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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뿌리 뽑기

오늘의 쉼터 2017. 7. 1. 01:28

145. 뿌리 뽑기



어디인지 모를 첩첩산중이었다.

무주의 산골 같은가 하면 어딘가 낯설고 이상했다.

산은 절벽과 바위투성이로 험하고 골짜기는 깊었다.

 인적이라고는 없는 산속 어디에선가 으시시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 음산한 바람에 자꾸 떠밀렸다.

걸음을 놓지 않으려고 버티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바람에 밀려 마음과는 달리 발이 자꾸 움직이고 있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괴기스러운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구슬프면서도 흐느끼는 것같은 새울음소리는 차츰 커지면서 골짜기를 울리고 있었다.

너무 소름 끼치고 무서워 귀를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새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손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데 새 울음소리가 뚝 그쳤다.

그리고 음산한 바람이 휘익 거세지면서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뒤엉키며 골짜기를 울려댔다.

그 웃음소리들은 새소리보다도 훨씬 더 소름끼치고 무서웠다.

또 귀를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손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데 그 웃음소리들이 등을 미는 바람처럼 몸을 앞으로 당기고 있었다.

뒤에서는 바람이 밀고 앞에서는 웃음소리들이 끌어당기고,

몸이 붕붕 뜨듯이 발은 빨라지고 있었다.

발을 떼어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댔지만 손이 말을 듣지 않는 것처럼 발도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데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그리고 느닷없이 소리가 울렸다.


"어엄니이, 어엄니이."


서럽고 애타게 골짜기를 울리는 그 소리는 삼봉이의 목소리였다.

 
"삼봉아, 삼봉아, 어디 있는겨.

삼봉아 얼른 나오니라. 에미 여그 있다. 얼렁 나와."


그러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목이 터져라 소리쳐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어엄니이, 어엄니이."


삼봉이의 목소리는 더 서럽고 애타게 골짜기를 울리고 있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삼봉이는 보이지 않았다.


"엄니, 엄니, 엄니…"


삼봉이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삼봉아, 삼봉아, 삼봉아!"


삼봉이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 붙들려가고 있었다.

삼봉이가 걸친 하얀 옷은 피범벅이었고, 검은옷을 펄럭이며

삼봉이를 끌고 가는 두 사람은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삼봉이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삼봉이와 손이 아슬아슬하게 닿듯 말 듯 되었다.

그런데 바람이 뚝 그쳤다.

그리고 걸음도 멎었다.

발을 떼어놓으려고 발버둥쳤지만  땅에 딱 붙은 발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삼봉이는 검은 사람들에게 붙들려 골짜기 저 위로 붕붕 떠가고 있었다.


"삼봉아! 삼봉아! 삼봉아!"


그때서야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엄니이, 어엄니이."


삼봉이의 목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삼봉아! 삼봉아! 삼봉아!"


발은 꼼짝도 하지 않으면서 목소리만 커지고 있었다.
아들을 붙들 수 없는 미칠 것 같은 심정을 소리로 토해냈다.


"삼봉아아, 삼봉아아, 삼봉아아!"


"엄니, 엄니, 정신채리소, 엄니, 어찌 또 이렁가."


어머니의 목소리에 놀라 잠이 깬 금예는 어머니를 흔들어댔다.


"엄니, 엄니 정신차리랑게."


금예는 어머니를 더 세게 흔들어댔다.

가위눌렸을 때 얼른 깨우지 않으면 넋이 붙들려간다는 말이 겁났던 것이다.
장닭의 목청 뽑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름이는 하를 한숨을 내쉬었다. 또다시 아들을 잊자고 생각했다.
어차피 아들은 그렇게 살다가 가도록 되어 있었다.

자신이 그렇게 이끌고 있던 것이고, 시아버지와 남편이 바라는 길이었다.

그러나 절손을 시킨 것은 자신의 외로움 이전에 남편에게 큰 죄를 지은 것이었다.

시아버지와 남편이 꿈에 나타나는 것은 그 잘못을 꾸짖으려고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인자 고만 혀라, 나 팔 빠지겼다."


보름이는 등을 돌리며 앉음새를 고쳤다.


"나 암시랑토 안혀, 인자 다리 뻗소."


금예는 어머니의 다리를 붙들었다.


"아니여, 자꼬 두들기고 주물르면 인백이는 법이여."


보름이는 다리를 펴지 않으려고 했다.


"인백이먼 무슨 걱정이여.

자꼬 더 뚜들기고 주물르면 되제 나 기운신 것 어디다 써묵게."

 
금예는 한손으로 어머니의 무릎을 잡고 다른 손으로 발목을 잡아 다리를 쭉쭉 펴며 말했다.
그 순간 보름이의 뇌리에는 서무룡이 퍼뜩 스쳐갔다. 금예는 불거진 눈마나 서무룡이를

닮은 것이 아니었다.

늘씬하게 큰 키며, 남자 같은 기운, 서글서글한 성질까지 커갈수록 서무령이란

 떡판으로 찍어낸 떡이었다.


"시집언 안 가고?"


"히, 엄니 가치이로 가먼 되제 머."


금예는 선머슴처럼 히 하고 웃었다.
보름이는 그만 가슴이 철렁했다.


"야가 떡 줄놈은 생각도 않는디 짐치국보톰 너무 단단히 마시는 것 아니여.

동걸이럴 아조 맘에 딱 작정혔능갑네."


보름이는 겁이 났다.

짝사랑이란 것이 우물가에서 물 한 바가지 떠준 나그네 보듯 해야 고운 것이지

5월 단오에 쌍그네 타듯 해서는 탈이 생기고 병이 되는 법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뭐라고 꼬집거나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철없기넌, 부처님 말씸이 부부 인연이야 3천년 인연이라고 허셨느디,

어디 니 맘대로 된다냐, 물 흐르디끼 바람 불디끼

순리로 인연 따라 벡리 밖으로도 가고 천리 밖으로도 가고 그러는 것이제."


보름이는 딸이 알아들으라고 이렇게 돌려서 말했다.


"치, 부처님언 허시는 말씸마동 영 알쏭달쏭하고 야릿꾸릿한 말만 골라서 허신당게.

살생얼 하지 말라. 글먼 굻어 죽어라 하는 것이고, 인생 무상이니라,

글먼 사나마나 헝게 당장 죽으라 허는 것이고, 인연얼 맺지 말어라

그리운 사람언 못 만나서 괴롭고 원수는 만나서 괴로우니라.

글먼 다 혼자서만 살어야 하고 말이시.

부부 인연도 그렇제. 사람 한평생이 60년인디 어찌 부부 인연이 3천년이란 것이 말이 되간디."


"하이고, 서당 개 3녀이라고 절밥 얻어묵등마 들은 풍월이 열두 발이시.

부처님 말씸 그리 엇지게 생각허먼 벌 받는 것이여. 부처님이 다듣고 기시는디."


보름이는 달에게 눈총을 쏘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대견하고 안쓰러웠다.

가르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귀동냥으로나마

그런 것을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제 생각을 말하는 데 써먹을 줄 아는 것이었다.


"아이고, 부처님이 다 듣고 보시나마나 나 몰르겄네 날 샜응게 물이나 질로 가야 쓰겄네,

엄니하고 아짐시넌 부처님이야 허먼 꼼짝얼 못헝게."


금예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금예가 말하는 아짐시는 홍 씨였다.


"그려, 우리가 이리 사는 것도 다 부처님이 맺어준 인연 덕인 것이여."


보름이는 후덕한 홍 씨를 생각하며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홍 씨를 만난 것을 만주를 다녀온 운봉 스님을 따라 포교당에 잠시 머물러 있을 때였다.


"으쩌시소, 나도 외롭고 가차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그 선선한 말이 너무 뜻밖이라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한 입도 아니고 두 입이 으 게 그런 폐럴…"


물론 놀고먹을 것은 아니었지만 두 입이 얹힌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폐라 생각 말고 다 부처님 뜻이라고 생각하시오."


홍 씨의 담담한 말이었고.


"아아, 그리 생걱허시먼 더 좋을 것이 없겠구만요.

집안일 농새일 두루 도와감서 두 보살님이 말동무허고 사시먼 서로 적적허시지도 않고라."


운봉 스님이 거들고 나섰다.
운봉 스님의 말을 따르기고 했다.

그 말을 따르면 운봉 스님한테 폐끼치는 걸 면할 수 있었다.

운봉스님은 가게 차릴 돈이 다 장만될 동안만 포교당에 머물라고 했던 것이다.

절집에 쌀 한 톨이라도 시주를 했으면 했지 부지깽이 하나라도 축내서는 벌을 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가게를 차릴 큰돈을 신세진다는 것은 애초에 내키지 않는 일이었었다.

그러나 더 이상 선사에 머물 면목이 없었고 다 공허 스님 뜻이라는 운봉 스님의 말에

어쩔 수 없이 포교당까지 따라왔던 것이다.


"한집서 살먼 내사 좋제만 금예 엄니가 몸도 맘도 편편시럽덜 않을 것잉게…"


홍 씨는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서 집부터 장만해 주었다.

운봉 스님이 돈을 보태려도 했지만 홍 씨는 고개를 저었다.

운봉 스님은 공허 스님의 뜻임을 내세웠지만 홍 씨는 끝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홍 씨를 따라나선 또 한 가지는 더 이상 가게라는 것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가게를 하면 자꾸 큰딸이 생각이 날 것 같았다. 큰딸은 어서 잊고 싶었다.

가게를 다시 하면서 작은딸이 큰딸을 두고두고 욕할 것도 두려웠던 것이다.
금예는 두레박질을 느릿느릿하며 여자들의 말을 즐기고 있었다.

우물가에서 여자들의 잡다한 이야기를 듣는 건 물 긷는 재미 중의 하나였다.


"아따, 저놈으 젖통 잡 보소 소젖만허시."


"김샌이 잠 안자고 밤새도록 주물렀능감마, 밤새 영판 더 커져부렀는디."


"주물르기만 혀? 뽈고 핥고 야단났제. 그놈으 소리에 뒷집서 잠얼 못자겼드랑게."


"아이고메, 몰르는 사람덜이 들으면 참말인지 알겼소.

애기가 묵을 젖얼 뽈고 핥고 허는 남정네가 시상에 어딨다요."


"무신 소리여, 아그덜얼 네다섯 난 젖도 아니고 첫애기 낳고 저리 탱글탱글허고 젖얼 그냥 둘

남전에가 어딨어. 인자 봉게 새댁이 거짓말 구레이 담넘어가디끼 스리슬짝 잘도 하네 그려."


"음마, 내 속 짚어 넘 속이라고 하샌이 그랬는갑소이.

우리 집서는 얘기가 뽈고보톰언 통 그러덜 않는디라."


"하이고, 새댁 놀릴라다가 정읍댁 됩데 당해부렇네 그랴."


여자들이 까르르 웃었다.


"아이고, 큰 애기가 그리 좋아라고 웃으먼 으쩌?"


볼똥이 금예에게로 튀었다.


"음마, 우서운 소리 형께로 웃제라."


금예는 무안을 타지 않고 맞받아쳤다.


"얼랴, 쟈 능청시런 것 잠 보소."


"아이고, 금예도 시잡갔다 허먼 젖통이 저리 커질 참잉게 지끔 보톰 비유가 좋아야제."


"그려, 시방도 저리 불룩헌디"


"아서 아서, 큰애기보고 헐 소리가 따로 있제.

큰애기가 시집가지 전에 요런 소리 듣고 시집가서 밑천 되게넌 혀도

큰애기럴 놀림감 삼는 법은 아니시."


어느 여자의 말이었다.

그건 처녀들에게 자연스럽게 성교육을 시킨다는 뜻이었고,

처녀를 놀려 수치심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헌디, 그놈으 창씨개명이 머신지넌 어쩌허는 것이여?"


어떤 여자가 새 이야기를 꺼냈다.


"빌어묵을, 낮 놓고 기억자도 몰르는 일자무식이 한문얼 어찌 알어 이름을 바끌 것이여."


"음마, 이장 말도 못 들었어. 면사무소 가먼 서기덜이 다 척척 알아서 히준다고 안하여."


"글씨 히주먼멀혀, 알아묵덜 못허는디. 그나저나 낼모레 우리 동네가 다 면사무소로 간다등마."

 
"참, 염병지랄도 드럽게넌 해싼다. 경당당널 짜라, 방공훈련얼 해라.

폐품인지 걸레짝인질러 내라. 밥 작게 목고 일 많이 혀라.

고런 것들도 모지래서 인자 이름을 갈아야 하는 것이여? 사람이 어지러와서 살 수가 있어야제."


"벨 수 있간디. 나라 없는 백성이."


여자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금예는 물동이를 이었다.

놀림당했던 새댁도 물동이를 이었다.

그러자 저고리가 위로 쑥 올라가며 커다란 젖이 다 드러났다.

금예는 큰 웃음이 떠졌다.

 밤새 젖이 불어나 커질 대로 커진 두 개의 젖통은 걸음을 옮기게 되면

번갈아 가며 멋대로 흔들릴 참이었다.

금예는 간신히 웃음을 참아내며 우물가에서 벗어났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왜 처녀 때는 젖을 가리라고 별나게 단속하도 야단하AUS서도

일단 시집을 가서 아이만 낳으면 젖을 그리 다 내놓고 다녀도 괜찮은 것인지.

처녀 때는 그냥 옷으로 가리는 것만이 아니었다.

차마말기로 꽁꽁 동여매서 젖 모양이 드러나지 않게 행야 했다.

처녀가 젖이 불룩하게 드러나면 큰 흉거리였다.

젖이 큰 처녀들은 어찌나 꽁꽁 동여맸던지 시집가서 애를 낳고는 으레 젖몸살을 앓았다.

어떤 여자들은 젖몸살이 너무 심해 몸져눕기도 했고, 더 심하면 한쪽 젖이 못쓰게 되기도 했다.
그런 고생을 뻔히 알면서도 왜 그걸 고치지 않고 계속 젖을 동여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언젠가 동네 아주머니에게 살짝 물어보았다.


"그야 처녀가 젖이 크먼 보기 숭하고, 신상에 해롭제."


"신상에 해로와라?"


"하먼, 걸을 때마다. 방뎅이넌 씰룩씰룩허제 젖거정 철렁철렁히보소.

총각놈이 눈이 뒤집어져 그냥 놔들까보겼는가?"


"글먼 애 낳으면 어찌 다 그리 내놓고 다닌다여?"


"그야 임자있는 몸에 애엄씨꺼정 되야부렀는디 무신 상관이여.

애엄씨 젖이야 그것이 아그 밥통이제 어디 처녀 젖허고 같으간디?"


그러나 의문은 속 시원히 풀린 것이 아니었다.

자신도 젖이 큰 편이라 맨날 동이고 다니는 것이 너무 불평스러웠던 것이었다.

가슴을 꽁꽁 동여매면 갑갑하고 불편할뿐만 아니라 여름에는 온통 땀띠가 극성을 부렸던 것이다.

그 고생 때문에도 어서 시집을 가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는 금예 앞에 한 남자가 불쑥 나타났다.

옆고샅에서 불거져 나온 것이었다.

그 남자는 물동이를 잡느라고 치켜 올려진 점예의 두 팔을 붙들더니 쪽소리가 나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젖가슴을 재빨리 더듬고는 옆고샅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저런 잡놈을 새끼가 못된 놀부놈 행투 어디서 배와갖고!"


어찌할 틈도 없이 일을 당한 금예는 남자의 뒤에다 소리 질렀다.
성질 같아서는 아가 뒷덜미를 잡아채고 싶었지만 머리에는 물동이가 이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하나밖에 없는 물동이를 대동댕이 칠 수도 없었다.
홍 씨네 머슴 필룡이에게 못된 놀부놈 행투라고 금예가 소리친 것은 심성 고약한 놀부가

저지르는 여러 가지 못된 것들인 애호박에 말둑 박기, 수박밭에 말 달리기,

똥누는 애 주저앉히기. 애 밴 여자 걷어차기 같은 것들 중의 하나였다.


"저런 쌔럴 배놀 염병헐 놈이 지가 묵을 떡인지 아닌지도 몰르고 나대고 지랄이시.

어디 잡히기만 해봐라. 낯짝얼 와드득 쥐어뜯어 내 천자럴 양쪽 볼다구에 내놀 것잉게."


금예는 분을 참지 못해 물이야 출렁이든 넘치거나 말거나 발을 굴러대며 걷고 있었다.

 금예의 마음은 홍 씨의 아들 동걸이에게 가 있는데 머슴 필룡이가 느닷없이

그 짓을 하고 들었으니 부아가 날 만도 했다.
한편, 홍 씨는 창씨개명 때문에 고심하고 있었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는 자들은 불령선인이고, 그 자식들은 학교에 입학을 할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들 동걸이는 대학입학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것도 조선에 있는 대학이 아니라 일본에 유학을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허 스님을 생각하면 일본식으로 이름을 고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여름에 게다짝을 발에 꿰는 것도 용납하지 않은 공허 스님이었다.


'그런데 당신의 아들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면 어찌 된단 말인가.'


그렇다고 학교에 안 보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공허 스님이 살아 계신다면 이런 때 어찌했단 말인가?'


홍 씨는 공허 스님에게 의논하는 마음으로 생각해 보았다.

호탕하게 웃으며 적당하게 고쳐서 학교에 보내라고 할 것 같았고,

범 눈을 무섭게 뜨며 절대로 안 된다고 할 것도 같았다.


'동걸이, 동방의 큰 인물이 되라고 지은 이름이오'


한지를 펼쳐놓으며 공허 스님이 껄껄 웃었었다.

한지에는 동걸이라는 붓글씨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그 두 글자를 보는 순간 아침 해가 뜨는 것 같은 밝은 빛을 느꼈던 것이다.

그런데 이름뿐 성이 없었다. 자신도 묻지 않았고 공허 스님도 입을 떼지 않았다.
승려에게 속가의 인연을 묻는 법이 아니었다.

승려는 머리를 깎으면서 속세와의 모든 인연을 끊는 것이었다.

부모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모든 인연을 끊는 것이니 속세의 성명삼자도 나이도 없어지는 거였다
운봉의 말을 듣고 한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지만 이내 마음을 수습할 수 있었던 것도

평소의 다짐 때문이었다.

그리고 운붕 앞에서 그분과의 인연을 드러내서는 안 되었다.
금예 모녀를 거두기로 한 것은 공허 스님이 남기고 간 뜻이라 여겼다.

그 마지막 뜻을 고이 받들고자 했다.

그 모녀를 거둔다고 해서 동걸이를 가르치는 데는아 무 탈이 없었던 것이다.


"저놈얼 끝꺼정 갤치자먼 살림이 실해야 허는디. 작인덜 단속은 어쩐고?"


공허 스님이 올 때마다 잊지 않고 했던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아버지의 마음이었고, 직접 표시하지 못하는 동걸이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 관심은 너무 고마워 재산을 착실하게 모아왔던 것이다.


"나가 보태지넌 못혀도 축낼 수야 있간디. 저놈 뒷수발에 쓰소."


공허 스님은 절대로 돈을 받아간 일이 없었다.

그래서 재산을 더 야무지게 단속해 왔던 것이다.
혼자 작정을 하고 있던 홍 씨는 아들이 전주에서 돌아오자마자

창씨개명 이야기부터 꺼내놓았다.


"엄니, 그런 걱정 마시고 이 글보톰 잘 들어보시씨여."


동걸이는 앉음새를 단단히 하고 신문을 펼쳐들었다.


「내가 향산이라고 씨를 창설하고 광랑이라고 일본적인 명으로 개한 동기는

황송한 말씀이나 천황어명과 독법을 같이 하는 씨명을 가지자는 것이다.

나는 깊이깊이 내 자손과 조선민족의 장래를 고려한 끝에 이리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굳은 신념에 도달한 까닭이다.

나는 천황의 신민이다. 내 자손도 천황의 신민으로 살 것이다.

이광수라는 씨명으로도 신민이 못될 것이 아니다.

그러나 향산광랑이 좀도 신민답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엄니 들으시기에 어떠신게라?"


동걸이는 웃으며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아이고, 어쩌거넌, 그 사람 넋나간 것 아니다냐?

그 사람, 왜놈 되고 잡아 환장헌 것이고, 조선언 영영 해방되기 어렵다고 허는 것 아니여?"


홍 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쯧쯧쯧…, 그런 글 써서 무신 영화럴 보는지 몰라도 원…"


홍 씨가 고개를 내저였다.
창씨개명은 1940년 2월1일부터 실시되었고,

그 글은 창씨개명을 마친 이광수가 2월 20일 매일신문에 발표한 것이었다.

그런데 동걸이는 한 달이 넘은 신문을 가방 깊숙이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너저나 나넌 으째야 쓰겄냐?"


홍 씨는 근심스럽게 아들을 쳐다보았다.


"호랭이 잡을라면 호랭이굴에 들어가야지."


동걸이의 다부진 말이었다.

그의 선 굵은 얼굴은 공허 그대로였다 .


"그렇기는 헌디. 글먼 어찌 고칠라고?"


"엄니, 그것이야 아무걱정 마시게라.

 전자 앞이다가 큰 대자 하나만 턱 놓으면 되는구만이라.

왜놈덜 즈그가 발광얼 혀봤자 우리 성씨만 크고 높게 해주는 것잉게요,

대전동걸. 지가 큰 하늘 겉지 않은게라? 하하하하…"


동걸이는 고개를 젖히며 통쾌하게 웃어댔다.

그 웃음소리며 웃는 모습에서 홍 씨는 공허 스님의 환생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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