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아리랑

149. 아사히사진관

오늘의 쉼터 2017. 7. 4. 08:54

149. 아사히사진관



"미나루, 미나루, 여기 봐, 여기!"


"로로로로, 깔꾹, 깔꾹!"


"옳지, 옳지, 웃는다, 웃는다!"


두 여자가 손뼉을 치고 손을 들까불어대며 아이를 어르고 있었다.


펑!


조명 불빛이 번쩍하며 흰 연기가 풀쑥 솟아올랐다.


"예에, 자알됐습니다."


사진기 셔터의 고무주머니를 누른 윤철훈이 경쾌한 가락에 실어 말하며 허리를 굽실했다.

그의 그런 세련된 어조와 몸짓은 경륜 많은 사진사의 모습이 영락없었다.


"어머, 어쩌지요? 불빛 때문에 애가 눈을 감았는데요."


두 여자 중에서 젊은 여자가 거짓 울상에 발까지 동동거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아, 아무 염려 마십시오. 눈이 감기기 전에 사진은 이미 찍혔습니다."


윤철훈은 아주 친절하고 예절바른 태도로 말하며 더없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게 정말인가요?"


여자는 윤철훈을 보며 웃음지었지만 미심쩍은 기색은 아직 남아 있었다.


"예, 아주 예쁘고 근사하게 잘 나올 겁니다. 아무 거정 마시고 푹 안심하십시오."


윤철훈은 그 매끈한 차림만큼 세련된 친절로 손님을 대하고 있었다.

그는 앞가리마를 탄 머리에 기름을 자를 바르고 있었고,

새하얀 와이셔츠에 까만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그리고 줄이 곧게 선 검정바지에 검은 구두는 반들반들 윤이 나고 있었다.

누구 눈에나 세련미 넘치는 일류 멋쟁이였다.


"그래도 잘못 나오면…"


젊은 여자는 안심한 얼굴이면서도 여전히 토를 달았다.


"히데꼬 상, 정말 아무 걱정 안하셔도 돼요.

저이는 평생 사진을 찍으면서 그런 실수는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으세요.

그런 실수야 초보자나 엉터리들이 하는 거지요."


차은심이 상긋 웃으며 손님을 맡고 나섰다.

그녀도 윤철훈 못지않게 멋을 부리고 있었다.

보랏빛 꽃무늬의 후레아 원피스에 빨간 허리띠를 맸고, 갈빛 뾰족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녀는 겸손한 태도와 상냥한 목소리와는 달리 남편의 능력을 노골적으로 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과시는 겸손함과 상냥함으로 포장되어 전혀 과시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손님을 안심시키고 윤철훈의 가치를 높이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네에, 그러시겠지요.

아사히 사진관은 사진 잘 찍기로 소문나 있으니까요.

예쁘게 잘 빼주세요."


젊은 여자는 비로소 안심하며 방싯 웃었다.


"그럼요, 아주 예쁘게 잘 빼드려야지요.

첫아들인데다가 일평생 간직해야 할 첫돌사진 아닙니까."


차은심은 손님의 가려운 데를 먼저 찾아 긁어주고 있었다.


"네에, 그러니까 걱정이 되는 거지요.

우리 평생, 미나루 평생, 그리고 미나루 자식 대까지…"


젊은 여자는 아이를 안아 올리며 예쁘고 귀여워 죽겠다는 듯

아이의 얼굴에 입맞춤을 해댔다.


"그럼요, 그렇게 오래가도 변하지 않게 잘 빼드릴게요.

아유, 잘 생기기두 했네. 장래 장군감이 틀림없군요."


차은심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귀에 단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풀어대고 있었다.

일본사람들이 제일 듣기 좋아하는 말이 자기네 어린 아들들이 장래에 장군이 될 거라고 하는 말이었다. 군인들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나라의 백성들다웠다.


"어머, 그렇게 보여요?"


젊은 여자는 화들짝 반가워했다.


"그럼요, 이 인물이 얼마나 사내답고 늠름해 보여요.

타고난 무인에 장군감이라니까요.

사람들을 많이 대하고 수없이 얼굴을 찍는 직업이라

저는 관상도 꽤는 볼 줄 알거든요. 호호호호…"


차은심은 아주 능란한 말솜씨를 발휘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전혀 잘생겼다고 할 수 없고 그저 평범할 뿐이었다.


"네에, 우리 에시마 상이나 나도 미나루가 씩씩한 군인으로 출세하길 바라고 있어요.

사령관 각하 같은 장군이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젊은 여자는 상기된 열굴로 또 아이의 볼에다가 입맞춤을 해댔다.

그 여자가 말하는 사령관 각하란 관동군 총사령관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관동군 총사령관은 일본이 만들어낸 만주국 황제를 호령하는 위치이니

일개 통역관 아내의 입장에서는 최고로 높게 보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참, 에시마 상은 아들하고 사진을 안 찍나요?

부부가 아이하고 함께 찍으면 아주 좋은 기념이 될 텐데요."


"글쎄, 그러기로 했는데 집에 없잖아요. 통역도 못해먹을 일이에요."


"왜, 어디 가셨나부죠?"


차은심은 그저 예사롭게 말했다.

그러나 신경은 일시에 곤두섰다.


"글쎄, 갑자기 참모장 모시고 장교들하고 북경을 갔지 뭐예요."


"아이구, 딱해라.

무슨 급한 일이길래 첫아들하고 돌기념사진도 못 찍으시고 그리 되셨을꼬."


차은심은 딱하고 가엾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모르겠어요, 무슨 새 작전계획을 세우는 모양인데,

통역관도 군인이나 마찬가지라구요. 속상해요."


"그러게 말이에요.

중국놈들을 빨리 쳐부숴야 할 텐데 무슨 좋은 수가 없을지 모르겠네요."


"글쎄요, 이번에 만주 주둔군을 내륙 전선으로 이동시킬 모양이던데 그러면 어찌 될는지…"


"아유, 잘됐네요.

만주 군인들이 다 내륙 전선으로 가 중국놈들을 빨리 이겨

우리 대일본제국이 중국 전체를 지배해야지요.

그래야 히데꼬 상도 이런 섭섭한 일 안 당하구요."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나도 남편한테 그런 식으로 말을 해봤지요.

헌데 그럴 수는 없나 봐요.

그리 되면 불령선인들이 또 생겨나고,

또 쏘련도 있고 하니까요. 미나루야, 이제 가자 응?"


히데꼬는 아이를 추스르며 돌아섰다.


윤철훈은 사진을 자르는 척하고 있었다.


"얼마지요?"


"아 예, 돌을 축하하는 뜻으로 특별히 싸게 해드리겠습니다. 반값만 내십시오."


윤철훈은 친절하게 웃으며 사진견본대 겸 계산대로 다가갔다.


"어머, 그럼 밑지지 않으세요?"


히데꼬는 좋아서 활짝 웃었다.


"아니, 괜찮습니다. 우리 단골이신데 당연히 축하를 드려야지요."


"어쩜, 고맙기두 하셔라."


히데꼬는 작은 손지갑을 열었다.


"사진 빨리 보고 싶으시겠지요?"


"그럼요. 지금 당장 보고 싶은걸요."


"예, 그러시겠지요.

일이 밀린 것들도 있고 해서 보통으로 하자면 한 열흘쯤 걸리는 것 아시죠?

허지만 돌사진이니까 특별히 모레까지 해드리겠습니다."


"어머나, 고마우셔라. 정말 고맙습니다."


히데꼬는 돈을 깎아줄 때보다도 더 반색을 했다.


"애 데리고 힘드시게 나오실 것 없어요.

제가 댁으로 배달해 드릴 테니까요."


차은심의 말이었다.


"어머, 그래요? 바쁘실 텐데."


"아니, 괜찮아요. 그쪽에 배달할 게 있으니까요."


"네, 그러면 좋지요. 내가 덜 미안하고."


히데꼬는 웃음꽃을 얼굴 가득 피우며 아주 기분 좋게 사진관을 나섰다.


"어떠세요? 군인들 이동이."


차은심은 빠르게 속삭였다.


"그거 곧 타전해야겠소. 헌데 대강 얼마나 이동하는지를 알아내는 게 급선무요."


윤철훈은 미간에 힘이 모아졌다.


예", 알아내는 데까지 알아내야지요."


차은심의 눈에 묘한 광채가 서렸다.


"나도 알아볼 테니까 너무 무리하진 마시오."


"네. 그런데 많이 이동할까요?"


"글쎄, 아마 그러지는 못할 거요. 국경에 쏘련군이 있으니까."


그때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재빨리 태도를 바꾸어 각기 일을 하는 척하는 자세를 취했다.
딸랑딸랑…
문에 달린 조그만 종이 울리며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남녀 한 쌍이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손님."


차은심은 날렵하게 손님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무슨 기념사진 찍으시렵니까?"


윤철훈도 정중하고 세련되게 손님을 맞이했다.

그들은 누가 보거나 멋쟁이 사잔사 부부였다.
윤철훈과 차은심이 노리고 있는 것은 관동군 총사령부였다.

중국에 퍼져 있는 일본군의 심장, 그곳의 고급정보를 빼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동안 올린 성과도 적지 않았다.

오늘처럼 예사로 흘린 말이 빌미가 되어 큰 정보를 캐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중국식 기와지붕을 올린 거창한 관동군 총사령부는 아예 민간인들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

관동군 총사령부 앞은 밤낮없이 경계만 삼엄한 것이 아니었다.
그 앞의 길은 보통 신작로의 서너 배가 되게 넓었고,

그 길을 따라 양쪽으로 사오층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런데 그 건물들은 관동군 총사령부 부속건물이거나 특수 관공서라서

일반인들이 발길 할 필요가 없는 곳들이었다.

그런 건물들에 일반 상점들이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러다보니 그 거리는 언제나 인적이 한산한 채 엄숙한 분위기에 감싸여 있었다.

처음부터 일반인들의 발길을 차단시키기 위해 짜여진 기묘한 구조였다.
윤철훈은 그 거리와 연결되는 첫 번 째 네거리의 상점 밀집지역세 사진관을 차렸다.

관동군 총사령부와 한걸음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간판도 일본사람들의 기분과 비위에 잘 맞도록 아사히 사진관이라고 붙였다.

그건 일본사람들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싱싱한 아침 해라는 뜻의 일본 상징이었다.

그러나 사진관 이름을 그렇게 지은 건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고 일본사람들을

유인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윤철훈의 속뜻은 또 따로 있었다.

조선이 일본을 제압한다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차은심과 함께 그렇게 매끈하게 멋을 부린 것도 일본사람들을 상대하는 데

유리하고 격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일본사람들은 서양것이야 하면 이상하게도 사족을 못 썼고,

그해서 양복쟁이는 무조건 신사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

들이 걸핏하면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것도 사진기가 서양에서 들어온 신기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운전사를 대단하게 취급해 주는데 사진사를 그보다 더 높게 봐주는 것도 마술을 부리듯

신기한 기술을 가졌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특히 일본사람들은 사진에다가 사진을 찍은 연유와 그 날짜를 써넣기를 너무 좋아하는

유치하고 졸렬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사진을 찾는 사람들마다 자기들이 원하는 문구가 사진에 박혀 있는 것을 보고

그렇게들 신기해하고 좋아할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조수를 두지 않고 차은심이 같이 나섰던 것은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관동군 사령부에 속한 장교의 아내들과 친분을 맺기 위한 목적이 또 있었다.

다른 사진관에서는 전혀 하지 않는 배달도 그래서 시작되었다.

 사진 배달은 큰 효과를 나타냈다.

 장교 아내들을 단골손님으로 묶어두게 된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그들의 관사를 자유롭게 드나들게 되면서 하급장교에서부터 고급장교들까지

신상 파악과 집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냈던 것이다.

그 어떤 고급장교든 어느 때라도 테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한 지도가 그려졌다.

그리고 그 자식들을 언제라도 유괴할 수 있을 만큼 신상도 치밀하게 파악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효과는 장교의 아내들이 무심결에 흘려놓는 한두 마디씩의 정보였다.

그 정보들은 대개 꼬리였지만 어느 때는 바로 대가리인 것도 있었다.

장교 아내들이 단골이 되면서 자연히 장교들도 드나들게 되었다.

장교들은 대개 진급을 하면 정신없이 사진을 많이 찍으려 들었다.

모자를 쓰고 찍고, 벗고 찍고, 좌측으로 찍고, 우측으로 찍고, 서서 찍고 , 앉아서 찍고,

아내와 찍고, 가족들이 찍고 법석을 떨었다.

그럴 때를 위해 지휘봉이며 호피 같은 소품도 준비해 놓았다.

장교들은 누구나 지휘봉을 척 받쳐 들고 포효하는 호랑이의 가죽을 밟고 서서

근엄한 표정으로 사진찍기를 원했다.

그 전신사진은 값이 비싸서 장사가 잘될 뿐만 아니라

장교들이 사진관에 호감을 갖게 하는 데 더없이 효과적이었다.

그런 날이면 가족사진은 꼭 공짜로 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진급을 축하한다는 명분을 내세워서. 그러면 아무리 도도하고 딱딱하게 굴던

장교도 얼굴이 부드럽게 푸리게 마련이었다.

가족사진은 인물사진이 아니라서 필름 수정을 안해도 되니까 전혀 공이 들지 않는 것이었다.
선전용으로 사진관 안이나 밖의 진열장에 내건 큰 사진들도 모두가 일본옷이나

양복을 입은 일본 남녀거나 일본군의 모습이었다.

중국옷이나 조선옷을 입은 모습은 아예 내비치지 않았다.

그건 아사히란 간판을 내건 것과 맞통하는 이유 때문이었고, 간판에 어울리게 하기 위함도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영락없이 일본사람이 하는 사진관이었다.

나무계단이 놓인 2층에 사진관을 차린 것도, 문에 작은 종을 달아놓은 것도

모두 경계를 하기 위해서였다. 여자손님들은 그런 것을 전혀 모르고 문을 여닫을 때마다

종이 맑은 소리로 딸랑딸랑 울리는 것을 그저 멋을 부린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네 집에 그런 치장을 한 여자들도 있었다.
운철훈의 살림집은 사진관 뒤쪽이었다.

암실 옆의 좁은 뒷문을 열면 아래로 내려가는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건 만일에 대비해서 따로 돈을 들여 만든 비상구였다.

차은심은 수시로 그 계단을 오르내렸다.

식모에게 맡겨놓은 두 아이를 살피려는 것이었다.
윤철훈이 장교들에게 그렇게 잘하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빼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신임을 얻어 관동군 총사령부의 전속 사진사가 되려는 것이었다.

전속 사진사가 되어 자유롭게 그곳을 드나들게 되면…

그러나 그건 허황된 꿈인지도 몰랐다. 이미 인본인 전속 사진사가 있었고,

그곳에는 1등국민인 일본사람들뿐 2등국민인 조선사람이나 3등국민인

중국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는 소문이었다.
이 등급은 물론 일본사람들이 정한 것이었다.

그 차별은 중일전쟁이 일어나면서 표출되기 시작했고,

이제 일반화되어 있었다. 일본사람들은 조선에서도 그렇듯이 이곳에서도

자기네들끼리 모여 고급주택을 지어 마을을 이루었고,

일본상인들의 거리도 따로 있었다.

조선사람들은 그 거리 언저리에 어찌어찌 붙을 수 있었지만 중국사람들은 절대 안되었다.

일본사람들은 중국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고 , 군대에서는 사병들에게

중국음식점 출입금지령을 시행하고 있었다.

더러워서 먹으면 곧 병이 걸린다는 것이 이유였다.

휴일날이면 헌병들이 군인들을 중국음식점에서 끌어내 잡아가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차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있었다.

부대 옆에 붙어 있는 군대위안소였다.

그곳의 시간당 화대는 중국여자가 1원, 조선여자가 1원50전, 일본여자가 2원이었던 것이다.
윤철훈은 다음날 아침 일찍 목욕탕을 거쳐 이발소를 찾아가씨다.

장교들이 많이 드나드는 고급이발소였다.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주인과 화투놀이도 해서 돈도 잃어주고,

술도 사주고 해서 벌써 오래전부터 절친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이발소는 어디나 그렇듯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어 머리를 깎는 동안 한담을 늘어놓는 만큼

잡다한 이야기들이 버글거리고, 이런저런 소문들이 퍼져나가는 진원지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 이발소는 장교들이 많이 드나드는 만큼 그동안 쓸 만한 정보를 적잖이 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그간에 경기 좋았어요? 아, 여기만 오면 기분좋다니까."


이발소로 들어선 윤철훈은 거울 속의 주인과 눈을 맞추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 어서 오시오. 경기나마나 매냥 그 타령이 그 타령이지. 그쪽 경기는 좋소?"


주인이 코털을 자르다 말고 손을 들어 보였다.


"우리도 그저 그래요. 시국이 어서 조아져야 경기도 좋아지지 않겠어요?"


윤철훈은 이야기를 슬며시 시국 쪽으로 돌렸다.


"그러게 말이오. 이발소고 사진관이고 시국이 편안하고 살기가 좋아야

한몫 보는 장산데 전쟁이 이리 질질 끌어대니 원…"


주인이 돌아서며 의자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세 명의 종업원들이 제각기 일손을 놀리고 있었고 아직 소님은 없었다.


"중국군놈들은 단칼에 다 쳐없애야 하는데 그것 참 속상하다니까요.

사령부에서는 무슨 묘책이 없었을까요?"


윤철훈은 은근히 이야기를 사령부로 연결시켰다.


"글쎄, 중국놈들이 수가 워낙 많으니까 죽여도 죽여도 끝도 없이 덤빈단 말이오.

그것 참 사람 미칠 일 아니오."


주인은 귀동냥한 말을 마치 자기가 현역 지휘관이나 작전장교나 되는 것처럼 말했다.


"예, 그것 참 미칠 일이지요.

그래도 사령부에서 무슨 묘책을 짜내얄 것 아니겠어요?

대일본제국 군대의 체면이 있지요."


자신이 원하는 말을 이끌어내려고 윤철훈은 무슨 묘책을 강조하고 있었다.


"묘책이라는 게 뭐 따로 있겠소.

우리 쪽에서도 군인들을 더 많이 투입해서 항일연군이란 종자들을 다 씨를 말린 것처럼 해야지."


가위질을 시작하며 주인은 열이 받치고 있었다.


"예, 그렇구말구요. 그건 지당한 말입니다.

헌데 사령부에서는 그런 대책을 안 세우고 있나요?"


윤철훈은 말하기 좋아하고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주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바람을 넣고 있었다.


"아니, 안 세울 리가 있나요. 아마 곧 만주의 병력이 대거 전선에 투입될 것 같소."


윤철훈은 귀가 번쩍 뜨이는 긴장을 느꼈다.


"글쎄요, 여기 병력이 얼마나 투입될지 모르지만, 그게 우리한테는 좋고도 나쁜 일이오."


윤철훈은 속마음을 싹 감추고 또 하나의 덫을 놓았다.


"나쁜 일?"


주인이 가위질을 멈추며 거울 속의 윤철훈을 빤히 쳐다보았다.


"생각해 보시오.

군인들이 많이 떠날수록 전쟁에 빨리 이길 수 있으니까 좋지만,

우리는 그만큼 손님이 줄어드니까 나쁘지 않겠소."


"아, 그게 그렇게 되는군.

안되겠는데, 병력이 얼마나 이동하는지 알아봐야지."


혼자말을 하는 주인의 얼굴이 구겨지고 있었다.
윤철훈은 가슴이 뿌듯하도록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며칠 있다가 술 한 잔을 사면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였다.


"며칠 있다가 술내기 화투나 한판 벌입시다."


윤철훈은 이발소를 나서기 전에 둥근슬쩍 한마디 걸쳤다.


"그거 조옷치요. 흐흐흐흐…"


주인은 어깨를 들썩이며 흐흐거렸다.

'너는 내 밥이야' 하는 것처럼.
윤철훈은 일부러 느지막하게 점심을 먹으려고 일본음식점 아사히를 찾아가씨다.

그곳도 장교들이 많이 드나드는 고급음식점이었다.

그곳 주인과는 상호 아사히가 서로 같다는 것을 빌미삼아 친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발소 주인과는 그 음식점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감추는 동시에 정보의 정확성을 기해야 했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이거 너무 늦어서 점심 못 얻어먹는 것 아닌가요?"


음식점으로 들어서던 윤철훈은 주인을 보자 반갑게 인사하며 배고픈 시늉을 했다.


"어서 오시오. 왜 이리 늦었소? 손님이 많소?"


점심손님을 한바탕 치러낸 주인은 다다미 깐 간이방에 퍼지르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윤철훈을 반가운 기색으로 맞았다.


"예, 손님들이 어찌 하필 점심때 몰려들어서 점심도 제때 먹지 못하게 한다니까요."


윤철훈은 능란하게 받아념겼다.


"점심이야 좀 늦게 먹어도 그만이고,

장사야 무슨 장사건 손님 많은 게 제일 아니겠소."


주인이 앉음새를 고치며 말했다.


"그야 그렇지요. 손님 없는 장사야 그대로 망쪼 아닌가요."


윤철훈은 이골난 장사치처럼 말하며 키들대고 웃었다.

그리고 술을 곁들여 점심을 시켰다.


"요새 여기도 장사가 더 잘되지요? 1등국민들이 내지에서 많이 오는 덕에."


윤철훈은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해주려고 일부러 1등국민이란 말까지 끌어다내고 있었다.


"괜찮은 편이오. 사진관도 그렇소?"


주인이 좀 의아스럽게 물었다.


"예, 집으로 편지를 보내면서 사진을 넣어 보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이 신경의 경치들을 배경으로 해서 찍은 사진들 말이오."


윤철훈은 목적하는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차분하게 밑자리를 깔고 있었다.


"아아, 사진관도 그런 재미를 보는구랴.

만리타국에 처음 왔으니 그럴만도 하겠소. 그것 참 묘한 재미요."


주인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흥미로워했다.


종업원이 음식을 내왔다.


"술잔 하나 더 가져오게. 자리 잡은 걸 보면 눈치가 있어야지."


윤철훈이 종업원에게 일렀고


"아니, 나는 괜찮소."


주인이 손을 저었고


"어서 가서 가져오게."


윤철훈의 독촉에 주인은 못 이기는 척 한눈을 팔았다.


"자아. 한잔합시다."


윤철훈과 주인은 술을 한 모금씩 했다.


"그나저나 여기 장사나 내 장사에나 걱정거리가 한 가지 생겼어요."


윤철훈이 혀를 찼다.


"걱정거리? 그게 뭐요?"


주인이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그야 다 알고 계시겠지만, 어제 목욕탕에서 들으니

여기 군인들이 전선으로 이동한다면서요?"


윤철훈은 이발소라고 하지 않고 목욕탕이라고 둘러댔다.


"예, 그런 말을 얼핏 듣긴 들었소만, 그게 무슨 걱정거리요?"


주인은 그만 시큰등한 반응을 보였다.


"아니, 눈치 빠른 분이 무슨 소리요?

여기 음식점이나 우리 사진관에서나 돈 잘 쓰는 사람들이 누구요?

군대 장교들 아니오? 군대가 이동하면 장교들도 많이 이동할 거 아니겠소?"


윤철훈은 마침내 불붙은 화살을 날리며 주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 맞소! 그게 그렇게 되는구먼. 주인은 제 무릎을 치고는,

그리되면 사진관보다야 우리 장사가 더 피해를 보게 되지."


그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며 당황스러워했다.


"예, 그렇기도 하지요. 사진이야 매일 밥 먹듯이 하는 건 아니니까…"


윤철훈은 슬쩍 그의 말을 수긍하는 척하며 감정을 자극하고는,


"대관절 얼마나 떠나는지 알아야 대책을 세우든지 어쩌든지 할 텐데 이건 원…"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그거 맞는 말이오. 그거부터 알아봐야 되겠소."


윤철훈은 느긋하게 속웃음을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까짓 중국놈들을 왜 후다닥 해치우지 못하고 그렇게 질질 끄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주인은 짜증스럽게 혀를 차댔다.


윤철훈은 다음날 최규승과 하 서방을 따로따로 불러서 만났다.


"요새 병력이동 상황은 어떻소?"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선한 인상이면서도 못생긴 최규승의 대답이었다.


"아마 머지않아 병력이동이 있을 것 같소.

철저하게 숫자를 파악하도록 하시오."


윤철훈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손님들 앞에서 웃음을 흘려가며 사진을 찍을 때의 모습이 아니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요새 관내로 가는 쌀 가마니들이

다른 때보다 더 많이 쌓이고 있습니다."


"음, 그런지도 모르겠소.

그것도 얼마가 더 늘어나는지 파악해 보시오.

다른 정보는 뭐 없소?"


"예, 색다른 건 없습니다."


"됐소. 빈틈없이 하시오."


최규승은 윤철훈이 포섭해 신경역에서 밥장사를 하고 있는 조직원이었다.

최규승은 항일연군 초기에 부상을 당해 역전에서 행상을 하다가 윤철훈과 연결된 것이었다.

그의 밥장사 밑천을 윤철훈이 대주었음은 물론이었다.

그는 아내와 번갈아 가며 밤을 새우는 밥장사를 해가며 역 안의 움직임을 샅샅이 살피고 있었다.

그는 붙박이 하급역부원들과 끈을 대고 있었다.

일본군은 모든 운송수단을 기차에 의존하고 있었고,

특히 신경역은 만주의 중심이라서 그 동향 파악은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이다.


"요새 뭐 새로 들은 소식 없소?"


윤철훈은 인력거꾼 하 서방에게 물었다.


"예, 별로 없는데요."


목이 굵고 어깨가 넓은 하 서방이 목에 걸친 때 절은 수건으로 이마를 씩 문지르며 대답했다.


"으음, 앞으로 장교들을 태우고 다닐 때 그들의 말을 유심히 듣도록 하시오.

그리고 변두리로 나갈 때는 어떤 부대들이 움직이는지 분명하게 살피도록 하시오.

곧 부대들의 이동이 있을 것 같소."


"예, 알겠습니다.


하 서방이 고개를 꾸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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