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모래시계

<제19회> 모래시계

오늘의 쉼터 2018. 11. 7. 19:13

<제19회> 모래시계 




# 1 공사현장


입찰이 있는 날.

입찰 현장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이미 도착해있는 자동차들의 모습들…

(각 차량의 뒤 번호판은 전국 각지의 것들…)

새로운 승용차 한 대가 도착한다.

충북의 번호판을 달고 있다.

입찰장으로 가까이 가려는 차를 막아서는 몇 명의 사내들…

양복을 입고 있지만 불량해 보이는 인상들이다.

차의 뒤에 타고 있던 건설회사 상무, 불안해서 본다.

막아선 사내 중의 태호, 뒷문을 열어준다.


태호 : 어디서 오셨습니까?


상무 : 충남 오룡건설에서 왔습니다만…


태호 : 입찰 하시려구요?


상무 : 그렇습니다만, 누구신지…


태호 : (품에서 돈 봉투를 꺼내준다) 차비에 보태 쓰시지요.


상무 : 이건… 아니 이거 보세요.


태호 : (둘러선 사내들에게) 이 분 돌아가신다. 가시는 길 가르쳐 드려.


차를 막아선 사내들 차의 앞을 위협적으로 텅텅 치며 다가든다.



# 2 입찰장 입구


들어서는 사내들.

입구에서는 진행원이 입장하는 자들의 신분증을 확인 대조하고, 응찰서를 나누어주고 있다.

서류 봉투를 낀 부장, 총총히 입구 쪽으로 가는데 그 앞을 막아서는 사내들.


부장 : 뭐요?


사내 : 그냥 가십쇼.


부장 :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어이.


부장의 어깨를 짚는 손. 부장, 돌아보면, 무사시가 서있다.



# 3 입찰장 밖 주차장


부장, 사내들에 의해 강제로 차에 태워지고 있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보는 무사시.



# 4 입찰장 내부


줄줄이 다가온 입찰자들이 함에 응찰서를 넣고 있다.


(시간 경과)


같은 장소.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사내, 민길태, 예견했다는 듯 기분 좋게 일어선다.

근처의 사내들…대부분 서로 안면이 있는 자들…악수를 청하고 어깨를 쳐주기도 하고 분분이 일어선다.

그런 모습을 뒤에서 보고있는 태호, 몸을 돌이킨다.



# 5 종도의 회의실


각 건설회사에 적을 두고 있는 상무며 부장들…

대부분 주먹패 출신들이고 현재는 종도의 밑에 포섭이 된 사내들…

거들먹거리는 자세로 이리저리 앉아서 한담을 나누고 있다가 문이 열리고 종도가 들어서자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태호와 무사시를 양 쪽에 거느린 종도, 가운데 자리에 와서 앉는다.

정중하게 자리에 앉는 사내들…

종도의 가까이에 앉았던 길태. 테이블을 짚어 종도에게 고개를 숙여


길태 : 덕분에 이번 저희 회사에서 공사를 따냈습니다.


종도 : 수고했어.


길태 : (준비했던 가방을 밀어준다) 회장님께서 감사드리라고 했습니다.


종도 : 애들 것도 잘 챙겨줬고?


길태 : 그러믄요.


옆의 태호, 가방을 받아놓는다.


종도 : 이번에 들러리는 누가 섰는가?


철수 : 저흽니다.


종도 : 애썼구만. (길태에게) 인사는 제대로 했겠지.


길태 : 물론입니다.


종도 : 그래 다음 공사는 어딘가 ?


태호 : 다음주에 15억짜리가 하나 있습니다.


종도 : 그렇지 쪼끄만 다리를 하나 놓는다든가. 가만있자. 어이 장 상무.


철수 : 예.


종도 : 이번에 거기서 맡아볼까?


철수 : (고개를 숙여) 감사합니다.


종도 : 그 건 그렇고, 봄부터 큰 공사가 시작될 거 같드구만. 경지정리를 한다지 아마.


술렁이는 모습들…


종도 : 워낙 큰 거라서 한 회사에서 맡기는 어려울 거 같고… 몇개 회사에서 나눠야될 거 같애. 내정가액은 이달 말까지 내 알아보지.


길태 : 경지정리라면 즈이 회사가 경험이 있는데요. 형님 그 거 즈이가 맡으면… (얘기하다 보면)


종도 : (차갑게 불쾌한 듯 보고 있다)


길태 : (우물쭈물 입을 다문다)


종도 : 시방 내 머리가 모자랄 거 같아서, 니 머리루 가르쳐 주는 거냐?


길태 : 죄송합니다.


종도 : 너하고 나하고 자리를 바꿀까?


길태 : (벌떡 일어서 허리를 꺾는다) 용서하십시오.


종도, 장내를 둘러본다.

모두, 침묵하여 머리를 숙이고 있다.



# 6 광주지검 전경



# 7 복도


우석, 서류가 가득 든 박스와 가방을 잔뜩 들고 걸어온다.

방의 호수를 찾느라고 두리번거리다가 마주 오던 장 수사관과 부딪힌다.

떨어져 내리는 박스와 서류들.


장 수사관 : 이런 제기. (일단 욕부터 나오고 )


우석, 떨어진 서류를 짚느라고 애쓰는데 장 수사관, 그냥 가려다가 발에 서류 뭉치가 걸린다. 또 욕을 중얼대며 서류를 집어 박스에 던져놓는다.

가려는데


우석 : 저기.


장 수사관 : (벌컥) 뭐요 ?


우석 : 503호가 어딥니까?


장 수사관 : (우석의 옷깃을 덥썩 잡아 바로 앞의 방문에 걸린 호수를 가르켜 보이며) 보이쇼 바로 여기 오공삼 글자 보이냐고.


우석 : 아.


장 수사관 : 아 아아.


빈정대주고 간다.

저만치 가다가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다가 돌아본다.

우석이 박스를 잔뜩 안아올린 채 503호의 문을 열려고 애쓰고 있다.

장 수사관 혹시나 설마해서 보고 있다.



# 8 검사실 내부


문이 열리며 들어서는 우석,

박스 때문에 앞이 안 보이는 상태인데


소리 : 아이구 이제 오십니까?


우석, 낯익은 소리에 보면 오 계장, 반가이 다가와 박스를 받는다.


우석 : 아니 여긴 어떻게…


오 계장 : 왜요. 놀라셨습니까? 놀라실 거 없습니다. 제가 이 바닥에서 내일모레면 이십 년째입니다. 이 정도면 내가 있고 싶은 곳 정도는 내가 알아서 마련할 수가 있지요. 하하, 어이 미스 리.


타이프 치는 아가씨 미스 리 일어나 인사를 한다.


오 계장 : 말씀드렸던 강 검사님이셔. 강 검사님 인사받으시죠.


우석 : (어리둥절한 채) 아 반갑습니다.


스 리 : 잘 부탁합니다.


오 계장 : 어이구 장 수사관두 오셨나?


우석 돌아보면 문을 빼꼼히 열고 들여다보던 장 수사관. 우석과 마주치자 으이구 하는 표정.


오 계장 : 우리 방에서 함께 일할 분입니다. 베테랑이시죠. 그 점에 있어서는 자타가 공인하고 있드군요. 하하.


(시간 경과 동장소)


오 계장, 우석의 책상에 조목별로 서류더미를 늘어놓으며


오 계장 : 이쪽이 미결사건들 인수받은 거구요. 그리고 이쪽은 이번 달 내로 처리해야 될 송치사건들입니다.


우석 : 고마운데요. 오늘 밤 샐 각오하구 왔는데, 미리 다 정리해 놓으셨군요.


오 계장 : 에에 밤을 새다니요? 신혼인 분이 그런 말씀 함부로 하시는 게 아니지요. 사모님 안녕하시지요?


우석 : 예.


오 계장 : 이사 끝나셨습니까?


우석 : 예.


오 계장 : 집들이하셔야죠. 비누하고 성냥 사놨는데…어이 미스 리 우리 사모님 못 봤지. 아아 미인이시지, 아암.


우석 웃고 한 쪽을 본다.

거기 장 수사관,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서 땅콩을 던져 받아먹고 있다.

만사가 성가신 얼굴이다.


우석 : 여기서 일한지 오래됐다고 했죠 ?


장 수사관 : (보지도 않고) 팔 년 오 개월 됐슴다.


우석 : 그럼 이 지방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아시겠군요.


장 수사관 : (미처 입으로 받지 못해 떨어뜨린 땅콩을 찾느라고 책상 밑을 뒤진다)



우석 : 우리가 해야될만한 일이 있습니까?


장 수사관 : (그제야 우석을 보더니) 언제쯤 서울로 돌아가실 생각이십니까?


우석 : (?)


장 수사관 : 간단한 얘깁니다. 시간 때우길 원하신다면 송치사건이나 충실히 하시면 됩니다. 출세를 원하신다면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을 잡으시면 되구요. 빨갱이를 만들면 더욱 좋지요. 출세가 빨라진다구요. 혹시… 진짜 검사가 되길 원하신다면 (땅콩을 씹으며 생각해보다가) 관둡시다. 감기약을 먹었더니 헛소리가 나오네. (일어서 문 쪽으로 가며) 화장실 다녀오겠습니다.


나간다.


스 리 : (미안해서) 신경 쓰지 마세요. 워낙 저런 분이에요. 검사님들하고 말썽이 많아요. 그래서 맨날 이 방 저 방 옮겨다녀요. 속은 좋은 분이세요.


우석 빙긋 미소가 번지며 문 쪽을 다시 본다.

마음에 들었다.



# 9 요리집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아가씨들이 줄줄이 입장해 들어온다.

부장검사를 위시해서 지방 유지들이 우석을 환영하는 자리.

한 쪽에 앉은 우석은 영 자리가 어색하고 언짢다.

김 사장, 아가씨 하나를 끌어 우석의 옆자리에 앉히며


김 사장 : 오늘 너 특별히 잘해야 하느니라. 이분이 오늘의 주빈이시다. 알겠느냐


여자1 : 예에


부장 : 야아 젊은 검사가 있으니까, 이 늙은 검사는 찬밥이구만.


여자2 : (최 부장의 옆에서 술을 따르며) 아이 부장님껜 제가 있잖아요. 저, 조강지첩!


장내 웃음…

우석, 술을 따라주는 여자1에게 엉거주춤 술잔을 내밀어주고 있다.


여자1 : 영감님.


우석 : 예?


여자1 : 결혼하셨어요?


부장 : 어허 이거 노골적이구만 어?


김 사장 : 아니 서울에서 영감님을 어떻게 모셨길래, 우리 강 검사님께서 이렇게 숫총각 같으실까?


부장 : 말두 말아요. 술도 안 마신다는걸, 내 억지로 끌고 왔다니까.


왁자 웃고 술잔들이 오가고…

우석, 어색한 기분에 담배를 하나 빼어 물고

라이터를 켜려는데 여자1 재빨리 불을 붙여 내민다.

그 바람에 움찔하다가 술잔을 엎지른다.

호들갑스럽게 닦아주는 여자1, 우석, 기분이 좋지 않다. 둘러보면 그런 우석을 흥미롭게 보고 있는 김 사장 등…



# 10 방 밖 홀


우석 전화를 하고 있다.


우석 : 저녁 먹고 있어요. 아니 술자리야. 시간이 걸릴 거 같애요 ……(웃고) 별로 재미있지 않아.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요. 어…


끊고 돌아서는데 기다리고 있는 태호.


태호 : 강우석 검사님이시죠.


우석 : 그런데요?


태호 : 저희 회장님께서 인사를 여쭙고 싶다고 하십니다. 저 쪽 방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석 : (웃음이 나온다) 용건이 있으면 검찰로 찾아오라고 하세요. (가려는데)


태호 : (막아서며 명함을 내민다) 아는 분이실 겁니다.


우석 : (명함을 보는) 이종도…


태호 : 고등학교 때 친구이셨다면서요.


우석 : (잠시 태호를 보며 생각을 정리한다) 가서 이렇게 전해요. 검사는 용의자하고 사적으로 만나지 않는다구요. 아 이 명함 잘 받았어요.


우석 가버린다.



# 11 다른 방


무사시 등 수하 몇 명과 술을 마시고 있던 종도.

그 앞에 보고를 끝내고 앉아있는 태호.

종도, 테이블을 톡톡톡 두드리고 있다가 문득 웃기 시작한다.

쿡쿡 아주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웃는다.



# 12 검찰 근처 설렁탕집


설렁탕을 맛나 게 먹고 있는 장 수사관, 그 앞에 내밀어지는 명함.

종도의 것이다.

고개 들어 보면 앞에 와 앉는 우석.


장 수사관 : 뭡니까?


우석 : 이 사람 알죠? 이 지방에서 아주 유명하다면서요?


장 수사관 : (명함을 들여다본다) 이 사람 뭐요?


우석 : 조사를 시작할 생각이에요.


장 수사관 : (우석을 보다가 깍두기를 어적어적 씹으며 생각하다가 킥킥 웃는다) 잘 찍으셨습니다. 이 정도 거물이면 털어볼만 하지요. 근데 저로선 말리고 싶은데요. 그 이유를 얘기해도 괜찮겠습니까?


우석 : (웃는) 말씀하세요.


장 수사관 : 목적이 유명한 검사가 되는 거라면 말입니다. 좀 더 쉬운 상대를 찾으세요. 이 종도, 이놈은 너무 커요. (말 다 끝냈다는 듯 밥을 먹는)


우석 : ……압니다 . 내 손으로 수배령을 내렸었고, 덕분에 검사 옷을 벗을 뻔했으니까.


장 수사관 벙해서 보다가,


장 수사관 : 그래서 감정 때문에 수사를 하겠다는 겁니까?


우석 : 책임감으로 해두죠. 죄가 있는데도 무사했다… 이렇게 되면 겁이 없어져서, 더 큰 짓을 저지르게 될 테니까. 난… 검사 아닙니까?


장 수사관 : ……대단히 상식적인 얘기군요. 상식이라…그 거 좋은 거죠, 워낙 상식이 대접을 못 받는 시대이긴 하지만…


우석 : (기다리는)


장 수사관 : (그릇을 들어 국물을 마시더니 텅 내려놓는다) 사람이 좀 더 필요할 겁니다.



# 13 네 거리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 조 순경.

이차선에서 새치기를 해온 자가용 한 대를 잡아낸다.

길가로 유도해내는 조 순경.



# 14 은행 앞 길


회사 제복을 입은 아가씨 한 명, 돈봉투를 들고 나서고 있다.

순간, 그 뒤를 따르던 청년 한 명, 슬그머니 뒤따르는 듯 하더니 들치기를 해서 달린다.

아가씨 비명을 지르며 쫓아가지만 그 앞길을 어영부영 가로막는 들치기와 한패의 행인.



# 15 네 거리


자가용의 옆에 서있는 조 순경. 아무 청탁도 먹혀들어갈 것 같지 않는 무표정의 얼굴로 면허증을 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다.

운전사 꾸물럭 거리며 면허증을 내민다.

조 순경, 받다가 보면, 면허증 아래에 함께 건네진 지폐.

운전사, 은근한 미소를 보내고 있다.

조 순경, 상관없이 딱지를 끊기 시작한다.


운전사 : 어어, 뭐하는 거요? 이봐요, 어이.


순간, 조 순경 돌아본다.

거리 저 쪽에서 튀어나오는 청년. 뒤를 돌아보며 뛰고 있다.

그 뒤 저만치에서 소리 지르며 달려오는 아가씨.


아가씨 : 저 사람 잡아요 내 돈!


조 순경, 후다닥 뛰어가다가 다시 뛰어 돌아오더니 돈과 면허증을 운전석에 던지고 다시 달린다.

운전사 벙해서 보다가 재빨리 시동을 건다.

길 이 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오토바이.

청년 그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남자 뒤에 올라탄다.

오토바이, 출발하는데 순간 달려온 조 순경,

막아선다.

오토바이, 놀란 대로 조 순경을 피해 달린다. 조 순경,

그대로 오토바이를 덮쳐버린다.

오토바이, 미끄러지며 쓰러진다. 조 순경, 함께 나뒹군다.

급하게 일어선 청년과 남자, 양 쪽으로 갈라서 달아난다.

조 순경, 그 중 돈 봉투를 든 청년을 겨냥하여 쫓는다.

차가 달려오는 길을 가로 지르는 추격전으로 급브레이크를 밟는 차량들. 그 와중에 접촉사고가 일어난다.



# 16 다른 거리


도망치는 청년과 쫓는 조 순경.



# 17 골목


죽자고 도망치는 청년.

포기 없이 쫓는 조 순경.



# 18 다른 골목


담장을 넘어오는 청년, 간신이 넘어와서 숨을 헉헉대며 좀 안심을 하려는데 담장을 기어오르는 조 순경, 청년, 할 수 없이 또 뛴다.



# 19 폐차장?


달려 들어온 청년 숨이 터져 죽을 지경이 되어있다.

뒤이어 달려 들어온 조 순경, 역시 헉헉대며 주위를 둘러본다.

청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순간, 소리를 지르며 옆에서 달려드는 청년, 조 순경을 향해 철판을 휘두른다.

조 순경, 간신이 피해 넘어지고 청년은 달려든 기세로 엎어지더니 마지막 기운을 쓰고 난 다음 일어나지도 못한다.

조 순경, 간신이 일어선다.

청년, 헐떡이며 겨우 상체를 일으켜 돌아보더니 두 손을 앞으로 내민다.

수갑을 채우라는 것이다.

조 순경, 허리를 더듬어보지만 수갑은 없다. 조 순경,

휘청휘청 다가오더니 허리를 꺾고 잠시 숨을 고르고는 청년의 멱살을 덥썩 잡는다. 청년 한 대 맞는 줄 알고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는데 조 순경, 청년의 목에서 넥타이를 뽑아낸다.


(시간경과)


아직 지친 상태에서 폐차장을 벗어나는 조 순경과 청년, 두 사람의 한 쪽씩의 손목이 넥타이로 묶여져있다.

그 위로 장 수사관의 소리


장 수사관 : 한마디루 말해서 말을 잘 못쓰고 있는 거죠. 차루 펄펄 뛰어야 될 친구를 졸길에 묶어 놓구 있다구 할까요?



# 20 경찰서 로비


장 수사관과 우석 얘기하고 있다.


장 수사관 : 그러니 여기저기 부딪혀 말썽이 날수 밖에요. 현재는 교통계에서 호루라기 불고 있습니다.


우석 : (시계를 보며) 여섯시에 들어온다고 했나요?


장 수사관 : (입구 쪽을 보며 빙긋이 웃어) 그 전에 또 만날 친구가 있습니다. 저기 오는군요. 강력계에서 빼내려면 좀 힘드실 겁니다.


입구를 들어서고 있는 형사들 몇, 그 중에 백 형사가 있다.

형사들, 두 명의 젊은 양아치들을 잡아오고 있는 중이다.

그 중에 한 명, 반항하며 버틴다.


양아치 : 이 거 놓구 갑시다. 놓으라구요. 내 발루 걸어간다 이 겁니다. 놔요.


버티는 바람에 그를 잡고 있던 형사 놓친다.


형사 : 이 자식이.


그 때 양아치의 뒷덜미를 덥썩 잡아드는 손.

거구의 백 형사, 가볍게 양아치를 끌고 간다.

꼼짝 못하고 매달리다시피 끌려가는 양아치.


장 수사관 : 유도가 사 단입니다. 체포하는 데는 유도가 최고지요. 태권도 같은 거 잘못 쓰면 상처내기 십상이거든요.


장 수사관 빙글빙글 웃고 있다.

우석, 감탄해서 백 형사의 힘을 보고 있다.

백 형사, 아예 양아치를 어깨에 둘러메고 계단을 오르고 있다.



# 21 검사실


조 순경, 딱딱하게 경례를 붙인다.


조 순경 : 순경, 조명우 검찰수사관 503호 근무를 명받아 왔습니다.


우석 웃으며 한손을 내민다.


우석 : 강우석 검삽니다. 잘 부탁해요


조 순경, 좀 망설이다가 악수를 받는다.


검사실에는 오 계장과 장 수사관 미스 리가 있고. 문이 슬그머니 열린다.


미스 리 : 누구세요?


비죽이 들여다보는 백 형사 ,


장 수사관 : 왔으면 들어와.


우석 : 어서 와요.


백 형사, 우석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들어선다.

가져온 서류를 우석의 앞에 밀어놓는다.

도대체 말이 없는 스타일

오 계장, 슬그머니 백의 옆에 가서 자신의 체구와 비교해보고는 물러난다.



# 22 윤 회장 집 전경


아직 어두운 새벽



# 23 혜린의 방


침대에 잠들어있는 혜린.


재희 (소리) : 아가씨


혜린, 잠에서 깨지 못하며 돌아눕는다.

그 어깨를 가만히 흔드는 손.

혜린,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으킨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재희.


재희 : 장도식이 왔습니다.


혜린 : 누구?


재희 : 장도식이요.


혜린 : 몇 시야?


재희 : 여섯 시 좀 지났습니다.


혜린, 아직 완전히 깨지 못한 상태에서 이불을 젖히고 내려선다. 침대 발치에 얹어둔 가운을 걸치며 나서려는데 조용히 막아서는 재희.


재희 : 약속 없이 온 사람입니다. 회장님이시라면 기다리게 했을 겁니다.


혜린 멍하니 재희를 보다가 조금 정신이 나며 자신의 몸차림을 내려다본다.


혜린 : 아.


재희, 약간 고개 숙여 보이고 문으로 가는데


혜린 : 저기.


재희 : (돌아보면)


혜린 : 고마워.


재희, 얼핏 미소 스치며 나간다.



# 24 거실


장도식, 창 밖을 보며 서서 기다리고 있다.

돌아보면, 들어서는 혜린. 단정하게 옷을 갈아입은 상태.


혜린 : 좋은 아침입니다.


장도식 : 너무 일찍 왔나봅니다.


혜린 : (걸음을 멈추지도 않고 식당 쪽으로 가며) 아침 식사 전이라서요. 식당에서 괜찮겠습니까?


장도식의 대답은 상관없이 식당 쪽으로 간다.

장도식, 그런 혜린의 자신감이 느껴져 미소가 떠오른다.



# 25 식당


넓은 테이블에 간단한 조반상이 차려져있다.

밥과 국, 간단한 반찬 두어 가지가 혜린의 앞에 놓여있다.

양끝에 앉은 혜린과 장도식.


혜린 : (식사하며) 하루 세끼 중에 아침이 제일 중요한 거 같애요. 어쨌든 먹는 만큼 에너지가 나오니까요. 그래봤자 하루 세끼밖에 못 먹지만. 정말 생각해보니 그렇네. 아무리 돈 많이 벌고 출세해봤자 하루 네 끼 다섯 끼 먹을 수 있는 것두 아닌데, 그렇죠?


장도식 : (혜린의 말 속에 든 뼈를 모른 척) 회장님께서도 비슷한 얘기를 하신 적이 있었죠. 아침식사가 중요하다구요.


혜린 : 아.


장도식 : 의도적인가… 아버지를 닮으려고 애쓰고 있는 거 같아서 보기가 좀 안 쓰러워요.


창가에 서서 커피를 마시던 재희, 슬쩍 돌아본다.

혜린, 장도식을 향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소지어 보이고 계속 맛나게 먹는…


장도식 : 솔직한 심정이야, (어느새 슬쩍 반말로) 안쓰럽다는 거… 나야 혜린이를 교복입고 다닐 때부터 주욱 보아왔잖아.


혜린 : (식사를 계속하며 흔들림 없이 장을 보고있는)


장도식 : 대학 때 혜린이 생각도 알고… 알고 있겠지만, 나 혜린이 데모하는 거, 적극적으로 반대 안 한 사람이야. 물론 방법에는 문제가 있지만, 이 사회에 책임을 진다는 태도…훌 륭하다고 봐. 혜린인 보통 부잣집 아가씨들하곤 달랐어. 그저 좋은 옷이나 탐내고, 신랑감이나 구하는 아가씨들 말이지. 내 말 새삼스러운가?


혜린 : 칭찬으로 듣고 있어요.


장도식 : 난 혜린이의 그런 생각이 꺾이지 않았으면 해.


혜린 : (잠시 보다가) 감동적이군요. 아줌마 국 한 그릇 더 주세요.


걱정스럽게 보고 있던 재희 피식 웃어 외면한다.

혜린이는 잘하고 있다.


장도식 : (단념하지 않고) 혜린이 뜻을 더 잘 펼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 그 뭐야, 불우청소년들을 위한 야학에 관심이 있지 않았나.


혜린 : 그렇군요. 카지노 주식을 팔면 그런 학교를 몇 개라도 세울 수 있겠네요.


장도식 : 혜린이.


혜린 : 좋은 생각이에요. (국을 받아 놓으며) 십 년쯤 후에 할 일이 생겼네요.


장도식 : 혜린이를 위해서 하는 얘기야 이길 수 없어. 다친다고.


혜린 : 이기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그냥…… 한번 보고 싶어요, 이 나라에 힘 가진 사람들 어디까지 치사하고 더러워질 수 있는지… 그래도 괜찮은지… 장 선생님 알고 싶지 않으세요?


장도식 : ……


혜린 : (미소지어 보이더니 식사를 계속하는)


장도식 일어서더니 나간다.

장도식이 나가고 나자 혜린, 여유 있는 얼굴이 사라지며 숫갈을 툭 던져놓는다. 억지로 밥을 먹고 있었다.

체하는 기분. 물을 마시는 혜린을 저만치서 잠자코 보고 있는 재희.



# 26 혜린의 사무실


서류더미에 쌓여 있는 혜린.

앞에 선 최 과장에게


혜린 : 홋가이도 손님들, 특실루 배정해줘요. 그리고…( 장부를 보며) 이께다란 사람 아직 안 떠났어요? 일주일동안 이만큼이나 잃고도 모자라단 겁니까?


최 과장 : 아직 돈이 남은 모양입니다.


혜린 : 중소기업 한다면서요?


최 과장 : 이번엔 살던 집을 팔아왔단 소리가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혜린 : …… 완전히 잃게해요.


최 과장 : 완전히 말입니까?


혜린 : 차비도 남기지 못하게 해요. 돌아갈 때 차비를 꿔주되 일본에서 반드시 받아내구요.


최 과장 : (빙긋 웃는)


혜린 : (한숨 쉬는) 알아요. 이 정도로 손을 씻진 않겠죠. 하지만 생각은 해볼 거 아녜요. 다신 도박 같은 거 안 하겠다구… (자기도 웃는)


최 과장 : 오사까 여행사 예약은 어떻게 할까요? (새로운 서류를 펼치는데)


다급한 노크소리와 함께 들어서는 제복의 종업원


종업원 : 사곱니다. 502호 손님이 약을 먹었습니다.


혜린 : (벌떡 일어서며) 앰블런스.


종업원 : 불렀습니다.


혜린 : 아직 살았죠?


문으로 벌써 나서고 있는데 마악 다급하게 들어서는 민 변호사.


민 변호사 : 얘기할 게…


혜린 : 나중에 해요.


민 변호사 : (혜린을 잡는다)


혜린 : (짜증이 나며) 나중에 하자니까요.


민 변호사 : 은행에서 연락이 왔어.


혜린 : (?)


민 변호사 : 어음이 돌아오고 있어. 한꺼번에 다.


혜린, 멈춘다.



# 27 장도식의 사무 건물 전경



# 28 내부 큰 방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벽 하나 가득이 붙여져 있는 상황판에는 각 지역구 별로 입후보자들의 현황이 붙어있다.

와이셔츠 차림의 사내들 몇이 그 앞을 바쁘게 오가며 새로 입수된 정보에 따라 기호와 후보의 이름을 빈칸에 적어 넣고 있다. 전화를 받는 사람들… 메모하여 넘기고…

일반 사람은 모르는 밀실에서 선 거의 정보가 쌓여져가고 있다.

강동환 그 앞을 지나쳐가며 후보들의 이름을 훑어보고 있다.

그 뒤를 따르는 장도식.


강동환 : 허어 이것 봐. 정진석이가 무소속으로 나왔구만. 만만치 않겠는데. (어쩐지 즐 거운 게임을 앞두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이름을 보며 감탄하기도 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젓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래서 윤 회장이 내놨던 어음이 얼마나 된대?


장도식 : 액수도 액수지만 문제는 시간입니다. 몇몇 사채업자들의 도움을 받고 소문도 좀 흘렸으니까, 혜린이 힘으로 막기는 어려울 겁니다.


강동환 : 어려운 정도로는 안 돼. 시간 끌지 말고 빨리 항복 받어.


장도식 : 예.


강동환 : 어허 이 친구 기어코 나섰구만.


장도식 :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강동환 : 뭐가?


장도식 : 조금 더 시간을 주시면 설득을 더 해보겠습니다만… 아직 어린 여자앱니다.


강동환 : 이봐요. 그래서 하는 말이야. 어린 여자애하구 이게 뭐하는 짓이야? 어린 거한테 우리가 꼼짝도 못하더라, 다른 기업들에 소문이라도 나봐. 너나없이 나도 한번 뻗대볼까 이렇게 나오면 어쩔 거야?


장도식 :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강동환 : 선거가 코 앞이야, 생각 같아선 돈 찍는 기계라도 수입했으면 좋겠어.


장도식 : (웃는)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은…


강동환 : 알어. 안 다고. (새로 이름을 적어 넣는 것을 보며) 거긴 어디야? 어딘데 후보가 일곱씩 돼?



# 29 호텔 앞


앰블런스가 떠나고 있다.

종업원과 최 과장이 뒷수습을 하고 있고.

그 요란한 소리 뒤에 혜린과 민 변호사가 서있다.


민 변호사 : 내일 오전까지 이억 정도를 막아야 돼.


혜린 : 모레는요.


민 변호사 : 더 많아지겠지.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게 돼.


혜린 : ……


민 변호사 : 회장님께서 사실 좀 무리를 하시긴 했어. 슬롯머신들을 사들이면서…

혜린 : 누군지 알아봤어요?


민 변호사 : 누구라니?


혜린 : 뒤에 누군가 있을 거 아니에요, 한꺼번에 어음을 돌리 게 하는 사람, 누구라구 생각해요?


민 변호사 : 그야…


혜린 : 됐어요. 상관없어요. 이제 드디어 시작이군요. 그렇죠? (웃어 보인다. 그러더니 호텔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현금 동원할 수 있는 거 얼마나 돼요? 부동산 다 내놔요. 팔수 있는 건 다 팔아치워요. 사채업자들을 만나보겠어요. 아직은 돈을 빌릴 수 있을 거예요. 절대로 부도 같은 건 내지 않을 거예요. (문득 선다)


민 변호사 : (기다리면)


혜린 : (돌아보더니)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그 중에… 박태수. 그 사람도 끼어있을까요?



# 30 태수 사무 건물


태수, 수하들에 싸여 나서고 있다.

대기해 있는 자동차로 가는데 재빨리 그 앞으로 튀어나오는 영진.


영진 : 안녕하세요. 대한일보 신영진 기잡니다. 박태수 씨죠?


얼른 그 앞을 막아서는 정근과 창민.


영진 : 이번 고액 납세자 순위 35위에 오르셨다면서요? 성공한 청년사업가로서 인터뷰를 하고 싶은데요.


태수, 상관없이 차에 오른다.


영진 : (막히면서도 악착같이) 괜찮은 특집기사에요. 사진두 아주 잘 찍어드릴 게요.


정근, 창민, 영진을 밀어내고 차에 오른다.

영진 재빨리 태수 옆 창문에 붙어서


영진 : 강우석 검사 아시죠?


차는 이미 출발해간다.

영진 단념하려는데 저 앞에 가던 차가 멈추어 선다.

태수, 창문을 내린다.

영진 얼른 그 옆으로 뛰어간다.


영진 : 강우석 검사하구 잘 알죠?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라면서요?


태수 : ……어디서 그런 소릴 들었습니까?


영진 : 강 검사한테서요. 저 강 검사하구 친해요.


태수 : 친하다…


영진 : 우리 결혼할 뻔 했었어요. 강 검사하구 저요. 이 정도면 친한 거 맞죠? (천진하게 웃어 보인다.)



# 31 태수 사무실


자리에 앉으며 영진, 내부를 둘러본다.


영진 : 생각보다 검소하네요. 아 이거… (명함을 내민다.) 사회부에서 밥 먹구 있습니다.


정근, 차를 내온다.

태수, 정근에게 명함을 넘긴다.


태수 : 먼저 얘기해두죠. 인터뷰는 안 합니다. 사진도 기사도 안 됩니다.


영진 : 그럼…우리 뭐하죠?


태수 : 내가 묻고 아가씨가 대답하는 겁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미소 짓고 있다)


영진 : (보다가 웃는다) 이런 건 신문사에서 배운 적이 없는데… 큰일났네.


태수 : 강우석검사하고 나에 대한 얘기 아가씨 말고 또 누가 알고 있지요?


영진 : (빤히 본다) 그 질문은 어떤 뜻인가요?


태수 : 잊었군요. 대답은 아가씨가 하는 겁니다.


영진 : (살피며) 강 검사… 박태수라는 친구가 있다는 이유로 저번  건에서 제외됐어요. 검찰 내사가 있었대요. 그 일로 강 검사는 사표를 냈었구요.


태수 : 그랬…군요.


영진 : 흐흥 미안 하다는 얼굴인데요, 역시 대단히 친한 사이인가 봐요.


태수 말없이 영진을 본다. 영진이 움찔할 정도로 차가운 시선이다.

나갔던 정근이 들어선다.

태수, 정근을 본다.


정근 : 확인했습니다. 대한일보 사회부기자 맞습니다.


영진, 어이없어 본다.


태수 : 기자 아가씨, 내 말 명심해요. 내 기사가 나간다면, 아가씬 더 이상 기자 노릇을 못할 겁니다. 특히 강우석 검사와 나에 대해 아는 척을 한다면, 아주 위험해질 거예요.


영진 : 협박인가요?


태수 : (빙긋이) 사실입니다. 자 그럼…(내보내려는데)


영진 : 쫓겨나기 전에 30초만 떠들게요. 성공한 젊은 사업가 기사를 쓴다는 거 거짓말이에요. 그런 특집은 없어요. 그러니까 기사는 안 나갈 거예요. 난 그냥 죽기 전에 우리나라 조직 폭력에 대한 책 한권만 쓰고 싶어요. 특히 윤재용 회장에 대해서요.

태수, 문 쪽으로 가서 정중하게 문을 열어준다.


영진 : 아직 30초 안 됐어요. 지난번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윤 회장의 딸 대신에 박 선생님을 대표로 내세웠었죠, 지금 진행되고 있는 카지노의 어음사태, 그 거 혹시 박 선생님의 작품 아닌가요?


태수 : (잠시 보다가) 끝났습니까? '


영진 : (할 수 없어) 네, 가요. 안녕히 계세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또 봐요. 다음엔 좀 더 반갑게 만났으면 좋겠네요.


중얼대며 나간다.

태수, 문을 닫더니


태수 : (정근에게) 카지노 어음사태라니 무슨 소리야? 알아봐. 빨리.



# 32 남산


여늬때처럼 만난 태수와 장도식.


장도식 : 알아. 좀 더 일찍 알려줬어야 했다는 거. 어쨌거나 우리 한편이니까 말이지. 근데 뭐랄까. 내키지가 않더라구. 자네 아나? 믿지 않을진 모르지만, 나 혜린이 그 아이를 좋아해요. 아주 맘에 들어한다구.


태수 : 어음이 얼마나 됩니까?


장도식 : 상당해. 막아내기 힘들 거야 게다가 해외에서 수금한 돈들… 반입도 어렵 게 됐어. 길목을 막았거든. 내가.


태수 :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장도식 : 누구? 혜린이? 아직 포기하지 않구 있어. 부동산 있는 대로 다 내놓고 사채업자들을 찾아다니고 있지. 그 것두 쉽지 않을 거야. 그 쪽이 아는 길은 내가 다 알고 있으니까.


태수 : (허 웃는) 무서운 사람들이군요.


장도식 : 혜린이가 그러더군 한번 두고보겠다고. 힘 가진 놈들 어디까지 치사하고 더러워질 수 있는지.


태수 : 어디까지 갈 생각입니까?


장도식 : 혜린이가 두 손 들 때까지.


태수 벌떡 일어나 저만치 가는


장도식 : 이젠 늦었어. 위에선 혜린이를 본보기로 만들 생각이야. 카지노 포기해두 좋다는 거지. 대신 반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가르쳐주겠다는 거야.


태수 : (장을 돌아본다) 만약에 그 어음을 다 막아내면 어떻게 됩니까?


장도식 : (웃는) 이런 일엔 기본이 있어. 밟을 땐 철저하게 밟는다. 다신 싹도 자라지 못하게 말이지.



# 33 카지노 내부


손님들 가득한 상황…

최 과장 빠른 발걸음으로 테이블 사이를 빠져 밀실 쪽으로 간다.

밀실 앞에서 초조한 듯 기다리던 종업원 한 명 급히 다가온다.


최 과장 : (낮은 소리. 그러나 화가 나서) 뭣들 한 거야? 국내인은 절대 들이지 말라고 했잖아


종업원 : 막을 수가 없었어요. 무조 건 밀고 들어와서…전에 오셨던 분도 계시고…

최 과장 문을 연다.



# 34 밀실 내부


신사 세 명 정도 거만하게 앉아있다.

여자 딜러 한 명 불안 한 듯 한 옆에 서있다.

최 과장 재빨리 테이블을 둘러본다.

이미 각자의 앞에 칩이 쌓여져있고.

카드 한 벌이 펼쳐져있다. 딜러가 막 카드를 섞고 있던 중이다.

최 과장 얼른 카드를 모아 잡는다.


남자1 : 뭐야


최 과장 : 죄송합니다. 저희 카지노에서는 국내인 손님은 모시지 않습니다.

 

남자들 서로 마주 본다.

그 중의 한 명 손목시계를 본다.

최 과장 언뜻 불길함을 느낀다.

순간, 등 뒤에 문이 열리며


종업원 : (다급한 목소리) 과장님


최 과장 돌아본다.

종업원을 밀치며 들어서는 단속반 사내들… 그 중의 한 명 언뜻 신분증을 보이며


사내 : 단속 나왔습니다. (손님들을 향해) 여권 보여주실까요.


최 과장, 아뿔사 …창백해지는 기분.



# 35 혜린 사무실


책상을 타앙 치는 손. 주주1이다.


주주1 : 이럴 줄 알았어. 내 이럴 줄 알았다구.


뒤에서 주주2, 초조하게 담배만 피워대고 있다.


주주1 : (2를 돌아보며) 이런 어린애한테 사장 자리를 줘? 영업정지래. 영업정지. 카지노 생긴 이래 이 거 생각도 못해본 일이야.


혜린, 창백하게 책상 앞에 앉아만 있다.

재희 말없이 혜린의 뒤 쪽에 있다.


주주1 : 어떻게 할 거야? 일 년 365일 하루 스물 네 시간, 열어 놔야하는 카지노 문 닫아놓고 어떻게 할 거냐고.


혜린 : 말씀드린 것처럼 이번 일은 함정이었어요. 시간을 주시면 해결하겠습니다.


주주1 : 시간을 줘? 언제까지? 다 망해 넘어질 때까지?


혜린 : (일어서 ) 지금 이러구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빠른 해결을 원하신다면, 이만 가주세요. 그게 도와주는 겁니다. (주주1을 지나쳐가는데)


주주1 : (혜린의 팔을 잡아챈다) 이거 봐!


순간 다가선 재희, 주주1의 손의 맥을 잡아 떼어낸다.


주주1 : 어어 이이.


재희 : 차까지 모셔다 드리지요.


주주1 : (손을 뿌리쳐 아픈 손을 만지며) 이 건 또 뭐하는 놈이야? (혜린에게 흥분해서) 이 게 뭐야 이 게 뭐하는 짓이야?


혜린 : (못들은 척 돌아서 책상 위의 전화기를 든다) 검찰에 연결해줘. 담당 검사 알지?


주주2 주주1을 달래며


주주2 : 그만 갑시다. 가서 우리끼리 대책을 강구하자구요


주주1, 분해서 혜린에게 더 뭐라 말하려다가 그 앞을 가로막는 재희를 보고 못 이기는 척 주주2에게 끌려 나간다.


주주1 : 내 뭐랬어. 내가 뭐랬냐고. 내 이럴줄 알았어. (재희에게) 넌 나올 거 없어. 원 별 깡패 같은 것들이 어이구 내 이런 것들하고 상종을 해야 되나 어?


재희 그들 내보내고 문을 닫는다.

돌아서다가 움찔 놀란다.

혜린 전화기 앞에 서있다가 문득 코 밑을 닦아본다.

주루루 코피가 흐르고 있다.

재빨리 다가선 재희, 손수 건을 대어준다.

혜린, 손수건으로 코를 막은 채 잠시 움직임 없이 서있다가


혜린 : 다 갔어?


재희 :


혜린 : 문 닫았지?


재희 :


혜린, 천천히 재희의 가슴에 이마를 댄다. 조금씩 울음이 치밀고 있다.

소리도 내지 못하는 흐느낌으로 어깨가 흔들린다.

재희, 벽처럼 서서 지탱하여 주다가 머뭇머뭇 한손을 들어 그 어깨를 감싸준다.



# 36 카지노 정문 앞


안내판이 세워진다.

한글과 일어 영어로 씌어진 안내판에는 당분간 영업을 쉰다는 내용이 적혀져있다.



# 37 카지노 내부


텅 빈 카지노

바 쪽에 재희 앉아있다.

혜린과 민 변호사 마주 앉아 혜린, 민 변호사가 내밀어주는 서류를 보고 사인을 하고…

사인을 끝낸 혜린, 서류를 챙기는 민 변호사를 보며.


혜린 :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지요?


민 변호사 : (텅 빈 카지노를 한번 보고) 영업정지가 일주일만 더 계속되면 ……


혜린 : 완전히 파산이군요.


민 변호사 : 그렇게 봐야지…


혜린 : 아버지라면 이런 경우 어떻게 하셨을 거 같애요?


민 변호사 : (보다 웃는) 난 그분의 생각을 한 번도 미리 짐작할 수 있었던 적이 없어. 언제나 뭔가 지시를 내리시고 그 지시대로 따르다 보면 나중에 알 게 되는 거지. 아 이래서 그 일을 시키셨구나.


혜린 : (길 게 기지개를 켜는 기분. 포기상태에 이르러 오히려 생기는 여유 같은…)


민 변호사 : (가방을 챙기며) 사채업자를 더 알아보지.


혜린 : 아저씨.


민 변호사 : (멈칫하여)


혜린 : 저 어렸을 때 이렇게 불렀죠. 아저씨.


민 변호사 :


혜린 :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고마왔구요.


민 변호사 언뜻 목이 메는 기분,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일어선다.

혜린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혜린 앉은 채 그 인사를 받는다.

민 변호사 문 쪽으로 나가고 .

혜린, 혼자 남아있고.

재희 일어서 민에게 고개 숙여 보이고 민 변호사 문을 열다가 멈춘다.

마악 문을 열고 들어서려던 태수.

재희, 태수를 보고 혜린을 돌아본다.

혜린, 일어서 몸을 돌리다가 태수를 발견한다.

태수, 말없이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재희, 혜린과 태수 사이를 막아선다.

민 변호사 나가려다 말고 그 자리에 서서 본다.


태수 : (혜린을 향해) 둘이서만 얘기할 수 없을까?


재희, 혜린을 돌아본다.

혜린, 태수를 보고 있다가 재희 쪽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짧은 사이에 감정을 눌렀다.

혜린, 끄덕여 보인다.

재희, 내키지 않지만 나간다.

민 변호사와 재희 나가고 문이 닫히고 혜린, 태수를 보지만 태수는 얘기를 시작할 생각은 없이 텅 빈 카지노를 둘러보고 있다.

혜린 바 쪽으로 가서 컵 두개를 놓고 술을 따른다.

태수, 그 옆으로 가 선다.

혜린, 한잔을 태수 쪽으로 밀어준다.

자기의 잔을 들어 보이며


혜린 : 그 쪽이 이겼어요. 축하해요.


그러나 태수 술잔은 보지 않고 헤린의 얼굴만 보고 있다.


혜린 : (잔을 비운다)


잠시 마주보는 두 사람.

혜린, 먼저 시선을 돌린다.


혜린 : 언제쯤 항복할지 보러왔어요? (끄덕이고) 가서 얘기하세요. 다 됐다고. 서류 갖구와서 인수인계하라구요.


태수, 화를 애써 참고 있다.

참아서


태수 : 얘기하러 왔어.


혜린 : (웃는다. 이제 와서 얘기라니 하는 기분. 자리를 옮기며) 그동안 태수 씨에 대해서 생각해봤어요. 태수 씨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구 했어요. 그럴 수도 있었겠다. 충분히 억울하고 분해서 나라도 그럴 수 있었겠다. 나라면 더 독하게 갚아주려고 했을 거다.


태수, 술잔을 들어 마시려다가 냅다 던져버린다.

깨지는 소리에 헤린 돌아본다.


태수 : (묵묵히 깨진 술잔을 보고 있다가 혜린을 돌아본다) 그런 게 아니야.


혜린 : 난 사과를 하고 있는 거예요. 이젠 그 쪽 차례예요.


태수 : (성큼성큼 다가온다)


혜린 : 미안 하단 말 한마디쯤 하면 어때요? 아버지를 죽음에 몰아넣었잖아요.


태수 : 당신 아버지한테는 화난 적 없어.


혜린 : (하 웃는)


태수 : (혜린의 어깨를 짚어) 분하고 억울해서가 아냐.


혜린 : (태수의 손을 거칠 게 쳐낸다)


태수 : 복수 같은 건 생각해본 적 없어.


혜린 : (태수를 치고 민다)


태수 : (맞으면서도 혜린의 양어깨를 잡아) 널 갖기 위해서였어.


혜린 : (정지되는)


태수 : 모르겠어? 그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넌 내 여자니까. 그 생각밖에 없었어.


혜린 놀라움과 당황함으로 본다.


태수 : 말했잖아. 다시는 힘이 없어서 내 여자를 뺏기지 않겠다고.


혜린,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자신을 순간 다잡는다.

태수의 손에서 벗어나 물러선다.


혜린 : 아버진 날 사랑하셨어요. 나두 아버질 사랑했는데 그땐 몰랐어요. 나중에야 알았는데 말씀드릴 수가 없었어요. 너무 늦어서.


태수 : (…끄덕인다)


혜린 : 이젠 끝났어요.


태수 : ……알아.


혜린, 돌아선다.

태수, 돌아선다.

혜린, 문득 돌아보았을 때 태수는 이미 문에 도착하여 열고 있다.



# 38 카지노 입구 밖


기다리고 있는 재희. 문이 열리며 태수가 나선다.

재희 한 팔을 벽에 짚어 태수를 막고 안을 들여다본다.

보이는 저 안에 혜린이 혼자 무언가 생각에 잠겨있다.

무사해 보인다.

재희 팔을 내려 길을 내준다.

태수, 그런 재희에 대해 얼핏 미소가 스치는 기분.

간다.



# 40 공사현장


대규모의 공사가 진행중이다.

거대한 기중기며 포크레인의 움직임…



# 41 건설회사 앞


길태, 수하 몇을 거느리고 나선다.

대기해 있는 차에 올라탄다.

그 위에


장 수사관 (소리) : 깡패들의 꿈이 뭔지 아십니까? 건설회사에 업무상무가 되는 겁니다. 현재 대부분 건설회사의 업무상무는 폭력배들이 맡고 있습니다.



# 42 뒷 거리


소형버스 뒷문이 열리고 야구방망이며 일본도등이 무더기로 던져 넣어진다.

우루루 버스에 올라타는 사내들

그 위에


장 수사관 (소리) :그 폭력배들끼리 담합을 해서 입찰을 하고 공사를 따내는 거죠. 그 패 거리에 들어가지 못하면 입찰현장에서 쫓겨나기 일쑵니다.



# 43 종도 회의실


길태를 비롯한 사내들 서로 삿대질을 하며 떠들어대고 있다.

종도가 없는 상태에서 저희들끼리 다투고 있는 중이다.


장 수사관 (소리) : 담합과정에서 즈이들끼리 칼부림이 나구 완전 개판이었죠. 솔직히 말해서 이종도가 오구 난 뒤론 십 년만의 평화시대입니다.



# 44 룸살롱 방


무사시를 거느린 종도 들어선다. 이미 앉아있던 중년신사들(고급 공무원들) 종도를 맞아들인다.


장 수사관 (소리) : 이 지방의 조직폭력배 팔 개 파를 통일시키구 정리해놓은 게 이종도 그놈입니다. 그 놈 뒤에 아주 거물이 있다는 소리가 있는데 허풍만은 아닌 거 같습니다. 이리루 오자마자 고위직들하구 어울려 다니는 꼴이 그래요.



# 45 밤 관사 전경



# 46 관사 사택의 거실


우석과 오 계장, 장 수사관 조 순경 백 형사 등이 둘러앉아 회의중.


장 수사관 : 그 소위 건설폭력배들…이제까지 몇 명의 검사가 손을 대긴 했습니다. 피래미 몇 명 잡고는 끝나버렸지만요.


우석 : 문제가 뭐였습니까?


장 수사관 : 일단 피해자가 나서질 않는다는 겁니다.


오 계장 : 아니 가만있어 봐요. 그 깡패들이 그냥 공짜루 입찰장에 나가주진 않을 거 아녜요?


장 수사관 : 물론 수고비를 받지요. 대충 공사비의 3프로 내지 오 프로를 받아냅니다. 그렇지만 그 거 떼주고 공사를 맡는 게 나으니까 … 회사로서는 필요악이라 이거죠.


오 계장 : 30억 공사에 3프로면 얼마야 3억에 3프로면 3백…삼십억이면 삼천 거 괜찮네.


조 순경 : (진지해서) 괜찮다니요. 그만큼의 공사비가 새는 거고 그만큼 부실공사가 되는 건데요.


오 계장 : 이 친구하고는 농담을 못해 .


그러는데 우석, 얼른 일어선다.

선영, 쟁반에 국그릇들을 받쳐들고 온다. 우석 받아든다.


선영 : 만둣국이에요. 이북식으루 했는데,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오 계장 : 아이구 사모님 기다리구 있었습니다.


상에 널려진 서류들을 재빨리 치우는 오 계장. 그릇 나누는 걸 돕는 조 순경…

백 형사, 앞에 놓아지는 만두국을 들여다보고 심각하게


형사 : 이 게 전붑니까?


선영 : 더 있어요. 많이 드세요


우석 국그릇을 건네며 선영을 본다. 따뜻한 감사가 전해지고 전해받는다.


오 계장 : 야 이 김치 때깔좋네. 사모님 저 다이어트 시작한 거 아세요? 검사님 댁에서 회의하면서 저 아주 망했어요.


조 순경 : 잘 먹겠습니다.


왁자지껄 식사가 시작된다.



# 47 사택 앞


나서는 수사관들…

우석 배웅한다.

뒤미처 안 에서 달려 나오는 선영, 보자기에 싼 통을 들고 있다.

조 순경에게 건네주며…


선영 : 자취하신다구 했죠. 김치 갖구 가세요, 아직 덜 익었어요. 하루밤 내놨다가, 냉장고에 넣으세요.


조 순경 감격하여 받아들고는 경례를 붙인다.


조 순경 : 감사합니다.


선영, 수줍어서 우석의 뒤로 슬쩍 숨는다.


오 계장 : 저 사모님, 우리 마누라는 김치 솜씨가 없는데, 이런 사람한테는 뭐 없을까요?


장 수사관, 오 계장의 등을 밀어 간다.


장 수사관 : 잘 먹고 갑니다.


분분이 인사가 오가고…



# 48 사택 내부


우석 문을 잠그고 들어서 보면 선영 날랜 솜씨로 상을 닦고 있다.


선영 : 내일도 야근하면 집으루 모시고 와요. 수사비가 쥐꼬리만하대면서요. 없는 돈에 괜히 밖에서 돈 내고 식사하지 마요. (쟁반을 들고 부엌으로 가며 계속) 영양가두 없구, 조미료만 잔뜩 들어서 힘두 못써요.


우석, 얼른 물쟁반을 들고 따른다.



# 49 부엌


선영 설겆이대에 그릇들을 넣으며


선영 : 조 순경님인가… 자취하는 분이요, 하루 세끼 밖에서 사먹는 모양이든데, 사먹는 밥 금방 배고프다구요. 뭐해요?


우석, 수세미에 세제를 묻히고 있다.


우석 : 설거지.


선영 : (수세미를 뺏는다)


우석 : 어어 내 솜씨를 못 믿는 모양인데…


선영 : (화가 난 듯 밀쳐내고 설거지를 시작한다)



# 50 거실


우석 신문을 읽다가 보면 선영, 꿇어 엎드려 바닥을 닦고 있다.

익숙한 솜씨로 박박.

우석, 신문을 치우고 그런 선영을 본다.

선영은 바닥에서 뭔가 잘 지워지지 않는 것을 발견했는지 손톱으로 긁어가며 열중하여 닦고있다.

우석, 그 옆으로 가서 앉는다.

선영, 우석을 힐끗 보고 빙긋 웃더니 계속한다.


우석 : 당신 뭘 잊고 있는 거 아닌가?


선영 : (일하며) 뭘요?


우석 : 우리 이제 부부에요, 당신은 더 이상 하숙집 아가씨가 아니에요. 내 아내라구.


선영, 우석을 돌아본다.

우석, 선영의 손에서 걸레를 뺏어놓고 일으켜 세운다.


우석 : 잠깐 일어나 봐요.


선영, 엉거주춤 따라 일어서면 우석 대뜸 선영을 들어 안는다.


선영 : 엄마.


놀라는 선영에 상관없이 우석, 선영을 안아 방으로 …



# 51 방안


우석, 선영을 침대에 앉히고 마주 본다. 선영, 부끄러워 죽겠고. 우석, 선영의 앞치마를 벗겨준다. 선영, 얼른 돕고…


우석 : 우리 그림 같은 연애도 못해보고, 아마 그림 같은 결혼생활도 못할 거예요. 십년이 지나도 당신, 자가용타고 시장에 못갈 거예요. (선영의 두 손을 모아 잡아 그 눈을 놓치지 않으며) 혼자 있어야 되는 시간이 더 많을테구… 나하구 같이 사는 거 많이 힘들 거예요. 그렇지만 이 거 하나는 약속해요, 내가 하는 일 ,내가 생각하는 거, 언제나 당신한테 얘기해줄 게요. 당신이 모르는 내 일이나 내 생각 … 없을 거예요. 좋은 일두 나쁜 일두, 다 얘기할 생각이에요. 약속해요.


말없이 듣고 있는 선영, 눈물이 그렁해지고 있다.

간신이 울음을 참고 있다가 목이 잠겨서


선영 : 하나 물어봐두 돼요?


우석 : 그럼요.


선영 : 언제까지 나한테 존대말 할 거예요?


우석 : (웃는. 웃고) 부부는 동격이란 말 알아요? 당신이 반말을 시작하면, 나두 말을 놓을까 하는데.


선영, 울며 웃는다. 그러다 우석의 목을 끌어안아 버린다.

침대 옆 화장대 위에 놓인 액자 속에 우석과 선영의 결혼식 사진이 들어있다.


<19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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