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모래시계
# 1 인천 바닷가
횟집이 늘어서있는 길에 현수막 하나가 걸려서 바람에 펄럭 거리고 있다.
[기호3번 신민당 고완섭. 먹고도 안 찍는 민주배짱!]
자막 : [1985년 2월]
택시 한 대가 와 선다.
내리는 장도식.
택시기사 잔돈을 세면서 계속 떠들고 있다.
기사 : 아시겠습니까? 손님 절대 투표는 하셔야 됩니다. 투표를 해서 여당 놈들 정신차리 게 해야 된다구요 여기 있습니다.
장도식 잔돈을 받고 떠나는데 택시 기사 창문 밖으로 목을 빼어 한마디 더
기사 : 우리 국민들. 욱하는 성질을 보여주시라구요. 안녕히 가십쇼.
장도식 묵묵히 걸으며 피식 웃는다.
# 2 횟집?
장도식이 들어선다.
카운터에 모여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요리사들…종업원 아줌마들
종업원 한 명 겨우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어
종업원 : 어서 오세요. 일행 있으십니까?
장도식, 그들이 보는 텔레비전을 힐끗 본다.
각 후보의 유세장면이 나오고 있는 뉴스 장면이다.
장도식 : 여자 손님을 만나기로 했는데…
종업원 : 이쪽으로 오십쇼
텔레비전을 보던 아줌마 한 명 분이 나서 떠든다.
아줌마 : 이봐라. 이 거 편파방송 아이가. 여당이 연설하는 건 길게 보여주고, 야당은 짧 게 보여주고.
장도식, 종업원의 안 내를 받아 가는데 뒤에서 계속 들리는…
아줌마 : 돈도 없고, 방송도 이 모양이고 .내사마 야당 사람들 불쌍해서 찍어줘야겠구마.
# 3 이층 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바다…
아무도 없는 방 안 에 마주 앉은 혜린과 장도식.
장도식, 혜린의 잔에 정종을 따르며
장도식 : 대단한 선거야. 아주 재미있어.
혜린 : 좀 초조하시겠어요.
장도식 : 이런 말하는 거, 이젠 우스갯소리가 됐지만 윤 사장. 나 4.19세대야. 그 때 구호도 기억해 여러분! 행동이 결여된 지성을 우리는 원치 않습니다.
혜린 웃는다. 멈추려다가 또 웃는다.
장도식 : 말하자면 나, 변절자야. 그런데 나, 지난 20년에 보람을 느끼고 있어. 내 나름대로 행동을 해왔으니까.
혜린 : 경제발전된 거 봐라. 우리가 아니었으면 국민들은 아직도 밥을 굶고 있을 거다. 그런 논리인가요 ?
장도식 : 뭐 그렇게까지 유치하진 않아. 그냥… 이런 생각은 하지. 어차피 거쳐야할 과정이었다면 그걸 우리가 해냈다고. 욕을 먹어가면서 말이지.
혜린 피식 웃고 창 밖의 바다를 보다가
혜린 : 박태수 씨 어떻게 하면 빼낼 수 있지요?
장도식, 그런 말을 하는 혜린을 물끄러미 본다.
종업원이 회 접시를 받쳐 들고 와서 가운데에 놓고 간다.
회가 떠진 생선은 아직도 아가미를 벌럭거리고 있다.
장도식 : 윤 사장 그렇게 어리석지 않은 줄 알았는데.
혜린 : 내 카지노 지분과 바꾸는 조건이면 어때요?
장도식 : (보다가 허허 웃는다) 내 그동안 윤 사장의 계산은 대충 읽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윤 사장은 카지노를 살리기 위해 박태수를 이용했어. 말하자면 박태수가 우리를 배신하게 만든 거야. 그 친구가 어떤 대가를 치를지 뻔히 알면서 말이야.
혜린 : 맞아요.
장도식 : 그런데 카지노를 찾고 보니 남자도 필요해졌다 이 건가?
혜린 : ……나 약속은 지켜요. 카지노 영업 정지가 풀리는 즉시 녹음테이프는 돌려드렸잖아요.
장도식 : 그랬지. 그 날 도청을 한 솜씨는 기가 막혔어.
혜린 : ……태수 씨 빼내야겠어요. 조 건을 말씀해보세요
장도식 : ……너무 늦었어.
혜린 : ……
장도식 : 박태수는 이제 유명인사가 됐어. 선거기간동안 쓸모가 많았고. 이젠 우리 손을 벗어났어.
혜린 : (말없이 보다가 핸드백을 챙겨든다) 당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이 있었나요? 일개 도시에 탱크를 집어넣기도 했잖아요. 잊었어요?
혜린, 약간 고개를 숙여 보이더니 먼저 자리를 뜬다.
남은 장도식, 그대로 남겨져있는 회접시를 내려다본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제 생선은 미약하게 조금씩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 4 횟집 앞
나서는 혜린. 대기하고 있던 재희, 차의 문을 열어준다.
헤린, 차에 타려다가 문득 바다를 본다.
# 5 바닷가
혜린, 바다를 보며 앉아있다.
재희, 그 뒤에 서있다.
혜린, 문득 재희를 돌아본다.
혜린의 미소가 쓸쓸한 듯…
재희, 혜린의 옆으로 와서 앉는다.
함께 나란히 바라보는 바다…
그러다 불쑥
혜린 : 옛날옛적에 그 사람하구 나 저어기 어디 섬에 갔었어. 여기서 보이나 몰라………그 때 그 사람 그런 말을 했어. 자길 믿는다면 옆에 있어달라구. 다음날 새벽에 난 도망쳤어. 그 땐 그 게 그 사람을 위하는 거라구 생각했어.
재희 : 아니었습니까?
혜린 : 난 그냥… 겁이 났든 거 같애 어떤 한 사람의 여자가 된다는 게 …그래서 사랑을 해야 된다는 게…그 건 참… 겁나는 일이잖아 제일 어려운 일이구 …
바다를 보는 재희, 빙긋이 웃고 있다. 재희가 알고 있는 사랑은 그런 게 아니다.
혜린 : 재희는 내가 절대루 도망치지 않는 사람이라구 했지. 아니 난 정말 겁나면 도망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재희는 잘 몰라.
재희 : 어떤 사람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난 그저 생각합니다. 이 분은 내 앞에서만 눈물을 보인다. 지치면 나에게 기댄다. 더 이상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혜린, 재희를 돌아본다.
재희는 바다만 보고 있다.
혜린도 재희가 보는 바다를 본다.
혜린 : 나 그 사람한테 빚을 지고 싶지 않아.
재희 : ……
혜린 : 그동안 그 사람 때문에 나 참 마음이 불편했어. 그 사람 생각만 하면 언제나 마음이…아팠어.
재희 : 예
혜린 : 더 이상은 그러고 싶지 않아.
재희 : 압니다.
혜린 : 더 이상은 못하겠어.
그들이 보고 있는 겨울바다…
# 6 구치소
작은 창문으로 하늘이 보인다.
미결수의 감방
한 쪽 벽에 붙어 앉아있던 몇 명의 미결수, 한 쪽을 힐끗 거리며 보고 있다.
그들이 보고 있는 다른 쪽 벽에 편하게 기대앉은 태수. 눈을 감고 있다.
철컹 문이 열린다.
무심코 돌아보던 태수, 굳는다.
성큼 들어서는 미결수복의 정근. 태수를 발견하자 얼른 다가와 그 앞에 덥썩 엎드린다.
정근 : 형님.
태수 : (혀를 차고 싶은 심정) 무슨 짓이야?
정근 : (신이 나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형님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간다구요. 그래서 왔습니다.
정근 문득 두리번거리더니 한 남자를 가리킨다.
정근 : 어이 너!
남자 당황해서 보면
정근 : 너 일루 댕겨.
남자 영문 모르고 움직거린다.
정근 : 임마 거기 문틈 새로 바람들어오잖아. 형님 감기 드신다. 막어.
남자 기세에 눌려서 쭈삣 거리며 문틈 앞에 막아 앉는다.
태수, 그만 허 웃고 만다.
태수 : 다들 잘 있냐?
정근 : 그러믄요. 저기 근데 형님 저 드릴 말씀이…(얼른 무릎을 꿇는 자세로 ) 실은 저희들 쓸데없이 입을 놀렸습니다.
태수 : 말해.
정근 : 저기…저희는, 그 여자가 알고 있는 줄 알고 … 그래서 찾아갔든 겁니다. 저희들이 무슨 도움이 될까 해서…
태수 : (앉는 자세가 바뀌어져서) 무슨 소리야?
정근 : 그 여자가 형님 일을 모른 척 하길래 약이 올라서 그만…
태수 : 돈 얘기냐?
정근 : …예.
태수 :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
정근 : 형님 돈이란 거 알고, 그 여자 엄청 놀라는 거 보고, 우리도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가…
태수 : 정근아.
정근 : 예.
태수 : 그 여자라고… 함부로 부르지 마라.
정근 : 죄송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태수 다시 뒤로 기댄다. 생각에 잠기는…
# 7 구치소 면회실
문이 열리고 태수 들어선다.
우뚝 선다.
거기 와 있는 민 변호사.
민 변호사 : 앉으세요.
태수, 자리를 잡아 앉는다.
교도관도 뒤에 자리를 잡고.
민 변호사 가방에서 이 것 저 것 서류를 꺼내며
민 변호사 : 내가 변호사 이름은 달았어도, 원래 이런 게 전문이 아니라, 좀 서툴 거예요. 먼저 기소내용부터 살펴볼까요.
태수 : 윤 사장이 보냈습니까?
민 변호사 : 내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변호사를 소개할 수도 있어요.
태수 : (말없이 보기만)
민 변호사 : 다른 변호사를 원해요? 그렇다면 가서 그렇게 전하지요
태수 : 이런 거 윤 사장한테 별로 좋지 않을 텐데.
민 변호사 : 그럴 겁니다.
태수 : 먼저 윤 사장 생각부터 들어봅시다. 그 다음에 변호사를 바꿀 건지 생각을 해보고.
민 변호사 : (기록을 하고 있는 간수 쪽을 힐끗 보고) 사장님은 빚을 갚아야한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태수 : 그 거 뿐입니까?
민 변호사 : (사실 태수가 마음에 안 든다. 그런 내색을 감추지 않고 태수를 본다)
태수 : 빚을 갚는다. …단지 그거요?
민 변호사 : 사건에 관계된 얘기만 하죠.
태수 : 아니 나한텐 그 게 재판보다 중요한 문제요.
민 변호사 : ……내 생각을 말해도 되겠어요?
태수 : (끄덕)
민 변호사 : 세상엔 말에요. 서로 만나지 않았어야 하는 인연도 있어요. 사람들은 그런 걸 악연이라고 해요. 당신들 두 분 서로 그래요.
태수 : (물끄러미 민 변호사를 보다가 빙긋 웃는다) 그 말은 결국 나하구 혜린이…우리가 다시 만날 거란 얘기로 들리는데……
민 변호사, 태수의 시선을 계속 받아보려고 하다가 결국 머뭇머뭇 눈길을 돌린다.
# 8 광주 지검 전경
# 9 우석의 검사실
오 계장 힐끗 거리고 본다.
창가에 등을 보이며 서있는 여자, 혜린의 부티나고 늘씬한 뒷모습을 훔쳐보고 있다.
문이 열리는 바람에 오 계장 꿈찔한다.
우석 들어선다.
오 계장 : 이제 오십니까. 아까부터 기다리셨는데…
우석, 돌아서는 혜린을 본다.
오 계장 : 서울에서부터 오셨답니다. 검사님을 잘 아신다고 해서 제가 기다리시라고…
혜린 : 나 왔어.
우석 : 그래. 잘 왔어.
오 계장 벙해서 본다.
혜린 : 저번에 우리 집에 왔을 때 내가 잘못했어. 말 안 한 거 있어.
우석 : 그런 거 같앴어.
혜린 : 이종도를 만나 게 해줘.
우석, 혜린의 저의를 살피듯 본다.
혜린 : 이종도 앞에선 우리 모르는 사이였으면 해. 그 게 낫겠지?
# 10 취조실
(거울 없는 방)
이종도 살피듯 보고 있는 앞에서.
혜린, 단정하게 앉아 우석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 계장 부지런히 받아 치고 있고,
혜린 : 당시 아버진 열두 개 슬롯머신 업소에 지분을 갖고 있었어요.
우석 : 윤재용 회장 본인의 이름으로 샀습니까?
혜린 : 아뇨. 반은 박 회장 이름으로 샀어요.
우석 : 박 회장이라면 교통사고로 사망한 박승철 씨를 말하는 겁니까?
혜린 : 네.
이종도 혜린의 속셈을 몰라보고 있다.
우석 : 어째서 남의 이름…그러니까 박 회장의 명의로 산 거지요?
혜린 : 어차피 그 슬롯머신의 이익금은 상납용이었기 때문이에요 상납 받는 쪽에서 그러길 바랬죠.
우석 :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겠어요?
혜린 : 간단해요. 아버지 돈으로 슬롯머신 지분을 사서 그 이득금을 바치는 거죠. 그 덕분에 카지노를 유지할 수 있는 거구요.
우석 : 그 과정에서 이종도가 한 역할은 뭡니까?
혜린 : (종도를 본다)
종도 : (마치 관계없는 말을 듣는다는 투로 앉아있지만 내심은 초조하다)
혜린 : 영업상무였습니다. 슬롯머신 지분을 사들이는데 앞장 섰고, 부하들을 시켜서 운영을 했구요.
종도 : (허허 웃는다)
혜린 : 그 대가로 두 개의 업소 지분을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석, 잠자코 있다가
우석 : 누구한테 상납을 한 겁니까?
혜린 : ……
종도 혜린을 숨도 쉬지 않고 보고 있다. 혜린 얼핏 종도를 돌아본다.
혜린 : 그 내역을 적어놓은 장부가 있어요. 언제 누구한테 얼마를 줬다는…
오 계장 돌아본다.
우석도 잠시 숨을 멈췄다가
우석 : 어디 있습니까?
혜린 : 아버지가 은행 금고에 넣어두셨는데 제가 그걸 찾아 나오는 날 뺏겼습니다. (종도를 바로 보며) 내 손에 들고 있는 걸 뺏어갔어요.
우석 : (종도와 혜린을 번갈아본다)
혜린 : 그 얼굴을 기억해요.
종도 관심 없다는 듯 딴 데를 본다.
우석 : 오 계장.
오 계장 : 예.
우석 : 이종도 수하 인물들 인명록 있지요.
오 계장 : 사진 붙어있는 거 말씀이시죠. 갖고 오겠습니다.
오 계장 나간다.
종도 귀를 후비며 여유 있게 보이려고.
문득
혜린 : 검사님.
우석 : 예.
혜린 : 이분과 잠시 단둘이 얘기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우석 : (혜린을 보다가) 곤란합니다. 피의자와 증인을 단 둘이 놔둘 수는 없어요.
혜린 : 부탁입니다.
우석 말없이 혜린을 본다.
혜린 부탁하는 눈길로 우석을 본다. 종도 둘의 눈치를 본다.
우석, 몸을 일으킨다.
우석 : 오 분 정도면 되겠습니까? 문 밖에 있지요.
우석 나간다. 문이 닫히고 혜린, 낮 게 긴 숨을 내쉰다.
종도 벌컥 상체를 혜린에게 내밀며 낮게
종도 : 원하는 게 뭐요? 어 어쩌자고 이러는 거야 ?
혜린 : 댁이야말로 어쩌실래요?
종도 : 이 거 봐. 머리 잘 써. 같이 망하구 싶어? 나하구 나란히 쇠고랑차구 싶어? 내가 그렇게 못할 거 같애?
혜린 : 장부… 복사본 갖고 있지요?
종도 : (멈칫했다가) 뭐래는 소리요 시방?
혜린 : 갖고 있어 뭐하시게요? 나라를 상대로 협박하실래요? 댁의 뱃짱에 될까요?
종도 : ……
혜린 : 난 댁의 부하 얼굴을 기억해요. 댁이 슬롯머신 운영하면서 끌어들인 깡패들도 알아요. 댁의 비밀 구좌 번호도 알고, 그 구좌에서 깡패들한테 지불한 금액도 알아봐줄 수 있어요. 댁이 조직폭력배의 두목이란 거, 열개도 더 증 거 대줄 수 있어요
종도 : (문득 킬킬 웃는다)날 너무 쉽게 생각지 마쇼
혜린 : 박 사장 살해 교사했지요? 민 변호사 앞에서 그 사실을 시인했다구요.
종도, 비죽이 웃으며 혜린의 옷깃을 손가락으로 털어준다.
종도 : 민 변호사 정도로 될까? 내 뒤엔 아무도 없는줄 아쇼? 어?
혜린 : 그 뒤에서 댁이 비밀 장부 복사본을 갖고 있는걸 알면 퍽 기뻐하겠군요.
종도 웃음이 멈춰본다.
종도 : 그런 거 없어. 잘 들어. 그런 거 없어.
혜린 : …없어요? 그 거 참 안 됐군요.
혜린, 일어서서 문 쪽으로 간다. 종도 그러는 혜린을 보고 있다.
혜린, 문 손잡이를 잡으려는데 그 팔목을 덥썩 잡는 손.
어느새 성큼 달려온 종도다.
# 11 검찰 내 복도
혜린, 혼자 걸어오다가 보면 복도 저 끝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 앞에 우석이 서있다.
혜린 그 앞에 가서 선다.
우석 : 그 장부 종도가 갖구 있나.
혜린 : ……
우석 : 받기로 했어?
혜린 : 자꾸 다그치면 나 우석 씨한테 거짓말을 하게 돼. 다른 증언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
혜린 가려는데 우석 그 어깨를 잡는다.
우석 : 혜린아.
이만치에서 몰래 보고 있던 오 계장, 이크해서 고개를 숨긴다.
아무래도 둘이 영 수상하다.
우석 : (혜린을 돌려세운다) 난 널 믿어. 믿어서 종도하고 둘이 남겨준 거야.
혜린 : 알어.
우석 : 너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든지, 대학교 때 알아버린 거 잊지 못할 거야. 난 그걸 믿어.
혜린 : ……
우석 : 무엇이 옳고 그른지 너 알고 있어. 그 장부 우리한테 줘.
혜린 : ……미안 해.
우석 : 여전히 대한민국 검사를 믿지 못하는 거니?
혜린 : ……우석 씨를 위해서야.
우석 : 혜린아.
혜린 : 그리구 그 사람을 위해서야.
우석 : …태수?
혜린 끄덕이더니 머뭇거려 우석을 보다가 돌아서 간다.
우석, 가는 혜린을 보고 있다가
우석 : 나오세요.
엿보던 오 계장, 이크했다가 쭈삣 거리며 나온다.
우석 : 대기시켰습니까?
오 계장 : 그럼요 준비하구 있을 겁니다. 근데 그러니까 방금 그 미인이 바로 윤재용 회장의 그…
말하다 보면 우석의 낯빛이 너무 우울하다.
# 12 길거리
혜린의 차가 달리고 있다.
# 13 혜린의 차 안
운전석의 재희. 뒷자리의 혜린.
재희 운전하며 백밀러를 유심히 본다.
재희 : 벨트 매시겠습니까?
혜린, 뒤를 돌아본다.
따라오고 있는 차.
혜린, 벨트를 찾아 맨다.
재희 속력을 높인다.
# 14 수사관 차 안
조 순경이 운전을 하고 있고, 그 옆에 백 형사가 앉아있다.
그들 보는 시선에서 앞의 혜린의 차가 속력을 높이고 있다.
조 순경 : 눈치를 챘는가본데요.
백 형사 : 그러네.
조 순경 : 속도위반인데요.
백 형사 : 딱지 끊어야지.
조 순경 액셀을 밟는다.
# 15 길
재희, 백밀러를 보며 속력을 높혀 운전하고 있다.
조 순경의 차가 점점 거리를 좁혀온다.
재희 앞 쪽을 본다.
중앙선 너머 저만치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며 섰던 차들이 출발해온다.
재희 순간, 차를 급회전시켜 중앙선 저 쪽으로 들어선다.
유턴한 재희의 차가 아슬아슬하게 달려오는 차들의 앞을 달리며 조 순경의 차를 지나쳐간다.
조 순경, 급히 차를 세우지만 중앙선 너머 길은 이미 달려오는 차들로 메워지고 있다.
조 순경, 분해 미칠 지경인데 옆에서 백 형사가 묻는다.
백 형사 : 저런 건 얼마짜리 딱지야?
# 16 종도의 아파트 입구
문이 열리며 마담 여자 내다본다.
여자 : 누구시라구요?
혜린 : 윤혜린입니다. 이종도씨 상사되는 사람이에요
여자 : 어머 그럼 윤 회장님의 따님이시라는…
혜린 :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만…
여자 얼른 문을 연다.
# 17 안방
마담 여자 놀라 보는데
재희, 침대의 시트를 홱 벗기더니 매트리스를 훌렁 든다.
혜린, 매트리스 밑을 손으로 더듬어 본다. 한곳에 손이 멈춘다.
재희, 나이프를 꺼내 그 부분을 부욱 찢는다.
여자, 놀라서 입을 가린다.
혜린, 찢겨진 매트리스 안 에서 서류봉투를 꺼낸다.
안 을 열어본다. 복사한 장부뭉치. 여자 보다가 불안 하지 어디론가 연락하려는듯 부지런히 나간다.
혜린, 재희를 본다.
재희, 빙긋 웃고 있다.
재희 :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 자가 복사본을 갖고 있으리란 거 .
혜린 : 몰랐어.
재희 : 몰랐어요?
혜린 끄덕인다.
혜린 : 응
# 18 장도식 사무실 건물
# 19 장도식 사무실
켜져 있는 텔레비전에서 개표상황을 발표하고 있다.
(85년 2월 개표상황) 울리는 전화벨,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장도식, 수화기를 든다.
장도식 : 예 ……윤 사장?
# 20 국도
달리는 차 안 뒷좌석의 혜린 핸드폰을 하고 있다.
혜린 :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유산을 오늘 찾았어요. 이 거 새로운 거래조건이 될 거 같애요. 박태수 씨 빼내는 방법을 다시 생각해보셔야 할 거 같으네요.
# 21 장도식 사무실
장도식 아무 말 없이 수화기를 잡고 있다.
점점 안색이 굳어지고 있다.
장도식, 문득 시선을 들어 텔레비전을 본다.
여자 아나운서가 말하고 있다.
아나운서 : (선거 개표 결과에 대해… 신민당 바람…)
# 22 건물 복도
젊은 참모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군데군데 둘셋씩 모여 뭔가를 숙덕거리고 있기도 하고 서류를 든 사무원 뛰 둣이 지나쳐 가기도 한다.
그들 사이를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는 장도식.
# 23 회의실
관계 대책 기관 회의가 열리고 있는 중이다.
강동환과 그 외 인물들.
회의라기보다는 중구난방으로 저마다 한마디씩 떠들고 있는 격앙된 분위기.
아래 대사들은 겹쳐서 따로따로 떠들어대도 상관없음.
옆 사람에게 말하기도 하고 모두에게 소리 지르기도 하고 각각…
사내1 : 한마디로 개망신이야 부산에선 세 명이나 떨어졌어. 아니 이 등도 못해! 이 등도 못하냐고.
사내2 : 부재자 표 관리는 잘했습니다. 대부분 70퍼센트가 넘어요.
사내3 : 우린 할 만큼 했습니다. 돈 대달래는 거 다 대줬구 통장반장까지 다 동원했어요.
떠들썩한 가운데 강동환은 뒤로 기대 그들을 보고만 있다.
사내1 : 강남에 표 넘어간 거 봐. 압구정동에 몇 프로라구?
사내2 : 우리가 22.3프로 신민당이 35.9프로 민한당이 30.9프롭니다.
사내4 : 물량공세를 잘못했어. 돈 있는 놈들한테 서툰 짓을 한 거라구. 선물 반품 소동난 거 들었지요.
떠들썩한 가운데 들어선 장도식, 강동환의 뒤로 가서 뭔가 낮 게 말한다.
강동환, 흠칫 놀라 장을 돌아본다.
그 동안 에도 계속 떠드는 인물들…
사내1 : 경찰 정보과 예상은 백 프로래매? 어떻게 된 거야 ?
사내2 : 부산 6개 선 거구 중에서 이 개 소 당선자는 맞췄습니다. 두 개밖에는 못 맞췄군요.
사내4 : 욱! 바람이야. 무슨 말인지 알어? 욱하는 성질로 뒤집어졌단 말이야.
사내3 :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합니까?
사내4 : 내 말이 아니야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한단 말이야
사내1 : 유세 때부터 잘못했어. 야당 쪽에서는 아예 전투하자고 덤볐는데 우린 다리 놓는 얘기나 하고 있었잖아.
사내4 : 이거 봐, 이건, 부산 중동영도구에서 나온 정보야. 유권자들이 이랬대. 표를 갈라주어. 민정당은 떨어뜨리자. 이 등도 시키지 말자!
그들 떠드는 와중에 강동환 슬그머니 일어나 나간다.
# 24 장도식의 사무실
테이블에 다리를 올려놓고 피곤하게 앉은 강동환 술을 마시고 있다.
장도식, 강의 빈 잔에 술을 따라준다.
강동환 : …확인했나? 정말로 윤 회장의 장부를 그 여자애가 갖고 있어?
장도식 : 그런 거짓말을 할 여자는 아닙니다.
강동환, 말이 없다.
장도식 : 박태수의 석방을 원하고 있습니다.
강동환 : 안 돼.
장도식 : 장부 내용을 발표할 겁니다. 윤혜린, 그럴 수 있는 여잡니다.
강동환 : 못하게 해.
장도식 : ……
강동환 : 왜 대답이 없어.
장도식 : 어디까지를 말씀하시는 건지…
강동환 : 왜 이래. 이 거 자네가 시작한 일이야.
장도식 : 구체적으로 지시를 해주십시오.
강동환 벌컥 다리를 내리며 상체를 장도식에게 기울인다.
그 바람에 테이블 위의 양주병이 넘어지고 술이 쏟아진다.
강동환 : 이봐. 난 평생 이 나라의 안전을 위해 살았어. 안 그래도 선거 때문에 나라가 흔들리고 있어. 이 장부가 공개되면 나라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봤나. 이 거 이용해서 빨갱이 같은 놈들이 선동을 해대고 어리석은 백성들이 우왕좌왕하고 휩쓸리고……자네 다시 한 번 광주사태를 보고 싶나?
장도식, 아무 소리도 하지 않는다.
강동환 : (다시 뒤로 기댄다.) 위험요소는 싹부터 잘라. 벌써 잘라야했어.
묵묵히 앉아있는 장도식을 힐끗 본다.
강동환 : 자네 그 여자애 정들어하는 거 알아.
장도식 : (보면)
강동환 : 나라를 위해서야. 후세 역사는 이해해줄 거야.
장도식, 테이블 가로 뚝뚝 떨어지고 있는 술을 내려다본다.
# 25 광주 지검 전경
벌컥 소리를 지르는 장 수사관의 소리가 들린다.
장 수사관 소리 : 누구? 이름이 뭐야. 이름이 있을 거 아냐
# 26 우석의 검사실
우석이 보고 있다. 장 수사관 수화기를 붙잡고 있다.
장 수사관 : 장도식? 그래서 면회를 시켜줬어? 누구 맘대로? (듣고 있다가 )빌어먹을. (수화기를 쾅 내려놓는다)
오 계장 : 뭐가? 누가? 면회라니?
장 수사관 : (우석을 보더니) 구치소에서 온 전화입니다. 이종도 지금 면회중이랍니다.
# 27 면회실 (혹은 사무실)
종도, 겁먹은 눈으로 보고 있다. 그 앞에 앉은 장도식.
장도식 : 그래서 자네가 내준 게 아니란 말이지.
종도 : 그러믄요 그런 걸 제가 갖고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그 여자가 제가 줬다구 했습니까?
장도식 : (차갑게 보다가) 자네가 줬을 거야.
종도 : 아닙니다. 하늘에 맹세합니다. 정말입니다. 그 게 뭔지두 몰랐습니다. 제 어머니 두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장도식 : 자네가 줬어.
종도 : 하 미치겠네. 선생님.
장도식 : 윤혜린이 그런 걸 갖고 있었다면, 굳이 녹음 같은 거 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종도 : 녹음이요?
장도식 : 자네가 저지른 일 자네가 처리해야지.
종도 : (머뭇) 예?
장도식 : 왜. 싫은가?
종도 언뜻 뜻을 몰라보는……
# 28 법원 복도
급하게 걸어가는 우석.
누군가 서류를 들고 문을 열고 나오다가 우석에게 부딪친다.
우석, 미안 하다는 말도 없이 계속 걷는다.
# 29 판사실
벌컥 열고 들어서는 우석.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던 나이 지긋한 판사,
본다.
우석 그대로 걸어가
우석 : 이종도 보석 허가 냈다는 거 사실입니까?
판사 : (안 경 너머로 우석을 보고 책상 한켠에 밀어놓았던 서류의 이름을 본다) 강우석 검사?
우석 : 취소해주십시요.
판사 : (어처구니없다는 듯 ) 당신 검사 맞아요?
우석 : 다음의 경우 보석을 허가할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첫째 피고인이 사형, 무기 또는 십년 이상의 죄를 범한 때, 이종도가 그렇습니다. 둘째 피고인이 죄증을 인멸하 거나 인멸할 염려가 있을 때, 이종도는 충분히 그렇습니다.
판사 : 결정은 났어요. 맘에 안 들면 즉시항고를 하세요.
우석 : 증거인멸 정도가 아닙니다. 이종도 같은 인물은 반드시 또 다른 범죄를 저지릅니다. 모르시겠습니까?
판사 : (성가시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으며) 앉읍시다. 앉아서 얘기하자구.
우석 : (앉는다)
판사 :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한 겁니다. 강 검사 여기 사람 아니지요?
우석 : 그래서요?
판사 : 이종도 광주 사람이에요 광주 사람 감정 많습니다. 같은 광주 사람 넣어두면 안 좋아해요. 에 또 게다가 이 지역감정이란 게…
우석 : 판사님.
판사 : 내 말 안 끝났는데.
우석 : 광주 사람들이 방금 그 말 고마워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판사 : 뭐가요?
우석 : 그런 말이 범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
판사 : …어째요?
우석 : 게다가 이번 보석 결정은 광주하고 상관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판사, 부들부들 보는……
# 30 복도
우석 걸어 나온다.
아까와는 달리 기운이 없다.
아까 서류를 떨어뜨렸던 사람, 바삐 오다가 우석을 보고 멈칫한다.
우석, 그 자리에 우뚝 서더니 뭔가 생각에 잠긴다.
그 사람, 우석을 힐끗 거리며 지나쳐간다.
# 31 구치소 앞
종도 나오고 있다.
기다리던 수하가 종도에게 외투를 씌워준다.
대기해있던 차에 오른다.
출발해 가는 차.
# 32 관사 전경 밤
# 33 우석의 집 안 방
선영, 빨래를 개며 보는 곳.
우석, 소파에 앉아 신문을 펴든 채 읽지는 않고 생각에 잠겨있다.
# 34 안방
나란히 누은 선영과 우석.
우석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방을 나간다.
잠든 듯 눈을 감고 있던 선영, 눈을 뜬다.
# 35 거실
선영, 가운을 걸치며 살그머니 나와 본다.
불도 켜지 않은 거실에 우석, 창문을 향해 등을 보이며 서있다.
그런 우석을 바라보는 선영.
문득 돌아보는 우석.
선영, 무안 한 듯 머뭇거리다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시간 경과)
스탠드 하나만 따스하게 빛을 던지고 있고.
선영, 모과차를 우려내고 있다.
소파 밑에 기대앉은 우석 .
그렇게 말없이 있다가
우석 : 80년 오월 난 광주에 있었어요. 계엄군이었구요. 그래서 난 검사 같은 거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선영 말없이 차 한 잔을 우석의 앞에 밀어놓는다.
우석 : 아버진 돌아가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넌 잘할수 있어. 내가 알어……난 평생 빚을 진 마음으로 살 생각이었어요. 빚을 갚는 마음으로 그렇게 살면 되는 거라구.
선영 : 당신 좋은 검사에요.
우석 : (쓸쓸이 웃고 고개를 젓는) 아니. 난 자꾸 잊어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 잊어버리구…잊지 말아야지 생각하는 것두 잊구…빚진 마음 같은 건 다 잊어버리구……(말을 잇지 못한다)
선영, 주춤주춤 우석의 옆으로 가서 앉는다. 우석을 돌아본다.
우석은 자기만의 회한에 빠져있다.
멀어 보이는 우석. 선영, 슬그머니 소파 위로 올라가 앉는다.
우석 :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 대충 포기하구 그냥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래두 누구 뭐라 그럴 사람두 없을 텐데…
선영, 마른기침을 해서 목을 고르지만 뭐라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우석, 그런 선영을 돌아보고 얼핏 우울한 미소를 짓는다. 다시 우석은 자기 앞의 공간을 본다.
선영 : 그냥 이렇게 생각하면 어때요? 그러니까 그냥…다른 뭣 땜에가 아니구, 그냥… 우리 아이 때문이라구. 우리 아이가 자라는 세상을 위해서라구.
우석 : (선영을 돌아본다)
선영 : (얼른) 내 말은 옛날의 빚을, 매일 기억하는 건 아무래도 힘드니까, 자라는 아이를 보면서 생각하는 게 쉽지 않겠냐구요.
우석 : (선영을 향해 돌아앉더니) 우리 아이라고 했어요?
선영 : (어색하고 수줍고…그러다 끄덕인다)
우석 : (언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보는)
선영 : 병원 다녀왔어요. 삼 개월 돼간다구…
우석 선영의 얼굴을 보고 배를 보고 다시 얼굴을 보고 그러다가 고개를 숙이더니 잠시 움직이지 않는다.
선영 머쓱해서 본다.
잠시 후 우석의 손이 선영의 무릎 위 손을 찾아 잡는다.
우석, 선영을 올려다본다.
눈물이 어리는 듯한 얼굴로 미소 짓고 있다.
우석 : 고마워.
선영, 잠깐의 긴장이 한꺼번에 풀어진다.
우석 : 고마워.
선영 한손을 들어 머뭇머뭇 우석의 머리를 건드려본다. 그러다가 머리칼을 흐트려 놓는다.
울 것 같은 행복으로 둘 마주보며 웃고 있다.
# 36 윤 회장 집 전경
# 37 식당
혜린 혼자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문득 집안 에서 울리는 전화벨소리.
혜린, 수저를 멈추고 그 소리를 듣는다. 듣기만 한다.
주방 안 에서 아줌마가 바쁘게 거실 쪽으로 간다.
잠시 후 벨소리가 그친다.
혜린, 천천히 국물을 한입 떠먹는다.
아줌마가 수화기를 들고 들어선다.
아줌마 : 전화 왔는데요.
혜린, 말없이 아줌마가 들고 있는 전화기를 본다.
# 38 장도식의 사무실
장도식, 전화를 하고 있다.
장도식 : 박태수 내보낼 준비를 하고 있어. 아무래도 시간은 좀 걸릴 거야 그 전에 우리로서는 확인 작업을 해야겠는데 ……아니 윤 사장이 갖고 있다는 복사본의 일부만 받아볼 수 있으면 돼. 장소를 정하지. 조용한데가 낫겠지. 그래요……
얘기를 하고 있는 장도식의 얼굴 우울하다.
# 39 구치소 전경
# 40 면회실
들어선 태수 교도관을 돌아본다.
교도관은 태수를 넣어놓고는 다시 나가버린다. 문이 닫힌다.
민 변호사가 기다리고 있다.
민 변호사 : 조용히 얘기할 게 있어서요.
태수 피식 웃고 자리에 앉는다.
민 변호사 : (굳은 얼굴이다) 우리 사장님 말씀에 따르면 조만간 박태수 씨 풀려난답니다.
태수 : 무슨 소리요?
민 변호사 : 이런 말을 전하라고 하드군요. 위에서 무엇을 시키더라도 고분고분 해주라구요. 예를 들어 조서에 인장을 찍으라면 찍어주고, 사과문을 쓰라면 쓰고.
태수 : (날카롭게 보다가) 거래조건이 뭡니까?
민 변호사 : ……윤 회장님이 남긴 장부가 있었어요. 지난 몇 년 간 상납한 돈, 외국으로 빼돌려 준 돈, 그 것을 받은 사람 죄 적혀있는 거지요. 원래 이종도가 훔쳐갔던 것인데, 그 친구가 복사본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걸 찾아왔어요.
태수 : ……미쳤군.
민 변호사 : 나도 그렇게 말씀드렸지요.
태수 : 그래서 그 장부를 공개하지 않는 대신에 날 빼준다. 그 말을 믿는단 말이요?
민 변호사 : 사장님은 그렇게 믿고 있어요
태수 : 겁두 없이…… 만나야겠소. 윤 사장 오라고 해요. 만나서 내가…
민 변호사 : 저도 그렇게 말했지요. 일단 만나고 난 다음에 결정하라구요. 사장님께선 박태수 씨가 풀려난 다음에 보자고 하드군요.
태수, 불끈해서 보고 있다.
# 41 유치장 내부
덜컹 문이 열리고 태수 들어선다.
기다리던 정근, 얼른 다가서며
정근 : 인영이 형님 만났습니다. 좋지 않은 소식인데요.
태수 : (훽 돌아본다)
정근 : (찔끔한 대로) 이종도 그 자식이 풀려났답니다.
태수 : (굳어서 보는)
정근 : 보석인가 뭔가… 형님 친구 그 검사 역시 별수 없는 모양입디다. 인영이 형 말로는…(말을 더 잇지 못한다.)
태수 갑자기 울안 에 갇힌 맹수처럼 방안 을 서성이기 시작한다.
다른 자들…슬금슬금 구석으로 피한다.
태수, 생각할수록 치밀어 오르는 불길한 예감.
끓어오르는 성질을 이기지 못해서 느닷없이 벽을 차고 치고 …
정근 옆에서 어쩔 줄 모르고
태수, 간신이 멈추어 벽을 짚고 숨을 몰아쉬다가
태수 : 정근아.
정근 : 예. (얼른 다가선다)
태수 : (정근의 옷깃을 움켜잡아 가까이 당기더니 낮게) 나 여기서 나가야겠다.
정근, 놀라서 본다.
태수 : 너희들한테 미안해서 어쩌냐?
정근, 태수를 보다가 빙긋 웃는다.
# 42 구치소 앞
문을 나서는 민 변호사.
이만치 차 안 에서 보는 시선.
민 변호사 대기해있는 차 쪽으로 걸어간다.
차 안 의 영진, 들고 있던 사진을 본다.
어느 복도에서 나오는 혜린을 찍은 사진.
혜린의 뒤에 따르는 재희와 민 변호사의 얼굴이 함께 나와 있다.
민 변호사는 대기해있던 차에 올라타고 출발한다.
영진, 흥미 있는 미소를 띄우며 차를 출발시킨다.
# 43 부둣가 창고 앞
멀리 보는 시선으로 승용차 두 대가 와서 선다.
앞의 승용차에서 내리는 종도.
미리 와서 대기하던 사내들…맞이한다.
종도, 창고를 둘러본다.
뒷차로 간다.
뒷자리의 창문이 내려지며 장도식이 보인다.
종도와 무어라 몇 마디 얘기를 나눈다.
이만치 숨어서 그들을 보고 있는 인영과 창민.
서로 눈을 마주치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장도식이 탄 차가 빠져나간다.
종도, 그를 배웅한다.
무사시와 태호를 비롯한 사내들…험상궂게 어슬렁거리고 있다.
태호의 발길에 녹슨 깡통이 걸린다. 태호 툭 차낸다.
깡통은 무사시의 앞에 멎는다.
무사시 그대로 깡통을 밟고 지나간다. 우그러져 남겨진 깡통.
# 44 밤 윤 회장 집 전경
# 45 재희 방 (밤)
별다른 꾸밈이 없는 재희의 단조로운 방 모양새.
재희,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 셔츠의 소매 단추를 풀고 와이셔츠의 단추를 푸는데 노크소리.
재희, 다가가 문을 연다.
가운 차림의 혜린, 서있다.
재희 잠깐 보다가 옆으로 비켜선다.
혜린, 들어서서 어색하게 웃고 방을 낯설 게 둘러본다.
재희, 의자를 빼내주지만 혜린, 고개를 젓는다.
재희, 그저 서있는데, 혜린, 머뭇거리다가 들고 온 서류봉투를 테이블 위에 놓는다.
재희, 무엇이냐는 듯 봉투를 보고 혜린을 본다.
혜린 : 제주도에 땅문서야. 저번에 다 팔고 이 거 남았어. 꽤 넓은 땅이야. 재희 이름으로 바꿔놨어.
재희 : (표정 없이 혜린을 보고 있다가) 무슨 뜻입니까?
혜린 : (웃는데 어쩔 수 없는 쓸쓸함) 달리 방법을 모르겠어. 고맙다는 표시를 하고 싶은데…(기운을 내어) 내일 제주도에 다녀와. 가서 땅 둘러보고 팔든지 통나무집을 짓든지 생각해보고.
재희 :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혜린 : 그렇게 해. 그럼 내 맘이 좀 편해질 거야 날 위해서, 그렇게 해줘. 그럼 …잘자.
나가려는데 재희 한손을 들어 문을 짚고
재희 :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혜린 : …그동안 고마왔어. 늘 받기만 했어. 한번쯤은 나도 뭔가를 주고 싶었어.
재희 : ……잠시 내 얘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혜린, 침대 쪽으로 가더니 걸터앉는다. 재희를 본다.
재희, 문을 등진 채 생각하다가
재희 : 늘 받기만 한다고 생각했습니까?
혜린 : (끄덕인다)
재희 : (혜린을 따뜻하게 보고 있다) 나는…나야말로 행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을 알고 평생 그 사람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아가씨가 있어서 난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혜린 : ……
재희 : 이해하겠습니까? 감사를 드려야 할 사람은 접니다.
혜린 : (뭔가 말을 하려다가 목이 메는 기분 입을 다문다)
재희 : 아가씨에게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혜린, 일어선다.
재희, 문을 열어주고 뒤로 물러선다.
혜린, 문으로 간다. 멈춰서 재희를 돌아본다.
재희는 거기 서있다.
혜린, 재희에게 한걸음 두걸음 다가가 그의 목을 끌어안는다.
재희, 혜린을 안 는다.
그렇게 아픔을 누르고 서서히 혜린을 떼어 얼굴을 본다.
혜린의 눈에 눈물이 어려 있다.
두 손으로 혜린의 얼굴을 감싸 그 이마에 입 맞춘다.
눈을 감았던 혜린, 다시 눈을 떴을 때 재희는 깊이 혜린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다.
재희 자신의 가슴에 모아진 혜린의 두 손을 감싸 잡는다.
이것으로 되었다고 재희는 생각한다.
혜린의 입가에 얼핏 미소가 스친다. 평화로움과 감사…
혜린, 시선을 떨군다.
마지막으로 재희의 손이 혜린의 손을 아쉽게 놓아준다.
# 46 구치소 감방
문이 열리고 태수, 나간다.
문득 멈춰서 뒤를 돌아본다.
정근, 굳어서 보고 있다.
태수 나가고 문이 닫히고 정근, 얼른 쪽문에 붙어서 내다본다.
멀어져 가는 여러 명의 발소리 ……
# 47 구치소 마당
호송차가 서있고, 태수를 비롯한 세 명 정도의 미결수가 뒤에 탄다.
문을 닫고 잠근다.
재판정에 가기 위한 호송이다.
# 48 구치소 앞
철문이 열리고 호송차가 나온다.
그 뒤로 철문이 철컹 닫힌다.
# 49 호송차 뒤 내부
수갑을 차고앉은 태수, 슬쩍 앞 쪽을 본다.
운전기사와 그 옆에 앉은 교도관.
교도관이 뒤를 돌아본다.
태수 외에 세 명, 차에 흔들리고 있다.
# 50 공항 국내선 앞
간단한 가방을 든 재희, 길을 건너 입구로 들어가려다 선다.
자동문이 열린다.
재희,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서있다가 문득 뒤를 돌아본다.
다시 앞을 보면 여전히 열려있는 자동문.
재희, 한걸음 뒤로 빠진다.
자동문이 닫힌다.
닫힌 문을 재희, 잠시 보고 있다.
# 51 혜린의 사무실
혜린, 얄팍한 서류봉투를 가방 안 에 넣는다.
책상 위에는 또 하나의 두툼한 서봉투가 있다.
혜린, 그 것을 잠시 보고 있다가 들어서 밀어준다.
그 앞에는 민 변호사가 앉아있다.
혜린 : 잘 보관해주세요. 은행에 넣는 게 좋겠지요.
민 변호사 : 나는 찬성할 수 없어.
혜린 : 끝난 얘기에요.
민 변호사 :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아니면 오늘 약속이라도 취소해.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나하구 같이 나가자구.
혜린 : 저 혼자 나가요.
민 변호사 : 왜 ?
혜린 : (웃는) 조용히 만나기루 했어요. 그 거 뿐이에요.
민 변호사 : 그 거 뿐이라면 재희는 왜 제주도로 보냈지?
혜린 : 아저씨.
민 변호사 : 그 거뿐이라면, 나한테 왜 약속장소를 알려주지 않는 거야.
혜린 : (잠시 보다가) 아무 일 없어요. 상대는 그래도 나라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우리 나라 법치국가에요. 아무 일 없어요.
민 변호사 : 혜린이.
혜린 : 아저씨는 해줘야 될 일이 있잖아요. 아시잖아요.
민 변호사 더듬더듬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낸다.
그 손수 건을 들고 바라보다가 안경을 벗어 닦는다.
# 52 건물 주차장
혜린 혼자 걸어 나온다.
열쇠로 차의 문을 열고 운전석으로 들어간다.
이만치 차 안 에서 그 모습을 보는 영진.
시동을 건다.
혜린의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영진 막 차를 출발시키려는데 운전석이 벌컥 열린다.
영진 놀라 보면 재희다.
재희 : 자리를 옮겨주겠습니까?
영진 멍해서 보고 있다.
# 53 길
재희 영진의 차를 운전하고 있다. 저 앞에 혜린의 차가 간다.
조수석에 앉은 영진, 사진을 꺼내본다. 구치소 앞에서 보았던 그 사진. 혜린 옆에 찍혀있는 재희의 얼굴. 운전을 하는 재희를 다시 본다.
재희는 굳은 얼굴로 앞만 보고 있다.
영진, 영문을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흥미 있다.
# 54 국도
2차선 국도길.
태수를 태운 호송차가 가고 있다.
# 55 차 내부
사내 한 명은 수갑을 찬 채 잠들어있다.
그 앞에 앉은 태수, 눈을 감고 있다가 슬며시 뜬다.
창 밖의 위치를 확인한다.
# 56 운전석
운전하던 교도관 문득 얼굴을 찌푸린다.
교도1 : 뭐야
조수석의 교도관2도 본다.
저 앞 십자로 부근에 컨테이너 한 대가 가로막고 있다.
운전사 한 명이 바퀴에 매달려 갈아 끼우고 있다.
교도관 차를 세운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교도1 : 뭐요?
운전사 미안하다는 듯 손을 들어 보인다.
교도관2 시계를 본다.
교도2 : 이런 제기
순간 교도관2의 옆 창문이 박살이 난다.
놀랄 사이도 없이 교도관2의 얼굴 앞으로 가스총이 들이밀어지고 발사된다. 창민이다.
그 사이 문을 열고 도망치려던 교도관1은 기다리던 인영에 의해 목을 끌어 잡힌다.
# 57 호송차 내부
문이 벌컥 열린다.
기다린 듯 태수 나간다.
나머지 미결수들 놀라서 우왕좌왕하는데 그들 얼굴 앞에서 창민 다시 문을 닫아버린다.
미결수 한 명 소리를 지르며 문을 열려고 하지만
# 58 차 밖
창민 차의 문을 잠가버린다.
그 옆에서 인영이 태수의 수갑을 풀고 있다.
컨테이너의 운전사 재빨리 바퀴의 나사를 조인다.
# 59 길
컨테이너 트럭이 달리고 있다.
# 60 컨테이너 내부
잠바를 걸쳐 입는 태수.
준비된 옷을 갈아입었다.
인영, 오토바이의 열쇠를 내어준다.
열쇠를 받은 태수, 잠시 인영을 보다가 팔을 벌려 안아준다.
옆의 창민의 어깨를 툭 쳐주고 컨테이너 안 에 준비되어있는 오토바이에 올라탄다.
창민이 헬멧을 내준다.
태수 다시 한 번 둘을 번갈아 바라보고 오토바이의 시동을 건다.
# 61 길
달리는 컨테이너.
속력을 늦춘다. 뒷문이 열리며 태수가 탄 오토바이가 달려 나와 땅에 내려선다. 방향을 선회하며 중심을 잡더니 그 기세로 달려 나간다.
# 62 부둣가 창고 앞
어두워지고 있다.
혜린이 모는 차가 들어와 멈춰선다.
운전석의 혜린,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
어두워져가고 있는 창고 앞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혜린, 두려움을 애써 누르고 가방을 들어 차에서 내려선다.
주위를 둘러보며 몇걸음 걷다가 혜린, 흠칫하여 돌아본다.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고 있다.
혜린, 손목시계를 본다. 그러다 굳는다.
저벅저벅 들리는 여럿의 발자국 소리.
천천히 고개를 들어보았을 때 거기 태호와 그리고 여럿 사내들이 다가와 선다.
혜린, 뒤를 돌아본다.
뒤에도 다가서고 있는 사내들……
혜린, 공포를 내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한걸음씩 차로 다가선다.
차에 타고 도망칠 생각이다. 간신이 차 옆에 다다르고 등 뒤로 슬그머니 차의 문손잡이를 잡아 벌컥 여는데, 순간, 누군가의 손이 차문을 잡는다.
혜린, 공포에 질려 돌아보면 무사시가 거기 서있다.
혜린,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지만 도망칠 곳은 없다.
순간 무사시의 손이 혜린의 어깨를 잡는다.
# 63 창고에서 떨어진 곳
숨어서 보고 있는 재희와 영진.
그들 보는 저만치에 혜린이 무사시 등에 밀려 창고 쪽으로 가고 있다.
영진, 겁에 질린 대로 가방을 뒤져 사진기를 꺼내드는데 재희, 영진의 손목을 잡는다.
재희 : 경찰에 연락해 주겠습니까?
영진 말이 잘 안 나온다.
끄덕 거리고 허겁지겁 뒤로 빠지다가 멈칫 재희를 돌아본다.
재희는 뚫어져라 혜린 쪽만 바라보고 있다.
# 64 창고 앞
드르륵 열리는 창고의 거대한 문.
사내들에 둘러싸여 입구로 밀려진 혜린의 눈에 보이는 창고 안 의 모습.
태호, 혜린의 등을 미는데 혜린, 그 손을 훽 뿌리치고 제 발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한다.
거대한 적재물들이 여기저기 놓여진 창고 안 에는 또 다른 사내들이 여기저기 서서 혜린을 보고 있다.
혜린, 멈칫 발을 멈춘다.
저 앞에 돌아 나오고 있는 종도.
종도 : 윤 사장……윤혜린.
혜린 : (마지막까지 설마했던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간신이 자세를 유지하며 어쩔 수 없이 떨리는 목소리) 내가 만나기루 한 사람은 다른 분인데요.
종도 : (입에 물었던 담배를 뱉더니 발로 비벼 끄고 ) 내 물건을 찾으러 왔어.
태호, 혜린이 든 가방을 낚아채더니 안 을 뒤져 봉투를 꺼낸다.
안 에서 꺼낸 것은 십여 장의 복사 종이.
혜린 : 나머지가 필요하면 주겠어요. 그걸 원했다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요.
종도 : (웃는다) 부잣집 딸들은 다 그런가? 세상이 아주 간단한 줄 안 단 말이야.
혜린, 극한의 공포를 느낀다.
종도, 혜린 옆의 자에게 고개짓을 한다.
# 65 창고 밖
재희, 근처에서 대걸레 자루를 집어 든다.
무릎에 대고 목검의 길이로 분지른다.
손에 단단히 거머잡고 재희, 문득 어두워진 밤하늘을 우러른다.
그리고 창고 입구를 향해 나가기 시작한다.
창고 입구를 지키며 어슬렁거리던 서너 명의 사내, 재희를 보고 놀라 다가온다.
재희,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 걸어 나가며 그들을 맞아 휘둘러 싸운다.
# 66 창고 안
혜린, 미친 듯이 한 사내를 밀어젖히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며 쌓인 짐 위로 기어오르지만 이내 발목이 잡히고 끌려 내려진다.
종도, 새 담배에 불을 붙이며 구경을 하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돌린다.
창고 문이 벌컥 열리고 있다.
혜린을 쫓던 사내들, 돌아보는 곳에 재희가 들어서고 있다.
문밖의 한바탕 격투로 흐트러진 모습.
무사시에게 잡혀 버둥거리며 일어서려던 혜린도 재희를 본다.
재희, 혜린을 본다.
순간 옆의 사내가 각목을 휘두른다. 재희, 등을 맞아 휘청이며 반격한다.
잠시 정지했던 사내들이 우루루 재희 쪽으로 몰린다.
# 67 부둣가 공중전화
영진 전화를 하고 있다.
# 68 밤거리
태수 오토바이가 달리고 있다.
저만치 앞에 검문소가 보인다.
바리케이트 앞을 막아서고 있는 경찰들…
태수, 오토바이의 방향을 급하게 바꾸어 옆길로 접어든다.
# 69 창고 안
재희 이십여 명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재희의 목표는 오직 혜린이 있는 쪽이다.
혜린 무사시에게 잡혀 몸부림친다.
종도 싸움을 구경하며 피우던 담배의 재를 턴다.
무사시, 혜린을 옆의 사내 둘에게 밀쳐낸다.
혜린, 보는 앞에서 무사시, 바바리를 벗어젖히고 등에 꼽았던 쇠파이프를 뽑아낸다.
혜린 소리지르며 나아가려다 사내들에게 잡아 채인다.
재희, 얼핏 혜린을 돌아보다가 다시 얻어맞는다.
# 70 산길
태수의 오토바이 길도 없는 산등성이를 넘어국도로 떨어져내리며 계속 달린다.
# 71 창고 안
재희 아직까지 버티고 있다.
누군가의 몽둥이를 막아내고 간신이 반격을 한다.
그 때 재희의 뒤로 다가서는 무사시.
혜린, 잡힌 채 재희! 소리지른다.
재희, 순간 돌아보며 자신의 머리를 노리는 무사시의 파이프를 겨우 피하지만 어깨에 얻어맞는다.
무사시, 다시 후려치려다가 뒤를 돌아본다.
입구에서 한 사내가 안 을 돌아보며 외치고 있다.
종도, 그를 돌아본다.
태호, 입구로 달려가 밖을 본다.
저만치 어둠 속에 달려오고있는 경찰차들의 경광등 불빛.
재희, 무릎이 꺽이며 땅에 무릎을 꿇는다.
사내들 우우 달려나간다.
무사시 종도를 호위해 나가기 위해 종도에게 달려온다.
그러나 종도는 혜린을 보고있다.
혜린, 잡았던 사내들이 달려나가면서 혼자 기진하여
휘청인다.혜린, 재희을 향해 나간다.
무릎을 꿇은 재희, 간신이 고개를 들어 혜린을 보다가 시선이 옆으로 옮겨진다.
혜린의 옆에 종도, 혜린을 보며 무사시의 파이프를 받아들고 있다.
혜린, 재희의 시선을 따라 종도 쪽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경악을 하며 눈을 감는다.
순간 혜린을 덮쳐안 는 재희, 머리를 얻어맞으며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
그 뒤로 무사시의 호위를 받으며 달려나가는 종도, 아쉬움이 남아 혜린 쪽을 돌아보고있다.
혜린, 아득함 속에 누워 자신을 감싸고 쓰러진 재희의 얼굴을 머뭇머뭇 들어본다.
# 72 부둣가로 가는 길
달려오던 태수, 오토바이를 급브레이크로 멈추며 옆으로 숨겨 세운다.
잠시후 숨어있는 태수 옆을 지나쳐 가는 서너대의 승용차,
태수 순간 지나쳐가는 자동차 속에서 종도를 본다.
자동차 지나가자 태수, 튀어나와 그들이 온 쪽을 본다.
멀리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있다.
# 73 창고 앞
경찰차들…앰블런스…
무전을 하고 있는 경찰…
그와중에 영진이 보는 곳.
재희가 들 것에 실려 나오고 있다.
그 옆을 따르고 있는 혜린.
앰블런스에 태워지는 재희.
경찰 한 명, 혜린을 잡아 뭔가 말하려는데.
혜린, 거칠 게 뿌리치고 앰블런스에 따라 탄다.
앰블런스 사이렌을 울리며 달리기 시작한다.
# 74 앰블런스 내부
재희, 가쁜 숨을 쉬며 혜린을 본다. 코피가 주루루 흘러내린다.
바쁘 게 응급처치가 이루어지는 옆에서 혜린 울며 재희를 보고있다. 재희에겐 자신의 심장 고동소리 외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가물가물한 정신 속에서 재희는 혜린의 얼굴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혜린과의 지난 날 몇장면이 혜린의 얼굴에 겹쳐 순간순간 스친다.
# 75 병원 복도
들 것에 누운 재희의 시선으로 보이는 장면……
재희의 침대를 밀어 달리는 사람들…천정의 불빛……
그리고 옆을 떠나지 않는 헤린의 얼굴 …
혜린은 울고있다. 울며 재희를 향해 뭔가 외치고 있다.
재희의 심장 고동소리 점차 미약해진다. 시야가 가물 거린다.
정상적인 시선에서 침대는 응급실 문을 박차고 들어선다.
침대는 응급실의 한곳에 멈춘다.
혜린, 문득 재희가 손을 움직이는 것을 본다.
혜린, 재희의 손을 잡는다.
혜린을 향한 재희의 눈이 웃는듯 싶다.
다시 재희의 시선.
혜린이 자신을 보고있다.
흐려지는 시선을 돌린다. 달려오는 의료진들이 보인다.
다시 혜린을 본다. 헤린은 상체를 굽히며 부른다.
재희……
그 혜린의 모습이 점차 어두워지고 암흑이 된다.
심장고동소리가 끝난다.
<22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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