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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승리와 이별 2 - 컴퓨터가 선정한 옥황상제 후임은?

오늘의 쉼터 2016. 6. 30. 07:26

제16장 승리와 이별 2


- 컴퓨터가 선정한 옥황상제 후임은?



파수 협곡의 대결전에서 천상의 현실로 돌아온 우리는

휴식과 치유와 갱생(更生)의 장소인 보패전(寶貝殿)에 입원했다.

 


보패전의 의사들은 내 유체의 잘린 다리가 있는 파수 협곡의

매트릭스로 들어와 봉합 수술을 했다.

은각의 무서운 칼에 비대한 몸 곳곳이 찔려 깊은 상처를 입은 팔계도,

태양살(太陽煞)이 전개되었을 때 팔다리에 3도 화상을 입은 스승도 치료를 받았다.



우리가 입원하고 있는 사이 천상의 정계(政界)는 크게 요동쳤다.

우리는 옥황상제 은각이 종교평의회의 기소에 따라 폐위되고 투옥되었으며

초공간의 조작에 연루된 은각 행정부의 부패인사들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뉴스로 전해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입원한 다음 날부터 보패전 주위에 천상의 근위부대가 삼엄한 경비망을 쳤다.

우리의 입원실 입구에도 경호원들이 24시간 상주하기 시작했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는데 나흘째 되던 날 사오정이 종교평의회 의장단을 이끌고 문병을 왔다.



“네가 태상노군이었다니.

처음에 내 부하 원숭이로 변신해서 수렴동에 나타났을 때부터 좀 수상했어.

이 자식아, 귀띔이라도 좀 해 줘야지!”



나는 천상 은하계의 정신적 영도자를 개 부르듯이 부르는 쾌감을 느끼며 껄껄 웃었다.

그러자 사오정의 눈썹 사이가 좁아지더니 심각한 대답이 돌아왔다.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었어.

형들과 스승님을 따라 서역 길에 나선 것은 나의 자의(恣意)가 아니었어.

나는 공무를 수행하러 갔던 거야.”



“무슨 공무?”



“종교평의회가 은각의 탄핵을 결정한 것은 오래 전의 일이었어.

나의 전임 태상노군인 백읍고(佰邑考)는 은각을 기소할 결정적인 증거를 잡고 있다가 독살되었지.

그러나 문제는 은각을 탄핵하고 기소하는 것이 아니라, 우

리가 안심할 수 있고 모든 천상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은각의 후임자를 찾는 것이었어.

오래 살아서 상당한 도력을 가지고 있고 행정관의 경험이 있으면서도 천상의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을 청렴한 인물을 원했던 거야.”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그게 우리의 서역 행과 무슨 상관이 있지?”



“삼라만상의 데이터를 가진 삼라전(森羅殿)의 컴퓨터가 선정한 옥황상제의 후보자는 바로 형이었어.”



“뭐, 뭐라고? 미친 놈! 그런 컴퓨터는 엿이나 바꿔 먹어야지.”



“형의 행적은 2세기 인도에서 씌어진 발미키의 <라마야나>부터 나오지.

16세기 중국에서 씌어진 오승은의 <서유기>에도 나오고.

형은 지구 나이로 1840살이고 천상의 나이로도 350살이 넘어.

형 나이에 형만큼 청렴한, 다시 말해 돈도 없고 정치적 연줄도 없는 한심한 인물이 어디 있겠어.

대통령을 지냈으니 행정관 경험도 있고. 그러나 약간 제멋대로 행동했던 전력이 많아서 불안했어.

만약 형이 자신의 의지 대로 세계를 형성할 수 있는 힘을 획득한다면 천상을 통치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도 있었고. 아무튼 그래서 종교평의회는 형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결정을 내렸던 거야.”



나는 아연해지고 불쾌해졌다.

그러니까 이 녀석은 응큼하게도 나를 속이고 내가 이제 철이 들었는지,

유능한 동시에 사사로운 욕심이 없는 인물인지 계산하고 있었다는 소리가 아닌가.

나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망할 자식아, 누구 맘대로 나를 조사해?

나는 옥황상제 자리 따위는 꿈에도 원해 본 적이 없어.

난 이 속 시끄러운 우주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두통거리들과는 아예 상관도 하고 싶지 않아.”



“처음에는 나도 컴퓨터가 형을 옥황상제 후보로 뽑은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과오라고 말했어.

하지만 조사 결과는 좀 달라. 형만 동의한다면 이제는 우주를 형의 손에 맡겨도 좋다고 생각해.”



“난 동의 안 해. 옥황상제? 개나 물어가라고 해!”



이틀 뒤 나와 팔계와 삼장법사는 짐을 싸서 천상의 수도에서 가까운 아침 노래의 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사오정을 비롯한 천상의 요인들이 우리를 초공간의 통로까지 배웅했다.

사오정은 서역 극락에 다녀오면 정치적인 문제를 다시 의논하자고 말했지만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대꾸도 하지 않았다.



우리 일행은 걸어서 초공간을 통과했다.

극락으로 난 초공간의 통로는 이제까지와는 아주 달랐다.

새벽인지 황혼인지 낮인지 밤인지를 분간할 수 없는 회색의 엷은 어둠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길고 긴 길이었다.

우리는 배고픔도 목마름도, 시간의 흐름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고 한참을 걸었다.



이윽고 앞길의 어둠 속에서 유백색의 빛이 조금씩 커져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투명했던 그 빛은 점점 투명해지면서 눈 앞에 아름다운 숲의 전경을 펼쳐내었다.

새들의 지저귐이 들리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숲이 끝나는 곳에는 부처님이 사시는 영취산(靈鷲山) 기슭을 애도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가슴 속에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솟아났다.

극락이었다.



잠시 강가를 서성거리자 강 건너 편 오솔길에서 사람들이 나타났다.

승복을 입은 깨끗한 용모의 비구승과 비구니들이었다.



“거기 오신 분들은 지구에서 오신 취경자(取經者)들이 아니십니까?”



“그렇습니다.”



“어서 강을 건너 오시지요.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들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