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손자병법

11篇 (21) 자신을 믿고 적에게 위엄을 가하라

오늘의 쉼터 2018. 1. 17. 19:50

손자병법(孫子兵法) 11篇  <구지편(九地篇)>
<극한 상태에서의 대처법>
여기서는 원정군으로서의 통과지, 혹은 진지가 그들에게 미치는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구분한 것이다.
손자는 여기서 이해관계로 본 땅을

산지, 경지, 쟁지, 교지, 구지, 중지, 비지, 위지, 사지의 아홉으로 구분하였다.

이 구지편은 <손자>의 진면목이 가장 잘 나타나 있다고 할 수가 있다.







(21) 자신을 믿고 적에게 위엄을 가하라


夫覇王之兵(부패왕지병) 伐大國(벌대국) 則其衆不得聚(즉기중부득취)
무릇 패왕의 군세가, 대국을 치면, 그 무리가 모이지 않고,
威加於敵(위가어적) 則其交不得合(즉기교부득합)
위세가 적에게 가해지면, 곧 그 사귐은 합할 수 없다.
是故(시고) 不爭天下之交(부쟁천하지교) 不養天下之權(불양천하지권)
그러므로, 천하의 사귐을 다투지 않고, 천하의 권세를 기르지 않으며,
信己之私(신기지사) 威加於敵(위가어적)
자기 자신을 믿고, 위엄을 적에게 가한다면,
故其城可拔(고기성가발) 其國可墮(기국가타)
그 성을 함락시킬 수 있고, 그 나라를 격파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한번 천하를 잡은 패왕의 군세가 다른 대국을 치게되면

그강력감과 관록에 눌려서 상대국의 민심이 하나로 결집되지 못하고,

그위력이 적국에 가해짐에 따라 그나라와 평시에 친교를 맺고

공수동맹을 맺은 나라들도 접촉을 하니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를 잡는 강국의 세력아래 참가하거나 그 조력을 기대하는

정책을 취하는 등 강국의 세력 증강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타국에 의지하지 말고, 차라리 자기의 힘을 기르고 독립자존하여

그국위가 상대국으로 점차 미치도록 하는것이 훨씬좋다.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싸움의 불길이 타오를때 그 거성(居城)을 함락시키고

그 나라를 격파할 수 있는 것이다.


권력자의 힘을 빌린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그권력자의 힘을 더욱더 크게 만드는 것이 된다.

여기서 바로 독점자본의 폐단이 생긴다.

가능하면 자력을 중심으로 뻗어나가야 하지만,

근대자본 경제 기구로서는 반드시 그렇게만도 되지않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커다란 경제기구와 관련을 갖는다는 것은 모든점에서 중요하기는 하다.

반대로 그압력을 받는입장에 선다는것은 충분히 계산에 넣고 행동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를 남기게 된다.

이용하기는커녕 이용당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것만은 잘 알고 나서 행동해야 할 것이다.

독점자본도 이상이다.

이상과 현실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현단계의 경제기구로 볼때 공연히 이상적인 형태를 추구한다는것은

전시대적인 소박하고 단순한 생각이라고 하겠으나,

이론적으로는 손자의 착안이 옳다고 본다.


[예화]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라
不爭天下之交(부쟁천하지교)
천하의 사귐을 다투지 않는다.


제(齊)나라 환공이 노(魯)나라를 공격하였다.

노나라장군 조말(曹沫)은 세번 싸 워서 세번 패하였다.

노의 장공은 겁을먹고, 드디어 화평을 청하였다.

그때 조말은 단검을 쥐고 단상으로 뛰어 올라가 환공을 협박하며 말하였다.
"제나라는 강하고 노나라는 약하다 하더라도 귀국이 노나라를 침략하는 데는

극히 심한 점이 많다.

지금 노나라의 성은 함락되고,

제나라 국경이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태이다.

적당히 배려하라"
환공은 이를 허락하고 노나라에서 탈취한땅을 전부 반환하겠다고 하니,

조말이 단검을 버리고 물러나 군신의 자리로 돌아 갔으나,

안색도 변하지 않고 말투 또한 여전하였다.

환공이 노하여 그 약속을 어기고 조말을 죽이려 들자 관중(管仲)이 말하였다.

"그건 안됩니다. 작은 이익을 탐내어 스스로의 쾌락을 구한다면 제후들이

신의를 버리기 때문에 결국 천하의 도움을 잃게 됩니다.

돌려주는 것이 상책입니다"
마침내 환공은 조말이 세 번 싸워서 잃은 땅을 다시 노나라에 돌려 주었다.

제후들은 이 말을 듣고, 제나라를 믿고 그휘하로 들어 오기를 희망하였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환공은 중원에서 패업을 이루게 되었다.
시대가 바뀌어 민왕(湣王) 때,

제나라는 위력을 뽐내어 초(楚)나라의 재상 당매(唐昧)를 중구(重丘)에서 격파하고,

한(韓),위(魏),조(趙) 나라의 삼국을 관진(觀津)에서 꺾었으며,

드디어 그들과함께 진(秦)나라를 공격하고 조나라를 도와 중산(中山)을 멸망시키고,

송(宋)나라를 격파하여 1,000여리의 땅을 넓혔다.

그 후 민왕은 진의 소왕과 힘을 겨루어 제(帝)라고 칭하였다.

민왕은 스스로 뽐내며 노나라에 가서 다음과 같이 호언장담 하였다.

"천자가 순수(巡狩)할때 제후는 그 궁전을 천자에게 양보하고 열쇠를 내놓으며

위의를 갖추고 당하(堂下)에서 배선(配膳)을 감독하고,

천자의 식사가 끝난 후 비로소 물러나 정사를 보는 법이다"

이로 말미암아 점차 제후의 신의를 잃었으며,

후에 민왕의 교만함을 못마땅하게 여긴 조,한, 위 연나라의 제후가 연합하여

제나라를 토벌하였다.

연합군이 제나라 수도 임치(臨葘)를 함락시키자 민왕은 패주해 버렸다.

제멋대로 행동하다가 나라를 말쳐버린 좋은 본보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