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孫子兵法) 1篇 <시계편(始計篇)>
시계편은 <손자> 13편의 총론으로 병법의 기본서이다.
<시계>란 최초의 근본적인 계획이란 뜻이다.
여기서는 전쟁에 대비하는 다섯가지 기본요건을 제시하였고,
다시 이 기본 요건의 어느 쪽이 더 우수한가를 분석, 검토하기 위한
일곱 항의 비교 기준을 설정하였다.
兵者(병자) 詭道也(궤도야)
병(兵)이란 궤도(詭道)이다.
이 문구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싸움이란 적을 속이는 것이 본질이라는 뜻이 된다.
이것은 다소 온당치가 않다. 이 말이 글자대로 해석되고 이해되어,
제7장 군쟁편 속의 ‘병(兵)은 사(詐)로써 서고’라는 글자와 비교하여<손자>의 병법은
기만작전이 본위라는 평가가 내려진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해석을 취하면 전조항 ‘권(權)을 제한다’라고 말한 것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문구 분위기와는 달리 돌연 문장의 비약이 있게 되고, 또한 ‘첫째는 도(道)이다’라고
설파하기 시작한 주장에서 빗나가게 되기 때문에 앞 뒤의 흐름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권을 제하고, 기(機)에 임하여 변(變)에 응할 수가 있다는
손자의 주장을 뒷 받침하는 것으로서 그 실례를 보이는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싸움, 또는 사업이란 외곬으로 나가는, 정석 그대로 전개되는 경우란 없는것이니,
당치않은 변모된 형태로 나타나는 수가 많다"라는 뜻이 된다.
이 문구만을 독립시켜 받아들여, 적의 뒤통수를 친다거나 야습, 기습을 병법의 상도(常道)라고
본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다만 그러한 적을 만났을 경우, 약속이 틀리다고 항의를 해도 통용되지 않으므로,
뒤의 뒤까지 생각해서 그와 같은 역수전법(逆手戰法)을 당하더라도 바로 대응할 만한
응용의 재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예화] 정의감에 사로잡히면 싸움에는 진다.
兵者詭道也(병자궤도야): 병(兵)이란 궤도(詭道)이다.
한신(韓信)이 장이(張耳)와 군사 수만 명을 이끌고 동으로 진격하여 정경(井經)을
내려와 조(趙)나라를 공격한다는 말을 듣고 조의 왕인 성안군(成安君) 진여(陳餘)는
20만 명의 군사를 정경 입구에 집결 시켰다.
그러자 광무군(廣武君) 이좌거(李左車)가 성안군을 설득하러 갔다.
"한(漢)나라 장군 한신은 서하(西河)를 건너 위(魏)나라 왕을 사로잡고,
하열(夏說)도 사로잡았으며, 최근에는 알여(閼與)에 유혈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장이를 보좌관으로 삼아 조나라를 항복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승승장구 나라를 멀리 떠나 싸우고 있으므로, 그 예봉은 무적의 기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 리나 되는 먼 곳에서 양식을 수송하므로 병사들은 군량이 부족하여 전군이 포식을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다 정경의 길은 수레가 열을 짓지 못하고, 말도 줄을 짓지 못할 만큼 험한 길이니,
양식은 반드시 뒤를 대지 못할 것입니다.
부디 저에게 기습부대 3만 명을 내려 주십시오.
간도에서 적의 수송선을 끊겠사오니,
성안군께서는 도랑을 깊게 파고 누를 높여서 진(陣)을 굳게 하고 교전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적은 전진해도 싸움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후퇴해도 불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기습부대가 퇴로를 끊어 들에 약탈하는 자가 없게 해 놓으면 10일도 못가서
한신, 장이 두 장수의 목을 휘하께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부디 저의 계략에 유의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두 장군에게 포로가 되고 말 것입니다"
성안군은 유학자였다.
언제나 정의군을 칭하고 사모(詐謀)나 기계(奇計)를 쓰지 않았다. "
병법에 적의 10배면 이를 포위하고 배면 싸우라는 말이 있다.
지금 한신의 군이 수만 명의 군사라 칭하고 있으나 실제는 수천명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다 천릿길을 행군해 온 병사들은 피로에 지쳐있을 것이다.
이러한 적까지도 피하고 공격을 하지 않는다면 이후 더 큰적이 나타났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또 만일 그와같이 한다면, 제후들은 나를 겁쟁이 취급을 하고 수시로 공격해 올 것이다"
성안군은 광무군의 계책을 채용하지 않았다.
얼마 후 한신의 군이 공격하자 조의 군사는 성에서 나와 싸우다가 과연 크게 패하고
성안군은 저수(低水)근처에서 전사하였다.
정의의 군은 사모, 기계를 쓰는 것이 아니라는 성안군의 신념은 존경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정의란 그저 기계를 쓰지 않는 것만이 아니다.
더욱이 정의의 전쟁이 있다면 어떠한 기계를 썼더라도 그 전쟁에서 이기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튼 성안군의 고사(故事)는 "적의 10배면 이를 포위하고 배(倍)면 싸운다"라는
손자의 말을 교조주의적으로 신봉한 어리석음과 구구한 기계에 신경을 쓴 정의의
형해화(形骸化)에 대한 통렬한 풍자가 되었다.
물에 빠진 개를 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제창한 임어당(林語堂)에 대하여 노신(魯迅)은,
"물에 빠진 개는 반드시 때려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크게 때려야 한다"라고 하였다.
성안군의 정정당당한 전투 정신은 전쟁과(그것은 반드시 전쟁만이 아닐 것이다)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오직 투철한 판단과 단호한 결단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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