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아리랑

142. 그들은 그렇게 속았다.

오늘의 쉼터 2017. 6. 26. 20:09

 142. 그들은 그렇게 속았다.



남만석이 포함된 이민단 2백호는 기차를 탄 지 꼬박 7일만에 하얼삔 역에 내렸다.

거거서 다시 만척회사의 트럭을 타고 서쪽으로 3백여리를 실려갔다.

그들이 내린 곳은 산줄기가 멀리 보이는 드넓은 벌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어디에서도 사람 살 집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해는 저물어서 어스름은 내리고, 그들을 실어온 트럭들은 방향을 되돌려 돌아가고 있었다.

남은 것은 인솔하고 온 만척회사 직원 대여섯과 총을 든 군인 10명이었다.


"요상허시? 워째 요런 허허벌판에다 똥 푸대끼 혀부린댜?"


"금매 말이여, 여기서 하로 쉬어가잔 것도 아니겄고."


"여기가 우리 살 땅 아닐랑가?"


"무슨 소리여? 집이라고는 눈얼 씻고 찾어도 없는디"


"워쩌 아이, 베룩도 낮짝이 있제 그리 속히기야 허겄능가."


남자들이 끼리끼리 모여 수군거리는 말이었다.
그때 호루라기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눈길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한 사람이 흙벽돌 위에 높직이 서 있었다.


"예에, 또, 지금부터 하는 말 똑똑히 들으시오.

바로 여기가 당신들이 살 땅이오.

 내일부터 보름에서 스무 날 동안 추워지기 전에 당신들이 살집을 지어야 되어. 집은…"


"잡소리 말어 집 준다고 약조헌 것언 머시여!"


어느 남자가 고함을 질렀다.


"맞어. 워째 초장보톰 거짓말이여!"


"개좆이나, 사람얼 멀로 보고 허는 개지랄덜이여!"


또다른 남자가 어기차게 외쳐댔다.


"남자들이고 여자들이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탕!탕! 타당!


총소리가 진동했다.

군인들이 흙벽돌 위로 뛰어오르며 총을 겨누었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얼어붙고 말았다.


"에에 또, 방금 소리 지른 세 사람을 처벌할 수도 있소.

그러나 처음이니까 용서하도록 하겠소,

만약 앞으로 또 그러는 자들이 있으면 그때는 가차 없이 총살이요.

총살! 여기 있는 군인들은 앞으로 계속해서 당신들을 감시할 테니까 명심하도록 하시오."

 
그 조선사람들은 싸늘한 눈길로 사람들을 휘둘러보고는,


"집 때문에 당신들을 속였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건 속인 데 아니라 이민자들이 너무 많아 일손이 달려 그리 됐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 두시오.

그리고 당신들은 아주 재수가 좋다는 것 미리 알아두시오.

저쪽 흑룡강 일대로 간 사람들은 지금 황무지에서 나무뿌리를 캐내면서 논밭을 만들어 가고 있소.

그런데 여기는 그런 고생할 필요가 없이 바로 농사를 지을 수가 있는 농토요.

만약 여기가 싫은 사람들은 얼마든지 그곳으로 보낼 수 있소."


그는 쨍쨍한 목소리로 협박을 해댔다.
가족 수에 따라 쌀도 보리도 아닌 조가 배급되기 시작했다.

그건 몇 년 전부터 조선에도 나돌고 있는 만주산 조였다.


"하 이것 참, 보리도 아니고 조밥 신세라니…"


"니기럴, 보리라도 반썩 줄 것이제."


사람들은 뜬내 나는 조를 받아들고 한숨을 토로하며 맥을 풀렸다.

배급은 사흘치씩이었다.


"요것 참말 드럽게 되었다. 인자 와서 옮겨 뛰도 못허고".


남만석의 매형 김진배는 얼굴을 구길대로 구긴체 말이 담배를 마구 빨아댔다.


"참말이제 왜놈덜언 믿지 못헐 개종자덜이로구만."


남만석이도 담배연기를 짙게 내뿜으며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는 절망스럽기도 하고 면목이 없기도 하고, 그 심정을 뭐라고 형용할 수가 없었다.

왜놈들에게속은 것이었지만 매형과 어머니를 대할 면목이 없어 마음은 참담하기만 했다.


"그렁께 똥인지 된장인지 잘 알아봤어야 할 것 아니여. 어쩐지 자네가 너무 설레 발얼 치드라니…"


김진배는 아주 노골적으로 처남을 타박하고 들었다.


"누가 요지렁 알았당게라."


울상이 된 남만석은 먹구름 같은 한숨을 뭉텅이로 토해냈다.


"거 무신 깨진 북 치는 소리여. 한나 보먼 열얼 알드라고

그리 겪어보고도 왜놈덜 곤조통얼 몰랐다는 것이여?"


김진배의 어투는 더 강해져 있었다.


"요 일언 설마 했제라."


남만석은 궁지로 몰리며 한숨만 더 짙어졌다.


"이 사람아, 설마가 사람 잡는 것 몰라."


노을기가 사위어지고 있는 서쪽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죽림댁이 입을 열었다.


"아서, 아서. 다 엎어진 물이고 깨진 옹구여.

다 잘되자고 한 일잉게 맘덜 상하지 말고 앞일이나 생갹혀.

맘덜 상허면 그것이 병이고 화가 된게.

 이 땅 널른 것 봉게로 그리 잘못 온것도 아닌 것 같기도 허구야."


그말은 사위와 아들에게 하는 것 같았지만 실은 곤궁한 입장에 처한 아들을 구해 내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말은 죽림댁이 목포를 떠나 이곳에 올 때까지 처음으로 입을 땐 말이기도 했다.

죽림댁은 아들이 2년 전에 이민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이번에 기차를 탈 때까지

만주에 올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아들과 사위의 등쌀에 더는 견딜 수가 없어서 마음은 남편 곁에 둔 채로 어쩔 수 없이 끌려온 것이다. 그러나 지난날  땅을 빼앗길 때 그랬던 것처럼 또 총부리를 들이대고 있으니

이 낯설고 묘한 냄새 나는  땅에서 살아갈 도리밖에 없는 일이었다.
사방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짐을 풀어 솥을 꺼내고 개울물을 떠다가 밥짓기를 서둘렀다.

그리고 이불 모퉁이를 풀어 아이들을 감싸야 했다.

10월 초순이었지만 가을걷이는 이미 끝나 있었고,

밤이 되면서 남쪽의 겨울같은 추위가 몰려들었던 것이다
총독부 정책을 대행하는 만척회사에서는

금년 1월부터 또다시 제3차 농업이만 1만 1천호 모집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 2백 가구는 목포와 신안 일대 그리고 정읍과 고창일대에서 사람들이 섞인 것이었다.
이튿날 아침 군인들이 나서서 무작정 그들을 줄지어 세웠다.

그리고 나무 토막치듯 반으로 갈랐다.


"이쪽 사람들은 빨리 짐을 챙겨라!"


군인 대장의 명령이었다.
지적당한 쪽이 딴 곳으로 옮겨간다는 것을 사람들은 금새 알아차렸다.


"자 저짝으로 가게 해줏시오. 우리 한집안 사람인디"


"나도 저짝으로 보내주시게라. 우리 한동네 사람이 갈라졌구만요."


이 사람 저 사람이 나서면서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가만히 있지 못해 가봤자 10리 밖이야. 살면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어."


만척회사 직원인 조선사람들이 빽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움츠리고 말았다. 10리라는 것에 안도하기도 했던 것이다.


"오나가나 저런 백여시 같은 놈덜언 꼭 있네 잉."


"긍께 말이시. 멀 얻어묵자고 이 멀고먼 디꺼정 와갖고 저 염병지랄인지 모르겠네."


"똥통에 구데기만도 못헌 놈덜이 개씹에 보리알 깨대끼 여그저그 잘도 기여 붙고 사는 구만."


"소리 안 나는 총이 있으면 저런 씨부랄 놈덜보톰 삭 쥑여없애야 되는 것인디."


남자들이 수군거리는 말이었다.
1백가구 6백여명이 짐들을 이고 지고 떠나갔다.

나머지 사람들을 놓고 군인들은 다시 조편성을 했다.

집짓기조, 담쌓기조, 호파기조로 나누었다.


"얼어 죽지 않고 총 맞아 죽지 않으려면 하루라도 빨리 집을 지어라.

어젯밤에 자봐서 알겠지만 여긴 벌써 남쪽의 겨울과 다르다.

그리고 이 지역은 또 공산비적들이 총질을 해대며 식량을 뺏어가고 사람들을 죽이는 곳이다.

하루라도 빨리 집을 짓지 않으면 그놈들 손에 식량도 다 뺏기고 총 맞아 죽게 된다.

다들 똑똑히 명심하라."


군인대장의 살벌한 말이었다.
그말이 아니었어도 사람들은 벌서 집을 빨리 지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아들들은 감기가 걸려 콧물을 흘리고 노인들은 기침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공산비적이란 말은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동북항일연군을 말하는 것이었고, 그 지역은 중국인 조상지 장군이 이끄는

제 3로군 활동지역이었다.
남만석은 매형네와 갈라지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으로 생각하며 담쌓기조에서 일을 시작했다.

삼사일이 지나면서 병통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감기만 심하게 퍼지는 것이 아니었다.

뜻밖에 설사병이 생겨났다.

그건 다름 아닌 수질이 나빠 얻은 병이었다.


"물을 꼭 끓여서 먹어. 끓여서."


약을 구해 달라는 말에 이렇게 대꾸했다.

사나흘 설사는 사람을 몰라보게 수척하게 만들었고,

설사가 곱똥으로 바뀌면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앓아누웠다.

그건 단순한 설사가 아니라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이질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기운을 못 차리고 쓰러져도  땅바닥밖엔 누워 있을 데가 없었다.
여자들까지 기운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집짓기에 나섰다.

집을 하루라도 빨리 짓는 것이 사람을 살리는 길이었던 것이다.

일들은 훨씬 빨리 진척되어 갔다.

군인들은 할 일이 없어서 잡담을 하거나 휘파람을 불러댔다.
그러나 칠팔일이 지나면서 여기저기서 통곡이 터지기 시작했다.

곱똥에서 피똥을 싸던 환자들이 끝내 이질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이었다.

주로 아이들과 노인들이었다.
집들은 예정보다 나흘이나 빠르게 11일 만에 완성됐다.

 1개동에 10세대씩 들어가는 판잣집 10개동이 줄지어 서 있었다.

식구가 얼마이건 간에 방 하나, 부엌 하나씩이 배당되었다.

그러나 밤추위 속에서 한뎃잠을 자건 것에 비하면 그것은 천국이었다.

아이들은 좋아서 소리치며 팔딱팔딱 뛰었다.

온돌방은 따뜻했던 것이다.
창고와 공회당이 완성되고, 우물에서 맑은 물을 길어 올리기까지는 사흘이 더 걸렸다.

담 밖 구덩이를 따라 가시철망이 쳐지고, 담 네 귀퉁이에 포대가 설치되는 것으로

집단부락은 완전히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군인들은 일본군과 만주군이 5명씩, 10명으로 늘어났다.

사람들은 그때서야 자기들이 군인들의 감시 아래 죄인과 같은 감옥살이 생활을

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땡땡땡땡땡…


종 대용으로 공회당 기둥에 매달린 레일 토막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아이들만 빼고 모든 사람들은 허둥지둥 공회당 앞으로 모였다.


"이래 가지고 공비들의 내습에 대처할 수 있으무니까!"


일본군이 서툰 조선말로 외치며 발을 굴렀다.

비상소집 훈련이었던 것이다.

남자들로 자치대라는 것을 짰다.

그리고 순번대로 밤마다 야경을 돌고, 포대 경계병들의 보조 노릇이 그들의 임무였다.
그동안 날씨는 완연히 겨울로 바뀌어 있었다.

사람들은 짐을 정리해 가며 사나흘 편히 쉬었다


"아이고 이만허먼 살겄네."


"으째 속이 컬컬한 것이 한잔 생각 간절허재."


"그나저나 요런 불쌍놈덜이 방 한나가 머시여."


"아니 글먼, 저놈덜이 둘썩 줄지 알았등감? 그리 겪어보고도 헛소리여."


"하이고 이 사람아. 붕알 긁으랑게 장딴지 긁덜 말고.

헛소리넌 저 사람이 허는 것이 아니고 자네가 하는 것이여."


"허어, 참, 인자 발바닥 긁는 벽창호시. 저 사람 밤에 그 재미 못봐서 그러는 거 아니여.'


남자들은 모두 집 떠날 채비를 해야 했다.

그들은 멀리 보이는 산으로 숯을 구우러 간다는 것이었다.

그 밑도 끝도 없는 말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숯언 무슨 숯이여?"


"나가 안가. 자네가 안가, 즈그놈덜 꼴리는 대로 허는 것이제."


"보나마나 뻔하덜 안혀, 왜놈덜 숯 없음사 삼동에 갱신얼 못허덜 안트라고.

즈그놈덜 붕알 따땃허니 놀힐라고 우리 붕알 얼릴라는 것이제."


"참 씨부랄 놈덜, 개 걸리 사람 부래먹을라고 지랄염병이시.

농새꾼얼 멀러 보고 숯쟁이 맨글라는 것이여."


"참말이제 드럽다. 만주거정와서 숯쟁이질이 왠 말이다냐.

인자 조상젯상에 절도 못 올리게 되았다."


사람들은 숯굽는 일의 생소함이나 고달픔 이전에 숯 굽는 일 자체에 혐오감을 느꼈다.

일본세상이 되면서 숯은 장작이나 솔가리나무를 압도할 정도로 번창했다.

다다미방에서 겨울나기를 하는 일본사람들은 방마다 숯화로를 끼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왜 자기들이 숯쟁이로 끌려가야 하는지 그 내막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중국과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전반적으로 물자난을 겪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시급한 것이 기름이었다.

그래서 총독부는 38년 1월에 인조석유제조사업법을 공포했다.

그리고 4월에는 원료공급난으로 전국 고무공장의 휴업상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말이 숯 굽는 일이었지 그들이 맞딱드린 것은 두 가지 일이었다.

벌채와 숯굽는 일을 동시에 하도록 되어 있었다.

먼저 아름드리나무들을 찍어 넘어뜨려야 했고,

그다음에 가지들을 잘라내 숯가미에 넣을 수 있도록 토막을 내야 했다.

그러니까 그곳은 산판 겸 숯가마였고, 일본사람들은 목재와 숯을 동시에 구하는

일거양득을 취하고 있었다.
산에는 그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람한 산줄기의 등성이마다 다른 집단부락에서 끌려온 조선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아니, 이리 부래묵으면 품삯은 어찌 되는 것이여?"


며칠 지나자 누가 내놓은 말이었다.


"그려, 요것이 예사로 심드는 일인가.

산판일에다 숯쟁이에다, 품삯얼 받어도 곱쟁이로 받어야 헐 판이여."


"고것 공자님 말씸이시. 당장 따져봐야 될 일 아니라고?"


"그렇고 말고 만척 놈덜언 낭구 풀아묵고 숯 폴아묵고 이증으로 돈벌이 하는 것 아니겄어."


"잉, 그렇구만 그리 오지게 둔벌이 험서 우리헌티 품삯얼 안 준다는 것언

우리얼 홍어좆으로 아는 거여."


"그려, 괴기년 십어야 맛이 나고 말언 털어놔야 책이 생기드라고,

듣고 봉게 고것 참 아조 존 생각이네."


"글면 당장 따지고 나스드라고."


"아니, 아니여. 산판이고 부두 겉은 디서 그 간조란가 머신가 계산하는 날이 메칠이여?

 열흘인가 그렇제?"


"맞어, 대개 다 열흘이여."


"글먼 열흘 채우고 보는 것이 어쩌것능가?"


"잉, 그것도 좋은 생각이시."


"그려, 그래야 따지기도 좋제."


그런 발의는 다음날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금세 퍼져나갔다.
의견일치를 본 그들은 사흘을 더 기다렸다.

 열흘 간의 일이 끝났건만 돈을 줄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경비대 막사 앞으로 모였다.

만척회사 직원 한 명은 군인들과 함께 거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먼저 맞이한 건 군인들이 겨눈 총구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군인들은 총부터 들이댔다.

그들은 조선사람들과 항일연군을 차단시키는 목적을 겸해 상주하고 있었다.


"우리 품삯은 어찌 되는 것이요?"


"심진 일얼 시키먼 품삯얼 춰져얄 것 아이겼소."


"어떤 산판이고 숯가마고 품삯 안주는 디넌 없소."


그들은 만일을 생각해 대표 같은 것을 뽑지 않고 누구인지 모르게 여기저기서 외쳐댔다 .


"뭐라고, 품삯? 다들 정신나갔나! 지금 부락에서 처자식들은 뭘 먹고 있나.

그건 누가 먹여 주는 건가. 그것이 품삯이 아니고 뭐야. 다들 정신 똑똑히 차라라구,

다시 그따위 소릴 하는 놈들은 가처 없이 처벌하고 말 테니까 빨리 해산해."


만척회사 직원의 기세는 시퍼랬다.


"해산해, 해산!"


군인들이 곧 총을 쏠 것처럼 설치며 소리쳤다.
그들은 흩어져 숯막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따져야 할 말들을 가슴에 담은 채.
식구들이 먹는 것이라고는 뜬내 나는 조밥에 소금국뿐이었다.

자신들이 먹는 것은 다른 잡곡도 섞인 밥에 된장도 풀린 국이라 조금 나은 편이었지만

그 모든 것이 품삯과 합당한 것인지 따져야 했다.
그건 주먹국구로 따져도 어림없이 안 맞는 액수였다.

그러나 총을 들이대는 판이니 말 한마디 꺼낼 수가 없었다.


"참말로 갈수록 태산이다."


"나가 미친놈이제, 왜놈덜얼 믿다니."


"시싱에, 요리도 악독헌 놈덜이 어디 또 있을까.

근디 말이여 이만이지 개붕알인지가 시작된 것이 3년인디

어찌 요런 소문이 한 가닥도 안 들였을꼬?"


"자다가 봉창 뚜딜기는 소리 허덜 말어.

집단부락인지 감옥인지 맨글어놓고 그런 소리여?

사람덜마동 각단지게 집단부락에 가두고

그리 옴지락딸싹 못하게 해대는디 무신 수로 소문이 나것어."


"인자 으째야 쓰까?"


"으쩌기넌 멀 으째. 다 똥싸 뭉갠 팔자제."


"굶어죽어도 지  땅서 굶어죽어야 허는디."


"그나저나 요런 빌어묵을 놈에  땅언 어찌 이리 시월에 엄동설한이고 이 개질랄이여."
찬바람 스며드는 숯막에 남자들의 한숨소리만 짙었다
무릎에 머리를 웅크려 박고 앉은 남만석은 또 후회에 후회를 곱씹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목포의 부투와 다도해가 선하게 떠올라 있었다.

남만석은 발등을 찍고 싶다는 말이 무슨 말ㅇ인지 비로소 절감하고 있었다.

기어이  땅을 찾으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거역해 받는 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놈들은 달라진 것이 없는데 고생살이를 면해 보려는 자신의 약은 생각으로

더 큰 고생살이의 구렁텅이로 빠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머니께는 너무 면목 없고 죄스럽기만 했다.

자신이 이렇게 고향이 그리운데 어머니는 얼마나 더할 것인가.

아버지의 산소 앞에서 울음을 그치지 못해 어머니의 모습이 가슴 어리게 다가왔다.
숯굽기 한 달을 넘기면서 사람들은 언제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지를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지고, 온몸에 숯검정 범벅인 일은 지긋지긋하기만 하고,

보고 싶은 건 처자식뿐이었다 .


"언제까지 일하냐고? 왜, 놀고 먹고 싶어서? 내년 봄 농사 시작할 때까지 해야지."


이 응답 앞에서 사람들은 그만 말을 잃어버렸다 .
한편, 집단부락의 여자들도 편안히 앉아서 있지를 못했다.

나날이 추워지는 날씨에 땔감을 구해야 했던 것이다.

여자들은 10리, 20리 밖의 둔덕빼기 억새밭이나 강가의 갈대밭을 찾아가야 했다.
여자들은 살얼음이 끼는 10월의 추위에서 말로만 들어온 만주의 추위를 실감하고 있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땔감을 비축하려고 여자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떼지어 나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거리가 멀어서 그렇지 버려진  땅에 억새와 갈대는 지천으로 많았던 것이다.

군인들은 이미 남자들을 볼모로 잡아두었다는 듯 여자들이 떼지어 나무를 하러 나서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어무니, 인자 아침마다…"


남만석의 아내는 시어머니를 만류했다.


"아니여, 알시랑토 안다."


죽림댁은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짚신을 꿰신었다.


"어무니, 넘덜이…"


왜 시어머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시고 저리 깊은 근심이 서리게 되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남편이 저지른 큰 잘못이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아들 원망하는 말 한마디 내비치지 않았다.

그 원망스러움을 속으로 다 삭이자니 얼마나 속이 아플 것인가.

남만석의 아내는 시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움이 큰데 시어머니는 나무까지 하러 너서는 것이었다.


"가자, 니가 기운 남었을 적에 한 짐이라도 더 보태야지 새끼덜이 안얼제."


죽림댁은 앞서 집을 나섰다.

죽림댁은 아무리 기를 썼지만 젊은 여자들이 이는 나뭇짐을 당할 수가 없었다.

젊은 여자들에 비해 표나게 작은 나뭇짐을 이고도 숨을 헐떡거려야 하는

 자신에게서 죽림댁은 이제 쓸모없이 늙었다는 것을 깊이 느끼고 있었다.

죽림댁은 날마다 이어온 나뭇짐을 사위 네와 똑같이 반으로 나누었다.


"니 서운해 말어라 이."


죽림댁은 나뭇짐을 나누면서 며느리에게 말하고는 했다.


"하먼이라, 어무니 맘 다 아는구만요."


남만석의 아내는 시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며 흔쾌하게 대꾸했다.


"니가 딸년 좋으라고 이러는 것이 아니다.

김 서방 대허기가 바늘 방석이라…"


"야야, 아범이 실수헌 것 다 아는구만요."


죽림댁은 아들이 사위를 만주로 끌어온 잘못을 그렇게라도 해서 갚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큰 사고가 터졌다.

정읍에서 온 한 서방에 딸이 공회당 뒷기둥에 목을 매달아 죽은 것이었다.


"군인 싯이서 옷 벗고 막…"


"누나럴 꼼지락도 못허게 하고…"


서너 아이가 부들부들 떨며 더듬거린 말이었다.
여자들은 무슨 사태가 벌어졌었는지 알아차렸다.

한 서방의 아내는 열다섯 먹은 딸의 굳어진 몸을 끌어안고 한바탕 통곡을 하고는 사무실로 대달았다. 그 눈에서 파란 불이 돋고 있었다. 여자들도 모두 뒤쫓아 갔다.
군인들이 모두 시치미를 뗐다.

대장도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여자들은 아까 그 아이들을 데려왔다.


"아까 그놈돌이 누군지 알지야?"


"겁묵지 말고 대."


"하먼, 엄니 아줌니덜이 이리 있응게 겁묵을 것 하나또 없다."


여자들은 아이들을 안고 에워싸며 말했다.

그런 여자들의 눈빛도 달라져 있었다.
아이들은 세 군인을 손가락질해 나갔다.

그때서야 군인은 당황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이 놈의 새끼들!"


대장이 세 군인의 따귀를 차례로 후려갈겼다.
다음날 군인 셋은 어디론가 끌려갔고, 여자들은 한 서방네 딸을  땅에 묻었다.

 
"아이고오, 아이고오, 민메누리로 돌라고 헐 적에 주고 올 것을…"


"입얼 줄이자고 즈그 언니 맘에는 없는 집에 시집보낸 것이 죄진 것 겉애서

그냥 딜고 왔등마 요것이 무신 날베락이야, 아이고오, 아이고오, 나못살어.

 즈그 아부지보고 머시라고 말히야 쓴다냐…"


한 서방의 아내는 딸의 무덤을 치며 통곡했다.

타국으로 떠나며 입을 하나라도 줄이자고 딸을 시집보낸 것은 한 서방네만이 아니었다.

딸이 이팔청춘 16살이 넘은 집에서는 거의가 시집을 보내고 떠나왔던 것이다.

그래서 잡단부락이 완성되기 전에 벌써 사람들은 총각들의 수와 처녀들의 수가

턱없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여자들의 나무하기는 더욱 극성스러워졌다.

날씨가 하루 다르게 추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 서방네 아내도 한 사나흘 몸져누웠다가 다시 낫을 들고 나섰다.

어린 자식들이 넷이나 더 있었던 것이다.
집집마다 집 뒤에는 갈대단과 역새단들이 집 높이로 쌓여져 올라갔다.
여자들은 갈대와 억새가 짚보다 더 불땀이 좋은 것을 큰 다행으로 생각하고 고마워했다.

갈대와 억새는 재가 많이 나왔다.

여자들은 재도 함부로 하지 않고 부락 밖의 넓고 나직하게 구덩이를 파고 모았다.

농사가 몸에 밴 여자들의 지혜였다.

재에 오줌을 섞으면 그보다 더 좋은 거름이 없었던 것이다.
남만석의 아내는 잠자리에서 일어나며 옷고름을 여몄다.

 시어머니와 아이들이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시어머니를 깨울까봐 발끝으로 가만가만 걸어 밖으로 나왔다.

시어머니는 잠귀가 밝은데다 만주로 오고부터는 잠을 잘 자지 못했다.
그녀는 밥을 다 지었다.

그런데도 시어머니는 일어나지 않았다.

웬 늦잠인가 싶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녀는 방으로 들어왔다.

시어머니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나무를 가자면 어서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야 했다.

그녀는 아이들로부터 깨우기 시작했다.

감히 시어머니를 깨울 수 없고, 그 소리를 듣고 시어머니가 어련히 일어나랴 싶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일어나는 데로 시어머니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불길한 생각이 순간적으로 그녀의 머리를 스쳤다.

그녀는 서둘러 시어머니에게로 다가갔다.


"어무님, 어무님!…"


그녀는 손끝이 섬뜩한 것을 느꼈다.
죽림댁은 자는 듯 숨이 끊어져 있었다.


"어무님, 어무님, 어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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