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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현세의 정점 4 - 옥황상제와 손오공, 결투는 시작되고…

오늘의 쉼터 2016. 6. 29. 17:41

제14장 현세의 정점 4


- 옥황상제와 손오공, 결투는 시작되고…


나의 욕지거리에도 불구하고 은각은 돌처럼 냉정했다.

그는 차갑고 무섭게 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원숭이, 난 네가 영리한 선택을 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어.

다만 마지막으로 네 놈이 자발적으로 내게 복종할 기회를 주었던 거야.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원숭이 놈, 네 놈이 이 별 저 별 쏘다니며 참견하지 않는 데 없이

온갖 호작질을 하는 동안 나는 피나는 수련으로 도를 닦았다.

네가 나를 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나는 껄껄 웃었다.

 

“나도 한 때는 어느 별의 대통령이 되어 너와 똑 같은 바보로 살았지.

으리으리한 건물에 죽치고 앉아 음모의 끄트머리나 갉작대는 주제에

자신이 정말 대단한 인물인 것처럼 착각하면서.

은각! 너 완전히 바보가 됐군. 하긴 천상을 통치하며 지내야 하는

따분한 나날이 몇 년씩 계속되다 보면 무리도 아니겠지.

선리(仙吏)들이 사무나 보고 있는 이런 건물에서 나, 제천대성을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아?”

 

“바보는 너다, 손오공. 여기가 어딘 줄 아느냐?

여기는 영원의 방, 이승의 시간을 넘어 마법의 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보라. 천상의 힘을.”

 

내가 한 걸음 내달리며 여의봉을 찌르는 것과 은각이 주문을 외며

두 손을 머리 위에서 합장하는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돌연 은각은 사라지고 느닷없이 눈 앞에는 강한 빛을 발하는 거대한 수정(水晶)의 암벽이 출현했다.

그리고 땅바닥이 발 밑에서 둘로 갈라지는 듯한 충격이 왔다.

지진인가? 지진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 함정에 빠져 바닥이 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 같았다.

내 주위를 에워싼 공간이 자석을 TV 스크린에 갖다 대었을 때처럼 비틀리더니

고속 촬영된 풍경이 몽타쥬되어 펼쳐지는 영화처럼 빠르게 뒤바뀌기 시작했다.

 

영소보전 99층의 넓은 접견실에 있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그 대신 주위에는 바위의 암벽, 산맥과 검은 구름, 양치 식물들의 숲, 핑크빛 석양,

폭풍과 질주하는 공기, 부러진 나무, 억수처럼 퍼붓는 비, 자갈밭, 상점과 집들,

칙칙폭폭 하는 기관차, 철벅거리는 붉은 바다, 오렌지 빛 태양, 푸르스름한 사막,

엷은 레몬 빛 하늘 ……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풍경들이 잇달아 나타났다.

이들 모두가 내 눈 앞을 때릴 듯이 확산되었다가 수축되어 사라졌다.

사라졌다가 되돌아왔다.

 

기절초풍한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일까.

뒤를 돌아보자 나와 똑같이 경악한 얼굴로 입을 딱 벌리고 있는 스승과 팔계가 보였다.

그들의 얼굴이 간신히 내 마음에 안정을 주었다.

그제서야 이런 현상을 언젠가 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보다 훨씬 속도가 느렸지만 이렇게 주위의 시공간이 미친 듯이 뒤바뀌던 경험이 ……

그렇다. 이것은 1400년 전 천상을 분탕칠 때 혼돈의 신 영보천존(靈寶天尊)이

나를 제압하기 위해 썼던 태극혼원신공(太極混元神功)이다.

 

태극도(太極刀)와 더불어 천상이 개발한 도술의 최고 경지. 적 앞에 계속 초공간을 열어놓는 기술,

적이 위치한 시공간을 뒤틀어서 혼돈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무서운 기술이었다.

그런데 은각이 펼친 태극혼원신공은 과거 영보천존이 행했던 기술보다

열 배나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태극혼원신공에 말려든 사람은 …… 나는 손을 뻗어 스승과 팔계를 붙들었다.

 

“스승님! 팔계야! 빨리 이 소용돌이치는 시공간 밖으로 나가야 해요.

우리 정신이 분열되어 산산조각 나기 전에! 나에게 염력(念力)을 모아 주세요.”

 

두 사람은 즉각 반응했다.

네 개의 손이 나의 머리를 붙들었다.

나는 두 팔로 두 사람의 허리를 껴안았다.

정신의 맥동(脈動)이 에너지의 파도로 변해 내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여 급속하게 왜곡되어 지나가는 시공간 가운데 하나의 세계를 포착했다.

그리고 그 세계로 마음을 뻗쳤다.

그러자 덤불과 나무가, 개울과 낮은 언덕이, 초원과 산맥의 거대한 세계가 출현했다.

 

“간다!”

 

나는 내 안에서 최대한의 염력을 일으키면서 내가 포착했던

그 하나의 풍경으로 몸과 마음을 내던졌다.

스승도 팔계도 나와 하나가 되어 전이(轉移)했다.

마치 낙하산을 타고 허공에서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발 밑에서 내가 보았던 세계가 빠른 속도로 커지며 자라났다.

그것이 하늘과 땅을 가득 메웠다. 드디어 세계(世界)가 돌아온 것이다.

 

우리 셋은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있는 구릉지대에 쓰러져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높은 산봉우리들이 어두워진 하늘을 배경으로 우중충하게 솟아 있었다.

눈 앞은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초원지대였고 뒤에는 험준한 벼랑을 낀 골짜기가

산봉우리를 향해 뻗어 있었다.

 

“형,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여기는 은각의 마음 속에 있는 세계야. 그 녀석의 정신이 만들어낸 3차원 애스트럴 세계지.”

 

“뭐라고? 그럼, 여기서 어떻게 나가?”

 

“여기 어딘가에 은각이 있을 거야.

그 놈을 찾아서 쓰러뜨려야 해. 그게 유일한 출구야.

우리의 실제 몸은 아직 영소보전 99층에 그대로 있어.

우리의 유체가 은각 속으로 들어와서 싸우고 있단 말야.”

 

이 때 구릉 아래의 저지대로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함성 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