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손자병법

12篇 (6) 언덕을 구르기 전에 막으라.

오늘의 쉼터 2018. 1. 18. 02:16

손자병법(孫子兵法) 12篇 <화공편(火攻篇)>
<공격의 방법을 연구하라>


‘화공’이란 불로써 적을 공격하는 전술이다.

그러나 이편의 후반은 화공과는 관계없는 명군(明君)과 양장(良將)들의

감정적인 행동을 경계하고 있다.

 즉 전쟁이나 전투는 한 때의 감정이나 흥분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존망이 달려 있는 중대사라는 것을 언제나 생각하라는 것이다.



(6) 언덕을 구르기 전에 막으라.


主不可以怒而興師(주불가이노이흥사)
임금은 노여움으로써 군사를 일으켜서는 안 되고,


將不可以慍而致戰(장불가이온이치전)
장수는 분노로써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


合於利而動(합어이이동) 不合於利而止(불합어이이지)
이익에 합치되면 움직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친다.


怒可以復喜(노가이복희) 慍可以復悅(온가이복열)
노여움으로써 다시 기뻐해야 하며, 분노로써 다시 기뻐해야 하지만,


亡國不可以復存(망국불가이복존)
망국이 다시 존재할 수는 없고,


死者不可以復生(사자불가이복생)
죽은 자를 다시 살릴 수는 없다.


故明主愼之(고명주신지) 良將警之(양장경지)
그러므로 밝은 임금은 이를 삼가고, 뛰어난 장수는 이를 경계한다.


此安國全軍之道也(차안국전군지도야)
이것이 나라를 편안히 하고 군사를 온전케 하는 것이다.

 

한나라의 임금이란 그저 화가 났다거나 괘씸하다는 이유로 군사를 움직여서는 안된다.

장군도 마찬가지로 사소한 원한이나 노여움에 흥분하여 싸움으로 돌입하는 등의

경거망동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국가 이익에 합치된 후에야 비로소 움직이고, 합치되지 않으면 깨끗이 단념해야 한다.

그러면 노여움도 풀리고 기분이 좋은날도 있을 것이나,

일단 멸망한 나라는 다시 존재할 수가 없다.

일단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날 수가 없지 않은가.

어진 임금이란 바로 이 점에 신중을 기할 것이고,

뛰어난 장수는 이 점에 최대의 경계를 할 일이다.

이렇게 해야만 나라를 태평하게 다스리고 군사를 안전하게 할 수 있다.


사업이나 경영에 있어서 감정은 절대 금물이니, 

강철과 같은 냉정함이 만사를 지배한다.

경영자나 수뇌부도 인간이다. 

그러나 인간이어서 좋은 면과 절대로 인간이어서는 안되는 면이 있다.

더욱이 일시적인 감정으로 경솔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은 천만부당한 일이다.

아무리 그것이 공분(公憤)이라도 결과는 사분(私憤)과 같게 되니,

대의 명분이 있고 없는 것은 둘째 문제이다.

동기야 어찌 되었든 행동이 감정에 지배되어서는 만사휴의 이다.

 어디 까지나 타산에 이은 타산, 냉철에 가해진 냉철이야말로 사업경영자의 본태이다.

말할나위도 없이, 이 타산은 눈앞의 욕심이라는 작은 것이 아니라 대국적으로 보는 타산이다.


[예화] 언덕을 구르기 전에 막으라.


亡國不可以復存(망국불가이복존)
망국이 다시 존재할 수는 없고,


死者不可以復生(사자불가이복생)
죽은 자를 다시 살릴 수는 없다.


왕위에 오른 오(吳)나라의 부차(夫差)는 대신인 백비(伯嚭)를 발탁하여

총리 대신에 임명하고, 자기는 군사 교련에 전념 하였다.

이듬 해, 오왕은 모든 정병을 이끌고 월(越)나라를 공격하여 월나라 군을

부추산(夫湫山)에서 격파하였다.

월의 왕 구천(句踐)은 잔병5,000명과 함께 회계산(會稽山)에 웅거하여

대신(大臣)인 종(種)을 파견해서 백비에게 많은 뇌물을 보내고 화평을 청하였다. 

백비의 주선으로 왕은 화평을 허락하였으나, 오자서(伍子胥)가 오의 왕에게 충고하였다.
"월의 왕은 괴로움을 견디어 내는 인간입니다.

지금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때 오자서는 오나라가 멸망해 버릴 징조를 눈치 채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오의 왕은 그의 충고를 듣지 않고, 백비의 말을 좇아  월나라와 강화해 버렸다.

그리고 7년 후에 오의 왕은 제(齊)나라를 공격하였다. 이때도 오자서는 충고하였다.
"월의 왕 구천은 고생을 이겨 넘기고, 백성을 사랑하여 국력회복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구천이 죽지 않는 한, 오나라의 근심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월나라를 내버려 두고 제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크게 잘못입이니다"


그러나 오의 왕은 역시 듣지 않았고,

제나라를 공격하여 제군(齊軍)을 애릉(艾陵)에서 격파하였다.

이 승리로 부차의 코는 높아졌으나,

오자서의 눈에는 오나라의 멸망이 더욱 더 뚜렷하게 비쳤음에 틀림없다.

부차 9년에는 추(騶)나라를 위하여 노(魯)나라를 징벌하고,

10년에는 제나라를 공격하였으며,

11년에도 제나라를 토벌하였으나,

월나라에 대해서는 손도 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월의 왕 구천이 문안차 찾아와 많은 물건을 헌상하자 오의 왕은 크게 기뻐하였다.

오자서는 오나라의 멸망을 겁내며 다시 오의 왕에게 충고 하였다.
"월나라는 우리 몸에 숨어 있는 병과 같습니다. 

제나라의 메마른 땅을  탐내지 말고 먼저 월나라를 처치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러나 오의 왕은 듣지 않고, 오히려 오자서를 제나라에 사신으로 파견하였다.

오자서는 아들에게 말하였다.
"오나라는 이제 끝장이 났다. 너는 오나라와 같이 망할 필요는 없다"


오자서는 아들을 제나라 대신 포목(鮑牧)에게 맡긴 다음 귀국하여 오의 왕에게

사신으로서의 보고를 끝냈다.

그러자 총리 대신인 백비는 봉동(逢同)과 공모하여 오자서를 오의 왕에게 중상하였다.
"오자서는 어쩐지 모반을 꾀하고 있는듯 합니다.

 자기 아들을 제나라에 맡기고 온것이 무엇보다 큰 증거입니다"


오의 왕은 그말을 듣고 크게노하여 오자서에게 속루(屬鏤)라는 이름의 명검을 하사하였다.

그 검으로 자살을 하라는 뜻이었다.

오자서는 죽음에 앞서 말하였다.
"내 무덤에는반드시 가래나무(梓)를 심어다오.

그것으로 왕의 관을 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눈을 도려내어 오나라 동문(東門) 위에 걸어다오.

월나라 군대가 공격해 와서 오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아야 겠다"


그 말을 들은 오의 왕은 격노하여, 오자서의 사체를 말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에 넣어장강(長江)에 던져버렸다.

오자서를 죽이고나서 오의 왕은 드디어 제나라로 공격해들어 갔으나 크게 패하고 말았다.
부차 13년에는 노(魯)나라와 위(衛)나라의 군주를 불러 탁고(橐皐)에서 패자(覇者)를

정하는 회합을 열었고, 14년에는 제후를 황지에 모아,  다시 패자를 정하는 회합을 열었다.

그런데 그 틈을 타서 월의 왕 구천이 오나라를 공격하여,

오의 태자인 우(友)를 사로잡아 버렸다.
이소식을 들은 오의 왕은 급거 군사를 이끌고 귀국하였으나,

국외에 너무나 오래 있었기 때문에 장졸이 모두 피폐 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신을 파견하여 대량의 뇌물을 보내고 월나라와 화친을 맺었다.


18년에 월나라는 더욱 더 강해져 또다시 오나를 습격 하더니,

오의 군을 입택(笠澤)에서 격파 하였다.

20년에 월의 왕은 또 오나라를 공격하고, 

 21년에는 드디어 오의 수도를 포위하였다. 2

3년이 되자 월나라는 기어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말았다.

월의 왕 구천은 오의 왕 부차를 용동(甬東) 땅으로 옮겨,

백헌(百軒) 촌의 촌장으로 삼으려고 하였으나 오의 왕은 사퇴하였다.
"이미 늙어 다시는 군주를 모실 수가 없다.

오직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고 이러한 처지에 빠진 것을 후회할 뿐이다.

아아,  오자서는 이미 죽어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지만,

그래도 오자서를 대할 면목이 없다"
부차는 드디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망할운명에 있는 나라는 오로지 망하는 길로 치닫기 때문에

옆에서 어떻게도 할 수가 없는 법이다.

망하는 길로 치닫는 것은 비단 나라 뿐만이 아니다.

따라서 망하는 길로 치닫는 것에서는 가급적 빨리 뛰어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자서와 같이 살해를 당하고,

한 번 죽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