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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대결전 4 - “빨리 죽여주게”눈을 감은 손오공

오늘의 쉼터 2016. 6. 30. 01:21

제15장 대결전 4


- “빨리 죽여주게” 눈을 감은 손오공



화살은 내 허벅지를 관통하고 바위에 박혔다.

금단을 훔쳐 먹은 이후 철갑보다 더 강해진 내 피부를 도대체 어떻게 화살이 꿰뚫었을까?

 


의문을 곱씹을 겨를도 없이 높은 말 울음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하늘을 올려다 보자 옆구리에 독수리 같은 날개를 단 두 마리의 천마(天馬)가 전차를 끌고

천둥 같은 굉음을 발하며 날아오고 있었다.



전차에는 은각이 타고 있었고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전차 측면의 고리에 묶여 있는 스승이 보였다.

은각의 머리 위로 힘차게 내뿜어진 숨이 새하얀 깃털처럼 나부꼈다.

은각은 황금빛 장갑을 낀 손으로 눈부신 빛을 반사하는 대궁(大弓)을 들더니

나의 키만한 황금빛 화살을 활시위에 메겼다.



건곤일월전(乾坤日月箭). 천지와 일월의 기운을 갈무리한 화살.

모든 호신강기를 뚫고 들어가 혼백을 부수어 흩어버림으로써 마법사들을 죽이고

신령들을 봉신(封神)해버린다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

힘껏 시위를 당긴 은각이 퉁, 하는 소리를 내며 화살을 쏘았다.



화살이 가슴에 적중하기 직전 나는 바위로부터 아래로 떨어져 아슬아슬하게 죽음을 모면했다.

변신술을 써서 하반신을 저밀도 점액질의 아메바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화살에 관통되었던 허벅지가 자유로워지자 나는 즉각 다시 거대한 금시조(金翅鳥)로 변신했다.



나의 몸은 바람처럼 번개처럼 하늘을 날아 은각을 덮쳤다.

순간 은각이 손가락으로 인(印)을 만들며 주문을 외웠고 하늘을 순환하고 있는

강력한 바람이 나를 강타했다.

나는 그 바람과 싸워 이겼지만 은각이 던진 차크라, 레이저 광선보다 백 배는 더

파괴적이라는 광선 원반에 맞닥뜨렸다.



나는 여의봉으로 있는 힘껏 광선 원반을 후려갈겼다.

순간 하늘이 전광(電光)과 함께 나의 주위에서 폭발하는 것 같았다.

어둠이 나를 감쌌다.

그것은 마치 모든 감각이 결여된 진공 속을 움직이는 것 같은 암흑의 순간이었다.

곧이어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다.



은각의 원반은 여의봉을 맞고도 튕겨나가지 않고 조금만 빗나가서

나의 두 다리를 잘라버렸던 것이다.

잘려나간 다리에서 피가 수돗물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정신은 아득해졌고 오감(五感)은 달리는 말처럼 흐트러졌다.

은각이 또 한 대의 건곤일월전을 쏘았다. 필사적으로 몸을 굴렸지만

화살은 나의 등을 관통했고 나는 고통을 이기지 못해 격렬한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을 후벼 팠다.



가물가물해지는 정신 속에서 팔계가 은각을 향해 달려들어 쇠스랑을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다음 순간 시각을 비롯해 모든 감각이 잠시 사라졌다.

다시 정신을 차리려 보니 피투성이가 된 팔계가 하늘에서 땅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나의 원숭이 분신들은 요마들에게 포위되어 죽어가고 있었다.

요마들은 1명의 원숭이에 수십 명씩 달려들어 소위 십절진(十絶陣)의 연쇄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번개, 화염, 바람, 칼날, 화살, 독을 품은 검은 모래, 붉은 색의 독물, 마법 거울 등이

잇달아 날아갔고 나의 원숭이들은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며 차례차례 쓰러졌다.



너무 많은 피를 흘려 흐려졌다 밝아졌다 하는 내 눈 앞으로 은각이 전차에서 내려 걸어왔다.

그의 오른손은 역시 참사봉신(斬師封神)의 효능을 가진 보검 거궐(巨闕)을 들고 있었다.

거대한 몸집의 살쾡이 호리(狐狸) 장군이 이끄는 요마 부대가 싸움터에서 달려와 은각을 호위했다.

호리 장군의 부하들은 수천의 창날을 내게 겨누며 포위했다.

은각의 입가에 적나라한 냉소가 떠올랐다.



“하하하, 세상 정말 불공평하지? 고생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죽다니.”



나는 의연하게 웃었다.



“우주는 본래 평등 개념에 따라 움직이지 않아.”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지. 불성실이야말로 자네가 가진 최대의 힘이었어.

사람은 역시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 거야. 삼장법사의 행자 노릇 지겹지 않나?

자네 같은 인물이 서역에 가서 뭘 할 거야?

나는 자네에게 천상 행정부를 관장하고 은하계를 호령할 수 있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지위를 주겠네. 내게 충성을 맹세하게.”



은각의 목소리는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나의 귓전에 소음처럼 웅웅거렸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죽음이 가까워진 듯 했다.

문득 2000년 가까이 완전히 잊고 있었던 유년 시절의 기억이 찾아왔다.



가슴 위는 사람이고 가슴 아래는 독수리였던 바람의 신(風天) 바유. 그가 나의 아버지였다.

술과 음악과 노래와 춤을 좋아하던 건달바족의 왕, 언제나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격한 성격의 소유자. 나의 어머니는 강가에 사는 우담화(優曇華)의 정령 아프사라스,

물고기처럼 날씬하고 봄날처럼 온화한 아가씨였다.



나는 둘 사이에서 태어난 활동무애(活動無碍)의 원숭이. 아아, 바람의 아이, 신통(神通)의 영웅,

우주의 말썽꾸러기, 영원히 철들지 않는 오래된 자였다.

나는 싸웠다.

잠시 불도를 닦았던 적도 있었다.

나는 다시 싸웠고 다시 수행했다.

신과 짐승과 악귀와 요마들을 만났다.

땅과 하늘의 정령들, 물과 불의 정령들,

지옥의 흡혈귀들, 천상의 신장(神將)들, 인간의 여자를 만났다.

그리고 자식도 낳았다 …… 나는 은각을 쏘아보다가 눈을 감았다.



“그냥 …… 손오공 행자로 죽고 싶네. 빨리 죽여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