어오르는 듯 분하였다.

“아무리 무엇하기로 말씀이 너무 무례하지 아니 하오?

  이 몸을 어떠한 계집으로 보고 그런 버릇없는 말을 하시오?

  아무리 아무도 보는 이가 없는 굴 속이기로 여기도 불보살과 신명은 조림하시려든.”

  하고 공주는 벌떡 일어나며 아드득하고 이를 갈았다.

“일어나기로 내가 놓쳐 보낼라고.

 여기를 들어오기는 마음대로 들어왔어도 나가기는 마음대로 못할 것을.”

 하고 그 사람이 싱글싱글 웃었다.

 

공주는 이 사람과 목숨을 내어 걸고 싸울 결심을 하였다.

그리고 손을 품에 넣어 몸에 지니는 칼자루를 더듬어 쥐었다.

그리고 목을 가다듬어 소리를 질렀다.

“계집의 한 마음이 어떻게 무서운 줄 알고, 이 몸에 손가락 하나만 건드려 보아라.

  할퀴고 물어뜯고 늘어 잔뼈하나 안 남겨 놓을 터이니.”

 공주는 이렇게 말하면서 뒷걸음으로 슬슬 물러나왔다.

그러면서 그 사람의 눈에서 눈을 떼지 아니하였다.

그사람의 모양이 차차 작아질 때, 문득 그 사람이 벌떡 일어섰다.

공주는 전신에 찬물을 끼얹는 듯함을 느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무서운 모양이 아니오,

관세음보살이 이러할까 하도록 온화하고 자비한 모양을 보였다.

그 사람은 공주편으로 걸어왔다.

 공주는 주춤하고 섰다. 그 사람의 손에는 솔광불이 들렸다.

“지금 들어오던 길로는 가시기 어려울 것으니 내 뒤를 따르시오.”

하고 그 사람은 공주의 앞을 섰다. 공주는 그 사람의 뒤를 따랐다.

“일선주 도리사로 가시면 원효대사를 만나리다.

  그러나 큰비가 올 듯하니 사흘 안에 강을 건너시오.

 그리고 원효대사가 아직도 전세의 업장이 남아 있어서 계집 때문에 도를 못 이룰 근심이 있으니

  잘 도우시오.

 원효대사에게는 인연 있는 여자가 많아.

 이 생이 많이 따라와 있소.

 그 인연을 모두 이기고 끊기가 장히 어려울 거요.

 첫째로 공주한테 졌고, 다음에 위태한 것은 아사가야.

 아사가와의 인연은 공주 이상으로 깊소. 그 밖에 여러 여자가 있어.

 나같이 얼음 구덩이에 앉아 있어도 번뇌의 불이 좀체로 식지 아니 하거든. 하하하하.

 원효대사는 성질이 호탕하여서 이길 심이 부족해. 부디 공주는 더 원효대사를 유혹하지 마시고,

 또 아사가 아가씨와 보기 흉한 시앗 새암은 마시오. 하하하하.

 아사가도 장차 큰 스승이 될 사람이야.”

 그사람은 이런 말을 하였다. 뒤도 돌아보지 아니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솔광불 빛에 그의 장삼 자락과 소매 그림자가 여러 가지 형용을 그렸다.

공주는 그 그림자가 제 몸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뒤를 따랐다.

 굴 밖에 나섰다. ‘쏘아’하고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눈이 부시었다.

한참 뒤에 비로소 발 앞에 산 개울과 산의 푸른 모양이 보였다.

후끈하고 한증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공주는 그 사람의 앞에 공손히 합장하고,

“누구신지 몰라뵈옵고 버릇없는 말씀 많이 아뢰어서 죄송하오.

  화식 먹는 몸이 눈이 무디어서 그리하였사오니 허물 말아 주시오.”

하고 사죄하였다.

“버릇없는 말은 이 몸이 더 많이 한 걸, 하하하하.”

 그 사람은 개천에 엎드려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장삼과 가사가 물이 묻는 것도 모르고.

공주는 그 옷자락을 걷어 잡아 주려 하였으나 아내의 도리에 그리할 수 없다 하여서 굽어지는

몸을 억지로 바로 잡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공주는 놀랐다.

그 사람이 물을 다 먹고 일어설 때에는 가사와 장삼은 조금도 젖지 아니 하였다.

공주는 눈을 크게 뜨고 보았으나 그의 옷에 물 한 방울도 묻지 아니 하였다.

공주는 갑자기 무서운 마음이 나서 합장을 하고 무릎을 꿇었다.

“이 몸 앞에 서신 어른이 누구시온지.”

하고 물었다.

“이름 없는 중이오. 마을 사람들은 미치광이 거렁뱅이라 하지요. 원효대사는 알리다.”

하고 굴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공주는 굴을 향하여 수없이 절하였다.

 나중에 원효에게 이 말을 하였더니 원효가 웃으며,

“응. 월명이 그런 장난을 하였군.” 하였다.

월명月明은 나중에 유명한 도솔가도率歌를 남긴 사람이다.

공주는 월명대사의 말에서 여러 가지 교훈을 자아내면서 도리사를 찾아온 것이다.

 

월명대사의 말대로 공주 일행이 낙동강을 막 건너자

위로부터 큰 물이 내려와서 여러 날 길이 막히고 인축이 많이 빠져 죽었다.

 아사가는 멧나물에 보리 약간 섞인 죽을 끓여서 공주의 일행을 대접하였다.

 아사가는 보리를 한 줌 볶아서 돌로 갈아서 아기 위한 죽을 따로 한 그릇 쑤기를 잊지 아니 하였다.

 “아기가 이걸 잡수실까.”

하고 볶은 보리죽을 공주의 앞에 놓을 때 공주는 아사가의 호의를 눈물이 나도록 고맙게 생각하였다.

 설총은 그 죽을 맛나게 먹었다. 더 달라고 떼를 쓰도록 맛있는 모양이었다.

 그날 밤 공주는 아사가를 곁에 누이고 잤다.

 몸은 피곤하건만 잠은 들지 아니 하였다.

 공주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은 아사가에 대한 질투였다.

 아사가는 가상아당에서 원효대사가 누군 줄도 모르고 함께 수련한 것이며,

 앙아당에서 단둘이 사흘 동안이나 묵은 것이며,

 저는 기어이 이 사람의 아내가 되리라고 생각하였단 말이며,

 제가 그 소원을 원효대사에게 말하였을 때 원효대사가,

 “일불국토중생一佛國土衆生의 어머니가 되시오.”

하고 거절하였단말, 제 조부가 저의 남매를 원효대사의 제자로 맡겼단 말,

이런 말을 공주에게 다 말하였다.

 공주는 더 파서 묻고 싶은 것도 있으면서 체면을 보아서 너무 깊이 묻지는 아니 하였다.

 공주는 아사가가 다만 아름다운 용모를 가졌을 뿐 아니라 비범한 지혜를 가진 여자인 것도알았다.

그 말하는 것이 도저히 열일곱 살 먹은 계집애라고는 생각되지 아니 하였다.

월명사의 말이 다시금 생각혔다.

 ‘내가 사내라도 이만한 계집이면 반하겠다.’

공주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이요, 이것은 이것이다.

 아사가를 찬탄하는 것은 아사가를 시새우는 마음을 소멸은 못하였다.

 도리어 아사가가 비범한 계집이기 때문에 질투의 감정이 더욱 강렬하였다.

 공주는 뛰어난 여성을 많이 보았다.

 첫째로 선덕영왕이었다.

선덕여왕은 진평왕의 맏따님 덕만공주요, 여자로서는 첫 임금이시다.

자장과 유신을 쓰셔서 일변 불교를 확립하고 일변 고구려와 백제를 쳐서 많이 영토를 넓히신 것도

 이 임금이어서 백성들은 성조황고聖朝皇姑라고 존칭한 이시다.

 다음에는 진덕여왕이시다.

 그리고 공주의 어머니 문명부인도 얼굴로나 지혜로나 뛰어난 여성이시다.

 남편 품석을 따라 백제에 잡혀가서 옥사獄死한 친언니 고소타도 미인이요,

 정절 있기로 유명한 이요,

 지금은 유신의 부인이된 친아우 지소공주도 뛰어난 여성이다.

그리고 공주 자신도 결코 남에게지지 아니 하는 여성으로 자처하는 바다.

그러나 아사가는 공주로는 당할 수 없는 여성인 것 같았다.

게다가 나이 어리지 아니 하냐. 공주와 비기면 어미와 딸의 차이가 아니냐.

설사 원효와 아사가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지나가다가 노상에 만났더라도

 질투하지 아니 하고는 ·못 배길 아사가인 것 같았다.

 아름다운 얼굴이라 하더라도 무슨 흠이 있는 법이다.

요사스러움이 있다든지, 천착스러움이 있다든지, 어성이나 손발이나 걸음걸이에 어디 구석이

빈 데가 있다든지, 무엇이나 한 군데 험은 있는 법이다.

그런데 공주가 보기에 아사가에게는 하나도 흠잡을 곳이 없었다.

 

 공주는 아사가가 잠이 들었나 하고 고개를 들고 손으로 아사가의 몸을 더듬었다.

손에 만져진 것은 굵은 베옷이다.

 아사가는 굵은 베옷을 입고 있었다.

 공주는 아사가의 손을 잡았다.

비단 주머니를 만지는 것 같았다.

가슴을 쓸었다.

불룩한 젖이 옷 속으로 만져졌다.

 아사가는 깜짝 놀라는 듯이 일어났다.

 “잠이 안 드십니까.”

 아사가는 공주가 무안할 것이 두려워서 이렇게 물었다.

아사가도 잠이 들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아기가 하도 어여뻐서 만져 보았어.”

 공주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사실상 공주는 아사가에게 대하여서 그러한 감정을 가지고 싶었다.

 ‘귀여운 아름다운 처녀.’

 이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래도 공주의 마음은 공주의 말을 잘 듣지 아니 하였다.

어느구석에서라도 아사가의 흠을 집어내고 싶었다. 

 ‘시골 구석에서 배운 것 없이 본 것 없이 자란 천한 계집앤데.’

 공주는 이러한 생각으로 아사가의 흠을 찾으려 들었다.

 그러나 아사가는 공주의 독한 눈에 대하여서 한 번도 기회를 주지 아니 하였다.

마치 칼 잘 쓰는 사람이 적에게 빈 구석을 아니 보이는 것과 같았다.

 도리어 궁중 생활 사오 년에 방자하게 된 공주 자신의 흠이 눈에 뜨일 뿐이었다.

요만한 것도 남을 시키고, 무슨 일이나 잘못 된 것은 다 아랫사람에게 미루고,

호강에 겨워서 모든 것이 다 뜻에 맞지 아니 하여서 항상 약간의 원망과 노여움이 있고.

 이런 것은 다 궁중의 호사한 생활에서 묻은 때였다.

아버지가 일개 장군으로 있을 때에 가규는 무척 엄하여서 공주는 빗자루 하나를 타고 넘어도

걱정을 듣고 방석 하나를 밟고도 꾸지람을 받았다.

물 한 방울을 함부로 흘려도 어른의 큰소리를 들었다.

앉음앉음, 걸음걸이, 모든 것에 다 법도가 있었고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크면 방자하고 작으면

간사하거나 음란하다는 것이다.

눈을 치떠보거나 곁눈으로 본다고 종아리 맞았고 감을 살을 남기게 버렸다고 다시 씻어서 먹고

신명께 “잘못했습니다.”를 아뢰게 하였다.

 그렇게 엄하게 길린 공주였다.

그러나 요석궁에 있게 됨으로 부터는 부지불식간에 여러 가지 방자한 버릇이 생겼다.

공주는 아사가의 행동거지를 보니 그것이 낱낱이 저를 책망하는 듯하여서 괴로웠다.

 공주가 무애암에 와서 사오 일이 되어도 아사가의 몸가짐은 언제나 한 모양이었다.

그가 소세하거나 머리 빗는 양을 본 일이 없고 옷을 갈아입는 양을 본 일이 없으나

언제나 몸매는 늘 새롭고 깨끗하였다.

 “남에게 누운 양 잠자는 양을 보이지 말라.”

 “남에게 자고 난 낯을 보이지 말라.”

 “남에게 우는 양 웃는 양 성난 양을 보이지 말라.”

하는 것이 진골, 성골 가문 여자의 가르침이었다.

아사가는 바로 이 세가지를 그대로 하는 것이었다.

 공주는 한끝 아사가가 숫처녀가 아니기도 바랐다.

 아사가가 원효에게 한번 지르밟혔으면 그것이 한 가지 흠일 것도 같았다.

 그러나 아사가의 입에서는 비록 잠꼬대로라도 거짓말이 나올수는 없는 것 같았다.

그 맑은 눈매에 음란이나 간사가 숨을 데가 없는 모양으로 그 불그스레하고 한 일 자로

단정하고 마물은 입술로 거짓이나 남을 해칠 말이 나올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지금도 원효대사의 아내가 되고 싶어?”

한번은 공주가 아사가에게 이렇게 물었다.

무슨 대답이 나오나 듣고 싶은 것이었다.

“네”

아사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지금도?”

공주는 그 대답이 하도 의외인 데 놀란 것이었다.

“네. 공부한 지가 며칠 되나요.”

아사가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건 무슨 말이야?”

공주는 아사가의 말 뜻을 모르는 것이었다.

“공부를 하노라면 그 마음이 없어진다고 하셔요.”

“원효대사가?”

“네.”

공주는 눈을 크게 떠서 아사가를 바라보았다.

그 대답이 참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찾아온 것을 아기는 어떻게 생각하나?”

공주는 더욱 아사가가 대답하기 어려운 말인 줄 알면서 물었다.

“처음 오실 때에는 가슴이 울렁거리고 미운 생각이 났습니다.”

아사가는 이 말에는 고개를 숙이고 낯을 붉혔다.

“왜, 샘이 나서? 질투가 나서 말이지?”

공주의 표정은 긴장하였다.

“글쎄요, 그것이 샘이란 것인지 질투란 것인지 처음이 되어서 이름은 모릅니다.”

아사가의 이 대답에 공주는 긴장하였던 표정이 갑자기 풀리며 웃었다.

“아무리 하여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

하고 공주는 열정적으로 아사가를 꽉 안고 울었다.

 원효는 강가에 앉아서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는 더욱더욱 퍼부었다.

 몇 해 동안 올 비가 하루이틀에 다 와 버리려는 것 같았다.

태백산 쪽에서 내려오는 물, 소백산에서 내려오는 물, 축산竺山, 희양산曦陽山 쪽에서

내려오는 물들이 모두 합수가 되어서 금오산金烏山 쪽을 향하고 달려가는 것이다.

아무리 흘러도 미처 빠질 수 없이 위로부터 자꾸자꾸 물이 내리밀려서는 벌판과 촌락을

하나씩 하나씩 집어삼키고 있었다. 뻘건 흙탕물이다.

물결을 치고 소리를 치고 거품을 뿜으며 몰렸다.

 “저기 또 하나 떠옵니다.”

 사사마가 눈빨리 보았다.

 노드리는 듯한 빗발 때문에 지척도 잘 보이지 아니 하였다.

빗방울이 굵어서 뺨과 목덜미를 때리면 사뭇 아팠다.

 과연 떠내려온다. 지붕이다. 지붕 하나가 둥둥 떠내려온다.

그 위에는 사람 넷이 타고 있다. 분명히 내외와 아들딸이다.

 지붕은 거의 다 잠겼다.

그것이 물살을 따라서 뜰락잠길락하며 이쪽을 향하고 내려오고 있다.

 원효와 의명은 배에 올랐다.

 이 물결에 배를 저을 수는 없는 것이다.

강 좌우 언덕에 섰는 버드나무에 줄을 건너 매고 그것을 붙들고 배를 끄는 것이다.

그러나 그 버드나무들도 점점 물에 잠기고 있어서 얼마 안 지나면 그 줄도 쓰기가 어려웠다.

 지붕은 더욱 가까이 왔다.

 원효와 의명은 줄을 당기어서 물목을 지켰다. 지붕과 배가 마주치면 큰일이다.

지붕에 탄 사람들은 그제야 원효와 의명의 배를 본 모양이어서,

 “사람 살리오, 사람 살리오!”

 하고 소리를 쳤다.

 아이들은 갑자기 겁이 난 듯 울었다.

 원효는 손에 들었던 바를 지붕을 향하여 던졌다.

 “이것을 붙들고 물에 뛰어 들어라.”

 하고 소리를 쳤다.

 “뛰어들면 살고 지붕에 붙어 있으면 죽는다.” 의명도 소리를 쳤다.

 원효의 바는 세 번 만에 지붕에 미쳤다.

 남녀는 그 바오락지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아이를 하나씩 꼈다.

그러나 물에 뛰어들려고는 아니 하였다.

 “어서 뛰어 들어라.”

 “뛰어들지 아니 하면 이 줄을 놓아 버릴 테다.”

 “뛰어들면 산다.” 이렇게 외쳤다.

 지붕은 거의 배를 끄는 줄 가까이 왔다.

 “이놈아, 얼른 물에 뛰어들어!”

 “이놈아, 이 줄을 놓을테다.” 하고 위협을 하였다.

 그래도 두 남녀는 울기만 하고 뛰어들지를 아니 하였다.

지붕이 줄 아래로 지나만 가면 이 배까지 꿀려가게 되니 줄을 놓아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효는 힘껏 줄을 나꿔채었다.

 두 남녀는 그 바람에 물에 굴러 내려왔다.

잠시 깜빡하고 사람들은 물 속에 들어가고 지붕은 껑충 뛰는 듯이 들려서는 쏜살같이 흘러

내려간다.

 마침내 네 사람을 건져서 배에 실었다.

 언덕에 내어놓았을 때 어른들은 모두 정신을 잃었다.

그러나 옆구리에 꽉 낀 아이는 팔을 비틀기 전에는 놓지 아니 하였다.

아이들은 떨기만 하고 울지도 못하였다.

 배를 물이 안 올라온 데까지 끌어 내다 놓고 어른 아이 네 사람을 인가로 업어 날랐다.

 인가라야 나룻배 부리던 늙은이 내외가 사는 집이다.

 조그마한 집에 벌써 이 모양으로 건져 온 사람이 이십여 명이었다.

영감은 먹을 것을 구하러 마을로 가고 마누라가 혼자서 시중을 하고 있었다.

 원효와 의명과 사사마는 또 강가로 달려나왔다.

 이 모양으로 하기가 사흘이다. 그동안에는 별의별 사람을 다 건졌다.

한 가족을 온통으로 건진 것은 지금 말한 네 사람뿐이요,

그밖에는 혹은 남편만을, 혹은 아내만을, 혹은 어미만을, 혹은 자식만을 건졌다.

구렁이도 여러 마리 떠내려가고 집도 수없이 떠내려갔다.

시체가 떠내려간 것은 이루 셀 수가 없었다.

 어떤 지붕에는 사람과 닭과 개와 구렁이가 함께 탄 것도 있었다.

 나흘째 되던 날부터 비가 개고 강물이 줄기 시작하였다. 

원효의 일행이 모두 사람을 건진 것이 일백이십여 명이었다.

그러나 건져다 놓은 뒤에 죽은 것이 십여 명이나 되고, 정신 잃고 있는 것도 십여 명이었다.

 원효는 일변 사람을 건질라, 일변 병구완을 할라,

일변 송장을 칠라 오륙 일 동안은 잠은커녕 누울 새도 없었다.

 “손이 천이 있어도 부족하지 아니 한가.”

 원효는 강가에서 의명과 사사마를 보고 이렇게 한탄하였다.

 “천수천안관자재보살千手千眼觀自在菩薩.”

하고 의명은 합장하였다.

 사사마는 평생에 처음 보는 비참한 광경을 본 것이었다.

 건진 사람이 백 스물이면 못 건진 사람은 그보다도 많았다.

더구나 잊을 수 없는 것은 나뭇개비에 매달려서,

 “사람 살려 주우, 사람 살려 주우,”

하고 한 손을 허우적거리는 것을 이편에서 손이 미처 돌아가지도 아니 하여서

그냥 떠내려 보낸 것이었다.

  또 건짐을 받은 사람들도 정신이 들어서 보면 어딘지 모르는 곳,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 속에

저만 혼자 있고 사랑하는 처자가 어디 있는지도 모를 때에는 목을 놓아서 울었다.

나도 함께 죽는다고 강으로 뛰어나가려는 어머니도 있었다.

  그러나 산 사람은 살 수밖에 없었다.

영감이 얻어 나르는 양식으로 백여 명 식구를 먹여 대일 수가 없었다.

건짐받은 사람 중에서 행보할 수 있는 사람을 총출동을 시켜서 일변 먹을 것도 동냥해 오고,

일변 먹을 만한 나물과 풀뿌리도 캐어 들였다.

 그래도 비가 개이고 볕이 나니 살 것 같았다.

강물도 내가 언제 성났더냐 하는 듯이 제 길만을 찾아서 소리없이 흘렀다.

 또 몇 사람이 죽었다.

 이번에는 같은 이재민끼리 눈물을 흘리면서 염불을 하면서 장례를 지내어 주었다.

 “자, 이제는 다들 고향으로 돌아가시오.”

 하루는 원효가 쌀을 져다가 밥 한 끼를 잘 해 먹이고 여러 사람 들을 향하여서 이렇게 말하였다.

 일어나 길을 떠냐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중에는,

 “집도 없고 식구도 다 죽고 내가 가면 어디를 가오?”

 하는 사람도 있었다.

 원효는 홀아비와 과부 여덟 쌍을 혼인을 시켜 주었다.

 그리고 남은 것이 아이가 십여 명, 늙은 여자 셋이었다.

아이는 그중 나이 많은 것이 열다섯, 그중 어린 것이 젖먹이 하나였다.

 이것은 그 어머니가 물 밖에 나와서 며칠 앓다가 죽어버린 고아였다.

 그 나머지는 오륙 세, 칠팔 세, 제 고향과 성명도 잘 모르는 것들이었다.

 원효는 새로 부부 된 사람들에게 아이 하나씩을 맡으라고 응권하였다.

그들은 다 기쁘게 승낙하였다.

원효가 하라는 일이면 물불도 여기지 아니 하려 하였다.

 나룻배 주인 늙은 내외가 열다섯 살 된 아이 하나를 달라고 하였다.

그것을 아들을 삼아서 당장 부려먹고 장래에 의탁하자는 것이다.

 원효는 상동이라는 그 열다섯 살 먹은 아이의 의사를 물었으나

그는 원효를 따라간다고 버티었다.

 “자, 이것도 모두 인연이오. 이제 다들 다시 살아났으니

  지난 일은 다 잊고 새로들 잘들 살아 보시오.

 사람이란 언제나 한번은 죽는 것이니 악한 일 말고 적선들 하면서 살아가시오.

 자 다들 잘 가시오.”하고 그들과 작별하였다. 

그중에는 원효의 앞에 꿇어 엎디어서 우는 이도 있고 죽을 것을 살려 주신 은인이시니

누구신지 이름이나 알려 달라고 애원하는 이도 있었다.

 원효는 목소리를 높여서,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마하살.”

 “여러분을 건지신 이가 이 두 분이니 밤낮으로 이 두 분 명호를 부르시오.

 자 우린 떠나는 길이니 한번 같이 부릅시다.”하고 염불을 하였다.

 일동도 원효를 따라서 불렀다.

 강가에 비 온 뒤 칠월 볕이 찌는 듯 더웠다. 

원효 일행은 도리사를 향하고 오는 길에는 강변에 넘어진 시체를 보면 산으로 옮겨다가

파뭍기를 여러 번 하였다.

 반쯤 무너지고 반만 남은 집에 병들고 굶주린 사람들이 누워 있는 것을 보면 또 먹을 것을

구하여다가 병구완을 하였다.

 이러하기 때문에 오 리를 가다가는 하루를 묵고 십 리를 가다가는 사흘을 묵었다.

 패어 나간 논밭 자취만 남은 촌락의 모양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살아 남은 사람들은 풀뿌리를 캐고 나무껍질을 벗겨서 살려고 애를 썼고

또 조나 피나 수수도 뿌리만 붙은 것이면 더운 볕을 받아서 살려고 힘을 다하였다.

 개구리가 뛰고 맹꽁이가 울었다.

웅덩이에 갇힌 잔고기들이 갈길을 잃고서 물이 마르는 대로 오글오글하였다.

율모기들이 먹을 것을 찾아 슬슬 품 속으로 기었다.

 왜가리 따오기 해오리들이 시세를 만나서 훨훨 날다가는 내려앉았다.

 의명은 원효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러다가는 언제 절에 돌아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디 끝이 있습니까.”

 “왜, 지루하냐, 벌써.”

 원효는 의명을 돌아보았다.

 “지루도 합니다마는~,"

 의명은 무엇이라고 말할 바를 몰랐다.

 “아직 한 달도 못 되었는데 지루해, 그러한 근기로 무변 중생을 어떻게 건질꼬?”

 원효는 사사마를 보았다. 사사마는 빛나는 어린 눈으로 원효의 눈을 마주보았다.

 “사사마. 너는 어떠냐, 너도 지루하냐.”

 이렇게 묻는 원효의 말에 사사마는,

 “지루한 줄은 몰라도 몸이 곤하고 졸립니다.”

하고 주먹으로 눈을 비볐다.

 “잘 먹지도 못하고 잠을 편히 못 자서 그렇구나.”

하고 원효는 사사마와 의명을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모두 살이 빠지고 눈이 들어갔다.

 그도 그럴 일이었다.

 며칠 동안은 물과 싸우고 그 뒤에는 날마다 보는 것이 앓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었다.

썩은 송장 곁에서 모기 벼룩에게 뜯기면서 밤을 새고, 낮에는 그러할 틈도 없거니와 설사

누워서 눈을 붙이려 하기로니 파리와 개미가 성화를 하였다.

 앓는 사람의 오줌똥을 받아내고 송장을 떡 주무르듯하는 것도 이제는 익었다.

처음에는 의명이나 사사마나 그것이 모두 다 더럽고 귀찮고 또 무서웠다.

그러나 원효가 손수 그런 궂은일을 하는 것을 보고는 가만 있을 수가 없어서 억지로 따라 하던

것이 이제는 오줌똥 만지고 송장 주무르는 것이 아무렇지도 아니 하리 만큼 되었다.

 “보살행이란 중생의 오줌똥과 송장 쳐 주는 것이다.”

 원효는 이렇게 두 사람에게 가르쳤다.

 “배불리 먹고 서늘한 다락에 앉아있는 것은 중의 일이 아니다.”

 이러한 훈계도 하였다.

 이러한 원효의 말과 행은 의명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때 신라 중들은 나라와 백성들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 호화로운 생활까지 하는 이도

있었고, 그까지는 못하더라도 청한한 생활을 탐낸 것이었다.

원효와 같은 행을 하는 중은 의명에게는 처음 보는 모본이었다.

 원효와 의명과 사사마가 고아 둘을 데리고 무애암에 돌아온 것은 칠월 백중 전날이었다.

비록 그동안이 보름밖에 안 되지만 의명에게는 석 달은 된 것 같았다.

 여러 가지 사건이 많은 것도 그 까닭이겠지만 평생 상상도 못하던 여러 가지 비참한 일을 본

것이 더욱 세월이 오랜 것 같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의명의 속에는 또 한가지 세월을 길게 보인 것이 있었다.

 그것은 아사가였다. 어디를 가나 무엇을 하나 아사가가 눈에 밟혔다.

그가 외딴 산속에 혼자 있을 것이 위태하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다고 걱정한다는 핑계로

의명은 무시로 아사가를 생각하였고 그 생각은 날이 갈수록 그리움으로 변하였다.

 ‘나도 십 년 수도한 중이다!’

 의명은 혼자 뽐내어 보았으나 쓸데없었다.

 저녁때였다.

 요석 공주는 불공드릴 쌀을 고르고 있었다.

원효와 설총을 위하여서 한 알 한 알 성한 쌀을 고르고 있었다.

상감의 분부로 태수로부터 쌀과 참기름과 미역과 잣과 꿀과 이러한 물건이 왔다.

 그러나 원효가 오기 전이라 하여 하나도 건드리지 아니 하였다.

요석공주는 쌀을 골라서 백중 불공을 하려 하였다.

백중 전에 원효가 돌아오기를 고대고대하였다.

 쌀 한 알 한 알에 요석공주는 남편과 아들을 생각하였다.

몸 성하고 오래 살고 복 많기를 빌었다.

쌀에 조그마한 흠이 있어도 골라 버렸다.

 무애암에 온 지 반달이나 된 요석공주의 마음에는 하루에 편안함이 없었다.

아사가의 아름다움이 그 주된 원인이었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외딴 산속 생활에 날마다 보는 것이 구름과 산이요,

 듣는 것이 물소리와 새소리와 수풀에 부는 바람소리라,

지금까지 살아 오던 인생과는 동떨어진 세상이어서 모든 것이 불안하였다.

더구나 해가 지고 밤이 암자를 싸고 듣지 못하던 밤새 소리가 울어 오거나

소나기가 바람에 몰려서 우수수 재우쳐 올 때면 무서움조차 생겨서 자꾸 설총을 꼭 껴안았다.

 한번은 밤중에 우레와 번개가 일고 바둑돌을 뿌리듯이 비가 쏟아질 때 요석공주는 잠을 깨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우레소리가 귀청이 찢어질 듯,

 금방 가슴 위에 벼락이 떨어지는 듯하여서 공주는 설총을 꼭 껴안았다.

천지가 온통 불이 되는 모양으로 번개가 연거푸 번쩍거릴 때는 공주는 금방 천지가

번복이 되지나 않았는가 하였다.

서울서 보던 것과 이 산속에서 당하는 것과는 우레와 번개가 딴판이었다.

 공주는 결코 겁이 많은 여자는 아니었다.

비록 경험은 없지만 전쟁에 나가더라도 화살이 비오듯하고 창검이 별 같다 하더라도 눈도

깜짝하지 아니 하고 칼을 두르며 적진 중으로 들어갈 용기가 있다고 자신하는 여자다.

냉산 빙혈 속에도 혼자 들어가지 아니 하였느냐.

그러하거늘 지금은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하여졌을까. 공주는 어렴풋하게 그 까닭을 알았다.

 남편을 그리워하고 아들을 생각하고 아사가를 샘하고 이러하기 때문이다.

 탐심이 있으니 잃을까 겁이 나고, 진심이 있으니 해받을까 무섭고,

이리하여서 어리석은 겁이 나는 것이었다.

 번개가 더욱 재우쳐서 방안이 어른어른하고 바로 옆에 벼락이라도 떨어질 듯이 우레가

서두를 때면 공주는 팔을 뻗어서 아사가를 끌어당기었다.

그제야 공주의 무서움은 풀렸다.

 ‘사람은 사랑하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사람을 미워하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로구나.’

 공주는 속으로 이렇게 한탄하였다.

 “아기 자?” 공주는 이렇게 아사가에게 묻는다.

 “아뇨. 깨어 있어요.”

 아사가의 음성을 들으면 공주의 무서움은 더욱 사라지고 사지가 긴장하던 것이 풀리고 숨이

순하게 되었다.

 “번개가 대단하지. 비가 많이 퍼붓는 모양야.”

 공주는 이런 말을 한번 더 하여 본다. 아사가의 음성을 한번 더 듣고 싶은 것이다.

 “네에. 대단하데요.”

 아사가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러한 뒤에야 공주는 다시 잠이 든다.

 ‘내가 죄 있는 사람이로구나.’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공주는 길게 한숨을 쉬는 것이다.

 공주는 아사가에게 향한 질투심을 다 씻어 버리고 잠이 들지만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면

아사가는 여전히 적국이었다.

그는 젊고 아름답고, 그리고 원효를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언제나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공주는 쌀을 고르면서도 이 악심을 극복하여지라고 빌었다.

 ‘아사가는 내게 아무러한 생각도 아니 두는 모양인데 왜 이럴까. 암만해도 죄 많은 계집이다.’

공주는 입술을 문다.

설총이 와서 매어달리면 공주는 비로소 거리낌없는 웃음을 웃는다.

“어미로서는 보살이요. 아내로서는 야차夜叉다.”

공주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공주는 쌀을 고르는 동안이라도 무념무상이 되어 보려고 애를 썼으나

마음 바다의 물결은 아무리 하여도 자지 아니 하였다.

 일찍이 한번도 원효와 단둘이 설총을 데리고 부부생활의 웃고슨(고소한) 맛을 보리라고

생각한 적은 없건만 그래도 곁에 아사가를 놓고 보면,

이 재미를 못 보는 것이 다 아사가 때문인 것 같아서 원망스러웠다.

 “공주마마.”

하고 아사가가 쌀을 고르고 있는 공주의 곁으로 달려왔다.

 “왜?”

 공주는 아사가를 원망하던 생각을 감추느라고 웃었다.

 “저기 노스님이 오셔요.”

 하고 아사가는 손으로 동구를 가리켰다.

 “어디?”

 하고 공주는 벌떡 일어섰다.

 다음에 공주는 어린 계집애 모양으로 가슴이 울렁거렸다.

반가운 것도 같고 무서운 것도 같았다.

그러나 한 시각이라도 빨리 보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공주는 아사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아사가는 공주가 매무새를 고치고 신발을 신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사가의 눈은 여전하였으나 빛이 더한 것 같았다.

 만일 아사가가 원효를 반가와하는 마음이 공주 자신과 같이 간절하다고 하면

공주는 당장에 아사가를 물어뜯고 싶었다.

아사가는 공주의 눈에서 이상한 빛을 보고 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것은 공주의 눈에서 가끔 보는 빛이었다.

 파르스름한 독기였다. 

 아사가는 그 독기가 제게 향한 것임을 알았다.

 “어디?”

하고 공주는 신발을 신고 뜰에 내려서면서 새로운 웃음을 짓고 물으며 아사가의 손을 잡았다.

 아사가의 손은 얼음과 같이 싸늘하였다.

 “저기요.”

 아사가는 공주를 끌고 마당 끝에 나가서 동구를 가리켰다.

 “지금 저 외소나무 밭 모퉁이에 가려서 안 보입니다.

  스님하고 사사마하고, 그리고 어린 아이 둘 하고 또 웬 사람 하나 하고 모두 다섯이야요.”

 아사가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그리고는 암자로 뛰어들어왔다.

 “아기 이리 데리고 오너라.”

하고 공주의 소리가 아사가의 귀에 울려 왔다.

 어린 아들에게 한 시각이라도 바쁘게 아비의 얼굴을 보이려는 어미의 정을 아사가는 느끼면서

 밥솥에 불을 살랐다.

 장마 잎나무는 잘 붙지 아니 하였다.

아사가는 그중 잘 마르고보드라운 것을 골라서 불끼아리를 만들어 불씨를 싸 가지고 후후 불었다.

노르스름한 연기가 모락모락 아사가의 입김을 따라서 흔들렸다.

 아사가는 냇내를 먹어서 눈물이 흘렀다.

 눈물이 흐르니 슬픔이 생겼다. 실컷 울고 싶은 생각이 났다.

 ‘나는 공주의 미움을 받고있다. 스님이 오시면 더욱 미워할 것 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 무척 외로웠다. 공주가 오기 전에는 원효는 아사가 혼자만 생각하고

사모한 사람이었으나 이제 저는 공주에게 밀려난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은 아사가에게는 지금이 처음이었다.

 이러한 생각이 옳지 아니 한 생각인 것 같아서 아사가는 더 힘껏 불을 붙였다.

불끼아리에서 불이 일어났다.

 날름날름 불길이 일다간 꺼지고 일다가는 꺼졌다.

 “후우 후우.”

 아사가는 더욱 기운을 내어서 불었다.

 ‘화’ 하고 정말 큰 불길이 일어났다.

아사가는 불끼아리를 아궁이에 미리 넣어 놓은 새 밑에 불을 넣었다.

 ‘우지끈 우지끈’ 하고 불이 옮아 붙었다.

아사가는 부지깽일들고 아궁이에 붙는 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었다.

 바깥은 조용하였다.

“아마 다들 마중을 나갔나 보다.”

하고 아사가는 솥을 가지고 쌀을 안치고 밥물을 붓고 손을 담가 보았다.

싸늘한 밥물이 아사가의 손등에 찰랑찰랑하였다.

아사가는 아궁이에 나무를 한 아궁이 지피고 얼른 개천으로 나가서 우려 놓았던 도라지와

고비를 들고 들어왔다.

이것은 모두 아사가가 손수 캐고 뜯어 온 것이다. 

 이튿날은 칠월 보름 백중날이었다.

무애암에서는 하루 종일 염불 소리가 들렸다.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고 있던 넋들이 일 년에 한 차례,

백중날 하루 동안 놓여 나와서 그립던 가족들을 만나는 것이다.

 만나기는 만나지만 살아 있는 가족들과 죽은 넋과는 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고

얼굴도 보이지 아니한다.

그래도 서로 곁에 가까이 있거니 하고 애절한 그리움을 푸는 것이다.

 산 사람들은 밥과 떡과 기타 맛있고 정갈한 음식을 만든다.

사랑하던 부모, 처자의 혼령을 대접하자는 정성이다.

지옥도에 빠진 넋은 슬프고 원통하고 밉고 성나고 한 시각도

마음이 편하지를 못하고 지글지글 끓는 것이다.

유황불에 타고 기름 가마에 끓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유황불과 기름 가마는 다 제가 제 업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생전에 탐하던 다섯 가지 욕심이 불이 되고 물이 되고 얼음이 되어서

여러 겁을 두고 본인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그림자와 같이 따라서 아무리 떼려도 뗄 수 없고 도망하려도 도망할 수 없는 업보다.

 머리카락마다 털 구멍마다 퍼런 불길이 뿜어 숨이 막히고 죽게 아프고 괴로우나 마음대로

죽어지지도 아니하는 것이다.

치를 것을 다 치른 뒤에야 이곳을 벗어나거니와 겨우 지옥을 벗어난 박복한 중생은

그날부터 다시 지옥업을 닦는 것이다.

 지옥이란 무행처無幸處라고 한다. 도무지 좋은 일이 없는 곳이라는 말이다.

 사바娑婆, 즉 이세상은 인토忍土, 즉 참을 만한 곳이라는 것이다.

 제석천帝釋天이나 도솔천도率天에는 오직 낙이 있을 뿐이요,

불행이 없고 수명이 무척 길다 하니 사바보다 나은 데지만 거기도 쇠하고 죽음이 있다.

오직 오욕을 떠난 부처님의 세계만이 영원 불변하는 청정한 세계다.

 만일 아귀도에 떨어진 중생이 있다 하면 그는 주리고 목마르고 깊은 괴로움 속에 있는 것이다.

배는 바다와 같이 큰데 목은 바늘과 같이 가늘어서 아무리 마셔도 목마른 것이 그치지 아니하고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한량 없는 탐욕의 업이 이러한 몸을 나툰 것이다.

 “아귀도에 빠진 자는 마시고 먹는 것이 모두 불이 된다고 한다.

  그는 시원한 물 한 모금을 갈구하나 그것이 목구멍에 닿으면 곧 시뻘겋게 녹은 쇳물이 된다.

  그때 그는 세계를 다 주고라도 시원한 물 한 방울을 얻으려 하나 몇천 겁 동안에 치를 것을

  다 치르기 전에는 물 한방울이 제 맛을 가진 채로 그의 목구멍에 들어올 수는 없는 것이다.”

 축생도에 빠지면 날짐승이나 길짐승이 된다.

 잠시도 마음을 놓을 새가 없이 늘 겁을 집어먹고 늘 경동하고 있다.

그는 남의 피를 흘려서먹을 것을 찾거니와 배 부를 만 하면 이번은 제가 남에게 잡혀 먹힌다.

삼악도의 치를 것을 다 치르고 나서 설사 사람의 몸을 받아 세상에 나오더라도 아직은 소멸 못한

악업이 남아서 벙어리, 귀머거리, 갖은 병신이 되거나 정신이 둔탁하여서 옳고 그른 것,

좋고 궂은 것을 가릴 줄 몰라 평생에 애쓰고 힘들여 하는 일이 모두 제게 해로운 일이 되거나,

또 설사 얼굴이 잘나고 총명하더라도 세상이 믿어 주지 아니하여 가령 의원이 되어서 병자에게

약을 쓰더라도 병이 낫지 아니하고 만일 제가 병이 들어 약을 먹더라도 좋은 약이 도리어 해가 되고

부부는 불화하고 자녀는 말을 일려서 평생을 근심 걱정 속에 보내게 되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지금 어떤 곳에 계신가,

우리 어머니는?

 만일 참척을 보았으면 우리 아들딸은?

아내는, 남편은?

 또 내게 은혜를 주던 이는 지금 어떤 곳에 태어나 있나.

 언제나 이러한 생각이 부릴 날이 없겠지마는 칠월 보름 우란분盂蘭盆에는

세상에서는 종과 머슴도 하루는 놓아 주어 제 조상의 무덤과 일가 친척을 찾게 하고

지옥에서도 이 날 하루는 넋을 놓아 보내어 분묘와 집을 찾게 한다는 날이라.

이 날에는 부모, 권속의 넋을 집에 맞아서 하룻밤을 묵이며 먹을 것과 맡을 것과 볼 것을

공양하는 동시에 덕 있는 스승을 청하여 이고득락하는 도를 설하게 하는 것이다.

목련존자目蓮尊者가 그 어머니를 지옥에서 건져내던 일을 본받아서 내 부모와 권속을

건져나 보자는, 살아 있는 자의 지극한 정성이다.

 오욕을 떠난 자의 염불 한마디는 능히 지옥의 불을 끈다고 한다.

 청정한 법사의 손으로 주는 밥과 물이라야 비로소 아귀의 기갈을 멈추는 것이다.

 원효의  눈에는 진덕여왕과 어머니와 할아버지와 또 요석의 전 남편 거진과 이러한 얼굴들이 보인다.

임금은 보살의 화생이시니 십악을 다 끊으시고 십선을 다 닦으시어 수원수생하시는 몸이시거니와

자기를 낳고 곧 돌아간 어머니에 대한 갈앙이 원효에게는 가장 간절하였다.

원효는 지난번 그 어머니 산소에서 좀더 많이 염불을 못 부른 것이 한이 되어서

이날은 그 어머니를 위하여서 만념萬念을 올렸다. 일만 번 염불을 그 어머니께 회향한 것이다.

 다음에 잊히지 못하는 것은 거진이었다. 그 어린 몸이 용맹 있게 싸워서 죽어 넘어진 것을

원효가 적진 중에 들어가서 시체를 안아 왔다. 그때 원효의 옷은 거진의 피로 젖었다.

 요석공주도 거진을 생각하였다.

 칼 잘 쓰고 얼굴 잘났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사가에게는 분명히 기억되었으나

사사마에게는 희미한 기억이었다.

 오래 앓고 누웠던 어머니의 기억이 간절하였다.

 어머니 돌아간 뒤, 첫 우란분이었으니 더욱 그러하였다.

 이 날 원효는 목련경을 설하여서 백중날, 즉 우란분의 연기를 설명하였다.

목련이 그 어머니를 위하여서 슬퍼하고 애쓰는 대 목에 이르러서는 모두들 울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라도 나도 내 사랑하는 이를 건지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맑은 마음이 부르는 염불 한 소리.”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원효는 말하였다.

오욕 번뇌에 젖은 우리들 범부의 마음에는 일생에 한번도 욕심을 떠난 맑은 순간이 있기 어려웠다.

아침에 눈만 뜨면 벌써 오욕의 구름이 일어난다.

“범부의 마음은 장마 하늘과 같다.”

구름이 벗겨질 때가 없고 잠깐 푸른 하늘이 보이는가 하면, 곧 검은 구름이 덮였다.

“자손 된 자의 맑은 염불 한마디 없어서 다생 부모 처자는 영겁의 고에서 헤어나지를 못한다.”

원효는 이러한 말도 하였다.

“욕심을 떠난 마음은 마니보주摩尼寶珠와 같다.

흐린 물이라도 이 구슬을 담그면 곧 맑아지듯이 오탁아세五濁亞世도 이러한 마음으로 맑아진다.

내 마음 하나가 맑아서 보리菩提를 얻으면

온 신라의 중생이 보살이 되고 온 신라의 천지가 극락정토가 되리라. 뉘 이런 뜻을 품었느냐.”

원효가 이렇게 소리를 높였다.

원효의 이 말은

이 자리에 앉은 사람과 수없는 혼령에게 하는 것인 동시에 저 자신에게 하는 외침이었다.

‘나도.’

‘나도.’

하고 공주도 의명도 속으로 맹세하였다.

아사가와 사사마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발분하는 것이었다.

이 날 밥을 먹는 동안에도 부모를 생각하였다.

부모의 넋이 굶주리지나 아니하시나, 만일 어디 가 태어나셨다면 복 좋게 사시나.

또는 아직도 갈 바를 모르고 헤매시나.

내가 먹는 밥이 알알이 다 법력이 되어서 부모 계신 데를 보고지고,

악도에 떨어지셨을진댄 건지고지고.

뜰을 거닐 때에도 부모 생각을 놓지 아니하려 하였다.

다른 잡념이 들지 못하도록 막아내었다.

‘맑은 염불 한마디’의 공양이 그렇게 어려운 줄을 알 때 제 마음이 천창만공인 것을 더욱 느꼈다.

해가 지고 밤이 왔다. 소나기 지나간 뒤 하늘은 파랗게 맑고 달이 떴다.

자시가 되기 전에 넋들은 제자리로 돌아가야만 한다. 시각이 바짝바짝 다가온다.

넋들이 떠나기 전에 한번 더 맛난 것을 공양하고 법을 들리자.

새로운 밥과 시루떡과 물을 올린다. 그리고 더욱 정신을 가다듬어서 염불을 부른다.

“나-무-아-미-타-불.”

이 소리가 제발 맑은 한 염불이 되어서 내 다생 부모 권속이 괴로운 땅을 떠나 극락에 왕생하게 하소서,

 하고 비는 마음은 밤이 깊을수록 더욱 간절하였다.

딱딱 목탁 소리가 밤 삼경에 울리고 보름달은 차차 올라왔다.

무주고혼을 불러서 먹을 밥과 들을 법을 공양할 이는 중밖에 없었다.

나라에서는 일년에 봄가을 두 번 산천지신과 무주고혼을 불러서 제사하고,

또 우란분에는 명승을 청하여서 백중재를 베풀고 목련경을 설하여서

죽은 자와 산 자를 제도하는 큰일을 하거니와,

무릇 중이란 중은 다 일체중생을 건지는 것이 원이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는 친소가 없고

오직 평등이다. 이른바 은친평등恩親平等이다.

누구를 더 위하고 누구를 덜 위함이 없는 것이다.

 악도에서 우는 모든 중생은 중에게는 꼭같은 부모요, 권속인것이다.

그중에 하나라도 못 건져진 자가 있는 동안 그는 결코 성불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일체중생을 건지는 것이 보살의 원이어니와, 한 중생을 위하여서

여러 천생을 나고 죽기를 아끼지 아니하는 것이 또한 보살행이다.

 그렇지마는 속인은 그럴 수가 없다. 남보다도 제 가족을 위하여서 빌 수밖에 없다.

부모는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서 하루에도 백 가지 죄를 짓는다 하거니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역시 저를 위함이 아니요 남을 위하는 것이니 죄는 죄라 하여도 용서받을 죄다.

오직 최소한도의 죄를 지으라 함이 속인에게 구할 도다.

 일부 일부는 최소한도의 음욕이요, 살아나가기에 필요한 물건을 취하고,

또 생명을 살해하는 것은 최소한도의 탐욕이다.

이렇게 한 집을 이루고 최소한도의 죄를 지으면서 최대한도의 공덕을 쌓는 것이 인생의 가정생활이다.

이정도를 지나칠 때에 그것은 지옥업이 되는 것이다.

 어저께 과식하였으면 오늘은 배탈이 나서 밥을 굶어야 하듯이

금생에 빈궁한 사람은모두 전생에 호화로운 탐욕생활을 하던 사람들이다.

금생에 살생을 많이 하면 내생에 병약한 몸을 타고난다.

내가 음란한 값은 나 자신에게도 오거니와 내 자녀에게 영원히 따르는 것은 내 업보다.

피하려도 피할 수 없는 내 업보다.

업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 모양으로 내 발뒤꿈치에 매여서 어디까지든지 나를 따른다.

무덤까지도 지옥까지도, 또 극락세계 까지도 따른다.

그 기록은 세밀하여서 일 호의 차착이 없고 또 그 계산은 엄정하여서 탕감이 없다.

이 빛을 깡그리 다 벗는 날은 오직 성불하는 날이 있을 뿐이다.

 원효는 본다. 주위에 모여앉은 사람들- 요석공주, 설총 등 모두 다 그 발꿈치에는 업보의 줄이 달렸다.

우란분회에 모인 넋들은 그러하다. 삼계 육도중생이 모두 그러하다.

악업의 보는 그들의 눈을 가리워서 업보의 줄을 못보게 한다.

그래서 대언장담하여 가로되,

“업보란 어디 있느냐. 전생 내생이 어디 있느냐.

 다 허망한 소리다. 그저 살아 생전에 제멋대로 살면 고만이다.”

 이렇게 뽐내면서 그들은 더욱더욱 지옥업을 짓는다.

죽어서는 나고 죽어서는 나고 하는 동안에 그들은 점점 더 낮은 데로 떨어져 간다.

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병은 많아지고 정신은 둔탁하여지고 얼굴은 점점 박복한 궁상,

흉상을 띠게 되어서 이러한 사람이 많아지는 대로 나라는 점점 쇠하여 지고

세상은 점점 살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한 중생들은 가는 데마다 지옥을 조성하는 것이다.

제 집을 지옥을 만들고 제 마을, 제나라를 지옥을 만들고, 이리하여서 이 세계를 지옥을 만든다.

그러하되 그들의 정신이 욕심으로 둔탁하여져서 이 모든 지옥고가

다 제 손으로 지은 것인 줄을 깨닫지 못한다.

“중생, 중생아, 인과의 법에 깰지어다.”

 원효는 목탁이 부서져라 하고 두들기며 외쳤다.

“네 고락은 네가 짓는 것이다. 오늘의 고락은 어제까지에 네가 지은 것이요,

명일의 고락은 오늘까지에 네가 지은 것이다.

네가 지어 온 악업을 쌓아 놓을진댄 수미산이 오히려 낮을 것이다.

만일 제불보살의 대자비력, 대위신력이 아니었더면 벌써 인형을 쓴 중생이 자취를 끊었으렸다.

중생, 중생아, 그래도 깰 줄을 모르느냐. 언제까지 제 한 몸을 위하는 욕심에 매어달리려느냐.”

 원효는 또 한번 목탁을 크게 치고 소리를 높이 외쳤다.

 자정이 가까워 졌다.

 이제는 넋들을 돌려보내어야 한다.

잠시 벗었던 목과 쇠사슬을 쓰고 춥고 어두운 머나먼 길을 죄많은 넋들은 다시 걸어야한다.

그들은 다시 치르다 남은 괴로움을 치러야 한다- 깨닫기 전까지는.

 원효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러서 촛불 빛에 번뜩였다.

 원효는 진언을 염하면서 지방들을 떼어서 살랐다.

 일동은 죄많은 넋들에게 한 소리라도 더 들려 보내려고 소리높이 염불을 하였다.

그 넋들을 뒤따라가면서라도 그들의 이고득락을 위하여서 불법을 들려 주고 싶었다.

그처럼 사람들의 마음은 저를 잊고 부모며 권속과 무주고혼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꽉 찼다.

“저승 인정 무엇인고 신심공덕 고작이라.”

  이 몸이 살아 있는 동안에 권세와 재물이 힘을 쓰지만

혼이 한번 이 몸을 떠나면 남는 것은 업보뿐이다.

무섭고 지긋지긋한 모든 고초를 당할 적에 인정을 쓸 것이 무엇인고.

그것은 불법을 믿어서 적선하고 송경하고 염불한 공덕뿐이라는 것이다.

  일동은 불공 퇴물을 나누어 먹었다.

모두 약간 피곤함을 느꼈다.

많은 손님을 치르고 난 집과 같아서 누구나 쓸쓸함을 느꼈다.

  아사가는 정말 아버지와 어머니가 바로 얼마 전까지 여기 와서 계시다가 나간 것 같아서

연해 문 밖을 내다보았다. 아직도 신발을 신느라고 문 밖에 서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바깥은 달빛뿐이었다. 아사가는 불현듯 아버지와 어머니 생각이 나서 슬픔이 북받쳐 올랐다.

“아버지. 어머니. 이리로 돌아오셔요.”

하고 초혼을 부르고 싶었다.

  원효가 장삼을 벗은 때에 그 속에서 나오는 의복이 요석공주가 손수 지은 의복인 것을 볼 때

더욱 울고 싶었다.

아사가는 제가 원효에게 쓸데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이 생각하여지는 것이 슬펐다.

‘스승님이신데, 머. 남편이길래, 왜.’

  아사가는 이렇게 저를 타일렀으나 그래도 그 슬픔은 가시지 아니하였다.

  원효는 공주와 한 방으로 자러 들어갔다.

아사가와 공주의 시녀와 원효가 데리고 온 계집애가 한 방에 들고 큰방에서는 남자들이 잤다.

  원효가 공주와 한 방에서 자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아사가에게는 그것이 무슨 큰 변괴인 것 같았다.

‘어쩌면 아까 그 법사가.’

하고 아사가는 원효에게 대하여서 강한 반감을 느꼈다.

  아사가는 아무리 하여도 잠이 들지 아니하였다.

무엇을 잃은 것도 같고 발길에 얻어채인 것도 같았다.

처녀인 아사가는 남녀관계를 모르지만, 어쨌건 원효대사로서는 못할 일인 것만 같아서 분하였다.

‘무엇이 큰 스승이야.’

  아사가는 원효를 향하여 침이라도 뱉어 주고 싶은 충동을 누를수가 없었다.

‘그게 무엇이야. 한 번은 파계를 했기로소니. 앙아당이에서 날더러 무엇이라 했어.

파계를 한 번이나 하지 두 번 하겠느냐고.

날더러는 모든 중생의 어머니가 되라고 안 그랬어? 그런데, 그런데.’

  아사가는 견디지 못하여서 문을 열고 뜰에 나섰다.

  달은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벌레 소리만 더욱 요란한데

원효와 공주가 든 방의 창에는 반쯤 달빛이 비치어 있었다.

  아사가는,

‘에 더러워!’

하는 듯이 고개를 원효의 창에서 돌렸다.

그리고 시냇가로 방향없이 걸어갔다. 호랑이나 늑대가 나올는지도 모른다.

메밀꽃 일이의 독한 뱀이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다 무섭지 아니하였다.

  산골짜기의 시꺼먼 그늘이 지옥이 벌린 입과 같아서 아사가는 몸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그러기로 어때, 무섭긴 무엇이 무서워.’

하고 아사가는 허둥지둥 그 어두운 그림자를 향하고 걸었다.

원효를 생각하고 도라지와 더덕을 캐러 가는 걸음과는 다르다.

  졸졸졸 물소리도 이제는 안 들린다. 이따금 흉물스러운 부엉이 소리가 들릴 뿐이다.

‘부헝, 부헝.’

할 때면 그래도 아사가는 머리가 쭈뼛하여서 멈칫 섰다.

그러나 그는 암자로 돌아오려 하지 아니하고 점점 더 골짜기로 올라갔다.

  달이 아주 봉우리에 가리웠다. 갑자기 캄캄해졌다.

  아사가는 또 한번 머리가 쭈뼛하고 몸에 소름이 끼쳤다.

  아사가는 반은 미친듯이,

 “어머니, 어머니.”

하고 소리를 질렀다. 산에서도,

“어머니, 어머니.”

하고 산울림이 대답하였다.

  아사가의 소리에 소낙비 소리 같은 벌레 소리가 뚝 그쳤다.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고요함이었다.

그러나 얼마 아니하여서 벌레들이 다시 울기를 시작하였다.

벌레 소리가 다시 나니 전과 같은 세상인 것 같았다.

  아사가는 어딘지 모르고 더 들어갔다.

풀잎에 맺힌 이슬이 아사가의 뜨거운 몸에 스치는 것이 얼음과 같이 찼다.

  얼마를 가니 수풀이었다. 나무와 풀이 엉키어서 향방을 잡을 수가 없을뿐더러

이리 향하여도 나무와 마주치고 저리 향하여도 나무와 마주쳤다.

진펄인 듯하여서 풀도 길이 넘게 자랐다.

칠통같이 어두웠다. 나뭇가지 사이로 별빛이 보이는 것이 더욱 어둡게 하는 것 같았다.

  반딧불이 날고 접동새가 울었다. 멀리서는 여전히 부엉이 소리가 들렸다.

  아사가는 본능적으로 이 어두운 숲속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

지금 오던 길로 돌아만 가면 될 것 같으나 그것이 어느 방향인지 알 수 없었다.

  아사가는 벗어나려는 모든 노력이 헛됨을 느낄 때 옆에 있는 나무에 몸을 기대고

두 손을 깍지를 껴서 가슴에 대고,

“어머니, 어머니. 나를 데려가오.”

하고 소리껏 외쳤다. 그러나 웬일인지 소리도 잘 나오지 아니하고 산울림도 없었다.

  아사가는 모기가 앙앙거리며 덤비는 것을 알았으나 그것을 쫒아 버릴 기력도 없었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내가 왜이래? 내가 왜이래? 내가 어디를 왔어? 이거 어디야?”

하고 중얼거리는 것도 무의식이었다.

 

 공주의 시녀는 아사가가 나가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는 무심히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어났을 때에도

옆에 아사가가 없는 것을 보고는 소스라쳐 놀랐다.

여자의 제육감이라 할까,

시녀는 아사가의 마음을 아는 것 같았다.

  ‘어디 갔을까.’

  시녀는 이렇게 생각하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때에 창에는 벌써 달빛이 없었다.

  ‘죽지나 아니하였을까.’

  시녀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그도 나이는 삼십이 가까웠으나 궁중에 숨어서 자란 처녀라 남녀의 정은 몰라도,

모르는 대신에 도리어 여러 가지로 상상을 하는 것이었다.

공주가 원효대사를 사모하는 모양을 곁에서 보고는 그는 그것이 부러웠다.

원효가 요석궁에 처음 들어오던 날 그를 욕실로 인도한 것이나 그에게 새옷을 입힌 것이나,

또 원효와 공주를 위하여서 잠자리를 깔고 개키는 것이나

요석궁 사흘 동안에 원효의 곁에서 수종을 든 것이 그 였다.

  그러매 시녀는 아사가의 마음을 제 마음에 비겨서 동정할 수가 있었다.

아사가의 아름다움을 공주가 시기하듯이 저도 시기하면서도

그는 무한히 아사가에 대한 애착을 느꼈다.

  여자가 천이라도 마음은 하나다. 여자의 마음은 여자가 안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이것이다.

지혜와 지위가 다르다 하더라도 근본 마음은 하나다.

하필 여자뿐이랴. 남자도 마찬가지다. 남자와 남자는 서로 뜻을 안다.

평생에 처음 본 사람이라도 금세 한자리에서 자다가 나온 것과 같이 남자는 남자의 뜻을 안다.

  그러므로 시녀는 공주와 아사가의 뜻을 알고 의명은 원효의 뜻을 안다.

나이 어린 사사마도 원효의 뜻을 짐작한다.

어찌 사람의 마음 뿐이랴. 짐승도 벌레도 귀신도 마음은 하나요, 뜻은 하나다.

밤 버러지 우는 소리가 잠 못 이루는 사람의 마음에 통하지 아니하느냐.

하고 싶고도 못하는 괴로움, 싫은 일 아니하지 못하는 괴로움,

그리운 이 못 만나고, 만나도 떠나는 설움,

둘이서 한 물건을 앞에 놓고 서로 제 것을 만들려고 하는 괴로움,

사람의 괴로움이나, 새 짐승 버러지의 괴로움이나 다 같다.

한마음 한뜻에서 나온 것이다 천만 겁 전이나 후나 중생의 마음은 다 하나다.

  그러므로 공주와 같이 귀한 이가 잘난 남자를 그리워하면 시녀와 같이 천한 이도 그러한 것이다.

  이때에 한 생각이 달라서 만 가지 모양이 생기는 것이다.

  “지인차일념 현출만반형只因差一念 現出萬般形

   (지금 어긋난 한 생각으로 만 가지 형상이 나타나네).”

  사람들은 원효가 다른 중생과 같지 아니하기를 바라기는 바라면서 미덥지는 못한 것이었다.

  시녀는 원효가 법력이 높은 선지식인 것을 믿는다.

그러나 원효도 입이 있으니 먹고 이빨이 있으니 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녀의 생각은 맞았다. 설총을 낳지 아니하였느냐.

그렇다면 이번에 또 둘째 설총이 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나.

아사가인들 설총을 낳지 말란 법이 어디 있으며 저인들 설총을 못 낳으란 법은 어디있나.

시녀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 같은 사내지 별다른 사람이 아닌 것도 같았다.

  시녀가 생각하기에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남들은 다 남편을 가져서 아기를 낳는데

저만은 언제까지나 남편이 없는 것이었다.

남편과 한 집에 사는 것은 더할 수 없는 낙일 것 같았다.

시녀도 무척 그러고 싶었으나 이렁그렁 삼십이 다 되었다.

  아사가에게도 남편을 하나 주고 시녀 자기에게도 남편을 하나 주고,

원효는 공주의 남편으로 영영 같이 살고 이 모양으로 되었으면 천하태평일 것 같았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 못하였다.

요석궁중에도 시녀와 같은 남편 없는 여자가 십여 명이나 있었고 대궐 안에는 수백 명이나 되었다.

모두 웬일일까.

왜들 그럴까 하고 시녀는 그것을 기막힌 의문으로 생각한다.

  “역시 그랬군. 그러기에 아사가가 오늘 밤에 달아났지.”

 시녀는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문을 열었다.

 벌써 달은 지고 훤하게 먼동이 텄다. 시녀는 신발을 신고 뜰에 내리섰다.

 시녀의 눈은 뜰에서 거니는 의명을 보았다.

 그는 곁에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는 듯이 어두움 속에서 발자국을 세는 것 모양으로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아바요, 스님.”하고 시녀는 의명의 곁으로 가까이 갔다.

  “아바요.”하고 의명이 우뚝 섰다.

  시녀는 의명이 필시 아사가를 생각하고 이렇게 거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의명은 벌써 가사 장삼을 입고 있었다.

 혹시 뒤숭숭한 생각으로 잠을 못 이루어서 가사 장삼으로 위의를 갖춘 것인지도 모른다고

시녀는 생각하였다.

시녀는 의명의 속을 빤히 들여다보는 것 같다고 믿는다.

원효도 제 마음과 다름이 없을진대 의명 따위야 하고 이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의명은 스스러운 중이 아니요,

오랫동안 한 지붕 밑에서 자라난 동무와 같아서 스스러움이 없었다.

 “아사가 아가씨 어디 가신지 아셔요?” 시녀는 이렇게 물었다.

 “아사가 아가씨?”하는 의명의 음성은 분명히 놀란 음성이었다.

 “네. 아사가 아가씨가 어디 가시고 안 계셔요.” 시녀는 근심으로 한숨을 쉬었다.

 “언제요? 아사가 아가씨가 언제 어디를 갔어요?”

 의명은 몹시 놀랐다. 의명도 시녀 모양으로 아사가의 마음을 상상 못한 것은 아니었다.

 “글쎄 파재하고 불 끈 지 얼마 안 되어서 문을 열고 나가시길래 소피를 보러 가시는 것으로만

  알고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깐 아직도 안 돌아오셨어요.

  그래서 어떡허면 좋은가 하고 일어나 나왔습니다마는.”

 “허어. 이거 큰일났군요.”

하고 의명은 원효가 자는 방을 바라본다. 고요하였다.

 “어디 가셨을까요?”

 시녀는 어두움 속에 의명을 쳐다본다. 의명의 몸이 자리를 못잡은 듯이 움직였다.

 의명은 원효의 침실 밖으로 갔다.

 “스님. 노스님.” 의명은 이렇게 부르고 귀를 기울였다.

방문 밖에는 원효의 커다란 피 껍질 신과 공주의 조그마한 꽃당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왜?” 원효의 크고 무거운 음성이 들렸다.

 “아사가가 어디 가고 없습니다.”

 의명은 한 걸음 더 방문 밖에 다가섰다.

 “아사가가?” 다시 원효의 소리가 나왔다.

 “예. 파재 후에 불 끄고 누웠다가 나갔는데 아직도 아니 돌아왔다고 시녀 아가씨가 그럽니다.”

 하고 의명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원효가 앞을 서고 의명과 사사마가 뒤를 따라서 아사가를 찾아 나섰다.

 바로 달이 넘어간 뒤라 하늘은 새벽 빛으로 훤하건만 땅은 칠통같이 어두웠다.

 원효는 잠깐 발을 멈추고 생각하다가는 가고 또 멈추고 생각하다가는 갔다.

 주위를 바라보고는 그때의 아사가의 심경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아사가를 찾는 원효의 일행은 점점 골짜기로 깊이 들어갔다.

이제는 밤새 소리도 벌레 소리도 드물고 한 소나기 내릴 듯이 풀에는 이슬이 흠씬 내려서

원효의 장삼자락을 후줄근하게 적셨다.

 아닌 밤중에 이 외딴 골짜기로 혼자 올라갔을 아사가의 심경을 생각하면

원효나 의명이나 가슴이 아팠다.

 “스님. 아사가가 아래로 내려갔으면 어찌합니까.” 의명은 이렇게 물었다.

 “아니, 이리로 올라갔을 것이다.”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원효는 아사가가 세상으로 내려갔을 것을 믿지 아니하였다.

원효에 대하여 실망하였으니 세상에 내려가서 다른 사람을 찾겠다

이러할 아사가가 아닌 줄은 원효는 믿는다.

 아사가가 원효에게 실망하였으면

그가 할 유일한 일은 산으로 높이높이 올라가는 것뿐일 것이라고 원효는 믿는다.

올라가다가 죽어 버리는 것이 아사가가 취할 유일한 길인 것을 원효는 믿는다.

불그레한 빛이 동천에 비치었다.

원효는 해가 뜨리라고 생각되는 붉은 하늘 쪽을 향하여서 합장하였다.

“아, 아, 암, 악.”

“아, 비, 라, 흠.”

하는 대일여래大日如來의 주문을 염하였다.

그 뜻은

처음 것은 ,

“제법본불생 만행즉삼매 대공즉보리 정제즉열반

 諸法本不生 萬行卽三昧 大空卽菩提 淨除卽涅槃

 (모든 법은 본래 생기지도 않았고 모든 행동이 곧 삼매이다.

   크게 비어 있는 것이 보리심이요, 버려 깨끗하게 함이 곧 열반이다).”이요,

둘째 것은,

“제법본불생(지) 본성이고황(수) 청정무염구(화) 인업등허공(풍)

 諸法本不生(地) 本性離苦況(水) 淸淨無染垢(火) 因業等虛空(風)

(모든 법은 본래 생기지도 않았고(지) 본성이 고를 떠났으니(수)

청정하여 때에 더럽혀지지 않고(화) 인과업보는 모두 공허한 것(풍).”이라는 뜻이다.

 원효는 스승 없이 배운 사람이라 모두 경에서 보고 자기가 정한 법이었다.

 해는 고대 신앙에서도 중심이 되거니와 불교에서 대일여래라는 어른은 분명 해를 표상하는

것이어서 신라 사람에게 그 뜻이 얼른 알아졌다.

 원효도 해를 숭배하였다. 모든 빛의 근원, 열의 근원, 생명의 근원이신 해라,

모든 것을 낳고 기르시건만 그러시는 체 없으시니 이것이 무위라고 원효는 생각한다.

해는 빛을 주신다. 빛이 없으면 생명이 없을 것이거니와 빛 없는 생명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얼마나 슬픈 생명일까.

 그러나 우리는 그 빛의 밝음을 견디지 못하는 수가 있다.

너무 밝아서 우리의 눈이 부시어 보는 힘을 잃어버리는 수가 있다.

 만일 해가 그의 빛을 온통으로 우리에게 쏟아 주신다면 우리는 다 타버리고 말 것이다.

우리 몸은 너무 큰 빛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해는 우리를 위하시와 조금밖에 빛을 아니 보내어 주신다.

멀리 높이 물러서 계셔서 우리가 받을 만한 정도의 빛을 보내신다.

마치 어린애에게는 밥을 많이 아니 주시고 암죽을 조그만치 먹이시는 어머니 모양으로.

 그러나 그 빛이 현재의 우리에게는 부족하지는 아니하다.

그 빛으로 우리 생명이 유지되고 우리가 먹고 살 풀과 기타 우리가 보고 즐길

생물의 꽃을 피우고 알을 낳을 만하다.

해는 어머니시다. ‘바바’는 어머니시다. 해는 영원히 우리, 이세계 중생의 어머니시다.

해의 덕을 대표한 이가 인생에 있어서는 어머니요,

아내요,

딸이요,

누이다.

그중에도 아름답고 마음 착한 여성은 가장 많이 해의 덕을 가진 이다.

그에게 다분으로 신성神性이 있다.

남자는 여자를 사모하는 것으로 일생의 일을 삼는다.

어머니로, 누이로, 사랑하는 이로, 아내로, 딸로 온 평생에 여성을 사모하고 있다.

 남자는 어머니의 사랑의 품에서 자라서 아내의 사랑의 품을 사모한다.

그러므로 그가 아내를 구하는 열정은 그가 발하는 열정 중에 가장 큰 열정이다.

그는 능히 제 열정으로 제 목숨을 태워 버린다.

 여성은 남성의 앞에 연약한 모양을 나톤다. 아름다운 모양을 나톤다.

어머니는 젖먹이에게도 휘둘리는 양을 보인다. 눈물은 여성의 본성이다.

성을 낼 때에 그는 남성을 본받는 것이다.

해가 만물의 생명력의 원천이 되는 모양으로

여성은 인생을 낳는 어머니인 동시에 그에게 힘드는 일,

어려운 일을 이루게 하는 활동력을 준다.

이러기 때문에 신라인은 여성숭배자였다.

원효에게도 이 피가 흘렀다.

 여성이 남성을 멸망케 하는 독이요,

 적의 모양을 나토는 때가 있다.

그것은 남자가 여자를 모독하는 생각을 가지는 때다.

마치 물이 고마운 것이지마는 우리가 물을 적으로 생각하고 덤빌 때에

물은 우리를 적으로 삼아서 삼켜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보다도 신을 사랑하는 자에게 신은 복을 주되

신을 모독하는 자에게 신은 무서운 복수자가 되는 것과 같다.

 신라인은 여성을 안방에 모신다.

 안방은 앙아방아로 최고신을 모신 데다.

어머니와 아내는 최고신을 모시는 제관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 있는 남자라도 여자와 다투지 못한다.

아무리 젊고 낮은 여자라도 남자는 그에게 하대하는 말을 아니한다.

 신라의 제관은 대개가 여자였다.

가상아(지금 말로 기생)가 여자인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당아를 제하고는 대개 여자가 신관이었다.

신라가 여성을 천히 여긴 것은 당나라의 풍이 들어온 뒤였다.

여성을 희롱하고 천히 여기게 되자 신라는 망한 것이었다.

“아사가. 아사가.”

 동방을 향하여서 합장하고 난 원효는 아사가를 불렀다.

그 우렁찬 소리는 새벽 산골짜기를 울렸다.

“아사가. 아사가.”하고 산울림도 아사가를 불렀다.

 아사가라는 것은 아침이 있는 곳, 즉 아침의 정기를 받은 사람이란 뜻이다.

여기서 아사가를 부르는 것은 천지의 새빛을 부르는 것과 같았다.

 원효의 소리도 사라지고 산울림의 화답도 사라졌다.

원효는 이윽히 귀를 기울였으나 아무 대답도 없었다. 원효는 또 다시

“아사가. 아-사-가.”

하고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불렀다.

이번에는 산울림도 더 큰 소리로,

“아사가. 아-사-가.”

하고 화답하였으나 아사가의 대답은 없었다.

 동편 하늘의 붉음이 마치 아사가를 대신하여서 대답하는 모양으로 더 환히 하늘을 물들였다.

지다 남은 별들이 반짝 거렸다.

 원효의 마음속에 아사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아침 볕 모양으로 북받쳐올랐다.

만일 아사가가 이 앞에 나타난다면 두팔을 벌려서 안아 쳐들 것 같았다.

“누나. 누나.”

 사사마도 소년다운 고운 소리로 아사가를 불렀다.

 원효는 사방을 돌아보다가 한 방향으로 자신 있는 듯이 빨리 걸었다.

원효는 그 방향에서 아사가의 빛이 발하고 향기가 풍겨 오는 것을 느꼈다.

 아직 탐욕으로 더렵혀지지 아니한 깨끗한 처녀의 몸에서 빛이 아니 발할 리가 없고

향기가 아니 동할 리가 없다.

무변허공에 뜬 해와 달의 빛이 원효의 눈에 보인다 하면 아사가의 빛이 아니

보일 리가 없을 것이다.

이 산중에 정녕 아사가가 있는 곳이 있을 양이면 그 향기가 산 어느 곳에도 아니 날 리가 없다.

그러나 신의 빛의 빛과 향기는 오직 맑은 마음을 가진 자에게 알려지는 것이다.

우리는 평생 신의 빛 가운데 있으면서 그 빛을 보지 못하니

우리의 악업의 보가 눈을 가리우서 소경이 되게 한 것이요,

신의 향기를 맡지 못하는 것은 비린내에 코가 무딘 것이다.

 원효는 아사가의 마음을 만일에 질투가 흔들었기를 두려워한다.

 그렇다 하면 그 깨끗함이 더러워진 것이다.

천지간에 완전히 순결한 여성을 한 사람만을 보전하고 싶었다.

그 한 사람의 빛과 향기가 모든 중생의 질투로 끓는 마음을 식혀 줄 수 있는 것이다.

원효는 아사가의 순결을 끝까지 보호하고 싶었다.

앙아당에서 말한 바와 같이 아사가는 한두 사람의 어머니가 되지 말고,

한 불세계 중생의 큰 어머니가 되기를 바랐다.

 아사가의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서는 원효는 무슨 일을 하여도 좋을 것 같았다.

칼을 들어서 살생을 하는 것도 꺼리지 아니하려 하였다.

 오래간만에 한번 꽃이 피는 우담바라 優曇鉢羅 꽃도 싹은 나가지고야 볼 일이다.

쑥대와 같은 잡초와 잡목은 한없이 나도 우담바라는 좀체로 나지 아니한다.

하물며 죄로 더렵혀진 국토에서랴. 청정국토가 아니고는 아니 나는 꽃이다.

 모처럼 난 우담바라 싹을 밟아 버리면 어이 하리, 말려 버리면 어이 하리,

무심한 버러지의 밥이 되게 하면 어이 하리. 아사가는 신라의 우담바라라고 원효는 믿는다.

 이 어린 싹을 지키는 농부로 원효는 자처한다.

아무데 혼자 내어놓더라도 아무것도 범접 못하도록 길러야 한다고 원효는 믿는다.

그런데 아사가는 어찌 되었나.

 원효는 이슬에 젖은 풀을 헤쳐서 옷을 적시면서 수풀을 향하고 걸었다.

 비를 맞은 나뭇잎 모양으로 나뭇잎에서도 이슬방울이 떨어졌다.

졸리는 벌레 소리가 끊일락이을락 하였다.

 마침내 원효는 아사가의 발자국을 보았다.

그것은 사람의 발에 밟힌 듯한 누운 풀이었다.

죽기보다 더 쓰린 슬픔을 품은 사람이 아니면 뉘라서 밤에 여기를 지나리,

낮엔들 여기를 오리. 꺽인 풀은 시들지 아니하였다.

 원효는 그 발자국을 이윽히 들여다보고 말이 없었다.

반갑고 억하기도 하거니와 또 이슬에 젖어서 쓰러진 아사가를 보는 것 같아서 슬프기도 하였다.

 원효가 한 발을 내어딛고 한 발은 발 뒤꿈치를 든 채로 걸음을 멈추고 땅바닥을 들여다 보고

서 있는 모양이 의명과 사사마의 마음을 찔렀다.

 그들도 한 걸음씩 다가와서 발에 밟혀서 부러진 풀을 들여다 보았다.

 세 사람은 그 발자국이 계속한 데를 찾으려고 둘러보았으나 아직 어두웠다.

원효는 주위의 산 형세를 바라보고 아사가의 깊이, 높이 가자는 마음이 향하였으리라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진펄이어서 풀은 더욱 깊고 나무숲이었다.

나무가 무성하여서 앞을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원효는 의명과 사사마에게 명하여서 세 줄로 갈려서 이 숲속을 톺기로 하였다.

그리고 한번 더,

“아사가. 아사가.”

하고 불러 보았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원효의 마음에는 실망의 그림자가 내렸다.

이 숲속에 아사가가 있기는 있을 것 같으나 벌써 생명은 없을 것 같았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을 시체로 아사가가 눈앞에 나설 것 같았다.

 원효는 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이슬 방울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면서 눈에 정신을 모아서 한 걸음 한 걸음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아사가!”

 원효는 눈앞에 희끄무레한 모양을 보았다.

가로누운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웅크리고 앉은 모양 같기도 하였다.

“아사가!”

하고 원효는 수풀을 뜷고 달리는 범의 형세로 그 부유스름한 곳을 향하여서 돌진하였다.

원효의 돌진하는 몸에 걸려서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꺾이느라고 우지끈 소리를 내었다.

“아사가!”

 아사가다. 아사가는 한 팔에 낯을 대고 꾸부린 채 쓰러져 있었다.

“아사가!”

하고 원효는 몸을 굽혀서 아사가를 안아 치어 들었다.

목과 사지가 기운 없이 축 늘어졌으나 코에는 숨이 있었다.

“아사가. 아사가.”

하고 원효는 잠든 아기를 깨우듯이 안은채로 흔들었다.

 이 소리에 의명과 사사마가,

“어-이.”

하고 군호를 하였다.

“아사가 찾았으니 아까 오던 길로 나오너라.”

 원효는 크게 소리쳤다.

 아사가의 몸은 흠씬 젖고 시체 모양으로 찼다.

 그래도 수풀의 어두움 속에서 원효는 아사가를 찾았다.

다시는 아사가를 잃어버릴리가 없다 하고 원효는 수풀 밖에 나와서 아침빛에 비치인

아사가의 자는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아사가. 아사가.”

하고 요석공주는 가끔 아사가의 귀에 입술이 닿으리만치 가까이 입을 대고 불렀다.

그러나 아직도 아사가는 정신이 들지 아니하였다.

 공주의 행리에서 약을 내어서 공주는 정성스럽게 아사가에게 약을 먹였다.

향을 갈아서 공주의 젖을 짜서 개어서 먹였다.

그리고 아사가의 입술에 흘러내린 약을 공주는 가만히 애정을 가지고 훔치어 주었다.

 아사가의 이번 일이 질투라 하여도 공주의 생각에는 아름답고 귀여웠다.

 입에 내어서 말은커녕 원효에 대한 사모하는 정을 낯색에도 아니 내이면서도 제 몸을 죽여

버리고 싶도록 간절히 생각하는 아사가의 참되고 뜨거운 정이 공주를 울린 것이었다.

여자의 마음은 여자가 안다. 공주는 아사가의 정곡을 속속들이 알아줄 것 같았다.

“아사가. 아사가.”

 공주는 설총에게 대한 것과 다름없는 애정으로 아사가의 등을 만지고 머리를 만졌다.

 공주는 원효가 안아 온 아사가를 받아서 손수 자기의 옷을 내어 갈아입히고 더운 물에

손발을 씻기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연하게 흘러나오는 정이었다.

 아사가의 자는 얼굴에는 미움이나 원망의 티는 없었다.

 편안히 자는 어린아기 표정이었다.

‘이런 얼굴 속에 티끌만한 악인들 숨을 자리가 있으랴.’

 공주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공주는 아사가의 원효에게 대한 사랑에서 남녀의 정을 초월한 무엇을 보는 것 같았다.

 저는 사나이로 원효를 보건만 아사가는 보살로 원효를 사모하는 것이 아닌가.

 원효가 아사가를 두 팔에 안고 산에서 내려오는 것을 볼 때 공주의 마음에는 일시 놀이 일어났으나 

 원효가 공주의 앞 지척에 왔을 때에 공주는 원효의 얼굴에서 전에 못 보던 것을 보았다.

그것은 빛이었다.

 원효의 몸에서 전에 못 보던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이 빛이 공주의 가슴에 일어나던 질투의 불을 꺼버린 것이었다.

아사가의 입술에 붉은 빛이 돌고 해쓱하던 두 볼에도 홍훈이 돌았다.

 공주가 정성으로 갈아 먹인 반혼향返魂香이 힘을 발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공주는 얼른 아사가의 입에 제 입을 대고 침을 흘려넣었다.

이것이 세 번째다.

만일 세 번 침을 흘려넣어서 살아나지 아니하면 손가락을 끊어서 피를 흘려 넣는 것이다.

내 생명을 네게 갈라 준다는 뜻이다.

 공주의 입에 닿는 아사가의 입은 이번에는 따뜻하였다.

아사가의 입술이 움직였다.

“아사가. 아사가.”

 공주는 아사가의 두 볼에 손을 대어 가만히 흔들면서 낮은 소리로 불렀다.

 아사가는 눈을 떴다. 그것은 자다가 깨는 어린애의 눈이었다.

“아사가, 살아났구먼.”

하고 공주는 아사가의 볼에 제 볼을 부비며 울었다.

아사가는 공주의 눈물이 뜨거움을 살에 느꼈다.

아사가도 두 팔을 들어서 공주의 몸을 안았다.

 " 아사가"

 " 공주마마"

이렇게 두 사람은 주고 받았다.

그밖에는 말이 없었다.

바로 이날이다.

다 석양에 무애암 나중에는 고선사高仙寺라고 부르게되었다

이에 이상한 사람이 하나가 왔다.

그는 수없이 뚫어진 누더기를 입은 거지였다.

그는 뜰에 섰는 의명을보고,

 " 원효있나!"하고 반말로 물었다.

얼굴에는 때가 묻어 젊었는지 늙었는지 분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 예. 계시오. 누구시오니까."

의명은 원효대사를 아이 이름 부르듯하는 이 거지가 대체 무엇인가 하면서 공손하게 대답하였다.

 " 이리 좀 나오라고 일러라."

하는 그 거지의 음성에는 위엄이 있었다.

의명의 말을 듣고 원효가 방에서 나왔다.

원효는 신을 신고 그 거지의 곁으로 와서 합장하고 배례하였으나 그 거지는 답례를 아니하였다.

 " 우리 경 싣고 오던 암소가 죽었어. 자네 같이 가서 장사하지 아니하려나."

거지는 원효를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원효가 무슨 뜻인지 몰라 주저하는 것을 보고 그 거지는 웃으며,

 " 자네는 귀인과 미색과 그만치 가까이 했으니 이제는 빈천하고 누추한 것을 볼 때도 되었지.

   또 여기서 할 일은 벌써 다 끝나지 않았나."

이렇게 말하였다.

원효는 곧 들어와서 행장을 차렸다.

 " 어디로 가시는데, 언제 오십니까."

하는 공주의 말에 원효는,

 " 가는데도 모르고 올 날도 모르오."

하고 그 거지를 따라서 암자를 나섰다.

 " 이렇게 날이 저물었는데 저녁이라도 잡숫고."

하고 의명이 따라나왔다.

 " 해가 지면 달이 뜨지 않나."

그 거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 언제 돌아오십니까."

의명은 염려되는 듯이 물었다.

 " 허어, 무거무래역무주無去無來亦無住도 몰라.

   가는 것도 없거니 돌아오는 것이 어디 있으리."

역시 거지가 대답하였다.

 " 소승도 모시고 가겠습니다."

하는 의명의 말에 거지는,

 " 다리가 아파서 못 따라올 걸."

하고 원효에게는 말할 새도 주지 아니 하였다.

그리고는 거지와 원효는 나는 듯이 산을 내려갔다.

의명은 얼마를 따라가 보았으나 과연 따를 수가 없었다.

원효는 그 거지를 따라서 밤새도록 걸었다.

원효도 자기 걸음이 평소보다 몇 갑절 빨라짐을 깨달았으나 그 거지를 따르기는 힘이 들었다.

새벽에 원효는 서울에 다다른 것을 깨달았다.

만선북리萬善北里라는 동네 조그마한 집으로 원효는 끌려 들어갔다.

거기는 거지가 사오 인 모여 있었다.

그 거지들은 하나도 성한 사람이 없었다.

어떤 이는 눈이 애꾸요,

어떤 이는 팔이 병신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곱추나 앉은뱅이였다.

늙은이도 있고 젊은이도 있었다.

원효는 손을 들어 합장하여서 여러 거지들께 예를 하였으나

거지들은 빙그레 웃거나 고개를 끄덕할 뿐이요,

답례하는 이가 없었다.

“ 자 이리 들어오라구.

   우리 어머니 시신이 여기 있으니 들어와서 수계授戒나 하고 송경이나 하여 달라구.”

 거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거지는 바마 보고[蛇福]가 이름이다. 빨리 부르면 뱀복이가 된다.

 ‘보고’는‘바가’와 같은 말로‘바' 의 아들, 즉 남자를 아름답게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 신라에서는 남자의 이름에‘사가’도 붙인다.‘사’는 신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지금‘석’이라는 말이다.)

 전설에 의하면 뱀복이는 과부의 몸에 난 아들로서 열두 살이 되도록 일어나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여서 뱀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뱀복이를 낳은 과부는 오래 병으로 누워서 낫지도 아니하고 죽지도 아니하고 뱀복이도

 그렇게 몸을 쓰지 못하는 것을 거지들이 모여들어 먹여살리다가 뱀복이가 어른이 되자

 어느덧 거지 두목이 되어 뱀을 잡아서 파는 것으로 업을 삼았으니 후세에 땅꾼의 조상이 된 것이었다.

 천여 년이나 내려오는 상아강아[辰韓]로부터의 사로斯盧 인 신라 서울에는 뱀과 구렁이가 성하여서

가끔 사람을 해하는 일이 있었다.

 그뿐 아니라 뱀을 혹은 사라신이라 하고, 혹은 바마신이라 하여서 그것을 건드리면 큰 벌이 내리고

잘 위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는 미신도 있으므로 백성들은 감히 이것을 건드리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뱀이 성할 대로 성한 것이었다.

 뱀복이는 부하 땅꾼을 데리고 서울에 끓는 뱀을 잡아서 먹기도하고 보약으로 팔기도 한 것이었다.

 뱀이 난도하는 집에서는 뱀복이를 청하였다.

 그러면 뱀복이는 그 집에 가서 피리를 불었다.

 뱀복이의 피리 소리를 들으면 뱀들이 있는 대로 나와서 뱀복이가 주는 술을 양껏 먹고

 취하여 넘어졌다.

 그러면 뱀복이는 이 뱀들을 허리에 감고 어깨에 메고 두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뱀복이가 뱀을 잡기 시작한 뒤로는 서울에 뱀이 줄었다.

 전하는 말에는 뱀복이를 보면 뱀이 고개를 들어 뱀복이가 손을 내밀어서 제 모가지를

 잡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사람들은 뱀복이가 당아신을 모시기 때문에 뱀이 범접을 못한다고 하였다.

 원효가 방에 들어가서 놀란 것은 방바닥에 깔아 놓은 자리가 온통 뱀의 껍질로 엮어 놓은 것이었다.

 원효는 그것을 밟기가 무시무시하였으나 뱀복이는 태연하였다.

 금세 여기저기서 뱀들이 입을 벌리고 덤비어 들 것만 같았다.

“ 죽은 뱀도 무서운가.”

 뱀복이는 원효를 보고 눈을 흘겼다.

 그 눈에도 뱀의 눈과 같은 빛이 있는 것 같았다.

 원효는 제 마음속에 아직도 무서움이 남은 것을 깨달았다.

 아직 멀었구나 하고 속으로 한탄하였다.

 시체에는 그래도 베 홑이불이 덮여 있었다.

 파리가 웅웅하고 시체에서 일어났다.

 뱀복은 무릎을 꿇고 시체를 향하여,

“ 어머니. 원효대사가 오셨소.”

 하고 산 사람에게 말하듯이 말한 뒤에 원효를 향하여서,

“ 이 이가 내 어머니야. 옛날 우리 둘이 경을 가져올 때 그 경을 싣고 오던 암소야. 검은 암소 아닌가.

 경을 실은 공덕으로 사람의 몸은 타고났으나 닦은 복도 덕도 없으니 평생에 빈궁하고

 하천하여 매맞고 굶어죽을 팔자라 내 잠시 그의 아들로 온 것이야. 그런데 임종에

 원효대사의 계를 받으면 자기가 제도를 받겠노라고 그러기에 자네를 청해 온 걸세.

 아마 임명종시에 혜두가 열려서 희미하게나마 숙명宿命이 보인 모양이야.

 그렇지만 생전에 수계할 복은 없어서 이제 겨우 사후 수계를 하는 것일세.” 이렇게 말하였다.

 실로 거지로서 원효대사에게 계를 받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 그럽시다.”

 하고 원효는 수계하는 법문을 한 뒤에 시체를 향하여,

“ 나지 말진저, 나기 괴로워라(막생혜 기사야고 寞生兮 其死也苦). 죽지 말진저,

 나기 괴로 워라(막사혜 기생야고 寞死兮 其生也苦).”라고 노래를 불렀다.

 뱀복이가 듣고 있다가,

“ 응, 웬말이 그리 많어. 죽고 나기 괴로워라면 고만이지.”

 하고 원효의 노래를 타박하여 그쳤다.

 법문이 끝나자 밖에 모였던 거지들은 모조리 허리에서 굵은 뱀 한 마리씩을 꺼내어,

꿈틀꿈틀하는 것을 껍질을 벗기고 회를 쳐서 접시에 담아 소반에 받쳐서 시체 앞에 놓고

그 중 늙은 앉은뱅이 거지가 무르팍걸음으로 시체 앞에 와서 질병을 들어서 술 한 반을

듬뿍 부어 놓고 노래를 불렀다.(노래란 원래 신께 아뢰는 말씀이라는 뜻이다).

“ 잡수시오 잡수시오, 마지막 잡수시오. 멀고먼 저승길을 배고프고 어이 가리.

  칠십 평생 치른 고생 깨고 나니 꿈일러라.

  꿈이야 꿈이라마는 괴롭기도 괴로운지고.

  나고 죽기 그만하고 극락이나 구경가오.

  아야. 아미타불님 이 넋 맞아 가소서.”

그 말 하며 소리 하며 어느 대사의 법문보다 낫다고 원효는 감탄하였다.

 “ 자. 내 뒷채를 잡을 테니 대사가 앞채를 잡으소.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 되소.”

뱀복은 명령조였다.

원효는 그가 하라는 대로 아니할 수 없었다.

맞들이 것에 시체를 담아서 원효가 앞채를 들고 뱀복이가 뒷채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하나 둘 거지가 따라 서고 구경꾼 아이들이 따라서고 아이들을 따르는 개가 따르고,

이 모양으로 장례가 진행할수록 사람이 늘었다.

 “ 원효대사다. 원효대사다.”

하고 원효를 알아보는 이가 있어서 짜아하고 소문이 났다.

원효대사가 땅꾼 어미 행상에 앞채를 들었다는 것은 일반 사람에게도 놀라운 일이었으나

더욱 승려 간에는 큰 비난거리가 되었다.

이것은 승려의 체면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하여서 원효를 더럽게 비방하였다.

 이 비방을 듣고 달려온 것은 원효의 옛날 제자 심상이었다.

 심상은 활리산活里山 기슭에서 행상을 만났다.

 심상은 땀을 흘리며 따라왔다. 어떻게나 이상한 행상이던고.

시체를 베 홑이불 하나에 싸서 맞드는 것에 담고 원효대사와 뱀복이가 맞들고

 병신, 거지, 땅꾼패 수백 명이 호송하는 것이다.

신라가 생긴 이래 일찍이 이러한 장례는 보지를 못한 것이었다.

 “ 스님 ”

하고 심상은 상여 옆을 지나서 원효 곁으로 갔다.

원효는 심상에게 고개를 돌렸다.

 “ 오. 너 어째 왔느냐?”

 “ 스님. 큰일났습니다.”

심상은 다른 거지들이 듣기를 꺼리는 듯 말을 낮추었다.

 “ 무슨 큰일?”

 “ 분황사에서 대중이 들고일어나서 이번에는 스님을 가만두지 아니한다고 황룡사에랑,

홍륜사에랑 장안 큰 절이란 큰절에 모두 통문을 돌렸소.

파계승 원효를 없애 버린다고. 게다가 땅꾼 땅쟁이 어미 상두군까지 된다고.

이번에는 가만둘 수 없다고. 아마 이리로 몰려올 것입니다.”

 “ 어, 다들 오래라.”

 “ 오면 어찌하오?”

 “ 저희 어미 장례에 안 오겠느냐. 와서 흙 한 가래라도 담아 부어야지.”

 “ 저희 어미가 누구오니까.”

 “ 지금 이 장례가 너희 어머니 장례란 말이다.”

 원효의 이 말에 심상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석가여래께서 길가에 구르는 해골을 보고 전생 부모의 해골이라고

절하셨다는 말을 생각하였다.

 그러니 심상의 분한 마음은 가라앉았지마는 장차 몰려올 젊은 중들의 행패를

어떻게 막아낼까 걱정이었다.

 그러나 원효의 눈치를 보니 태연자약하였다.

 이마에서 구슬땀이 흐르고 땀이 가사에까지 내어배었다.

 “ 스님, 가사 장삼은 벗으시지요.”

 심상이 딱하여서 한 채를 손으로 받쳤다.

 “ 부처님 행상에 착가사 장삼을 아니할까.”

 심상은 더 할 말이 없었다.

 “ 여기야 여기.”

 뱀복이가 우뚝 섰다. 원효도 섰다.

시체를 내려 놓았다. 거지들은 메고 들고 온 가래로 광정을 팠다.

 “ 두 사람 들어가게 파라.”

 뱀복은 이렇게 명하였다.

 “ 둘이라니?”

 한 거지가 놀랐다.

 “ 우리 어머니가 평생에 나를 떠나기를 싫어하셨으니 내가 모시고 가야.”

 뱀복이는 태연하게 이렇게 말하면서 홑이불귀를 들어서 어머니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거지들은 명한 대로 두 구덩이를 팠다.

구덩이가 다 되어서 장차 하관을 하려 할 때,

수백 명이나 되는 중들이 저마다 몽둥이를 들고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 잠깐 기다려라. 저 제관들이 다 오거든 하관을 하자.”

 원효가 이렇게 말하였다.

중떼들은 물밀 듯 달려왔다.

 원효가 두 손을 들어서 합장하자 중들도 일제히 몽둥이를 던지고 합장하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중들은 분한 생각이 나서 모두 몽둥이를 집어들었다. 그중 한 중이 썩 나서며,

 “ 원효대사. 아니 파계승 원효스님.”

하고 원효의 앞에 다가서는 것을 또 한 중이 가로막으며,

 “ 원효대사는 다 무엇이고, 원효스님은 다 무엇이냐.

   이미 요석 공주와 행음을 하였으니 물음계勿淫戒를 범하였고,

   또 뱀을 죽였으니 물살계勿殺戒를 범하였고,

   이제 또 가사 장삼을 입고 땅꾼의 어미 상여를....”

이렇게 말할 때 거지 하나가 쓱 나서며,

 “ 무엇이? 지금 하던 말 또 한번 해 보아라.”

하고 대들었다.

 “ 오, 네가 천한 거지로서 감히 사문沙門을 욕하느냐.”

 “ 사문? 사문이면 자비심이 있고 만심慢心이 없으려거든. 듣거라.

   너희야말로 중생을 미워하고 나보다 나은 자를 시기하니 살생계를 범하였고,

   닦으라는 도는 닦지 아니하고 높은 집에 누워서 중생의 수고로 된 밥과 옷을 값없이 먹으니

   이는 도적이라 투도계偸盜戒를 범하였고, 겉은 가사 장삼으로 쌌으나 속에는 음욕이 가득하여

   지나가는 여인을 보면 마음으로 무소불위하니 사음계邪淫戒를 범하였고, 뒷구멍으로는 속인이 하는

   일을 다 하면서 가장 사문인 체하니, 이는 세상을 속이는 것이라 망어계妄語戒를 범하였고,

   이미 인과因果를 잊고 탐진치貪瞋癡로 업을 삼으니 음주계飮酒戒를 범한 놈들이라,

   대목에 때려죽여 마땅한 악당이거든 사문이 무슨 사문이란 말이냐.

   너희가 우리를 거지라 하고 땅꾼이라 하거니와, 우리는 남이 버리는 것을 먹고 싫어하는 뱀을 잡아

   생활하는 사람들이라 너희보다 떳떳하게 정명正命, 정업正業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너희 소위가 괘씸한 것으로 보면 당장에, 당장에 박살할 것이로되 이제 불사가 있으니

   용서하는 것이라, 조용히 하고 합장염불이나 하여라.”

 이 말에 중들은 말이 막히려니와, 모인 거지들의 살기가 등등한 눈치를 보고는 모두들 주춤하였다.

더구나 버러지같이 생각하였던 거지의 입으로 이러한 설법을 들은 것은 아니 놀랄 수가 없었다.

성난 중들이 주춤하는 틈을 타서 뱀복이는,

“ 자, 때가 되었소. 다들 잘 있으오. 이생에 여러 동무들께 신세도 많이 졌소.

미륵회상에서 다시 만납시다.”

하고 거지들께 작별인사를 한 뒤에 몸을 돌려 중들을 향하고,

“ 여러 스님네들, 내 어머니 장례에 이렇게 모여 주신 것도 다 묵은 인연이오.

 옛날 가섭불회상에서 우리 모두 동문수학하였으니, 그때에도 내가 먼저 죽고

원효대사가 뒤에 남아 여러 스님네를 가르치셨거니와,

이제 또 석가모니불회상에서 우리 이렇게 다시 만났소.

사람의 몸을 타고 나기 어렵고 부처님 법을 만나기 어려워라.

인생 백년이 부싯불 같아서 보이는 듯 스러지니 불자불자佛子佛子야,

바쁜지고 바쁜지고. 시각이 바쁜지고. 이러쿵저러쿵 남의 시비하고 싸울 사이 있던가.”

하고 뱀복이는 한층 소리를 높여,

“ 불자야, 모두 제 발부리를 보앗!”

하고 호령하였다.

 이 소리에 중들이 소스라쳐 놀라서 저마다 제 발부리를 보니 난데없는 독사가

대가리를 반짝 들고 혀를 날름거리며 한 사람에 한 마리씩 대들었다.

“ 이크!”

하고 일제히 놀라고 무서운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이 광경을 보고 뱀복이가 껄걸 웃으며,

“ 업보의 그대들을 따름이 저 독사와 같도다. 깨어 있을진저.”

하고 나니 사람들 앞에 뱀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뱀복이는 어머니의 시체 앞에 서서 대중을 바라보고 게偈를 읊었다.

“ 왕석석가모니불 사라수간입열반 우금역유여피자 욕입연화장계관

   往昔釋迦牟尼佛 娑羅樹間入涅槃 于今亦有如彼者 慾入蓮花藏界寬

  (옛날 석가모니불은 사라나무 두 나무 사이에서 열반에 드셨거니와

   이제도 그와 같은 사람이 있어 연화장 넓은 세계에 들어가려 하노라).”

 하고는 어머니의 시체를 들쳐 업고 광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에 대하여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 언흘 발모경 하유세계 황랑청허 칠보난순 누각장엄 태비인간세

   言訖 拔茅莖 下有世界 晃朗淸虛 七寶欄楯 樓閣莊嚴 殆非人間世

   복부시공입 기지암연이합 효내환 

   福負尸共入 其地庵然而合 曉乃還

  (말을 마치고 띠풀의 줄기를 뽑으니 그 밑에 밝고 맑은 세계가 있는데

  칠보로 장식한 난간의 누각이 장엄하여 인간 세상은 아닌 것 같았다. 

   뱀복이 주검을 메고 안으로 들어가니 갑자기 그 땅이 닫혀버린다.

   이를 보고 원효는 그대로 돌아왔다).’ 이라고 적혀 있다.

 이 말대로 하면 광을 판 것이 아니라 뱀복이가 잔디 한 포기를 잡아 빼니

 그 밑에 훌륭한 세계가 있고 좋은 집이 있어서 시체를 지고 그리로 들어간 것이요,

 뱀복이를 위하여서 훗사람들이 지은 도량사道場寺에서 매년 삼월 십사 일에

 점찰회占察會를 행하였다 하나 삼월 십오일은 뱀복이에 관계된 날이 아니라

 진표眞表대사의 득도일인 때문이다.

 점찰경은 진표가 변산 불사의방邊山不思議房에서 미륵보살께서 받은 것이다.

 장례가 끝난 뒤에 거지들은 원효대사의 발 앞에 꿇어앉았다.

 그중 늙은 거지 하나가 일어나서,

“ 제발 우리에게 법을 설하여 주옵소서. 우리 무리도 또한 죽을 날이 멀지 아니하오니

 어찌하오면 악도에 빠지지 아니하올지, 또 남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올지

 가르쳐 주시옵소서. 우리 무리는 뱀복이를 따라서 지금까지 살아왔사오나

 뱀복이 일찍 우리에게 법을 설한 일이 없사옵고, 오늘 이곳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미증유한 일을 보오니, 한편 두렵고 한편 놀라움을 금치 못하나이다.

 원하옵나니 자비심을 발하시어 참도를 밝혀 일러 주시옵소서.”

 하고 돌멩이를 들어 제 머리를 때리니 다른 거지들도 따라서 그대로 하여서

 머리에서 피가 흘러 땅에 떨어졌다.

 원효는 일찍 이렇게 간절한 정성으로 도를 구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

 돌로 머리를 깨뜨리고 높은 데서 떨어져 팔다리를 분질러서 구악을 참회하는 법을

 원효는 말로 듣고 책에서 보았으나 이렇게 목도하기는 처음이다.

 피와 눈물을 흘리는 거지의 무리를 보던 중들도 무슨 힘에 어깨를 덮어 눌리는 듯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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