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서유기

<470)>45장 새바람 - 8

오늘의 쉼터 2018. 5. 24. 23:07

(939) 45장 새바람 - 15




중국의 제2차 경고는 공식발표 형식이 아니었다.

남북한이 가장 우려했던 경제보복이었다.

우선 서동수의 동성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가 이뤄졌다.

국개위 투표 사흘 전이다.

중국TV는 세무조사 장면을 여과 없이 방영했는데 과연 중국다웠다.

수백 명의 세무조사원, 공안이 칭다오의 동성 본사를 장악, 수백 개의 자료 상자를 실어 나르는

 장면은 한국TV에도 방영됐다.

붉은색 완장을 찬 관리들이 동성 본사의 현관에서 무더기로 나온다.

모두 붉은색 상자를 들고 있다.

엄숙한 표정, 오후 6시 반, 이곳은 서울역 대합실, 대형TV 앞에 수백 명의 시민이 모여 있다.

TV를 보는 시민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장면이 바뀌자 시민들은 일제히 흩어졌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되는군.” 

이응호가 KTX 전주행을 타려고 계단을 내려가며 말했다. 옆에서 걷던 변기성이 묻는다. 

“뭐가?” 

둘은 70세 동갑으로 서울에서 열리는 총동창회에 참석하고 전주로 내려가는 길이다.

계단을 내려온 이응호가 발을 떼면서 말을 이었다.

“30년 전, 내가 중국에서 사업 시작할 때가 생각난단 말이다.”

“또 그 소리.” 

변기성이 혀를 차면서 객차 번호를 보느라고 두리번거렸다.

이응호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3년 전에 그만두고 귀향했다.

벌어놓은 재산이 있는 데다 통이 커서 기부를 자주 했기 때문에 동창들의 인망을 얻어

동창회 부회장이 되어 있다.

자리를 찾아 나란히 앉은 이응호가 말을 이었다. 

“내가 웨이하이에 공장을 차릴 때 공산당 간부들이 다 나왔다.

아주 칙사 대접을 했지. 공항으로 영접 나온 적도 수십 번이다.” 

이제는 변기성이 잠자코 듣는다. 

“공장이 조그마했어도 그래. 공장이 커지면서 대우도 더 좋아졌다.

한국인 투자자를 끌어모으려고 아예 1년에 한 번 ‘한국인의 날’을 정해 행사를 치러 주었지.”

“그래서 또 기고만장했구먼.”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변기성이 비아냥거렸다.

변기성은 입바른 소리를 잘하지만 사리를 분명히 따지는 터라 동창회 총무를 오래 맡고 있다.

어려서부터 이응호와는 절친이다.

그때 이응호가 말을 이었다. 

“그때 우리는 착각했어. 나부터가 그들의 호의와 친절에 익숙해져서 건방지게 굴었으니까.

그러다가…….” 

이응호가 말을 그쳤을 때 변기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까 세상이 변해 있더란 말이지?”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살고 있는 것이 다행이다. 이것이 누구 덕이냐?”

“또 그런다.” 

“이제는 온갖 규제를 겪으면서도 공생하는 한국 기업들을 칭찬해줘야 돼.”

“아까 동성 현관에서 쏟아져 나오는 붉은 박스를 보니까 가슴이 섬뜩했다.”

어느덧 KTX가 출발해서 한강철교를 건너가고 있다. 변기성이 한강을 내려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저것이 바로 현실이구나 하고.” 

“중국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을 거야. 핵을 가진 남북한이면 당장 동북아의 강자로 부상할 테니까.” 

어깨를 늘어뜨린 이응호가 말을 이었다. 

“어쨌든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이다.” 

“국개위 투표는 압도적이 될 거다.” 

변기성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동성 세무조사가 한국민의 감정을 건드려버렸으니까.

아까 보았지? TV 앞에서 침묵하던 시민들 말이야.” 

그때 이응호가 머리를 끄덕였다. 

“맞아. 모두 속에서 불덩어리가 솟아오르고 있었을 거다.”





(940) 45장 새바람 - 16




“어, 김선영 씨, 어서 와.” 

자리에서 일어선 서동수가 여자를 맞았다.

이곳은 한시티 북쪽 교외의 별장이다.

다가온 여자가 두 손을 배 앞에 포개고 공손히 절을 했다.

머리를 든 여자의 얼굴에 수줍은 웃음이 떠올랐다.

서동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TV보다 실물이 더 아름답군.” 

“감사합니다.” 

여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다, 알아.” 

서동수가 소파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오후 8시 반, 손님을 만나기에는 늦은 시간이다.

여자가 앉자 서동수가 숨을 들이켰다.

슬쩍 풍겨온 여자의 향내를 깊게 마시려는 것이다.

이 여자가 누구인가? 바로 TV에 나왔던 서동수의 51번째 여자,

지난번 박서현의 고발 프로가 방영된 후에 자진해서 51번째 여자라며 나타난 김선영이다.  

치열했던 남한의 연방대통령 후보 경선 때의 일이다.

별장 안은 조용하다.

이곳은 2층 거실이어서 부르지 않으면 아무도 올라오지 않는다.

서동수가 지그시 김선영을 보았다.

 쇼트커트한 머리… 뒤쪽의 목덜미가 희다.

갸름한 얼굴, 눈은 가는 편이지만 눈웃음을 치면 심장 박동이 빨라질 만큼 귀엽다.

도톰한 입술, 날씬한 몸매, 46세, 지금은 신의주 특구의 금성식당 사장이다.

이윽고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그때 말이야, 내가 정말 안 했어?” 

“네?” 

눈을 크게 뜬 김선영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 

“네, 안 하셨어요.” 

“정말이야? 나한테는 사실대로 말해도 돼.” 

이런 경우는 드물 테지만 서동수는 정색하고 있다.

그러자 김선영이 눈을 흘겼다. 이제 얼굴에서 교태가 흐른다. 

“정말 안 하셨어요.” 

“내가 그게 궁금해서 보자고 했어.” 

그래서 신의주에 있는 김선영에게 비행기 일등석 항공권을 보낸 것이다.

“내가 미쳤군, 돈만 주고 손도 대지 않다니.” 

혼잣소리처럼 말했던 서동수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김선영 씨 같은 매력이 넘치는 여자를 그냥 둔 것을 말하는 거야.”

“저도 기다렸거든요?” 

마침내 김선영이 붉어진 얼굴로 서동수의 시선을 받으며 말했다.

“그런데 연락도 없으셨어요.” 

“애들이 그때 중3, 중1이었다면서? 지금은 다 컸겠네.”

“둘 다 미국에서 대학 다녀요.” 

“남자는?” 

“없어요.” 

“정말이야?” 

“양에 안 차서 한두 번 만나고 끝냈어요.” 

“그렇다면 오늘 밤 여기서 자고 가도 국개위 투표에 지장 없겠군.”

그러자 김선영이 다시 눈웃음을 치며 물었다. 

“오늘은 진짜 하시는 건가요?” 

“왜 이번에는 했다고 방송 나갈래?” 

“아유, 장관님도, 제가 미쳤어요?” 

“이제 보니까 애교가 많구나.” 

“좋아서 그래요.” 

“그리 좋아해?” 

“그럼요.” 

“이거 오늘 밤 고생하겠는데?” 

“빨리 끝내셔도 돼요. 저도 맞출게요.” 

“어이구, 이런 색녀를 놔두었다니.” 

마침내 서동수가 손을 뻗어 김선영의 어깨를 당겨 안았다.

기다리고 있던 김선영이 서동수 품에 안기더니 얼굴을 든다.

입맞춤을 기다리는 듯 눈이 반쯤 감겨 있다.

서동수가 김선영의 입술을 빨았다.

그 순간 김선영의 입이 열리면서 말랑한 혀가 꿈틀거리며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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