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아리랑

166. 하늘이여 하늘이여

오늘의 쉼터 2017. 7. 11. 01:21

166. 하늘이여 하늘이여



탄광촌에서는 바다가 바로 바라보였다.

온통 석탄가루를 뒤집어쓰고 있는 탄광촌과 맑고 푸른 바다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수평선 드넓게 펼쳐진 해맑은 바다 때문에 탄광촌은 더욱 칙칙하고 지저분해 보였고,

건물이며 간판들이 거무칙칙하다 못해 사람들까지 석탄 때에 절어 있는 탄광촌 때문에

바다는 한층 더 맑고 푸르게 빛나 보였다.
그런데 탄광촌이 산 속에 있지 않고 바다와 인접해 있는 것부터가 희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산맥이 해안선을 따라 뻗어 있는 탓이었다.

급경사의 긴 산줄기가 드리우고 있는 산자락은 해안에서 미처 1킬로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사할린에는 두 개의 산맥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리고 있었다.

서쪽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산줄기가 서사할린산맥이었고,

동쪽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산줄기가 동사할린산맥이었다.

드넓은 평야지대는 그 두 산맥 사이에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서사할린산맥에서는 특히 석탄이 많이 생산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이 광산이 이곳 삭조르였다.

삭조르스크의 삭조르라는 러시아말은 광부라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삭조르스크는 광부도시가 되는 것이었다.

서사할린산맥을 따라 해안에 형성된 도시인 우글레고르스크. 일린스크 홀름스크 네벨스크 등은

모두가 탄광도시들이었다.

그런데 그 도시드은 바로 해안에 있는 까닭에 항구도시이기도 했다.

삭조르스크를 위시해 그 도시의 탄광들은 모두 무력을 앞세운 일본의 대기업인

미쓰비시나 미쓰이가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탄광에서 캐낸 무진장한 석탄은 가까운 항구에다 배를 대고 아주 손쉽고 펴리하게 실어갔다.

일본사람들은 사할린을 가라후토라고 불렀다.


"이거 봐 김 씨,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겠어? 이러지 말고 말 들어."


십장 주 가는 김장섭을 달래듯이 말했다.

주가는 김장섭 일행을 조선에서부터 사할린까지 인솔해 와 그대로 십장 노릇을 해왔던 것이다.

그런 방법은 징용자들을 20명 단위로 쉽게 다루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었다.


"아니, 골백분 말혀도 소양없소.

나야 딴말에젖 딱 귀먹쟁이 되야부렀응게 인자 집이 보내더라 그것이요.

2년 계약기간 지낸 지가 발써 보름이오,

보름.김장섭은 팔짱을 끼고 빳빳하게 버티고 앉은 채 쟁정하게 니쳤다."


"글쎄, 누가 안 보내줄라는 거야? 전쟁이 심해져 데려다줄 배가 없다니까."


주 가가 눈꼬리를 세우며 짜증을 부렸다.


"하! 누구럴 빙신 팔푼이로 아시오?

재 자람덜 실어올 배는 있고 기한찬 사람덜 실어갈 배는 없다?

고것얼 말이라고 러고 앉었소, 시방?"


김장섭이 코방귀를 날렸다.


"어허, 그 배들이 조선으로 안 가고 군수물자 싣고 딴 데로 간다니까 그래."


"그렁게 누가 조선 땅 우리 집 앞에다 디려다돌라고 그러요.

일본 암디나 내래주먼 그담보톰이야 나가 알아소 찾어가겄다 그 말이랑게라."


김장섭은 털끝만큼도 기죽지 않고 십장한테 맞대거리하고 있었다.


"너, 정말 말 안 들을 거야! 경비대에 끌려가서 한번 쓴맛을 봐야 알겠어."


마침내 주 가가 책상을 내려치며 소리질렀다. 그는 곧 김장섭을 후려칠기세였다.


"맘대로 헛씨요. 내가 죽었으먼 죽었제 저는 탄광에 안 들어갈랑게."


김장섭은 목을 더 꼿꼿이 세웠다.

그러나 가슴에서는 찬바람이 섬뜩하게 일었다.

경비대에 끌려가서 병신 안 된 사람이 드물었던 것이다.

일본 경찰들로 짜인 경비대에 끌려가 매타작을 당하고 나와 시름시름 죽거나,

영영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알았어. 너 같은 놈은 더 이상 좋은 말로 할 필요가 없어.

잘됐어, 시범쪼로 쓴맛을 보여줘야 딴놈들도 꼼짝을 못할 테니까. 이 새끼, 썩 나가!"


주 가는 벌떡 일어서며 김장섭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이고메, 사람 잡네. 찰떡 묵디끼 약조럴 혔으먼 약조럴 지키란 것이제

나가 어디 못헐 말 큭소? 잘못헌 것이 없는 사람얼 으째서 패요,

패기럴, 끝꺼정 존 말로 히도 션찮을 것인디."


김장섭은 의자에서 굴러 떨어지듯 하며 정강이를 거머잡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는 한풀 기가 꺾여 있었다.


"이 새끼야, 그만큼 좋은 말로 했으면 됐지 얼마나 더 해.

뭐, 잘못한 것이 없어? 넌 이 새끼야,

선동죄야, 선동죄! 딴놈들까지 마음 들뜨게 만든 선동죄.

선동죄로 경비대에 끌려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저 바다에 처넣어 고기밥 만드는 거야. 이 새끼,

같은 조선사람이라 인정상 마지막오로 한번만 더 묻겠다.

어떡할 거야? 종용히 일할 거야, 또 까불 거야?"


김장섭이가 기가 꺾인 것을 알고 주가는 잔인하게 벼랑으로 몰아대고 있었다.

김장섭은 이를 앙다물었다.

아내와 자식들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너무 보고 싶은 얼굴들이었지만 참아야 하고…,

그리고 살아서…,

늦더라도 꼭 살아서 돌아가야 했다.


"…처자석덜 땀세 벨수없제라".


김장섭은 한숨과 함께 이말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섰다.


"…!"


주 가는 문을 밀고 나가는 김장섭의 빳빳한 뒷덜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상대방을 굴복시켰다는 유쾌감보다는 묘하게 마음이 켕기는 기분을 떼치지 못하고 있었다.

처자식들 땜에 참는 것이라는 김장섭의 말이 가슴을 찌르기도 했고, 완전히 꺾인 것이 아닌

그 태도가 신경에 거슬리기도 했다.


'저놈이 나이도 들고, 대가 세기는 센 놈인데…

그저 말썽 없이 돈벌이를 하는 게 상책인데 저걸 어찌해야 하나…'


주 가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김샌, 어찌 되았소?"


"말이 믹히등게라?"


옷을 빨아 절고 있던 열댓 명의 사람들이 김장섭을 맞으며 물었다.


"고런 지에미 붙어묵다가 좆대감지 뿐질러져 뒤질 좀이 나럴 선동죄로 경비대에 네미겄다는 것이네.

다 좆 털어분 것이제."


김장섭이 가래침을 내뱉으며 담배꽁초를 입에 물었다.


"그럴지 알었소."


"참 그좀 개좆겉은 놈이시."


"허, 뼈따구가 든 개좆언 양기에나 좋제.

왜놈덜 등에 업고 우리 피뽀는 것도 모지래서 경비대에 넘게?

고런 놈언 똥통에 구데기만도 못헌 놈이여."


"참말로, 못된 조선놈덜 놀아나는 꼬라지 허고. 진작에 다 오살육시럴 혔어야 허는디."


그들은 하나같이 풀이 죽으며 한숨들을 토해냈다.


"그나저나, 글먼 또 은제꺼정 이 놈으 탄가리 마심서 죽사리쳐야 된단게라?"


"아이고,나도 몰르겄네. 이 놈으 전쟁이 은제 끝날란지."


김장섭이 한숨을 쉬며 돌 위에 주저앉았다.

다른 사람들도 심란스런 얼굴로 쪼그리고 앉았다.

그 들의 얼굴은 잘 먹지 못하면서 중노동에 시달려 메마르고 찌들린데다가

석탄때까지 절어 있어서 너무 궁상스럽고 지저분해 보였다.


"참, 미치고 폴딱폴딱 뛰다가 양잿물 묵고 꼬드라질 일이시.

전쟁이 안 끝나먼 5년이고 10년이고 이염병 지랄얼 히야 된다 그말 아니여?"


"그렁게 말이여. 인자 다 망쪼든 신세로구만."


"요런 가쟁이럴 열두 발로 찢을 놈덜이 으째서 2년 약조럴 안 지키고

이리 사람얼 속이고 개지랄이여."


"아이고 이 사람아, 인자 속이는 것이 아니시.

애시당초 2년이란 것보톰 거짓말이고 속인 것이시."


"머시여? 참말 그럴랑가?"


"그려, 그럴란지도 몰르는디?"


"아, 왜놈덜이 거짓말허고 속인 것이 어디 한두 가지여,

시방. 징용 돈벌이가 소작질보담 훨썩 낫다고 허든 말부터가 다 거짓말이고 속임수 아니냔 말이여."

 
"그려, 개씹구년서 불거진 놈덜."


"아이고, 그나저나 처자석덜 다 굶어죽겄다."


"그렁게 말이여.고것덜이 얼매나 눈이 빠지게 기둘리겄어."


"아이고, 하매 다 굶어죽었을란지도 몰르겄다."


"워메, 가심 터져 죽겄네."


더 초췌해진 그들의 얼굴에는 슬픔과 울음이 번지고 있었다.


"다덜 기운 채리고 맘덜 강단지게 묵드라고.

 전쟁이야 누가 이기든 지든 끝장날 날이 있을 것이고,

우리넌 기연시 살아서 처자석헌트로 가야헝게."


김장섭이 손끝이 차들도록 빨아당긴 담재꽁초를 내던지며 불끈 일어섰다.


"빌어묵을, 요런 때 술이나 한잔 묵어야 허는디."


그들도 따라 일어서는데 누군가가 시름겹게 말했다.


"글씨 말이여.

술집이니 오리아니 있어도 십장이나 구미좀덜 독차지제 우리헌티야 그림에 떡이니…"


"참말로 뼛골 녹아내리게 공일날도 없이 일허고도 술 한잔도 못 묵는 요런 신세가

시상에 어디 또 있겄어."


"다 쪼그라진 신세차령허먼 머허겄어. 가서 밥때꺼정 마룻장 신세나지드라고."


"그려, 그래도 그것이 질로 실속있는 일이시."


그들은 다 맥풀린 걸음으로 터덕터덕 걸어 바로 뒤에 있는 막사로 들어갔다.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그러나 노무자들은 일요일에도 2교대로 일을 해야 했다.

그들은 6시간의 오전채탄을 하고 나와 옷을 빨았고,

그동안에 김장섭은 또 십장을 만나러 갔던 것이다.
그들이 말한 오리아는 사창가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었고,

청루라고도 했다. 사창가는 흔히 술집을 끼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일본퇴기들에다가 조선여자들도 섞여 있었고, 더러 중국여자들도 있었다.

노무자들은 술집도 그렇지만 여자들은 더욱 넘볼 수가 없었다.

한번 상대하는 데 2,3원씩이니 그들에게는 어마어마한 거금이었던 것이다.

술집이나 사창가는 탄광을 경영하는 미쓰비시나 미쓰이 직원들을 최고 고객으로 삼고 있었고,

그다음이 경찰이나 다른 장사꾼들, 그리고 세 번 째가 십장이나 구미들이었다.

구미란 조선사람들로 채탄 도급을 맡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십장도 그렇지만 구미들도 노무자들 사이에서 악질로 소문나 있었다.

그들은 일본회사들로부처 채탄 도급을 맡아 돈벌이를 했는데, 그 수법이 그야말로 악질적이었다.

그들은 노무자들을 폭력으로 위협해 단 한푼의 돈도 주지 않고 일을 시켜먹었다.

그들은 유곽에서 여자를 사들이듯 낭인조직을 통해서 노무자들을 사들이기도 했지만,

더 많이는 십장들에게 공급받고 있었다.

일반노무자들이 큰 사고를 내게 되면 그 처벌로 그들에게 넘겨졌던 것이다.

노무자들이 저지르는 제일 큰 사고가 도망가는 것이었다. 두

 번 도망가다 잡히는 사람은 더 말할 것 없이 구미들에게 넘겨졌다.

그들의 조직을 다꼬베아라고 했고. 다꼬베아(문어방)행이라고 하면 노무자들 사애에서는

죽는 길로 알려져 있었다.

왜냐하면 다꼬베아네서는 먼저 식사량이 형편없이 줄어들었고,

그다음에는 작업량이 불었고, 그리고 폭행이 극심했던 것이다.

그들은 한마디로 일본의 보호를 받고 있는 조선폭력단들이었다.

탄광회사들은 정부에 요청해서 징용제에 따라 노무자들을 확보했다.

그리고 조선인 십장들을 고용해 노무자들을 다스리게 했다.

또한 한쪽으로는 구미들과 선을 대고 말썽을 일으키거나 저항적인 노무자들을

골라내 부리게 하고 있었다.

그들은 돈을 미끼로 하급관리자들을 보두 조선사람들로 배치하고는 자기들은

뒤에서 편하게 조정만 하는 것이었다.

큰 회사들이 전시호황을 주리고 있는 탄광촌의 유흥가는 꽤나 흥총거렸다.

그러나 노무자들은 그것 때문에 더 생활의 고통을 겼고 있었다.

그들은 술을 마시고 싶고 여자를 사고 싶은 욕구를 꾹꾹 참고 이겨야 했던 것이다.

젊은 남자들로서는 특히 여자에 댜한 욕구를 참아내야 하는 것이 큰 고역이고 고통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한 달 임금은 18원이었다.

 거기서 밥값을 제하고 받는 것이 평균 6원이었다.

거기서 절반인 3원은 무조건 저금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 찾을 수 있다는 그 저금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만약 거부하게 되면 충성심없는 불령선인으로 몰려 경비대를 거쳐 다꼬메아행을 피할 수가 없었다.

나머지 3원을 집에 송금하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도 송금할 수가 없었다.

배급 나오는 담뱃값 술값, 그리고 낡아빠진 옷을 꿰매입다 못해 한 벌이라도 사게 되면

3원은 모자라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회사측에서 송금에 대해서는 노무자들의 자유에 맡겼다.

그건 관대해서가 아니라 잇속 때문이었다.

노무자들은 집에 한 푼도 보내지 못하는 것을 몹시도 가슴 아파 하고 안타까워했다.


"바다가 저리 시퍼런히 존디 빠져 죽지도 못허고…"


한 사람이 침상에 벌렁 드러누으며 맥빠진 푸념을 했다.


"죽을 수 있는 팔자넌 아무나 타고나간디."


다른 사람도 드러누우며 한숨을 쉬었다.

침상 여기저기에는 사람들이 웅크리고 누워 잠이 들어 있기도 했다.

막사 안은 가운데가 통로였고. 양쪽이 무릎 높이의 침상이었다.

막사마다 100명씩 수용되어있었다.

그러다가 사고로 죽거나 다꼬베아행이 생기게 되면 인원이 줄어들었다.

그 자리를 새로 오는 노무자들이 채웠다.


"어이, 다덜 들어보소. 쩔뚝발이 박 씨가 죽었다능마."


한 사람이 뛰어들며 외쳤다.


"머시여?"


"으찌서?"


"언제 말이고?"


놀란 사람들의 물음이 한꺼번에 터졌다.


"이, 사나흘 됐다는디,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것이여."


"누가 죽인 거 아이가?"


"아니여, 살기가 에로와 죽었다는 것이여. 주머니서 유서가 나왔당게…"


"장례넌 어찌 되고?"


"그날로 내다묻었당마."


"참말로 절통헐 일이시. 타국 땅서 죽었시니."


"그 사람, 살기가 에로와서 죽은 것만은 아닐 기여.

고향에 못 가서 상심히서 죽은 것일 기여."


"그려, 다리빙신언 되았제, 배는 곯제, 집이넌 갈 질이 막막허제,

그리저리 히서 죽은 것이로구만."


"참, 또 한 사람 불쌍허니 죽었네."


"장례나 우리가 치러줘야 혔을 것인디."


그들은 침통하고 시무룩해졌다.
박 씨는 1년 전에 밀차에 다리를 치여 한쪽 무릎 아래를 잘라내야 했다.

의무실에서 치로를 받은 박ㅆ는 그나마 탄광 밖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것이었다.

박ㅆ는 집으로 보내달라고 여기저기 애걸하고 다녔지만 아무데서도 들은 척을 하지 않았다.

그는 구걸도 하고 해변에 나가 고깃배 일도 거들고 하며 연명하다가 끝내 더는 견디지 못하고

바다에 몸을 던져 물거품처럼 사라져 간 것이었다.


"얼마나 고적허고 작망했으면 그리 죽었을꼬.

혹시 무신 중병이 들었든 겄인가? 어쨌그나 살았어야 혀.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씨어야제.

기둘리는 처자석덜언 어찌허라고…"


김장섭은 그동안 박ㅆ에게 너무 무심했던 것을 뒤늦게 후회했다.


땡땡땡땡…


레일 토막 두들기는 소리가 방정맞게 울려대고 있었다.

아침 6시, 기상을 알리는 종소리인 셈이었다.
김장섭은 더디게 눈을 떴다.

어제하고는 다르게 몸이 묵지그리하고 찌뿌드드했다.

그건 몸이 그러는 게 아니라 마음이 그러니 몸까지 그렇게 느껴졌다.

마음에는 구름이 가득 끼고 기분은 암담하기만 했다.

2년 전 갱내로 들어갈 때의 기부보다 한층 더 막막하고 기가 막혔다.

그래도 그때는 2년만 채우면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날마다 하루씩을 지워가는 재미로 석탄을 캐니는 고달픔을 잊고자 했다.

참 그것은 노무자들 전부가 갖는 유일한 재미였다.

반년을 남겨두고부터는 모여 앉으면 그저 고향에 돌아갈 생각으로 마음들이 들떴다.

그런데 그 길이 아무 예정도 없이 막히고 말았으니 마음은 캄캄하기만 했다.

도무지 그놈의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은 대충 세수를 하고 식당으로 몰려갔다.

그들의 손에는 밥그릇 국그릇 외에 또 하나의 그릇이 들려 있었다.

그건 도시락이었다.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조선여자들이었다.

어디서나 궂은일은 다 조선사람들 차지였다.


"밥 좀 많이씩 퍼요!"


"야, 밥에 바람 넣지 말어! "


끼니때마다 터져 나오는 외침이 또 어김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 소리를 외쳐대는 사람들은 대개 새로 와서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1년이 넘은 사람들은 이제 지쳐서 입을 열지 않았다.

새로 온 사람들도 그런 외침이 아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 외침들은 배고파서 못살겠다는 불만과 항의를 대신하는 것이었다.
탄광의 밥도 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잡곡이거나 콩밥이었다.

그리고 국은 된장을 묽게 푼 다시마국이었고, 단무지 한 쪽은 나오다 말다 제멋대로였다.

사할린 근해에서는 여러 가지 생선들이 아주 많이 잡혔다.

그런데도 단 한 번도 생선 맛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해변에 지천으로 밀려드는 다시마만 걷어다가 국을 끓여대는 것이었다.
그들은 밥그릇과 도시락에 각각 밥을 받았다.

도시락 구석에는 단무지 한 쪽씩이 놓여졌다.

도시락은 탄광 안으로 가지고 갈 점심이었다.

그런데 도시락에 담긴 밥은 고르게 가득 차지 못하고 사방 구석은 다 비어있었다.


"참, 아새끼덜도 이리 싸주지넌 안컸다."


"와 아이라. 우리가 걸뱅이도 아니고 거저 얻어묵는 것도 아인데 이기머꼬."


"설다설다 질러 서러운 것이 배곯는 서럼인디,

만리차국 끌려온 것도 서러운디 배꺼정 곯아대니 참말로 기백히고 눈물나네."


이런 푸념을 늘어 놓는 것도 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아침식사를 마친 그들은 식기를 씻어다놓고 변소를 다녀오고 하면서 채탄작업 준비들을 했다.


땡땡, 땡땡, 땡땡…


7시 30분에 울리는 쇳소리. 그것은 입광준비를 알리는 것이었다.

노무자들은 조별로 광구 앞에 도열하기 시작했다.

막대기를 든 십장들이 재빠르게 자기 조원들을 조사해 나갔다.

그들은 노무자들의 채탄연장을 살피는 동시에 노무자들이 옆구리에 차고 있는

도시락들을 막대기로 툭툭 건드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너, 벤또 끌러!"


어느 십장이 소리쳤다.


"아, 아니, 밥 들었는데요."


그 노무자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이 새끼야, 끄르라면 빨리끌러!"


십장이 막대기로 노무자의 어깨를 후려쳤다.


"아이쿠…"


노무자는 어쩔 수 없이 탄가루 묻은 보자기에 싸인 도시락을 풀어냈다.


"벤또 열어!"


"…"


"이 새끼야, 이게 밥이냐!"


노무자가 뚜껑을 연 도시락에는 잘게 부서진 석탄이 들어 있었다.

아침밥이 모자라 어느새 먹어치우고 조사에 들키지 않으려고 석탄을 채운 것이었다.


"이 새끼야, 한꺼번에 먹어치우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는데도 못 알아들어!"


십장의 막대기는 사정없이 노무자를 난타해대고 있었다.

그런 광경은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새로 온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이었다.

오래된 사람들은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 온 사람들의 그런 행위를 어리석다거나 미련하다고 흉보지 않았다.

그들 중에도 지난날 똑같은 행위를 하다가 들켜 매타작을 당한 일들이 있었고,

 지금도 그들과 똑같이 도시락을 먹어치우고 싶은 배고픔을 늬고 있겄던 것이다.

매일 12시간씩 석탄을 캐내고 있는 그들이 첫손가락에 꼽는 고총은 탄가루를 마시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배고픔이었다.
십장들의 검사가 끝나는 대로 노무자들은 광구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채탄작업은 정각 8시부터라서 미리 들어가 준비를 해야 했다.

오후 8시 까지 12시간의 노동을 해서 개인당 책임져야 하는 양은 밀차 7대분이었다.

그러나 12사간의 조동은 1사간 정도 초과되는 것이 예사였다.

왜냐하면 조원 전체의 책임량이 채워질 때까지 작업을 계속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조원들은 회선을 다해 협동하고 일을 효율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인당 밀차 7대분이란 그야말로 오줌 줄 시간도 아껴가며 일하지 않으면 채울 수 없는 양이었다.

십장들은 광구 밖에서 밀차가 나올 때마다 전표에다가 다섯 오자를 그려나갔다.

그런데 그 책임량이 너무 과중하다고 항의하거나 양을 다 채우지 않고

저항하는 것 같은 것을 노무자들은 아예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자기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십장들의 폭력과 경비대에 끌려가

반죽음이 된다는 석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이 지나 기장섭네 막사 사랑들이 일을 마치고 나오니 새 노무자들14명이 와 있었다.

그들은 이미 5명의 십장들에 의해서 조가 분류되어있었다.

 김장섭네 조에는 2명이 보충되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신참들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일이 서툴면서 책임량만 불어나기 때문이었다.
막사에서 결원이 생기는 것은 두 가지 이유였다.

촛때가 쿤 사고를 저질러 다꼬베아로 넘겨진 경우였다.

두 번 째가 배로 석탄을 운반하는 것 같은 좀 편한 자리로 옮겨가는 것이었다.

그건 십장들과 친해야만 되는 것이데,

그런 자들은 거의 십장들의 끄나풀 노릇을 한 자들이었다.

그리고 가끔 죽은 박 씨처럼 사고로 불구가 되어 폐품처리되는 경우였다.
새로 온 사람들은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이 반반씩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거의 그렇듯 김장섭도 그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집에 돌아가는 것이 좌절되면서 그는 살맛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거의 밤마다 아내와 자식들의 꿈을 꾸었고, 그러다보면 잠을 설치게 되었다.

그것들이 무엇을 먹고 사는지…, 굶어죽지나 않았는지…,

근심과 걱정이 깊어지기만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몸도 마음도 무겁고 찌뿌드드하기만 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유난히 눈에 띄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보통 키에 마른 편인 그 사람은 생김도 평범해서 얼핏 보면 눈에 띌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눈을 끈 것은 그의 얼굴이 너무 하얀데다 손 또한 너무 고왔던 것이다.

그리고 휜 얼굴은 더없이 선해 보였다. 그는 한 서른쯤 되어 보였다.
사람들은 그 남자가 농사일이나 노동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금방 알아보았다.

그리고, 탄광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자가 어떻게 여기까지 끌려왔는지,

그가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보시오, 댁은 우리하고는 많이 다른데 무슨 일을 하다가 이리 끌려오셨소?"


어떤 비위 좋은 사람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


"아 예…, 저는 심기헌이라고, 천주교 대전성당의 신부였습니다.

 그런데 이변 8월에 들어 총독부에서 대전 평양 등 각지의 성당을 군대용으로

강압 접수하고 신부와 신학생들을 노무자나 군인으로 끌어가기 시작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렇게 여러분들의 곁에 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과 고락을 함께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주님의 은총이 항상 여러분들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그 사람은 담담하게 말하며 성호를 그었다.
막사 안의 사람들은 모두 너무 놀랐다.

신부까지 징용으로 끌어오다니…,

그건 지금 눈앞에 똑똑히 보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아니 저어…, 시, 신부님, 어째서 총독부에서 그런 짓을 합니까?"


어떤 사람이 호칭을 더듬거리며 물었다.


"예, 더러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우리 천주교에서는 신사참배를 거부한 성당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또 창씨개명도 하지 않은 산부와 신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총독부에서 좋아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심기헌 신부는 잔잔하게 웃으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는 법복을 입지 않았으면서도 신부로서의 품위와 의연함을 발산하고 있었다.


"아이고, 그나저나 참 큰일이구만요.

지독시리 배고프고 일도 징허게 심드는디요."


누군가가 끌끌끌 혀를 찼다.


"예, 고맙습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홀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 고통에 비하면 이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형제 여러분들과 함께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의 짐이 안 되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심기헌은 여전히 웃음 감도는 얼굴로 사람들을 둘러보며 성직자다운 여유와 겸손으로 말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신기하고도 선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김장섭은 가왕이면 저 신부님이 우리 조가 되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비해 침착하고 여유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어 도와주고 싶었던 것이다.
심기헌 신부는 사람들의 관심 속에 일을 열심히 해나갔다.

그의 하얀 얼굴에도 석탄가루가 범벅이 되었고, 씻어도 다빠지지 않는 미세한 가르는 날이

갈수록 석탄 때로 절어 그의 얼굴도 거무튀튀히게 변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고 사람들을 대했고, 배가 고프다는 말은 물론이고

일이 힘들다는 말도 단 한번 입에 올리지 않았다.


"신부님이 다르시는 다르구만."


"그러기 말다. 무신 신통력이 있능강?"


"다 수양으로 참고 이기는 것이제. 우리도 다 보고 배와야 혀."


"맞다, 사람이라꼬 다 똑겉은 사람이 아닌 기라."


"그래. 우리도 하나님 믿으면 그리 될까?"


사람들은 이렇듯 존경의 뜻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심기헌 신부는 스스로도 기도 같은 것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체 종교행위를 하지 않았다.

그는 조선을 떠나오기 전에도 종교행위 금지를 경고 받았지만 배에서 내리자마자

경비대로 끌려가 또 똑같은 내영의 협박을 당했던 것이다.
한 달쯤 지나자 심기헌 신부는 다른 사람들과 전혀 구별이 안 되도록 변했다.

얼굴은 바짝 말라비틀어졌고 그 색깔도 거무누르스름하고 칙칙했으며,

석탄때가 절로 절어 거칠어졌고, 손톱 밑마다 석탄가루가 새까맣게 끼어 있었다.

그러나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그 볼품없이 초췌해진 얼굴은 여전히 온화하고 잔잔하게 웃고 있었고,

누구든 이윽히 바라보는 맑고 깊은 눈은 사람들을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이래저래 놀라고 있었다.

심기헌 신부가 끄떡없이 일을 이기고 있는 것에 놀라고,

그 그생을 하면서도 찡그리는 표정한번 짓지 않고 계속 웃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참 얄궂데이, 기운이 없고 죽겄다가도 우예 신부님만 보면 기운이 나노."


"나도 그렇구마, 아칙에 일어나서 신부님허고 눈얼 안 맞치면 하로 일헐 기운이 안 난당게"


사람들은 그때서야 새로 돈 두 명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서로서로 멀뚱거리며 쳐다보기만 했다.


"이 새끼들아, 어디 갔는지 빨리 대!"


"이봐, 빨리 경비대에 알려!"


"이 새끼들아, 엇어졌으면 빨리 알려얄 것 아니야!"


십장 다섯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듯 한 막사에서 누가 하나라도 없어지면 나머지 사람들 모두를 공범 취급하고 들었다.

오늘은 한 사람도 아니고 둘이 없어졌으니 그들이 날뛰는 건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야 이 새끼들아, 빨리 대!"


"이 새끼들아, 도망가는지 알면서도 눈감았지!"


십장들은 자기 조원들을 막대기로 후려치기 시작했다.

노무자를 20명씩 거느리고 있는 그들 다섯은 막사에서 무슨 사고가 일어나면

다들 한 덩어리로 뭉쳐졌다.

십장들이 막대기를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는데 다른 막사의 노무자들은 탄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깻죽지를 얻어맞고 정강이를 걷어차인 김장섭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통증을 참나내고 있었다.


"기왕 도망간 것잉게 잽히지나 말그라…"


김장섭은 어금니를 꾹 물었다.

처음 오면 누구나 한번쯤 도망치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것이었다.

대개 한두 달이 고비였다. 자신도 몇번씩 그 유혹에 빠졌던 것이다.

그러나 도망간 사람들이 잡혀오고, 그들이 가혹하게 처벌당하는 것을 버면서

그 생각을 단념해 갔다.


"미련한 놈은 도망질하고 똑똑한 놈은 두더지질한다."


이건 노무자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는 말이었다.

그만큼 도망하기란 불가능했다.

우선 경찰들의 경비가 물샐틈이 없었다.

그리고 지리가 어두웠다.

그뿐만 아니라 광부 노릇을 한 외모가 너무 표가 났던 것이다.


"경비대에 알렸어."


"됐어, 이 새끼들 들려보내."


"이 새끼들아, 아따가 저 에 보자. 1조부터 출발!"


마지막 남아 있던 기장섭네 막사 노무자들 100명, 아니 98명은 무거운 걸음으로

탄광의 검은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자네덜도 딴맘 묵들 말어.여그서 도망나가 무사헌 사람이 하나또 없응게.

우리가 못나서 이러고 사는 것이 아니여,

여그가 섬만 아니었어도 발써 및분이고 도망질혔겄제.개자석덜헌티 개죽음 허는 것보담이야

살어서 처자식덜헌트로 가야 헝게 참는 것이여. 명심들 허드라고."


김장섭은 막장에 이르러 새로 온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들은 하루종일 기분이 우울한 채 일을 했다. 다른 날보다도 일이 몇 곱 더 힘이 들었다.

그들은 저녁을 먹고 나자마자 침상에 도열해 매타작을 당하기 시작했다.

십장 다섯은 막대기가 아닌 참나무목도들을 들고 맘껏 서리치고 욕해대며 노무자들을 치고 찌르고,

주먹질하고 발길질해대며 날뛰었다.

그들 98명은 꼼짝을 못한 채 당하기만 했다.
김장섭은 힐끔힐끔 심기헌 신부를 쳐다보고는 했다.

심기헌 신부는 묵묵히 매타작을 참아내고 있었다.
그들은 취췸시간까지 꼬박 2시간을 시달렸다.

십장들이 그러는 것은 책임추궁만이 아니었다.

자기들의 화풀이 겸 더는 땀맘 먹지 못하게 하는 겁주기였다.

도망자가 생길 때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호된 매타작을 당하고는 했다.

그러나 어떤 반항도 할 수가 없었다.

만약 반항을 했다가는 죽각 경비대로 넘겨졌던 것이다.


"참 더럽다. 저것도 조선놈들이라고."


"왜놈덜이 저러먼 서럽지나 않제."


"어데 두고 보자.

나라만 되찾았다카믄 내 손으로 저런 놈덜 다섯은 꼭 껍데기럴 빗길 참인 기라"


그들은 잠자리에 들며 푸념하고 이를 갈았다.
도망친 두 명은 결국 이틀 만에 잡혀왔다.

그들은 막사 중앙의 양쪽 기둥에 묶여졌다.

십장들의 손에는 몽둥이며 가죽혁대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노무자들은 침상에 줄지어 앉아 있었다.


"이 새끼들아, 여기가 어디라고 도망을 가아!"


십장 하나가 외치며 몽둥이를 날렸다.


"어크!"


노무자 하나가 비명을 토했다.


"이 새끼들, 어디 맛 좀 봐라!"


다시 몽둥이가 날아가씨다.


"아악!"


다른 노무자가 비명을 토했다.
다섯 명의 십장들은 줄지어 두 노무자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빙빙돌 듯이 하며 매질을 해대는 그들의 솜씨는 이골 나 있었다.
그들이 네 바퀴를 돌았을 때 두 노무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늘어


"좋아, 지금부터 돌림빵이다!"


십장 하나가 소리쳤고, 두 노무자는 기둥에서 풀렸다.


"전원, 일어섯! 침상 일보 앞으로!"


십장의 구령에 따라 노무자들 전부는 일어나 침상끝에서 5,60센티의 간격을 두고 옮겨섰다.


지금부터 저놈들 때문에 너희들이 기합 받은 것을 갚아줘라.

사정 보지 말고 힘껏 갈겨라.

 사정 보아주는 놈들은 시범을 보여줄 테니 그리 알아라. 양쪽 동시에 실시한다. 실시!"


십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양쪽 침상에 선 첫 번 째 노무자 둘이 자기네 앞에 서 있는 통로의 노무자 뺨을 때렸다.

그런데 그 소리는 찰싹, 찰싹일 뿐이었다.


"정지! 정지! 이 새끼들,

그렇게밖에 못하겠나.

시범을 보여주겠다.

두좀, 침상끝으로!"


십장이 소리치며 달려갔다.

그리고 침상끝으로 나서는 촛 번 째 노무자의 따귀를 후려쳤다.

그 소리가 철퍽 했다.


"이렇게 해!"


십장이 소리치며 반대쪽으로 돌아섰다.

또 철퍽 소리가 났다.


"이렇게 하란 말야! 다시 실시!"


십장이 몽둥이로 통로의 바닥을 치며 명령했다.
첫 번 째 노무자 둘이 다시 따귀를 갈겼다.

정말 이번에 나는 소리는 촐퍽 철퍽에 가까웠다.


"좋아, 다음!"


통로에 선 두 노무자는 옆에선 십장들의 몽둥이 끝에 밀려 옆으로 한발짝 옮겼다.

두 번 째 노무자가 양쪽 침상에서 따귀를 때리는 소리도 철퍽, 펄퍽에 가까웠다.

그 소리에는 시범적으로 맞고 싶지 않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도망쳤던 두 노무자는 그런 식으로 50번에 가까운 따귀를 맞아야 하는 것이었다.


"좋아, 다음!"


"멈추시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오!"


그때 이렇게 부르짖으며 어떤 노무자가 통로로 뛰어내렸다.


"저 새낀 뭐야!"


"아니, 저건 신부라는 것 아냐."


십장들이 그 노무자를 노려보았고


"저 두 사람은 당신네들한테 맞은 것으로 충분하오.

왜 우리한테까지 구타를 강요하는 거요.

당장 중지하시오."


심기헌 신부는 십장들 앞으로 거침없이 다가들며 외치고 있었다.


"이 새끼, 건방지게!"


십장 하나가 몽둥이로 심기헌 신부의 어깨를 내리쳤다.


"아이고 신부님!"


김장섭은 주먹을 말아쥐었다.


"이 새끼 이거 재미있는 놈이네.

중지 안하면 네놈이 어쩔 테냐?"


다른 십장이 삿대질을 하며 심기헌 신부 앞으로 다가들었다.


"차라리 내가 대신 맞겠소."


심기헌 신부가 터뜨린 말이었다.


"하! 신부님이라 과연 다르시군.

아주 재미있게 잘됐어.

그래, 네놈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십장이 심기헌 신부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이거 아주 좋은 구경거리군. 하하하…"


"좋아, 좋아, 두 놈 것 합하면 양쪽 볼에 백 대야, 백 대! 어디 꼴 좀보자. 하하하…"


다른 십장들이 웃어댔다.


"다들 똑똑히 들어라.

 너희들이 다 들은 대로 이 놈이 대신 맞겠다고 자청하고 나섰으니

 너희들은 시범에 걸리지 않게 힘껏 쳐야 한다.

모두 알겠나? 실시!"


십장이 전보다 훨씬 크게 소리치며 몽둥이로 바닥을 내리쳤다.


"철퍽"


"좋아, 다음."


"철퍽"


"됐어, 다음."


"찰싹"


"이 새끼, 이리 와!"


"철퍽"


"다시 실시!"


"철퍽"


"바로 그거야. 다음!"


"철퍽"


'아이고메 신부님, 산부님, 어찌 사서 그 꼴얼 당허시는게라.'


김장섭은 안타깝게 주먹을 말아 쥐고 또 말아 쥐었다.

뛰쳐나가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자신을 느끼며.
심기헌 신부는 오른쪽 볼을 50번 맞았다.

그의 볼은 검붉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이제 왼쪽 볼에 맞아야 할 것은 도망자 둘을 빼면 48번이었다.



"이제부터 반대쪽이다. 실시!"


"철퍽"


"좋아, 다음!"


"철퍽"


9명을 남겨놓고 심기헌 신부의 포에서는 피가 터져 나왔다.


자기 차례가 된 노무자가 머뭇거렸다.


"꾸물거려. 빨리 쳐! 잘난 놈에 새끼니까 코피쯤 무서워하지 않는다."


십장이 소리쳤다.


"철퍽"


"좋아, 다음!"


"철퍽"


"더 세게 쳐라. 다음!"


"철퍽"


심기헌 신부는 나머지를 다 맞고서야 허리에서 수건을 빼내 코를 막았다.

그의 양쪽 볼은 짝짝이 되어 부어오르고 있었다.


"이 놈들 셋은 규칙대로 독감방에 감금한다.

이 놈은 우리 규칙을 방해 한 죄다."


십장이 심기헌 신부를 가리키며 말했다.
도망을 하다가 잡히게 면 그런 식으로 구타를 당한 다음 <독감방>에 갇히게 되었다.

독감방이란 1인용 감방이었다.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가 앉을 만픔의 크기인 그 감방은 바닥은 바로  땅이었고,

사방 벽과 천장은 양철로 되어 있었다.

 어쩌다가 바닥에 판자쪽이 깔려 있는 것도 있었다.

일단 그 감방에 갇히면 밥은 고사하고 물 한방울 주지 않았다.

그리고 풀려날 때까지 이틀이고 사흘이고 물 한 방울 주지 않았다.

그리고 풀려날 때까지 이틀이고 사흘이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물려날 때까지 이틀이고 사흘이고 문을 열어주지 않기 때문에

일어설 수 없도록 천장이 낮은 그 속에 앉아 대소변을 처리해야 했다.

여름이면 양철이 햇볕에 달구어져 그 속은 완전히 불화로가 되었고,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겨울이면 그 속은 완전히 얼음덩이가 되어버렸다.

그 독감방은 감방이 아니라 하나의 고문틀이었다.

그렇게 매타작을 당하고 그 속에 갇혀 여름에는 더위에 질식해 죽고,

겨울에는 추위에 얼어죽는 사람이 흔했다.

노무자들은 독감방에 갇힌 지 꼬박 하루 만에 풀려났다.

그들은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꼴이 되어 있었다.

날씨가 더워 몸이 더 상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두 사람에게 물을 먹이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내고 주무르고 했다.

그런데 심기헌 신부는 풀어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애만 태웠다.
심기헌 신부는 다음날도 풀려나지 못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을 계속 치료하며 더욱 애가 탔다.

날씨가 더워 땀을 많이 흘리면서 물을 한방울도 못 마시면 보총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요놈덜이 어쩔라고 이렁고?"


"이기 예삿일이 아닌 기라."


사람들은 불길한 생각으로 안절부절못했다.

그들의 마음에서는 신부님을 때린 죄의식이 자꾸만 커져가고 있었다.
심기헌 신부는 만 사흘이 되어 풀려났다.

그는 휘청거리고 비틀거리며 몇 걸음을 옮겨놓았다.

그러더니 얼굴을  땅에 박으며 곤두박여 버렸다.


"이 새끼 일어나!"


십장 하나가 그의 다리를 걷어찼다.

그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거 좀 이상하잖아?"


다른 십장이 쪼그리고 앉으며 심기헌 신부를 들여다보았다.


"이거 간 모양인데?"


"뭐? 아니, 차라리 잘됐어. 그런 골치 아픈 새낀 차라리 없는 게 나아."


"그럴까? 그럼 어쩌지?"


"어쩌긴. 소모 처리하면 그만이지. 사람이야 얼마든지 보충되어 오니까."


<소모>란 죽은 사람을 통칭하는 그들의 용어였다.


"그렇지. 제눔이 잘난 척해 봐야 별 수 있나."


"몇 놈 불러서 시체 치우게 해."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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