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서울유형문화재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78호 백자청화파초국화문호

오늘의 쉼터 2023. 4. 18. 15:51

 

종    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78호
명    칭 백자청화파초국화문호 (白磁靑畵芭蕉菊花文壺)
분    류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백자
수량/면적 1점
지 정 일 2020.11.05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시    대 조선 19세기
소 유 자 서울공예박물관
관 리 자 서울공예박물관
일반설명

<백자청화파초국화문호>는 조선후기 관요(官窯)에서 제작된 청화백자 항아리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으며, 파초(芭蕉)와 국화(菊花)라는 문양소재와 표현 방식 등은 조선후기 청화백자 중에서는 흔하지 않은 사례에 속한다. 굽바닥에“을ᄉᆞ / ᄌᆞ궁이”이라는 명문이 점각(點刻)되어 있어, 제작년도·사용처·제작 수량을 특정할 수 있어 가치가 높다.

전세품의 문양 구성을 참고할 때, 조사대상은 국화와 파초를 함께 시문한 것으로 매화·난초·대나무가 그려진 항아리도 같이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굽바닥 명문에도“이[두 쌍]”즉, 네 개가 만들어졌다고 쓰여 있어 세트로 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굽바닥 명문을 통해 제작시기와 사용처, 수량을 파악할 수 있어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백자의 양식을 참고할 때 을사년은 1845년으로 생각된다. ‘ᄌᆞ궁’은 ‘자궁(慈宮)’으로서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죽고 왕세손이 즉위하였을 때 그 죽은 왕세자의 빈(嬪)을 이르던 말로 알려져 있다. 조선후기 사료에서는 주로 정조대왕 즉위 후 혜경궁 홍씨를‘자궁’으로 지칭한 사례가 가장 많았으며 1845년이라면 혜경궁 홍씨 死後에 해당된다. 혜경궁은 고종36년(1899) 사도세자가 장조(莊祖)로 추존되면서 헌경왕후(獻敬王后)로 함께 추증되었기에 그 이전에 혜경궁 홍씨의 창덕궁 자경전이나 관련 시설을‘자궁’으로 불렀다면, 대략 유물의 양식과 배경이 어느 정도 부합된다고 볼 수 있다.

위와 같은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조사대상 <백자청화파초국화문호>는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백자청화파초국화문호
백자청화파초국화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