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모래시계

<제11회> 모래시계

오늘의 쉼터 2018. 10. 25. 19:53

<제11회> 모래시계  


# 1 경찰서 내부 일각


태수 사진이 찍혀지고 있다.

카메라의 플래쉬가 터지며 태수의 굳은 얼굴이 찍혀진다. 옆얼굴도 찍혀진다.

그 뒤로는 줄줄이 사진 찍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혹은 어리벙벙해서, 혹은 울먹이며…



# 2 경찰서 내부


두어 명에게 잡힌 채로 태수, 억지로 지장을 찍는다.

태수의 지장이 찍혀진 노란색 서류종이.



# 3 경찰서 내부 일각


새로운 대여섯 명이 무더기로 잡혀져 들어온다.

여전히 아수라장으로 떠들썩한 경찰서내부.

요란하게 울려대는 타이프 소리들…

경찰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군인들의 모습…



# 4 심사실


육군 중령 한 명, 경찰서장, 검사 한 명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 두 명이 죽 앉아 있다.

그들 앞에 쌓여져있는 심사 서류들…

한 명의 사내가 주눅이 들어 그들 앞에 앉아 있다.

검사가 질문하고 있다.

이름은? 주소는?

늘어앉은 사내들…앞에 놓인 서류에 나름대로 기호를 적어 넣는다.

혹은 B라고 쓰고 혹은 C라고 기입한다.

그 위에


장도식 (소리) : 우선 심사를 받게 되지. A급을 받게 되면 군사재판이야 잘하면 십 년,

재수가 나쁘면 사형을 받을 수도 있고.



# 5 장도식의 사무실


장도식과 종도.


장도식 : B급은 4주 기본교육에 6개월 근로봉사, C급은 2주 기본교육, D급은 훈방.


종도 불안한 듯 움직이고 있다.


종도 : 그럼 태수는 어떻게 될까요?


장도식 : 그 정도 전력이면 A급이지 아마 조직폭력배니까.


종도 : 어이구 참 어이구우 그 참.


장도식, 종도를 냉정하게 살펴보고 있다.


장도식 : 아까운 친구야. 그런 친구가 십 년씩 썩는다면 손실이 크지.

아마 자네한테는 좋은 기회가 되겠지만.


종도 : (움찔)


장도식 : 이제 자네 위엔 아무도 없는 셈인가


종도 : (멍하니 장도식을 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훌쩍인다)

이해를 못하실 겁니다. 저하구 태수는 친구 이상입니다.

그놈은 저한테 형제나 같습니다.


장도식, 냉정한 얼굴에 지어낸 듯 미소를 짓는다.


장도식 : 그래 그랬다고 했지.


종도 : 제 목숨을 구해준 것두 태수고, 멕여 살린 것두 그놈입니다.

저 그거 못 잊습니다.


장도식 : 박태수는 운이 좋구만. 자네같이 좋은 친구가 있어서.

(문가로 간다.) (문을 열어준다) 방법을 찾아보자구.


종도, 얼른 일어나 훌쩍여 눈물을 지우면서 문으로 간다.


종도 : 부탁드리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보이고 나가려는데


장도식 : 어떻게 해야 자네가 만족할 수 있을까.


종도 멈칫하여 본다.

장도식은 미소를 짓고 있다.



# 6 심사실


태수, 심사관들 앞 의자에 앉아 있다.


검사 : 이름 박태수 맞나?


태수 : 예.


그 때 서장이 검사를 툭툭 치더니 낮게 뭐라고 말한다.

그 옆 사람도 그들의 말에 끼어든다.

태수가 보는 시선 앞에서 그들은 뭐라 상의를 하고 있다.

잠시 후


검사 : 됐어. 다음


태수 일어난다.

뒤에 있던 경찰관 태수를 끌고나간다.

나가며 태수 그들을 돌아본다.

그들 뭐라고 기입하고 있다.

육군 중령, 자기 앞의 심사 서류 점수난에 B라고 쓴다.



# 7 트럭 내부


트럭 달리고 있다.

한밤중…

덮개를 통하여 곁을 스치는 차량들의 불빛이 새어들어온다.

불안 과 공포에 절은 사람들의 얼굴… 그 중에 태수가 있다.

누구나 허이구 한숨 소리가 새어나오자 탑승한 무장군인이 버럭 소리 지른다.


군인 : 누구야?


조용해진다.



# 8 밤 군부대 입구


들어서는 트럭들…

보초가 악을 쓰듯 경례한다.


보초 : 멸공!



# 9 연병장


트럭에서 내리는 사람들…

구타가 시작된다.

희미한 달빛아래 끌려나온 사람들 머리를 쳐박고 쪼그려 앉혀지고 있다.

호각 소리, 욕 소리, 개머리판으로 등짝을 후려치는 소리.

공포가 쌓여감과 함께 줄은 차례로 정돈되어지고 있다.

(시간 경과)

어둠 속, 정돈되어 줄서있는 수련생들…

그 앞의 단상에 선 지휘관.

그 얼굴은 어둠에 가려진 상태에서


지휘관 : 너희들은 인간쓰레기들이다.

우리 사회는 너희 같은 암적 존재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성한 우리 군은 너희 같은 쓰레기들마저도 재생시킬 의무와 능력을 갖고 있다.



# 10 막사 전경


줄 지어 서있는 대형천막들…

그 위로 연결되는 연설


소리 : 따라서 앞으로 우리가 실시할 순화교육에 열과 성을 다해 따라준다면

너희들은 새로운 인간으로 재생될 수 있을 것이다.



# 11 내무반


각각의 침상 앞에 정렬하여 서있는 수련생들…

신 하사, 그들 앞에서 거닐며


신 하사 : 이제부터 너희들은 목욕을 시작한다.

거죽에 때를 벗기는 게 아니라 마음 속, 정신 속에 있는 때를 박박 벗겨내는 것이다.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너!


하사, 사내 하나를 지목하더니


신 하사 : 일루 나와


그 사내 천천히 한발을 절며 앞으로 나선다.

옆 눈으로 그 쪽을 보던 태수, 움찔 놀란다.

그는 노주명의 행동대장이던 정인재이다.

정인재의 느린 동작이 하사의 분을 더욱 북받치게 하여 하사, 그대로 군화발로 정강이를 찬다.

정인재, 순간 욱, 솟구치며 신 하사의 멱살을 잡아버리는데 조교 두 명이 가세하여 떼어내더니

몽둥이질을 시작한다.

보고 있는 태수의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바로 태수의 앞에 등을 보이며 돌아선 조교 한 명, 몽둥이를 든 손을 높이 쳐든다.

순간, 태수, 그 팔목을 잡는다.

놀라 돌아보는 조교를 밀쳐버리고 정인재를 패던 다른 조교를 잡아챈다.

발길질을 해오는 신 하사의 발목까지 잡아버린다.

순간 떨어져나갔던 조교, 호루라기를 분다.

태수, 잡았던 둘을 밀쳐버리고 호루라기를 부는 조교에게 덤빈다.

정인재까지 합세하여 그들, 엉겨 붙는데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군인들… 총을 겨누고 몰려든다.

누군가 태수의 머리통을 개머리판으로 갈긴다.



# 12 영창 내부


태수, 머리를 감싸며 의식을 되찾아 일어난다.

어두운 영창에 달빛…

태수, 옆에 쓰러져있는 인재를 발견한다.

태수, 정인재의 상체를 받쳐 든다.


태수 : 이봐요.


정인재, 가늘게 눈을 뜬다.


태수 : 저 박태숩니다. 기억하시겠습니까?


정인재, 태수를 알아보는 눈치다.

태수의 팔에서 벗어나 혼자 힘으로 앉더니 퉤 피가 섞인 침을 뱉는다.

그러더니 빙그레 웃는다.


정인재 : 이빨이 두어 개 나갔구만.


그러나 태수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순간 밤의 적막을 깨며 들리는 총소리. 태수, 인재 엉겁결에 엎드린다.

사방에서 들리는 듯한 요란한 총소리가 (시위용으로) 잠시 계속되더니 한순간에 조용해진다.

태수, 머리를 감쌌던 손을 풀어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본다.

순간, 문이 열려지며 불이 확 켜진다.

태수 눈을 감싸며 간신이 앞을 본다.

열려진 문으로 들어서고 있는 군화발들… 하나 둘 셋 넷… 계속…



# 13 교육대 연병장


벌거벗은 수련생들 군복을 찾아 입느라고 아우성이다.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어쨌든 자신의 군복을 찾아 입어야하는 것이다.

그 뒤에서 조교들 몽둥이로 사람들을 몰아대고 있다.



# 14 연병장 일각.


삭발이 진행되어지고 있다.

줄을 지어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수련생들… 거기 얻어맞은 태수와 인재가 끌려오고 있다.

태수는 아무 것도 보지 않고 있는 눈길이다.

태수를 끌고 온 조교들, 태수를 금방 빈 의자에 앉힌다.

굴러떨어지려는 것을 붙잡아 똑바로 앉힌다.

옆에서 머리를 잘리는 이십대의 청년 용수는 울고 있다.

태수의 머리가 가차 없이 잘려져 나가기 시작한다.

태수, 허공을 그저 멍하니 보고 있다.



# 15 우석의 군부대


면회실 밖

우석, 뛰어 온다.

헌병과 경례를 나누고 면회실로 들어간다.



# 16 면회실 내부


들어서는 우석.

몇 개의 테이블에서 면회하는 모습들…

닭을 펼쳐놓고 아들에게 먹이고 있는 모친도 보이고 애인도 보이고…

그리고 그 중의 한 테이블에 앉아있던 혜린을 발견한다.

오래 기다리고 있었던 듯 무심히 고개를 들던 혜린과 시선이 마주친다.

우석, 반사적으로 돌아선다.

그러나 가지는 않고 있다가 다시 돌아선다.

혜린, 말없이 우석을 바라보고만 있다.

우석, 혜린에게 다가선다.

혜린, 주춤 거리다가…


혜린 : 나 먹을 거 아무 것두 준비 못해왔어 여기 와서야 생각났어.

(억지로 웃어 보이려한다)


우석 : 나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니?


혜린 : 느네 고향집에 찾아갔었어. 난…나는

(문득 울음이 솟구치는 것을 손으로 입을 막아 간신이 누르고)

달리 찾아갈 데가 없었어. 여기 너 말구는 아무도…



# 17 야외 일각


혜린 : 경찰서두 찾아가구 태수 씨 친구들두 만나구 알아볼 데는 다 알아봤어.

B급으루 분류되어 있다는 것만 겨우 알아냈어.


우석 : B급이라니?


혜린 : 순화교육이라구 들어봤니?


우석 : (끄덕인다) 알아. 우리 부대에서두 거기 교육에 차출돼 간 사람들 있어.


혜린 : 어떤 덴지 알아? 어떤 데래? 거기서 뭘 하는 거야? 나 걱정돼서 죽을 거 같애.


우석, 물끄러미 혜린을 본다.

시선을 돌리고도 잠시 후


우석 : 그러니까 태수가 끌려간 게 니 아버지 때문이란 거니?


혜린 : 아마 그럴 거야. 그렇게 생각해.


우석 : 너하구 태수가 만나는 게 못마땅해서 그래서 느이 아버지가 그렇게 하셨다는 거야?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혜린 : …… 이해할 수 없다는 거 알아. 근데 그럴 수 있는 분이야, 우리 아버진…


우석 : (어처구니가 없다)


혜린 : 나 때문이야. 나 아버지 앞에서 그랬어. 태수 씨하구 결혼하겠다구.


우석 : (돌아본다. 믿을 수가 없다)


혜린 : 그렇게 됐어. 그럴 수밖에 없었어. 약혼했다구, 결혼하겠다구.


우석 : … 약혼했니?


혜린 : (머뭇거리다가 끄덕인다. 저도 모르게 손가락에 끼어진 태수의 반지를 만진다)


우석의 시선도 그 반지에 머문다.

우석, 저도 모르게 혜린의 손을 잡아 반지를 본다.


혜린 : 이 반지…


우석 : 알아. (…끄덕인다) (손을 놓아주고)


우석, 격동되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 저만치 걸어간다.

우뚝 선다.

혜린, 머뭇거리며 다가와 선다.


혜린 : 날 다시 보지 않겠다구 결심한 거 알아. 여기 오면서두 많이 망설였어.

그치만 넌 태수 친구였잖아. 그리구 …내 친구였구. 달리 도와달라구 할 데가 없었어.


우석, 말없이 먼 데를 보고 서 있다.

잠시 후 천천히 혜린을 향해 돌아선다.


우석 : 교육장이 여러 군데라구 들었어. 그 중 어디루 끌려갔는지 알아낼 수 있겠니?


혜린 : 응.


우석 : 휴가를 신청해볼 게.


혜린 : (끄덕인다)


우석 : 내가 뭘 할 수 있을진 몰라.


혜린 : (끄덕인다)


우석, 잠시 더 혜린을 보다가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돌아서 걸어간다.


혜린 : (그 뒤에 대고) 고마워


우석 멈칫 선다.


혜린 : 도와줄 거라구 생각했어.


우석, 등을 보인 채 그냥 서 있다.



# 18 교육대 전경


연병장 한켠에 10여개의 수련생 천막이 열을 지어 늘어서 있다.

그 주위로는 철조망이 2중 3중으로 둘러쳐져있고,

철조망 밖으로는 무장 경계병들이 군데군데 경계를 서고 있다.

연병장을 둘러 망루와 초소도 보인다.

모든 총구는 안쪽을 향해 있다.



# 19 유격장 가는 길


태수의 내무반, 구보로 열을 지어 달려가고 있다.

그 중에 태수.



# 20 유격 훈련장


한 쪽에서는 일단의 수련생들이 기합을 받고 있다.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한 쪽에서는 계급장이나 군번도 없이 빨간 모자를 쓴 유격조교들의 지휘 아래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올빼미 올빼미를 외치며 훈련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수련생들…

높은 나무틀 위를 뛰다가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내리는 사람.

로프를 붙잡고 수직의 장벽을 오르다가 떨어져 내리는 사람…

낙오자들은 옆에 추려져 기합을 받는다.

김 노인 안간힘을 쓰며 밧줄에 매달려있지만 더 오르지 못하고 있다.

그 뒤의 태수, 김 노인을 비켜 오르려다 흘낏 보면 노인은 매달린 채 울고 있다.

태수, 짜증이 솟구치며 노인을 잡아채어 도와 오른다.

밑에서 유격조교 그들을 보고 있다.

김 노인 발이 미끄러지며 태수에게 매달려버린다.

태수, 그 힘을 이기지 못해 함께 떨어져버린다.

조교 어김없이 찍어낸다.


조교 : 낙오자 이쪽으로 움직여라 빨리빨리


태수, 일어선다.

옆에 떨어졌던 김 노인 태수를 붙잡고 일어서려한다.

태수, 그 손을 거칠 게 뿌리쳐 버린다.

잠시나마 인간성을 가졌던 자신에게 화가 나고 있다.


(시간 경과)


배식이 진행되고 있다.

그 앞에 열을 지어 선 수련생들….

조금이라도 앞에서 빨리 밥을 받으려고 안 보이는 몸싸움들을 하고 있다.

태수, 밥을 먹고 있는 옆에 정인재, 자신의 식판을 들고 와 앉는다.

태수, 아무 소리도 없이 밥만 먹고 있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 김 노인이 혼자 앉아 열심히 밥을 먹고 있다.

누가 뺏어먹기라도 할 듯 주위의 눈치를 보아가며.

태수, 식판에 붙은 밥알 하나까지 깨끗이 먹는다.

그러다 보면 정인재, 식판을 양손에 든 채 경악해서 한곳을 보고 있다.

다음 순간 정의 손에서 식판이 땅에 떨어진다.

정인재, 순간 후다닥 달려 나간다.

저만치에 있던 경계병, 뭐야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다.

태수, 불안 해져서 정을 따라 뛴다.

그러나 아랑곳없이 절뚝이며 달려간 정인재.

물 양동이를 메고 가던 몇 명의 수련생 중의 하나가 이쪽을 돌아보다가 걸음을 멈춘다.

정인재, 그를 붙잡고


정인재 : 형님(말을 잇지 못한다)


초라한 몰골의 그는 노주명이다.

달려온 경계병, 총대로 찌르며


경계병 : 이 자식이 미쳤나 니 자리로 돌아가


정인재 : (맞는 것도 상관없이 노주명을 붙잡고) 접니다. 인잽니다. 형님 왜 여기 계세요


노주명, 목이 메어오는 것을 참는다.

따라온 태수를 본다.

경계병 호루라기를 분다.


정인재 : (경계병에는 전혀 상관 않는다. 그저 반가움으로)

박태숩니다. 기억하시지요, 우리 구역에 들어왔던 놈이요. 태수야 노주명 형님이시다.


태수, 절을 한다.


태수 : 박태숩니다.


노주명 : 그래 기억나, 한번 만나고 싶었어.


왕년의 화려했던 보스의 모습은 간곳없이 초라한 중늙은이가 되어 있다.

호루라기 소리에 서너 명의 경계병이 더 달려온다.

총대로 밀어 낸다.

태수와 함께 밀리며 정인재 노주명에게 소리쳐 묻는다.


정인재 : 몇소댑니까? 형님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옆에서 모시겠습니다. 형님.


 

# 21 교육장 입구


보초가 지키고 있다.

기다리고 있는 우석.

군복 차림이다.

문득 돌아보면 마 중사가 나서고 있다.

저만치서 손을 들어 보이며 반가운 기색.



# 22 부대 동네 술집


마 중사 한잔 쭈욱 들이키고


마 중사 : 박태수? 우리 소대원은 아닌데…


우석 : 알아볼 수는 있겠지요?


마 중사 : 자식 황금 같은 휴가에 웬일루 날 찾아왔나 했더니…


우석 : 술 사고 있잖습니까?


마 중사 : 뭐하는 친구야 학교 친군가?


우석 : ….주먹패였습니다.


마 중사 : 제법인데 그런 친구도 있고.


우석 :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습니다.


마 중사 : 주먹패였다면 곤란한데. 웃기는 얘기지만 여긴 건달보단 멀쩡한 사람들이 더 많아.

포장마차에서 술 한 잔 걸치고 노래 부르다 잡혀온 놈. 덥다고 공원에서 자다가 끌려온 놈

학교 선생에 야당 당원에.


우석 : 4주가 지나면 그런 사람들은 집으로 가겠지요.


마 중사 :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야. 요즘 한참 선별 작업중인데

그 선별 기준이란 게 또 웃기다구. (뭔가 말하기를 망설이는)


우석 : 4주 교육 끝나고 또 6개월 근로봉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선별입니까?


마 중사 : 뺄수 있으면 빼는 게 좋아. 여기 인간 지옥이야.

나야 잠깐 차출돼 와서 있는 거지만…. 알잖아 나 악질인 거.

그런 내가 보기에두 끔찍해, 광주보다 더해. 무슨 말인지 알아?

이런 식으로 6개월을 더 보낸다면 두발루 걸어 나갈 수 없을 거야

목숨이 붙어있는 게 다행일걸. 그리구 6개월루 끝난다는 보장두 없어.


우석 : (말이 막혀본다)


마 중사 : 젠장 우리 대통령 각하, 공수부대 엄청 사랑하시는 모양이라.

이따우 일들은 어째 죄 우리 차진지…(술을 들이켜고) 방법이 있어.


우석 : (보는)


마 중사 : 어차피 공공연한 비밀이니까 말해줘도 상관없겠지.

아니야 말해주는 게 더 잘하는 짓일 거라.

우리 부대장님 보시기에 말이지. (킬킬 웃는다)



# 23 부대 내 시냇가


시궁창처럼 더러운 물에 고개를 박고 엎드려있는 수련생들.

조교들이 지나가며 몽둥이로 등을 치면 그는 벌떡 일어나 교육대 수칙을 읊는다.

수련생수칙 하나, 나는 교육대원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둘, 나는 신문잡지 구독 및 라디오 티브이 시청을 금한다.

셋, 나는 공공시설을 애호하고 음주 및 흡연을 금한다.

넷, 나는 주면 주는 대로 먹겠다.

다섯, 나는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겠다.

여섯, 나는 개인행동을 일체 금한다. 이상입니다.

십여 명이 저마다 일어서서 규칙을 외치는 소리로 떠들어대고 있다.

다가온 하사.


하사 : 547번 박태수


물속에 머리를 박고 있던 태수 상체를 일으킨다.


태수 : 547번 수련생 박태수!


하사 : 나와



# 24 식당


비어있는 식당.

태수, 물에 젖고 여기저기 떨어진 남루한 차림에 얻어맞은 상처의 얼굴로 헐떡이며 들어선다.

이건 또 무슨 일인지 불안하여 두리번거리다가 우뚝 멈춘다.

창가에 서있던 우석, 돌아본다.

태수의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다가온다.


태수 : 우석아


우석 대답 대신 태수를 끌어안는다.

안겨진 태수, 그만 눈물이 나올듯하다.


(시간경과)


식당 한 쪽에 앉은 우석과 태수.

태수, 우석이 가져온 빵을 탐욕스럽게 먹고 있다.

우석, 그런 태수의 모습이 믿어지지 않는다.

우석, 우유를 내민다.

태수, 받아 마시다가 문득 무안 해진다.


태수 : 개돼지가 다 됐어. 두 주일만에 그렇게 되드라. (웃어 보이려고 한다)


우석 : (말을 할 수가 없다 그저 끄덕인다)


태수 : 날짜만 세구 있어. 넉 주만 채우면 된다니까.


우석 : 그래.


태수 : 모르지 그 담에 또 어디루 보내질지.


우석 : ….너 여기 있는 거 혜린이한테 들었다.


태수 : (정지되었다가) 그랬구나. 잘…있지?


우석 : 널 걱정하구 있어.


태수 : … 우리 얘기 들었니?


우석 : ……응


태수 : 그 게…우린…


우석 : (막듯이) 혜린인 자기 때문에 니가 이렇게 됐다구 생각하구 있어.

아버지가 개입됐다구, 그런 말을 하드라.


태수 : (생각해보다가 웃는다) 역시 그런가? 그럴 수도 있었겠군.

(그러나 이내 웃음기가 사라져 빵을 먹는다. 입맛이 달아난 뒤다)


우석 : 얼만큼 알고 있니? 니가 어떻게 될지.


태수 : 몰라. 아무 생각 없어 그냥 숨만 쉬고 있어. (웃는)


우석 : 이번 교육 끝내구 근로봉사 6개월 얘긴 들었니?


태수 : 응 협박의 대상이지. 난 각오하구 있어. ….아니 생각 안 해.

거기까지 생각하면 못 버텨. (웃어보려고 애쓴다)

여긴 그래. 아주 개 같어. 하루 버티기두 힘들어.

(말하다보니 이렇게 약한 소리를 하는 자신이 싫다.)


우석 : (그런 태수를 보면서 마음을 정한다) 그 전에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들은 얘기가 있어.


태수 : (저도 모르 게 주위를 둘러본다)


우석 : 분류심사를 하는데 돈을 받는다구 하드라.


태수 : (물끄러미 우석을 본다)


우석 : (시선을 피한다)


태수 : 너…그래서 돈을 낼 거니?


우석 : 그 방법밖엔 없어.


태수 : (웃더니 다시 본다) 니가? 강우석이가 뇌물을 쓰겠다구?

넌 죽었다 깨두 그런 짓 못해. 내가 알어.


우석 : (굳어 있다)


태수 : (웃음기 없어져 보다가 문득 한손을 들어 우석의 팔에 얹는다.)


우석 : (돌아보지 않는다)


태수 : 우석아


우석 : (시선을 피한 채로) ……해보자구. 될 거 같애.


태수 : ….미안 하다.


우석, 돌아본다.


잠시 후 우석, 억지로 미소 짓더니 태수의 어깨를 툭 친다.

넓은 식당 안 에는 두 사람밖에 없다.



# 25 윤 회장 집 전경



# 26 윤 회장 거실


윤 회장 서류를 보다가 안경 너머로 본다.


윤 회장 : 돈을 빌려 달라…


그 앞에 서있는 혜린.


혜린 :


윤 회장 : (흥미가 있다) 얼마나?


혜린 : 삼백만 원이요.


윤 회장 : (옆에 있는 민 변호사를 돌아본다) 삼백만 원이라는구만, 거금 삼백만 원.


혜린 : 뭐에 쓸 건지는 대답할 수 없어요. 하지만 꼭 갚겠어요. 약속해요.


윤 회장 : 어떻게?


혜린 : 네?


윤 회장 : 이제껏 돈을 꿔주면서 뭐에 쓸 건지는 물어본 적 없다.

하지만 어떻게 갚을지는 꼭 알아봤지. 그래서 넌 어떻게 언제까지 갚을 거냐.


혜린 : ……일자리를 주시면 일하겠어요.


윤 회장 : (미소가 떠오른다) 취직도 시켜달라…


혜린 : 아버지가 원하시던 거잖아요.


윤 회장 : (보다가 민 변호사에게) 차용증서를 작성하지.


민 변호사 : 차용증섭니까?


윤 회장 : 그래 변제방법 일시까지 정확하게 작성하라구.

민사재판에 쓰게 될지도 모르니까 자네 이름으로 빌려주는 걸로 하지.

(다시 보던 서류를 본다)


혜린 머뭇거리다가 돌아서 가려는데


윤 회장 : 고맙다는 인사도 안 하냐?


혜린 : (어쩔 수 없다. 이왕이면 웃기로 하자) 고맙습니다.


윤 서류를 보며 끄덕인다.

확실히 기분이 좋아져 있다.



# 27 교육장 근처 산


낮은포복으로 산길을 기어오르는 태수네 소대 수련생들….

작열하는 태양…

얇은 작업복 밑으로 부서지는 잔돌들…

독려하는 조교들의 소리가 계속되고.

조금이라도 자세가 높은 이들은 몽둥이세례를 받는다.

피땀으로 범벅이 되어 기어오르며 정인재와 태수, 남들 모르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정인재 : 돈을 받는단 말이지


태수 : 개인 면접 때 거래가 이루어지는 모양입니다.


정인재 : 돈이라…돈을 받는단 말이지.


태수 진행해가는 길에 김 노인이 버그적거리고 있다.

김 노인, 태수가 옆으로 지나쳐가자 그 옷자락을 부여잡는다.

태수 잠깐, 노인을 보며 갈등하는데 저만치 소리 지르며 오고 있는 하사를 본다.

태수, 독하게 노인을 뿌리치고 앞으로 간다.

김 노인 거의 포기상태에서 멈춘다.


하사 (소리) : 거기 누구야.


김 노인 바로 코 앞 흙더미 속에서 부러진 못을 발견한다.

하사가 달려오고 있다.

김 노인 못을 입으로 물어 감춘다.

달려온 하사 노인 옆에 붙어 서서


하사 : 넌 할 수 있다.

엉덩이 내리고 배를 붙여 양팔에 힘을 주고 하나아 두울, 구령에 맞춰! 하나아 두울, 넌 할 수 있다!


노인 울면서 기어간다.

저 앞을 가던 태수, 흘낏 돌아본다.

그러나 외면해버린다.



# 28 내무반 (밤)


모두 잠들어 있다.

김 노인 반듯이 누운 채 천정을 보고 있다.


(시간경과)


우루릉 뇌성이 울리고 번개가 천막을 물들인다.

잠들어있던 용수, 돌아눕다가 끄응 일어나 앉는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눈을 비비다가 언뜻 멈춘다.

눈을 비비던 손을 들어본다.

마침 번개가 번쩍이며 자신의 손을 물들이고 있는 피를 본다.

용수, 얼어서 옆을 본다.

김 노인이 반듯이 누운 채로 눈을 부릅뜨고 천정을 보고 있다.



# 29 막사 외부


비가 내리고 있다.

경계병들이 총을 들고 엄중히 지키는 가운데 김 노인의 시체가 들려져 나오고 있다.



# 30 막사 내부


태수, 자기 자리에 앉은 채 자책감으로 굳어 있다.

문득 돌아본 김 노인의 자리.

군인들이 피범벅이 된 담요를 수 거해가고 있다.

한구석에 용수가 웅크려 앉은 채 소리도 내지 못하고 오열하고 있다.

정인재도 비어가는 김 노인의 자리를 본다.

퍼뜩 뭔가 생각이 떠오른다.

문가를 돌아보면 거기 하사가 인상을 쓴 채 나가려 하고 있다.

정인재, 절뚝이며 달려가 하사 앞을 막는다.

경계병들, 재빨리 그를 막아선다.


정인재 : (하사에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사, 성내고 싶은 심정도 아니다. 그냥 나가려는데 정인재, 악착같이


정인재 : 조용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하사, 애걸하는 태도에 다시 돌아본다.

태수 그 쪽을 본다.

열려진 막사 문으로 하사를 따라 나가는 정의 모습이 보인다.

태수 굳는다.

정은 비가 오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다. 여전히 하사를 향해 뭔가 애원을 하며……



# 31 부대장 관사 앞


대문 밖에는 지프차가 게워져있고.

마당에서 아이 둘이 놀고 있다. 운전병이 함께 놀아주고 있다.



# 32 관사 거실


장식장에는 훈장이며 감사패 기념패 등이 진열되어 있다.

사모님이 차를 내놓고 들어간다.

정중하게 앉아있는 마 중사와 우석.

그 앞에 부대장은 편한 사복으로 앉아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다.

마 중사의 눈짓에 우석, 테이블 위에 케익 상자를 올려놓는다.

상자 위에는 봉투 하나가 끼워져 있다.

부대장, 상자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뭔가 농을 던진다.

마 중사, 감읍하듯 웃는다.

우석, 이 자리가 우울하다.



# 33 부대장 관사 대문 앞


나서는 우석과 마 중사.

마 중사, 큰 건 하나 했다는 듯 한숨을 쉬더니 우석의 어깨를 퍽 쳐준다.


마 중사 : 잘 될 거야 걱정 마.


우석 :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마 중사 : 나 사회 나가면 잘 봐주라고.


우석 : 물론입니다.


우석 경례하여 마 중사와 헤어진다.

우석, 잠시 마 중사 가는 것을 배웅하여 섰는데 그 얼굴에 가라앉는 우울.

돌아서면 저만치 기다리고 있는 혜린.

우석, 그 쪽으로 간다.

혜린, 기다려 뭔가 말을 걸려하지만 우석, 혜린 쪽은 보지도 않고 그대로 지나쳐간다.

혜린, 보고 섰는데 우석, 멀어져간다.



# 34 골프장


호쾌한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골프공.

뒤에서 구경하던 윤 회장, 박수를 쳐준다.


윤 회장 : 나이스 샷.


공을 친 이는 강동환.

박승철 회장, 고개를 저어대며 채를 들고 나선다.

그러나 채를 잡는 솜씨하며 공을 자꾸 지분 거리는 모습 등 영 볼품이 없는 초심자의 모습이다.


박 회장 : 자아 갑니다, 가요.


공을 퍽 치지만 공은 볼품없이 저만치 앞에 툭 떨어진다.


박 회장 : 허어.


윤 회장 박수를 쳐주며 나선다.


윤 회장 : 이 거 너무 양보를 하시는군요.


박 회장 : 양보는 무슨. 이 거 원 인도어에서 더 연습을 하래는걸 벅벅 우기구 나왔더니만

결국 망신을 당하는구만.


윤 회장이 공을 칠 준비를 하는데도 계속 떠들어대고 있다.

윤 회장, 슬쩍 강동환의 눈치를 본다.

강동환,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박 회장 : 이래봬도 내가 테니스는 제법 친단 말씀이에요.

 테니스야 움직이는 공을 치는 거고, 이 건 가만있는 공을 치는 거니, 뭐 어려울 게 있겠나.

 내가 아주 얕봤지요 얕봤어.


윤 회장이 친 공이 깨끗하게 날아간다. 강동환 박수를 쳐준다.


박 회장 : 히야 이거 급이 다르구만요. 급수가 달러.


저 뒤의 장도식, 빙긋이 웃고 있다.



# 35 골프장 내 라운지


강동환과 윤 회장 장도식 박 회장이 앉은 자리


박 회장 : (여전히 떠들고 있다) 나 아무 욕심이 없는 사람이에요.

내 일찍이 깨달은 게 있어요. 욕심을 내봤자 들어올 건 들어오고 나갈 건 나간다.

들어온댔자 지킬 능력도 없다. 그러니 맘이나 편하게 살다죽자.


강동환은 여전히 불쾌한 듯 아무 말이 없다.


윤 회장 : 득도한 고승 같은 말씀이시군요.


박 회장 : 내 일찍이 군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절루 갔을 거요.

절에 가서 염불이나 외고 산나물이나 캐먹고 얼마나 좋아요.


강동환 : (시계를 보며) 사업얘기를 마저 끝내지요


박 회장 : 거 뭐 다 끝난 거 아니요, 그러니까 우리 이 회장님…


장도식 : 윤 회장님이십니다.


박 회장 : 아 이거 죄송합니다. 윤 회장님.


윤 회장 : (웃어) 별말씀을요.


박 회장 : 그러니까 우리 윤 회장님께서 사업을 하시는데 내 이름이 필요하다,

그런 얘기 아닙니까?


장도식 : 그렇습니다.


박 회장 : 그렇게 하세요. 내 아주 도장을 드릴 테니,

맘대루 쓰시라구요. 그런데 한 가지 조 건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 긴장한다.


박 회장 : 뭔고 하니 그 어떻게 해두 좋은데 날더러 뭐하라구 하지만 마시오.

 뭐 장부를 쓰라느니 결재를 하라느니 나 그런 거 못해요 안 해요.


긴장이 풀어진다.


윤 회장 : 물론입니다. 명심하지요.


박 회장 : 그럼 됐어요.

근데 그 뭐냐 이 근처에 유명한 갈비집이 있다던데 시장하지 않으십니까?

사업두 먹자구 하는 건데 먹구 하십시다. 어때요?


윤, 강 좀 어이가 없는 기분이고 장도식, 슬쩍 미소를 감춘다.



# 36 골프장 앞


차에 타는 윤 회장.



# 37 차 내부


달리는 차의 뒷좌석에 윤 회장과 민 변호사, 앞에는 기사와 장근섭.

민 변호사 서류를 뒤적여보며


민 변호사 : 10.26 이후에 예편한 걸루 되어있습니다.

그전에도 주로 전방부대로 나돌았고 정책 쪽에는 거의 참여를 안 한 걸루 알려져 있습니다.


윤 회장 : 예편한 이유는 뭐야?


민 변호사 : 나이 문제였을 겁니다.

현재 5공의 주축들보단 훨씬 위에 연배니까요

아무래도 거느리기가 불편했겠지요.

예편 이후엔 공사의 이사직을 주었드군요.


윤 회장 : 장도식이 추천한 이유는 뭔가?

이왕 이름 사장을 할 거면 좀 더 발이 넓은 이도 있었을 텐데.


민 변호사 : 장도식의 말로는 뒷 탈이 없는 자로 골랐다는 겁니다.

조용히 주는 대로 만족할 인물이라고 했습니다.


윤 회장 석연치 않은 얼굴로 생각에 잠긴다.



# 38 윤 회장 거실


들어서는 윤 회장들…

기다리던 종도 벌떡 일어난다.


윤 회장 : (아랑곳없이 민 변호사에게 계속)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생각을 해보자구.

종도, 윤 회장에게 절을 하고 뭔가 보고를 하려하지만 윤 회장은 그를 지나쳐 서재 쪽으로 간다.


윤 회장 : 어쨌든 이름 사장은 필요해. 내 이름을 앞에 내놓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 39 윤 회장 서재


들어서며 계속 얘기하는 윤 회장


윤 회장 : 그런데 그 인물이 꼭 박승철이어야 하는가 말이지…


민 변호사 : 저 쪽에서 내세운 인물입니다.

회장님께서 직접 헌금을 하는 대신에 사업 이익금을 내시겠다고 하신 이상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윤 회장 : 그래 그러나 난 전 체 이익금을 다 내겠다고 말한 적은 없지…


책상 뒤 의자에 앉는다.

어느새 여유로움을 되찾고 있다.


윤 회장 : 박승철이 민 변호사 보기엔 어때?


민 변호사 : 글쎄요 오늘 보기론 장도식이 설명한 대로인 거 같습니다만.


윤 회장 : 두꺼비의 껍데기를 쓴 능구렁이일수도 있지. ……밖에 있던 아이가…


민 변호사 : 이종도라고 합니다. 박태수 밑에 있었지요.

이번에 금성호텔 카지노를 접수하는데 앞장섰드랬습니다.


윤 회장 : 그럼 박태수 그 아이를 몰아넣은…


민 변호사 : 그렇습니다. 회장님께 인사드리겠다고 계속 기다려왔습니다.


윤 회장 : 날 만나기 위해 친구를 잡아넣었다…


민 변호사 : 어떻게 할까요?


윤 회장 : (책상 위의 모래시계를 만지작거리다가)

이번에 빠찡고 접수하는 일 한번 맡겨보지. 우선은 금성 카지노 영업부장 자리 주고.


민 변호사 : 알겠습니다. 들어오라고 할까요?


윤 회장 : 별로 보고 싶지는 않구먼 .


창가로 가서 창 밖을 본다.

민 변호사 기다린다.

윤 회장, 품에서 약병을 꺼낸다.

(뒤에 연결될 플라스틱의 심장병 약)

민 변호사 재빨리 물 컵에 물을 따른다.

윤 회장, 불쑥


윤 회장 : 그 아이라면 어땠을까?


민 변호사 : 예?


윤 회장 : 박태수란 아이, 이종도 같은 아이들에겐 없는 걸 갖고 있드구먼.


민 변호사 잠자코 물 컵을 내민다.


윤 회장 : (약을 먹고 다시 창 밖을 본다)

혜린이보다 내가 먼저 만났더라면 좋았을 거야… 잘못 만났어.


민 변호사 조용히 방을 나간다.

윤 회장 혼자 남는다.



# 40 밤 뒷 뜰


세워져 있는 가격대를 타앗 치고 지나가는 죽도

재희, 한밤중에 혼자 타격 연습을 하고 있다.

얼굴에 흐르는 땀.

안 에 쌓인 울분을 터뜨리듯 다시 달려가 일 도에 두 번 가격하고 지나간다.

다시 노려보고 달려 나가 친다.

순간 죽도가 와작 갈라진다.

갈라진 죽도를 만져보는 재희, 거친 숨소리.



# 41 정원


죽도를 들어 나오던 재희 문득 선다.

보는 곳, 저만치 어두운 정원에 하얀 그네. 그네에 앉은 혜린.

조금씩 그네를 흔들며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헤린은 손가락에 낀 반지를 빙빙 돌려보고 있다.

재희 말없이 이만치 서서 본다.

혜린 문득 하늘을 본다.

손바닥을 내밀어 받아본다.

비가 한두 방울씩 내리기 시작한다.



# 42 막사 내부 (밤)


태수, 팔꿈치에 난 상처를 손보고 있다.

천막을 두드리는가는 빗방울 소리….

문이 열리는 소리. 옆에서 후다닥 일어나 부동의 자세를 취하는 대원들.

태수도 기계적으로 일어선다.


신 하사 : 주목


태수 무심코 입구 쪽을 보다가 정지한다.

거기 신 하사의 뒤에 서있는 노주명. 비에 젖어 들어선다.

태수와 시선이 마주치더니 엷게 미소 짓는다.


신 하사 : 새로운 소대원이다. 앞으로 상호간에 잘 협력하기 바란다. 이상


반장 : 차렷


신 하사 : 됐어.


(경례 받지 않고 흘깃 정인재를 보더니 나간다)


신 하사, 나가고 정인재, 후다닥 튀어나가 노의 백을 받아든다.


정인재 : 형님


노주명 : 애썼어.


정인재, 얼른 빈 침상으로 안 내하고 재빨리 자리를 펴고 부산하다.

태수도 다가가 도우려는데 정인재, 거칠게 그 손을 잡는다.


정인재 : 자넨 앞으로 우리 일에 나서지마. 아는 척도 마라. 형님을 모시는 건 나야…


태수 : (어처구니없다. 뭐라 반박하려는데)


정인재 : 얼마 안 남았어. 자넨 기회가 있잖아. 조용히 있다가 살아나가.


태수 그제야 말뜻을 안다.


우뚝 서 보고 있는 앞에서 정은 극진히 노주명을 자리에 앉게 하고 신발을 벗겨준다.

목이 메어오는 듯 끄덕이고 있는 노주명.



# 43 막사 외부


점점 굵어지는 비가 천막 위로 내린다.



# 44 부대 내 도랑


줄기차 게 내리는 빗 속에서 수련생들 도랑을 파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서 저마다 할당 받은 구역이 있다.

비옷을 입은 경계병들의 모습…

정인재, 감시병의 눈치를 살피며 자기 구역은 놔두고 옆에서 파고 있는 노주명의 도랑을 파고 있다.

열심히 있는 힘을 다해.

그러다 멈칫한다.

바로 앞에 와 서는 군화발.

올려다보면 신 하사다.

신 하사는 말없이 정과 노주명을 번갈아본다.

노주명, 슬쩍 정인재를 그의 자리 쪽으로 밀어낸다.

신 하사 발걸음을 옮겨간다.

정인재 고집스럽게 다시 노주명의 땅을 판다.

저만치 가던 신 하사 그들을 돌아본다.

그들과 떨어진 곳에 자리한 태수, 일을 하며 보고 있다.



# 45 내무반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다.

용수 담요를 젖힌다.

담요 밑 침상에 표시되어있는 못으로 긁은 자국들 일곱 개씩 날짜 표시가 되어 있다.

일곱 개씩 석 줄이 채워져 있고 네 번 째 줄에 이미 그어져있는 네 개의 표시.

용수, 감추었던 못으로 다섯 번 째 날을 표시한다.



# 46 연병장


태수 소대 수련생들 열을 지어 서 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파랗게 질린 모습들…

그들 앞에는 비옷을 입은 조교들 늘어서 있다.

신 하사 천천히 수련생들 앞을 걸으며 불안해하는 그들을 훑어보다가 멈춘다.

부동자세로 선 수련생들 한층 긴장한다.


신 하사 : 지금부터 정신개조 교육을 실시하겠다. 너! 그리고 너! (노주명과 정인재를 찍어낸다)


노주명 : (한발 앞으로 나서며) 524번 수련생 노주명


정인재 : (나서며) 535번 수련생 정인재


태수, 불안해서 본다.


신 하사 : 느이들 사회에서 조직폭력배였다며?


노. 정 : 네 맞습니다.


신 하사 : 니가 얘 두목이었고, 넌 얘 졸개였고 맞나?


노. 정 : 네 맞습니다.


신 하사 : 왜 내가 느이 둘을 한 내무반에 넣어준 줄 아나? 535번


정인재 : 예 535번 수련생 정인재.


신 하사 : 입소 첫날 내가 한 말을 기억하나 난 느이들을 새사람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지난날 사회에서 시커멓게 물든 느이들 정신에 때를 벗겨주겠다고 했다.

535번 너에게 있는 졸개근성을 없애주마 잘 봐라! 524번!


노주명 : 예 524번 수련생 노주명.


신 하사 : 이 보 앞으로.


노주명 이 보 앞으로 나선다.


신 하사 : 넌 지난날에 깡패였다. 복창해라.


노주명 : 난 지난날에 깡패였습니다.


신 하사 : 깡패는 사람도 아니다.


노주명 : 깡패는 사람도 아닙니다.


신 하사 : 넌 개다


노주명 : 난 갭니다.


정인재 더 이상 못 참고 벌컥 나서며


정인재 : 형님


그러나 주위에 지키던 조교 두어 명 달려들며 정의 양팔을 끼어 잡는다.

정이 몸부림치자 무릎 뒤를 차서 무릎을 꿇게 한다.

태수, 미칠 듯한 심정으로 보고 있다.


신 하사 : 개답게 엎드린다. 실시.


노주명 천천히 무릎을 꿇어 엎드린다.


신 하사 : 오늘을 잊지 마라.

다시 사회에 복귀할 때 너희는 깡패가 아닌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너는 개다.


노주명 : 난 갭니다.


신 하사 : 기어.


노주명 천천히 네발로 긴다. 울고 있다.


신 하사 : 짖어.


정인재 : 형니임.


노주명 망설이고 있다.

보는 태수.


노주명 : …멍멍


순간, 태수, 튀어나가며 옆의 병사를 패고 곡괭이 자루를 뺏어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며

노주명 주위의 병사들을 공격한다.

합세하여 태수에게 달려드는 병사들…

팔을 잡고 있던 병사들이 달려 나가며 손을 놓자 무너져 내리는 정인재….

순간 고꾸라져 의식을 잃는 태수.

총을 든 병사들 재빨리 태수를 둘러싸고 밖을 향해 선다.

아직도 엎드려있는 노주명,



# 47 연병장


비는 개어 있다.

비온 뒤 질퍽한 운동장에 수련생들이 정렬해 있다.

그 중에는 정인재의 모습도 있고 노주명, 용수의 모습도 보인다.

연단 밑의 장교 한 명이 명단을 들고 호명하고 있다.


장교 : 박성규 오만득 이정만 ….


호명 받은 사람들은 잽싸게 달려나가 따로 정열한다.

긴 시간이 지난다.



# 48 내무반


남은 자들 관물을 더플백에 챙기고 있다.

내무반원의 반수도 채 남지 않아 썰렁한 분위기.

밖에서 출소자들이 선창에 따라 외치는 함성이 들린다.


소리 : 지난 잘못 회개하고 선진조국 역군되자

사회정화 완수하여 정의사회 건설하자

사회악을 척결하여 밝은 사회 이룩하자

새 지도자 영도 하에 새 시대를 창조하자


정인재, 노주명의 더플백을 챙겨주고 있다.

며칠 새 더욱 늙어버린 노주명, 노인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다.

정인재, 속에 들어있던 사복을 꺼내본다.

곰팡이 냄새가 날 듯한 그 옷은 신사복이다.

정인재, 다시 옷을 구겨 넣는다.

그 때 문이 열리는 소리. 돌아보면 거기 조교 두 명에게 끌려 들어오는 태수.

엉망으로 터져서 제대로 서지도 못한다.

조교가 놓자 풀썩 쓰러진다.

조교가 나가면 정인재 절뚝거리며 달려 나간다.

노주명은 겁먹은 듯 보고만 있다.

정인재, 태수의 상체를 받쳐 든다.



# 49 부대 밖


나서는 출소자들 맞이하는 가족들 엉기고 울고 반기고…

아수라장 속에서 혜린 나서는 자들을 이리저리 찾고 있다.

방송국에서 나온 카메라가 그들을 담고 있다.


(시간경과)

모두가 빠져나간 그곳.

몇 가족이 남아 넋이 나가있 거나 울고 있다.

그 중에 혜린 있다.

부대 문이 닫힌다. (가로대가 내려진다)

혜린 그저 남아 있다.


<11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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