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아리랑

169. 음모, 음모

오늘의 쉼터 2017. 7. 11. 16:28

169. 음모, 음모



여자들이 당산나무 아래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면에서 머시라고 허드랑가"


"여자덜얼 어쩌겄다는 법이여"


"여자덜도 잡아간다는 법이라든디"


"여자덜얼 멀라고"


"무신 그리 얄랑궂인 법이 있능고"


"여자도 징용 끌어간다는 것이랑마."


"머시여 여자럴"


여자들은 불안한 얼굴로 중구난방 떠들고 있었다.


"정읍댁언 어째 이리 안 온고."


"하매 올 때가 되았는디."


"구장이 또 질게 새살까는갑다."


"구장이 원체로 새살까기 좋아헝게."


"구장이 멀 알랑가"


"구장이 면사무소서 다 듣고 왔다는 것 아니여"


더위가 한풀 꺾여 당산나무에서 우는 매미들의 울음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들녘의 초록빛도 생기를 잃으며 노란 기색을 엷게 내비치고 있었다.

 9월로 접어든 절기의 변화는 미묘하고도 정확했다.

성큼 높아진 하늘가로는 새하얀 뭉게구름들이 탐스럽고도 아름답게 뭉클뭉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려, 저그 정읍댁 온다."


"어찌 저리 걸음이 천근이다냐"


"일이 안 좋은감만"


"그럴란지도 몰르제."


여자들은 정읍댁에게로 우를 몰려갔다.


"무신 법이랴"


"여자덜 끌어간다는 것이 참말이여"


"다 헛소문이제 "


여자들은 정읍댁을 둘러싸며 다투어 물어댔다.


"아이고메 이 사람덜아, 저 그늘로 가서 차근허니 말허세"


정읍댁이 손을 내저었다.


"그려, 늦더우에 이마빡 까지네."


"이, 정읍댁이 심들 것이로구마."


여자들은 다시 당산나무 아래로 빠른 걸음들을 옮겼다.


정읍댁이 돌 위에 걸터앉고 다른 여자들은 그 앞에 둘러앉았다.


"고것이 무신 말인고 허니 말이여,

만으로 열두 살보톰 마흔 살꺼정 배우자 없는 여자덜얼 끌어간다는 것이드만"


"배우자 배우자가 머시여?"


"어따, 무식허먼 눈치나 보고 가만히 있어야 본전 찾는 법 아니여."


"배우자가 서방 아니여, 서방."


정읍댁의 대꾸였다.


"글먼 첨보톰 쉰 말로 헐 것이제 뜸금없이 유식헌 문자 쓰고 긍가."


"아, 서방이고 임자고 딴소리 말어 집구석마동 난리판굿 일어날 일놓고."


"아니 글먼, 그놈으 소리가 큰애기고 과부고 임자없는 여자덜언 다 잡아가겄다는 것 아니여."


"그렁게 말이여."


"아아니, 요런 환장헌 놈덜이 있능가"


"아니여, 만으로 열두 살이먼 그냥 나이로 열시 살 아니라고

고것이 어디 큰애기 축에 들기나 허간디 솜털도 안 가신 풋것덜이제."


"긍게 말이시 그 여자덜 끌어다가 어디다 써묵을라고 그런디야"


"구장 말로넌 일본공장에 보낸다등마"


정읍댁의 힘없는 대꾸였다.


"일본 공장혼 여자덜이 공장에 가서 무신 일 허라고"


"남자덜이 다 전쟁터에 나갔응게 여자덜이 공장일얼 히야 된다는 것이여."


"아이고 오살헐 놈덜, 즈그 왜년덜 끌어가제 어째 우리 조선여자덜얼 끌어가."


"이 개잡녀러 새끼덜이 남정네라고 생긴 것언 다 끌어가등마

인자 여자덜꺼정 끌어갈라고 지랄발광이구나.

아조 조선사람 씨럴 말리자고 작정얼 혔구만."


"아니여 아니여. 쓰잘디 읎는 소리덜 그만 허고, 안 끌려갈 방도럴 찾어얄 혔구만."


"잉, 그래야제."


"그 방도가 머시간디"


"아, 정신채려. 얼렁얼렁 시집보내 임자럴 맨글먼 될 것 아니여."


"맞네, 맞어. 왜놈덜도 헛똑똑이여."


"음아, 헛똑똑이넌 바로 자네시워쩌."


"아, 둔덕이 있어야 등얼 비비고, 실이 있어야 바늘을 쓸 것 아니겄어.

총각이란 총각언 징병이다 징용이다. 다 끌어갔는디 무신 수로 시집얼 보내아이고메,

그러고 봉게 그러시."


"얼랴, 요 일얼 으쩐댜…"



"참말로 찰났네. 우리 집언 딸이 싯이여."


"딸 없는 집이 어디 있간디."


"요런 백여시 겉은 놈덜이 총각덜 먼첨 다 끌어가서 피허지 못허게 해놓고 그런 법 맨글었구나"


"영축없이 그렇구마."


"째보고 봉사고 사우 삼을 수도 없는 일이고 참말로 큰탈나부렀네."


여자들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한숨들을 토해냈다.

새로 생긴 법에 대해서 여자들이 이렇게 관심을 나타내는 것은 전에 없는 일이었다.


"전에 같으면 남자들이 나섰겠지만 그럴 만한 남자들은 다 징용에 끌려가서 없었던 것이다."


"딸년덜얼 다 죽일 수도 없고…"


"무신 놈으 시상이 갈수록 이 지랄인고…"


"참말로 더는 못살겄는디…"


여자들은 간 한숨을 끌며 하나 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연희네는 자기집안에 해가 미치지 않게 된 것을 천만다행으로 안도하며 슬금슬금 자리를 떴다.

그러나 남편 걱정으로 가슴은 날마다 타들고 있었다.

어디에 있는지 편지라도 한 장 왔으면 좋으련만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나 남편이고 아들이고 징용에 끌려간 집치고 편지를 받은 집은 하나도 없었다.

분명 편지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편지를 보내지 않을 남편이 아니었다.
여자들이 그렇듯 신경 쓰는 새 법은 다름 아닌 여자정신대근무령이었다.

총독부에서는 지난달 8월 23일 그법을 공포하고 즉각 시행을 전국 행정 조직에 하달했다.

그건 군대위안부를 더욱 적극적으로 조달하기 위한 관권의 동원이었다.

그 법은 전국적으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딸 가진 집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혼인을 빨리 시키려는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여자의 정조를 생명과 맞바꿀 만큼 중하게 여기는 것은

계층이나 직업에 차이가 없이 공통된 절대가치였다.

그런 사람들이 시집 안 간 딸을 타국으로 떠나보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위안부로 끌려간 여자들은 그나마 개인적으로 은밀히 접촉해거 사기를 치거나,

아무도 모르게 납치를 해갔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로 덮어져 온 것이었다.

그런데 총독부가 여자동원을 법으로 공포하고 나서자 삽시간에 사회문제를 야기시킨 것이었다.
그런데 혼인소동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혼인소동과 함께 도처에서 총독부를 비난하는 소리와 일본에 대한 반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징용이고 징병언 그렇다고 쳐. 처녀덜꺼정 끌어가겄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여하먼,

요것언 말이 안되는 소리여. 총독부가 히도 너무허는 것이제."


"처녀허고 사기그릇은 내돌리먼 금가드라고, 동네 안에서 내돌려도 금이 가는 판에

일본으로 내돌리먼 그것이 어찌 되겄어."


"두말허먼 잔소리여.

아, 제사공장 방직공장 댕기는 처녀덜이 다 무신꼴 났는지 보먼 알 것 아니여.

조선 안에서도 태반이 신세 베래분 판에 부모 눈 없는 일본으로 감사 더 말헐 것이 머시가 있어."


"글먼 요것일 으째야 쓰꼬"


"으쩌기넌 으쩌. 막아야제."


"막아 무신 수로."


"어허, 그리 물컹허니 못난 소리 말어.

딸년덜 다 신세 망쳐갖고 와서 시집도 못 가고 평상 뒷방살이 시킴서 속 썩어 내래앉는

 꼴 안볼라면 딸 가진 사람덜이 미리 한 덩어리로 물쳐갖고 나서야제."


"어이, 그 말 한분 씨언허니 잘허능구만그랴."


"맞어, 그리 나스먼 되겄구마."


"하먼, 딸자석 신체 망치는 판에 무서울 것이 머시여."


"그 말 한분 잘혔네. 은제꺼정 이리 당허고만 살 것이여."


"그려, 당헐 일이 따로 있제. 사람이 당허고 사는 것도 한도가 있는 것이여."


"하먼 요분참에 총독부가 아조 쌩똥 싸게 맨글어야 혀."


"그렇고말고. 총독부도 지맘대로 안되는 것이 있다는 걸 봬줘야 혀."


동네에서 오가던 말은 이렇게 장터로 모아지며 힘을 받았다.

그런 심상치 않은 동요는 끄나풀이나 형사들을 통해 즉각즉각 보고되었다.
읍장 하시모토는 경찰서와 자체 조사를 통해서 그런 민심 동요가 심각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총독부에서는 20만 명에서 30만 명의 정신대를 동원할 모양인데 읍장으로서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도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여자정신대 문제로 민심의 동요가 심각함 가급적 도회지와 중류층이상은 피하면서 비밀리에

요령껏 실시하여 민심의 동요를 최대한 막을 것.
하시모토는 도청의 기동력에 감탄하고, 또 그 해결책에 감탄했다.
가급적 도회지와 중류층 이상은 피하면서.…

그건 바로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을 뚫어주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말을 뒤집으면 가급적 벽촌과 하류층에서 정신대를 동원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김제읍은 곡창지대의 핵심이면서 군산과 전주를 잇는 중간지점의 도회지였다.

자신은 자연스럽게 정신대 동원 의무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만약 체면치레가 필요하면 변두리의 하류층에서 무슨 꼬투리든 잡아 약간 끌어내면 될 거였다.
히시모토는 께름칙해 왔던 기분이 활짝 밝아지는 것을 느끼며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에에 또, 정신대 동원 문제로 민심이 별로 좋지 않다는 보고 내용은 잘 알고 있고,

나도 그 사실을 직접 확인해 보기도 했소.

그동안에 민심 동향이 또 어떻게 변해 가고 있는지,

어디 파악하고 있는대로 기탄없이 말해 보시오.
히시모토는 있는 껏 거드름을 피우며 예닐곱 명의 간부들을 휘둘러보았다.


"예에… 말씀 사뢰기 죄송합니다만 민심이 가라앉지를 않고 악화일로에 있습니다."


오른쪽에 앉은 간부가 눈동자를 떨군 채 어렵사리 말했다.


"악화일로라…, 다음"


하시모토는 왼쪽 간부에게 턱짓했다.


"예에… 저 역시 심기 불편하실 말씀을 올리게 되어 면목없습니다만

민심이 날로 나빠지고 있음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날로 나빠진다…, 거 왜 그 모양인가. 다음"


하시모토의 턱끝은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예에… 그날로 나빠지는 원인이 주로 여자들이 입을 쉴 새 없이 놀려대서

 자꾸 나쁜 소문이 증폭되고 또 증폭되고 하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여자들이 입방아를 찧어댄다…,

여자라는 종자들의 주둥이는 어디서나 문제지. 다음"


하시모토의 척은 다시 왼쪽으로 돌아가며 혀를 찼다.


"예에… 조선속담에 여자들 악담에는 오뉴월에도 서릿발이 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자들이 모여 대일본제국과 총독부를 향해 온갖 악담들을 퍼붓고 있는데,

성전을 수행하고 있는 마당에 그건 몹시 불유쾌한 것인데 어찌해야 좋을지

참 난처한 바가 없지 않습니다."


"으으응, 그것 재수 없는 일이지. 여자는 백여우요, 요물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걸 모조리 불경죄나 유언비어 유포죄로 잡아넣을 수도 없고…, 다음"


하시모토의 눈초리에 독이 묻어나고 있었다.


"예에… 저도 심해지고 있다는 말씀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자아, 그 정도면 되었소. 에에 또 문제는…,

십분 좋게 보아주어 여자들이 자기네 딸들 징용당할까봐

모성애가 발동되어 민심을 어지럽히고 있는데,

그걸 가라앉히는 방법은 단 하나,

자기네 딸들이 징용당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하는 것 아니겠나?"


하시모토는 간부들을 눈 아래로 깔아보며 마치 무슨 엄청난 예언이라도 하듯이

목소리에 거만을 묻혀냈다.


"예에,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예에,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간부들은 하나같이 나부와 아첨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를 내며 머리를 두 번, 세 번 조아렸다.


"다들 똑똑히 들으시오.

내일부터 각 동네별로 구장 반장 등을 총동원하여 앞으로 정신대 문제에 대해서

떠들거나 악담을 하는 경우에는 바로 그 집 딸을 징용한다는 점을 강력히 주지시키지오.

그리고 구장 반장들에게는 바로 그런 집을 적발해 내라고 강력히 지시하시오.

지금 내가 내린 지시가 제대로 전달되었는가 안됐는가의 여부는 경찰력을 통해 확인 하겠소.

모두 알아듣겠소."


히시모토는 위압적으로 명령을 내리며 간부들을 휘둘러보았다.


"예, 알겠습니다."


"예,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간부들은 다시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간부들의 얼굴에는 석연찮은 빛과 주저하는 빛이 역연했다.

하시모토는 가늘게 뜬 눈으로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하아, 왜들 그리 찜찜한 얼굴들이요 할 말들 있으면 기탄없이 히시오."


히시모토는 담배를 탁자에 톡톡 두들기며 묘하게 웃고 있었다.


"예에…읍장님 지시사항은 명심, 시행하겠사옵니다만

그 지시대로 읍민들이 더 이상 떠들지 않고 일제히 입을 닫아버리는 경우에는

그게 좀 난처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오른쪽 첫 번 째 간부가 말끝을 맺지 못하고 어물거리며 불안한 눈길로

하시모토의 눈치를 살피기에 분주했다.


"그런 걱정들인 줄 알았소.

그건 내가 알아서 책임질 테니까 여러분들은 내 지시나 확실히 시행토록 하시오.

만약 차후에 우리 읍에서 입놀리는 자들을 내가 발견할 시는 여러분들을 문책할 것이니

그리들 아시오. 이상 회의 마치겠소."


히시모토는 먼저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간부들은 엉거주춤 일어나면서 여전히 미심쩍고 의아스러운 얼굴들이었다.

하시모토는 창 밖을 내다보고 담배를 빨며 비식이 웃고 있었다.

도청의 지시가 어차피 도회지 제외로 방향이 잡히고 그 일을 공개적으로

추진하기를 원하지 않는 이상 그 지시를 곧이곧대로 밝힐 필요는 없었다.

그건 상부의 지시에 급급하는 것 같아 읍장의 체면이 서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방법대로 해야만 민심을 일시에 잠재울 수 있는 동시에

읍장의 막강한 권한을 읍민들에게 실감시킬 수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구장이나 반장들 중에서 과잉충성자들이 있어서

계속 입놀리는 자들을 적발해 오는 경우 그때는 마음 놓고 징용을 할 수 있었다.

다수세력이 개개인의 이익을 따라 분산되어 버린 상태에다가 위반사항까지 있으니

그것이야말고 임자 없는 밤 줍기인 것이었다.

하시모토의 계산은 적중했다.

김제읍에서는 이틀 사흘 사이에 정신대 동원에 대한 불평불만은 마당의

눈을 쓸어버린 듯 말끔하게 사라졌다.
그 사실을 확인한 하시모토는 홍무과장을 은밀하게 불렀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으시오.

앞으로 사오일 안으로 변두리지역의 하층민들을 중심으로 정신대의 대상이 되는

딸을 가진 집들을 한사오 십 가구 조사하시오.

하층민이되 말썽을 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없는 집으로 신경 써서 고르시오.

 이 일은 총무과장만 알아야 하고, 추진과정에서도 극비리에 진행되어야 하오.

특히 신경 써야 할 것은 한 동네에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오.

분산, 분산시켜야 하는 것을 잊지 마시오.

이번 일을 잘 처리하면 내 그 공을 잊지 않겠소. 할 수 있겠소. 할 수 있겠소."


하시모토는 그 목소리도 낮았다.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 총무과장을 믿겠소."


하시모토는 은밀하게 웃으며 총무과장의 어깨를 두들겼다.


"예, 반드시 책임완수를 하겠습니다."


총무과장은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듯 낮은 대답에 힘이 뻗치고 있었다.

총무과장을 내보낸 하시모토는, 총독부가 하는 일은 너무 서툴러.

 내가 군문에 발을 들였더라면 딱 총독감인데,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까짓 여자 2,30만을 동원하는 데 번거롭고 어리석게도 법이고 뭐고 공포할 것이 없는 일이었다.

행정조직에 긴급지시를 내려 전국 벽촌의 읍·면에 할당을 하면 아무 말썽 없이

감쪽같이 해치울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걸 괜히 법을 만들고 한 덩어리로 뭉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총독부 고급관리라는 것들은 그저 권세나 떵떵거리고 치부나 이골 나게 잘했지

세상 판세 돌아가는 인심을 모르고, 일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묘수도 모르는 자들이었다.

기껏 한다는 짓들이 탁상머리에 둘러앉아 무작정 이 법, 저 법 만들어 대포를 쏘아대는 것만

능사로 삼는 아둔하고 요령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것이 하시모토였다.

하시모토는 제아무리 잘난 척해 봤자 정신대라는 것이 왜 필요하며

그동안 어떤 방법으로 조달되어 왔는지를 종합적으로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인

지방의 읍장일 뿐이었다.

그러나 총독부에서는 전쟁상황은 급박해져 가고,

군인들의 사기는 떨어져 가고, 군대위안부들은 대량으로 필요해져 가고,

군인들의 사기는 떨어져 가고, 군대위안부들을 대량으로 필요한데

그전처럼 소극적인 방법으로는 필요한 여자들을 충당할 수 없으니까

단시일 내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법을 앞세워 적극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일본이 군용위안소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만주를 침략한 직후인 1931년이었다.

그때는 유곽에서 몸을 팔던 여자들을 모아 데려간 것이었다.

그런데 매춘부가 아닌 일반 처녀들 1백여 명으로 일본군이 육군위안소를 직영을

 개설한 것은 중일전쟁이 터진 다음해인 1938년이었다.

이때부터 일본군은 일본의 낭인패거리들과 조선의 친일파 매춘업자들을 동원해

 돈벌이 좋은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

여점원을 하면 돈도 벌고 동부도 할 수 있다, 간호부는 사람 대접받고 돈도 많이 벌고,

의사하고 결혼도 할 수 있다.

이런 거짓말을 꾸며대서 사기극을 벌이며 처져들을 군용 위안부로 끌어갔다.

그러다가 1974년 12월 말에 태평양전쟁의 전선 전역에 걸쳐 기지위안소 개설을 명령했다.

그리고 일본군은 조선여자들의 인원수를 물품대장에 올려놓고 각 부대에 물품으로 배급했다.
이때부터 총독부에서는 근로정신대로 위장된 종군위안부들을 손쉽게 끌어가기 위해서

친일파 지식인들과 문인들을 동원했다.

그들은 순회강연을 하고 잡지에 글을 쓰고 해서 총독부가 원하는 만큼 조선여성들을

종군위안부나 근로정신대로 끌어가는 데 큰 몫을 담당했다


시인 주요한은 1941년 국민문학 11월호에 댕기라는 시를 썼다.


나라의 부름받고 가실 때에는
빨간 댕기를 드리겠어요
몸에 지니고 싸우시면
총알이 날아와도 맞지 않아요.

북쪽에서 돌아오는 기러기는
갈대 밑에 재우겠어요
꿈에 돌아오시는 당신은
원앙침에 주무시게 하겠어요.

아무르의 얼음도 여름에는 녹겠지요
녹았어도 소식이 없는 여름일랑
까만 댕기에 하이얀 간호복 입고
저도 나라 위해 있는 힘 다 바치겠어요.

서강 저녁놀의 타는 듯한 붉은 핏빛은
장렬하게 싸우다 산화하신 당신의 피
무언의 개선, 마을 역 앞에서
하이얀 댕기 드리우고 만세를 외치겠어요.


그리고 시인 노천명은 1942년 3월 4일자 매일신보에 부인근로대라는 시를 썼다.


부인근로대 작업장으로
군복을 지으려 나온 여인들
머리엔 흰 수건 아미 숙이고
바쁘게 나르는 흰 손길은 나비인가

총알에 맞아 뚫어진 자리
손으로 만지며 기우려 하니
탄환을 맞던 광경 머리에 떠올라
뜨거운 눈물이 피잉 도네

한 땀 두 땀 무운을 빌며
바늘을 옮기는 양 든든도 하다
일본의 명예를 걸고 나간 이여
훌륭히 싸워 주 공을 세워주

나라를 생각하는 누나와 어머니의 아름다운 정성은
오늘도 산만한 군복 위에 꽃으로 피었네


또한 시인 모윤숙은 친일의 시들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한 직후에 조선임전보국단이란 친일어용단체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우리들 여성의 머릿속에 대화혼이 없고 보면 이 위대한 승리의 역사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며 여성들이 일제의 전시동원체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나설 것을 역설했다.
그리고 이화여전 교장인 김활란은 1942년 신세대 12월호의 징병제와 반도여성의 각오라는

글에서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놨다.

반도여성은 웃음으로 내 아들과 남편을 전장으로 보내야 한다며 여성들이

일제의 전시동원에 앞장서라고 충동질하고 있었다.
그런데 1944년에 들어서면서부터 일본군의 전황은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병사들의 사기도 저하되고 있었다.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서 종군위안부들이 대량으로 필요하게 되었다.

그 급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독부에서는 법이라는 칼을 휘두르고 나선 것이었다.
김제경찰에서는 날마다 가난에 찌들려서 메마르고 궁상스러운 사람들이 몇 명씩 끌려와

폭력을 당하고 있었다.


"누가 그랬어. 빨리 대"


형사가 싸리나무 회초리로 상투 튼 오십객의 남자 목을 후려쳤다.


"아고. 아이고메에에… ,

그냥 장터서, 장터서 들은 말이랑게라.

 긍게 누가 그랬는지 어찌 알겄능게라.

죽을죄럴 졌구만이라. 살래주시게라, 살래주시게라."


겁에 질리고 양쪽 입꼬리에 침버캐가 낀 남자는 손을 싹싹 비비댔다.


"이 새끼 이거 거짓말하는 것 봐.

그런데 왜 그말을 여기저기다 퍼뜨리고 다녀.

누가 시켰지 그게 누구야. 빨리 대아크크크… 아니랑게라,

아니랑게라. 하도 요상시런 말이라 혀본 것이제 시킨 사람 없구만이라.

지가 거짓말허면 개아덜이구만요. 아이고 참말로,

이 가심얼 팍 짜개 뵐 수도 고. 잘못혔구만이라우, 잘못혔구만이라우."


회초리로 후려칠 때마다 붙에 덴 것처럼 몸을 솟구치는 남자는 그저 비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너 같은 놈은 어찌 되는지 알아 그따위 불온한 말로 민심을 어지럽히는 놈들은 다 사형이야, 사형"


형사는 남자를 험상궂게 노려보며 쪽 편 손바닥으로 복을 자르는 시늉을 해보였다.


"아이고메에에, 살래주시게라우, 사시넌 안 그럴 것잉게 한분만 살래주시게라우."


"너 같은 놈은 즉각 죽여야 해. 따라와."


형사는 남자의 벽살을 잡아끌고 유치장으로 데려갔다. 밤이 되자 형사가 나타났다.


"이봐, 너 정말 누가 시켜서 그런 말 퍼뜨리고 다닌 게 아냐?"


"하먼이라, 하먼이라. 하늘이 내래다보고 있구만요"


남자는 곧 울 듯이 철창을 붙들고 매달렸다.


"그래도 소용이 없어. 그런 말을 하고 다닌 죄는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


형사의 말은 싸늘했다.


"아이고메, 살래주시씨요, 살래주시씨요."


"글쎄에, 살아날 길이 있기는 있을 건데 말야…"


"아이고메, 무신 일이고 시키는 대로 헐 것잉게 살래만 주시씨요".


"글쎄에, 그게 정말이야."


"야아, 야 살래만 주시씨요."


"그럼 내가 손을 써볼 테니까 딸을 정신대로 보낼 수 있어?"


"야아, 그러제라."


"그럼 여기다가 지장 눌러봐."


남자는 형사가 내민 인주를 엄지손가락에 묻혀 종이에 손도장을 눌렀다.
다음날이면 또 다른 사람이 끌려와 취조를 당했다.


"이봐, 왜 남의 집 물건을 훔쳤지 그것도 일본사람 상점 것을 말야."


형사가 막대기로 책상을 톡톡 치며 여자를 노려보았다.


"야아, 하도, 배가 고파서…"


옷도 남루하고 얼굴도 마를 대로 마른 여자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 상점에서 몇번이나 도둑질을 했지."


"아, 아니구만이라. 요분이 첨이구만이라."


"잔소리 마라."


형사가 막대기로 책상을 내리쳤다. 여자가 화들짝 놀라며 바들바들 떨었다.


"그 상점에서 물건을 자꾸 도둑맞는 걸로 아는데, 바른 대로 대."


형사가 눈을 치뜨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랑게라, 아니어라. 참말로 요분이 첨이어라."


부들부들 떠는 여자의 말에 울음이 묻어나고 있었다.


"거짓말하면 죄가 더 커진다는 걸 몰라 좋은 말로 할 때 바른 대로 대."


"아이고메, 사람 환장허겄능거.

잼편이 징용 나가고 새끼덜 믹에살리니라고 하도 배럴 곯다봉게

나도 몰르게 그리 된 것이구만이라. 참말로 첨이어라."


여자는 떨면서 손을 비비며 빌고 있었다.


"이게 정말 맞아야 정신차리겠어?"


형사가 막대기로 여자의 어깨를 후려쳤다.


"워메"


여자의 몸이 들썩했다.


"더 맞기 전에 빨리 대!"


형사가 또 막대기를 치켜들었다.


"아니어라, 아니어라. 나 복장 터져 죽겄소. 딱 첨이랑게라."


손을 싹싹 비비대는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형사는 여자의 어깨를 잡아챘다.


"아이고메, 살래주시씨요, 살래주시씨요.

 나가 1년이나 징역살이럴 허먼 우리 새끼덜 다 굶어죽소.

한분만 살래주시씨요."


여자는 유치장으로 끌려가며 발버둥치고 있었다.


"아이고메 , 아이고메, 요 이얼 으째야 쓸끄나.

우리 새끼덜 다 굶어죽게 생겼는디 으째야 쓸끄나아."


여자는 우치장에 갇혀 통곡을 했다.


"이거 왜 이리 시끄럽게 떠들어. 여기가 당신네 안방인 줄 알아 당장 입 닥쳐."


다른 형사가 나타나서 소리쳤다.

그런데 그 형사는 목소리만 클 뿐 아까의 형사에 비해 썩 부드러운 태도였다.

여자는 그 기미를 눈치채고 철창에 매달렸다.


"나으리, 나으리, 나 잠 살래주시씨요.

 나가 징역살이허먼 우리 불쌍헌 새끼덜 다 굶어죽소."


"내가 아까부터 들어보니 사정이 딱하기는 한데,

아주머니가 지은 죄는 있고, 자식들은 살려야겠고,

아주머니가 내 누이동생 나이 또래라 도와주고 싶기는 한데…,

내 생각으로 아주머니가 풀려날 길은 딱 한 가지가 있소."


"고것이 머시다요 풀려나기만 험사 무신 일이고 다 허겄소. 나 잠 살래주시게라."


여자는 철창 사리로 곧 머리를 내밀 것 같은 기세였다.


"정말이오?"


"하먼이라, 하먼이라."


여자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러니까 말이오, 큰딸을 정신대에 보내고 다른 자식들을 살리도록 하시오."


여자의 얼굴이 문득 굳어졌다.


"머시나, 우리 큰딸이 열시 살밖에 안 묵었는디라."


"만으로 열두 살부터니까 딱 맞소."


"그 에린 것얼…"


"그게 무슨 소리요. 학교에 다니면 국민학교 6학년인데.

지금 국민학교 6학년들이 당당하게 정신대에 나가는 걸 보지도 못했소"


여자는 철창을 놓고 주저앉으며 기운 다 빠진 소리로 중얼거렸다.


"벨수없제라. 남은 자석덜 싯얼 살래야 헝게…"

          

'소설방 > 아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1. 아이누족의 온정   (0) 2017.07.11
170. 패전의 길   (0) 2017.07.11
168. 걸어서 반 만 리   (0) 2017.07.11
167. 거짓말의 현장   (0) 2017.07.11
166. 하늘이여 하늘이여   (0) 2017.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