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문학관

원효대사/춘원

오늘의 쉼터 2009. 6. 24. 20:56

 

 

<원효대사를 내가 왜 이 소설을 썼나>

 

 원효대사는 우리 민족이 낳은 세계적 위인 중에도 머리로 가는 한 사람이다.

그는 처음으로 「화엄경소」『대승기신론소』『금강삼매경소』를 지어서

인류 문화에 불교와 더불어 멸할 수 없는 업적을 남긴 학자일 뿐 아니라,

그가 몸으로 보인 무애행無碍行은 우리나라의 불교도들에게 산 모범을 주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위인으로서의 그는 소설보다도 전기나 다른 글로 더 잘 설명도 하고

찬양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원효대사를 내 소설의 주인공으로 택한 까닭은 그가 내 마음을 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장처長處속에서도 나를 발견하고 그의 단처短處속에서도 나를 발견한다.

이것으로 보아 그는 우리 민족적 특징을 가장 많이 구비한 것 같다.

 나는 언제나 원효대사를 생각할 때에는 키가 후리후리하고 눈이 어글어글하고 옷고름을

느슨히 매고 갓을 앞으로 수굿하게 쓰고 휘청휘청, 느릿느릿 걸어가는 모습을 본다.

 이것은 신라 화랑의 모습이요,

최근까지도 우리 선인들의 대표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그 모습이 무척 그립다. 그것은 모든 욕심과 남을 해하려는 마음을 떠난 속이 하늘과 같이

넓은 모습이었다. 막힘이 없고 거리낌이 없는 모습이다.

원효대사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이러한 성격인데다 화엄경으로 더욱 그것을 닦아서 빛낸 것이었다.

나는 솜씨가 부족하나마 이러한 원효대사를 그려 보려 하였다.

 중국 사람이 쓴[원효전]에 나타난 것을 보면

' 생이영이 학불종사 원적무항 화인부정 임의수기 도무정검'

  生而潁異 學不從師 元跡無恒 化人不定 任意隨機 都無定檢

(원효의 생이 벼이삭이 피는 것과는 달라서 배우는 것이 스승을 따르지 않았고, 그 발자취는 일정하게정해진 바가 없었다. 또한 그 사람됨도 정해진 바가 없어서 자기 뜻에 따라 혹은 기회에 따라 도무지

일정함이 없었다,라는 뜻)이라 하고,

심지어는 ' 혹수처현형 육방고멸' 或數處現形 六方告滅

(혹은 여러곳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그 어디에서도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라는 뜻)이라 하여

그의 신통 자재함을 찬탄하였다.

 그는 글 잘하고, 말 잘하고, 칼 잘 쓰고, 기운 좋고, 날래고, 거문고 잘 타고, 노래 잘하고,

잘 놀고, 이 모양으로 화랑 중에도 으뜸 화랑이었다.

그는 삼십 세 안팎에 벌써 화엄 학자로 당나라에서 이름이 날렸다.

그가 태종무열왕의 따님 요석공주와 관계해서 설총을 낳아 놓고는 파계승으로 자처하여

거사居士로 차리고 뒤웅박을 두들기면서 거렁뱅이가 되어

'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아니 간 데가 없기 때문에

' 상지차 천촌만락 차가차무 화영이귀 사상추옹유획지배 개식불타지호 함작나무지정 효지화대의재'

  嘗持此 千村萬落 且歌且舞 化詠而歸 使桑樞甕유획之輩 皆識佛陀之號 咸作南無之程 曉之化大矣哉

  (항상 뒤웅박을 가지고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가무를 하거나 노래를 짓고 돌아갔는데, 오만가지

   시정잡배들로 하여금 모두 부처의 이름을 알게 하고 또 그들이 나무아미타불의 길에 다다르게 해서

   결국 부처니의 도를 깨닫게 하여 부처님께 귀의하게 했다. 라는 뜻)라고 씌어 있다.

 

물론 원효의 진면목이 이러한 곳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국민으로는 애국자요, 승려로는 높은 보살이다.

중생을 건진다는 보살의 대원은 나는 때, 죽는 때에도 잊거나 잃는 것이 아니거니,

하물며 어느 때에랴.

보살의 하는 일은 모두 자비행이다. 중생을 위한 행이다.

혹은 국왕이 되고 혹은 거지가 되고 혹은 지옥에 나고 혹은 짐승으로 태어나더라도

모두 중생을 건지자는 원에서다.

그러므로 원효대사의 진면목은 그 의 보살원과 보살행에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소설에서 그릴 수 있는 것은 그의 겉에 나타난 행이다.

만일 독자가 이 소설을 읽고 원효대사 내심 內心의 대원大願과 대자비심에 접촉한다 하면,

그것은 내 붓의 힘이 아니요,

오직 독자 자신의 마음의 힘이다.

나는 이 소설에서 원효를 그릴 때 그의 환경인 신라를 그렸다.

왜냐하면 신라라는 나라가 곧 원효이기 때문이다.

크게 말하면 한 개인이 곧 인류 전체이지만 적어도 그 나라를 떠나서는

한 개인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효는 사람이거니와 신라 사람이었고, 중생이거니와 신라 중이었다.

신라의 역사에서 완전히 떼어낸 원효란 한 공상에 불과하다.

원효뿐만 아니라 이 이야기에 나오는 요석공주도 대안법사도 다 신라 사람이다.

그들은 신라의 신앙과 신라의 문화속에서 나고 자란 것이다.

여기 민족의 공동 운명성이 있는 것이다.

 나는 원효와 불가분의 것으로 당시 신라의 문화를 그려보려 하였다.

그 고신도(古神道)와 거기서 나온 화랑과 역사에 남아 있는 기록으로는,

또는 우리말에 담겨 있는 뜻으로 당시의 사상과 풍속을 상상하려 하였다.

특별히 나는 ‘ 말은 역사다’ 하는 것을 믿음으로 우리말에서 문헌에 부족한 것을 찾아서

보충하려 하였다.

그 중에는 나의 억측도, 견강부회(牽强附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중에 버릴 수 없는 진리가 있음을 믿어 장담한다.

나는 독자가 이것을 웃어 버리지 말고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우리 역사의 성격을 천명하기를 바란다.

 원효가 난 것이 진평왕 39년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 전이거니와 이때는

신라가 전성시대로 향하는 시대여서 큰 인물이 많이 쏟아졌다.

정치가로는 김춘추, 김유신 같은 이가 나고, 큰 중으로는 자장, 원광, 안홍 등 저 수당(隋唐)에

까지 이름이 높아서 그곳 제왕의 숭앙을 받던 사람들도 이 무렵에 있었고 원효, 의상 등

거인과 귀산, 비목, 관창, 거진, 원술같은, 화랑에도 꽃이 되는 사람들도 다 이 무렵에 났다.

 한 나라가 잘되려면 먼저 좋은 사람들이 나거니와, 좋은 사람이 나게 하는 인연이 되는 것이

정신운동이다.

신라로 말하면, 이차돈의 피가 인연이 된 법흥왕의 불교 숭상과 진흥왕의 화랑 장려가

이러한 인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정신적 원천을 이룬 것이었다.

 사람들이 제 몸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알아서 제가 먹고 입을 것을 버는 것으로

생활의 목표를 삼는 동안 문화가 생길 리가 없고 큰 인물이 날 수가 없는 것이다.

제 목숨보다도 높고 소중한 것을 보고 따라서 제 목숨을 유지하기에 급급한 생각을 버릴 때

비로소 애국자도 종교가도 학자도 나는 것이다.

 불교는 우리의 몸과 몸에 속한 모든 쾌락과 영광이 다 허수아비요,

꿈인 것을 가르치고, 오직 중생을 사랑하고 어여삐 여겨

그들을 돕고 편안하게 하고 건지는 것만이 가치 있는 생활이라고 본다.

 충효를 기초 원리로 삼는 우리 민족 고유의 풍류교(風流敎)가 이 불교 정신을 받아서

내용이 충실해지고 광활해진 것이 화랑도의 정신이요, 인생철학이었다.

이러한 정신에서 신라 전성시대를 일으킨 인물들을 배출하였으니,

원효대사도 그러한 사람 중 하나였다.

 내가 이 소설에서 애써 고신도와 국선, 화랑의 생활을 그린 것이 이 때문이다.

 나는 원효를 그림으로 불교에 있어서는 한 중생이 불도를 받아 대승 보살행으로

들어가는 경로를 보이는 동시에 신라 사람을 보이고, 동시에 우리 민족의 근본정신과

그들의 생활 이상과 태도를 보이려 하였다.

이러한 것은 다 내게는 감당치 못할 과중한 과제다.

그런 줄 알면서도 한번 해 본 것은 내 눈에 어렴풋이 띤 우리 민족의 모습이

아니 그려보고는 못 배기도록 그리웠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민족을 무척 그립게 아름답게 본다.

그의 아무렇게나 차린 허술한 속에는 왕의 자리에 오를 고귀한 것이 품어 있다고 본다.

그의 재주나 마음씨나 또 그의 말이나 다 심상치 아니한 것이어서

장차 엄청나게 큰소리를 치고 큰 빛을 발할 약속을 가진 것으로 믿는다.

그는 과거 수천 년에 고통도 수모도 당하였다.

 그러나 그는 결코 저를 잃음이 없이 민족의 단일성을 지켜 내려왔다.

그러할뿐더러 그는 그의 고난의 역사 중에서 중국, 인도, 유럽, 아메리카 등

거의 모든 문화를 흡수하여 제 것을 만들었다.

그는 한 수행자였다.

그는 아직 설산 고행 중에 있는 석가세존이요,

광야의 금식 기도 중에 있는 그리스도다.

그러므로 그의 외양은 초라하고 아무도 그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수행자이기 때문에 장차 환하게 큰 빛을 발하여 세계를 비추고

큰소리를 울려 중생을 가르칠 날이 올 것이다.

지금은 비록 간 데마다 수모를 당하더라도 오늘날엔 가장 높은 영광이

그를 위하여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거렁뱅이 행세로 뒤웅박을 두들기고 돌아다니는 원효대사는 우리 민족의 한심벌이다

그?일찍, “ 서까래 백 개를 고를 적에는 내가 빠졌으나 용마름보 한 개를 구할 때에는

오직 내가 뽑혔노라.” 하고 한 말이 또 한 우리 민족의 사명을 가리킨 것이라고 본다.


                                        춘원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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