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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2> 44장 속물 [10]

오늘의 쉼터 2016. 7. 23. 17:39

<462> 44장  속물 [10]


(923) 44장 속물 - 19



1억8000만 원을 받았다. 본래 3억 원을 받기로 했는데 그 개 같은 놈들이 사기를 친 것이다.

처음에 한꺼번에 다 받았어야 했는데 전셋집 옮기는 것처럼 계약금, 중도금, 잔금으로 나눴다가

잔금을 못 받은 셈이다.

TV 인터뷰만 끝내고 방송 나가기 전에 잔금을 준다고 한 것을 믿은 것이 잘못이다.

잔금을 못 받았으니 방영하지 말라고 방송국에다 연락을 할 수도 없지 않겠는가?

약속 위반으로 고소했다가는 교도소에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부터 심사가 편치 않았는데 재수가 없으려니

오후 3시 반,

이계성 변호사 사무실 앞에 선 박서현이 심호흡을 했다.

주저앉은 것이 하필이면 똥 위에 앉았다고 생각하자.

호사다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잘나가는 길에 잠깐 재수가 없었다고 치자.

1억8000만 원이나 벌었지 않은가?

잔금 1억2000만 원은 애초에 없었던 돈으로 치면 된다.

TV에 나와서 별놈의 뒷소리를 다 들었지만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있지 않았던가?

유명해진 덕에 화장품가게 주인이 50% 할인을 해주기도 했다.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한 박서현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어디서 오셨지요?” 

여직원이 물었으므로 박서현이 눈썹을 찌푸린 얼굴로 시선을 주었다.

“오늘 3시 반에 약속을 했는데요.” 

“아, 박서현 씨죠?” 

자리에서 일어선 여직원이 옆쪽 상담실로 안내했다.

얼핏 시선을 주었지만 변호사 사무실의 직원은 4명, 손님이 3명쯤 된다.

안쪽이 변호사 방이었는데 사무실도 꽤 넓었다.

이곳도 서초동의 변호사 타운이다.

상담실로 들어선 박서현은 그때야 선글라스를 벗고 자리에 앉았다.

소파 1조가 놓인 상담실은 깨끗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사근사근 말한 여직원이 방을 나갔을 때 박서현이 다시 숨을 뱉었다.

이계성 변호사는 ‘대포차 관련 전문변호사’다.

인터넷에서 찾아내고 부랴부랴 약속을 잡았는데 내일 서초경찰서에 출두하기 전에

변호사하고 합의를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교도소에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前) 같으면 경찰에 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포차를 탄 지 1년이 넘었어도 잘만 타고 다녔던 것이다.

반의반 값에, 그것도 외제차를, 거기에다 세금, 보험료도 안 내고 타는 걸 누가 마다할 것인가?

그런데 TV에서 얼굴이 팔렸기 때문인지 멀쩡한 대낮에, 그것도 방배동 사거리에서

경찰차에 잡히다니, 호사다마다.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사내 하나가 들어섰다.

대머리, 건강한 체격, 말끔한 맞춤 양복에 반짝이는 구두, 얼굴에는 웃음이 떠올라 있다.


“기다리셨죠?”

앞쪽에 앉으면서 사내가 부드럽게 물었다.

사내한테서 옅은 향수 냄새가 났다. 변호사다.

“아뇨, 방금 왔어요.”

“사무장한테 서류 보내주신 것 받아 보았습니다.”

변호사가 지그시 박서현을 보았다. 

“요즘 대포차 단속이 엄해져서요.

벌금 내고 끝내는 정도가 아닙니다.

각종 범죄에 이용되다 보니까 아주 골치 아프게 되었습니다.” 

변호사의 얼굴에서 웃음이 지워졌다. 

“더구나 그 차는 3년 전에 도난당한 차인 데다 뺑소니 사고까지 일으켰더군요.”

“네?” 

박서현의 입에서 외마디 외침이 터졌다.

이게 웬 날벼락이냐? 그때 변호사가 긴 숨을 뱉었다.

“잘못하면 구속될지도 모르겠는데요.” 




(924) 44장 속물 - 20



“대포차로 주차위반을 17회,

톨게이트 통행료를 75만 원 내지 않았고 기타 벌금이 325만 원가량 있습니다.” 

유병선이 외면한 채 말을 이었다. 

“앞으로 더 드러날 것 같습니다, 후보님.” 

서동수가 스크랩 된 신문을 내려놨다. 

박서현의 ‘대포차 사건’이다.

이제 다시 박서현이 매스컴의 주인공이 돼 있는 것이다.

박서현이 얼굴을 가리고 도망치는 사진도 있고 조금 전 TV에서는 박서현의 아파트도 비춰 주었다. 시체에 달려드는 하이에나 떼다.

남의 집에 맘대로 들어갈 수 없는데도 TV에서는 꼭 기자가 문 손잡이를 잡고 들어가려는

시늉을 하는 장면을 비춰 준다.

상식이 있는 사람들은 “쟤가 미쳤나?” 하겠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들어가서 박서현하고

인터뷰를 하려는 줄로 알 것이다. 

“박서현 씨는 죄질이 나쁩니다. 여론도 좋지 않고요. 구속될지도 모릅니다.”

말을 그친 유병선이 서동수의 눈치를 보았다.

드문 일이다. 유병선은 소신이 분명한 성품이다.

서동수의 심복이긴 했지만 자신의 주관을 숨긴 적이 없다.

 선택은 서동수의 몫이지만 바른말을 해온 것이다.

그때 서동수가 탁자 위에 놓인 녹음기를 눈으로 가리켰다. 

“내가 그 여자 목소리를 꼭 들어야겠나?” 

녹음기는 유병선이 가져왔지만 아직 듣지 않았다.

박서현의 목소리가 녹음돼 있는 것이다.

유병선이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우선 듣고 결정하시지요.”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이자 유병선이 녹음기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곧 박서현의 목소리가 울렸다.

“서동수 씨한테 전해 주세요.” 

“뭘 말씀입니까?” 

그때 유병선이 중지 버튼을 누르고 설명했다.


“비서실의 조익성 과장이 받았습니다.”

버튼에서 손을 떼자 곧 박서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내가 민족당 홍보실의 최민호라는 사람한테서 1억8000만 원을 받았어요.

서동수 씨와의 결혼생활을 고발하는 인터뷰 대가로 말이죠.”

“아아, 예.”

“내가 그것을 증언하겠어요. 민족당이 나를 돈으로 매수했다고요.”

“아아, 예.” 

“될 수 있는 한 부정적인 요소를 많이 끼워 넣으라는 주문이 있었어요. 듣고 계세요?”

“예, 듣고 있습니다.” 

“제가 그 사람하고 이야기한 것을 녹음해 뒀거든요. 그걸 드릴 수도 있어요.”

“녹음하셨다고요?” 

조익성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섞였다. 

“네, 그래요.” 

“그래서 그것을 고발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네.” 

“그런데 우리 장관님은 왜 찾으시는지요?” 

“그 녹음테이프를 사세요.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무슨 말씀입니까?” 

“민족당이 타격을 받지 않겠어요? 물론 나도 그들이 시킨 대로 한 잘못이 있지만 말이에요.”

“아아, 예.” 

“서동수 씨는 돈이 많으니까 5억 원만 내라고 하세요. 내가 요즘 돈 쓸 곳이 많아서 그래요.”

그때 다시 버튼을 누른 유병선이 서동수를 보았다. 

“대포차 사건이 언론에 터지기 직전에 전화를 한 것 같습니다.

담당 변호사 이야기로는 상황을 듣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고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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