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아리랑

154. 하와이의 지원병

오늘의 쉼터 2017. 7. 7. 00:35

154. 하와이의 지원병



일본의 진주만 폭격으로 하와이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섬전체가 전쟁상태로 돌입해 군용차량들이 무시로 질주해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밤에도 탐조둥들이 그 곧고 푸른빛들을 내쏘며 어둠 소에서 엇갈리고 있었다.

 군인들도 그전보다 훨씬 더 많이 불어났는데, 해군만이 아니라 육군들도 버글버글했다.

본토에서 건너온 육군들이 하와이에서 며칠 머물렀다.

떠나거나, 배를 갈아타로 전투지로 향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민간인들 사이에서 표나게 달라진 것이 일본사람들이었다.

일본사람들은 콧대 높았던 그전과는 반대로 기가 꺾여 비실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미국정부가 일본사람들을 완전히 적국 국민으로 취급 했을 뿐만 아니라

수상하다고 생각하면 마구 체포해 들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사람들은 그 어디에도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그들이 믿고 의지했던 대사관이며 영사관들은 다 폐쇄되고 외교관들은 추방당했던 것이다.

미국정부가 특히 하와이의 일본사람들을 그렇게 불신하는 데는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일본이 진주만의 군함들을 일시에 그토록 정확하게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은 스파이들의 활동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스파이들은 일본사람들이 보호와 협조 아래 암약해 온 것이었다.
그렇다고 일본사람들은 일본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이미 재산동결령과 함께 출국금지령이 내려져 있었던 것이다.

일본사람들에게 하와이는 자유천지가 아니라 절해감옥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일본사람들은 미국정부로부터 감시와 불신의 대상이 된 것만이 아니었다.

조선사람들과는 일찍부터 적대관계에 있었고, 중일전쟁으로 중국사람들과도 적대관계가 되었으며,

진주만 공격을 계기로 전쟁을 동남아로 확대하자 필리핀사람들하고도 적대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일본사람들은 그야말로 사면초가로 완전히 고립상태에 빠져든 것이었다.
조선사람들은 그와 반대로 입장이 훨씬 좋아지게 되었다.

지난날의 외로운 입장과는 달리 심정적 동지들이 많이 생긴 것이었다.

그런 변화는 중국음식점에서 가장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다.

중국사람들은 전과 다르게 환대할 뿐만 아니라

어떤 때는 고량주 한 병을 서비스라며 내놓기도 했다.

하루에 100원 벌기로 목표를 정해 놓고 99원을 벌면 밥 한끼를 굶어 100원을 채운다고

소문난 중국상인들이 고량주 한 병을 그냥 내놓는다는 건 보통으로 마음 쓴 것이 아니었다.

또한, 각 농장에서도 미국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전에 없이 프렌드라는 말을 자주 쓰며 악수를 청했고,

어느 농장주는 추수감사절에 쇠고기를 돌리기도 했다.

조선사람들은 드디어 살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선사람들이 일하는 농장마다 전에 들을 수 없었던 희한한 소식이 퍼지고 있었다.

한국광복군 모집이 그것이었다.
"우리나라 임시정부에서는 한국광복군을 창설하고 작년부터 광복군을 널리 모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아시는 분들도 더러 있겠지만, 임시정부에서는 왜놈들이 진주만을 기습하자

다음날 바로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나라도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들과 함께 일본을 쳐부수기 위해

나섰다는 뜻입니다.

그전이 독립운동이 우리나라 혼자, 조선사람들만 외롭게 싸워온 투쟁이라면 이번의 선전포고는

여러 연합국들과 함께 싸운다는 새로운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임시정부에서는 새롭게 광복군을 모집하는 것이고, 우리 미국 땅의 동포들도 지원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혈세를 모아 끊임없이 임정을 도와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새롭게 봉사할 기회가 우리 앞에 전개되어 있습니다.

이번 기회는 일본을 멸망시키는 데 두 번 다시 없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왜냐하면 작은 나라 일본은 지금 몇 년째 큰 나라 중국과 전쟁을 하고 있으면서

또 큰 나라인 미국과 영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 전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본은 반드시 패망하고 맙니다.

왜 그러는가! 벌써 자명한 이유가 나타나 있습니다.

조선총독부가 발행하는 신문을 보면 벌써 몇 년 전부터 자동차들을 기름이 없어서 목탄차라는,

숯으로 물을 끓여 그 증기로 가는 차로 개조를 시켰고, 또 무기 만드는 쇠가 모자라

못쓰는 고철들을 거둬들이는 운동을 저국적으로 전개하고 있고, 그뿐만 아니라

두달 전인 지난 7월달에는 탄피 만드는 데 쓰려고 집집마다 유기그릇들을 공출하라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열러분, 벌써 모든 물자가 부족해 이렇게 발광을 해대고 있는 일본이 모든 물자가

풍부한 미국을 상대로 해서 싸워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본은 틀림없이 패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건 어린 학생들도 대답할 수 있는 문제 아닙니까.

바로 이러한 좋은 기회에 일본을 쳐부수러 나서지 않고 언제 나서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지난날 국민군단의 깃발 아래 만주로 싸우러 가기를 원했지만

기회를 얻지 못하고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자식이 그때의 여러분들이 나이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루지 못한 뜻을 자식들이 이룰 수 있도록 여러분들께서 도와주십시오.

하늘이 내린 기회에 우리 다 같이 힘을 합칩시다."


한인회 간부들이 농장마다 돌면서 이런 강연을 했다.


"지원을 하면 어디로 갑니까?"


사람들은 궁금한 것을 묻기도 했다.


"예, 임정이 있는 중국 땅 중경이라는 곳으로 갑니다."


"미국정부서 못 가구로 안헙니꺼."


"그런 건 염려 마십시오. 다 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중국청년들도 진작부터 싸우러 가고 있습니다."


"임정이 왜 상해에 안 있고 중경이라는 데 있나요?"


아 예, 중일전쟁이 터져 상해가 왜놈들 차지가 되고,

임정은 몇 년 동안 전선을 피해 여러 곳으로 옮겨다니다가 지금은 중경에 머물러 있습니다."


"글먼 앞으로도 또 어디러 옮겨갈란지 몰르겄구만요?"


"중국 전세가 나빠지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럴 염려는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왜놈들이 여러 곳에 전쟁을 일으켜 힘이 분산되고 있으니까

중국 전세가 좋아졌으면 좋아졌지 나빠질 염려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모여 앉으면 그 이야기였다.

그러나 광복군에 지원할 수 있는 나이의 청년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 늦장가를 간 탓에 자식들이 만 19세에 이르지 못한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방영근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방영근은 처음 그런 소문을 들었을 때 당연히 아들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자세한 내용을 알고 보니 큰아들은 지원자격에서 두 살이나 어렸던 것이다.

그렇게 되자 방영근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지원을 권하기가 난처하게 되었다.

그건 분명 나라를 위하는 일이었지만 한편으로 보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전쟁터로 보내는 중대사였다.

그런 일에 자기 자식을 먼저 지원시켜 놓고 남들에게 권하면 모르지만 처지가

그렇지 못해 말 꺼내기가 몹시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일로 싸우는 집안이 생겨났다.

남자는 지원을 시키려는 것이었고 여자는 반대하다가 벌어지는 싸움이었다.


"반장님, 반장님, 빨리 우리 집 좀 가보세요. 우리 아빠가 엄마 죽여요."


어느 날 저녁 임달호의 딸이 방영근의 집으로 뛰어들며 숨을 헐떡거렸다.


"무신 일로?"


방영근은 벌떡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빨리 가보세요. 우리 엄마 죽어요."


임달호의 딸은 울음이 터지려는 얼굴로 발을 동동 굴렀다.


"가보믄 알 긴데 맘 급헌 아헌티 묻기 와 묻소."


방영근의 아내는 앞서 나가며 퉁을 놓았다.

방영근은 뒤따라 방을 나서며 아내와 함께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의 부부싸움에 남자 혼자 나서는 것은 아무래도 좀 거북스러웠던 것이다.


"아이고 마 와 이랍니꺼. 요것 놓고 말로 하이소, 말로."


방영근의 아내는 임달호네 방으로 뛰어들며 소리쳤다.
임달호는 제 아내의 머리채를 잡고 죽먹을 휘두르고 있었고,

그의 아내는 얻어맞아가며 빽빽 소리지러대고 있었던 것이다.


"어이 이 사람아, 어찌 이려. 말로 허드라고 말로."


방영근은 임달호를 붙들었다.


"아니, 말리지 말어. 남편 말을 우습게 알고 덤비는 저런 건 버르장머리를 뜯어고쳐야 해."


임달호는 숨을 씩씩거리며 침을 튀겼다.


"아니, 남편 말이면 다 말이야 말 같은 말을 해야 말이지."


임달호의 아내는 머리가 헝클어진 채 독 오른 소리로 대들었다.


"저거, 저거, 남들 앞에서 하는 꼴 좀 봐. 저걸 그냥!"


임달호는 또 아내에게로 내달으려 했다.


"이 사람아, 이러덜 말고 우선 앉어서 담배보톰 한 대 꼬실리소."


방영근은 임달호를 붙들어앉혔다.


"흥, 또 때려보지, 때려봐. 자식이 다 혼자 자식인가?

혼자 맘대로 하게. 둘이 낳은 자시들인데 왜 혼자 맘대로 하려고 그래.

반은 내 자식들이니까 내 말도 들어야지."


임달호의 아내는 조금도 기가 꺾이지 않고 빠르게 말을 쏘고 있었다.


"저, 저, 주등이 놀리는 것 좀 봐. 저러니 내가 안 패게 생겼어."


임달호가 거칠게 담배를 뽑았다.


"메리 어무이, 무신 일로 이리 당허능교?"


방영근의 아내가 임달호의 아내를 편드는 어투로 물었다.


"아 글씨 톰을 무작정 광복군인지 뭐신지에 보내야 된다고 열을 내잖아요.

그게 얼마나 고생고생 해서 키운 자식인데 말이나 돼요.

그래 안된다고 했더니 패고 덤비 아요. 아이, 분해."


임달호의 아내는 헝클어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질하며 바를 떨었다.


"뭐가 어쩌고 어째? 근냥 좋은 말로 안 된다고 했어. 잘 먹이기를 했냐, 잘 입히기를 했냐.

돈벌이는 지지리도 못해 애비로서 한 일이 뭐가 있다고 이제 와서 잘난 체고 큰 체냐.

 애국심 그리 많으면 자식 보낼라고 하지 말고 당신이나 나가라.

이따위로 억지소리하면 화 질러댄 건 누구야.

그렇게 주둥이 놀려대는데 안 팰 놈이 세상에 어딨어."


임달호는 새로 열이 받치고 있었다.


"그기 그리 돼서 쌈이 됐구만는…"


방영근의 아내는 무르춤해지며 남편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니, 내가 못할 말 했소."


"저것 봐, 저것. 창피한 줄도 모르고 무식한 여편네같으니라구."


임달호는 담배연기를 배뿜으며 혀를 차댔다.


"아니, 그 일에 유식 무식이 왜 나와요 그래. 그래요, 난 무식해요.

무식한 년이 아무리 따져봐도 나라덕 본 일이 뭐 하나 있어요.

 어쨌거나 잘살아보자고 이 만리타국 하와이까지 와서 파인애플가시에

얼굴이고 손이고 다 찔리고 긁혀 곰보딱지가 되다 못해 문둥이 꼴이 돼가면서 키운 자식들이에요.

헌데 느닷없이 사지로 보내자니 말이나 돼요?

먹을 것 제대로 못 먹고 입을 것 제대로 못 입어가며 혈세 꼬박꼬박 냈으면 됐지 자식까지는

죽어도 못 보내요. 톰을 보낼려면 날 죽이고 보내요."


임달호 아내의 태도는 완강했다.


"닥치지 모해!"


임달확 버럭 소리질렀다.


"아니 왜 말로 따지지 완력으로만 하려고 그래요?

반장님 내외분이 오셨으니 아주 잘됐어요.

 반장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임달호의 아내는 방영근에게 눈길을 돌렸다.


"글씨요…, 머시라고 혀야 허란지 참 난허구만이라 이.

이 말도 옳고 저 말도 옳은디 머시라고 헐말이 없구만요."


방영근은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조선사람인 것으로 따지자면 임달호의 뜻이 백번 옳았지만,

강압이 아닌 지원인 이상 그의 아내의 말도 영 틀린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전쟁에 나간다고 다 죽는 거도 아니고, 잔소리 말고 보내."


임달호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안돼요. 죽어도 못 보내요."


그의 아내의 목소리는 더 강했다.

그렇게 서로 맞섰으니 주먹다짐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톰은 머시라고 허능가?"


방영근은 임달호에게 물었다.


"아직 안 물어봤네."


"저어…, 글먼 말이시, 이러는 것이 어쩌겄능가."


방영근은 임달호와 그의 아내를 번갈아 보고는,


"당자인 톰헌티 물어보고 톰은 뜻에 따르도록 말이시."


절충안을 내놓았다.


"네, 좋아요. 그게 좋겠어요."


임달호의 아내는 자신이 있다는 듯 얼른 대답했다.


"…"


임달호는 담배만 빨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고개만 끄떡끄떡하지 말고 반장님 앞에서 똑똑히 대답해요."


"저 방정맞게!"


임달호는 아내에게 눈을 부라렸다.


"요것언 부부가 싸와서 될 일이 아니시.

그저 순리로 풀도록 허소. 다 좋자고 하는 일 아니겄능가."


방영근은 임달호의 허벅지를 두어 번 두들기고는 일어섰다.

그의 아내도 따라서 몸을 일으켰다.


"메리 엄니가 저리 독헌 디가 있는지넌 몰랐는디…"


방영근이 어둠 속을 걸으며 말했다.


"자석 생사가 달린 일인데 와 안 그렇겠능교. 그기 여자 맘이고 에미 맘 아닌교."


"우리 아덜도 나이 찼으먼 당신도 그러겄다 그런 말이여?"


"우예 불똥이 이리 튑니꺼. 내 맘 나도 모르지예."


"여자들이란, 쯧쯧쯧쯧…"


방영근은 혀를 차며 어둠 속에 뻗치고 있는 탐조등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일본은 정말 이번 전쟁으로 망할 것인가.

전쟁물자들이 그리 부족하다면 망하는 것은 틀림없을 텐데, 그때가 언제쯤 될 것인지…'


방영근은 그날이 어서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이틀이 지나 구상배의 아들 토마스가 방영근을 찾아왔다.


"아저씨, 저 광복군에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토마스가 불쑥 내놓는 말이었다.


"머시여?"


방영근은 깜짝 놀랐다.


"아니, 왜 그리 놀라세요? 아저씨가 반가워하실 줄 알았는데요."


토마스가 의아해했다.


"아니여, 너무 장해서 그런 것이제. 근디 어무님언 머시라고 허시드냐?"


방영근은 토마스의 손을 잡았다.


"그 일 때문에 아저씨를 찾아온 겁니다.

어머니는 안 된다고 야단이거든요.

아저씨가 말씀 좀 잘 해주세요."


"그러실 만도 허다. 아부님이 안 계신게로."


방영근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겠어요."


"그야 그렇제."


"어머니를 언제 만나시겠어요?"


"요것이 오래 끌 일이 아닝게 낼이라도 만내야제.

근디 어무님이 정 안된다고 허시먼 으쩔 챔이냐?"


"아저씨가 말씀하시면 아마 안 그러실 거예요.

어머니도 왜놈들을 아주 미워하거든요."


"글씨, 아부님이 안 계신게 그 맘허고 그 맘이 달를 수도 있다.

그 일로 부부쌈 일어나는 집도 있는 판이다."


"어머니가 뭐라시던 저는 갈 겁니다.

남자가 이런 때 나서서 안 싸우면 그게 어디 남잡니까?"


"그 말이야 백번 맞는 말인디,

근디도 어무님이 나 죽겄다고 허심서 반대허먼 그도 탈이 아니겄냐."


"그러니까 아저씨가 필요한 거지요.

어머니는 아저씨 말 잘 듣잖아요."


"그려, 어찌 일이 되게 히보자."


방영근은 이튿날 일을 하는 동안에는 토마스의 어머니에게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나서 토마스네 집으로 갔다.


"저어…, 토마스가 광복군에 지원헌다고 허등가요?"


방영근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와 예? 그놈마가 반장님 찾아가씨등교?"


토마스의 어머니가 대뜸 기를 세웠다.


"야아, 찾어와서 걱정이 많드만이라."


"반장님요, 생각 잠 해보시이소.

그놈마가 철이 있는 깁니꺼 없는 깁니꺼.

지가 이 집안 누구라꼬 광복군에 지원허겄다고 나서나 말입니더.

애국도 좋고 독립도 좋지마는도 지가 애비없느 집안 장자 안닌교.

집안 우이허라꼬 사지로 간단 말입니꺼.

그기 어데 말이나 되는 소린교."


토마스의 어머니는 눈물을 찍어냈다.


"야아, 그 말씸도 맞는디, 토마스 뜻이 아조 굳드만요.

저 시상서 아부지가 바래시는 것이라고 험서."


"머시라꼬예?"


토마스의 어머니가 멈칫 놀란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싸늘한 얼굴로 방영근을 쏘아보았다.
"그래, 반장님언 그놈아 말이 옳다 생각허고 날로 보고

그놈마럴 중국  땅으로 보내라 허라고 오능교?"


그녀의 말은 표독스러울 만큼 날이 서 있었다.


"아, 아니구만요. 저 그냥…,

토마스 뜻이 그런디 어무님 생각언 어떠신가…, 그리저리 알아볼라고…"


당황한 방영근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몰라 어물어물하고 있었다.


"보이소 반장님, 내사 마 반장님 속 빤히 아능기라요.

토마스 그놈아가 반장님 찾아가서 이 에미가 못 가구로 헌단 말 다 했고,

반장님언 토마스 그놈마 부탁받고 내 맘 돌릴라꼬 오신 기라요.

허지만도 반장님 헛고상허는 겁니더. 누가 무신 소리럴 한다캐도 내 맘언 돌뎅잉기라요.

내가 누구 기둥 삼고 사는 처지라꼬 그 맘이 변허겄능교. 택도 없지러, 택도 없심더."


토마스의 어머니는 더 말도 꺼내지 말라는 듯 고개를 짤짤 흔들어댔다.


"야아, 알겄구만요."


방영근은 더 무슨 말을 붙일 수가 없어서 일단 물러서기로 했다.


이삼일이 지나 방영근은 김칠성이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제, 돈에 환장허드마넌 결국 돈에 치여 지 명대로 살지도 몬하고 죽네."


방영근의 아내는 뼈 박힌 말을 했다.


"어디 돈에 치였능가, 사람에 치였제."


그래도 방영근은 김칠성이가 딱해 이렇게 말했다.


"돈에 눈멀어 서로 속이고 속고 했시니께네 돈에 치인 기 아니고 머신교."


"기왕 간 사람 두고 말 그리 야박허니 허지 말소. 이ㅉ가 인심만 사나와징게."


"그나저나 죽은 사람이야 편치만도 남은 처자석덜이 큰일났구만요.

그간에도 병치레허니라꼬 집꺼정 다 팔아묵고 쪽박 신세가 됐다쿠든데."


"글씨, 사람이 한시상 산다는 것이 머신지…"


방영근은 마음이 수수로워 한숨을 쉬었다.
세탁소를 동업하자던 김칠성은 다른 사람과 장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속아 돈을 다 날리게 되었다.

같은 조선사람끼리 사기를 친 것이었다.

농장을 벗어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더러 생기는 일이었다.

재판을 하느니 어쩌느니 하더니만 김칠성은 돈을 찾지 못한 해 돈 대신 병을 얻고 말았다.

화병이라고 했는데 김칠성을 아는 사람들은 안됐어 하지를 않고 오히려 고소해하는 눈치들이었다.

김칠성이가 너무 눈치빠르게 돈을 밝히고 산 탓이었다.

 2년이 다 되도록 병치레만 하더니 결국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방영근은 문상을 갔다.

곧 허물어질 것 같은 집에 문상객은 서넛이 있을 뿐이었다.


"저어…, 앞날언 어찌…."


문상을 마친 방영근은 김칠성 아내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막막하지요."


김칠성의 아내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어, 우리 농장으로 오시먼 지가 일자리넌 맨글 수 있는디요."


"아니에요. 저도 병이 들어서…"


김칠성의 아내는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바로 이렇게 말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농장일을 하는 여자들과는 달리 가시에 찔린 흉터 없이 말끔했다.

김칠성이가 일지감치 농장에서 벗어난 덕이었다.
방영근은 무슨 병인지 물어볼 수도 없고 더 할말도 없어서 발길을 돌렸다.


"우에 살든교?"


방영근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내가 물었다.


"집이 다 씨러져 가는 움막이등마."


"문상객언 많든교?"


"아니."


방영근은 대답하기도 귀찮았다.


"죄넌 진 대로 가고 공은 은 대로 간다는 말이 딱 맞는 기라.

나가 인자 허는 말이지만도 당신이 속도 없는 사람이기나, 부처님 가운데 토막인 기라요.

그런 인종 무상얼 누가 가겄소."


"알었응게 그만 허소."


방영근은 거칠게 성냥을 그어댔다.
남편의 그 손짓에서 묻어나는 성질을 알아챈 그녀는 얼른 밖으로 나갔다.
며칠이 지나 광복군 지원자들의 환송식이 열렸다. 지원자는 모두 6명이었다.

임달호의 아들은 결국 지원을 하지 않았다.
토마스는 지원자들 대표로 출정사를 읽었다.

나이가 제일 많고 몸도 가장 건장했던 것이다.


"조국의 부름을 받고 저희들은 떠납니다.

저희들의 양 어깨에는 조국의 해방 달성, 조국의 독립 쟁취라는 성스러운 사명이

짊어지어져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피끓는 젊음을 바쳐 강도 일본을 쳐부수고 기필코 저희들에게 부여된 사명을

완수하여 부모형제들 앞에 당당하게 개선할 것을 맹세하는 바입니다.

부모형제 그리고 동포 여러분, 저희들이 가는 길에 끊임없는 성원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내용의 출정사가 낭독되는 동안 식장 안에는 숙연한 침묵이 드리워졌고,

 여자들은 줄곧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소리없이 울고 있는 토마스의 어머니와 나란히 앉은 방영근은 콧날이 찡해져

천장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더라고 토마스의 어머니도 결국 아들의 고집에 꺾이고 말았던 것이다.
환송식이 끝나자 지원자들은 겹겹이 걸리는 하와이의 꽃목걸이에 묻히다시피 되어 배에 올랐다.
아아리라앙 아아리라앙 아아라아리이요오오…
누군가가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는 금세 합창으로 변했다. 여자들도 남자들도 눈물을 흘리며 아리랑을 부르고 있었다.

그 서럽고 사무치고 구성진 가락은 잔잔한 파도소리에 실리며 뱃전을 감싸고 돌았다.

아리랑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배가 떠날 때까지 몇 번이고 되풀이 되었다.

그 노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식민지민족의 망향가고 이별가고 타식가가고 환희가며

애국가가 되어 있었다.
토마스는 어머니는 보름이 넘도록 아들을 떠나보낸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병이나 나면 어쩌나 싶어 방영근은 여간 마음이 쓰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슬픔을 빨리 잊게 하려고 아내에게 자주 들여다보고 하라고 일렀던 것이다.


"에미 맘이라 쿠는 기 어데 지 뜻대로 되는교.

토마스 어무이넌 몸만 여게 있제 맘언 아덜 따라가고 있는 기라요.

핀지나 한분 오믄 달라질랑가 몰라도 원…"


아내의 말에 방영근은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득병이라도 허먼 큰탈 아니라고."


방영근은 구상배를 생각하며 혀를 찼다.

토마스를 보내게 한 것을 구상배가 원망하는 것 같았던 것이다.


"와 아이라예. 그리 가먼 병날 기 뻔한 거라요."


"어허, 그리 말허먼 으쩌능겨. 무신 수럴 써서든지 맘얼 돌리게 히야제."


방영근의 언성이 높아졌다.


"누가 보고만 있었능교.

베라벨 소리럴 다 하믄서 맘얼 돌릴락캐도 쇠귀에 경 읽긴데 나도 우짤 긴기요."


방영근의 아내도 짜증을 부렸다.


"안 되겄구만. 자네 혼자 나서덜 말고 여자덜이 다 나스도록 혀.

너댓썩 패럴 짜갖고 밤마동 가서 트럼프럴 치든지, 술얼 마시고 노래럴 허든지,

어쨌그나 재미지게 히서 아덜 생각 못허게 맨글소.

나가 반원덜헌티다 일러놀 것잉게."


"그거 존 생각이네예."


며칠이 지난 일요일 밤이었다.

방여근은 샌달우드나무 아래 누워 있는데 이기문이가 찾아왔다.


"반장님, 반장님, 오늘 기막힌 꼴 봤소."


이기문이 바짝 다가앉으며 목소리를 죽였다.


"무신 꼴?"


방영근은 뜨악하게 담배를 빼들었다.


"죽은 김칠성이 있지요?"


이기문도 담배를 뽑아들며 이야기를 시작할 테니 잘 들으라는 듯 목을 늘이며 침을 삼켰다.


"근디…"


"아 글쎄, 김칠성이 딸이 중국놈들 유곽에 나와섰더라니까요."


"머시여?"


방영근은 담배를 빨다 말고 목소리가 터졌다.


"황소만한 미군한테 끌려 들어가는데 참 기가 막히더라구요."


이기문이 끌끌끌 혀를 찼다.


"자네가 머시럴 잘못 본 것 아니여?

김칠성이 큰딸이라고 히야 열다섯이 됐을란지말지 헐 것인디?"


방영근은 이기문을 쏘아보았다.


"맞어요, 글쎄. 나이가 어리니까 기가 막히다는 거지요.

 나이가 스물을 넘었으면 누가 말이나 하나요."


이기문의 말은 자신에 차 있었다.


"자네가 그 집 딸얼 알기나 혀?"


방영근은 도무지 믿고 싶지 않아 이렇게 대질렀다.


"알고말고요. 교회에서 한두 번 봤나요 뭐."


이기문이 헛웃음을 쳤다.
방영근은 눈을 내리감았다.

이기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김칠성의 아내의 그 매끈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손쉽게 그런 짓을 하려고 농장일을 마다했는지도 몰랐다.
샌프란시스코에서도 그렇지만 하와이에서도 중국사람들의 매춘업은 유명했다.

어린 자식들을 팔아먹기를 예사로 하는 중국사람들은 열두세 살 먹은 자기 딸들부터

내놓고 매춘업을 시작했다.

그 호객행위도 노골적이어서 길가에다 여자들을 쭉 세워놓고 손님들이 고르게 하는 것이었다.

그 주된 고객은 미국군인들이었다.
조선사람들 중에 매춘업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남편이 죽고 생활에 쪼들리다 못해 두어 사람이 딸들을 중국유곽에 팔아넘겼다는

소문이 이삼 년 전부터 떠돌았다.

그런데 진주만 폭격 이후 하와이에 육군들까지 몰려들면서 중국인들의 매춘업은

일대 호황을 맞고 있었다.


"어찌겄능가. 목구녕이 포도청이고, 다 김칠성이가 시상 잘못 산 죄제. 근디 소문내덜 말소."


"그럼요."


"소문내먼 자네가 유곽에 간 죄가 터지는 판잉게."


방영근은 이기문을 빤히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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