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모래시계

<제13회> 모래시계 |

오늘의 쉼터 2018. 11. 7. 18:38

<제13회> 모래시계 



# 1 나이트클럽 앞


입간판을 세우고 개장 준비를 하던 종업원 한 명, 의아해서 본다.

다가와 우뚝 서서 간판을 보고 있는 태수.

초라한 몰골이다.



# 2 나이트클럽 내부


무조건 들어서고 있는 태수를 종업원이 쫓아온다.


종업원 : 이봐요 아직 영업시간 안 됐어요. 이봐 어이…


안 쪽 테이블에서 얘기하고 있던 부장과 사내들, 이쪽을 돌아본다.


부장 : 뭐야?


태수, 우뚝 서서 그들을 본다. 모두가 낯선 얼굴들이다.


종업원 : 문 안 열었다는데 무조건 들어오잖아요.


부장 : 내보내.


종업원 태수의 어깨를 잡아채며…


종업원 : 이따 와요 어?


순간 태수, 종업원을 잡아 밀어버린다.

나가떨어지는 종업원. 태수 역시 휘청한다.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부장 옆에 있던 사내들…벌떡벌떡 일어나 다가온다.


사내 : 이 자식이 대낮부터 술 취했나.


분위기 험해지는데 안에서 나오던 이정근, 태수를 보고 놀란다.


정근 : 형님


믿지 못하겠다는 듯 달려와


정근 : 태수형님 접니다. 정근이요.


부장, 태수의 이름에 새삼 본다.



# 3 종도 비서실


한 쪽에 여비서의 책상이 있고, 여비서는 초라한 차림의 태수를 경멸하듯 쳐다본다.

대기 의자에는 지금 찾아온 사람의 비서인 남자가 앉아 신문을 보고 있고.

벽에 주욱 걸린 액자 속의 사진들.

우뚝 선 태수 그 사진들을 둘러보고 있다.

그 옆에서 정근이 나직나직 눈치를 보아가며 설명을 한다.


정근 : 이젠 함부로 종도형님이라고 못 불러요.

상무님 아니면 부장님 단장님 직함이 얼마나 많은데요. 명함이 앞뒤루 꽉차요.


사진들은 그간의 종도의 행적을 보여준다.

유력 인사들과 악수를 하는 사진… 깃발을 전달받는 사진…

감사패를 들어 보이는 사진… 등등

그 위에 정근의 설명이 계속된다.


정근 : 여기 카지노에서는 상무님이지만요,

민정당 무슨 청년회 총무부장이구요 또 무슨 새마을 뭔가 서부지역 단장이구요

또 뭐냐 하여간 윤 회장 밑에 들어간 뒤로는 세력도 엄청 커졌고. 식구도 몇 배루 늘었어요.


수 대기 의자에 기대앉으며


태수 : 자아식 (대견한 느낌)


정근 그 옆에 쫓아 앉으며 계속


정근 : 근데 형


태수 :


정근 : 저기 그런 말이 있든데…태수형 삼청 들어간 거 종도 형이 꾸민 일이라구….


태수 : (돌아본다.)


정근 : 사실 옛날 우리 식구들 얼마 안 남았어요.

종도형님을 안 따르는 애들은 죄다 내보냈거든요. 비참해진 애들 많어요.


태수 앉은 바로 옆에도 액자가 붙여져 있다.

그 안 에서 종도는 어떤 남자와 나란히 골프채를 들고 서서 웃고 있다.

종도 사무실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아까 그 사진 속의 사내가 나선다.

그 사내를 배웅하여 나오는 종도.


종도 : 일간 자리를 한번 마련하겠습니다.


사내 : 이 상무만 믿어요.


앉아있던 남자 비서 얼른 일어나 앞서 문을 연다.

종도 문까지만 배웅을 하고 남자는 나간다.

종도 돌아들어가려다가 태수를 발견한다.

태수, 반가운 미소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포옹이라도 할 기분으로 팔을 벌려 한두 걸음 나서다가 멈춘다.

종도 별 감흥 없는 표정으로 보다가 손목시계를 보더니 안 을 향해 고개짓을 해 보인다.


종도 : 들어가지


태수 멈칫하는 느낌.



# 4 종도 사무실


태수, 소파에 앉는다.

뭔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앞자리의 종도는 담배갑의 담배를 꺼내 그새 간부의 의젓한 태가 박힌 몸짓으로 불을 붙인다.


종도 : 나오는 줄 알았으면 애들을 보냈을 텐데. 언제 나왔어?


태수 : …며칠 됐다.


종도 : 전화를 하지


노크소리


종도 :


여비서 문을 열고 들어서서


여 비서 : 김 기사 왔는데요.


종도 : 김 기사?


여 비서 : 오후 세 시에 정 의원님하구 약속 있으세요.


종도 : 아 그렇지 알았어.


여 비서 인사하고 나가려는데


종도 : 아 잠깐


일어서서 여 비서 쪽으로 가더니 낮 게 뭔가 지시를 한다.

여 비서 나가고 종도 책상 쪽으로 가서 스케쥴표를 확인한다.


태수 : 내가 잘못 왔냐?


종도 : ….


태수 : 대답해


종도 : (앞에 와 앉는다) 허심탄회하게 얘길허께. 모든 게 에전 같지 않어.

주먹으루 해결하던 시대는 지났어. 이제 조직폭력 같은 건 발붙일 데가 없어.

더구나 우리 윤 회장님 성격이 뒷골목패들하구는 상종도 안 하시 거든 내 입장 이해하겠지?


태수 :


종도 : 이 카지노 사업이란 게 워낙에 눈치 보는데가 많어. 깨끗하지 못하면 못해먹는다구. 그러니까…


태수 : 나 같은 전과자가 얼씬 거리면 곤란하다?


종도 : 아직 시기상조다 이 말이지.


태수 : (잠시 묵묵히 있다가) 성범이 형님은?


종도 : 이십 년 받으셨다. 민재 형이랑 일도 형은 오 년, 삼 년 받았구.


태수 : (말없이 노려보다가 허 피로가 몰려오는 기분이다)


노크소리

여 비서가 차쟁반을 들고 들어온다.

차를 놓아주고 함께 가져온 돈 봉투를 내려놓는다.


종도 : 가봐.


여 비서 나가고


종도 : 이 거(봉투를 내밀어준다) 얼마 되진 않지만 너 고향에 가서 당분간 쉬는 게 좋을 거야

몸두 성치 않은 거 같은데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어. 널 위해서야.


태수 : ……너라구 생각했다. 종도 니가 날 빼내준 거라구. 너 만나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어.


종도 : (잠깐 당황하지만 이내 냉정을 찾아)내가 바라는 건 하나밖에 없다.

태수 니가 조용하게 지내주는 거야. 우리 애들 평생 처음으로 월급에 보너스까지 받고 있어.

걔들 건드리지 말어.


수 잠시 종도의 시선을 받고 있다가 봉투엔 눈길도 주지 않고 일어선다.

문 쪽으로 돌아서려다가


태수 : 하나만 묻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니가 한 짓이냐?


종도 대답 없이…

그렇게 마주보는 두 사람.



# 5 공항 가는 길


달려가는 승용차.



# 6 차 내부


운전하고 있는 재희.

뒷 좌석의 영재와 혜린.


혜린 : 편지 할 거지?


영재 : 그럼


혜린, 더 할말을 찾지 못하고 서운한 마음에 창 밖을 보고 있다.


영재 : (혜린의 손을 잡아 ) 편지할게. 전화두 자주 하구.


혜린 : (끄덕인다)


영재 : 나왔다지?


혜린 : (돌아본다)


영재 : 니가 결혼하겠다고 했던 친구. 재희한테 들었다. 아버지하구 거래했다구.


운전하는 재희 백미러로 뒤를 본다.


영재 : 그래서 다시 안 만날 거니?


혜린 : 그렇게 약속했어.


영재 : 아버지 밑에서 일할 거구


혜린 :


영재 : 괜찮겠어?


혜린 : (영재의 무릎을 툭툭 친다) 오빠 걱정이나 해. 혼자 타국으로 떠나는 건 오빠야


영재 : 난 혼자가 아냐


혜린 : ?


영재 : 같이 가. 도착하는대루 결혼할 생각이야


헤린 살피듯 본다.

영재 웃고.

혜린 못 믿겠다는 듯 살피다가


혜린 : 여자라구?


영재 : 그래 임마


혜린 : 오오 여자라 이 거지? (팔꿈치로 퍽 친다)


웃는 남매.



# 7 공항 대합실


걸어가며


혜린 : 아버진 모르시는 거야?


영재 : 그 애 고아야. 구멍가게 하는 숙모 댁에 얹혀사는 처지구.

아버지가 허락해 줄 리가 없어. 아이가 생기면 안 구 와서 인사할 거야.


영재 문득 발걸음을 멈춘다.

한곳을 보는 영재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혜린 영재의 시선을 따라 보면 저만치 여자 한 명,

다소곳하니 앉아 있다가 이쪽을 보고 일어선다.


혜린 : 저 아가씨?


영재 :


혜린 : (나가려는 영재를 막아) 내가 먼저


얼른 아가씨에게 다가간다.

수줍어하는 아가씨에게 인사를 하고 말을 붙이는 혜린.

당황하여 인사를 하는 아가씨.

그 둘의 모습을 보다가


영재 : 저 자식 또 씩씩한 척 하는데


재희 : (혜린을 보고 있다)


영재 : 엄살 떨 줄을 몰라.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그래서 더 힘들 거야 (재희를 향해 선다) 혜린이 부탁해.


재희 :


영재 : 무슨 일이 있어도 혜린이 편이 되어줘


재희 : …그럴 겁니다.


영재 끄덕이고 혜린을 돌아본다.

혜린 무슨 말을 했는지 여자는 입을 가리며 웃고 있다.



# 8 출국장 앞


영재, 여자를 감싸 나가며 이 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인다.

혜린 손을 흔들어준다.

재희 고개를 숙여보인다.

영재, 가장 소중한듯 여자를 감싸 나가는 모습…

재희 혜린을 슬쩍 살핀다.

미소 짓고 있는 혜린.

그 미소가 차츰 사라진다.



# 9 고급 주택가 골목


재희가 운전하는 차 올라오고 있다.



# 10 차 내부


재희 백밀러로 뒤에 앉은 혜린의 표정을 살핀다.

혜린 멍하니 차창 밖을 보고 있다.

다시 앞을 보던 재희 굳는다.

윤 회장 집 대문 앞 건너 벽에 기대 서있는 태수.

이쪽을 보고 있다.

차는 대문 앞에 선다.

재희 백밀러로 뒤를 본다.

혜린도 태수를 보고 있다.

재희 내려서 문을 닫는다.

태수는 혜린을 보고 있다. 여전히 움직이지 않은 채.

혜린, 자리에 앉은 채 꼼짝 않고 있다.

재희 차를 돌아 혜린의 문을 열어준다.

혜린 차에서 내린다.

다시는 태수 쪽을 보지 않은 채 그대로 걸어서 대문 쪽으로 간다.

벨을 누르자 기다리고 있었던 듯 문이 열리며 사내 한 명이 나온다.

꾸벅 인사를 하고 운전석으로 간다.

그 사내를 지나쳐 혜린 들어간다.

재희 돌아본다.

태수는 말없이 들어가는 혜린만 보고 있다.



# 11 마당


현관 쪽으로 가는 혜린. 안 에서 나온 장근섭,

혜린, 장을 지나쳐 현관 쪽으로 간다.


장근석 : (재희에게) 밖에 있는 애 봤나?


재희 : 예 (혜린을 보며)


장근석 : 몇 시간째 그러구 있두만


혜린은 현관 손잡이를 잡은 채 가만히 서 있다가 문을 열고 들어가 버린다.



# 12 혜린의 방


들어선 혜린, 가방을 던져놓고 테이블 위의 신문을 집어 든다.

침대에 걸터앉아 읽을 곳을 찾는다.

헛되이 몇 장을 들추다가 문득 고개를 든다.



# 13 거실


재희 양주 병을 들다가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혜린을 본다.

혜린은 현관 쪽으로 뛰어나간다.

재희 잠시 멈추었다가 양주를 마저 따른다.

천천히 한 모금을 마신다.



# 14 골목


고급 주택가의 인적없는 길.

혼자 걸어내려오던 태수, 문득 멈춰 선다.

뒤에서 달려오는 발소리.

돌아보면 혜린이 달려 오고 있다.

태수 앞에 멈춰 거친 숨을 몰아쉬며 보다가


혜린 : 인사하러 왔어요. 이제 다신 안 만나요 그러니까 찾아오지 말아요. 찾아와두 만날 수 없어요.


태수 묵묵히 보고만 있다.

혜린,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를 빼낸다.

태수에게 내민다.

태수, 혜린의 얼굴만 보고있다가 한손을 뻗어 반지를 받는다.

혜린 주춤 거리며 돌아가려하지만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혜린 : 그 얘기 하러 왔어요. 다시 안 만난다구


태수, 여전히 말없이 보고만 있다.


혜린 : 뭐라구 말 좀 해봐요. 화 안 나요? 화낼 줄 몰라요?


태수 말이 없다.

혜린, 단념하고 고개를 숙이더니


혜린 : 미안해요. (목소리가 잠겨 있다.)


돌아서는데 그 팔을 잡는 태수의 손.

다른 손을 뻗어 혜린의 턱을 들어 돌려본다.

감추었던 혜린의 눈물을 본다.

확인하듯 혜린의 눈물을 손끝으로 가만히 닦아내어본다.

혜린과 시선이 마주친다.

태수, 혜린을 당겨 안 더니 그대로 입 맞춘다.

잠시 후 태수, 혜린을 밀어내어 새삼스레 얼굴을 본다.

혜린, 눈물이 고이더니 태수의 목을 끌어 안는다.

태수, 혜린의 허리를 감싸 안는다. 깊이. 깊이.



# 15 시외버스 정 거장


서울 인천 표시를 한 시외버스가 출발해가고 있다.



# 16 버스 내부


태수, 혜린을 감싸고 앉아 있다.

혜린, 태수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든듯 눈을 감고 있다.

태수, 우울한 얼굴로 혜린의 고개 너머 차창 밖을 보고 있다.

태수, 조심스레 혜린의 머리칼에 입맞추고 머리를 뒤로 기대어 눈을 감는다.

혜린 가만히 눈을 뜬다.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 17 인천 부둣가


야적장?

멀리 석양에 물든 바다에 배들….

컨테이너? 드럼통? 등이 어수선하게 놓여져있는 부둣가…

붉은 석양을 받으며 혜린 걸어가고 있다.

몇 걸음 뒤에서 태수 따라 걷는다.

혜린 문득 몸을 돌이켜 태수를 보며 뒷걸음질 친다.

혜린 멈춰 선다.

태수 멈춘다.

그 위에


태수 (소리) : 그 안 에서 백번쯤 생각했어. 왜 그랬을까.



# 18 배


서해를 떠가는 배.

뱃전에 기대선 혜린과 태수.


태수 (소리) : 왜 나하구 결혼하겠다구 했을까.

그때 상황이 그래서 그냥 해본 소린가 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 19 서해 섬


바닷가 …

밀려왔다 가는 파도.


태수 (소리) : 그렇다면 왜 내 반지를 받았을까, 혹시 나를 정말 좋아한 건 아닐까?


바닷가에 앉아있는 태수와 혜린.

태수는 혜린을 감싸고 혜린은 태수에게 기대어.


혜린 : 지금은 어떻게 생각해요?


태수 : 상관없다구 .날 좋아하든 말든 상관없이 이 여잔 내 여자라구.


혜린 : ……


태수 : 그리구 또 이렇게 생각해 다신 이런 꼴 당하지 않겠다구.

다시는 힘이 없어서 내 여자에게서 쫓겨나는 놈은 되지 않겠어.


혜린, 태수에게서 벗어나서 태수를 본다.


태수 : 날 믿어줄 수 있겠어?


혜린 :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태수 : 날 믿어주면 돼.


혜린 보다가 웃고 먼데를 본다.

그러다가 불쑥


혜린 : 아직도 같은 생각이에요? 결혼식 먼저 해야된다구요?


태수 웃고 주머니를 뒤져 반지를 꺼낸다.


태수 : (그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어머닌 평생 혼자셨어.

학교 다닐 때 학부형 회의에 오시면 다른 여자들은 어머니를 보고 손가락질을 했어.

난 내 여자를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아.


반지를 내민다.

혜린 머뭇거리다가 받는다.


태수 : 날 믿는다면 내 옆에 있어. 그렇게 해.


혜린, 그 시선을 받지 않는다. 손에 쥐어진 반지만 보고 있다.



# 20 민박 집


불 켜진 방 하나.



# 21 방 안


문가에 기대 앉은 태수.

이만치 이불에 기대 누운 혜린.

시선이 마주치고 미소를 나눈다.

태수 눈을 감는다.

혜린 계속 태수를 보고있다.


(시간경과)


혜린 잠들어 있다.

태수 가까이서 혜린의 잠든 얼굴을 보고 있다

얼굴 위에 드리워진 머리칼 한 가닥

태수 조심조심 그 머리칼을 집어 넘겨준다.

그렇게 하염없이 보고 있다


(시간경과)


태수 잠들어 있다.

그 위에 이불이 덮여 있다.

어디선가 배 고동소리…

움찔 잠이 깬다. 잠시…

벌떡 일어난다.

방안 에는 아무도 없다.

이불을 걷고 일어서다가 빈 방 한가운데 반으로 접힌 하얀 종이를 본다.

집어 드는데 그 안 에서 굴러 떨어지는 반지.

반지를 주워들고 종이를 펴본다. 앞에도 뒤에도 하얀 백지다.

태수, 망연히 그 자리에 서 있다.



# 22 카지노


렛판이 돌아가고 있다.

카지노 특유의 소란스러움.

테이블마다 딜러들의 현란한 손놀림.

카운터에서 음료수를 마시는 사람들…

들려오는 일본어 중국어

한 쪽에 마련된 휴 게실에 현지처인 듯한 젊은 여자 몇이 잡지를 보고 있다.

딜러인 현숙, 나른한 표정으로 카드를 돌린다.

블랙잭이 진행되고 있다.

일본인 손님 하나가 이긴다.

의기양양해하는 손님.

그 앞으로 칩이 쌓여간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냉정하게 보고 있는 최 과장.

다시한판이 끝나며 딜러, 현숙의 칩이 나가고 있다.

현숙, 바로 뒤에 와 서는 최 과장을 느낀다.


최 과장 : 지금 뭐하는 거요


현숙 : (카드를 나누는 손길 늦추지 않으며) 카드 나눠요


최 과장 : 생리중이요?


현숙 : (기가 막혀 손이 멈춘다)


순간 테이블 밑으로 최 과장, 현숙의 발뒤꿈치를 걷어찬다.


최 과장 : 정신이 좀 들어요?


현숙, 아픈 표시도 못 내고 굳어있는데


최 과장 : 웃어요


현숙 활짝 의도적으로 미소를 띄운다.

최 과장 저리로 간다.

현숙 카드를 나누며 최 과장 쪽을 힐끗 보고 중얼중얼 욕을 한다. 여전히 미소를 띠운 채.

걸어가던 최 과장에게 종업원 한 명 다가와 낮 게 뭐라 말한다.

최 과장 끄덕이고 테이블 쪽을 다시 한 번 살피고 밖으로 나간다.



# 23 종도의 상무실


문이 열리며 최 과장 들어서 공손히 인사를 한다.

소파 쪽에 앉아있는 종도와 민 변호사와 혜린.

혜린, 최 과장을 보고 엉거주춤 일어선다.

종도, 혜린을 향해 어서 앉으라고 손짓을 하고.


종도 : 어서 와. 일루 좀 앉지.


최 과장, 예의 표정 없이 꼿꼿한 얼굴로 앉는다.


종도 : 우리 최 과장은 뭐랄까. 아시아 최고의 손이라구들 합니다.

사부님으루 생각하고 배우면 될 겁니다. 최 과장 여기 이

(호칭을 고르다가) 아가씨가 딜러로 일하고 싶어하는데…


최 과장 : (무뚝뚝하게) 공채는 끝났습니다.


종도 : 그래서 내가 특별히 부탁하는 거 아닌가 두 주내루 일할 수 있도록 해주고.


최 과장 : 연수는 6주가 기본입니다.


종도 : 어허


혜린 : (최 과장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인다) 잘 부탁드립니다.


종도 : (혜린에게는 상냥하게) 카지노 처음이지요. 최 과장 우선 안내를 해주지…


혜린, 일어선다.

최 과장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일어서 앞서 나간다.

따라 나가는 혜린.

최 과장이 못 보게 민 변호사를 향해 인사한다.

남은 종도와 민 변호사.


민 변호사 : 다시 부탁하지만 혜린 양이 회장님 따님이란 건 아무도 몰라야합니다


종도 : 물론입니다.


민 변호사 : 이 상무도 그 사실을 잊어버리라는 게 회장님 분부셨구요.


종도 : 그렇습니까? 그럼 그래야지요. 그 참 대단하신 어른이십니다.

따님을 이런 식으로 교육시키시고 그 참…


민 변호사 : 혜린 양 본인이 원한 거예요


종도 : 아 예에… 그럼 저 그러니까 회장님께서는 따님을 후계자로 생각하시는…


민 변호사 : 생각이 많군요.


종도 : 예?


민 변호사 일어서 가방을 챙긴다.

종도 얼른 일어나 예를 갖추면서도 빈틈없이 민 변호사의 안색을 살핀다.



# 24 연수실


작은 방.

카드 테이블이 놓여있다.

최 과장 아무 말 없이 새 카드를 뜯는다.

그 앞에 앉은 혜린.


최 과장 : 포커 할 줄 알아요 ?


혜린 : 네. 근데 봉급은 얼마지요?


최 과장 : (힐끗 보고) 포커 할 줄 아냐고 물었어요.


혜린 : 안 다고 대답했어요. 봉급은 얼마에요?


최 과장 : (잠시 보다가)기본 봉급에 팁 플러스.


혜린 : 팁은 다 가져요? 받은만큼?


최 과장 : 개인 팁은 절대 금물. 어겼을 경우엔 그 자리에서 해고. 예외는 없어요.


혜린 : 아…


최 과장 : (칩을 세더니 한 뭉치를 내어주고. 자신도 그만큼 가지며)

이 건 첫달 치 봉급 액수에요. 포커 할 줄 안 다고 했으니 시작합시다.


혜린 : (어이가 없다) 정말로 하자는 거예요? 아니 내 봉급을… 그니까 진짜 돈을 걸고…


최 과장 : 우리 카지노에선 진짜 돈을 걸고 하지 않는 게임은 없어요.

내가 지면 물론 진짜 돈을 주지요 반대도 마찬가지.


혜린 넋이 나가서 보고 있다.

말을 하며 최 과장은 카드를 섞고 있는데 가히 놀라운 경지다.

어느새 혜린 앞으로 카드가 나누어진다.

카드가 진행된다.

첫 게임은 혜린이 어이없이 진다.

두 번 째 게임에서 혜린, 정신을 차려 하지만 또 진다.

어느새 혜린의 칩은 모두 최 과장에게 가 있다.

최 과장 일어선다.


최 과장 : 이걸로 당신의 첫 달 봉급은 내 거예요


혜린 : 잠깐만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요? 속인 거죠?


최 과장 : (싸늘하게) 우리 카지노에서 속임수를 쓰는 딜러는 그 자리에서 해고. 예외는 없어요.


혜린 : (어처구니가 없다) 언제나 이런 식으루 가르쳐요?


최 과장 : 포커를 할 줄 아는 직원일 경우엔 이렇게 해요.


을 나서며


최 과장 : 30분 쉬고 룰렛을 합시다.


혼자 남은 혜린, 멍하니 있다가 허 웃는다.



# 25 직원 락카룸


여자 딜러들 제복을 갈아입고 있다. 모두가 수근 거리며 보고 있는 곳.

혜린, 구석의 락카 앞에 서서 손에 익지 않은 열쇠로 문을 열고 있다.

주위의 수근거림을 모른척하고 있다.

괜히 빈 락카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소리 : 신경 쓸 거 없어


돌아보면 현숙이다.


현숙 : (예의 느릿느릿한 말투) 낙하산 타고 들어왔다고 그러는 거야

여기 애들 다 어마어마한 경쟁률 뚫고 들어온 공채 거든. 나 조현숙이야. 4년 고참.


혜린 : 윤혜린이에요.


현숙 : (어디까지나 붙임성 있고 상냥하게) 이쁘구 늘씬하구 어머 낙하산 탈 만 하다.

어느 줄이야? 박 부장? 이 상무?


혜린 : 낙하산 타구 들어오게 되서 죄송해요


현숙 : 어머 (혜린을 치며 웃는다) 무섭다아. (다른 직원들을 향해) 들었어?

얘 만만하게 보다간 지겠어. 나 방금 졌어.


웃는 여자들…

혜린, 그저 어이없을 뿐이다.



# 26 매춘 거리


호객하고 있는 여자들

그 사이를 지나가고 있는 태수와 정근.

여자1 태수의 팔에 매달린다.


여자1 : 오빠 여기에요 여기…


그러다 돌아보는 태수의 음울하고 냉정한 눈길에 움찔하여 저도 모르게 손을 놓는다.

저만치 가는 태수를 향해 뒤늦게 정신을 차린 여자1

욕을 내뱉고는 금방 뒤이어 오는 다른 남자에게 매달린다.



# 27 매춘 집 방 안


창민과 정식, 여자 두엇과 화투를 치고 있다.

문이 열리며 여자2 들여다본다.


여자2 : 손님 왔어


창민 : 제기 딴 기집애 많잖어…


여자2 : 내 말이 그 말이야 기집두 많은데 남잘 찾어 니 손님 왔다구.


여자2 뒤로 정근이 비죽이 들여다보더니 뒤를 향해


정근 : 제 말이 맞죠? 여기 틀어박혀 있을 거라구 그랬잖아요.


그 뒤로 다가와 우뚝 서는 태수.

창민, 쥐었던 화투를 놓치며 일어선다.


창민 : 태수 형


정식도 놀라 멍해진다.


정식 : 형님



# 28 새벽 인간시장


일거리를 기다리는 허름한 사내들….

브로커가 부른다.


브로커 : 중국집 배달 둘


그 앞에서 얼굴을 내미는 사내들 중에 젊은애 둘을 찍어내어 간다.

실망하여 흩어지는 사내들 중에 영섭이 있다.

이만치에 궁상맞게 쭈그려 앉아 옥수수를 갉아먹는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든다. 믿어지지 않는 얼굴.

저만치 서서 자신을 보고 있는 태수와 그 뒤의 정근, 정식, 창민.

그 외에도 서넛이 더 웃으며 서 있다.

영섭의 손에서 옥수수가 굴러 떨어진다.

영섭 엉거주춤 일어나 태수에게 다가간다.

금새 비죽비죽 울음이 터지려고 한다.

태수 영섭을 맞아 서로 끌어안는다.



# 31 우석의 군부대 앞


우석, 제대하여 나오고 있다.

예비군복(80년 초의)에 사제 가방을 든 모습

내무반의 동료들, 어깨를 치기도 하고 경례를 하기도 하며 배웅을 한다.

헤어져 걸어오다 돌아보면 그때까지도 두 손을 흔들어대는 동료들…

우석 한 손을 들어 보이고 돌아서는데 입가에 미소가 잦아든다.

문득 하늘을 본다.

쾌청하다.



# 30 하숙집 앞


간단한 이사짐을 실은 작은 용달차가 멈춘다.

조수석에서 내린 우석, 뒤 쪽으로 온다.

이사짐 사이에서 잠들어있는 영석.

우석, 웃으며 영석을 쳐서 깨운다.

영석, 어리둥절하여 깨어난다.



# 31 하숙집 마당


이불보따리를 지고 열려있는 대문으로 들어서는 우석.


우석 : 계십니까?


부엌 쪽에서 앞치마에 손을 씻으며 나오는 선영.

우석, 젊은 여자에 당황하여


우석 : 저 주인 아주머니 계신가요? 새로 하숙하기로 한 사람인데…


선영 말없이 앞장서 방을 안 내한다.

뒤따라 짐을 지고 들어오던 영석.


영석 : 왜?


우석, 영문 모르겠단 표시를 하며 선영을 따른다.

선영 방문을 열어 주고


선영 : 이 방이에요


우석 : 예 (이불보따리를 내려놓는데)


선영 : 아침식사는 일곱 시 반, 점심은 각자 드시구. 저녁식사는 일곱 시 반이에요.

빨래는 일주일에 두 번, 수요일하구 토요일에 내놓으세요.

이 집은 주로 고시공부하는 분들이 계시니까 친구 방문은 삼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세면장은 저 쪽이구 화장실은 저기 보이시죠?


우석 : 예? 아 예


선영 : 그럼…


고개 숙여 보이더니 부엌 쪽으로 가버린다.

우석, 영석, 멍해서 보고 있다.



# 32 밤 하숙집 마당


세수를 마친 우석, 마당 한가운데 서서 허리 운동을 한다.

문득 안 방 쪽에서 들리는 늙은 남자의 기침소리.

부엌에서 나온 선영, 쟁반에 물주전자를 받쳐 들고 총총이 방으로 간다.

우석, 호기심에 몇 걸음 옮겨서 열려진 방문 안을 기웃이 들여다본다.

선영은 병든 아버지의 상체를 받쳐 앉히고 약 먹는 걸 돕고 있다.

우석, 문득 자신의 아버지가 떠오르는 기분.

말없이 그 모습을 보고 섰다.



# 33 방안


영석, 이불 속에 엎드려 주간지를 뒤적이고 있다가 우석이 들어서자


영석 : 옆방 학생이 그러는데 아까 그 아가씨가 이집 주인아줌마래


아직 방안은 정리가 덜 된 상태. 우석 책상 위에 책꽂이를 올린다.


영석 : (계속) 아버지하구 둘만 산다대.

즈 아버지 병간호하고 하숙생 밥해 멕이고 젊은 여자가 참 용치.


우석 : 그래서


영석 : 얼굴도 이쁘고


우석 : 그래서


영석 : 그래서… 그렇다는 거지 뭐. 에이 (누워 버린다) 일찍 깨워. 첫차 타구 내려갈 거니까


우석, 웃고 짐을 챙기다가 문득 한 상자에 시선이 간다.

아버지가 우석의 책을 넣어두었던 그 상자이다.

끌어당겨 열어본다.

차곡차곡 넣어져있는 법률책들…

두어 권 꺼내 본다.

따뜻한 기억이 아프게 저며온다.



# 36 절


장례식이 거행 중이다.

낭랑한 스님의 독경 소리.

검은 리본을 두른 사진 속에 노주명의 얼굴.

슬픔에 넋을 잃고 있는 부인의 모습.

상주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주명의 아들 노윤식.

안경을 쓰고 수재형의 모습.

뒤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수십명의 사내들이 침통한 얼굴로 둘러서 있다.

맨 앞줄에 있는 정인영의 모습.

서있는 사내들의 뒤에서부터 작은 동요가 인다.

정인영 돌아본다.

거기 태수가 십여 명의 검은 양복을 입은 수하들과 함께 걸어오다가 길이 막힌다.

정인영, 슬쩍 손짓을 한다.

인영의 무리들 갈라서며 길을 내준다.

그 사이로 들어서는 태수와 그 무리들…

어느 만큼 다가서자 나머지는 우뚝 서 뒤를 지키고

태수, 혼자 나선다.

향을 피우고 절을 하고 윤식과도 절을 나눈다.

고개를 들며 태수, 윤식을 새삼 살펴본다.



# 35 절 마당


노주명의 물건들을 태우고 있다.

그 앞에 주저앉아 울며 흰 한복을 태우는 부인.

그 주위를 돌며 경을 읽는 스님.

태수 우뚝 서서 어른거리는 불길을 받고 있는데

윤식 다가선다.


윤식 : 고맙습니다.


태수 : (돌아본다)


슬픔 속에서도 침착하려 애쓰는 앳된 얼굴.


윤식 : 아버지 얘기 해주신 거 어머니두 저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구 있어요.

저어 …아버지 그 안 에서 정말 편하셨던 거지요?


태수 : ….그럼. 모두에게 존경받으셨으니까


윤식 : 걱정했었어요. 나쁜 얘기들을 많이 들어서


태수 : 군인들두 노선생님은 존경했어. 함부로 대하질 못했지.


윤식 : 그러셨을 거예요 (안도하는 미소) 아버진…비록 야당 사람들을 많이 도와서

그런 데까지 끌려가셨지만 누구에게나 존경받으셨어요.

오래 사셔서 좋은 세상을 보셨어야 했는데….(목이 멘다)


태수, 윤식의 어깨를 잡아주다 문득 그 뒤로 시선이 간다.

가까운 곳에 정인영이 서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다가 태수와 시선이 마주친다.

옷가지를 태우는 마지막 불길…(불타는 옷을 하늘로 날리고 있다)



# 36 산사 밖


태수와 그 무리들, 절문을 나서다가 선다.

그 앞에 인영의 무리들, 길을 막아 서 있다.

창민 등 태수를 보호하듯 앞으로 나선다.


인영 : 얘기 좀 할까요?


태수, 창민을 젖히고 앞으로 나선다.


인영 : 이종도하구 갈라섰다구 들었습니다. 그놈한테 쫓겨난 패거리들을 모으셨다구요.


창민 불끈해서 나서려는 것을 태수, 막는다.


인영 : 하나 묻겠습니다. 종도 그 놈을 제거할 생각입니까?


태수 : (보다가 후 웃는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인영 : (망설이다가) 나 정인영이라고 합니다.


보는 태수의 눈길이 가늘어진다.


인영 : 인재 형하구 함께 있었다고 했지요?


태수 : (끄덕인다) 혹시…


인영 : 제 친형입니다.


태수, 놀라움과 아픔에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본다.


인영 : 인재 형 발목을 끊은 게 종도 그 놈이라구 들었습니다.

노선생님과 인재 형 들어간 뒤로 우리 구역을 거의 먹어치운 것두 그놈이구요.

우리 애들 대부분 병신이 됐거나 감방에 갔거나 그놈 밑에 들어갔습니다.

여기 모인 우리가 나머지 전붑니다.……(결심하여) 우릴 받아주겠습니까?


태수 묵묵히 보다가 앞으로 나서 한손을 내민다.

인영 두 손으로 태수의 손을 감싸 쥐더니 고개를 숙인다.


인영 : 형님


인영의 뒤에 섰던 무리들도 일제히 고개를 숙인다.



# 37 장도식의 사무실


초조한 기분으로 기다리고 있는 종도.

이윽고 문이 열리며 결재서류를 들고 들어서는 장도식.

회의에라도 참석하고 나온 분위기.


장도식 : 어이구 이 상무 너무 기다리 게 했나본데 어쩐다.


종도 : 중요한 회의였던 모양이지요.


장도식 : 거 뭐 맨날 그런 얘기지 앉읍시다.


마주 앉아


종도 : 박태수 얘기 들으셨습니까?


장도식 : 박태수 박태수…(생각이 언뜻 안 난다는듯)


종도 : 잊으셨습니까? 그 왜 삼청교육에 보냈던 친구…


장도식 : 아아


종도 : 그 친구가 요즘 애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장도식 : (흥미 없다는듯) 그런데


종도 : 그냥 놔둡니까?


장도식 : (짜증스러움을 감추지 않고) 이 상무 아직도 뒷골목 친구들하고 어울려 다녀요?


종도 : (아무래도 이 화제는 돌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서류가방을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장도식 : (그제서야 관심을 보이며 상체를 기울이는)


종도 : 알아내는데 아주 애 많이 먹었습니다. 윤 회장님 일하는 게 원래…


장도식 : 점조직 스타일이지.

(웃는) 윤 회장 사업 규모를 전체적으루 다 아는 사람은 민 변호사 정도일 거야


종도 : (망설이며 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꺼낸다) 이 명단 어떻게 하실 건지 먼저 알았으면 좋겠는데요


장도식 : 뭐 어떻게 하는 건 없어요. 그냥 정보차원이지.


종도 : 그래도 이 건 윤 회장이 비밀리에 빠찡고 지분을 사놓은 가명 내역입니다.

비밀리에 샀다는 건 아무래도 그만한 이유가 있으실 테고…


장도식 : 이상무 어떤 때 보면 아주 순진해 보이는데 그 거 나한텐 별로 효과 없어요.

우리끼린 그러지 않아도 돼. (종도의 손에서 명단 서류를 받아든다)


종도 영 께름직한데…


장도식 : (막 생각났다는 듯) 아 이달 말에 새마을 축구대회가 열려.

아주 대규모라구 하든데 순수 민간단체 사람이 축사를 해주길 원하는 모양이야.

이 상무 원하면 추천해주고 싶은데


종도 : (얼른 ) 저 같은 것이 아 영광이지요.


장도식 빙긋이 웃으며 명단을 넘기기 시작한다.



# 38 고시 1차 수험장


우석 시험치고 있다.



# 39 하숙방


계절 변화

우석 공부하고 있다.

노크소리

우석, 책을 보며 문가로 가서 문을 연다.

선영이 밥상을 들여놓는다.

우석 밥상을 받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만 선영은

언제나 그렇듯이 시선도 마주치지 않은 채 고개만 숙여 보이고 간다.



# 40 산책로


우석 새벽길을 달리고 있다.



# 41 놀이터


밤 가로등 밑을 서성이며 우석 책을 읽고 있다.



# 43 고시 2차 수험장


계절 변화

우석 시험을 치고 있다.



# 44 하숙방


우석 잠들어 있다.

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

우석, 간신히 잠에서 깨어난다.


우석 :


우석 상체를 일으키는데 벌컥 열리는 문. 선영이다.


선영 : 들었어요?

 (다급하니 고개를 들이밀다가 우석의 속옷 차림에 놀라 다시 나가더니 문을 쾅 닫아버린다)


우석도 놀라 얼른 윗옷을 주워입는다. 그러면서 혼자 웃음이 나온다.

문을 연다.

문 밖에 등을 돌리고 서있는 선영.


우석 : 죄송합니다. 늦잠을 잤어요. 근데…


선영 : 전화 해봤어요.


우석 : 전화요?


선영 : (그제야 돌아본다. 기쁜 흥분을 채 삭히지 못해서) 됐대요. 합격했대요.


우석 : 아 시험이요?


선영 : 네에


우석 : (별일 아니라는 듯) 아아


선영 : (어이없어 본다) 알았어요?


우석 : 합격된 거요? 아니 몰랐어요.


선영 : 안 …기쁘세요?


우석 : (그제서야 선영의 어이없음이 전해진다. 멎적어서) 붙을 줄 알았어요.


선영 말을 잃고 본다.

우석, 미안 해져서


우석 : 기뻐요. 아주 기분 좋은데요


선영 보다가 무안해지며 돌아가려는데…


우석 : 아 저기


선영 : (자신의 흥분이 창피해서 무뚝뚝해져 있다)


우석 : 전화 좀 해두 될까요? 고향에… 시외전환데…


선영 아무 말 없이 돌아선다.



# 45 안 방 앞 마루


안 방 안 에서 선영 무뚝뚝하게 전화기를 내놓는다.

우석 미안해서 수화기를 들려는데 울리는 전화벨

우석, 선영에게 먼저 받으라고.

선영 화난 듯 수화기를 든다.


선영 : 여보세요. 네 그런데요 (그러더니 불쑥 우석에게 수화기를 내민다.)


우석 수화기를 받아들자 선영 안 방문을 쾅 닫아버린다.

우석, 미소를 참으며


우석 : 네 강우석입니다. ….태수? 어디야?



# 46 호텔 로비


들어서는 윤 회장과 민 변호사 혜린과 재희.

혜린은 고급스러운 정장을 하고 있다.



# 47 호텔 내 양식당 룸


강동환과 장도식, 윤 회장과 민 변호사, 혜린을 맞아 인사를 나누고 있다.

악수를 나누는 강동환과 윤 회장.


강동환 : 건강하시지요?


윤 회장 : 덕분에요 (혜린을 내세우며) 제 딸입니다.


강동환 : 아아 그래요 (손을 내민다)


린 굳은 표정으로 슬쩍 잡았다가 놓는다.


강동환 : (모두 자리에 앉게 하며) 윤 회장님 거짓말하셨구만요.

아버님이 뭐랬는지 알아요? 따님이 머리는 좋은데 아주 못나서 걱정이라고 그랬어요.


윤 회장 : 제가 그랬습니까?


웃는 분위기.

혜린, 억지로 미소지어보이고 다시 무표정하게 된다.

그런 혜린을 슬쩍이 보고 있는 장도식.



# 48 호텔 내 중국 식당 앞


우석, 간판을 두리번거리며 온다.

문 앞에 서있던 양복 차림의 창민과 정근, 다가서며


창민 : 강우석씹니까?



# 49 식당 내 별실


들어서던 우석, 우뚝 선다.

테이블 저 끝에 앉아있던 태수, 어색하게 웃으며 일어선다.

우석 뒤를 돌아본다.

우석을 안내해 온 창민과 정근 태수를 향해 고개 숙여보이더니 밖에서 조용히 문을 닫는다.

우석 우뚝 선 채 태수를 본다.

태수 테이블을 돌아 걸어와 우석 앞에 선다.


태수 : (멋적은 듯 사이를 두다가)오랜만이지


우석 : ……그래


태수 : 생각나냐? 그 때 그랬잖아. 너 합격하면 내가 제일 먼저 축하해준다구.


우석 : (보다가 끄덕이고 마음을 푼다. 태수의 어깨를 툭 쳐준다) 고맙다.


태수 우석의 등을 밀어 자리로 가며


태수 : 아버님 소식 얼마 전에 들었어. 미안 하다. 장례에 갔어야 하는데


우석 : (테이블 건너에 앉는 태수를 말없이 보고 있다 친구에 대한 애정과 염려로.)


태수 : (픽 웃고 만다) 알겠어.


우석 :


태수 : 너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우석 : 그럼 대답해봐. 너 역시 그러냐?


태수 : 밥 먼저 시키자.


우석 : 무슨 돈으루 사는 밥이야?


태수 : (웃는다 그러다가) 마지막이라는 거 알구있어. 너하구 나 이렇게 같이 밥먹는 거.

 너하구 나 이렇게 … 같이 앉아서 얘기하구 웃구 이러는 거 마지막일 거라구 생각했어.


우석 : 그 말은 지금 니가 하고 있는 짓 앞으로도 계속 할 거란 얘기니?언제까지나 계속?.


태수 : 내 길은 이 거 밖에 없어 처음부터 그랬어.


우석, 태수의 말뜻을 안다.

큰 테이블을 사이에 놓고 둘 그렇게 마주본다.



# 50 양식당 룸


식사가 치워지고 디저트가 서브되고 있다.

장도식, 분부를 기다리는 웨이터에게 가볍게 손짓을 한다.

웨이터 물러가고 문이 닫히고.

혜린 디저트를 먹으며 슬쩍 보면 윤 회장 민 변호사에게 끄덕여 보인다.


강동환 : 여기 음식 괜찮아요. 주방장을 불란서에서 데려왔다고 하드군요


윤 회장 :


민 변호사 테이블 위에 가방을 올려놓는다.


강동환 : 사실 요리는 우리께 수준 있는 거예요. 우리 요리 보세요.

어느 하나 그냥 허투루 만드는 게 없어요.


장도식, 가방을 자기 옆으로 내려놓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혜린.


강동환 : 아마 세계적으루 손이 제일 많이 가는 게 우리 요릴 거예요


윤 회장 : 듣구 보니 그렇기두 하겠습니다.


강동환 : (혜린에게) 우리 후계자 따님께서는 요리에는 흥미가 없으시겠지요.


혜린 : (안 그래도 역겨운 기분이었다. 쳐다보고는 무시하여 먹는 걸 계속한다)


순간 분위기 굳는데


강동환 : 먹는 쪽이 더 흥미 있다는 대답이신가?


웃는 강동환. 웃는 윤 회장

혜린, 들었던 샤베트 수저를 잠시 멈추었다가 천천히 입에 넣는다.



# 51 양식당 입구 카운터


재희 전화를 걸고 있다.

다이얼을 돌리다가 문득 멈춘다.

입구에서 보이는 복도 저편, 중국식당의 문을

나서는 두사람.

우석과 태수이다.

둘은 무언가 얘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옛날에 있었던 우수운 일을 기억해 내고 있는

중이다

웃음에 숨이 막혀 더듬 거리면서 둘은 번갈아 어떤

일을 얘기하며 킬킬 거린다.

재희 뒤를 돌아본다.

룸에서 나와 카운터 쪽으로 오고있는 윤 회장과 그

일행

재희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다시 우석 쪽을 본다.



# 52 엘리베이터 앞


기다리며 서있는 우석과 태수

이제 웃음은 그치고 어색한 침묵이 자리하고 있다.

바닥을 내려다 보고 있는 태수

엘리베이터의 층수 표시를 올려보고 있는 우석.

그들 뒤로 저만치 양식당 입구.

혜린 등 걸어나온다.

윤 회장은 강동환과 악수를 나누고 있고 혜린은 핸드백 안의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우석과 태수 서로 먼저 들어가게 하려고 멈칫 거리다

웃으며 안으로 들어선다.

다가오는 혜린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13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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