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서유기

<469)>45장 새바람 - 7

오늘의 쉼터 2018. 5. 24. 22:58

(937) 45장 새바람 - 13




이곳은 논현동의 단층 벽돌집 안. 앞쪽 길 건너편이 시장인 데다 골목길이 좁아서 주차장도 없다.

그 벽돌집 방 안에 서동수가 사내 둘과 마주 보고 앉아 있다.

교자상에는 다섯 명이 둘러앉았는데 서동수 좌우에 국가정보원장 신기영과 안보특보 안종관이

배석했다.

오후 8시,

상 위에는 산해진미가 놓였지만 아직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이곳은 서울에 몇 개밖에 남지 않은 요정이다.

이윽고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핵 폐기를 요구하려면 북한에 해야 정상인데 남북한 양국을 겨냥한 강수(强手)를 두었어요.

우리가 벌써 통일이 된 것으로 아는가 봐.”

그러고는 싱글싱글 웃었지만 아무도 따라 웃지 않는다.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중국의 성명에 미·일·러가 즉각 동조를 한 걸 보니까 미리 알려준 것 같습니다.”

중국이 외교부 성명을 통해 공식 통보를 한 것은 어제 오전 10시다.

발표 이후로 한국은 대혼란이 일어났다.

주가가 폭락했고 라면과 생수 사재기가 일어났다.

쌀값도 하루 만에 50%가 폭등했다.

기가 막힌 일은 미국과 유럽, 동남아행 비행기 예약이 폭주하고 부동산 매매가 정지됐다고 한다.

중국이 곧 북한을 접수, 남한과 국교를 단절하면 한 달 만에 망한다는 시나리오가 SNS로 퍼져

나가고 있다.

그때 서동수가 술잔을 쥐자 안종관이 소주를 채웠다.

서동수가 앞에 앉은 두 사내를 보았다.

왼쪽 사내는 박경수, 김동일의 측근으로 지난번 당비서 겸 선전선동부장으로 임명됐다.

53세, 김일성대 출신, 서동수가 신의주 특구 장관이었을 때 관리부장, 행정부장을 역임한 터라

앞에 앉은 안종관과도 친분이 있다.

그 옆에 앉은 유한영은 55세, 양복 차림이지만 군인 분위기다.

육군 대장, 호위사령관이다.

둘은 김동일의 비밀 특사로 서동수를 만나려고 온 것이다. 

“자, 듭시다.” 

서동수가 말하자 박경수가 헛기침했다. 

“지도자 동지께서는 전쟁을 할망정 핵은 포기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박경수의 말이 이어졌다. 

“핵은 북남의 공동 재산으로 강대국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서동수가 머리를 돌려 신기영을 보았다.

신기영이 머리를 끄덕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호흡한 서동수가 다시 물었다. 

“중국이 곧 국교단절에 이어서 2차 선언을 할 거요. 북한에서는 어떻게 대응할 계획입니까?” 

그러자 박경수가 옆에 앉은 유한영을 보았다. 이제는 당신 차례라는 것 같다.

“저희 생각도 같습니다.” 

어깨를 편 유한영이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조·중 국경 봉쇄를 하고 무역 중단을 시키겠지요. 하지만…….”

유한영이 검은 얼굴을 펴고 소리 없이 웃었다. 

“그게 신의주 특구가 생기기 전이었다면 우리가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겠지요.”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채 유한영이 말을 이었다. 

“지금은 우리 북조선이 끄떡없단 말입니다. 오히려 동북 3성이 흔들릴 겁니다.”

다시 신기영이 머리를 끄덕였고 이제는 서동수와 안종관도 머리를 끄덕였다.

“어제 중국 측 발표를 듣고 지도자 동지를 모시고 회의를 했습니다만.”

유한영이 말을 그쳤을 때 박경수가 마무리했다.  

“중국이 악수(惡手)를 두었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북조선은 끄떡없습니다. 다만 남조선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박경수가 단호하게 말하고는 외면했다. 미안해서 그런 것 같다.






(938) 45장 새바람 - 14




민족당에는 이런 호재(好材)가 없다.

당 대표 고정규는 중국 측이 1차 선언을 한 지 5시간 후에 우려했던

사건이 터졌다면서 성명을 발표했다.

정권욕에 사로잡힌 서동수가 국제질서를 무너뜨려 마침내 국민을 전쟁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북한 핵에 대한 비난은커녕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민족당이다.

그 민족당이 핵을 폐기하라는 중국 측을 거들고 나선 것이다.

적의 적은 우군이라지만 얼토당토않은 비난 성명인데도 분위기에 맞았다.

고정규와 민족당 극렬분자, 반(反) 한국세력에는 중국이 아군이 됐다.

쌀을 사재기하려다가 못한 인간들에게 고정규 일파의 선동은 잘 먹혔다.

서동수는 정권욕에 사로잡힌 잡놈이었다.

“참, 기가 막히구먼.” 

오후 12시 반,

여의도의 한식당 방 안에서 안종관이 윤준호에게 말했다.

둘은 점심상을 앞에 놓고 소주를 마시는 중이다. 안종관이 말을 이었다.

“북한이 남한을 걱정해주는 상황이 됐어.” 

“뭘 말이야?” 

둘은 말을 놓는 사이가 됐는데 국개위가 발족하면 둘 다 요직을 맡게 될 것이었다.

윤준호가 묻자 안종관이 쓴웃음을 지었다. 

“중국의 선언에 북한은 의연한데 남한이 자중지란에 빠졌다는 말이야.”

“참, 가관이야.” 

윤준호가 동의했다. 민족당에서 전향해온 윤준호의 눈에도 한국의 혼란상이 가관으로 보인 것이다.

어깨를 늘어뜨린 윤준호가 탄식했다.

“체질이 너무 약해졌어.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한반도의 유라시아 꿈을 이룬단 말인가?” 

윤준호는 어젯밤 박경수와 유한영이 서동수를 만난 것을 아직 모른다. 그때 안종관이 물었다. 

“신의주 특구가 만들어지기 전에 남북한 전쟁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나?”

“빌어먹을.” 

대답 대신 투덜거린 윤준호가 머리를 들고 안종관을 보았다.

“선거가 나흘 남았어. 후보께선 어떻게 하시려는 거야?”

안종관을 향해 윤준호가 말을 잇는다. 

“북한은 입 딱 다물고 있는 것이 우리더러 대신 나서라는 것 같은데, 가만있다가는 큰일 나겠어.” 

안종관이 들고 있던 소주잔을 입에 대고 한 모금을 마셨다.

“중국의 한마디에 사회가 사분오열 되고 공황 상태가 되어 해외탈출 소동까지 일어나는 것이

남한의 현실이야.” 

“…….” 

“북한 당국이 오히려 남한을 걱정해주는 상황이 됐어.”

안종관이 얼굴을 찌푸리며 웃었다. 

“어젯밤, 김 위원장의 특사를 만났어.” 

“…….” 

“물론 후보님하고 같이 말이야.” 

안종관이 윤준호를 보았다. 

“후보께선 아침에 한랜드로 돌아가셨어.” 

“그, 그럼 어떻게 하신다는 거야?” 

당황한 윤준호가 묻자 안종관이 외면했다. 

“놔두라고 하셨어.” 

“놔두라니?” 

“북한 정부, 북한 국민에게도 부끄럽다고 하셨어. 남한의 이런 모습이 말이야.”

“…….” 

“이젠 선거운동도 안 하겠다고 하셨어.” 

“아니, 그럼.” 

“스스로 자정(自淨)할 때까지 놔두시겠다는 거야. 그러니까 당신도 그런 줄 알고 있어.” 

윤준호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내던지셨군. 모든 것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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