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아리랑

147. 진로를 바꿔라

오늘의 쉼터 2017. 7. 3. 16:08

147. 진로를 바꿔라



"그런데 말이오, 이번에 소학교에서도 조선어 학습을 폐지시켜 버렸소.

조선교사들은 기분이 안 좋을지도 모르겠는데, 어디 제일 젊은 다께다 선생이 대답을 해보시오."


교무주임이 흐트러진 몸짓으로 한 사람을 손가락질했다.

다께다 선생이라고 지적당한 것은 바로 박용화였다.

술자리의 대여섯 사람은 모두 취해 있었다.

박용화는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끼며 몸을 바로잡았다.


"예, 그건 당연한 조처라고 생각합니다.

내선일체로 모두 황국신민이 된 마당에 조선학생들의 모국어가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


박용화는 거침없이 말했다.


"그게 진심이오?"


"예, 그렇습니다."


"내 앞이니까 그러는 게 아니고 진정이냐 그거요.

술자리니까 괜찮으니 진정을 말해 보시오."


"아닙니다, 진정 잘된 조처입니다."


"으하하하하… 역시 다께다 선생은 환골탈태한 황국신민이고,

사범 학교 교육을 잘 받은 모범교사요.

교무주임은 흡족하게 웃어젖히고는,

자아 오늘 술 잘 마셨으니 그만 일어나기로 합시다."


그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다께다 선생, 우린 한잔 더 합시다."


"구니와께가 불쑥 말했다."


"아, 젊은 선생끼릴 한잔 더 하겠다고?

그것 조옷치. 젊어서 술이 조금 모자라기도 하겠지.

젊은 선생끼리 한잔 더 하면서 친목을 돈돈히 하는 것, 그것 좋구말구."


교무주임이 비틀거리며 손을 흔들어댔다.
다른 선생들은 교무주임을 따라 나가고 방에는 구니와께와 박용화 둘이만 남았다.


"다께다 선생, 여긴 우리 단둘이뿐이니까 내가 한마디 물어보겠소.

이제 조선학생들은 모국어를 전혀 배울 숴 없게 됐소.

아까 그 대답이 정말 진심인 거요?"


구니와께는 술취한 몸을 바로잡으려고 애쓰며 물었다.
총독부에는 38년의 조처에 이어 금년(1941년) 3월 31일부로 소학교를 국민학교로 개칭하고

조선어의 학습을 폐지시키는 국민학교 규정을 공포한 것이었다.
이로써 모든 교육기관에서는 조선어 교육이 완전히 폐지되게 되었다.


"아니, 무슨 소릴 하는 거요?

그럼 내가 딴마음을 두고 거짓말을 했다는 거요?

내가 한 말은 사실 그대로요. 그건 당연한 조처요."


박용화는 또 긴장을 느끼며 당연한 조처를 되풀이했다.


"이거 보시오. 다께다 선생! 여긴 우리 둘뿐이라고 하잖았소.

교무실에서 회의를 하는 것도 아니고 교단에서 애들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니까

진심을 말해 보라 그거요."


구니와께는 눈을 질끈 감으면 술이 주루룩 흘러내릴 것처럼 취한 눈으로

박용화를 건너다보고 있었다.


'저놈이 저거 무슨 속셈으로 저따위 소릴 지껄여대지?

흥, 날 구렁텅이에 몰아놓으려고? 어림없다,

내가 그런 얄팍한 수작에 넘어갈 것 같으냐.'


박용화는 술기운이 깨는 것을 느끼며 긴장했다.


"구니와께 선생, 무슨 말을 그리하시오.

내 진심은 단 하나, 피와 살과 뼈까지 황국신민이라는 사실뿐이오."


박용화는 조회 때 황국신민의 서사를 외치듯이 힘차게 말했다.

 
"으아 하하하하…, 피와 살과 뼈까지 황국신민이라고?

보신에 좋은 말은 잘도 외우고 있군.

그건 당신의 말이 아니라 소설가 이 뭐라는 자가 작년에 신문에 쓴 글인 줄 나도 알고 있지.

조선 늙은이나 젊은이나 배웠다는 사람들이 왜들 이 모양이야 이거."


구니와께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박용화를 쳐다보며 반말을 해대고 있었다.

그가 꼬집은 말은 이광수가 1940년 9월 매일신보에 쓴 심적 신체제와 조선문화의 진로라는

글 가운데 한 구절이었다.


'저놈이 진심이야, 연극이야? 일본놈이 못하는 소리가 없네.

저놈이 평소에도 좀 이상하긴 하지 않았던가?

아니야, 아니야, 속아 넘어가선 안 돼. 저게 고단수 유도신문일 수도 있으니까.'


"구니와께 선생, 정신차리오.

당신이 지금 얼마나 반역적이 비애국적인 발언을 하고 있는 줄이나 아시오?

내가 만약 경찰에 고발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 그 말이오."


"으아 하하하하…, 고발? 얼마든지 해보시지.

더 출세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 날 고발하면 당신이 오히려 감옥살이를 하게 되지.

당신 영리하니까 왜 그런지 금방 알 수 있겠지?

당신이 고발한 것을 내가 당신한테 뒤집어씌울 거거든.

출세를 위해 무고한 사람을 모함하는 거라고 말야.

그럼 누구 말을 더 믿겠나? 그야 당연히 내 말을 믿지 않겠어?

그래도 피와 살과 뼈까지 황국신민이라고 미친 소릴 외쳐댈 건가?

이봐, 당신이 아무리 몸부림쳐도 조선사람은 영원토록 조선사람일 뿐이야.

정신 똑똑히 차리라구."


구니와께는 싸늘하게 조소를 보내고 있었다.
박용화는 충격을 느꼈다.

구니와께의 뒤집어씌운다는 수법도 충격이었고,

자신의 진실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도대체 당신 진심은 뭐요?"


박용화는 더 술이 깨는 것을 느끼며 황급히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내 진심? 조선인으로서 당신 진심을 듣고 싶은 게 내 진심이지.

우리 단둘이뿐이야. 날 의심하지 말고 진심을 말해 봐."


구니와께는 앉음새를 고치며 술잔을 들었다.


"구니와께 선생,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 모르지만

열 번 백 번 물어도 내 대답은 아까 한 것과 똑같소."


"이 더러운 자식!"


구니와께가 술상을 내리쳤고


"뭐야!"


박용화도 술상을 내리치며 마침내 맞고함을 질렀다.
그건 위장이 아니었다. 가식도 아니었다.

조선말을 전면적으로 가르치지 않게 된 것이 어딘가

한 가닥 아쉬움이 있을 뿐이지 당연한 조처라고 생각했다.

소학교 때부터 배워온 대로 일본은 거대하고 위대한 나라였다.

나이가 먹어가고 공부를 해갈수록 그 사실을 더욱 구체적으로 실감하고 확인해 나갔던 것이다.

조선의 독립이란 잠꼬대 같은 망상이었다.

어차피 독립이 안 될 바에는 내선일체가 빨리 되어야 했다.

그래서 조선사람들도 일본사람들과 똑같이 활동하고 대접받으면서 잘살게 되는 것이 행복의 길이었다. 그러자면 조선사람들이 어서 황국신민이 되도록 솔선해서 나서야 했다.

 그런데 조선사람들은 일본말은 물론이고 일본글을 너무나 몰랐다.

 도회지는 그래도 나은 편인데 농촌으로 가면 전혀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합방이 되고 30년이 지났는데 어찌 그럴 수 있는지 놀랍기만 했다.

그렇게 의사소통이 안 되어가지고는 화합이 이루어지지 않고,

화합이 안 되면 조선사람들은 계속해서 천대받고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

관공서의 문서고 각급 학교의 교과서고 모두가 일본어였다.

이제 조선어는 조선사람들끼리 말할 때뿐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

그러니 없애는 건 당연했다.

그걸 없애야만 내선일체가 빨리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이봐, 내가 가장 경멸하고 멸시하는 게 누군지 아나?

당신 같은 사범학교 출신들이야.

그 피 끓는 젊은 나이에 할 짓들이 그리 없어서 사범학교를 지망하나?

조국의 장래와 민족의 미래가 어찌 되든 말든 자기 일신의 영달만을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젊은 놈들. 그런 파렴치하고 뻔뻔스러운 기회주의자들을

어찌 경멸하고 멸시하지 않을 수 있겠나."


"닥쳐! 너 이제 보니 아주 사상이 불온한 놈이야."


박용화는 또 술상을 내리치며 눈을 부릅떴다.


"고등계 형사가 쓰는 말 흉내 내지 말고 내 말 똑똑히 들어.

우리 일본이 조선과 똑같은 처지에 빠졌다면 당신 같은 부류들은 살아남지 못해.

 민족반역자요 배신자들이니까. 그런데 말야, 조선민족을 반역하고 배신한 부류들을

일본이 후대하는 게 이상하지 않나?

일본이 그 부류들을 믿는다고 생각하나? 곰곰이 생각해 봐."


"구니와께, 당신이야말로 민족반역자요 배신자 아닌가.

일본에 위해한 언행만 골라서 하고 있으니."


"허, 그 두뇌가 아깝군.

 그 충성심에 탄복할 뿐이야. 내가 한마디만 더 하지.

그렇게 투철한 충성심에다 열렬한 출세욕을 가졌으면 사범학교를 잘못 지망한 거지.

이 산골 소학교에서 시작해서 평생을 해봐야 조선사람은 교장 해먹기 어려울걸.

빨리 출세하고 권세를 부리고 싶으면 이보다 훨씬 빠른 길이 있지.

군대, 군대에 지원해. 일본은 군인이 지배하는 나라고, 사범학교 출신은

 바로 장교가 될 수 있으니까. 아참, 그렇군! 다께다 히데오,

이름도 무사에 딱 어울리는군 그래. 빼어난 영웅이 되어보는 게 어때.

내가 보기엔 군인이 기질에도 맞는 것 같은데."


박용화는 너무나 놀랐다.

 자신의 속마음을 꿰뚫어보면서 하는 말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벌써 몇 달 전부터 진로문제로 고심문제로 고심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구니와께 선생, 너무 많이 취한 것 같으니 그만 일어납시다.

오늘 이야기는 없던 걸로 해두겠소."


박용화는 약간 흔들리며 일어섰다.


"천만에, 오늘 이야기를 똑똑히 기억해 두시오.

그리고 내가 당신을 안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겠소."


구니와께는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박용화 쪽으로 비웃음을 보내며 술잔을 들었다.

선이 가늘고 해사한 그의 얼굴은 지적인 분위를 담고 있었다.
밖에는 흐릿한 달빛이 깔려 있었다.

하늘에는 반달이 기우뚱하게 떠있었다.

술집을 나선 박용화는 숨을 들이켜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밤공기에서 산뜻한 봄기운이 느껴졌다.

박용화의 눈에 잡히는 거은 흐릿한 달빛 속에 검게 드러난 산줄기들이었다.

달빛이 흐려 산줄기들은 더 흉물스럽고 음험해 보였다.

그런 산줄기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박용화는 또 숨이 막히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 산줄기들은 남도 제일이라고 하는 웅장한 산 지리산으로 이어져 있었다.

박용화는 이곳을 어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을 또 느끼고 있었다.
이 산의 감옥 같은 곡성 땅에 처음부터 정이 붙지 않았었다.

이런 시골 구석으로 발령을 받을지는 몰랐던 것이다.

그 원인은 모두 에이꼬에게 있었다.

에이꼬의 덫에 걸려 밀애의 정사에 빠지다보니 졸업반 성적이 나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딴 꿈에 취해 석차순위 따위에는 관심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에이꼬와 결혼을 하고, 빨간 정문으로 빛나는 동경제국대학 법학부에 진학한다는

황홀한 꿈 앞에서 석차에 급급하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박용화는 긴 한숨을 끌며 걸음을 옮겨놓았다. 에이꼬,

그 방자하고 당돌한 계집에게 희롱당한 것을 생각하면 스스로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색정에 취해 할딱거리는 에이꼬의 발가 벗은 꼴이 떠올랐던 것이다.
한번 길을 트기 시작하자 에이꼬의 식구들의 눈을 피해 자취방으로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유기준이 딴 친구에게로 짐을 옮겨간 것도 에이꼬가 원한 것이었다.

자신도 위험한 비밀을 가지고 있는 유기준과 헤어지는 것이 홀가분하기도 했다.


"왜년덜 너무 좋아허지 말어. 급행열차 탈라다가 차 엎어지는 수도 있응께로."


유기준이 남기고 간 말이었다.
그 말에 코방귀를 뀌었던 것이다.

그 말이 꼭 질시하는 것처럼 들렸던 것이다.
에이꼬는 성욕이 강한 것만이 아니었다.

성행위을 야하고 요한스럽게 하기를 즐겼다.

병풍식으로 펼쳤다 접었다 하는 일본춘화를 쫙 펴놓고 거기에서 하는 대로 하기를 원했다.


"이런 걸 어디서 구했어? 여자가."


처음에 놀라서 물었더니


"일본사람은 조선사람하고 다른 것 몰라요? 여자도 이런 것 보는 건 흉이 아니에요."


에이꼬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이었다.
하기는 일본사람들의 성풍속이 조선하고는 전혀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러려니 넘기고 말았다.

또 춘화도를 보아가며 즐기는 성희에 취해 더 탓할 생각이 없기도 했다.
에이꼬와 성접촉이 깊어질수록 동경유학의 꿈은 무르익어가고, 석차를 다투는 대신

입시 대비의 공부를 해나갔다.

그런데 동기방학 직전 어느날 이었다.


"나 이번 방학 시작되면 바로 동경으로 떠나 안 오게 될 거예요."


에이꼬가 발가벗은 채 말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버지가 일본의 학원에 다니면서 마지막으로 입시준비를 철저히 하라는 명령이에요."


"아니, 그거말고 우리 사인 어떻게 되는 거냐고."


"어떻게 되긴요. 아쉽지만 이젠 이별을 해야지요."


에이꼬가 서운한 듯 약간 웃었다.


"이별?"


"네에, 이젠 헤어져야 할 때가 왔잖아요."


에이꼬의 눈자위가 붉어지며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아니, 우리 결혼은, 결혼은 어떻게 하고?"


자신도 모르게 말이 더듬거려졌다.


"네에? 결혼이오?"


에이꼬가 놀라며 얼굴이 싹 굳어졌다.


"아니, 왜 놀라지?"


"그럼 놀라지 않게 됐어요. 갑자기 결혼은 무슨 결혼이에요? 서로 좋아지냈으면 됐지."


"아니, 결혼하지도 않을 남자하고 그 짓을 1년씩이나 했단 말야?"


"호호호호…, 이제 알았어요. 조선식으로 생각한 모양이군요.

그러지 말아요, 귀찮게. 여긴 조선 땅이지만 엄연히 일본이니까 유치하게 조선식 꺼내지 말아요.

조선여자들은 정조하는 걸 신주 단지 모시듯 하며 처녀가 몸 버렸다고 마구 죽잖아요.

그런 멍청한 짓이 세상에 또 어디 있어요.

그까짓 정조라는 게 뭔데 한번 성관계로 목숨을 끊어요,

그래. 우리 일본여자들한테는 그런 것 없어요.

재미보는 것은 재미보는 거고 시집가는 건 시집가는 거예요.

왜 내가 박 상하고 관계를 시작했는지 알아요?

내 친구 후미꼬 있잖아요, 걔가 박 상을 보자마자 관계를 갖고 싶어했어요.

걔가 그러니까 슬그머니 질투가 나잖아요. 내가 더 가까운 사인데 빼앗길 수 없는 일 아니에요?

그래서 내가 박 상을 차지하고 후미꼬한테 단념하라고 했지요. 이제 알았어요?"


"갈보 같은 년!"


"어머, 왜 욕을 해요? 서로 재미봤으면 됐지 남자답지 못하게."


"나가, 이 더러운 년아! 당장 나가!"


그리고 받아든 성적표의 석차는 12등으로 밀려나 있었다.


"여기가 내 무덤이구나!"


산으로 뺑뺑 둘러싸인 곡성에 첫발을 디디며 느낀 심정이었다.

첫 번 째가 광주, 그리고 순천. 더 못하면 목포나 여수까지가 마지막이었다.

그 이외의 지역으로 밀려나면 장래는 어둡기만 했다.

그런데 나주며 장성도 지나쳐 곡성까지 밀려나 버렸으니 교육자로서의 출세란 암담하기만 했다.

잘 먹지도 못하면서 에이꼬 그년의 쾌락을 충족시켜 주느라고 체력소모를 하고

신세까지 망친 것을 생각하면 그년을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자신의 불찰이었다.

왜년들이 정조관념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너무 소홀히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조관념이 없는 것은 기혼여자들이지 처녀까지 그럴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형이 죽으면 형수를 데리고 살고, 사촌 육촌이 붙어먹고 혼인을 하고, 이모 고모하고도

그 짓이 예사고, 하숙집 주인여자와 그 여동생이 번갈아 가며 옷을 벗고 덤비는 바람에

하숙을 옮겨야 했다는 이야기 같은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처녀까지 그렇게 놀아나고는 한 점 미련이나 부끄럼도 없이 돌아설 줄은 정말 몰랐던 것이다.
잊자고 했다. 잊으려고 했다. 새 마음으로 새 출발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우람한 산줄기뿐인 이곳은 산으로 된 감옥이고 산으로 된 무덤이었다.

전혀 정이 붙지 않았고, 날이 갈수록 질식할 것만 같았다.

사범학교에 지망하면서 품었던 꿈은 그것이 아니었다.

교육자로서 남들보다 먼저 출세하고 성공하려 했던 것이다.

그럴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 꿈이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그 욕구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아무 가망 없는 시골구석에서 젊은 날을 소모하며 나이를 먹어갈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곡성으로 밀려나 버리도록 나쁜 성적이 명기되어 있는 한 그 꿈을 이룩할 길은 없었다.
그래서 곡성을 탈출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해 .

소학교 교사보다 낫고 빨리 출세할 수 있는 길, 역시 먼저 떠오르는 것은 판검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길은 준비기간이 너무나 길었다.

대학의 많은 학자금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고학을 한다고 해도 집안에서 일부를 대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좋은 일자리를 구한다 해도 먹고 살고 학비까지 해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여러 가지 오락가락하는 생각 중의 하나가 사관학교에 지원하는 것이었다.

사관학교는 사범학교보다 더 철저한 관비제도라서 학비만이 아니라

먹여주고 입혀주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장교가 되면 그 위세와 지위는 벽촌의 소학교 선생에 댈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구니와께의 생각은 놀랍게도 자신의 생각과 일치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건 그다지 신통할 것도 없긴 했다.

왜냐하면 지원병 제도가 생기면서 고보 학력을 가진 사람들이 꽤나 많이

사관학교의 길을 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용화는 걸음을 멈추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 더러운 자식!'


'내가 가장 경멸하고 멸시하는 게 누군지 아나?'


'진심을 말해 보라 그거요.'


'아무리 몸부림 쳐도 조선사람은 영원토록 조선사람일 뿐이야.'


'이 더러운 자식!'


구니와께의 거침없는 말들이 뒤죽박죽되어 들리고 있었다.


'구니와께… 그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 정체는 무엇일까? 속에 무슨 생가을 품고 있는 것일까?

사범학교를 다니고, 선생인 자가…'


박용화는 머리를 흔들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괄시와 차별은 무시로 받아왔지만

그런 문제로 일본사람에게 야유와 모독을 당한 것은 처음이었다.

소학교에서부터 사범하교까지 칭찬만 받아왔던 종류의 일에 그건 날벼락이었다.

황당하고 얼떨떨했다.

그리고 부끄럽고 괴로웠다.

구니와께의 말대로 하자면 당장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독립운동에 나서야 했다.

그 말은 옳은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게 될 법이나 한 일인가.

흔한 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요, 목포 앞바다의 철선과 돛단배가 싸우기였다.

소학교 때부터 아버지와 형이 하는 것을 보았지만 아버지는 공장에서 쫓겨나

집안 살림은 더 가난해졌고, 형은 퇴학을 당한 죄로 지금까지도 직장을 옮기지 못한 채

술주정뱅이로 변해가고 있었다. 독립이란 도저히 가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구니와께는 일본사람이라 그런 걸 잘 모르는 것일까?

그저 술주정이었을까? 놀리고 골탕을 먹이려고 일부러 그랬을까?

아니야, 그런게 아니야. 취중진언이라고 그자는 평소부터 품어왔던 생각을

술기운 빌려 토해놓은 것이 틀림없었어. 도대체 그자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인가.

어떻게 일본사람 중에 그런 자가 있을 수 있는가.

그자는 평소에 별로 말도 없고, 아이들도 열심히 가르쳤다.

좀 색다른 것이 있다면 책을 많이 읽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난한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아니, 혹시 그놈이 사회주의자 아닐까!'


퍼뜩 떠오른 그 생각과 함께 유기준의 얼굴이 밀려들었다.

유기준은 검거되는 일 없이 해남으로 발령을 받았던 것이다.

유기준처럼 구니와께도 사회주의 사상을 감추고 있을지 몰랐다.

유기준이 검거되지 않았으니 그와 함께 조직을 이루고 이었던 학생들도

발령을 받은 것은 틀림없었다.

구니와께도 그런 식일 수 있었다.

그가 사회주의자라면 그의 말은 술주정이 아니라 진심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속단할 수는 없었다.
박용화는 술이 자꾸 깨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구니와께의 말들이 두서 없이 떠오르고 있었다.

괴롭고 부끄럽고 고통스럽고 창피스러웠다.

독립, 그게 가능한 것인지, 독립운동, 그게 무슨 색다른 방핵이 있는 것인지…

잠자리를 뒤척이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한숨도 안 잔 것처럼 시차 없이 구니와께의 말들이 밀려들었다.

박용화는 신음을 물었다.

구니와께의 예리한 말들이 가슴을 치는 것보다는 그를 어떻게 대할지가 더 문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구니와께는 언제 그런 말들을 했느냐 싶게 평소와 전혀 다름이 없었다.

박용화는 자신이 오히려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었다.

구니와께의 그런 태도에서 박용화는 섬뜩한 무서움을 느꼈다.


"어젯밤 구니와께 선생하고 술 더 많이 했소?"


수업에 들어가려는데 이 선생이 다가서며 물었다.


"예, 좀 더 했습니다."


박용화는 얼버무렸다.


"역시 젊은 기운이 좋소. 무슨 좋은 얘기도 많았소?"


이 선생은 약간 비굴한 느낌의 웃음을 흘리며 눈치를 살폈다.


"뭐, 별 얘기 없었는데요."


박용화는 역시 어물거렸다.


"혹시 저어…, 인사문제 같은 건 안 나왔소?"


이 선생의 웃음은 조금 더 비굴해지고 있었다.


"아닙니다. 그런 얘긴 전혀 없었는데요."


박용화는 그때서야 그 비굴한 웃음의 의미를 알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게 어찌 될라는지…"


이 선생은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박용화는 40객인 이 선생의 구부정한 등을 보며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는 조선어 학습의 폐지로 생길지 모르는 인사이동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선생의 모습이 17,8년 후의 자신의 모습일 것을 생각하며 박용화는 부를 한기를 느꼈다.
구니와께의 태도와 이 선생의 모습이 겹쳐서 박용화는 전혀 수업을 할 기분이 아닌 채로

출석부를 펼쳤다. 그는 아동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야마모도 후미꼬"


"하이."


"마쓰오 하루꼬."


"하이."


"기우찌 에이꼬"


"하이."


"요시다 하루꼬"


"하이."


"우사이 에이꼬"


"하이."


"요시하라 후미꼬"


"하이."


"하라노 후미꼬"


"하이."


박용화는 그만 짜증이 나고 말았다.

성만 다를 뿐 같은 이름이 너무 겹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겨우 7명의 이름을 부르는데 에이꼬와 하루꼬가 둘씩이었고, 후미꼬는 셋이나 되었다.

그건 단시일 내에 창씨개명을 몰아붙인 결과였다.

 시골사람들이 어떻게 고쳐야 좋을지를 모르고, 동네 단위로 몰아대다 보니

일은 바쁘고 해서 면서기들이 제멋대로 일본식 작명을 해댄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끝에는 무조건 '꼬'를 붙여서 영자, 춘자, 미자, 숙자 등이 무더기로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날마다 그 이름들을 별 생각 없이 불러왔으면서도 박용화는 오늘따라

그것이 신경에 거슬렸던 것이다.

 어젯밤 일 때문이었다.
박용화는 밤마다 며칠을 고민했다.

그러나 독립될 가망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자주 일어나던 소작쟁의며 노동쟁의도 씻은 듯이 없어졌고,

사회주의 운동이라는 것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고, 사회주의자들이나 지식인들의

전향과 친일은 속출하고 있었고, 모든 학교와 전국적으로 근로보국대를 조직하는 것도 모자라

다시 경방단을 조직해서 거미줄처럼 감시망을 짰고, 사회 저명인사들로 조직된 대표적인

친일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은 2년 만에 이름을 국민총력연맹으로 바꾸고

전국적으로 활동을 강화하고 있었고, 작년 1940년 8월에는 조선어 신문으로서

대표인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결국 폐간당했고, 조선문인협회에서는 저국 주요도시를 돌며

문예보국 강연회를 개최하고 있었다.

그런데 금년 2월에는 마침내 조선사상범예방구금령이 공포되었던 것이다.

그건 지금까지의 보안법이나 사상범취체법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법이었다.

그건 말뜻 그대로 사상범을 예방하기 위하여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은 사람도

의심스럽거나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체포해서 감옥에 가둘 수 있는 법이었다.
모든 상황이 이중 삼중의 가시철망이었고, 겹겹이 칼날들이 뻔득이는 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독립운동을 한단 말인가.

그건 허황되기 이를 데 없는 몽상이고, 개죽음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이었다.

일본은 중국을 계속 이기고 있고, 중국을 다 차지하는 날에는

일본은 그야말로 아시아의 맹주였다.

그날이 머지않았는데 조선사람들이 살아날 길은 내선일체에 호응해

황국신민이 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일본인과 똑같은 1등 국민으로 대접을 못 받는다 하더라도

3등 국민인 중국인들보다는 낫게 2등 국민의 지위는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결론에 되돌아온 박용화는 심각하게 장래의 진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신학기가 머지않았으니 빨리 결정을 내려야 했다.

장래성 없는 교사생활은 이미 포기했고, 남은 것은 두 가지였다.

군인의 길이냐 법관의 길이냐였다.
며칠 고심한 끝에 박용화는 법관의 길을 택했다.

군인이 되는 것은 우선 목숨의 위험이 너무 컸다.

출세도 좋고 권세도 좋지만 죽고 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전쟁터에 나서면 장교 아니라 장성도 총 한 방이면 황천길이었다.

굳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군인이 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중국 땅에서 싸우다보면 조선독립군들에게도 총질을 하게 될 텐데,

그런 난처한 짓은 미리 피하는 게 좋았다.

독립운동을 안 하면 그만이지 차마 그런 망나니짓을 할 수는 없었다.

또한, 구니아께에게 체면을 세워야 했다.

군인의 길을 선택하면 마치도 그가 가르쳐준 대로 따르는 꼴이었다.
그러나 법관은 장교보다 사회적 지위나 권세가 나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았고,

생명의 위험이란 전혀 없었다. 다만 학자금이 들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동안 저축한 돈도 어마간 있었고 앞으로 1년 동안 최대한 내핍생활을 하며 모을 작정이었다.

다시 사범학교 시절의 자취생활로 돌아가면 월급을 거의 다 모을 수 있었다.

1년 동안 술이며 잡기 같은 것을 일체 끊고 시험공부에 몰두하면 학비도 모으고

의부복무기간 2년도 끝나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에이꼬 그 년 앞에 당당히 나서기 위해서도 법관이 되어야 했다.
박용화는 이런 결론을 내리자마자 곧바로 하숙을 옮겨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담배부터 끊었다.


"구니와께 선생, 우리 단둘이 있으니까 하는 말인데, 당신 혹시 사회주의자 아니오?"


박용화는 구니와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구니와께는 가슴이 철렁하며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혹시 무슨 꼬리가 잡혔나 싶었던 것이다.


"뭐 그리 놀랄 건 없소. 그날 밤 언행이 꼭 사회주의자 같아서 하는 말이니까.

구니와께 선생도 이런 산골에 박혀 있다간 장래가 요원한데, 어떻소?

나한테 권하지만 말고 구니와께 선생이나 사관학교를 가는 게."


박용화는 비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난 죽기 싫어 사관학교는 포기하고 딴 길을 선택했소. 몇 년 뒤에 두고 봅시다."


박용화는 구니와께를 노려보며 돌아섰다.


구니와께는 서글픈 표정으로 멀어지는 박용화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소설방 > 아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9. 아사히사진관   (0) 2017.07.04
148. 정인들의 열매   (0) 2017.07.03
146. 귀향의 뜻  (0) 2017.07.01
145. 뿌리 뽑기   (0) 2017.07.01
144, 거룩한 죽음, 이름 없는 꽃들   (0) 2017.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