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손자병법

13篇 (4) 적의 내부에 협력자를 만들어라

오늘의 쉼터 2018. 1. 18. 18:37

손자병법(孫子兵法) 13篇 <용간편(用間篇)>
<정보를 살펴서 쓰는 법>
‘용간’이란 간첩을 사용한다는 말이다.

즉 정보활동을 뜻하는 것이다.

적정을 알려면 반드시 간첩이 필요하다.

적을 알지 못하고  섣불리 용맹만을 믿고 싸운다면 승리를 약속할 수가 없는 것이다.

<손자> 13편의 요점을 한마디로 표현 하면지피지기(知彼知己)이다.

따라서 이 편을 잘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4) 적의 내부에 협력자를 만들어라


劉間者(향간자) 因其劉人而用之(인기향인이용지)
향간은, 고을 사람에 의하여 쓴다.
內間者(내간자) 因其官人而用之(인기관인이용지)
내간은, 관인에 의하여 쓴다.
反間者(반간자) 因其敵間而用之(인기적간이용지)
반간은, 적의 간첩에 의하여 쓴다.
死間者(사간자) 寫짧事於外(우|광사어오1)
사간은, 밖으로 거짓을 꾸며,
令폼間知之(영오간지지) 而傳於敵也(이정어적야)
아군의 간첩을 시켜 알게 하고, 적에게 전하는 것이다.
生間者(생간자) 反報也(반보야)
생간은, 돌아와 보고한다.


향간이란 상대국의 농촌이나 마을 사람들을 잘 구슬러 이용하는 간첩이다.

내간은 상대국 백성이 아니라 상대국의 관리이다.

반간이란 상대국의 간칩을 역이용하는 경우로 소위 이중간칩을 말한다.

이쪽에서 길들여 쓰는 수도 있고, 그저 허위 정보를 주는 경우도 있다.

사간이란 내간보다 이중 간칩을 한층 더 복잡하게 쓰는 것으로,

 배반할 염려가 있는 간첩에게 허위 정보를 주어 적에게 팔게 하는 방법이다.

물론 허위 정보임에 틀림없으므로 그 간첩은 적의 손에 의하여 처형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간 이라고 한다.

생간이란 상대국의 정보를 탐지 하면 살아서 돌아와.

그 정보를 자세하게 보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간첩이다.


향간이란 상대국 가까이에 거주하는 사람이나 출입하는 하청업자, 납품업자,

기타 여러 상인등을 통하여 정보를 얻는방법이다.

내간이란 상대의 내부에서 일을 하는 사람을 쓴다.

매수 등에 의한 내통, 연고 관계 등을 활용하게 될 것이다.

기밀을 요하는 사항은 적당한 상부역원을 수중에 넣어야 한다.

반간은 ‘역데마’라는 것과 ‘이중간첩’의 두 종류가 있다.

역데마는 정보를 입수한다기보다는 일종의 변형된 전투행위에 속하는데,

용간의 대응잭으로는 상당히 유익한 역할을 한다.

사간은 출입상인들을 조종하여 상대국으로 파고 들어가

그럴듯한 정보를 흘리게 하는 방법이다.

물론 출입을 금지 당한다.

이것을 ‘사(死)’라고 해석하면, 생각할 수 없는 방법도 아닌 것 같다.


[예화] 일반 민중을 협력자로 만든다.


鄭間者(향간자) 因其했人而用之(인기향인이용지)
향간은, 고을 사람에 의하여 쓴다.


진(룹)나라 예주(據州)으| 자사(刺史)인 조적(祖逃)은 옹구(獲邱)를 진압할 때

널리 촌민을 사랑하고, 선비 에게는 저자세를 취하고, 별로 친하지 않은 자나

신분이 천한 자라도 차멸을 두지않고 공손히 대함으로써 민심을 샀다.

오직 하상보(河上堡)라는 촌에서만은 이민족 사이에서 살고 있는 전임자의

영향이 강하여 그 귀추가 뚜렷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적은 유군(遊軍)을 파견 하여 거짓으로 하상보를 약탈하게 하였다.

어느 쪽을 편드는지 확실하게 알고 싶어서였다.

촌장들은 이미 조적에게 심복하고 있었으나,

이민족 중에는 다른 생각을 가진 자도 있어서,

거짓으로 군의 움직임에 따라 반대하는 태도를 보였다.

조적에게 심복하는 촌장들이 은밀히 이사실을 통보해 오자,

조적은 이들 반역자들을 체포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하여 조적은 용구 진압에 성공하였는데,

촌민을 협력자로 전향시켜서 쓴 좋은 실례이다.


[예화] 적의 내부에 협력자를 만들어라


內間者(내간자) 因其官^而用之(인기관인이용지)
내간은, 관인에 의하여 쓴다.


익주(益州)으| 목(救)인 나상(羅尙)은, 장수인 괴백(鬼伯)을 파견 하여

비성(都城)에 있는 촉(훌)의 적인, 이웅(李雄)을 공격 하였다.

이웅은 무도(武都)으| 사람인 박태(朴泰)를 불러서 피가 흐르도록 매질을 가하였다.

그것으로 나상을 속여서 이웅은 박태의 원수라고 믿게해놓고 은밀히 박태에게 내응을 시켰다.

내응은 불로써 신호를 한다는 것을 미리 정해 놓았다.
과연 나상은 이것을 믿고 정병을 총동원하여 괴백을 장수로 삼아 이웅을 공격시켰다.

박태가 이에 종군한 것은 말할나위도 없다.

괴백의 군사가 진격하여 성을 구축하였다고 하자,

이웅의 장수인 이앙(李購)은 길에 복병을 까는한편,

박태는 긴사닥다리를 성위에 걸쳐 놓고 불을 질렀다.

불길이 오르는 것을 보고 괴백의 군사는 앞을 다투어 사닥다리에 올랐고,

박태는 맛줄로 나상의 군사 100여 명을 끌어 올려 모조리 죽여 버렸다.

그 때 이웅은 군사를 풀어서 내외에 호응하여, 이를 격파하고 나상의 군을 섬멸시켰다.


[예화] 적의 간칩을 역이용하라


反間者(반간자) 因其敵間而用之(인기적간이용지)
반간은, 적의 간접에 의하여 쓴다.


진평(陳平)은 처음에 한(훌)나라 왕의 호군중우1 (護軍中周)였다.
초나라 왕 항우가 한의 왕을 영앙(榮陽)에서 포위하였다.

오래 지나도 포위가 풀리지 않으므로, 한의 왕은 걱정한 나머지

영양 땅을 내주기로 하고 화친을 청하였다.
그러나 항우는 듣지 않았다.

그때 진평이 건의하였다.
”생각건대, 초나라에는 교란시킬 틈이 없습니다

항우에게 강직한 신하란 아부(亞父), 종리매(鍾離陣) , 용저(龍且) , 주은(周밟) 등

몇 사람밖에 없습니다.

왕께서 수만 금의 금을 뿌려서 반간을 행하여 군신의 사이를 끊고,

서로 의심을 품게하면 질투심이 강하고 참언을 잘믿는 항우의 인품으로 보아

반드시 내부에서 죽일 것입니다.

그때를 틈타 공격하면 어렵지 않게 초나라를 격파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한의 왕은 그럴듯하다고 생각하여 황금 4만 근을 진평에게 주어 마음대로 쓰게 하였다.

진평은 듬을 뿌려서 반간을 초의 군에게 잠복시킨 다음. 소문을 퍼뜨렸다.
"종리매 등 여러 장수는 항우의 부장으로서 공적은 크다.

그런데 땅을 떼어주어 제후로 삼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한과 손을 잡고 항우를 멸망시킨 다음 그 땅을 나누어 제후가 되려고 한다”
예상대로 항우는 의심을 품고 종리매를 믿지 않게 되었다.

얼마 후, 항우는 한나라로 보냈다.

한의 왕은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놓고 초의 사신을 보자, 놀라운 기색을 보였다.
”아부의 사신인가 하였더니, 항우의 사신이 아닌가”
초의 사신은 귀국하자 그사실을 상세히 항우에게 보고하였다.

항우는 역시 아부를 크게 의심하여 영양성을 급습하자는 아부의 말에 귀도기울이지 않았다.

아부는 항우가 의심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종기가 악화되어 죽고 말았다.

한의 왕은 진평의 계략으로 겨우 영양성을 겨우 탈출하여 마침내 초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었다.


[예화] 협력자는 살려서 쓰라


生間者(생간자) 反報也(반보야)
생간은, 돌아와 보고 한다.


송(宋)나라 문공16년 가을9월, 초 장왕이 송나라를 포위하였다.

초의 장군 자반(子反)은 성밖에 누각을쌓고, 그안에서 싸움을 지휘하였다.

이듬해 여름 5월이 되어도 송의 군은 항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송의 군의 완강함에 애를태우던 장왕은 포위를 풀고 퇴각하려고 하니,

초늬 대신 신숙시(申웠時)가 진언하였다.
”송나라가 항복을 하지 않는 것은 우리 군이 오래 있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군에게 집을 짓게 하고 농사를 시켜 언제까지라도 버티고 있겠다는 기색을 보이면

송나라는 겁을 내고 할복할 것입니다”
장왕은 곧 그계략을 채용하여 성밖의 민가를 부수고 대와 나무를 잘라 집을 짓는

경을 보임과 동시에 병사10명을 반으로 하여 5명은 성을 치게 하고, 5명은 밭을 갈게 하였다.
송나라는 그 광경을 보고 겁을 먹어 밤에 화원(華元)을 시켜 초의 군대속으로 잠입시켰다.

화원은 누각으로 올라가 자반의 침실로 잠입하여 슬며시 자반을 깨웠다.

자반이 눈을 뜨고 일어 나려고 할 때는 이미 화원에게 깔려 있었다.

화원의 손에는 단검이 빛나고 있었다.
”주명(주명)에 의하여 일부러 밤중에 화친을 청하러 왔다.

장군이 들어주면 다행이고, 만약 들어주지 않으면

장군의 목숨은 나와 함께 오늘 밤에 없어질 것이다”
자반이 당황하여 그 조건을 묻자, 화원은 말하였다.
”우리 주군은 나에게 송나라의 괴로움을 말하였다.

우리나라는 지금 피차가 어린애를 교환하여 잡아먹고 송장의 뼈를 잘라서 삶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성하의 맹세는, 온나라 사람들이 남김없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적을 받아들일 수 없다.

부디 귀군은 30리 밖으로 후퇴하라. 그러면 말을 듣겠다”
자반은 그 청을 수락하고 화원과 굳게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화원은 곧 돌아와 송문공에게 보고하였고 자반도 날이 새자 장왕에게 어셋밤 일을 보고하고

후퇴하기를 청하였다.

이에 장왕은 즉시 군을 30리 밖으로 퇴각시켰다.
이와 같이 생간은 현재지모(賢材知떻) , 강건경용(彈健좀IJ勇) , 동정을 잘 살피고

그 계이(計異)가 미치는 곳을 알아 낸 후 곧 돌아와 보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