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손자병법

11篇 (9) 상대의 불비(不備)는 틈을 주지 말고 공격하라

오늘의 쉼터 2018. 1. 17. 16:39

손자병법(孫子兵法) 11篇  <구지편(九地篇)>
<극한 상태에서의 대처법>
여기서는 원정군으로서의 통과지, 혹은 진지가 그들에게 미치는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구분한 것이다.
손자는 여기서 이해관계로 본 땅을

산지, 경지, 쟁지, 교지, 구지, 중지, 비지, 위지, 사지의 아홉으로 구분하였다.

이 구지편은 <손자>의 진면목이 가장 잘 나타나 있다고 할 수가 있다.




(9) 상대의 불비(不備)는 틈을 주지 말고 공격하라


敢問(감문) 敵衆整而將來(적중정이장래)
감히 묻노니, 적의 무리가 정연하여 장차 오려고 하면,
待之若何(대지약하)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曰(왈) 先奪其所愛則聽矣(선탈기소애즉청의)
말하기를, 먼저 그 사랑하는 곳을 빼앗으면 곧 들을 것이다.
兵之情主速(병지정주속)
군사의 정(情)은 신속함을 주로 한다.
乘人之不及(승인지불급)
적이 미치지 못함을 틈타,
由不虞之道(유불우지도)
생각지도 않는 길을 따라,
攻其所不戒也(공기소불계야)
그 경계하지 않는 곳을 공격하는 것이다.


질서정연하게 정비된 당당한 적군이 바로 내습하려 하고 있다.

이렇다할 결함도 발견되지 않는 경우라면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먼저 적의 가장 관심깊은 것을 탈취하는 것이다.

이것이 무엇인가는 경우에 따라 다르겠으나, 상대편의 군수라든가

계속(係屬), 식량 창고, 탄약고, 보급로 등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것을 먼저 공략하게 한다.

이렇게하면 확실한 효과가 있다.

전략적인 가치라기보다도 정신적인 충격을 주어서 상대를 심리적으로

동요케 하는것이 목적인 것이다.

상대편에게 일단 동요가 생기고 나면, 이 쪽의 작전이 파고들 여지가 생긴다.

그 곳을 파고 들어 감으로써 상대편의 정연함에 혼란을 줄 수가 있다.

싸움에 임하였을 경우,

그 군사의 움직임과 태세는 무엇보다도 속도가 제일이다.

이를테면 다소 상대편의 손이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였을 때는

바로 틈을 주지 말고 상대편이 뜻하지 않은 의외의 방향에서

특별한 경계를 하지 않고 있는곳을 공격하는 방법이다.


‘교란전술은 기습으로부터’라는 말이다.

기습은 상대의 급소를 가하여 상대의 태세를 무너 뜨리고 휘저어 놓는다.

전쟁터에서의 거래란 신속이 제일이다.

기상천외한 곳에서 상대의 불의를 찌르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점은 우선 상대의 태세를 흐트려 놓고 그곳으로 파고드는 수단이다.

상대의 태세를 교란시키는 방법은 상대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곳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다. 

이 방법은 일상 대인적인 교섭 등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논쟁 같은 것을 해야 할 때도 반드시 필요한 지식이다.
정면에서 똑바로 부딪쳐 가는것은 좀처럼 승리를 얻기 힘든 방법이다.

먼저 상대의 급소를 찌르면 상대는 반드시 당황한다.

그러나 그 당황함을 피하고 그대로 파고들면 싸움이 길어지므로

재빨리 방향을 바꾸어서 상대가 생각지도 않고 있던 곳에 공격을 가한다.

이것은 만만치 않은 상대를 설파할 때의 논쟁 방법이다.


[예화] 상대의 불비(不備)는 틈을 주지 말고 공격하라


兵之情主速(병지정주속)
군사의 정(情)은 신속함을 주로 한다.


당(唐)나라 무덕(武德) 8년 8월에 이정(李政)은 기주(冀州)에 군사를 크게 모으고,

강릉에 의거하여 저항하는 소선(蘇銑)을 토벌하였다.

때는 마침 가을 장우(長雨)의 계절이라 강물은 넘칠 듯 불어나고,

삼협(三峽)의 길도 물에 잠겼기 때문에 이정의 군사가 진격을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소선은 드디어 병사들을 쉬게하고 방비도 굳히지 않고 있었다.

9월에 이정은 군사를 이끌고 진격하여 협(峽)을 내려 가려고 하니,

휘하의 뭇장수들은 입을 모아 말하였다.
"병을 머무르게 하고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도록 합시다"
그러나 이정은 말하였다.
싸움은 신속이 첫째이다.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된다. 지금 군사를 모았으나, 소선은 모르고 있을것이다.

넘쳐 흐르는 수세를 틈타서 홀연히 성하에 나타나면,

신뢰(迅雷)이는 귀를 막을 틈도 없다는 말과 같이 당황하여 군사를 모아도

아군을 막을 도리는 없을 것이다.

반드시 포로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전함 2,000여척을 이끌고 동쪽으로 내려가

형문(荊門)과 의도(宜都) 두 성을 함락 하고, 이릉(夷陵)에 이르렀다.

그런데 소선의 장수 문사홍(文士弘)이 정병 수만명을 이끌고 청강(淸江)에 주둔하고 있었다.

효공(孝恭)이 공격하려고 하였으나 이정은 극구 말렸다.
"저것은 원군이기 때문에 아무런 책략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저 기세는 오래 가지 못한다.

잠시 남안(南岸)에서  동태를 살피자.

하루 쯤 지나면 적은 반드시 그 군사를 나누어 반은 남아서 우리 군사를 막고,

반은 돌아가서 수비를 할것이다.

군사가 분산되면 그 기세는 약화된다.

그 약화된 점을 노리고 공격하면, 이기지 못할 리 없다.

지금 갑자기 공격을 하면, 적은 힘을 합치고 죽자사자 덤빌 것이다.

초나라 군사는 겁이 없어서 다소 힘든 상대이다"
효공이 말을 듣지않고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공격하였다가

과연 패주하여 겨우 남안에 와 닿았다.

소선의 군사는 배를 버리고 군화(軍貨)를 약탈하여 뒤질세라 무거운 짐을 졌다.

이정은 때를 놓치지 않고군사를 파견시키고 분격(奮擊)하여 크게 격파한 후 승승장구

강릉으로 돌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