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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도량(道場)<1>

오늘의 쉼터 2009. 6. 29. 00:19

 

8. 도량(道場).1

 

  원효는 불보살의 위신력이 이 자리에 도량道場을 나토신 것을 깨달았다.

 첫가을 산 옆 들국화 피인 곳, 맑은 바람 불고 저녁 햇빛 비치었으니 청정한 도량이요, 

 사백여 명 대중이 피와 눈물을 흘리고 무릎을 꿇었으니 정히 법을 설할 때다.

 원효는 허공을 향하여 합장하고 제불보살을 염하여 큰 힘을 가피하시기를 빌었다.

 원효는 뱀복의 무덤 앞에 앉아 입을 열었다.

 “ 보살이 이미 몸으로써 법을 설하시고 가셨으니 내 또 무엇을 설하랴.

 다들 잡념 망상을 끊고 가만히 제 마음을 들여다보면 만법이 다 갖추어 있어서

 배울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음을 알 것이다.

 그러나 제불보살도 중생이 청할 때에는 법을 설하셨으니 이 몸도 한 노래를 불러서

 여러 불자제의 마음을 깨우리라.”

 이렇게 허두하고 원효는 노래를 불렀다.

 

“ 산하대지와 사생고락이 내 마음의 조작이라.

 콩 심어 콩이 되고 팥 뿌려 팥 거두니

 인과응보가 내 뒤 따르는 양

 몸 가는데 그림자요 소리에 울림이라

 업보의 끄는 힘이 황소보다 더 세어라

 눈 깜박하는 결에 마음에 이는 생각

 아뿔싸 천만 겁에 사생고락 씨가 되니

 어허 두려운지고 인과응보 두려워라.

 

 그러나 인과일래 범부도 성인 되네

 천지가 넓다 해도 선을 위해 있사오니

 터럭같이 작은 선도 잃어짐이 없을러라

 방울방울 물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듯이

 날마다 적은 공덕 쌓아 큰 공덕 되니

 하잘것없는 몸이 무상 보리 이루는 법

 여덟 가지 바른길을 밟아 적선함이로다

 어허 고마운지고 인과응보 고마워라.

 

 석가여래 아니시면 이 좋은 법 어이 알리

 삼천대천세계 바늘 끝만한 빈 데 없이

 목숨을 버리시며 겪으신 난행고행

 나를 위하심일세

 악도에 떨어질 몸 무궁락을 얻는 법을

 정녕히 설하시니 팔만 사천 법문이라

 문 따라 들어가면

 백무일실百無一失하게 도피 안 하오리라

 어허 무량할손 부처님의 은혜셔라.

 팔만대장경이 모두 다 불법이라

 경중이 있을쏘냐 어느 경 하나라도

 수지독송하는 중생 반드시 악취惡趣떠나

 불지佛地에 들어가리.

 일념수희一念隨喜한 공덕도 만 겁 적악 깨뜨리고

 사구게四句偈를 믿는 신심信心 삼계에 대법사大法師라

 경권經卷있는 곳이 부처님 계신 데요

 경을 읽는 중생 부처님의 사자使者로다.

 어허 중생들아 경을 받아 읽었으라.

 

 절이 없을진댄 불법 어디 머무르며

 남녀승 아니런들 뉘 있어 법 전하리.

 그러니 절을 짓고 성중聖衆 공양하였어라.”

 

 원효는 한 절마다 소리를 높여서 끝 두 귀를 세 번 부르고, 잠시 쉬고는 또 계속한다.

“ 헐벗고 배고픈 이, 옷과 밥을 주었어라.

 앓는 이 구안하고 약한 이 도와주니

 모두 보시행布施行이로다.

 재물이 없다 한들 몸조차 없을 건가

 이 몸 타고나기 도 닦자는 본원本願이니

 도 위해 쓰고 버림 진정 소원이 아닌가

 제불인위시諸佛因爲時에 국성처자國城妻子 보시하니

 이 몸의 두목신체頭目身體 보시 않고 어이하리.

 신명身命을 바칠진댄 더 큰 보시 있을쏘냐.

 물살도음勿殺盜淫하는 일을 지계持戒라 일러 있고

 남 미워 아니함을 인욕忍辱이라 불렀으며

 정업정명正業正命 근행함을 정진精進이라 하시옵고

 마음 굳게 잡아 잡념 망상 다 떼이고

 가을 하늘 맑은 듯이 무애삼매無碍三昧 닦는 법을

 선정禪定이라 하거니와 모두가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蜜의 길이로다.

 만행萬行 어느 것이 육도六度 아님 있으랴만

 제 힘에 믿는 행을 힘 다하여 닦았어라.

 팔만 사천 법문 어느 문 아니리

 신심 굳게 가는 중생 구경 성불하오리라.

 

 어버이 크신 은혜 모르는 이 있으랴만

 스승의 고마우심 아는 이 그 뉘런고.

 부처님이 본사本師시고 보살님네 대사로다

 한가지를 배웠어도 스승 공경하였어라.

 나라님 아니시면 어느 땅에 발 붙이리

 효도인들 어이 하며 불법인들 닦을쏘냐

 그러니까 군사부君師父는 일체라고 일렀도다.

 임금께 충성할 제 목숨을 아낄쏘냐.

 효도를 하는 길에 도 닦음 으뜸이라

 아들딸이 쌓은 공덕 다생 부모 제도하네

 

 먹고 입고 쓰는 것이 모두 중생 수고로다.

 입에 드는 밥 한 알을 절하고 먹었어라

 사중은四重恩 못 갚으면 극락을 바랄쏘냐

 군사부 중생은을 수유나 잊을세라

 한 숨 두 숨 쉬는 숨이 은혜 갚는 맹세로다.

 성인은 그 누구며 범부는 그 누구냐

 유정有情 무정無情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라

 한마음으로 나톤 중생 불 아닌 이 어디 있나

 미迷할 제 범부러니 깨달으니 불이로다.

 지옥 천당이 내 마음의 지은 바라.

 삼독三毒 오욕五慾 벗어나서 무상보리 닦을진댄

 생사윤회 끊었거니 악도를 두려워할쏘냐.

 세상에 박복한 이 누구 두고 이름인가

 불법을 못 듣는 이 그를 두고 이름이라

 다생 악업장障이 되어 이 목을 가리우니

 불법 속에 살면서도 못 보고 못 듣는다.

 업장을 떼는 법이 예불 참회 고작이라

 섭률의攝律儀 섭선법攝善法이 업장을 녹이더라.

 철통같은 묵은 업장 일조에 터지는날

 광명일월 넓은 법계 자유자재 내리구나.” 

 듣는 사람은 고요하다.

 원효의 음성은 더욱 높아진다.

“ 불도를 닦는 사람 무엇으로 알아내노.

 얼굴에 빛이 나고 몸에서 향내 나네.

 마디마디 기쁨 주고 걸음걸음 꽃 피어라.

 자비심을 품었으니 노염 미움 있을쏘냐.

 청정행을 닦았으니 거짓을 끊었어라.

 오욕 번뇌 멸한 사람 제천諸天이 공경커든

 요마한 악귀 무리 거들떠나 볼 것이냐.

 송경 염불하는 중생 선신이 옹호하니

 물에 들어 안 빠지고 불에도 아니 탄다.

 한 중생 초발심初發心에 법계가 진동하고

 은밀한 작은 행도 하늘에 적히도다.

 불법을 닦는 집이 그 모양이 어떠한고

 큰소리 성난 모양 꿈엔들 보일 건가.

 신명이 도우시고 불보살이 지키시니

 자손 창성하고 부귀공명하오리라.

 불법을 닦는 나라 그 모양이 어떠한고

 백성은 다 충신이요 아들딸은 효자로다.

 악귀가 물러가고 선신이 모여드니

 우순풍족하고 국태민안하다.

 선업 닦은 중생들이 이 나라에 원생願生하니

 제상선인諸上善人이 구회일처俱會一處라.

 산 모양 들 모양도 얼굴을 변하고

 날짐승 길버러지 악심을 떼었으니

 현세 즉 극락이라 이 아니 보국報國이냐.

 어허 기쁜지고 지화자 좋을씨고

 법고 둥둥 울려 한바탕 춤을 추자.”

 

 노래를 끝내고 원효가 춤을 추니 사백 명 대중도 모두 일어나 춤을 추었다.

 “ 니누나누 늴리리.”

 하고 입장단을 치는 이도 있었다.

 신라 사람은 춤을 좋아한다. 한바탕 춤이 끝난 뒤에 원효는,

“ 자 이제 다들 갑시다. 오늘 뱀복이 모자 장례가 기연이 되어서 이곳에 한바탕 도량이

   나타났으니 모두 불보살의 대원력이요, 대위신력이라. 이제 불은을 보답하는 뜻으로

   우리 소리를 모아서 염불을 부르며 행진합시다.”

 하고 먼저,

“ 나무아미타불.”

 하고 앞을 섰다. 거지들이 먼저 원효의 뒤를 따르며,

“ 나무아미타불.”하고 화답하였다.

 중들도 거지의 뒤를 따랐다.

 원효는 서울 성중으로 대중을 끌고 들어섰다.

 사백 명 대중이 나무아미타불을 합장하는 소리가 성중을 흔들었다.

 원효는 대중을 끌고 훙륜사, 분황사 같은 큰 절과 호구 즐비한 시가로 순회하였다.

 사람들은 이 희한한 광경을 보려고 모두들 길가에 나섰다.

 어떤 사람은 같이 염불을 하며 행렬에 들기도 하였으나 어떤 사람은 원효가 불교를

 더럽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사람을 만나는 대로 원효를 악담하였다.

 그러하기 때문에 중들 중에는 슬몃슬몃 이 행렬에서 빠져나가는 자도 있었다.

 사로 팔백 여든 절에서 저녁 쇠북이 울기 시작하였다.

 하루동안 고달프던 중생이 편안히 쉬라는 쇠북이다.

 원효가 걸음을 멈추고 합장하자 일동도 그와 같이 하였다.

 쇠북 소리를 들으니 불법을 염하는 것이다.

 원효가 뱀복의 집에 머무른 지가 벌써 반 년이 넘어 가을과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뱀복이가 죽자 원효가 거지의 두목이 되었다.

 거지들은 뱀복의 말을 듣던 모양으로 원효의 말을 잘들었다.

 거지로서는 죽기 다음의 어려운 일까지도 원효가 정하여 주는 일이면 하였다.

 거지의 근본 되는 병은 일하기 싫음이었다. 즉 게으름이었다.

 거지중에도 여러 가지로 층등이 있거니와 그중에도 머렁이라는 거지는 몸을 꼼짝하기를

 싫어하였다.

 그는 머리가 누르스름하고 키가 늘씬하고 팔다리가 제각기 노는 것이 얼른 보아도

 게으름뱅이로 생겼거니와 정신 작용에는 결코 부족함이 없었다.

 부족함이 없을뿐더러 그의 말에는 조리가 있고 또 슬기가 있어서 이따금 비범한 생각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더할 수 없이 게을러서 누가 발길로 차기 전에는 언제까지나 누워 자고

 얼굴에 파리나 모기가 붙어도 날릴 생각을 아니하였다.

 그는 본래 집도 있고 처자도 있고 문벌도 낮은 사람은 아니었으나

 게으름이 병이 되어서 집을 헤치고 거지가 된 것이었다.

 "밥 얻으러 가기는 싫지 않어?"

 하고 물으면 그는 빙그레 웃었다.

 말도 하기 싫은 모양이어서 여간해서는 입을 벌리지 아니하였다.

 기분이 좋은 때 같으면 머렁이는,

 "턱 밑에 놓은 밥도 먹기가 싫은데 주기 싫다는 밥 빌러 가기가 어찌 좋담."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글자를 배운 것이 있어서 뱀복이 문하에서는 적기질을 맡아 하고 평생 집을 보고 있었다.

  혹시 동냥을 나가면 한 끼 얻을 것을 얻으면 돌아왔다.

 욕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얻으러 다니기가 싫은 것이었다.

 원효는 이런 게으름뱅이를 처음 보았다.

 "너, 그 게으름을 깨뜨리지 아니하면 내생에는 사람의 몸을 잃을 근심이 있다."

 하고 훈계할 때 머렁이는 큰 구렁이나 큰 바위를 생각하고 빙그레 웃었다.

 원효는 머렁이에게 방과 뜰을 쓸리고 하루에 천 번 관세음보살을 부르게 하였다.

 머렁이는 시키는 대로 하였으나 그것이 무척 힘이 드는 모양이요,

 한번 쓸어도 안 쓸려서 두 번 손이 갈 것이면 그대로 두었다.

 원효는 아무 말 없이 손수 그것을 다시 쓸었다.

 그러면 머렁이는 심히 미안한 모양을 보였다.

 방과 마당 쓸기보다도 염불 천 번이 어려운 모양이었다.

 열흘이면 천 번을 채우기는 하루나 이틀이 될락말락하였다.

 "그걸 못 채워?"하고 원효가 소리를 지르면,

 "똑바로 않았기가 어려워서." 하고 빙그레 웃었다.

 "누워서라도 천 번을 채워." 원효는 이렇게 명하였다.

 그러나 누워서 염불을 하기는 미안한 모양이어서 비비꼬면서도

 똑바로 앉아서 천 번을 채우게 된 것이 한 달을 넘어서였다.

 이렇게 되면서부터 머렁이는 느린 것이 줄었다.

 아침이면 일어나고 제가 할 일을 하게 되었다.

 방이나 마당을 쓰는 것도 차차 재미를 붙여서 점점 깨끗하게 문 밖까지도 쓸게 되었다.

 원효는 모든 거지에게 게으른 버릇이 있음을 발견하였거니와

 게으름만이 사람이 거지가 되는 원인이 아닌 것도 알았다.

 거기는 두 가지 중요한 원인이 있었다.

 하나는 일할 거리가 없는 것이요,

 둘 은 일을 한다고 잘 살아지지 않고 도리어 세상에는 일 아니하고 넉넉히 사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농사를 하자니 바탕이 있어야지요." 하는 것이 첫째원인이요,

 "그까짓거 뼈가 휘도록 일을 해도 배고프기는 마찬가진 걸요." 하는 것은 둘째 원인이었다.

 이러한 동기로 한 번 거지 노릇을 시작하면 염치심을 잃어버려서 그대로 평생을 보내는 것이었다.

 다부지라는 거지는 몸도 단단히 생겼거니와 기운이 있고 또 무슨 일이나 하려 들면 잘하였다.

 "그깐놈 거, 힘드는 일을 왜 해요.

 우리 아버지는 평생 쉴 새 없이 일을 하고도 죽을 때는 거적송장밖에 안 됐는 걸."

 다부지는 이런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다부지는 밥을 빌어먹을지언정 우는 소리로 남의 동정을 구할 줄은 몰랐다.

 거지의 무기가 사람들의 자비심을 움직임에 있는 줄을 다부지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으나

 그는 이런 일은 더럽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누구 집 문전에 가면 집이 떠나가라 하듯이 큰소리로,

 "거지 밥 얻으러 왔소." 하고 마치 호령조였다.

 "이놈. 사지가 멀쩡한 놈이 일을 아니 하고 거지 노릇을 다녀?"

하고 어떤 주인이 나무랄 양이면 그는 눈을 흡뜨고,

 "여보. 왜 악담을 하오? 사지가 멀쩡하길래 밥을 얻으러 다니지 않소?

 그러면 누워 뭉개는 병신이 되란 말요, 여보, 거지 조상 안 둔 부자 없다 하오.

 당신 집 자손이 거지가 되고 내 자손이 부자가 되어서

 당신 집 자손이 내 문전에 걸식을 올 때 내 자손이 만일 그런 악담을 한다면

 내가 귀신이 되어서라도 다릿마댕이를 분질러 주겠소."

 이렇게 대들어서 기어이 밥을 얻고야 말았다.

 만일 그래도 밥을 안주면 퍼더버리고 문전에 앉거나 누워서 하루 종일이라도 큰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다부지를 아는 집에서는 그 다부지 음성이 들리기만 하면 진저리를 내어서 얼른 밥을 내다

 주었다.

 원효는 다부지에게 아이 둘을 맡겼다.

 그 둘을 벌어먹이란 것이었다.

 다부지는 신이 나서 밥을 얻어다가는 아이들을 먹이고

 또 누더기를 얻어다가 제 손으로 꿰매어서 두 아이를 입혔다.

 다음에는 나비라는 거지가 있었다.

 이 사람은 얼굴이 멀끔하고 얼른 보면 점잖은 집 서방님 같았다.

 그는 거짓말이 난당이어서 참말은 한마디도 아니하려 드는 것 같았다.

 거짓말을 하여서 사람이 속는 것을 보고는 기뻐하였다.

  원효에게 대하여서도 번번이 거짓말을 하였다.

 한번은 나비가 멀쩡한 거짓말을 하는 기회를 타서 원효는 막대기로 나비의 정수리를 갈겼다.

 "아야!" 하고 나비가 소리를 지르고 손을 머리에 대었다.

 "아프냐?"

 "에헤헤." 하고 나비는 얼른 머리를 만지던 손을 치우며,

 "누구를 떠보려고 그러시우? 아프기는 그까짓 게 무엇이 아프오." 하고 능청을 부렸다.

 원효는 그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번개같이 또 한 대를 갈겼다.

 "아야 아야." 이번에는 나비의 눈에 불이 번쩍 난 모양이었다.

 "인제 아프냐." 원효는 성난 얼굴로 물었다.

 "아이구."하고 나비는 원효를 홀겨보았다.

 그래도 아프단 말은 아니하였다.

 나비라는 이름은 그가 흉내를 잘 내는 데서 왔다.

 그는 어떤 날은 애꾸 행세를 하고 어떤 데서는 절뚝발이 모양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벙어리가 되었다.

 그래서는 저편의 자비심을 움직여서 물건을 얻어내는 것이었다.

 그 흉내를 내는 모양이 하도 천연스러워서 아무도 그가 지어 한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고

 그뿐 아니라, 그가 한바탕 신세타령을 하는 어조도 어떤 때는 어눌한 사람 모양을 하고

 어떤 때에는 순박하고 못난 모양을 하고, 또 어떤 때는 아주 도 닦는 방아 모양을 하여

 언변이 썩 좋았다.

 그는 무엇을 하더라도 밥벌이를 할 만하건만 거짓말이 병이 될뿐더러

 거지로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속이는 것이 무척 재미있어 하는 모양이었다.

 동무들 간에도 아무도 그의 말을 믿는 이가 없었다.

 한번은 무엇을 먹고 관격이 되어서 배가 아프다고 대굴대굴 구는 것을

 한 방에 있는 동무들이 이놈 또 익살이라 하고 모르는 체 하여 온종일 곯은 일이 있었다.

 그래도 그것쯤으로 거짓을 뗄 위인이 아니었다.

 원효는 번번이 나비에게 속았다. 나비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었다.

 처음에 나비는 원효가 연해 속는 것을 재미있게 알았으나,

 차차 원효가 속은 것이 어리석어서 속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말을 그대로 믿어서

 속는 것인 줄을 알고는 슬그머니 미안한 생각이 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원효에게 무슨 거짓말을 하고 나서는 얼른 뒤를 이어서,

 "아니야요, 스님. 지금 제가 한 말은 거짓말이야요." 하게 되었다.

 다음에는 수리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몸이 갸날프고 살이 희고 손이 붓끝 같아서 마치 귀인 같았다.

 그를 수리라고 부르는 까닭은 남이 가진 것을 수리가 병아리를 채는 것 모양으로

 번개같이 채고 시치미를 떼면 아무도 그가 훔친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 많이 나오는 구경터 같은 데로 슬슬 돌면서 여자의 머릿 장식이며 패물이며

 남자의 몸에 지닌 것이며 가게에 벌여 놓은 물건이며 이런 것을 훔쳤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는 재물에 욕심이 있는 것 같지도 아니하여서

 훔친 것은 제가 몸에 지니는 것 외에는 누구를 주었다.

 동무들의 말을 듣건대 그는 계집을 준다고 하였고 또 가난한 사람을 준다고도 하였다.

 그가 뱀을 잘 잡는 것도 눈치와 솜씨가 빠르기 때문이었다.

 그의 손이 번뜻하면 벌써 뱀의 모가지는 그의 손에 잡혀 있는 것이었다.

 수리는 제 부하가 많았다.

 아이들, 여편네. 수리가 어떤 골목에 나서면 끄나풀들이 그를 옹위하였다.

 그 밖에도 거지 중에는 여러 가지 재주를 가진 자가 많았다.

 가령 코풍류라는 이름을 가진 자는 콧소리로 갖은 풍류를 다하여서 사람을 웃겼고,

 꼽추는 꼽추춤으로 이름이 나고, 어떤 놈은 코와 눈과 입과 귀까지도 실룩거려서

 흉물을 부려서 사람을 웃기고, 어떤 이는 휘파람을 썩 잘 불고,

 어떤 이는 곤두박질 재주넘기를 잘하고, 또 어떤 놈은 맴을 잘 돌아서

 구경꾼이 어지러워 떨릴 지경이었다.

 이런 것은 다 공부들인 재주여니와 생기기를 익살스럽게 생겨서

 그것을 밑천으로 거지 노릇을 하는 이도 있었다.

 가령 나이는 사십이 넘어 수염까지 났으면서도 키는 댓 살 먹은 아이밖에 안되는

 사내라든지, 코가 없는 계집이라든지, 팔이 둘이 다 떨어지고 다리만 있어서

 발에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든지, 압뒤 곱사등이라든지,

 걸음을 걸으려면 사지를 덜덜 흔들어 떠는 것이라든지,

 목이 비뚤어져서 길을 가자면 모로 걷는 이라든지, 수염난 여편네라든지, 

 가지각색 흉물이 많았다.

 이런 사람들은 특별한 재주가 없어도 물건을 얻을 수가 있었다.

 아무려나 원효의 부하가 된 이백여 명 식구들은 다 한 구석 특별한 데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무리는 한 사람씩 떼어놓고 보면 흉물스럽지만 수십 명이 한데 모여서

 떠들기나 할 경우에는 원효도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아침에 동냥을 떠날 때에는 모두 진흙과 검정으로 낯바닥에 아웅을 그려서 저마다  

 사람의 주의를 끌도록 화장을 하였고, 또 집을 떠나기 전에는 오늘 부릴 재주 연습을 하였다.

 그리고는 서로 비평도 하고 웃기도 하였다.

 그들이 이 모양으로 차리고 잠시 양지쪽에 멀거니 앉았는 것은 오늘 어디로 갈까,

 무슨 재주를 피울까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슬렁어슬렁 시가로 향하고 나갈 때는 그래도 제각기 무슨 희망을 가진 양

 싶어서 걸음이 가뿐가뿐 하였다.

 거지들이 다 떠나면 원효는 머렁이를 집에 두고 비 한 자루,

 걸레 하나를 들고 바리때를 바랑에 넣어 지고 집을 나선다.

 원효는 지저분한 집을 찾아서는 우선 문전을 쓸고 기둥을 닦고 그러고는,

 "마당 쓸어 드리러 왔소, 수챗구멍, 똥둑간, 무엇이나 깨끗이 치워 드리오리다." 하고 외친다.

 처음에는 이것이 무슨 사람인가 하고 경계하는 이도 있었으나 차차 안심하여

 안마당으로 불러들이게 된다. 그러면 원효는 장삼을 벗어 놓고 쓸고 훔치고 하여

 집안을 깨끗이 한 뒤에 물을 얻어 손발을 씻고는 바랑을 지고 합장하여 주인께 인사하고 나온다.

 이것이 시작이 되어서 원효의 밑에 있는 거지들도 차차 원효를 배우게 되었다.

 "모든 궂은일은 다 해드립니다."

 거지들은 사로 성중에 이렇게 광고를 하였다. 그러면 사람을 원효에게 보내어서

 어디어디를 어떻게 치워 달라는 주문을 하는 이도 생겼다.

 일을 하고 나면 밥도 주고 쌀도 주었다.

 일이 없는 날은 원효는 거지들을 거느리고 개천이며 시가를 깨끗이 하고,

 혹은 길 무너진 데를 고치고 혹은 눈을 치우는 일도 하였다.

 원효는 늙은 거지, 병신 거지, 아이 거지, 여편네 거지는 밖에 나가지 않게 하고

 집에 머물러 있게 하였다.

 그리고는 성한 사람들이 벌어다가 이들을 먹이게 하였다.

 헝겊이나 누더기를 주워오면 그것을 빨아 모아서 옷을 만들고 기타 집에 앉아서

 할 일을 마련해 주었다.

 오래 묵은 게으른 습관은 좀체로 떨어지지 아니하였으나 자기들을 편안히 앉혀 두고

 남들이 벌어다가 먹여 준다는 것에 감동이 되어서 맡은 일을 하게 되었다.

 궂은일을 맡아 하게 된 뒤로부터 세상 사람이 거지에 대한 대접이 높아졌다.

 제 편에서 청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라지 않은데 가던 거지가 청하는 곳에 가게 된다는 것은 큰 변화였다.

 어떤 때는 큰 집을 짓는 사람들이 터를 쳐 달라고 청하기도 하였다.

 원효는 북을 매달고 치며 염불을 먹이며 달구를 다지게 하였다.

 다음에는 이런 일에는 나비가 선소리꾼이 되었다.

 그는 갖은 덕담으로 집주인을 기쁘게 하였다.

 원효는 나비와 함께 이런 때 쓰는 덕담을 지었다.

 재미있는 중에도 진리를 풍겨서 듣는 자에게 교훈이 되게 하자는 것이었다. 

 원효가 서울에 머무르게 된 뒤에 대안대사가 가끔 원효를 찾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스님. 삼모헌테 한번 더 안 가려오?" 대안대사는 이런 농담도 하였다.

 그런 때면 원효는 요석공주와의 관계가 두고두고 마음에 못이 되는 것을 말하였다.

 "허. 걸음 걸으면 다리 아픈 게지." 대안은 이렇게 말하였다.

 향락을 하면 그 벌을 받는다는 뜻이다.

 원효는 요석공주가 자기를 찾아온 것을 내버리고 왔다는 말과 또 아사가의 말도 하였다.

 "그래 보고 싶지 않소?" 대안은 싱글벙글 웃었다.

 "보고 싶으니 걱정이 아니오." 원효도 이렇게 대답하고 웃었다.

 "그렇거든 성불을 몇 겁 연기하시오그려. 보고 싶으면 실컷 보고 몇 생사生死 더 하시오그려."

 대안은 원효를 놀렸다.

 거지들도 대안대사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들은 대안을 익살맞은 늙은 중이요,

 자기네와 같은 거지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어떤 때에는 대안대사가 원효를 찾아오면,

 "소병 소뇌小病小惱하시고 교화나 잘 되시오." 이렇게 불보살에 대한 예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대안대사는 가끔 거지들과 함께 자고 함께 돌아다녔다.

 거지들은 대안대사를 크게 환영하여서 저희가 얻어온 밥과 반찬을 대사에게 주었다.

 어떤 때에는 대안이 술을 좋아한다 하여 술지게미를 얻어다 주기도 하였다.

 그러면 대안은 술지게미를 손으로 집어먹으며 맛이 좋다고 흥에 겨워하였다.

 그러고는,

 "허허.이 늙은이는 거지 위에 거지가 아닌가."하고 소리를 내어서 웃었다.

 대안은 밥 얻어먹는 값을 하여야 한다 하여 여러 거지들이 떼를 지어서 하는 일터에

 가서는 방울을 흔들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혹은 그 우렁찬 소리로 염불을 불렀다.

 대안대사의 염불 소리는 어느 구석에서 부르더라도 어느 구석까지도 들린다고 소문이 났다.

 그것은 대안대사의 목소리가 우렁차다는 뜻도 되거니와

 대사가 아침이나 저녁이나 정처없이 돌아다니면서 염불을 하는 까닭도 된다.

 대안대사는 지척지척 걸어가다가 어디서든지 흥이 나면 한바탕씩 염불을 하였다.

 게다가 원효의 거지떼가 염불을 하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사로성 중은 염불 소리

 아니 들리는 날이 없어서 어른이나 아이나 염불을 불렀다.

 장난삼아 흉내로 부르더라도 염불을 아니하는 이가 없었다.

 "일칭나무불 개이성불도一稱南無佛 皆二成佛道

 (나무아미타불을 한번만 불러도 모두 불도를 이루리라)."

 한 번 염불을 부른 사람도 다 불도를 이루었다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큰 절들에서 점잖게 있는 중들이 대안과 원효에게 대해

 시기와 불평을 가지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더구나 원효가 거지의 두목이 되었다는 것은 승려 간에는 큰 문제가 되어서

 왕이 시왕경十王經법회를 크게 행할 때 중들은 결속하여 원효가 강사가 되는 것을

 반대할 지경이었다.

 왕이 황룡사에 시왕경법회, 금광명경법회를 베푼 것도 모두 백제, 고구려를 정복하기 위함이었다.

  첫째로 불보살의 가호를 빌고,

  둘째로 국내의 선신을 안위하고,

  셋째로 전몰 장졸들의 명복을 빌고, 아울러 국민의 애국심을 분기시키려는 것이었다.

 이때 법회를 하면 반드시 전몰 장졸의 명복을 비는 것이었다.

 왕의 희망으로는 시왕경이나 금광명경의 설법을 원효에게 청하고 싶었으나,

 자장을 비롯하여 혜통 등 모든 높은 중들이 일제히 원효를 반대하여 왕도 우기지를 못하였다.

 그들은 왕의 앞에서 감히 원효를 파계승이라고는 못하였으나 땅꾼의 두목이 되어서

 살생으로 업을 삼는다는 것과 젊은 중들과 일반 민심이 원효를 즐겨하지 아니한다는

 말로 원효가 법사 되기를 반대하였고, 또 어떤 이는 원효는 이미 중이 아니요,

 한 속인이니 절에서 사부대중을 향하여서 법을 설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강원에서도 원효의 저서를 배척한 데도 있었다.

 원효가 시골에 숨어 있을 때에는 좀 덜하더니 그가 성중에 들어와서

 날마다 거지 떼를 데리고 장안 대로상으로 활보하는 것을 보니 본래 원효를 시기하던

 승려들의 비위에 더욱 거슬렸다.

 그러나 원효는 그들이 지르밟아 버리기에는 너무나 큰 힘이었다.

 장안 거지가 모두 원효의 부하라는 것이 무섭기도 하였다.

 세상에서는 그 거지 떼 중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는 줄 생각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원효가 도적 떼의 두목이 되었다는 소문이 났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근거 없는 소문이 아니었다.

 근래에 장안에는 괴상한 도적이 횡행하였다. 큰 집에 들어가서 물건을 훔치고는,

 "욕지아수 문어효사欲知我誰 問於曉師(내 뉜 줄 알려거든 효사께 물으라)."

 이러한 글귀를 벽에 쓰고 가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관가에서는 공주 부마인 원효대사를

 건드릴 수는 없었고, 다만 상사에게 이런 뜻을 보고만 하였다.

 이 말이 마침내 대각간 유신의 귀에 들어가서 유신은 이 말을 왕께 고하였으나 왕은,

 "원효대사를 해치려는 자의 소위겠지."하고 웃으시고 말았다.

 하루는 대안대사가 원효대사를 찾아와서 이 말을 전하였다.

 "스님은 또 도적의 두목이 되었다."하고 웃었다.

 원효도 나비와 기타 부하로부터 이런 말은 듣고 있었다.

 "이것이 필시 무슨 까닭이 있나 보오."

  대안도 원효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 도적들을 한번 만나 보았으면 좋겠소. 그중에는 인물다운 인물이 있을는지도 몰라."

  원효는 대안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도적들이 들어간 집은 대개 백성의 원망을 받는 집이었다.

 관원이 되어서 토색을 하였다든가, 장사를 하되 고객을 속여서 부정하게 돈을 모았다든가,

 인심이 박하여서 동네에서 인심을 잃었다든가, 이러한 부자집이 도적을 맞는 것이었다.

 원효도 제 이름을 팔고 돌아다니는 도적을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때에 의명이 원효를 찾아왔다.

 의명의 말에 의하건댄 요석공주와 아사가 남매가 원효가 돌아오기를 고대하다가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도 소식이 없으므로 무애암을 떠나서 서울로 오던 길에

 도적의 떼에게 붙들려 갔다는 것이었다.

 "어디서 붙들렸나?"

 "무애암 동구에 나오다가 붙들렸소."

 "시위하는 사람은 없었느냐."

 "요석궁 대사가 군사 둘을 데리고 시위하다가 싸워 죽었소."

 "무엇으로 싸워?"

 "칼로."

 원효는 요석궁 대사의 검수를 아는 터이라 그를 죽일 만하면 비범한 솜씨라고 생각하였다.

 "몇 명이나?"

 "이십 명이나 되었소."

 "너는 어째 안 잡혀갔느냐."

 "처음에는 소승도 결박을 지웠으나 도적 소승의 결박을 끄르며 빨리 너는 가서

  원효대사에게 바람복이가 공주와 아기와 아사가 남매를 잡아가더라고 일러라 그랬소."

 원효는 의명에게 도적 두목이란 사람의 모습을 물었다.

 나이 육십이나 되고 수염이 많이 나고 얼굴이 희고 키는 자그마하고

 푸른 방아라 입고 풀잎으로 결은 방갓을 써서 점잖은 방아도사 같더라고 의명이 설명하였다.

 "그런데 칼은 잘 쓴단 말이지?" 원효는 이렇게 물었다.

 "처음에는 자기는 뒤에 서고 젊은 부하들이 대사와 싸우더니 대사의 칼에 부하들이 죽고

  다른 사람들이 밀리는 것을 보더니, 그리 길지도 아니한 칼을 빼어들고 적을 놀리는 듯

  슬쩍슬쩍 싸우는 것이 사뭇 날던 걸요.

  '이제 고만 항복하여라, 내 칼에 네 피를 바르기가 싫다.'

  그 두목이 칼을 거두고 이렇게 말하는 것을 대사가 아니 듣고 싸움을 돋우다가

  어느 틈에 맞았는지 대사는 바른편 어깨에서 왼편 옆구리까지 엇비슷하게

  두 동강이 나고 말았소."

 의명은 그때 상황을 추억하고 얼굴을 씰룩씰룩하였다.

 "그래 너는 떨구 있었구나"

 하는 원효의 말에 의명은 무안한 듯이 고개를 숙였다.

 "내려가서 뜰이나 쓸어라."

 원효의 명을 받고 의명은 가사 장삼을 벗어 걸고 비를 들고 뜰로 내려갔다.

 원효는 사람을 시켜서 산 뱀 한 마리를 의명의 발앞에 던지게 하였다.

 뱀은 의명을 향하여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의명은 비를 던지고 악 소리를 치며 뒤로 물러섰다.

 "대가리를 잡아라." 원효는 이렇게 소리를 쳤다.

 의명은 죽어라 하고 손을 내어밀고 뱀을 따라갔다.

 구석에 몰린 뱀은 의명을 향하여 덤비어들었다. 의명은 뱀의 목을 잡았다.

 뱀은 의명의 팔에 어느덧 감겨 버렸다. 뱀의 꼬리가 소리를 내고 떨었다.

 마침내 뱀은 숨이 막혀서 축 늘어지고 말았다. 원효는 웃고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의명은 원효의 앞에 절하고 울었다.

 "무엇을 보았느냐."  원효는 의명에게 이렇게 물었다.

 "스님 은혜가 수미산須彌山 같소." 의명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저는 무엇을 무서워하였는가.

 대체 무엇을 아껴서 무서워하였는가.

 의명은 몸을 결박하였던 쇠줄이 끊어진 듯함을 느꼈다.

 세상에 무서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자유자재인 것 같았다.

 원효는 의명에게 보은사를 맡기고 바람복이를 찾아 떠났다.

 바람복이는 바람이라고 통칭하여 전국에 유명한 도적이었다.

 태백산 이하로 모두 큰 산이 다 그의 소굴이어서 그의 거처를 아는 자가 없었다.

 바람의 끄나풀은 사로성 중에도 많이 있는 모양이나,

 바깥 사람에게는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원효는 무턱대고 떠난 것이다. 그러나 원효에게는 이러한 자신이 있었다.

 바람이가 공주 일행을 잡아가면서 의명을 놓아 보내어 원효에게 말을 전한 것은

 필시 원효를 만나려 하는 것이라고.

 그렇다 하면 원효가 돌아다니노라면 필시 바람의 끄나풀을 만나리라고.

 원효는 예전 방랑할 때 모양으로 허리에 뒤웅박을 주룽주룽 달고

 이번에는 소성거사小性居士라고 칭하고 발 가는 대로 걸었다.

 바람이가 공주 일행을 잡아 가지고 가면 멀리는 아니 갔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원효는 일선주 쪽을 향하고 걷는 것이었다.

 원효는 봄바람에 봄 새소리를 들으며 아비야阿火? 고을 지경에 다다라

 옥미원玉彌에서 주막에 들었다.

 원효는 서울을 떠나서부터 날마다 한두 사람 동행을 만났다.

 그들은 다 원효 모양으로 차린 거렁뱅이로 봄철을 타서 산천 구경을 다니는 사람이었다.

 다들 풍류도 알고 글도 알아서 경치 좋은 곳을 만나면 소리도 하고 시도 짓고 춤도 추었다.

 그러다가 하루 만에도 갈리고 이틀 만에도 갈렸다.

 원효가 옥미원에 드는 날도 거렁뱅이 하나와 동행하였다.

 그는 버들잎 피리를 썩 잘 불어서 버들잎 하나로 능히 칠십여 곡을 불었다.

 원효는 그 가락에 맞추어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다.

 그동안 원효가 만났던 중 가장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과연 비범한 풍류객이었다.

 이 사람은 나이도 원효와 상적하여서 하루 동안에 허물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물론 원효는 제 이름을 말하지 아니하였고 그 사람도 마찬가지요,

 또 서로 이름을 묻지도 아니하였다.

 옥미원에 자기를 청한 것과, 또 이 집을 숙소로 정한 것도 그 피리쟁이였다.

 주막에 들어서 두 사람은 술을 먹고 늦도록 놀았다.

 주인 집에 있는 저笛를 빌려서 피리쟁이는 저를 불고 원효는 거문고를 타고 늘어지게 놀았다.

 "이것이 다 인생의 성사가 아닌가." 피리쟁이가 저를 놓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렇고말고." 원효는 피리쟁이에게 일종의 압력을 느끼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자, 우리 먼저 잠드는 사람 밥값 내기라고. 인제 그만 자세." 피리쟁이는 이런 소리를 하였다.

 "나중 잠드는 사람이 먼저 잠드는 사람의 짐을 지고 가기라고." 원효는 이렇게 말하였다.

 피리쟁이는 눈이 한번 번쩍 빛나더니 하하 하고 소리를 내고 웃었다.

 원효는 목침을 당기어서 베고 누웠다.

 원효가 취한 김에 한 잠을 잘 자고 깨어 보니 피리쟁이도 없고 원효의 짐도 없었다.

 원효는 웃었다. 밝은 뒤에 보니 창에 글자가 씌어 있었다.

 "욕지아수 문어효사 일성초적 봉용래의

  欲知我誰 問於曉師 一聲草笛 鳳龍來儀

 (내가 누구인 줄 알려거든 효사께 물어라. 풀피리 한 가락에 봉황과 용이 날아드네)."

 원효는 조반을 얻어먹고 옥미원을 떠났다.

 비봉산 용천사飛鳳山 龍川寺로 향하는 것이었다.

 

 원효가 용천사 동구에 들어선 때는 벌써 석양이어서 수풀 속으로부터

 저녁 종소리가 은은히 울려 왔다.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이고 쌀인가 싶은 짐을 진 사람들이 절을 향하고

 올라가는 이도 있고 빈 지게를 지고 내려오는 이도 있었다.

 얼른 보아도 이 절이 큰절이요, 대중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원효는 시냇가에 앉아 세수하고 발을 씻고 시내를 따라 올라갔다.

 판도방 밖에는 짚세기가 스무남은 켤레나 놓여 있고 사방에 저녁 공양의 쇳소리가 들렸다.

 원효는 우선 판도방을 쓱 들여다보았다. 모두 광대뼈가 나오고

 이마가 좁고 눈망울 톡톡 불거진 무리가 둘러 앉아서 윷을 놀고 있었다.

 원효가 들여다보는 것을 보고 모두 눈을 원효 쪽으로 향하였다.

 원효는 그 눈들이 불량한 것이 곧 도적의 떼라고 생각하였다.

 "누구를 찾으시오."

 그중 늙수그레한 자가 물었다. 다른 자들은 또 윷놀이를 계속 하였다.

 "구경 다니는 거렁뱅이가 찾을 사람이 어디 있소. 날이 저물고 시장도 하니

  밥이나 한 술 얻어먹고 드새고나 가볼까 하고 그러오."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고 궁둥이를 방으로 들여대고 문지방에 걸터앉아서 신을 끌렀다.

 원효가 신을 벗고 들어가려 할 때 엉덩이를 문으로 향하여 원효가 못 들어오도록 막는 자가 있었다.

 원효는 그것을 못 보는 듯이 무릎으로 그 사람을 밀고 들어갔다.

 그 사람은 원효의 무릎에 채여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왜 사람을 차노?"하고 그놈이 벌떡 일어나 원효에게 대들었다.

 "왜 내 앞을 막았노?"

 원효는 이렇게 대꾸하였다. 그 사람은 원효를 때리려고 팔을 둘러메었으나

 원효는 내려오는 그 팔목을 붙들어서 그 사람의 따귀를 붙였다.

 "왜 사람을 때리노?"

 그 사람은 또 대들었다.

 "내가 때렸나. 제 손으로 저를 때리지 않았나? 만좌중이 다 보시지 않았나?"

 원효의 눈에서는 불이 번쩍 났다. 모두 욱 일어났다.

 "다들 앉으소. 일어나면 어찌할라노? 윷이나 노세."

 원효는 혼자 앉아서 윷판을 옆으로 당기어 놓고 윷가락을 들어서 천장에 닿도록

 던지고 벌떡 일어나 두 무릎을 턱 치며,

 "윷이냐, 모냐." 하고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다들 원효의 기운에 눌려 버려서 멀거니 보고 있었다.

  원효는 혼자서 서너 번 윷가락을 던지더니 뺨 맞은 작자의 팔목을 끌어앉히며,

 "아따, 앉아라. 윷이나 놀자. 사내가 무얼 그만 일로 그러노."

 그 사람을 앉히고 원효는 윷가락을 던졌다. 도다. 원효가 던진 것은 윷이다.

 "내가 먼저 논다." 하고 원효는 기운차게 윷가락을 던졌다.

 천정에 올랐던 가락이 방바닥에 있던 가락을 때려서 큰소리를 내고 모가 되었다. 다음은 개다.

 " 모개 넣어라."

 뺨 맞은 친구는 비로소 기운이 난 듯이 윷가락을 던졌다.

 " 모야" 하고 일동이 소리를 질렀다.

 분명히 일동은 원효를 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원효가 던진 것이 모가 진 것을 걷어치우면서 한 친구가 나앉았다.

 그중 몹시 광대뼈가 내밀고 눈이 여덟 팔 자를 뒤집어 놓은듯이 눈초리가 위로 올라가서

 매우 간판이 사나운 자였다.

 " 여보, 이 친구."

 하고 그 광대뼈는 윷가락을 걷어쥐인 채로 원효의 앞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 기왕 윷을 놀 바에는 내기를 합시다." 하였다.

 " 무슨 내기를 하자오?"

 원효는 이렇게 물었다.

 " 당신이 이기면 저녁밥을 먹고, 지면 당신이 저녁밥을 굶기로 합시다."

 광대뼈의 이 말에 일동은,

 " 그거 좋다." 하고 응하였다.

 그리고 원효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나 하고 쭈그리고들 앉아서 들었다.

 " 그거 안 될 말요."

 원효는 딱 잡아떼었다.

 " 왜 안 된단 말요."

광대뼈가 눈을 부라렸다.

 " 내기란 피차에 같아야 하는 게지. 지금 말대로 하면 나만 앵하지 않소.

그럼 이렇게 합시다. 내가 지면 내가 오늘 저녁 밥을 굶고 당신네가 지면 당신네가 굶기로,

어떻소."

원효의 제의에 여러 사람은 돌아보았다.

" 아따, 그럽시다."

하고 이번에는 새까만 땅딸보가 나앉았다. 그는 옆에 사람들 보고는 눈을 끔적하였다.

원효가 지면 원효를 밥을 굶기고 저희들이 지더라도 밥은 먹자는 뜻이었다.

" 그래라."

일동이 승낙하였다.

땅딸보는 윷판을 들어서 윷말을 다 떨어버리고 광대뼈의 손에서 윷가락을 빼앗아서

두 짝을 원효에게 주었다.

" 말은 내가 쓴다."

하고 말라깽이가 광대뼈를 밀고 나앉았다.

이 말라깽이는 살은 없을망정 뼈가 온통 쇠로 된 듯이 단단해 보였다.

병신이 아니면 흐미중이 느림보만 보던 원효에게 비록 악한 빛은 있을망정

기운찬 이 무리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속으로 은근히 유쾌하였다.

원효가 먼저 놀아서 도에 붙였다. 땅딸보가 걸에 붙였다.

원효가 모개를 쳐서 땅딸보의 것을 잡아 가지고 연거푸 네모걸을 쳐서

석 동문이를 구워 빼고 막동을 꽂을 걸에 보내었다.

말라깽이는 말판 쓰는 데 농간을 하려 하였으나 농간할 새가 없었다.

땅딸보는 이를 악물고 쭈그리고 앉아서 윷가락을 모아 들고 잔뜩 꼬났다.

" 다섯 모 한 걸은 없느냐."

누가 뒤에서 이렇게 응원을 하였다. 땅딸보는 악 소리를 치며 윷가락을 던졌다.

" 모야!"

하는 함성이 났다. 또 던졌다.

" 모야!"

사람들은 모두 씨근씨근 하였다.

그러나 다음 것은 도였다.

땅딸보는 기가 막히는 듯이 윷가락을 내어 던졌다.

두 모로 속모로 가서 원효의 말이 돌아오는 것을 지키게 하고

한 도를 달아서 뒤로 따를 근거를 만들었다.

원효의 막동사니는 두 모 개면 나는 것이다. 윷가락은 원효의 손에 들렸다.

다소의 파란은 있었으나 결국 윷은 원효가 이겼다. 일동은 이를 악물고 원효를 노려보았다.

" 삼판 양승이다. 두 번 더 놀아라."

하고 광대뼈가 윷가락을 걷어 잡으며 나앉았다.

" 아니다. 대장부가 일구이언 하겠느냐, 내가 졌다."

하고 땅딸보가 물러앉았다.

 밥이 들어왔다. 큰 함지박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흰 밥이 가득차고 

또 시꺼먼 질버치에는 국이 아직도 설설 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방안에는 밥과 국의 향기가 가득 찼다.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선반에서 제 바리때를 꺼내어서 앞에 놓았다.

처음에는 큰 물동이가 돌면서 사람마다 물을 한 그릇씩 받았다.

다음에는 큰 주걱으로 밥을 이모 재고 저모 재어서 한 주걱 떠서 바리에 담으면

새로 밥 향기가 코를 찔렀다. 또 다음 사람의 바리때에 담았다.

 국도 그러하였다. 커다란 나무 국자로 듬뿍 국을 떠서는 국그릇에 붓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물국 향기가 물씬하고 코를 받치는 것이다.

 원효의 앞에는 바리때가 없었다. 원효의 것은 어젯밤에 풀피리가 훔쳐간 것이었다.

"바리때도 없소?"

 밥을 돌리는 중은 이렇게 말하였다.

"내 바리때는 내 상좌가 지고 벌써 용천사에 왔는 걸."

 원효는 천연스럽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무리 거렁뱅이기로 밥그릇도 아니 가지고 다닌단 말요? 체!"

하고 원효를 훝어보더니,

"그 허리에 주렁주렁 단 뒤웅박이라도 내놓으오. 아무리 거렁뱅이라도 밥은 먹어야 살지 않소?"

하고 밥 푸는 사람은 손을 내밀었다.

"이녁 먹을 것이나 푸고는 그 밥 함지와 국 버치를 내 앞에 놓으오. 물동이도 내 앞에 놓고."

 원효는 이렇게 말하였다. 밥 돌리던 사람은 눈이 둥그래지며,

"그것은 왜요?"

하고 들고 가려던 밥 함지를 원효의 앞에 놓았다. 그는 중이었다.

"내가 아까 이 사람들과 밥 굶기 내기 윷을 놀았소. 이기는 사람만 먹고

지는 사람은 안 먹기로 . 그런데 내가 이기고 이 사람들이 졌단 말요.

그러니까 밥 먹을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고, 저 친구들은 냄새나 맡고

물이나 마시게 되었소. 보아허니, 이 양반들은 다 천하에 호걸들이신 모양인데,

대장부 일구이언을 할 리가 없겠지. 여보 국 그릇도 여기 놓으시오. 물동이는 여기 놓고."

하고 원효는 손으로 놓을 자리를 가리켰다.

 국그릇을 가진 중은 원효가 놓으라는 자리에 국그릇을 놓았다.

그러나 물동이 든 중은 놓을까 말까 하는 모양으로 좌중을 돌아 보았다.

좌중에서는 눈만 부라리고 말이 없었다.

"왜, 안 놓소? 어서 놓으라면 놓아."

하고 원효는 호령하였다. 조용하던 방이 쩡쩡 울리도록 큰소리였다.

그 중은 얼결에 물동이를 내려놓았다. 원효는 밥 함지를 머리에 떠받들고,

"삼보께 공양하나이다."

"중생아 다 배부를지어다."

하는 두 마디를 외우고 나서 혼잣말 모양으로,

"어허, 내가 오늘 무슨 공덕을 쌓았길래 이 밥을 받나.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위하시어

무량거의 근고를 하셨건마는, 하루 한때밖에 밥을 안 자셨거늘 나는 무엇을 했길래

아침 낮에 밥을 배불리 먹나. 어허 두려운지고.

이 쌀 한 알이 밥이 되어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 중생의 수고는 얼마나 하며

하늘과 땅의 수고는 얼마나 한가. 일 아니하고 밥을 먹는 것은 중생의 피를 빨아먹는 것과 같다.

도적이다. 도적이다. 나는 도적이다. 밀 한 이삭 주인 모르게 먹은 죄로 소가 되어

그 빚을 갚았다 하거든. 이 밥 한 그릇 값없이 먹은 죄는 얼마나 할까.

아 무서워라, 무서워라."

 원효는 눈앞에 무서운 것이 보이는 듯이 몸을 떨었다.

 좌중은 멀거니 원효의 하는 양만 보고 있었다.

 앞에 밥그릇에서 김이 오르고 밥의 향기가 나는 것도 잊은 것 같았다.

 원효는 잠시 말이 없다가 다시 입을 열어 창을 한다.

 "이룬 공 없이 중생의 수고를 먹어 천 겁에 중생의 몸을 받느니 보다 차라리 굶어 이 몸이 죽으리라."

 이렇게 두 번을 불렀다. 그 청에 좌중은 황홀하였다.

 그들은 평생에 이러한 소리를 들은 일이 없었고 또 그런 것을 생각한 일도 없었다.

 욕심은 많고 일하기는 싫으니 힘 아니 들고 욕심을 채울 욕심으로 도적이 된 것이었다.

 원효가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는 마디마디 일동의 폐간을 찔렀다.

 원효는 다시 혼잣말을 계속하였다.

"내가 밥을 받아먹을 아무 공덕도 없는 것을 생각하니 이 구수한 밥내를 맡는 것도 가슴을 에는 것

 같구나. 작년 흉년으로 쉴새 없이 일하는 농부들도 풀뿌리를 삶아서 연명을 하고 있는 터에

 이 하얀 밥이 황송하다." 하고 원효는 밥 함지를 번쩍 들고 문 밖으로 내어대고,

"굶주리는 중생들아 밥내라도 맡으소." 하였다.

 밥그릇의 김은 굶주리는 중생을 향하여 떠나는 듯이 모락모락 공중으로 올랐다.

 원효는 밥 함지를 놓고 다음에 국그릇을 번쩍 들고서,

"자, 국내도 맡으소. 금년엘랑 오곡이 풍등하여 배불리들 먹으소."

하고 도로 제자리에 놓은 뒤에 손으로 밥 한 주먹을 움켜들고,

"좌중에 말하오. 마음 같아서는 이 밥을 아니 먹고 굶어 죽고싶소마는

목숨이 모질어서 이 밥을 먹소. 내가 온종일 먼 길을 와서 몹시 시장해.

그러나 내 여러분께 맹세하오. 이 밥이 내 뱃속에 들어가서 삭는 동안에

나는 내 마음속에 있는 모든 악심을 삭여버리고 내일 아침 해 뜰 때부터는

중생을 위해서 무슨 일이나하는 사람이 되려 하오.

만일 이 말이 거짓말이 되어서 이 밥을 먹고도 중생의 것을 훔쳐먹는 사람이 된다면

내 먹는 밥이 알알이 송곳이 되어 영겁에 내 몸을 꼭꼭 찌르고 꺼지지 않는 불길이 되어서

무간지옥에서 이름을 태울 것이오. 내 맹세를 제불보살과 천지신명과,

또 이 자리에 계신 여러 호걸들이 증명하시오."

하고 주먹에 든 밥을 입에 넣고 맛있게 우물우물 먹었다.

주먹으로 밥을 쥐어 먹고는 국 버치를 번쩍 들어서 국을 마시고 이렇게 몇 차례 한 뒤에,

"고마워라. 배가 불룩하니 새 기운이 나오."

하고 이번에는 물동이를 들어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는 원효는 만족한 듯이 입맛을 쩍쩍 다시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제 정신이 들어서 제 밥그릇을 내려다보았다.

 원래 몸집이 큰 광대뼈는 원효의 곁에 앉아서 침만 삼키고, 말라깽이는 무슨 궁리를 하는지

 눈을 깜작깜작하고 있으나 땅딸보만은 까딱 아니하고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그는 대장부의 일언을 지킨다는 결심이다.

 다른 사람들은 서로 눈을 힐끗힐끗 다른 사람들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누구든지 먼저 먹는 사람만 있으면 저도 따라 먹자는 것이다.

 밥과 국을 돌리던 중들은 이 야릇한 광경을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다.

 이 구석 저 구석에도 침 삼키는 소리가 더욱 커지고 더욱 잦아졌다.

 배들은 고프고 구미는 동하고 입에서 침이 쉴 새 없이 흘러 나왔다.

 사람들의 눈은 또 원효에게로 모이기 시작하였다. 침을 꿀꺽 삼키고는 원효를 바라보았다.

 그 입에서 무슨 말이 떨어져야만 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이 생각된 까닭이었다.

 방 한복판에는 아직도 윷가락이 자빠지고 원효의 막동사니를 두 길로 따라가다가 만 말 둘이

 아직도 말판에 놓여 있었다. 하나는 날개요, 하나는 속윷이었다.

 원효는 짐짓 여러 사람들의 시선을 못 보는 체하고 두 손을 무릎 위에 놓고 한가로이 몸을 흔들고

 있었다.

 '이 밥 먹고는 악심을 안 내고 일을 잘 하겠노라고 맹세를 하고 먹을까.'

 광대뼈는 이런생각을 하였으나 그 말이 입 밖에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원효는 의외로 생각하였다.

 이 사람들이 이만큼 한번 한 말을 지키는가 하고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였다.

마음 같아서는,

"자 어서들 자시오."

하고 싶었으나 그들이 대체 얼마나 한 자제력이 있고 통제력이 있는가,

 나중에 그들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가 보고 싶었다.

 혹은 그들이 원효에게 대하여서 폭행이나 아니할까 염려도 하였으나 만일 그리 된다면

 거기서 또한 그들의 본심을 알 수 있고 그들에게 도를 깨닫는 기틀을 줄 수도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목젖이 불쑥하고 오르내리는 것이 보였다.

 빈 입을 우물우물하였다. 눈을 내리깔아서 밥을 보고는 또 눈으로 허공을 보았다.

 마치 마아밥을 볼 수 없어 하는 것 같았다.

 광대뼈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낫다. 광대뼈는 눈을 꽉 감고 침을 한번 삼켰다.

 땅딸보는 좌선하는 중 모양으로 눈을 모아서 허공을 바라보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원효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이 광경을 더 오래 계속하는것은 자비심에 어그러지는 것 같았다.

 배가 고픈 것도 어려운 일이어니와 먹을 것을 앞에 놓고도 못 먹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말라깽이는 몇 번 목젖을 불룩불룩하더니 이쪽저쪽으로 눈을 꿈적꿈적하였다.

 그러나 하나도 그의 군호에 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땅딸보는 도리어 말라깽이를 향하여서 눈을 흘겼다.

 원효는 그것이 더욱 고마웠다.

"여러분께 한 말씀 여쭈오."

하고 원효는 공손히 이마를 땅에 대이고 말하였다.

"여러분은 과연 의리가 있는 이들이오. 장난삼아 한번 하신 말씀을 그대도록 정성을 지키시니,

필히 전생에 많이 도를 닦고 이 생에서는 좋은 일 많이 하시려는 원으로 태어나신

이들일시 분명하오. 이제 이 사람이 한 가지 여러분께 간청할 말씀이 있소.

그것은 무엇인고 하니 비록 저녁을 굶으시기로 마음을 작정하였더라도 그만하시고 잡수시오.

지금 잡수시더라도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오.

한 가지 더 청할 것은 이 밥이 여러 중생의 피와 땀으로 되었다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시고,

이 밥을 잡수시고 몸이 튼튼하시고 기운이 많으시어, 중생을 많이 도우셔서

위로는 사중은四重恩= 君, 父,衆生, 師을 갚으시고,

아래로는 삼도고三途苦= 獄, 畜生,餓鬼를 건지시는 갸륵하신 어른네가 되소서 함이오."

하고 잠깐 고개를 들어서 일동을 둘러보고,

"한자리에 앉는 것도 천 겁의 인연이라 하였사오니,

 여러분네는 이 사람의 사뢰는 말씀을 들어 주시옵소서."

 하고 한번 더 머리를 방바닥에 대고는 바로 앉았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살아났다 하는 빛이 돌았다.

"자 먹세." 이것은 광대뼈였다.

"그럼 먹습니다." 이것은 땅딸보였다.

"당신도 좀 더 잡수시지." 이것은 말라깽이였다.

 손들이 분주히 밥에서 입으로 오락가락하였다.

쩍쩍 밥 씹는 소리, 국 마시는 소리가 났다. 모두 씨근씨근 숨이 찼다.

 이때 먹는 밥은 특별히 맛이 있었다.

배고프고 먹고 싶은 것을 참다가 참다가 먹는 밥이라 입에 들어가는 대로 꿀이 되고

배에 들어가는 대로 피가 되었다.

 원효는 가만히 그들이 먹는 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는 아무 잡념이 없었다.

 마음 전체가 입으로 몰렸다. 몸이 온통 입이 된 것이었다.

 살려는 본능이 얼마나 강한가를 목도하였다고 원효는 생각하였다.

 더구나 기운찬 젊은 사람들이요,

 탐욕이 남달리 많은 사람들임을 볼 수가 있었다.

 저마다 밥과 국을 남보다 먼저 더 먹으려고 눈이 뻘갰다.

 순식간에 밥 한 알, 국 한 방울 없이 다 먹어치웠다. 동이에 물 한 방울도 남지 아니하였다.

 좀 더 먹었으면 하는 듯이 군입을 다시면서 제 밥그릇을 부시어 혀로 핥듯이 다 먹어 버렸다.

 말라깽이가 과식을 하여서 끄륵끄륵 트림을 하고 있었다.

 밤이 되어도 풀피리는 보이지 아니하였다.

 원효는 궁금하게는 생각하나, 그렇다고 그들에게 묻기도 안되었고,

 또 무턱대고 찾아 떠날 수도 없었다.

 '일성초적 봉용래의 一聲草笛 鳳龍來儀'는  저를 비봉산 용천사에서 찾으라는 풀피리의 말이라고

 원효는 해석한 것이었다. 더구나 용천사 판도방에 모여 있는 무리의 행색을 보니,

 도적의 졸개들일시 분명하였다. 그럴진댄 반드시 피리를 만날 길이 있을 것이요,

 그리 되면 공주와 아사가 남매의 일을 알리라 하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목침을 베고

 드러누워 있었다.

 그들은 있는 소리, 없는 이야기로 계집과 놀던 소리를 하고 있었다.

 하나도 제 처자는 없는 모양이었다. 아마 그들은 이야기를 만들어 가지고 그것을

 남에게 들려주는 것을 만족으로 삼는 모양이었다.

 "그년, 암만해도 말을 안 듣길래 모가지를 꼭 졸라매고."

 이런 소리를 하는 자도 있었다.

 듣고 보면 모두 사람깨나 죽인 사람들일는지도 모른다고 원효는 생각하였다.

 거지들은 대개 탐욕은 있어도 그것을 실행할 기운이 부족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음에 드는 것을 보면 바라보고 부러워할 뿐이었으나,

 이 사람들은 탐나는 것을 보면 곧 칼이나 몽둥이를 가지고라도 그것을 제 것으로 만들고야

 마는 것이었다.

 사람 안 보는 데서 남의 물건을 몰래 집어가는 일도 노상 아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람들은 어떤 저항을 배제하고 목적물을 빼앗아야 비로소 만족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이 가장 천히 여기는 것은 좀도적이어서, 만일 좀도적이 눈에 뜨이기만 하면

 가만두지 아니하였다.

 저희는 범이라 하고 좀도적은 고양이라 하였다.

 큰 저항을 배제하여야 목적을 달하기 때문에 그들은 한 두목 밑에 굳은 단결을 지었다.

 그들은 웃사람의 명령에 복종하고 또 동무의 원수를 갚을 의리가 있었다.

 원효도 도적 나라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신라에 한 분만이 계시는 임금 모양으로 신라 도적에도 대두목 하나가 있었다.

 세상에서 알기는 그가 바람복이었다.

 대두목 밑에는 여러 층으로 소두목이 있어서 마치 나라의 조직과 같았다.

 원효는 이번 기회에 이 도적 나라의 내정을 알아보고 싶었다.

 듣는 바에 의하면 고구려에도 그런 도적의 나라가 있어서 나라로서는 도적 중에서

 쓸 만한 자를 뽑아서 장수를 삼는 일도 있어 그러한 장수들이 용감하게 싸운다고 하고,

 또 고구려에서는 거지를 이용하여서 신라와 백제에 들여보내어 염탐꾼이 되게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신라와 같은 작은 나라에서는 그런 것을 이용하였단 말을 못 들었다.

 원효는 저 거지의 떼와 이 도적의 떼를 나라 일에 이용할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도 하고,

 또 저 땅딸보 같은 자가 불도에 들어올양이면 필시 힘있는 중이 되어서 큰일을 하지 아니할까,

 이러한 생각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음담패설도 차차 적어지고 코를 고는 사람이 하나둘씩 늘었다.

 밤새 소리가 들렸다. 코도 힘있게 곯았다.

 다들 잠이 들었다. 말라깽이도 오줌을 누러 나가는 모양이더니 들어오는 길로 잠이 들었다.

 어두워서 사람들의 얼굴은 보이지 아니하고 숨소리와 코고는 소리만 들렸다.

 "이놈, 이놈." 하고 잠꼬대를 하는 자도 있었다.

 수도생활을 하는 자도 전생 기억으로 무서운 꿈을 꾸거든 살인 강도하는 자의 꿈이

편안할 리가 없어서 그들의 잠든 모양은 화평하지를 아니하였다.

꺽꺽 하고 숨이 막히는 소리를 하는 자도 있었다.

"응, 응."

하고 무서운 것에 쫓기는 소리를 하는 자도 있었다.

 원효는 가만히 일어나 앉아서 관세음보살을 염하였다.

"이들 마음의 어두움을 당신의 빛으로 밝히시고,

이들의 괴로워하는 넋을 당신의 손으로 만져 편안하게 하시옵소서."

하고 원효는 비는 것이었다.

 원효가 이렇게 관세음보살을 염할 때에 문득 피리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분명히 옥미원에서 듣던 곡조였다.

원효는 방안에 누운 무리를 제도할 것을 굳게 맹세한 뒤에 밖으로 나섰다.

캄캄하였다. 봄의 어두움이란 원래 심한 법인데다가 수풀 속이라 과연 칠통과 같았다.

게다가 먼 데가 뿌연 것을 보면 안개가 있는 모양이었다.

원효는 피리 소리 나는 데로 걸음을 옮겼다.

 얼마쯤 가서 원효는 옥미원에서 부르던 노래를 피리에 맞추어서 불렀다.

 피리 소리가 잠깐 그쳤다.

 원효도 우뚝 섰다.

 얼마 후에 다시 피리 소리가 났다. 원효는 또 그 가락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이번에는 피리 소리가 그치지 아니하고 더욱 힘차게 계속되었다.

 원효는 바위를 돌고 나무를 피하여서 걸었다. 소리는 가까운듯하면서 암만 걸어도 그만 하였다.

 원효는 어떤 등성이에 올라섰다. 거기서 소리 한마디를 길게 뽑았다.

 그때 원효가 바라보고 있는 편에서 불이 번쩍하였다.

피리소리가 끊이더니 불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원효도 불을 향하고 마주갔다. 절에서 십 리는 온 것 같았다.

 마침내 불이 원효의 앞에 와 섰다.

"내가 피리요."

하고 피리는 등을 들어 제 얼굴과 원효의 얼굴이 비치도록 하였다.

"나는 소리요."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하하하하."

 피리가 먼저 웃었다. 그는 장삼을 입고 거사로 차리고 있었다.

"하하하하."

 원효도 웃었다.

"나는 대사께서 오늘이야 웬걸 오시랴.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 오실 줄 생각하고 있었소."

하고 그는 등을 들고 앞을 섰다.

 원효는 뒤를 따랐다.

 피리는 걸으면서 원효에게 용천사 말을 물었다.

원효는 내기윷 놀던 말과 밥 먹던 말을 하였더니 피리는 원효를 돌아보고 소리를 내어서 웃었다.

 그러나 그들이 다 네 부하냐, 이런 말은 묻지 아니하였다.

 골짜기를 몇 건너자 길에 나서서는 차차 낮은 데로 내려갔다. 달이 떴다.

 원효가 인도받은 곳은 큰 촌락이었다.

마을 앞에는 꽤 큰 개천이 흘러 달빛이 번쩍거리고 촌락에는 기와집이 즐비하였다.

"누추한 곳이오."

하고 피리는 한 대문을 두드렸다.

 삐걱 하고 대문이 열리고 개가 내달았다.

개는 원효를 한번 쳐다보고는 피리를 보고 꼬리를 치고 앞을 섰다.

 사랑으로 들어갔다. 으리으리한 차림차림이었다.

거기는 원효의 바랑과 바가지들이 놓여 있었다. 예가 끝나고 좌정한 뒤에 피리는 웃으며,

"저 짐을 먼저 날라 온 것이 손님 대접이오. 하하하."

하고 나서,

"공주와 아기와 아사가 남매 다 편안하시니 내일 아침에 만나시기로 하고 오늘 저녁은 편히 쉬시오."

하고는 찬란한 잠자리를 깔아놓고 들어가 버린다.

 원효는 잘 자고 잠이 깨었다. 창이 훤하고 참새들이 지저귀었다.

원효는 용천사 판도방 패가 잠이 깨어서 원효가 간데없는 것을 보고 문제가 되었으리라

생각하니 우스웠다.

세숫물이 나오고 아침상이 나올 때 피리는 장삼이 아니요, 속인의 옷을 입고 나왔다.

모두 옥색 명주였다. 그렇게 차리니 귀인 같았다.

그는 장삼을 입으면 거사와 같고 방갓을 쓰고 방아라를 걸치면 또 방아 같았다.

무엇을 입어도 어울리고 무엇을 차려도 그럴듯하였다.

옥같이 흰 얼굴에 까만 구레나룻이 제비날개 모양으로 나고 눈에 인정스러운 광채가 있었다.

아직 통성명도 아니 하였건마는 벌써 친하였다.

원효의 상은 특별히 소찬이요, 피리의 상은 육찬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에는 말없이 밥을 먹고 있었다.

피리는 무슨 말을 할 듯 할 듯 원효를 힐끗힐끗 보았다.

원효도 공주 일행의 말을 묻고 싶었으나 계제를 만나지 못하였다.

"원효대사."

하고 피리가 먼저 입을 열어서 물었다.

"나는 원효대사가 아니라 소성거사요."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글쎄. 그야 대사시거나 거사시거나 사람은 한 사람 아니오."

피리는 숟가락을 멈추고 이렇게 말하였다.

"그는 그렇소. 본래는 원효대살러니 이제는 소성거사요."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면서 훌훌 국을 마셨다. 산나물국이었다.

"그러실는지 모르겠지마는 나는 소성거사라고 부르기는 싫소 그려.

원효대사 한 분을 잃어버리기가 싫단 말이오. 그는 그렇다하고 내가 어떤 사람이요,

여기가 어딘지는 벌써 짐작하시겠지요?"

피리는 싱긋 웃는다.

"당신은 피리를 잘 부시니 나는 당신을 피리라고 이름을 지었고,

 이 동네는 아마 당신네 같은 이들이 사는 소굴인가 생각하오."

원효의 이 말에 피리는 발연히 변색하고 숟가락을 상에 던지면서,

"아니, 어쩐 말씀이오. 소굴이라니? 대사가 망령이시오그려."

하고 원효를 노려본다.

 "소굴이란 말을 모르시오. 날짐승이 사는 데를 소라 하고 길짐승이 사는 데를 굴이라 하여,

 무릇 짐승들이 모여 사는 데를 굴이라 하거니와 도적을 짐승으로 보는지라

 도적이 모여 사는 곳을 소굴이라 하는 것이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데를 마을이라 하고, 신들이 모여 사는 데를 시로라 하고,

 중들이 모여 사는 데를 절이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오?

 내가 바른대로 말하였거든 댁이 노여워할 것이 없지 않소.

 그럼 무엇이라고 불렀으면 좋겠소."

 원효는 빙그레 웃었다.

 피리는 노한 빛을 약간 거두며,

 "대관절 대사가 어찌하여 이곳에 오신지 아시오?"

 하고 몸을 바로하여 위엄을 갖추었다.

 "내가 온 일을 내가 모를 리가 있소.

  도적의 떼에 잡혀간 내 가솔과 제자들을 찾으러 왔소."

 "찾으러 왔다? 대사 마음대로 찾아갈 것 같소."

 피리는 '안 되리라'는 듯이 입을 다문다.

 "내 처자와 내 제자를 내가 데려갈 것을 누가 못하게 할까."

 원효의 언성도 컸다.

 "원효대사가 도력이 크고 이름이 높아서 천하를 횡행하여도 거칠 것이 없을는지

  모르겠소마는,도적의 소굴에 잡혀왔다가는 호락호락하게 놓여 나가기 어려우리다."

 "하하하. 요석공주가 나를 사흘 동안 요석궁에 잡아 가둔 일은 있소마는

  광대무변한 이 법계法界에는 아무도 원효를 막을 자가 다시는 없을 걸. 하하하하."

 하고 원효는 한바탕 실컷 웃고 난 뒤에 흥에 겨운 듯이 젓가락으로 밥상을 두들겨

 장단을 맞추면서,

 "일체무애인一切無碍人이 일도출생사一道出生死를."하고 길게 뽑았다.

 그러는 동안 피리는 전신이 화석이 된 듯이 눈알도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원효는 마음껏 소리를 뽑고 나서는 밥그릇에 물을 부어서 숟가락에 듬뿍듬뿍 퍼서

 입에 넣었다.

 피리는 원효의 이 방약무인한 모양에 견딜 수 없는 모욕을 느꼈다.

 "내가 원효를 죽이더라도. 원효를 죽이고 살리는 것이 내 손에 달렸거든."

 이렇게 피리는 얼렀다.

 그러나 그 소리는 뚝 펴이지를 못하였다

 원효는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하핫하핫."

 하고 크게 웃는 바람에 입에 물었던 밥이 튀어나와서, 반찬 씹힌 것과 아울러 피리의

 얼굴과 전신을 수없이 때리고, 더러는 그냥 붙어 있고 더러는 방바닥에 떨어졌다.

 피리는 맴을 돌린 사람 모양으로 정신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산전수전 다하고 몸과 마음이 닦일 대로 다 닦인 줄로 자신하고 있던 피리도

 이러한 경우는 처음 당하고 이러한 사람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원효는 한참 웃고 난 뒤에,

 "어, 그 밥풀이 모두 얼굴에 붙어서 안되었소."

 하고 팔을 쑥 내밀어서 피리의 얼굴을 이마에서 턱까지 쓸어 주었다.

 피리는 원효의 팔을 부러져라 하고 홱 갈겼으나 원효의 팔은 어느 새 제 자리에 돌아오고

 피리의 팔이 제 밥상을 쳐 국그릇을 둘러엎어서 무르팍이 젖고  쇠고기 비린내가 방에 찼다.

 피리는 더욱 원효에게 밟힘을 느꼈다.

 "거, 어디 그 솜씨 가지고야 원효를 죽이겠소. 원효를 친다는 것이 제 국그릇을 쳤으니

 남이 안 보았으니 망정이지 큰 망신 하실 뻔했소 그려.

 자, 어서 국 한 그릇을 더 가져오래서 밥이나 자시오.

 국만 아니라 한 상을 다시 차려오라시오.

 어, 그 반찬 그릇에 모두 내 입의 밥이 튀었군."

 하고 원효는 먹던 밥을 다시 먹는다.

 "그래. 살아서 이 동네를 벗어날 것 같소?"

 피리는 겨우 정신을 차린 듯이 원효를 향하여 활을 당기는 것이었다.

 "어, 또 그런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구려. 그러니까 웃음이 터지지 않소.

 내가 살아 나가고 싶으면 살아 나가고 죽어 가고 싶으면 죽어 나가는 것이지,

 누가 나를 죽이고 살리고 한단 말요? 화불능소火不能燒, 수불능표水不能漂,

 란 말도 못 들었소.

 하늘도 나를 어찌하지 못하거든 탐진치를 가진 범부가 천만 명 덤비기로 나를 어찌한단 말요.

 당신은 도적 부하 몇천 명, 몇만 명 되는지 모르지만 내게는 천지에 모든 선신善神이

 따르고 있고, 무변법계에 제불보살이 다 내편이니 내가 도를 잃는 날이면 모르되

 내가 정정당당하게 불도로 나가는 동안에는 천지가 모두 합하기로 나를 어찌한단 말이오.

 피리, 노형이 만일 눈이 바로 뜨였다면 내 옆에 저 무서운 방망이를 든 금강역사가

 옹위하고 서 있는 것을 보리다."

 원효의 이 말에 피리는 몸에 소름이 끼침을 깨달았다.

 아까부터도 무엇인지 제 몸을 누르고 때리는 듯하여서 원효에게 저항하기 어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피리도 지금 원효가 한 말과 같은 말을 못 들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소리는 다 허황한 소리라고 생각하였다.

 사람에게 낙을 가져오는 것은 재물과 술과 계집이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칼이라고 믿고 있었다.

 피리도 귀신을 무서워한다.

 산에 가면 산신령이 계시고 물에 가면 물신령이 계시고 집에 오면 집에 모시는

 여러 신령이 계신다고 믿는다.

 그래서 큰 도적질을 떠날 때에도 송아지 드릴 데는 송아지, 도야지 드릴 데는 도야지,

 닭 잡아 제사할 데는 닭, 소로 할 데, 시루떡으로 할 데, 다 가려서 제사를 드린다.

 그들은 신령도 이렇게 재물을 바치기만 하면 다 말을 들어주실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도적의 제사를 받는 귀신은 도적 귀신이요 결코 선신이 아니실 것을 생각하지 아니한다.

 선하신 신명이 받으실 제사는 마음 착한 이가 바치는 제사인 줄을 모른다.

 원효의 말 중에 가장 피리에게 무섭게 들린 것은 천지의 모든 선신이 다 제편이라는 말이었다.

 과연 그렇다 하면 그것은 큰일 인 것 같았다.

 원효가 밥을 다 먹고 상을 물릴 때 피리는,

 "대사도 도적의 밥을 자시지 아니하였소?" 하고 웃었다.

 "내가 도적의 밥을 먹었을 리가 있소. 선한 중생의 공양을 받았소."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어쩐 말씀이오? 금방 내 집에서 지은 밥을 자시고서도 아니라고 하시오?"

 피리는 이렇게 역습하였다.

 "도적의 손에서 쌀 한 알이 지어질 리가 있소? 다 선한 중생이 임금의 땅에 땀을 흘리며

 천지신명의 쌀이 되게 하신 것이지."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고 잠깐 멈추었다가,

 "도적의 입에 밥 한 알이 들어갈 리가 있소?

 오늘이나 오늘이나 하고 도적이 바른길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밥을 먹여 살리는 것이지.

 만일 기다릴 만치 기다려도 회과천선을 아니하면 나라에서는 법의 칼이 움직이고

 저승에서는 지옥의 불이 노형을 태우려고 마련될 것이오.

 그런데 아마 오늘이 그 한 날인 것 같아."

 이렇게 말하고 원효는 피리를 뚫어지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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