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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 44장 속물 [9]

오늘의 쉼터 2016. 7. 23. 17:29

<461> 44장  속물 [9]


(921) 44장 속물 - 17



오늘은 마포의 돼지껍질 식당에서 장성호와 조문수 둘이 만났는데 요즘은 자주 만나는 편이다.

남한의 대선이 끝났지만 반년쯤 후에는 남북한의 연방대통령 선거가 있는 것이다.

1945년 해방이 된 후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됐으니 70여 년 만에 치르는 남북한 선거다.

통일 선거인 것이다.

오후 8시,

이제 남한 측 연방대통령 후보는 서동수, 북한은 김동일로 결정됐으니

반년 후에 둘 중 하나가 연방대통령이 된다.

현재 남북한의 연방준비위원회는 순조롭게 통치체제를 확정 짓는 중이다.

“나왔군.” 

소주잔을 든 장성호가 말하자 조문수가 시선을 들었다.

옆쪽 벽에 걸린 TV에 민족당 원내총무 윤준호가 나왔다.

윤준호는 며칠 전 연방준비위원회 상임위원으로 발탁돼 정치권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민족당은 배신자라고 성토하고 제명할 분위기였는데 오늘 TV 인터뷰에 나온 것이다.

장성호와 조문수도 그 인터뷰 시간에 맞춰 돼지껍질 식당에 왔다.

술 마시면서 정치인을 안주로 씹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앵커와 윤준호가 인사말을 주고받을 때 조문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철새 같은 놈들. 아마 서동수가 연방대통령이 됐을 때 감투 하나 준다고 약속했겠지. 배신자.”

장성호는 맞장구치지 않았다.

뻔했기 때문이다.

아마 시청자 100명 중 99명이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때 앵커가 물었다. 

“서동수 후보가 직접 요청했다고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윤 의원께서는 민족당의 중진이며 서 후보의 공생당과는 전혀 다른 이념과 철학을 갖고

계신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융화가 될 것 같습니까?” 

“그래서 가는 겁니다.” 

어깨를 편 윤준호가 앵커를 똑바로 보았다. 

“서 후보께서도 그걸 바라신 것이고요.”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서 후보는 남이건 북이건, 동서, 좌우를 가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간단한 말에 공감한 겁니다.” 

“그렇습니까?” 

여전히 앵커는 시큰둥한 표정이었고 옆 좌석에서 사내 하나가 ‘지랄하네’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10개쯤 되는 돼지껍질 식당의 테이블이 조금 조용해졌다.

장성호와 조문수는 잠자코 시선만 준다.

그때 윤준호가 말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이제 남북한 대통합의 시기로 가야 합니다.

그것은 남북은 물론 동서, 좌우의 대립을 모두 포용하면서 나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서 후보가 우선 저를 영입했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되는군.” 

마침내 장성호가 술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조문수가 장성호를 쏘아보았다.

“저건 배신이 아니야.” 

“그럼 뭐냐?” 




(922) 44장 속물 - 18



저것이야말로 정치인의 능력이자 임무요.” 

윤준호의 얼굴을 보면서 서동수가 말했다.

이곳은 한랜드의 장관실, 서동수는 유병선과 안종관 그리고 서울에서 온 임창훈까지

넷이 둘러앉아 윤준호의 인터뷰 장면을 보는 중이다.

방송이 끝나가고 있었으므로 안종관이 리모컨으로 음소거를 했고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이곳저곳 눈치만 보고 여론조사에 따라 갈팡질팡할 바에는

차라리 대선에 나가지 않는 것이 나아요.”

유병선과 안종관은 잠자코 들었지만 민족당 운동권 출신의 임창훈이 머리를 돌려 서동수를 보았다.

“후보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정색한 표정이다. 임창훈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빙그레 웃었다.

“임 의원, 나도 멘토가 몇 분 있어요.” 

“예, 저도 들었습니다.” 

“그분들 말씀을 가슴에 담고 머릿속에 기억해두고 있지만 다 따르지는 않아요.”

“이해합니다.” 

“통일 대한연방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소?” 

“모르겠습니다. 후보께서 말씀해주시지요.” 

“의욕이오.” 

숨을 들이켜 임창훈이 서동수를 보았지만 유병선과 안종관은 태연했다.

임창훈은 서동수의 대답이 의외였던 것 같다.

 ‘애국심’이나 ‘통합’ ‘포용’ 등을 예상했을 것이다.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내가 경험했는데 통치자가 그럴듯한 문자를 내걸고 시작한 운동은 다 실패했습니다.

임 의원도 알고 계실 거요.” 

“…….” 

“한민족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운동이 무엇인지 아시오?” 

“모르겠는데요?” 

“잘살아보세 운동이오.” 

임창훈이 유병선과 안종관을 보았으나 둘은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서동수가 웃음 띤 얼굴로 물었다. 

“동의하시오?” 

“일리가 있습니다.” 

“잘살아보세란 정책 목표는 아니었지만 잘살아보고 싶다는 의욕이 넘쳤던 거요.”

“…….” 

“나는 그 의욕을 일으킬 작정이오.

그러려면 국민들의 가슴에 동기를 일으켜야겠지. 그 의욕의 동기.”

“…….” 

“배려심 부족, 집단 이기주의, 좌절과 절망에 빠져 있는 국민에게 지

금 조금씩 희망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글쎄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분위기는 변하고 있다.

대한연방으로의 통일 이전에 신의주 특구와 한랜드 개척이 일조를 했을 것이다.

그 주인공이 바로 서동수다.

서동수가 똑바로 임창훈을 보았다.

“속물 서동수의 출세기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을 거요.

저런 속물이 제 장점만을 내세워 연방대통령이 되려고 하는구나, 하고 말이오.” 


그러고는 서동수가 의자에 등을 붙였다.

“임 의원도 그 의욕을 만드는 데 동참해줘야겠소.

나도 머리에 한계가 있으니까. 임 의원의 머리는 나보다 더 명석하지 않소?”

“알겠습니다.”

임창훈이 머리를 숙여 보이면서 말했다.

“대한연방은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서동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임 의원도 방금 윤 의원처럼 얼마든지 그 내용을 전개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오.”

그리고 그렇게 만드는 것이 서동수의 능력이다. 



조문수가 물었을 때 윤준호의 목소리가 식당에 울렸다. 

“우리는 너무 경직돼 있어요.

이제 곧 북한 출신 국방부 장관이, 보훈처장이 임명될 수도 있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단 말입니다.

민족당 출신의 연방준비위원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사고의 틀을 깨야 합니다.”


조문수가 뻥한 표정으로 TV를 보았고 윤준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서 후보는 저를 시범으로 내놓으면서 국민 여러분께 새로운 사고를 바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시작일 뿐입니다.”

그때 장성호가 이 사이로 말했다.

“서동수가 사람 보는 눈은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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