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모래시계

<제20회> 모래시계

오늘의 쉼터 2018. 11. 7. 19:16

<제20회> 모래시계 




# 1 교외 별장 앞 길


순찰차 한 대가 오고 있다.

타고 있는 순경1과 2.

운전을 하던 순경1, 앞을 보며 찌푸린다.


순경1 : 뭐야 저 거


그들이 보는 앞에 자동차 몇 대가 도로의 반을 점령하며 주차해있다.

순경1 차를 세우고 순경2가 차에서 내린다.

순경2, 차 한 대 앞으로 어슬렁거리며 다가간다.

차 옆에 서있는 운전사.


순경2 : 어이 여기 차 빼요.


운전사, 같잖다는 듯 쳐다본다.


순경2 : 주차금지 구역입니다. 뒤에 차 밀리는 거 안 보입니까?


운전사 : 딱지 끊으면 될 거 아뇨.


순경2 : 뭐?


운전사 : 비싼걸루 하나 끊어주슈.


순경2 어처구니없어 뭐라 말하려다가 멈춘다.

차의 뒤에서 어슬렁거리며 나타나는 사내들…험상궂어 보이는 양복의 사내들이다.

순경2 머뭇거리다 문득 돌아보면 저만치 다가오고 있는 자가용 몇 대.

그 자가용의 옆에서 호위를 하듯 따라 뛰고 있는 사내들…

순경2 놀라서 그저 보고만 있는데 다가온 차의 호위들은 순경2를 밀치다시피해서 입구 앞에 자리를 잡아 차를 세운다.

차의 뒤에서 내리는 중년의 신사.

차 안 에 있던 순경1도 입을 벌려 보고 있다. 새로운 차들이 도착하고 있다.

엄중한 호위, 속속 내리는 보스급

신사들…깍듯하게 허리를 굽혀 절을 하는 사내들…

별장에서 암흑가 보스급 모임이 시작되려하고 있다.



# 2 별장 내부


열 명 정도의 보스들이 둘러앉아있다.

서로 인사하는 법도 없이 침묵으로 …

입구 쪽에 망을 보듯 서있는 정근과 창민. 인영. 인영, 손목시계를 본다.

태수가 늦어지고 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가방을 든 태수가 들어선다.

좌중을 향해 가볍게 고개 숙여 보인다.

보스들도 약간 끄덕여 답례한다.

인영, 얼른 태수 뒤로 가서 따르며 낮게


인영 : 오래들 기다리셨습니다.


태수, 끄덕이며 중앙의 자리로 가서 서더니 묵묵히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좌중에 모인 보스들,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태수 : 준비를 해올 게 있어서 좀 늦었습니다.


태수, 가방을 열더니 안 에서 한 뭉치의 서류며 증권, 등을 꺼낸다.

정근과 창민, 시선을 마주친다. 그들도 그 것이 뭔지 짐작이 안 간다.


태수 : 여기 스물네 곳 슬롯머신 업소의 지분과 다섯 군데 관광호텔, 그리고 여섯 군데 나이트클럽의 경영권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것들을 공매하려고 합니다.


보스들 놀라서 쳐다보고 더러 웅성거린다.

누구보다 놀란 정근과 창민.

태수 뒤에 선 인영도 놀라서 쳐다본다.



# 3 별장 앞


보스들이 하나씩 나오고 있다.

이만치에서는 지프차를 타고 온 사복형사들까지 동원돼서 이어폰을 끼고 듣거나 무전을 하고 있는데 워낙 엄중한 호위군단에 밀려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다.

그들 형사와 경찰들 앞을 유유히 차가 한 대씩 빠져나간다.



# 4 별장 내부


태수와 그 측근들만 자리하고 있다.

침중한 분위기.

태수, 혼자 여유 있는 표정으로 서류봉투를 하나씩 나눠주며…


태수 : 인영이는 주류도매상들을 맡아줘야겠다. 이 정도면 네가 데리고 있는 애들, 생활은 충분히 될 거야. 그리고 창민이는 계속 클럽을 봐주고. 정근이는…


정근 : 형님


태수 : 내 말 안 끝났어.


정근 : 제 말부텀 들어주십쇼. (각오가 대단해보인다)


태수 : (보다 허 웃는)


정근 : 즈이들한테 이러실 순 없습니다. 즈이들 그동안 형님 말에 한마디 대꾸라도 한적 있습니까? 숨 쉬지 말라면 코막고 죽고 목을 바치라면 목을 내놓을 각오루 여기까지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이러실 수 있습니까?


태수 : (난처하고 조금은 성가시고)


인영 : 이유가 뭡니까? 이유라도 알려주십시요. 난데없이 형님 전재산을 다 팔아치우고, 남은 건 즈이들 다 나눠주고, 그리고 이제는 우리 모르는 걸루 하자. 서로 남남이다.


태수 : 마지막으로 말없이 따라줄 순 없겠냐? 이제까지처럼 이유 묻지 말고.


정근 : 마지막이라구요? (기가 차서 말도 안 이어지는)


창민 : 좋습니다. 하라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태수 : 고맙구나.


창민 : 하라는 대로 하면 형님. 즈이들 내치지 않는 거지요?


태수 : ……


창민 : 형님 어디 가셔두 전 따라갑니다. 저 말 다했습니다.


정근 : 그럽시다. 이왕 팔아치우는 거저한테 주실 것두 팔아주십쇼.


인영 : 우리하구 인연 끊자는 거, 그거 형님 때문에, 우리까지 곤란해질까 봐 그러시는 거죠? 무슨 일입니까? 우리가 나서서 안 되면…


태수 : 느이들,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


정근 : 형님


태수 : 느이들 이해 못 하겠지만 지금 나 아주 기분 좋다. 이런 거 몇 년만에 처음이야. 이런 말 하는 내가 우습 게 보이냐?


아무 말 못하는 인영 등…


태수 : 아니면 정근아.


정근 : 예.


태수 : 술 시켜라.



# 5 해암의 한옥집


정원의 고즈녁함.

연못가에 선 해암, 잉어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고개를 들어보면 오 군의 안내를 받아 혜린이 들어서고 있다.



# 6 해암의 방


한 쪽에서 오군이 차를 나누고 있다. 법도에 맞게 따른 차를 다반에 받쳐와 해암과 혜린의 앞에 한잔씩 놓는다.

해암 차를 한 모금 맛본다.

앞의 혜린 야단을 맞을 각오로 있다.


해암 : 부도 직전에 영업정지라…


혜린 : 죄송합니다. 결국 이렇게 되었습니다. 어떻게든 부도는 막아볼 생각입니다.

 

해암 : 어떻게?


혜린 : 어떻게 해서든지요.


해암 : 자존심 같은 건 버릴 각오가 되어있단 얘긴가?


혜린 : …예.


해암 : ……오 군아.


오군 : 예.


해암 한손을 오 군 쪽으로 내민다. 오 군 얼른 문갑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 바친다.

해암 봉투를 혜린에게 내어준다.

혜린, 뭔가 싶은데


해암 : 꺼내봐. 그 정도면 되겠는가.


혜린 조심스레 봉투 안  열어본다. 손에 잡혀 나온 수표 한 장. 액수를 확인하는 순간 깜짝 놀란다.


혜린 : 어르신…(바닥을 짚어 고개를 숙이는데)


해암 : 인사할 거 없어. 자넨 그 돈을 가지고 부도를 막아. 그리고 영업정지도 풀어. 그러면 되는 거야.


혜린 : 빠른 시일 내에 돈을 갚겠습니다. 그리고 이 은혜도 꼭 갚을 겁니다.


해암 : 나한테 갚을 거 없어. (성가시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일 끝났으면 얼른 가 자네 바빠야 되는 사람 아닌가.



# 7 태수사무실 건물



# 8 내부 복도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서슴없이 나서는 혜린과 그 뒤를 따르는 재희.

복도를 지키던 두어 명의 사내 놀라서 나선다.


사내 : 뭡니까?


혜린, 그들에겐 상관없이 앞으로 나간다. 사내들, 혜린의 앞을 막아서려는데 재희 재빨리 혜린을 보호하며 그들을 밀쳐버린다.

혜린, 빠른 걸음으로 중앙의 문을 향해 나간다.

문이 열리며 나서던 정근, 얼른 달려오며


정근 : 약속하신 분이야. 무례하지 마.


사내들 물러서고 혜린, 또박또박 정근이 나온 방으로 들어간다.

혜린, 들어서고, 재희, 문을 닫더니 막듯이 문을 등지고 버티어 선다.



# 9 태수 사무실


들어선 혜린, 잠시 멈칫한다.

태수는 사무실을 정리하고 있었던 듯 책상 위 박스에는 물건들이 쌓여있다.

태수, 혜린이 둘러보는 시선을 따라 같이 둘러보다가


태수 : 사무실을 정리하는 중이야, 앉을 데가 마땅치 않군. (소파 위의 것들을 치우며) 놀랐어. 윤 사장이 먼저 날 찾을 거라곤 생각도 못해봤는데…


혜린 : 제안 할 게 있어서 왔어요.


태수 : 영광이군.


혜린 : (선뜻 말을 못 꺼낸다)


태수 : (기다리다가 서류 더미 뒤에서 양주병을 찾아낸다) 가만있자. 잔이 있어야 될 텐데…(두리번거리는데)


혜린 : (용기를 내어) 전에 만났을 때 했던 말 기억해요? 우리 이젠 끝이라고 했었죠.


태수 : ……그랬어.


혜린 : 다시 시작해볼 생각 없어요?


태수 : (보다가 양주의 뚜껑을 열고 병 채로 한 모금 마신다) 다시 시작한다… 그것 뿐인가?


혜린 :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기만 하면 돼요.


태수 : 누구한테?


혜린 : 내 카지노 문을 닫은 사람들이요.


태수 : ……(웃는다. 웃고 중얼중얼 ) 이 건 도박이군.


혜린 : 뭐라고 했어요?


태수 : 도박이라고 했어. 운이 좋으면 한 여자를 갖게 되는 건가. (혜린의 마음을 읽고 쓸쓸한 기분이 된다) 운이 나쁠 수도 있고…


혜린 : 눈치 챘겠지만 이런 제안 …카지노를 위해서예요. 카지노를 살리기 위해 나 무슨 짓이라도 할 거예요. 태수 씨 나한테 이용당할 수도 있어요.


태수 : 그렇군.


혜린 : (조금씩 자신이 없어지고 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 거절해도 좋아요. 처음부터 승낙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어요.


태수 : (빙긋이 웃더니 ) 말했잖아. 이 건 도박이라고. 도박이란 게 원래 그래. 전부 다 잃기 전에는 끝낼 수가 없지. (씁쓸한 기분에 한모금의 양주를 더 마신다.)



# 10 카지노 내부


빈 룰렛이 돌아가고 있다.

텅 빈 카지노.

그 가운데에 우뚝 서있는 혜린.

아무 표정도 읽을 수 없는 얼굴.



# 11 밤 광주지검 전경


조 순경, 기다리고 있다가 보면, 저만치 조용히 다가오는 승용차.

문이 열리며 조심스레 내리는 나이 든 김 사장.

조 순경, 얼른 다가가 경례를 붙이고 안 내를 한다.

불안 하여 주위를 살피며 조 순경의 뒤를 따르는 김 사장.



# 12 검사실


오 계장, 종이 커피를 받쳐 들고 들어온다.

소파에 마주앉은 우석과 김 사장.

오 계장, 그들 앞에 커피를 놓는다.


오 계장 : 우리 아가씨가 퇴근을 해서요. 여기 자판기 커피 괜찮아요. 검찰청 커피라서 그런가 농도가 아주 찐해요. 맛있어요.


김 사장 ,불안 한 대로 받아 마시며 슬그머니 주위를 둘러본다.

저만치 모여 있는 장 수사관과 백 형사, 조 순경… 각자 딴 일들을 하고 있지만 역시 주눅이 드는 분위기다.


우석 : 저희가 알아본 바로는 이곳 건설업계에서 김 사장님만큼 심지가 곧으신 분이 없다구요.


김 사장 : 아 예…


우석 : 모든 건설업 체에서 폭력배 출신 업무상무를 둘 때도 혼자 버티셨구요.


김 사장 : 그야 뭐…


우석 : 힘드셨을 겁니다. 그런 식으로는 공사를 따낼 수가 없었을 테니까요.


김 사장 : 아 예…(우물쭈물)


우석 : 그래서 할 수 없이 지난 봄에 결국 폭력배 출신 상무를 고용하셨지요 .(서류를 보며) 안길태… 양산파 두목, 현재는 이종도 밑에 통합이 된 인물이군요.


김 사장 : (그제야 정신이 난다) 뭔가 잘못 아신 거 같군요. 그런 사람은 우리 회사에 없습니다. 소문이 어떻게 났는지 몰라도 폭력배 같은 건 없습니다.


우석 : (빙그레 웃으며 보다가) 역시 김 사장님, 거짓말이 서툰 분이시군요.


김 사장 : 무슨 말씀이신지 …


오 계장, 타이프에 용지를 끼우고 받아 칠 준비를 하고 있다.


우석 : (오 계장을 향해) 아니 그만두세요. 우리 그냥 사적으로 한담을 나누는 거니까.


오 계장 : 아 그렇군요. (서슴없이 종이를 주욱 빼낸다)


우석 : 김 사장님 회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실력이나 재무 상태나 그만큼 탄탄한 회사가 없드군요. 공사 이후 하자가 없기로도 유명하구요. 그런데 지난 삼년간 제대로 된 공사 하나 따내지 못했어요. 맞지요?


김 사장 : 저기 오라고 해서 오긴 왔습니다만 저로선 드릴 말씀이…


우석 : 우린 이번에 이 지역의 건설폭력배들을 뿌리 뽑을 생각입니다. 김 사장님 같은 분이 실력에 따라 정당하게 경쟁을 할 수 있게 할 겁니다. 그걸 바라시는 거 아닙니까?


김 사장 : (묵묵히 있다가 더듬더듬 담배를 꺼낸다)


우석 : (불을 붙여준다)


김 사장 : (길게 담배연기를 뿜고는) 죄송합니다. 그냥 놔둬 주십시오. 제겐……내달에 시집 갈 딸이 있습니다. 저야 어떻게 되도 상관없지만… (목이 메는 기분. 성급히 담배를 피우는)


우석 : 그래서 이 밤중에 남몰래 오시라고 했습니다. 눈치 채지 못하셨습니까? 사장님께선 단지 담합 자료가 어느 서랍에 들어있는지만 가르쳐 주십시오. 오늘 우린 만난 일이 없는 겁니다.


김 사장 : (아직도 망설이고 있다)


우석 : 폭력배들에게 돈을 뺏기면, 그만큼 철근 하나가 덜 들어가겠지요. 그런 식의 부실공사를 하고 나면, 김 사장님 같은 분은 잠도 오지 않을지 모르지요. 언제 금이 가고 부서져 내리는 건 아닐까… 아닙니까?


김 사장, 멍하니 우석을 본다.

저만치서 장 수사관 등…긴장해서 김 사장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

잠시 후 김 사장, 담배를 부벼 끄더니 다시 담배갑을 꺼낸다.

담배갑은 비어있다.

우석, 자신의 담배를 꺼내 준다.

김 사장, 망설이다가 받아든다.



# 13 우석의 집 (밤)

 

우석의 팀. 회의 중이다.

옆에서는 선영이 과일을 깎고 있다.

테이블 위의 녹음기에서 김 사장의 목소리가 들려나오고 있다. 조 순경, 부지런히 받아쓰고 있고,


김 사장 (소리) : 그 밑에 떨거지들 이름이야 다 모르지만, 웬만한 두목급들은 대충 압니다. 삼진 건설에 업무 부장하는 장근술이, 정환에 영업상무 조한택이. 그런데 말이요, 이왕 할래믄 한꺼번에 해야됩니다. 누구 남기고 누구 빼,고 이래서는 물만 흐려놓을 겁니다. 더 극악스러워 질 거라구요.


우석, 녹음기를 끈다.


우석 : 어떻게 생각해요?


오 계장 : 맞는 말이네요 옳은 말씀이에요. 한꺼번에 발본이 색원을 해야되는데.


장 수사관 : 하나씩 잡을려면 오년이 걸려두 어려울 겁니다. 그런 식으루 한 놈 두 놈 넣어봤자. 금방 새로운 놈이 자리 차지할 거구.


오 계장 : 얘들 또 홍콩 일본을 부산 대전 가듯이 다니는 놈들이잖아요. 도망가면 그만이지. 나도 뭐 바다 건너 제주도엔 한번 가봤지요. 거 제주도 좋데요 .우리나라 같지가 않드라구요. 공항에 딱 내리니까 가로수가 틀려요.


우석 : 모두 몇 명쯤 되지요?


조 순경 : 중간두목 이상만 100명은 되겠는데요.


선영 : (과일접시를 올려놓으며) 뭐하러 하나씩 쫓아다니며 잡아요? 지 발루 오 게 하면 될텐데…


시선이 집중된다.


선영 : (말해놓고 좀 무안 하지만) 하숙칠 때 담에다가 자꾸 낙서를 하는 애가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그 옆에 써놨어요. 이거 누가 그렸냐 솜씨가 좋은데, 아르바이트 할 생각 없냐? 그랬드니 찾아왔드라구요. 그래 잡아놓구 페인트칠을 시켰죠.


혼자 웃다가 보면 아무도 웃지 않고 쳐다보고 있다.

선영, 머쓱해진다.



# 14 회사 건물 전경


두어 대의 차량이 달려와 선다.

장 수사관을 비롯한 정사복의 수사관들이 우루루 내린다.



# 15 내부 사무실

장 수사관을 선두로 우루루 들어서는 수사관들…

놀라는 직원들…

안 의 사무실에서 나오는 길태.


길태 : 이 사람들 뭐야?


장 수사관 아무 말 없이 수색 영장을 길태의 코앞에 들어 보이더니 바로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사무실의 캐비넷마다 쑤셔대며 수색을 시작하는 칠팔 명의 수사관들…

길태, 당황해하다가 재빨리 전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장 수사관과 백 형사, 조 순경,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길태의 사무실로 들어간다.

길태, 전화를 하다말고 그들을 보고 급해서 쫓아온다.

조 순경 , 입구에서 그를 막는다.


길태 : 이봐. 검찰 어디서 나온 거야? 담당이 누구냐고.


조 순경 : 출입을 금하겠습니다.


길태 : 어쭈


조 순경 : 형사소송법 제 119조 1항 압수수색영장의 집행 중에는 타인의 출입을 금지할 수 있습니다.


길태 : (같잖아서 밀치고 들어서려는데)


조 순경 : (끄떡없이 버티어 서서) 경찰관직무집행법 제 11조 시행령 9항 공무집행에 대한 항거의 억제를 위해 무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허리춤의 권총 케이스에 단추를 푼다)


길태, 권총도 겁나지만 무슨 말인지 일단 헷갈리면서 어처구니없어 보다가 다시 전화기로 쫓아간다.



# 16 길태의 방 안


장 수사관, 길태의 책상 아래서랍을 당겨본다.

잠겨있다. 장, 길태를 부르려는데 백 형사, 손잡이를 잡고 힘을 주는가싶더니 와작 부수며 열어버린다.

장 수사관, 이크해서 밖의 눈치를 보며 몸으로 슬그머니 가로막는다.

백 형사, 서랍에서 두툼한 서류철과 장부를 꺼낸다.

장 수사관, 대충 들쳐본다. 찾던 것이다.



# 17 건물 내 복도


사장실 문이 빼꼼이 열려있고, 김 사장, 슬그머니 밖을 엿보고 있다.

장 수사관 등… 우루루 나서고 있고, 길태 그들을 따라가며 뭐라 계속 떠들고 있다.

감시장, 얼른 문을 닫았다가 그들이 지나가자 다시 살그머니 문을 열어 엿본다.



# 18 검사실


한구석에 앉은 길태, 나름대로는 거들먹거리며 앉아있지만 계속 눈치를 보고 있다.

그러나 오 계장과 미스 리는 종이에 사다리를 그리고 있느라고 낄낄대고 있고, 백 형사는 신문을 덮고 잠이 들어있고, 조 순경은 뭔가 열심히 타이프를 치고 있고, 아무도 길태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미스 리, 사다리 그린 종이를 들고 조 순경에게 가서


미스 리 : 몇 번 하실래요? 짜장면 값 내기에요 남는 돈으로는 군만두도 살 거예요.


조 순경 : 공짜도 있습니까?


오 계장 : 물론이지. 사다리의 맛은 공짜표에 있는 거니까. 최하 공짜에서 최고 만 원. 골라요 골라.


조 순경, 심각하게 번호 하나를 고른다.


오 계장 : 백 씨도 깨워. 먹기는 곱곱배기로 먹는 사람이 이럴 땐 꼭 자는척 한단 말이야


문이 열리며 우석과 장 수사관이 들어선다.


우석 : 식사들 하셨어요?


오 계장 : 안 그래도 준비 중입니다. 미스 리, 검사님도 하나 고르셔야지.


미스 리 : 몇 번 하실래요? 조 수사관님이 먼저 삼 번 골랐어요.


길태 : (어처구니가 없다) 이거 보십시다.


우석, 사다리의 하나를 고른다.


길태 : 댁이 검사님이쇼?


우석 힐끗 보고 책상으로 간다.


길태 : 아니 사람을 잡아다 놨으면 조사를 하든지, 이 뭐하는 거요? 나 사업하는 사람이에요 시간이 썩어나는 줄 알어?


우석 : (오 계장에게) 누구에요?


오 계장 : 그 왜 진정서 있었잖습니까? 건설회사끼리 입찰하는데 담합을 했대나 어쨌대나.


우석 : 아아,


오 계장 : 어떻게 심문을 하셔야죠.


우석 : 지금은 좀 바쁜데… 장 수사관이 대충 받지.


우석, 책상의 서류들을 챙기더니 다시 나가며…


우석 : 난 볶음밥 시켜줘요.


미스 리 : 네, 군만두도 드실 거죠.


길태, 돌아버릴 지경이다.


(시간경과)


밤. 사무실의 불이 반쯤은 꺼져있는 상태.

장 수사관, 땅콩을 까먹고 있고.

백 형사, 무뚝뚝하게 타이프를 치며 길태를 심문하고 있다.


백 형사 : 입사한 게 언제야?


길태 : (하루 종일 기다림으로 어지간히 지쳐있다) 반말하지 말구 합시다.


백 형사 : 입사한 게 언제요?


길태 : 지난 3월이요.


형사 : 3월 며칠이요?


길태 : 회사 서류 보면 알 거 아뇨.


백 형사 : (전혀 흔들림 없이) 3월 며칠이요?


길태 : 젠장, 4일쯤 될 거요.


형사 : 한 달 봉급은 얼마요?


길태 : 아니 이 것 보쇼. 당신 내 마누라가 보낸 사람이야? 이따위 거 물어보려구 날 이때껏 잡아놓은 거야?


형사 : 한 달 봉급이 얼마요?


길태, 복장이 터지는데…

장 수사관, 어슬렁거리며 다가온다.


장 수사관 : 대충 해.


형사 : 그래도 빈칸은 메꿔야지요.


장 수사관 : 어차피 형식적인 건데 뭘 그래.


길태 : (눈치를 본다)


장 수사관 : (길태를 향해) 이봐요. 우리두 아주 귀찮아 죽겠어. 입찰에서 제외된 쪽에서 진정서가 여기저기 들어왔단 말야.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는데 우린들 어떻게 해.


길태 : 아니 어떤 놈의 자식이 진정서를 보냈다는 거요? 누군지 알면 그냥…


장 수사관 : 그냥 뭐? 그 집에 불이라도 지를라고?


길태 : ……


장 수사관 : 신문에서 알면 우리도 골치 아퍼. 위에 방침은 이번 일 반성문이나 받고 모양새나 갖추라는 거니까 협조하라구.


형사 : 반성문만 받을 겁니까?


장 수사관 : 그럼 그 많은 사람들 다 어떻게 잡아넣겠나. 그 사람들 다 집어넣어봐. 당장 대한민국 건설업계가 흔들리는데…


형사 : 반성문만 받으면 됩니까?


장 수사관 : 몇 명은 잡아넣어야지. (책상 위의 서류철을 끌어당겨 뒤적여보며) 질 나쁘 게 구는 놈들 몇은 있을 거라고. 그런 놈들로 머릿수 채우면 될 거 아냐.


길태, 장 수사가 뒤적이는 서류들을 훔쳐본다.

각 건설회사 이름과 그 밑에 업무부장이니 영업상무니 하는 직함 옆에 이름들이 수도 없이 적혀있다.


형사 : 머릿수만 채우면 됩니까?


장 수사관 : 어허 사람 참. 이봐요 안 상무.


길태 : 예?


장 수사관 : 나중에 이 친구한테 고기나 사라구. 남들 네다섯 배는 먹으니까 각오하고.


길태 : 아 그야 고기뿐이겠습니까? 아 하하.



# 19 검찰 입구


새벽 시간.

길태, 나서고 있다.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 부지런히 와서 선다.

부하가 뛰어내려 뒷문을 연다.

길태, 차에 타려다가 다시 한 번 검찰청사를 돌아본다.

차에 타고 출발하고……

잠시 후 한 대의 소형차가 그 뒤를 따른다.

운전석에는 조 순경과 백 형사.



# 20 우석의 집 거실


넥타이를 메고 출근 준비를 마친 우석, 신문을 보고 있다.

그 옆에서 선영, 가위로 신문 기사를 오리고 있다.

전화벨 소리.

선영 재빨리 받는다.


선영 : 여보세요. 아 …조 수사관님. 아침 드셨어요? 또… 큰일이네… 잠깐만요. (우석에게 건네고)


우석 : 어 어디야 ?



# 21 호텔 로비


구석에서 전화를 하는 조 순경.


조 순경 : 비상 연락망이 잘 되있는 데요. 대충 다 모이는 거 같습니다. (입구 쪽을 보고 있다)


장근이 수하를 거느리고 들어서고 있다.


조 순경 : 한 놈 또 오고 있습니다.



# 22 호텔 커피숍


한 쪽을 차지하고 있는 길태와 그 무리들…

장근이 도착하고 대충 인사들이 나눠지고 나지막한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건설폭력계의 상무 부장들이 모인 것.

그 쪽에서는 보이지 않는 이 쪽 카운터 옆에서는 백 형사가 케이이며 빵들이 들어있는 유리 케이스에 코를 박다시피하고 빵을 고르고 있다.

기다리는 종업원 아가씨에게 그 중 하나를 짚어 보인다.

아가씨 그 빵을 꺼내는데 백 형사 하나를 더 짚어 보인다.

여전히 표정 없이 무뚝뚝하고 진지하게.



# 23 검사실


전화벨이 여기저기 울리고 있다.

미스 리, 바쁘게 전화를 받고 있다.


미스 리 : 누구시라구요? (메모하며) 오진 건설에 이용호 상무님 찾아오신다구요? 저기 오늘 내일은 시간이 없구요. (스케줄 표를 살피며) 모레 17일 오후 두시면 어떨까요? 일단 면담을 하시구요 그 다음에 다시 날짜를 잡아서 반성문을 쓰시게 됩니다.


조 순경, 사내 한 명에게


조 순경 : 28일 오후 두시 이곳 회의실로 오시면 됩니다. 주민등록증하고 필기용구를 갖고 오시는 거 잊지 마시구요.



# 24 취조실 1


우석과 장근술, 면담 중.

오 계장이 타이프치고 있고.


우석 : 그렇다면 작년 한 해 동안 오 억짜리 공사 하나밖에 따내지 못했다는 겁니까? 그 쪽 세계에서 위치가 별로 높지 않는 모양이죠?


장근석 : 아니 밑에 애들도 경력을 쌓아야하니까… 나야 그 전에 많이 했고….


우석 : 그 전에 뭘했는데요?



# 25 취조실2


장 수사관과 백 형사 취조 중…


장 수사관 : 맛배기로 하나만 더 해봐.


사내 : 얼마짜리요?


장 수사관 : 억 단위 없어? 이 거 뭐 오천 팔천 시시하잖어.



# 26 취조실1


오 계장 : 28일 오후 2시까지 여기 사층에 회의실이 있어요. 주민등록증, 볼펜… 만년필도 됩니다. 연필은 안 되구요. 갖구 오세요.



# 27 광주 공항


무사시를 데리고 나오는 종도, 기다리던 태호와 일행들 달려가 맞는다.


태호 : 잘 다녀오셨습니까?


종도 : 어…


태호 : 한 시간 전에 홍콩에서 연락왔었습니다. 회장님께서 지시하신 일 끝냈다구요.


종도 : 그래.


태호 : 사무실로 가실 겁니까?


종도 : 애들 불러. 회의할 게 있어.


태호 : (난처해서) 오늘입니까?


종도 : 왜 ?


태호 : 애들 다 검찰에 갔는데….


종도 : (걸음을 멈춘다) 검찰이라니?

 

태호 : 오늘 반성문 쓰는 날입니다. 회장님께 연락이 안 되서 그냥…


종도 :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태호 : 별 거 아닙니다. 형식적인 거죠. 명단에 있는 애들은 다 갔습니다. 협조하는 차원에서…


종도 : 협…조?


태호 : (우물쭈물…)죄송합니다. 연락을 드리려고 했지만, 홍콩 호텔루 전화를 했는데…


종도 : 말 똑바루 못해. 뭐가 협조구, 반성문이야!



# 28 검찰 전경



# 29 검찰 내 대회의실


50여 명의 신사복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다.

출신이 짐작되는 듯 삐딱한 자세들…담배를 피워대는 자도 있고.

조 순경과 미스 리, 각자의 앞에 종이를 몇 장씩 나눠주고 있다.

우석, 앞으로 나선다.


오 계장 : 조용히들 하세요. 거기 뒤에 담배 끄세요.


우석 : 강우석 검삽니다. 바쁘신 와중에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와글와글…

빨리 합시다.

몇 시야 이 거… 등등

그 중에는 길태와 장근술 등의 모습도 보인다.

우석 빙긋이 웃으며 둘러보다가 옆에 서있던 백 형사에게 고개짓을 한다. 백 형사 무뚝뚝하게 앞으로 나서더니 맨 앞에 앉아있는 자의 책상을 주먹으로 쾅 친다. 책상 위에 올려져있던 재떨이며 잔들이 떨어져 박살이 난다. 일순 조용해진다.

그 앞의 사내 책상을 내려다본다. 우직 금이 가있다.


우석 :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기 바란다. 각자 앞에 종이가 놓여져 있을 것이다. 첫 장에는 사표를 쓴다. 각자 회사 앞으로 보내는 사직서다. 두 번 째 종이에는 각서를 쓴다. 향후 삼년간 재취업을 하게 되면 어떤 처벌이라도 달 게 받겠다는 내용이다. 세 번 째 준비한 대로 반성문을 쓴다. 장수가 많을수록 정상참작이 될 것이다. 쓸 줄 모르는 자는 여기 계신 오 계장에게 물어보면 친절하게 가르쳐 줄 것이다. 이상.

우석, 앞문으로 나가버린다.

갑자기 웅성거리는 사내들…



# 30 복도


소리 없이 장 수사관의 지시에 따라 길목길목 포진을 하는 정복 경찰들…

우석, 지나쳐가며 장 수사관에게


우석 : 집단 난동을 부릴지도 몰라요, 조심해서…


장 수사관 : 물론입니다.



# 31 회의실 내


사내들 끙끙 거리며 글을 쓰고 있다.

그 중에는 옆 사람 것을 컨닝하려는 자도 있고, 안 보여주려고 손으로 가리기도 하고……


오 계장 : 다 쓰신 분은 앞문으로 한분씩 나와 주세요. 질서를 지키시고 한 번에 한 분씩만 나오시는 겁니다. 여기 검찰청은 조용한 곳이에요. 조용하게 움직여 주시기 바래요.



# 32 회의실 앞 복도


한사람, 사내 문으로 나선다.

홀가분하게 나서는데 기다리던 경찰 두 명 양 쪽으로 다가서며 팔을 낀다.

사내, 얼결에 끌려간다.



# 33 검찰 내 유치장


사내들 벌서 바글바글 들어가 있다.

또 한 명의 사내가 끌려 와서 반항을 하며 안에 쳐넣어진다.


길태 : 검사 불러와. 야, 이 자식들아, 내 말 안 들려? 검사 불러오란 말야.


백 형사, 천천히 그 앞으로 나선다.


길태 : 이 새끼들 나한테 사기를 쳐? 검사 불러! 반성문 쓰면 끝난다고 했잖아 그랬어, 안 그랬어?


백 형사 : (창살 사이로 손을 넣는가싶더니 길태의 멱살을 잡는다) 들었냐?


길태 : 뭐야?


형사 : 검사님이 그런 말 하는 거 들었어?


길태 : 이 이…


형사 : 조 순경. 이런 건 뭐지?


옆에 서있던 조 순경,


조 순경 : 명예훼손죄입니다.


길태, 말이 막히는 것을 보고 백 형사 손을 놓아준다.

그러더니 돌아서며 아무도 안 보게 히죽 웃는다.



# 34 종도 사무실


종도, 의자를 발로 냅다 차버린다.

한 쪽에 서있던 태호 움찔하고 그 옆의 무사시 종도를 힐끗 돌아본다.

종도 잠시 움직임 없이 서있다가 문득 킥킥 웃는다.


종도 : 강우석이라고?



# 35 검사실


기자들 대여섯 명 모여 있다.

미스 리 바쁘게 차를 나누고…


우석 : 이건 시작입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이종도입니다.


기자들 메모를 하다 말고 고개를 든다. 서로 시선을 마주보고…

 

오 기자 : 이종도라고 하셨습니까?


우석 : 압니까?


오 기자 : 성일물산에 이 회장을 말씀하시는 거죠?


우석 : 맞습니다.


오 기자 : 이 회장이 이번 사 과 무슨 관계가 있는데요?


우석 : 기자 분들이라면 아는 줄 알았는데요,


박 기자 : 알지요. 이 회장이라면 청년사업가로서, 지역발전을 위해 애를 많이 쓰는 사람인데…


우석 팔짱을 끼어 뒤로 기대며 기자들을 본다.

새로운 난관이다.



# 36 요리집


회식이 한창이다.

이종도가 기자들을 불러 회식을 시켜주는 중.


종도 : 어이 오 기자. 오늘은 어째 술을 아끼시는 거 같습니다.


오 기자 : 열심히 마시구 있는데요.


웃음과 화기애애함

종도 여기저기 술을 따라주고


오 기자 : (테이블 밑으로 수첩을 펴놓으며) 그러니까 이 회장님하구 강 검사하구 원래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 이 겁니까?


종도 : 그래요 그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박 기자 : 사이가 안 좋았습니까?


종도 : 좋구 나쁘고 할 것두 없었어요. 그 친구야 워낙 전교 일이 등 하는 친구였고, 나야 밑바닥에서 기었고.


웃음들…


종도 : 근데 그…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 있잖습니까? 역시 그런가 그 친구 학교 때는 그렇지 않았어요.


오 기자 : (테이블 밑으로 재빨리 메모를 해가며) 무슨 뜻입니까?


종도 : 그 친구가 이리로 부임해왔을 때 말입니다. 우연히 같은 술집에 들게 됐드란 말입니다. 아마 여기 유지 분들한테 술대접을 받는 거 같드라구요. 그런데 내가 인사를 안 했어요.


박 기자 : 왜요? 반가웠을 텐데?


종도 : 차라리 친구가 아니었으면 나도 부담 없이 인사를 했지요. 그런데 이거 검사친구가 되다보니까 그런 자리에서 인사를 한다는 게 뭔가 부담을 주는 거 같고 말입니다. 나 동기동창이니 잘 봐달라… 청탁하는 거 같고 그럽디다. 그런데 그게 영 섭섭했던 모양입니다.


박 기자 : 에이 검사들 그 이상한 권위주의 있습니다. 세상이 다 발 아래로 보이는 건지 원.


종도 : 그 참 괜찮은 친구였는데…


오 기자 메모지에 휘갈겨 쓰고 있는 글자

[…인사 없다… 앙심먹은 검사.]



# 37 우석의 집 거실


선영, 여늬때처럼 신문들을 늘어놓고 스크랩을 하고 있다가 기사 하나를 보고 가위를 내려놓는다.

신문을 집어 들어 보는 곳.

사회면 한 귀퉁이에 작은 박스기사가 실려 있다.

큰 제호는 [검사의 보복성 수사]

작은 제호는 [인사 없다는 이유로 청년실업가에 수사 지시]



# 38 검찰 복도


걸어오는 우석.

부장검사실 앞에서 노크를 두어 번하고 문을 연다.



# 39 광주 부장검사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우석.

광주부장, 소파 앞 쪽을 가리킨다.

우석, 앞에 와 앉으면.

부장,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신문을 건네준다.


부장 : 읽었어요?


우석 : 예.


부장 : 해명해 봐요.


우석 : 해명할 가치도 없습니다.


부장 : 강 검사, 나도 서울지검에 친구들 많아요. 강 검사가 어떤 일로 여기까지 내려오게 됐는지 들었어요. 그러지 말아요.


우석 : 뭘요?


부장 : 어허 이 거봐요. 기자들 불러놓고 이종도를 잡겠다고 공언을 했다며? 검사가 그러면 못써요. 이 회장 나도 알아. 벌써 여기저기서 나한테 전화오고 있어. 유망한 청년실업가를 그러면 되느냐, 검사면 다냐?


우석 : 청년 실업가 아닙니다. 조직폭력배 두목입니다.


부장 : (벌컥) 어허 이 사람, 검사될 자질이 부족한 사람 아냐. 빠른 시일 내에 수사 종결해 다른 검사들까지 욕 먹이지 말고!


우석, 잠시 보다가 일어선다.



# 40 복도


우석 문을 열고 나온다.

걸어가는데 우석을 지나쳐 가던 젊은 직원 두 명,

우석의 뒤에서 힐끗 거리며 무언가 얘기를 한다.

우석,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면 그들, 얼른 가버린다.

빈 복도에 우석, 그대로 서있다.



# 41 윤 회장 집 정원


대문을 열어주는 정원사.

재희, 빠른 걸음으로 들어서더니 안으로 뛰다시피 들어온다.



# 42 윤 회장 서재


벌컥 문이 열린다.

책상 앞에서 민 변호사와 일을 하던 혜린, 고개 들어 본다.

들어선 재희, 성큼성큼 혜린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재희 : 사실입니까?


혜린 : (머뭇거리는)


민 변호사 : 앉어. 앉아서 차근차근 얘길 들어봐.


재희 : 민 변호사님도 찬성한 일입니까?


민 변호사 : 그렇게 간단한 얘기가 아니야.


재희 : (혜린을 향해) 저는 알 필요도 없는 겁니까?


혜린, 일어서더니


혜린 : 민 변호사님 술 드시겠어요?


민 변호사 : (재희를 힐끗 보고) 아니 이거 마저 정리해야지.



# 43 홈바


혜린, 술을 따른다.


혜린 : 안 할 거야?


옆에 앉은 재희, 아무 말 없이


혜린 : (술을 마시며 말을 고르다가) 부도는 간신이 막았지만 문제는 영업정지를 푸는 거야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그 사람들 안심시키는 거지. 나도 그들 편이 됐다고 일단 안심을 시키고 그 다음에 …


재희 : 그런 거 싫어하지 않았습니까? 음모나 권모술수… 가진 자들의 술책 같은 거…


혜린 : 그래. 그렇지만 어쩔 수 없어. 이 건 정당방위 같은 거야


재희 말없이 있다가 …


재희 : 박태수, 그 사람도 찬성했습니까?


혜린 :


재희 : (잠시 …) 그 사람이 다칠 수도 있습니다.


혜린 : …알아.


재희 : 안 다구요?


혜린 : (지레 불끈해서) 그래 알아. 상관없잖아. 그 사람 자기가 먼저 시작한 일이야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그런 거 그런 자들 속성이야 알면서 자기가 먼저 그 쪽에 붙었잖아. 난 …난 벌써 경고했어. 그 사람…각오하고 있다고 했어.


재희, 혜린을 돌아본다. 무언의 비난 같은 것이 느껴진다.


혜린 : 왜. 할 말 있으면 해. 없어? 없으면 시키는 대로 해. 시키는 대로 하는 거 그 게 재희가 할일이잖아.


재희, 말없이 혜린을 보고 있다가 선뜻 일어서더니 문 쪽으로 간다.


혜린 : 재희


재희 : (멈추면)


혜린 : 도와줄 거지?


재희 : ……(돌아보지 않은 채) 분부하실 게 있습니까?


혜린 언뜻 말을 못하고 보는…



# 44 호텔 전경


혜린, 민 변호사와 함께 호텔로 들어서고 있다.

민 변호사는 가방을 들고 있다.

뒤에 남은 재희와 장근섭, 두어 명의 사내 안 보는 듯 주위를 둘러본다.

재희, 귀에 이어폰을 낀다.

장근섭, 역시 이어폰을 끼다가 재희를 툭 쳐서 한곳을 가리킨다.

한 대의 차가 도착하며 강동환이 내리고 있다.



# 45 내부 복도


걸어가던 혜린, 마주오던 태수와 문 앞에서 마주친다.

태수, 얼핏 미소가 스치는데 혜린, 저도 모르 게 시선을 피하고 문 쪽으로 가려고 한다.

태수, 그 어깨를 짚어 세우더니 고개를 기웃해 혜린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살피는 듯.

혜린, 머뭇머뭇 미소를 지어 보인다.

민 변호사, 문을 열어 기다리고 태수, 혜린의 등을 가만히 밀어 안으로 들어간다.

혜린, 밀려들어가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춘다.

따라 선 태수 돌아본다.

혜린, 다시 결심하여 계속 걷는다.



# 46 내부


나중에 도착한 강동환, 일어난 태수와 수선스레 악수를 나눈다.


강동환 : 아, 이 거, 오랜만이구만.


태수 : 예.


태수의 옆에 앉은 혜린을 향해서도 고개를 숙여 보인다.


강동환 : 오랜만이지요?


혜린 : (고개를 숙여 보인다)


강동환의 옆에 선 장도식, 혜린과 태수를 번갈아 살펴보며, 강과 함께 자리에 앉는다.


강동환 : 좋은 소식이 있다면서요?


혜린은 테이블을 내려다보고 있고, 태수는 미소만 띄운다.


장도식 : 여기 두 분께서 결혼식을 올린답니다.


강동환 : 허어 이거 경삽니다. 이제 보니 두 분 참 잘 어울리시는구만.


민 변호사 : 아직 초청장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장소와 날짜가 잡히는 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강동환 : 그래요. 내 꼭 가야지. 이거 윤 회장님께서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혜린, 후딱 시선을 들어 강을 본다.

테이블 밑으로 태수의 손이 혜린의 무릎을 지그시 누른다.

혜린, 다시 시선을 내린다.


태수 : 누구보다 강 실장님의 축하를 먼저 받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신세 진 것도 많고.


혜린 : 죄송하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었어요. 그동안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그러더니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중앙으로 민다.


강동환 좀 민망해지고 장도식, 가방을 치우려는데 혜린, 가방을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혜린 : 저 이제 이분과 결혼을 하게 되면 사업에서 손을 뗄까합니다.


장도식, 손을 치운다.


강동환 : 아까운 사업가가 은퇴를 하는 셈이군요. 하하…


혜린 : 모든 걸 남편 뜻에 따를 생각이에요. 강 실장님, 저는 미워하시지만, 박태수 씨는 자기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으시지요?


강동환 : (좀 불쾌하지만) 오늘 이거 내가 단단히 야단맞는 자리인 거 같은데.…


장도식,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보고 있다.


혜린 : (아직은 부드러움을 잃지 않으며) 남편이 카지노 사업을 맡 게 되면, 영업정지를 풀어주세요.


강동환 : (헛기침을 하여 물을 마시는) …


장도식 : 윤 사장님, 카지노의 영업정지는 실장님께서 관장하는 일이 아니에요. 그 건 어디까지나 검찰이…


혜린 : 아버지가 이제까지 어떤 식으로 운영해 오셨는지 들었어요. 그 장부는 잃어버렸지만요. 태수 씨는 아버지의 방식대로 운영할 거예요. 슬롯머신 업소에서 나온 이익금 전액과 카지노 이익금 중에서 해당금액을 스위스의 은행에 입금시킬 거예요. 그렇지요? (태수를 본다)


태수 아무 말 없이 혜린이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혜린 : 스위스 은행에 아직 돈이 남아있어요. 작년 시월 이후로 입금된 거 찾지 못하셨죠?


민 변호사 : 회장님께서 비밀번호를 바꾸셨습니다.


혜린 : 번호 알고 있지요?


민 변호사 : 예.


혜린 : 그 번호도 드리겠어요. 이 정도면 사과의 뜻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장도식 : 혜린 양 이런 얘기는… (어떻게든 얘기를 끝낼 생각인데)


강동환 : (불쾌함이 감춰지지 않으면서)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혜린 : 부족한가요?


강동환 : 그동안 자네가 여기저기 떠벌이고 다닌 건 어떻게 수습할 생각이야? 뭐? 독재 권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더 이상 정치자금을 대줄 수 없어? 또 뭐? 순순히 달라는 대로 주다보면 점점 더 많이 요구할 것이다. 그래서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이런 생각이었다며?


혜린 : 사실 아닌가요?


장도식 : 실장님. (말을 막고 싶은)


강동환 : 왜? 이제 와서 항복할 생각이 들었나? 아무 때고 무릎을 꿇으면 받아들여질 거 같아서?


장도식 : 나중에 얘기하시죠.


강동환 : 나라에 돈 대는 사람이 자네뿐인 줄 알어? 자네 돈이 아니면 우리가 절절맬 거 같앴어?


혜린 : 물론 그러시겠죠. 기업마다 거액을 내놓고 있을 테니까. (뛰는 가슴을 필사적으로 누르고 있다)


강동환 : 자네가 정치의 뭘 알어? 이 나라가 이만큼 된 게 누구 덕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파벌싸움밖에 모르는 엽전들한테 이 나라를 맡겨놓았어 봐. 지금 공장 하나라도 제대로 돌아갈 거 같애? 그래 기업마다 애국자금을 내놓았어. 더럽지만 내가 그 일 맡구 있어. 그 돈으로 이 나라가 유지되는 거야.


혜린 : 그랬군요. (이제 끝났다.)


강동환 : 장 부장.


장도식 : 예.


강동환 : 이 여자가 갖고 있는 카지노 지분 다 몰수해.


장도식 : 하지만….


강동환 : 방법을 찾아봐. 안 되면 아예 문닫게 해. 카지노 같은 거 없어도, 나라가 망하진 않아.


장도식, 힐끔 혜린을 보다가 멈칫.

혜린은 편안 한 표정이다.

강동환, 벌컥 의자를 밀어 일어나는데.


혜린 : 그렇게는 안 될 겁니다.


강동환 벌컥 뭔가 말하려는데 혜린, 테이블 위의 가방을 연다.

굳는 강동환.

가방 안 에서는 녹음기가 돌아가고 있다.

태수, 놀라서 본다. 태수 역시 몰랐던 일이다.

장도식, 순간, 가방을 잡아채더니 녹음기의 테이프를 거칠 게 꺼낸다.


혜린 : 소용없습니다. 마이크는 두 개에요. 하나는 밖에서 녹음이 되고 있어요.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재희와 장근섭 등이 들어선다. 재희 재빨리 혜린의 뒤로 와 서고 장근섭, 장도식에게 가더니 손을 내민다.

장도식, 허탈하여 녹음기를 들어 보인다. 장근섭 조용히 녹음기를 받아든다.

강동환 부들부들 떨리는…


강동환 : 어쩔 생각인가 ?


혜린 : 어쩌고 싶지 않습니다. 영업만 제대로 할 수 있으면 이런 테이프 사용하고 싶지 않아요.


강동환, 주위를 둘러보더니 휙 나가버린다.

장도식, 천천히 태수의 앞에 와 선다.


장도식 : 자네 …어리석은 짓을 했어.


태수 : (묵묵히…)


재희, 그런 태수를 보고 다시 혜린을 본다.

혜린, 테이블을 짚고 선 채 태수 쪽은 보지 않고 있다.



# 47 호텔 별실


문이 열리고 태수, 연 문을 잡고 서서 혜린이 들어가 게 해준다.

혜린 들어선다.

태수 문을 닫는다.

혜린, 문득 걸음을 멈춘다.

방의 한가운데 테이블에는 샴페인과 값진 안 주가 촛대며 꽃병과 함께 차려져있다.

 

태수 : (테이블로 와서 의자를 빼준다)


혜린 : (말없이 와서 앉는)


태수 : (앞에 앉아 병 뚜껑을 연다)


혜린 : 미안해요 미리 얘기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어요.


태수 : 어쩔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얘기지.


혜린 : 축하할 기분이 아니면 그냥 가겠어요.


태수 : (혜린의 잔에 술을 따른다) 꼭 축하하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건 아니니까.


태수 자기의 잔을 든다.

혜린, 내키지 않는 대로 건배를 받는다.


태수 : …내가 알고 싶은 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속임수인가 하는 점이야? 그러니까 결혼 얘기도 결국 연극이었나.


혜린 : ……


태수 :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혜린 : 외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구해놓겠어요. 있을 곳도 마련하고. 당분간 밖에 나가 있는 편이 좋을 거예요


태수 :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언젠가 우리 어머니 얘기 해준 적 있나. 어머닌 요정을 하셨드랬어. 그런데 언제나 당당했지.


혜린 : 출국하는 거 서두는 게 좋을 거예요


태수 : 한번은 내가 패싸움을 해서 정학을 받게 됐어. 어머닌 교무실에 찾아와서 큰소리를 치셨어. 그럼 친구들이 맞는데 사내자식이 되서 혼자 도망쳐야 되냐구? 이 학교에선 그렇게 가르치냐구?


태수, 미소까지 띄우며 회상 속에 있다.

혜린, 끼어들지 못한다.


태수 : 난 어머니가 이 남자 저 남자하구 술 마시는걸 보면서 자랐어. 그렇지만… 괜찮았어. 난 알구있었 거든. 어머닌 아버질 몹시 사랑했어. 그건 누구라도 알 수 있었어. 난 가끔 아버지를 질투했어. (웃고 혜린을 본다) 아버진 운이 좋은 남자라고 생각했어.


혜린 :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


태수 : …당당하게 살어. 어쩔 수 없었다는 말 같은 건 당신하고 어울리지 않아. 그런 말은 나 같은 사람이나 쓰는 말이야. 어쩔 수 없이 주먹질을 하고, 어쩔 수 없이 감옥에 들어가고.


혜린 : ……


태수 : 아직도 가끔 당신 처음 만났을 때 생각을 해. 우석이 방에서였지.


혜린 : (이런 분위기가 점점 참기 어려워진다)


태수 : 우석이 결혼식에 갔었어. 아주 좋아보였어.


혜린 : (말을 끊으며) 얘기 들었어요.


혜린 딴 데를 본다. 잠시 동안 태수는 아무 소리가 없다.

결국 혜린이 돌아보았을 때 태수는 혜린을 바라보고 있다.


혜린 : 아직 할 말 남았어요?


태수 : (웃고는) 혜린이 당신이 불쌍하단 생각을 하고 있었어.


혜린 : ……


태수 : (잔을 들어 보인다) 나도 그렇고.


태수는 술을 마신다.

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부드럽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과거와 현재의 중간쯤에 둘이 마주 앉아있다.



# 48 우석의 집


현관 벨소리

선영,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현관으로…


선영 : 누구세요 ?


문을 열자 무사시가 두 명의 수하를 뒤에 두고 들어선다.


선영 : (막아서듯이 해서) 어디서 오신 분들이세요?


무사시, 뒤의 부하가 들고 있던 상자를 받아든다.

상자는 고급스럽게 포장이 되었다.


무사시 : 검사님께 전해주십시오. (내미는데)


선영 : (오히려 손을 뒤로 빼며) 이게 뭔데요?


무사시 : 상감청자입니다.


선영 : 이걸 왜요?


무사시 : 전해드리면 압니다. 위에 봉투도 있습니다.


상자 포장 위에는 봉투가 얹혀져있다.


선영 : 이거 뇌물인가요?


무사시 : (언뜻 대답을 못하는데)


선영 : 우리 남편 검사에요. 도로 갖고 가세요. 아니면 뇌물공여죄로 구속할지도 몰라요.


선영 문을 닫으려는데


무사시 : (몸으로 버티며) 저는 시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


선영 : 안 가실 거예요? 그럼 거기 가만 서계세요. 경찰에 전화하구 올 게요.


안으로 들어간다.

무사시, 수하들과 마주보더니 문을 닫고 나간다.

선영, 전화기를 들다가 보고 흐응… 안심하다가 문득 짚히는 게 있다. 얼른 뛰어나간다.



# 49 현관 밖


벌컥 문을 연 선영.

현관문 앞에 놓여있는 상자.

선영, 계단 아래로 소리를 지른다.


선영 : 이거 봐요.


선영 다급하게 상자를 들고 벗겨지는 신발을 끌며 뛴다.



# 50 관사 밖


차에 타려는 무사시 일행.

무사시 담배를 피워 물고 있다.

급하게 쫓아 나온 선영, 무사시를 밀치고는 상자를 차 안 에 집어던져버린다.


선영 : 이거 놓구 갔어요. 자요 안녕히 가세요.


돌아서는데 무사시가 선영의 팔을 잡는다.

선영 순간 악 소리를 지른다.

무사시 놀라서 팔을 놓고는…


무사시 : 이러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그 때 영진의 소리


영진 소리 : 그거 협박하는 거예요?


저만치 영진이 다가오고 있다.


영진 : 안녕하세요?


선영 : 어머, 어서 오세요.


영진 : (주섬주섬 가방 안 을 뒤진다) 나 신문 기자 거든요. 명함이 어디 갔나.


무사시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피우던 담배를 던지고는 그대로 차에 탄다.

선영 얼른 담배꽁초를 주워든다.


선영 : 정말 이쁜 짓만 골라하구 있어.


영진, 선영이 조심스레 꽁초의 불을 끄고 쓰레기통에 넣는걸 보고있다.

그리고는 영진을 돌아보고 새삼스럽게


선영 : 안녕하세요? 이상한 꼴 보여드렸네요.


영진 : 보기 좋았어요.


선영, 그러는 영진을 보다가 웃는다.



# 51 우석의 집 부엌


정갈한 잔에 뜨거운 물이 부어지면서 모과차의 색이 우러난다.

정갈한 접시에 약과와 강정이 보기 좋게 담겨진다.

선영, 찻상을 차리고 있다.

쟁반을 들어 부엌을 나가려다가 고개를 기웃해서 슬쩍 거실을 내다본다. 그러다가 얼른 자세를 가다듬고 거실로 나간다.



# 52 거실


테이블에 마주앉아 있는 우석과 영진. 영진은 여러 장의 지방 신문들을 읽고 있는 중이다.

우석, 얼른 테이블에 널려있던 신문지들을 치운다.

선영, 가져온 것들을 테이블에 늘어놓으며…


선영 :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옆집 할머니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했는데…


영진 : 이거 다 직접 만들었어요?


선영 : 맛없으면 흉보실려구…


우석 : 맛있어요. 들어봐요.


영진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우석을 보고 웃는다.

우석, 좀 어색하고…

영진, 먹기 시작하며…


영진 : 그러니까 이곳 신문들은 대충 이종도의 편이란 거죠? 그래서 중앙지의 도움이 필요한 거구요.


선영, 일어서려는데 우석, 슬쩍 잡아 앉히며…


우석 : 흥미 없어요?


영진 : 흥미 있어요. 드디어 강우석 검사, 언론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다… 설마 강우석 검사가 유명인사가 되고 싶어서, 쇼맨십을 발휘하자는 건 아닐 테고…


선영 : 그런 거 아니에요. (흥분하려다가)


영진 : 알아요. 일단 언론에 터뜨리고 나면 윗선에서 함부로 압력을 넣지 못하겠죠.


선영 : (안심해서) 맞아요.


영진 : 이종도, 분명히 기사꺼리 돼요. 건설폭력배 두목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다… 그런데 그 거뿐이에요. 아시겠죠? 단발에 끝날 거라구요. 뭔가 있어야 돼요. 다른 신문에서도 받아주고, 저 또한 위에 눈치를 봐야 되는데, 위에서도 함부로 잘라내지 못할 그 무엇….


우석 : 이종도의 과거 경력가지고도 안 될까요?


영진 : 윤재용 회장 밑에 있었죠. 그런데 그 사람 이미 죽었잖아요. 살아있는 무엇이 필요해요. 그래야 오래가요.


우석 : 살아있는 무엇이라면…


영진 : (우석을 빤히 보다가) 이를테면 제 2의 윤재용이라고 불리는 박태수와의 관계 같은 거 말입니다.


우석, 말없이 영진을 본다.



# 53 김포 공항


국제선 출국장 앞

태수, 단신으로 에스컬레이터를 오르고 있다.

배웅 나온 자 하나 없이 홀로 떠나는 길이다.

출국입구를 향해 걷다가 문득 선다.

한 쪽을 돌아본다. 누군가의 시선을 느낀 것 같다.

그러나 바라본 곳에는 상관없는 사람들만…

태수, 다시 걸음을 옮겨 여권을 보이고 입구로 들어선다.

이만치, 기둥 뒤에 등을 기대고 서있던 혜린, 잠시 그대로 서있다가 천천히 몸을 돌려 걸어간다.

가다가 무심코 출국장 입구를 돌아보던 혜린, 선다.

입구 저편에는 들어가는 사람들에 상관없이 태수, 우뚝 서서 혜린을 바라보고 있다.

혜린, 보다가 다시 걷는다. 다시는 돌아보지 않는다.



# 54 출입국 심사대


태수, 차례가 되어 여권 등을 직원 앞에 넘겨준다.

직원 여권을 보다가 후딱 태수를 본다.

태수 기다린다. 직원의 일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듯…

무언가를 바쁘게 타이프하며 계속 태수를 힐끗 거린다.



# 55 공항 주차장


운전대에서 나온 재희, 시계를 본다. 왠지 불안해지는 마음.

청사 쪽으로 걷기 시작한다.

길을 건너기 전에 멈춰서 지나가는 차들을 보내다가 문득 보는 곳, 서서히 지나가고 있는 차 한 대.

뒷좌석에 타고 있는 사내. 장도식. 카폰으로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다.

재희, 후딱 청사 쪽을 본다.



# 56 출입국 심사대


태수,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주위를 둘러본다.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그러다 태수,

움찔한다. 이쪽을 향해 바쁘게 다가오고 있는 정복의 경비대들…태수, 심사직원을 돌아본다. 직원 얼른 시선을 피한다.

태수, 재빨리 그 자리에서 피해 도로 나오려는데 차례를 기다리던 여행객 아줌마 태수의 옷깃을 잡는다.


아줌마 : 뭐가 잘못됐대요?


태수 : (옷깃을 뿌리치려 하지만)


아줌마 : 비행기 못 탄대요? 아이구 뭐가 잘못됐는데. 나 우리 딸네 집에 꼭 가야되는데.


그러는 사이 달려온 경비대 태수를 에워싼다.

놀라는 아줌마.

태수, 허탈함 속에 단념한다.


<20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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