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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 44장 속물 [3]

오늘의 쉼터 2016. 7. 3. 00:49

<455> 44장  속물 [3]


(909) 44장 속물 - 5




대선이 10일 남은 오후 7시 반,

KMS에서 며칠 전부터 예고한 대로 ‘특별인터뷰’가 방영됐다.

개시 시청률은 62%, KMS 측은 기쁨을 참지 못하고 방영하기도 전에 재방송 계획을 확정 지었다. 서동수는 성북동 숙소 응접실에 앉아 있었는데 옆에는 선거 지휘부가 둘러앉았다.

진기섭, 오성호, 임창훈, 고윤제 등 당 간부를 겸하고 있는 인사들에다 유병선, 안종관 등

 10여 명이나 된다.

시작하기 전에 다른 모든 인사는 긴장으로 굳어져 있었지만, 서동수는 꾸몄는지 모르나

편안한 표정이다.

소파에 깊숙하게 등을 묻고 앞쪽 대형 62인치 TV를 응시하고 있다.

넓은 응접실은 조용했다.

이윽고 KMS 단독 취재라는 자막과 함께 제목이 뜨자 응접실에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제목은 ‘서동수 장관의 전처 박서현 씨의 인생’이다.

그때 KMS의 명기자(名記者) 진중한과 박서현이 나타났다.

감질나게 해 짜증을 유발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진중한이 진중하게 물었다. 

“이 방송은 서동수 장관께서도 시청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진실을 말하지 않았거나 불확실한 사건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진실만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그럼요.” 

박서현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으므로 서동수는 길게 숨을 뱉었다.

그 숨소리를 들은 지휘부는 더 긴장했다.

그때 진중한이 물었다. 

“결혼생활은 몇 년 하셨지요?” 

“7년 했지요.” 

박서현이 바로 대답했다.

서동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박서현을 보았다.

안종관의 보고로는 박서현은 민족당 측으로부터 어떤 보상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철저하게 은폐해서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박서현이 괜히 나와서 저럴 리가 없다.

다시 진중한이 묻는다.


“결혼 생활은 어떠셨습니까?”

“결혼 생활요?”

되묻고 난 박서현이 똑바로 화면을 보았다.

눈빛이 강해져 있다. 화장을 진하게 해서 오히려 추하게 보인다.

젊었을 때는 섬세한 윤곽의 미인이었는데 이제 50대 초반에 이르러 거칠어졌다.

더럽혀진 얼굴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그때 박서현이 말을 이었다.

“지옥 같은 생활이었죠.

본래 진심이란 없는 인간이었으니까요.

끊임없이 거짓말을 늘어놓고 바람을 피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단 한 번도 진짜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 과장대리 신분인데도 항상 수백만 원씩 현금을 갖고 다니면서 흥청망청 썼지요.

공장이나 거래처에서 거침없이 리베이트를 받아 챙겼는데 제가 보는 앞에서도

리베이트를 요구하는 전화를 한 적도 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이나 세 번 정도는 꼭 외박을 했고 여자한테 오피스텔을 얻어준 적도 있지요.”

“아이고.” 

쓴웃음을 지은 진중한이 손을 들어 말리더니 긴 숨을 뱉었다.

누가 보더라도 만족한 한숨이다.

“천천히 말씀하지요. 불행하셨군요.

그런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유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제가 부족한 점이 있었던가 봐요.” 

하면서 박서현이 시선을 내렸을 때 응접실 이곳저곳에서 한숨 소리가 났다.

가소롭다는 표시일 것이다.

다시 박서현이 머리를 들고 이쪽을 보았다. 

“그 사람은 수시로 폭행도 했습니다.

맞고 며칠 동안 일어나지도 못한 적도 많아요.”

거짓말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명을 하는가? 




(910) 44장 속물 - 6




“여성단체 10여 개에서 100명쯤을 모아 공생당사 앞쪽에 있습니다.”

보좌관이 말하자 안동학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오후 3시 반,

줄여서 ‘박서현 인생’이 방영된 지 이제 만 하루가 되어간다.

그런데 10개 여성단체의 시위대 100명이라니,

어깨를 부풀린 안동학이 보좌관을 보았다.

여성단체는 수백 개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단체끼리 다 연락은 된 모양입니다만…….” 

“그래서?” 

안동학이 거칠게 묻자 보좌관은 시선을 내렸다.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뭐가?” 

“20여 년 전 일인 데다 박서현 씨 말이 좀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아니, 왜?” 

“박서현 씨가 그동안 두 번이나 결혼했다가 이혼한 데다, 또…….”

“또 뭐야?” 

“오늘 아침에 인터넷에서 박서현 씨가 서류위조 사기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됐던 일이 터졌거든요.”

“그거 무혐의로 풀려났다고 했잖아?” 

“인터넷에서 피해자하고 합의한 내용까지 다 까발려졌습니다. 그래서 기소 유예가 됐어요.”

“…….” 

“그것을 여성단체들이 알게 된 거죠.” 

“…….” 

“아마 지금 나와 있는 단체들도 곧 해산할 것 같습니다. 모르고 나온 것 같거든요.”

“이런 개 같은 년.” 

안동학이 이 사이로 욕했지만 방엔 둘뿐이어서 보좌관도 들었다.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린 안동학이 보좌관을 보았다. 

“이거 역효과가 나는 거 아냐?” 

보좌관이 대답하지 않았다.

박서현 작전을 기획한 것이 안동학이다.

물론 고정규의 승인을 받은 작전이다.

안동학이 찌푸린 얼굴로 보좌관을 보았다.


“공생당 측 반응은 어때?”

“전혀 없습니다.”

“해명도 없어?”

“없습니다.”

“이런 젠장.”

불안해진 안동학의 눈이 깜빡거렸다.

이상한 예감이 든 것이다.

30세에 정치권에 뛰어들어 보좌관 생활 5년,

그 후로 내리 4선을 하는 동안 안동학은 자신의 예감을 믿어 왔다.

눈이 깜빡여지면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

이것은 자신만이 아는 비밀이다. 

“이거, 서로 치고받는 건가?” 

안동학이 혼잣소리처럼 물었으므로 보좌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젠장, 이것으로 치고받고 끝냈으면 좋겠군.

그년이 구속되기 전에 피해자하고 합의했단 말이지?”

“예, 위원장님.” 

그때 탁자 위에 놓인 핸드폰이 울렸다.

보좌관이 들고 보더니 안동학에게 말했다.

“후보님이신데요.” 

고정규다. 숨을 들이켠 안동학이 핸드폰을 받아 귀에 붙였다.

“예, 후보님, 안동학입니다.” 

“그, 박서현 사기 사건이 무혐의로 풀려난 것이 아니라 피해자하고 합의했다는데 맞아요?”

여기서 금시초문이라고 했다가는 무능한 놈이 된다.

착오를 일으킨 놈이 무능한 놈보다는 낫다.

“예, 후보님.” 

“지장 없겠어요?” 

“언론은 별로 문제 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안동학의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문제 삼는다면 이제 죽은 목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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