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달콤한 나의 도시

제3부 위태로운 거리 11

오늘의 쉼터 2017. 7. 27. 00:18

제3부 위태로운 거리 11




새로운! 새로운, 이라는 형용사에는 마력이 있다.
새해의 첫 출근길, 나는 다시 한 번 결심을 다졌다.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의지로 새로운 삶을 사는 거다.
마음속에 전에 없던 열정이 활활 불타오르는 듯하다.
2006년을 맞이하여 나는 ‘새로운’ 오은수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미 확실히 달라졌다.
평소 같으면 법정 공휴일인 1월 1일이 하필 일요일과 딱 겹쳐서
금쪽같은 휴일 하루가 날아가 버렸다는 데 대해 깊이 절망했을 테지만,
 지금은 2006년. 어제에 비해 가일층 성숙해진 나는,
새해 아침의 새 다짐을 긴장감 있게 이어갈 수 있다는 이유로,
쉬지 않고 월요일에 바로 출근하는 일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겨지기까지 한다.
 
이 기특하고 대견한 마음가짐을 만방에 과시하고 싶었지만,
짜증이 덕지덕지 붙은 표정으로 사장의 신년사를 경청하고 있는 동료들의
얼굴을 보자 본드 칠이라도 한 듯 입이 딱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사회생활 어언 8년차.
웬 놈의 시무식을 이렇게 거창하게 하는지 솔직히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아니, 굳이 시무식이라는 절차가 왜 필요하단 말인가?
그냥 좀 느지막이 출근해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서로 건네고,
신년맞이 특별 보너스 전달식이라도 좀 갖고, 전투적으로 새 각오를 다지라는 뜻으로
소갈비나 좀 뜯은 다음 일찌감치 퇴근하는 아름다운 시무식을 꿈꾼다.
 
사장의 연설은 그칠 줄을 모르고 계속되었다.
‘올해 매출액은 작년의 세 배를 예상하고 있다’는 어이없는 발언에 이어 ‘결국 여러분 손에 달려 있다,
우리 같이 죽어보자’는 무시무시한 협박에 이르기까지.
 가만 들어보니 작년의 신년사를 그대로 복사해서 가져다 쓰는 듯 거의 똑같은 내용이다.
사장의 말이 끝났나 했더니 이번에는 안 이사의 연설이 이어진다.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정말 그러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졸음이 쏟아진다.
신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난 탓이다.
일찍 일어나려면 일찍 잠들었어야 할 터인데, 어젯밤 늦게까지 TV의 신년특선영화를 보았다.
극장에서 이미 본 영화지만 공짜라고 또 보고만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새해 첫날밤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괜스레 두근두근하여
여간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괜찮다.
원래 처음에는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는 법이다.
내일부터 잘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당장 이 순간,
하품이 쏟아져서 미칠 지경이다.
겨우 내 자리에 돌아와 새 다이어리를 꺼낸다.
여러 군데의 서점을 헤매고 다닌 끝에 어렵사리 선택한 다이어리다.
반드르르한 가죽 재질의 연푸른색 표지가 특히 마음에 든다.
오른손바닥을 펼쳐 가만히 쓸어본다.
손바닥이 온통 바다 색깔로 물들 것 같다.
1월 2일의 칸에 또박또박 ‘시무식’이라고 적는다.
어제, 1월 1일의 칸은 텅 비어 있다.
‘집’이라고 써야겠지만 왠지 내키지 않는다.
 
1월 1일을 맞이하여 부모님 집에 가기는 갔다.
그 전날 밤늦게까지 유준의 집에서 실컷 퍼마신 일당은 동이 트자 부스스 일어났다.
뜨끈한 국물로 다 같이 속풀이라도 하러 가면 딱 좋으련만,
모두들 ‘야, 1월 1일 꼭두새벽부터 영업하는 식당이 어디 있냐’며 내 의견을 무시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눈물을 머금고 분당행 직행버스에 올랐다.
1월 1일 아침 일곱시,
쓰린 속을 부여잡고 본가로 기어 들어가기에는 부적절한 시간이었다.
오빠네 가족은 이미 와 있었다.
떡국은 해장용으로 나쁘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숟가락질을 했다.
사골국물이 깔깔한 목구멍 속에 찌르르 퍼졌다.
 
“이 미련 곰탱아. 떡국이 넘어 가냐. 이거 먹으면 한 살 더 먹는 건 모르고?”
 
오빠가 연방 놀려댔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엄마 역시 말없이 식탁과 주방을 왔다 갔다 했다.
화기애애하다고까지 말할 수 없었지만 그런대로 잔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새해 아침이었다.
훼손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밥을 다 먹고 나서도, 가능하면 엄마와 둘만 있는 기회를 피했다.
엄마 역시 장난으로라도 그날의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영화관에서 본 사람은 엄마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혹시 내가 꿈이라도 꾼 건가? 정녕 그랬으면 좋겠다.





제3부 위태로운 거리 12


태오는 내가 선물한 민트색 폴로셔츠를 매일같이 입었다.
본인 말에 의하면 12월 25일 이후부터 일주일이 넘도록 하루도 안 빼놓고 입었단다.
빨래는 해서 입는지 하는 염려는 둘째 치고, 저러다 옷감이 다 닳아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울 지경이었다.
 
“자기가 사준 옷을 입고 있으니 늘 함께 있는 것 같잖아요.”
 
혹시 다른 옷을 더 사 달라는 뜻인가 싶어 머릿속이 웽웽거렸다.
 연하의 남자를 만나면서 가장 민감하게 신경 쓰이는 부분은 무엇일까.
외양상의 나이 차이, 정신연령의 문제? 그러나 내 경우에는 뭐니 뭐니 해도 ‘머니’였다.
 
일반적으로 남자와 데이트할 때,
 데이트비용을 대략 6:4 정도로 부담하자는 것이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 고수해온 기본원칙이었다.
스무 살 때만 해도 물론 그렇지 않았다.
그 당시라고 해서 남자한테 무조건 얻어먹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탔던 것은 아니다.
용돈을 받아 쓰느라 주머니 사정이 늘 빠듯하기도 했거니와, 더 섬세하게 말하자면,
남자와의 데이트에서 과연 여자인 내가 돈을 내도 좋은지,
지갑을 열 적당한 타이밍은 언제인지 등을 잘 몰랐다고 해야겠다.
 
이제 내 나이 서른하나. 아니, 서른 둘.
씀씀이의 불평등이 연인관계의 불평등에 미치는 미묘한 영향에 대해 충분히 알게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쳤다.
치사하게 계산대 앞에서 눈치 보기 싫어 몇 번인가 내가 냈더니

“낭비가 너무 심하다”

는 촌평을 남기고 이별을 고한 놈도 있었고,

입만 열면

“오늘 저녁에는 스테이크 사줘”

혹은

“이번 생일에는 아르마니 넥타이 사줘”

라고 졸라대는 놈을 만나보기도 했다.
균형 잡기는 항상 어렵다.
그리하여 언제부터인가 남자가 밥을 사면 내가 영화 값을 치르는 방식으로,
데이트 자금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연하남이 연상녀를 만나는 데 대해 흔히들 물질적으로 기대고 싶어서가 아닐까,
하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태오와 나의 관계만을 놓고 보면 그 의심은 결단코 틀렸다.
 둘이 같이 다니다가 돈을 써야하는 상황이 생기면,
태오는 당연하다는 듯 제 지갑을 꺼냈다. 어쩌다 내가 지갑을 열면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해서 무안해질 정도였다.
 
현대 청춘 남녀의 일반적 패턴으로 보아,
어쩌다 한두 번이면 몰라도 정기적인 만남을 지속하는 사이에서는 꽤나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의 미덕이라고, 처음에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현재 스코어 돈 나올 구멍이라고는 찾기 어려운 백수 신분임을 깨닫는 데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끔 부모님 슈퍼마켓을 봐주고 용돈을 타는지는 몰라도,
그 외에 별다른 아르바이트는 전혀 하지 않는 눈치였다.
 
“원래 들어가기로 한 영화 프리프로덕션이 계속 늦춰지고 있어요.
지금 섣불리 다른 일 시작하면 큰일 나요.”
자, 상황을 한번 정리해보자.
돈 한 푼 안 버는 일곱 살 연하의 남자친구가,
꼬박꼬박 월급받는 직장인 여자친구를 먹여 살리는 형국이었다.
고맙다.
고마워서 눈물이 난다.
그렇지만 우리가 과연 어떤 ‘품질’의 데이트를 하고 있을지는 안 봐도 뻔하지 않은가!
태오가 너무나 스스럼없이 즐겨 찾아 들어가는 곳은 한 줄에 천원짜리 김밥을
주력으로 내세우는 분식체인점과, 각종 패스트푸드점이었다.
 
밥! 물론 좋아한다.
영양만점에 먹기 쉽고 맛도 있다.
혼자 한 끼를 가볍게 때울 때, 또는 부담 없는 직장동료들과 우르르 몰려갈 때
이보다 더 만만한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햄버거! 당연히 좋아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에는 이 맛있는 음식을 밥 대신 하루 세끼 김 주식으로 먹고 살면
왜 안 되는지 속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20대 중반이 넘으면서부터는 가끔이야 괜찮지만 자주 먹으면 소화도 안 되고
왠지 장이 더부룩한 느낌에 시달리게 된다.
 
돈이야 얼마든지 내가 내도 좋으니,
어린 남자친구의 얇은 주머니 사정과 예민한 자존심에 대해 눈치 보지 않고
내 또래의 다른 여자들처럼 데이트하고 싶다는 것. 그것이 그리 큰 욕심일까?
새해의 첫 데이트, 천원짜리 김밥을 가운데 놓고 태오와 마주 앉아 있자니
설명할 길 없는 서글픔이 퐁퐁 솟아올랐다.
그래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불쑥 물었다.
 
“자기도 이제 스물다섯 살인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
 
태오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이현 글/권신아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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