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아리랑

156. 그 까닭

오늘의 쉼터 2017. 7. 7. 00:37

156. 그 까닭



햇살이 도타워지고 순한 바람이 산골을 타고 하늘하늘 넘돌기 시작하면서

눈 녹는 산비탈은 질퍽거렸다.

그 즈음이면 또 한 해 겨울 숯구이가 마감되는 것이었다.

긴 겨울 동안 구워낸 숯은 싸리나무 줄기로 엮은 원통형 망태에 담겨

여기저기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으 심이 무섭기넌 무섭다. 저 많은 숯얼 우리가 다 구워냈시니."


"실답잖기넌. 어디 저것만이여?

그간에 차로 쉴 새 없이 실어낸 것얼 생각히 봐. 저것이야 댈 것도 아니제."


"그렁게 사람 심으로 만리성도 쌓는 것이제."


"그러자니 우리가 얼매나 좆빠지게 고상고상 힛냐 그것이여."


"씨부랄 눔에 것, 고상도 고상이제만 삼동 내내 홀애비 신세 되는 것이 질로 개좆 겉은 것이여."


"공자님 말씸이시. 염병허고 이 놈으 만주 삼동언 어찌 그리 또 징허게도 진고."


"긍게 말이시. 봄 가을언 쥐좆만허고 삼동이 반년이니 사람 환장헐 일이제."


"그 사람 인심 후허시. 쥐좆만이라도 허먼 좋게? 개미좆에 배룩좆이여."


"허, 저 사람! 자네가 개미좆이고 배룩좆 봤어?"


"이이고 잘났능거. 개미고 배룩이고 좆이 있응게 알을 까든 새끼럴 낳든 헐 것 아니여."


"그나저나 삼동에넌 따땃헌 구둘 지고 마누래 궁뎅이 맨지는 맛으로 사는 것인디,

해마동 그 재미 못 보고 산 지가 발써 및년이여?"


"긍게 말이여. 니나 나나 이리 숯껌댕이 숯재이 될라고 마주 땅에 온 것이 아닌디."


"근디 요놈에 숯언 은제꺼정 꿉어야 허는 것이여?"


"고것얼 누가 알겄어. 전쟁얼 더 크게 벌였당게 끝도한도없는 일이겄제."


"참말로 왜놈덜언 어찔라고 그리 전쟁판얼 자꼬 크게 벌리고 그렁고?"


"아, 배불른 놈이 욕심 더 큰 것 몰라서 그려?"


"아이고, 인자 요 빌어묵을 짓도 더는 못허겄는디 무신 수가 없으까?"


"아이고 이 사람아, 심 파허는 소리 허덜 말어.

항일연군인가 머신가도 다 없어져분 판에 우리럴 돕는 사람덜이 어디가 있겄어.

하늘서 왜놈덜만 골라 한날 한시에 베락얼 쳐불기 전에넌."


"그려, 더 심해지지나 않기럴 바래야제.

우리 신세야 진작에 금가고 깨진 옹구 팔자 아니드라고."


"그나저나 또 한 해 큰탈없이 넘겠응게 그것이나 당행으로 생각허고

처자석 만내로 갈 채비나 어서덜 허드라고. 요것이 워디 사람 사는 시상 이간디."


저녁밥을 먹고 난 남자들은 한바탕 푸념을 늘어놓고는 자기네 숯막으로 흩어져 갔다.

그들은 모두 지치고 시들어 있었다.

또 그들의 몰골은 흡사 까마귀떼였다.

긴 겨우내 숯을 구워내고, 숯을 담아 옮기고 하느라고 그들은 꼴마저 온통 숯검정투성이였다.

옷만이 시꺼먼 것이 아니었다.

얼굴이며 손도 일부러 숯가루를 바른 것처럼 시꺼멨다.

잘 씻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비누 없이 씻는데다 날이 날마다 숯검정을 뒤집어쓰니

숯검정이 겹겹으로 끼어 살갗으로 배들고 배든 것이었다.
그들은 내일이면 숯구이에서 풀려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그러나 집에 가면 또 농사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농사일도 숯구이와 마찬가지로 아무 이득이 없는 것이라서

그들을 더욱 맥 빠지고 시름겹게 했다.
그들이 챙길 짐이라곤 따로 없었다.

 베개 삼아 굴렸던 때 절은 옷보퉁 하나씩이 전부였다.


"어이, 담배 있능가?"


김진배가 벽에 몸을 부리며 물었다.


"야아, 여그…"


남만석은 쌈지를 매형 앞으로 밀어놓았다.

남만석은 매형 앞에서는 그저 죄인이었다.

 매형이 무슨 타박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만주로 온 다음부터

한시도 죄지은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매형이 한숨만 쉬어도 가슴이 뜨끔했고, 혀만 차도 마음이 섬뜩했다.
그 죄지은 마음은 바로 숯구이 때문에 씻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겨울마다 되풀이되는 숯구이만 없었더라도 고향에서 소작살이하나

만주에서 고용살이하나 매일반이라고 치부할 수가 있을 거였다.

고향에서는 아무리 소작살이를 한다고 해도 겨울 한철은

쉬어가며 몸을 추스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만주에서는 오히려 겨울에 더 고생을 하니

남만석은 매형 앞에서 도무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자신이 오자고 바람을 넣지 않았더라면 매형은 만주에 왔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아이고메, 저 꽃불에 괴기 지글지글 꾸워 쐬주 한잔 짝 큭으먼 소원이 없겄다."


누군가가 기지개를 켜며 크고 늘어지는 소리로 말했다.
밤이 되자 써늘해져 화덕에 불을 피운 것이었다.

여기서 한 갓지 풍족한 것이 나무였다.

소가 얼어죽도록 혹독한 날씨에도 잠만은 춥지 않게 잘 수 있었다.


"하이고, 바래기도 오지게 바래네.

회만 동헌게 돼지도 안헐 소리넌 허지럴 말어."


"아니여, 묵덜 못헌다고 말도 안허먼 사람이 팍팍히서 어찌 살으라고.

말이라도 험서 신 침이라도 넘개야 그래도 기분풀이가 되제."


"괴기 지글지글 꾸워 쐬주 한잔 허는 것도 좋제만 그보담도 틉틉헌 막걸리 한사발 쭈욱 허고

코 톡 쏜느 홍어 한점 척 걸치먼 더 부런 것이 머시가 있드라고."


"워따, 환장허겄다.

고것이야 더 말헐 것 이 개 흘레붙는 것 보고 맘 동헌 과부 붙어묵는 맛 아니여!"


"아이고, 참말로 춤 꼴딱 넘어가네. 홍어맛 못 본 지가 은제여?"


"홍어넌 너무 과만허고 가오리라도 한점 맛봤으먼 한이 없겄다."


"어디 그뿐이여. 살 통통허니 올른 낙지 살짝 디쳐서 시큼새콤헌 초장에 착 찍어

막걸리 한잔 쭈욱 허먼 그 짠득짠득 씹히는 맛이 과부 묵는 맛에 비허겄어".


"히, 고것이야 상전 마누래 엎어묵는 맛이제."


"아니, 기왕 묵을라먼 뉘어놓고 묵제 으째 엎어놓고 묵어, 엎어놓고 묵기럴."


"저런 둔자럴 봤능가. 상전마누래럴 덮치는 것인디 뉘고 자시고 헐새가 워딨어.

꼼지락달싹 모허게 팍 엎어놓고 속곳 밑얼 착 벌래야제."


"고것이 무신 맛이여."


"어허, 갈수록 둔자 소리만 허네. 씹맛 중에 질이 번개씹이라는 말도 못 들어봤능감.

간 통개통개허는 상전 마누래에다 도적질허는 번개씹이니 그 맛이 얼매나 오지고 오지겄어."


"크크크크…"


"흐흐흐흐…"


"하이고, 말허다 봉게 눈물난다. 굶고 배곯아도 고향 산천이 질인디."


"그려, 세월만 이리 무정허니 가고 은제나 고향에넌 가게 될랑고."


"살다보면 가질 날이 있겄제. 왜놈덜이 천년만년 갈라고."


타아향앙살이 며엇해에더언가아…
누군가가 노래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로 어우러졌다.

노래가 이어질수록 그 구성진 소리는 축축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그들은 이튿날 아침 일찍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쉬지 않고 걸어 어둑어둑해져서야 집단부락에 도착했다.

장정들이 점심때 주먹밥 한 덩이씩을 먹은 짧은 시간만을 빼고 하루종일 걸었으니

100리가 훨씬 넘는 거리였다.

나무를 따라 옮기다보니 해마다 산이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의 산들을 뒤따라 만주의 산들도 마둑잡이로 황폐해져 가고 있었다.
그들이 도착하자 집단부락 집집마다 반가운 소란으로 들떴다.


"아부지!"


"아부지!"


남만석이 집으로 들어서자 아들딸이 반가움에 넘쳐 달려들었다.


"이, 그려, 그려."


남만석은 아이들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피그르 주저앉았다.


"음마, 어디 아프신게라?"


그의 아내가 눈이 휘둥글해졌다.


"아니시, 나 물 한 그럭 주소."


남만석은 너무 기진맥진해서 말할 기운도 없었다.
머쓱해진 아이들이 숯검정을 뒤집어쓴 아버지를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남만석은 물 한 사발을 벌컥거리며 다 들이켜고는 뒤로 벌렁 누워버렸다.


"밥 얼렁 헐 것잉게 쬐깨 기둘리시게라."


그의 아내는 허둥거리며 돌아섰다.
남만석은 이내 코를 드렁드렁 골기 시작했다.

윗목에 쪼그리고 앉은 아이들이 빠끔한 눈으로 아버지를 지키고 있었다.

기름기라고는 없이 꺼칠한 아이들의 얼굴에는 마른버짐이 피어 있었다.
남만석만이 아니라 다른 남자들도 마치 앓듯이 하며 사나흘씩 잠만 잤다.

군인들도 그들의 피로를 아는지 닷새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동북항일연군의 저항이 사그라졌지만 집단부락에 군인이나 경찰은 그대로 배치되어 있었다.

 다만 그 수가 절반 정도로 줄어 있었다.

그건 여러 가지 목적 때문이었다.

미약하나마 항일연군의 암약이 포착되고 있었고,

언제 또 그런 식의 무장조직이 출현할지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통제조직 아래서 군량미를 확보하는 것이 최고로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소련과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전시체제의 유지, 강화였다.

특히 소련과의 국경지역에서는 집단부락이 갈수록 증설되고 있었다.

그건 조선사람들을 실컷 부려 곡물을 생산해 내게 하는 동시에 조선사람들로

 1차적 방어벽을 쌓는 셈이었다.
꽃바람 뒤에 이슬비가 승치고, 개울물이 돌돌거리면서 살가운 바람이 부자

북만주에서도 짧은 봄이 찾아왔다.

새싹이 파릇파릇 돋자 제일 먼저 활갯짓하고 나선 것이 처녀들이었다.

처녀들은 끼리끼리 짝을 지어 나물을 캐러 나섰다.

봄나물을 먹어야 입맛이 돌고, 또 한 해 농사를 시작할 기운을 차리게 되는 것이라서

집집마다 딸네들이 나물 캐오는 것은 대환영이었다.

그건 결코 미신이 아니었다.

뿌리까지 무쳐먹는 봄나물에는 비타민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영양소와 약효까지 내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서 입맛을 돋울 뿐만 아니라 활력이 생기게 했던 것이다.
나이 열예닐곱씩 되는 처녀 셋이 도란도랑 이야기를 하다가 킥킥거리기도 하며

나물을 따라 자리를 옮겨가고 있었다.

처녀들은 서로의 이야기에 팔리고 나물에 끌려가며 집과 멀어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의 바구니에 나물이 그득하게 찬만큼 집단부락은 까마득하게 멀어져 있었다.

세 처녀들이 등지고 있는 둔덕 위에서 무엇인가가 힛끗히끗 움직이고 있었다.

그건 사람들의 머리 부분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었다.

잠시 후에 얼굴들이 천천히 솟아올랐다. 그건 다섯 남자의 얼굴이었다.
한 남자가 손을 치켜듦과 동시에 그들은 세 처녀를 향해 둔덕을 달려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본의 국민복 차림이었다.

그런데 처녀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재잘재잘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다섯 남자는 처녀들을 덮쳤다.


"워메…"


"엄니…"


"어엄…"


세 처녀는 입이 가려지며 소리들도 끊기고 말았다.
세 처녀는 제각기 발버둥을 치고 몸부림을 쳐댔다.

그러나 남자들은 익숙한 솜씨로 세 처녀를 끌고 둔덕을 넘어갔다.

처녀들이 있던 자리에는 바구니와 나물들만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둔덕을 넘어온 처녀들은 다섯 남자에게 둘러싸여 쪼그려앉은 채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아주 자들 했다. 이건 셋 다 아다라시니까 돈을 톡톡히 받겠는걸."


턱에 칼자국이 있는 사내가 일본말로 지껄이며 한 처녀의 빨간 댕기머리를 잡아흔들었다.

소매를 걷어붙인 그의 팔뚝에는 푸른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흔히 낭인이라 부르는 일본 불량배들이었다.


"오야붕께서 오늘 밤 시식을 하고 넘기시지요. 군

인들이야 아다라시든 뭐든 여자만 있으면 환장들 아닙니까."


한 사내가 담배연기를 날리며 아첨하듯 말했다.


"모르는 소리 하지 마. 그건 졸병들이나 그렇지. 장교들은 아다라시만 찾아.

아다라시에 미인이면 다섯 배도 더 받는다는 걸 몰라? 자아, 담배 들 끄고, 가자!"


세 처녀는 징징 울며 사내들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남만석네 집단부락에서는 소동이 일어났다.

행여나 행여나 기다리고 있던 처녀 셋이 날이 어두워지는데도 돌아오지 않은 것이었다.


"안 되겄다. 찾어나서야제!"


김진배가 부르짖듯 했다.

그이 큰딸이 셋 중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얼렁 나습시다".


딴 처녀의 아버지가 목메는 소리로 말하며 이를 뿌드득 갈았다.


"이럴지 알었으먼 진작에 나섰어야 헌는 것인디."


또다른 처녀의 아버지가 발을 굴렀다.


"어이, 남정네덜 다 나오고, 싸게 홰덜 맨글어, 홰!"


부락 대표격인 나이든 남자가 외쳤다.
집집마다 남자들이 나오고, 여자들은 홰를 만들 갈대들을 한 아름씩 옮겨오느라고 분주했다.

그 웅성거림 때문에 군인들이 나타났다.


"무슨 일인가? 왜들 이래?"


대장이 수상쩍어 하며 눈을 치떴다.


"나물 캐러 간 처녀 셋이 아직도 안 돌아와서 찾으러 가는 겁니다."


일본말을 잘하는 젊은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뭐라고? 저 갈대는 뭔가?"


"예, 횃불을 켜야 하니까…"


"닥쳐라! 이 밤에 수십 개의 횃불을 켜들고 사방으로 돌아다니겠다 그거야!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나? 중국놈들 쏘련놈들 비행기가 폭격을 가해 온다 그 말이야.

방공훈련을 그렇게 시키고, 등화관제하라고 그렇게 훈육하는데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나.

처녀 셋 찾으려다가 수백 명이 몰살당하고 싶어?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대장은 핏대를 올리면서 소리질러댔다.
젊은이의 말을 듣고 모든 사람들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밤에 등잔도 켜지 못하고 지낸 것이 벌써 2년이었던 것이다.


"빨리 해산해, 빨리!"


대장이 칼을 휘두르며 소리쳤고, 부하들이 총으로 사람들을 밀어댔다.


"벨 수 없구만. 낼 아침 일찍 나서야제."


"요것이 무신 귀신이 곡헐 노릇이랴."


"글씨 말이여. 산이 있으니 질얼 잊어부렀겄어, 물이 있으니 빠지기럴 혔겄어."


"못헐 말로 누구헌티 잽혀갔능가? 여자덜 잡어간다는 소문덜 있덜 안혀?"


"아서, 아서. 그런 소리 입에 올리덜 말어. 부모덜이 들으먼 팔딱 미치고 환장헐 일잉게."


"그나저나 요것이 예사 병통언 아닌갑는디."


사람들이 무리어져 가며 수군거리는 말이었다.


"허! 요것이 무신 일이다냐."


김진배는 고개를 젖히며 한숨을 토해 냈다.

남만석은 죽고 싶은 심정으로 그 옆에 서 있었다.

차라리 자신의 딸이 당한 일이었으면 더 나을 것 같았다.

이런 일까지 생겼으니 매형 앞에서는 더 큰 죄인이 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다 흩어지고 마당에는 세 처녀의 부모들과 가까운 몇사람만 남았다.


"들어덜 가야제라. 이러고 있다고 무신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닌다."


누군가 한숨 묻혀 침통하게 말했다.


"참말로 환장헐 일이시. 어찌 요런 얄궂은 일이 다 있능고."


어느 여자의 울음 섞인 말이었다.


"다덜 들어갑시다."


김진배가 말하며 돌아섰다.

남만석 내외도 그 뒤를 따랐다.
김진배의 아내는 소리를 억누르며 울기 시작했다.

딸 찾는 것을 포기하게 되자 그동안 참고 잇던 울음이 터진 것이었다.

그녀는 집으로 들어서며 더는 소리를 참아내지 못하고 울음이 커졌다.


"아, 시끄러! 재수대가리 없어."


김진배가 버럭 소리 질렀다.


"글먼 나보고 으쩌라고…"


그의 아내의 울음에 섞인 말이 서럽고 절바했다.


"여자가 밤에 울먼 액이 끼는 법이여."


김진배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그의 아내는 가슴이 섬뜩해지며 울음을 참느라고 속입술을 깨물었다.


"불도 쓰지 못헝게 자네넌 들어올 것 없이 그냥 가소."


김진배가 방으로 들어가며 처남에게 한 말이었다.
남만석은 그만 엉거주춤했다.

그 말이 너무 싸늘하고 매서웠다.


"야아…"


남만석은 다른 말 한마디 못하고 쫓겨나듯 물러섰다.
이튿날 새벽 먼동이 트기 전에 벌써 사람들은 집단부락을 나섰다.

그들 중에 몇 사람이 세 개의 바구니와 흩어진 나물들을 찾아낸 것은 해뜰 무렵이었다.

사람들은 해가 질 때까지 그 일대를 뒤졌다.

그러나 세 처녀의 종적은 묘연하기만 했다.


"거그서 어디로 갔을꼬? 하늘로 솟았능가  땅으로 꺼졌능가."


"산도 없은 거그서 호랭이가 물어갔을 것이여, 곰이 업어갔을 것이여? 보나마나 뻔허제.

어떤 불량헌 놈덜헌티 잽혀간 것이로구만."


"어찌 그리 장담혀?"


"딱 보먼 몰라? 바구니에 얌전허니 있어야 헐 너물덜이 어찌서 그리 사방으로 흩어지고 널려 있겄능가. 너물덜이 즈그 발로 걸어나갔겄어? 불한당놈덜헌티 안 잽혀갈라고 큰애기덜이 몸살얼 대고,

그놈덜언 잡아 갈라고 난리고, 그러다봉게 바구니가 채이고 엎어지고 히서 그리 된 것 아니겄어."


"그려, 필시 그렇구마."


"맞어, 쪽찝게 점쟁이시."


사람들은 모두 그 말에 동의했다. 달리는 더 생각나는 것이 없기도 했다.


"글먼 그 일얼 어쩐댜?"


"글씨 말이여…"


사람들은 서로서로 쳐다보며 더 말이 없었다.

이 넓디나 넓은 마주벌판에서 어디로 찾아나서야 할지 막막했던 것이다.

그리고 감시받고 살면서 마음대로 나설 수도 없는 처지였다.


"저그 머시냐…, 경찰에라도 찾어달라고 말해 보는 것이 어쩔랑고?"


누군가의 기운없는 말이었다.


"경차알? 그려, 그리라도 히보기넌 히보는 것이 낫겄제."


다른 사람이 한숨을 내쉬었다.
세 처녀의 아버지와 몇 사람은 경비대장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경찰서에 가게 해달라고 했다.


"경찰서? 그거 좋소.

허나 경찰서가 너무 머니까 당신들이 갈 것 없이 내가 연락을 취해 주겠소.

너무 걱정 말고 일들이나 빨리 시작하도록 하시오."


경비대장의 이런 말이 과히 달갑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더 어쩔 수가 없었다.
한번 말을 그렇게 해버린 이상 직접 가게 해달라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글먼 꼭 부탁디리겄구만요."


"사람 생사가 달린 일인게라."


그들은 애원하듯 다짐했고


"알겠소. 당장 조치하겠소."


경비대장은 혼쾌하게 응답했다.
그러나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가도 처녀들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농사일에 휘말려들면서 처녀들의 일을 차츰차츰 잊어가고 있었다.
봄비가 서너 차례 내리면서 사람들의 일손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물을 논에 가두랴, 물길을 잡으랴, 논을 갈아엎으랴, 모내기 채비에 밤낮이 없었다.

경비대에서도 배급량을 늘려주었다. 잘 부려먹어 군량미 생산을 높여야 했던 것이다.


"빌어묵을 놈덜, 똑 소 부래묵디끼 헌당게. 드러와서 참."


"글먼, 저놈덜 눈에 우리가 소가 아니먼 머시여. 실답잖게 사람 대접받고 잡은감?"


"참 드런 놈으 팔자시. 쌀농새 쌔빠지게 져서 새끼덜헌티 쌀밥 한 끄니 못 먹이고."


"긍게 누가 나라 뺏기라고 큭간디. 말허먼 입만 아프고 심만 피허제."


"그려, 그 죄가 누구헌티 있는지 원."


남자들은 뜬내 나는 조밥을 샛밥으로 먹으며 쓰게 웃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어른들은 군인들의 감시 아래 농사일에 정신이 없지만 열두세 살짜리 어중간한 나이의

아이들은 딱히 할 일이 없었다.

학교도 없어서 아이들은 속절없이 무식꾼으로 커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농사일을 등 너머로 익혀가며 이런저런 소일거리를 찾아다녔다.

그중의 하나가 고기잡이였다. 고기잡이는 즐거운 놀이이면서 반찬을 장만하는 일이라

 어른들에게 칭찬까지 받았다. 모내기철이 되면 물이 불어나면서 물고기들도 살이 올랐다.

그래서 아이들은 물줄기를 따라 고기잡이를 나서고는 했다.
열서너 살쯤 먹은 아이들 여섯 명이 물길을 따라 빠르게 걸으며 시끌덤벙하게 떠들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크고 작은 그릇들이 들려 있었다.

물도 푸고 고기도 담아갈 그릇이었다. 두 명은 삽과 괭이도 들고 있었다.

그물이 있을 리 없는 그들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인 보막기

고기잡이를 나서고 있는 참이었다.
보막기 고기잡이는 아무 물줄기에서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논에 물을 대는 물줄기 같은 것이 아니라 물이 늘 흐르고 있는 개울이어야 했다.

개울도 물살이 세거나 폭이 넓어서는 안 되었다.

보를 막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물살이 아주 느리면서 폭이 좁장하고 물풀이 자라나고 있는 개울이어야 했다.

그런 데는 메기며 붕어 같은 것이 많았다.
아이들은 10리가 넘게 걸어 마음에 드는 개울을 찾아냈다.

그들은 개울가로 우를 내려갔다.


"시끄럽게 허덜 말어. 괴기덜 놀래 도망간게."


몸집이 제일 큰 아이가 낮춘 소리로 말하며 아이들을 휘둘러보았다.

그 눈초리가 매웠다. 아이들이 움찔해졌다.

그가 대장이었던 것이다.


"물이 얼매나 짚은지 봐야제."


그 아이가 괭이를 거꾸로 들었다.

그리고 손잡이를 개울 가운데로 조심스럽게 넣었다.

괭이자루는 반 넘게 들어가다가 멎었다.

그 아이는 몇 번 위치를 옮겨가며 손가늠을 해보고 괭이자루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제 다리에 대보았다.

괭이자루의 물 묻은 끝은 그의 무릎에 이르렀다.


"되았다. 여그서 한바탕 허자."


그 아이는 만족스러워하며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 아이는 개울 위아래를 둘러보더니

여그 하면서 괭이로 한번 찍고, 두 다리를 짝짝 벌려 한 20보쯤 걸어가더니

또 여그 하며 괭이로 표시를 했다.

그건 보를 막을 위치를 정한 것이었다.
곧바로 아이들은 일을 시작했다.

두 아이가 삽과 괭이를 가지고 개울가를 파기 시작했다.

그러나 삽질과 괭이질을 아무데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큼직한 풀뿌리와 함께 뒤엉켜 있는 흙은 흡사 흙벽돌처럼 네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건 물 속에서 흙이 허물어 내리지 않게 해서 보를 빠르고 단단하게 막으려는 지혜였다.
두 아이가 풀포기벽돌을 떠놓으면 다른 아이들은 그것을 부지런히 아까 표시해 놓은

양쪽 위치에다 옮겼다.

그 작업은 한동안 계속되었고, 아이들의 이마와 콧등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그 일을 마친 아이들은 셋씩 양쪽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한쪽에 두 명씩이 바지를 허벅지까지 단단히 걷어 올리고 조심조심 개울물 속으로 들어섰다.

양쪽에서 보막기가 동시에 시작된 것이었다.

고기가 도망가지 못하고 가운데로 몰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양쪽의 보가 물 위로 솟겼다. 그런데 위쪽의 보가 한 뼘 이상 높았다.

보안의 물을 퍼내는 동안 흘러내려오는 물이 넘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보막기가 끝나자 아이들은 제각기 그릇을 들었고, 밖에 있던 두 아이도 물 속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들은 맹렬한 기세로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그 일을 하기까지 허튼 소리를 한 아이는 하나도 없었고, 그들은 철저한 협동작업을 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잡은 고기를 똑같이 나누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이제 땀을 뻘뻘 흘리며 물을 퍼내고 있었다.

보 안의 물이 반나마 줄어들고 개울가 양쪽에 진흙이 드러나면서

고기들이 수면으로 푸득푸득 튀기 시작했다.


"와아아"


"야아아"


아이들은 마침내 환성을 터뜨렸다.
개울바닥의 진흙이 다 드러나도록 물을 퍼낸 아이들은 마음 놓고 떠들어대며

고기잡이에 정신이 없었다.

손바닥만큼씩 한 붕어가 진흙탕 여기저기서 펄떡거렸고,

 팔뚝보다 더 굵고 큰 메기들이 진흙을 파고들며 숨거나 개울둑에 판 굴속의

진흙탕에 없는 듯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아이고 미끄러라!"


메기를 잡았다가 놓치는 아이가 소리쳤고


"워메 기운 씬거!"


그릇에 담겼다가 튀어 오르는 메기를 되잡는 아이의 외침이었다.
아이들은 붕어는 쉽게 잡았지만 미끄럽고 기운 센 메기를 잡느라고 옷이 진흙투성이가 되어갔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냥 신바람이 나기만 했다.

고기를 잡아가기만 하면 옷을 더럽힌 것쯤 어머니가 못 본 척했고 아버지는 껄껄껄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장만하는 붕어졸임이나 메기매운탕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메기 숨은 놈 더 없능가 찬찬히 잘 덜 봐!"


몸집 큰 아이의 외침이었다.

 메기는 못생긴 것에 비해 아주 영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이제 곧 보를 튼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메기 지놈이 숨으면 어디 숨을 것이여."


"하먼, 지놈이 숨어봤자 우리 은 눈얼 끝꺼정 속일 수야 있간디."


"근디 참 요상헌 것이 한 가지 있드라."


"머시가?"


"우리 고향서넌 성님덜이 고기잽이헐 직에 보먼 붕어고 메기고 벨라 크덜 안혔는디

여그 만주 것덜언 어찌 이리 큰지 몰르겄어."


"아이고 빙신, 고것도 몰르냐?"


"니넌 아냐?"


"그려, 안다. 여그가 만주닝게 그러제 어째."


"니가 빙신이다, 좆겉은 놈아. 고것도 대답이라고 허냐?"


"하 씨팔놈, 누구보고 좆겉은 놈이여, 좆겉은 놈이.

 우리 아부지가 그랬는디도 좆겉은 놈이냐!"


"머시, 느그 아부지가 그러셨어? 글먼 나가 잘못혔다."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진흙탕 속을 손발로 헤집고 더듬어대면서

이렇듯 신명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야 이 조선놈의 새끼들아!"


그때 갑자기 터진 중국말 고함이었다.


"이 새끼들이 건방지게 어디서 떠들어대."


또다른 고함이었다.
아이들은 깜짝 놀라 일제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개울둑에는 두 청년이 버티고 있었다.


"이 새끼들, 당장 올라와!"


한 청년이 빠르게 손짓했다.


"빨리빨리 못해!"


다른 청년이 발길질을 했다.
아이들은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그저 두 청년의 사나운 기세에 눌려

비실비실 둑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중국말을 알아들을 리 없었다.


"요런 조선놈의 새끼들아, 똑바로 줄 서!"


발길질했던 청년이 좌우로 손짓했다.
겁난 아이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고기들이 든 그릇을 꼭 끌어안으며 눈만 뒤룩거렸다.


"요런 일본놈 주구 새끼들아, 이렇게 줄 서란 말야, 줄!"


다른 청년이 먼저 올라온 두 아이의 따귀를 사정없이 올려붙이며 옆으로 나란히 세웠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은 눈치빠르게 그 옆으로 늘어서기 시작했다.


"이 일본놈 주구 새끼들아, 우리 농토 뺏은 것도 모자라 고기까지 네놈들 것인 줄 아냐."


그 청년은 나머지 아이들의 따귀를 찰싹찰싹 때려나갔다.


"이봐, 그것 가지고 돼?

이 새끼들 버릇을 뜯어고치려면 저부 물 속에 다 쳐박아야 돼.

저쪽으로 옮기게 해."


다른 청년이 독 오른 얼굴로 턱짓했다.


"그래, 그것 좋다. 이 새끼들아, 저쪽으로 옮겨!"


그 청년이 또 아이들의 따귀를 빠르게 갈겨대며 외쪽을 손짓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가라는 거인 줄 알고 내뛰기 시작했다.

그쪽이 자기네들 집이었던 것이다.


"저새끼들 잡아라!"


"저것들이 도망을 가!"


두 청년이 소리치며 아이들을 뒤쫓았다.

한 아이가 여지없이 넘어졌다.

찌그러진 양철그릇이 나뒹굴어지면서 고기들이 쏟아졌다.

붕어며 메기들이 푸득푸득 뛰었다.

아이들은 곧 잡히고 말았다.


"이 주구놈의 새끼들이 도망을 가!"


"그 애비에 그 새끼들이야!"


두 청년은 아까보다 훨씬 더 화가 나서 소리쳤다.

그리고 아이들은 사정없이 걷어차며 떠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고기가 든 그릇을 안은 채 뒤로 벌렁벌렁 넘어가 개울물에 처박히고 있었다.


"아이고, 고기!"


"워메, 내 고기!"


아이들은 물을 뒤집어쓰고 허우적거리면서 울부짖고 있었다.


"으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


두 청년은 물에 빠진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통쾌하게 웃어대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다리를 절룩거리고 있었고, 또 어떤 아이들은 더 뒤쫓지 않았다.
두 청년이 말끝마다 일본놈의 주구 새끼들이라고 욕을 해댄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만척에서는 조선사람들을 북만주로 이민시키면서 관동군과 짜고 중국사람들의 농토를

시가의 10분의 1 정도만 주고 빼앗았다.

 총을 들이댄 강압에 중국사람들은 억울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만척에서는 그  땅에다가 집단부락을 짓고 조선사람들에게 농사를 짓게 했다.
만척에서 굳이 중국사람들의 농토를 빼앗아 조선사람들에게 농사를 짓게 한 것은

조선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군량미로 쌀을 필요했다.

그래서 밭농사밖에 지을 줄 모르는 중국사람들을 몰아내고 논농사에 능한

조선사람들을 채운 것이었다.

그 속임수 강제이민이 논농사 많은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것도 그 까닭이었다.

이주한 조선사람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밭을 논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농토를 빼앗기고 가난뱅이가 된 중국사람들은 일본사람들만 미워하고 증오한는 것이 아니었다.

일본군의 보호를 받아가며 자기네  땅에 농사를 지어먹고 있는 조선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원한을 품고 있었다.

조선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엄연히 일본군의 감시를 받으며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데도

중국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조선사람들이 일본군의 보호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참 큰일이다…"


"예삿일이 아니시, 아그덜헌티꺼정…"


아이들의 말을 전해들은 어른들은 무거운 한숨들만 쉴 뿐이었다.

어른들은 그 까닭을 알 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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