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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현세의 정점 3 - “나보고 근위대장을 맡으라고?”

오늘의 쉼터 2016. 6. 29. 17:34

 제14장 현세의 정점 3


- “나보고 근위대장을 맡으라고?”


은각은 두 손을 옥좌의 팔걸이를 쥐고 검고 깊게 빛나는 눈으로 우리를 쏘아보았다.

다시 입을 열자 목소리가 갑자기 나긋나긋한 음조로 바뀌었다.



“법사는 고매한 수행자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현세(現世)를 추구하는 천상은 초월(超越)을 추구하는 극락과 다릅니다.

은하계는 갈등과 두려움을 뒤로 하고 정의에 의해 움직이는 세상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극락의 길에는 삼사라(윤회)의 슬픔과 니르바나(열반)의 기쁨이 있겠지요.

하지만 천상에는 도전과 응전이, 행위가 있을 뿐입니다.

세상은 다스려져야 하고 선(善)은 건설되어야 합니다.

괴력난신(怪力亂神)은 정벌되고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은 응징되며,

도덕성을 상실한 채 폭력적인 야망을 추구하는 요마들은 철저하게 소탕되어야 합니다.”



“여행 중에 들은 말이오만 ……”



나는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은각의 말을 잘랐다.



“많은 사람들이 초공간의 재앙을 일으켜 지옥의 요마들을 끌어들인 사람이

다름 아닌 옥제라고 생각하고 있었소.

말하자면 요마들로 혼란을 조장해서 저항세력을 위축시키고 무기를 팔아 먹고 있다는 거요.”



“그건 터무니 없는 모략이야!

아마 천상의 무기를 훔쳐간 누군가가 자신의 죄를 얼버무리려고 지어낸 소설이겠지!”



방 안에 팽팽한 긴장감이 일어났다.

은각과 나 사이에는 마치 소리를 내면서 타들어가는 도화선이 연결된 것 같았다.

서로의 마음을 염탐하듯 서로를 응시하던 우리는 이윽고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먼저 눈을 돌린 사람은 은각이었다.

은각은 아까보다도 더 상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요마를 끌어들인 것은 내가 아니라 나의 전임자였소.

나의 전임자는 지옥 은하계에서 자행되는 극심한 인권 유린 행위를 묵인했으며

오히려 현금을 지원해서 이를 방조했지요.

지옥에는 많은 생명체들이 임의 체포, 감금, 강제 노동, 구타, 전기 고문, 물 고문과 불 고문,

사지 절단, 강간 등으로 고통 받고 있었소.

나의 전임자는 그런 지옥을 문명의 또 다른 형식으로 인정함으로써

그 모든 잔학 행위를 승인해주었소.

요마들이 우리 은하계에 침투해 날뛰게 된 것은 그 때부터요.”



은각의 음성에는 사람을 매혹하는 마력이 있었다.

방심한 채로 그 목소리를 듣는 사람은 자신이 무슨 말을 듣는지조차 거의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마음 속으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팔다리에 힘이 빠져갔다.

심지어 나도 그 목소리가 말하는 모든 사실이 합당하고 정직하게 들렸으며

마음 속에서 이런 훌륭한 분을 도와주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손오공 대성, 그리고 저팔계 대장, 나는 여러분을 무척이나 만나고 싶었소.

특히 근년에 들어서는 여러분의 빛나는 재능이 무의미한 일에 소모되지 않도록 지켜 주고 싶었소.

여러분이 천상의 군대에 가한 많은 위해(危害)와 범죄에도 불구하고 말이오.

괜찮소. 이젠 다 지나간 일이오. 여러분은 사면되었소.

은하계에는 초공간의 재앙과 요마들의 악행을 막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소이다.

두 분께서 천상에서 일해주시겠다면 나의 근위군단을 지휘할 강력한 권한을 드리겠소.”



그러자 팔계가 반쯤 취한 듯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폐하, 그러나 우리가 천상에 머물면 우리 스승님은 어떻게 되나이까?

우리 스승님은 모든 생명체들의 패턴을 찾아 극락으로 가셔야 하옵니다.”



팔계의 목소리는 어느새 극히 공손한 어조로 바뀌어 있었다.

그의 말도 서역 극락으로 갈 사람은 스승이며 우리는 별로 관계가 없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부처님과 보살님들을 현세에 출현하게 했던 아바타(化身) 프로그램,

천상과 지옥을 나누고 팔방을 보호했던 로카팔라(八方護世) 프로그램은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었소.

나는 모든 생명체들의 패턴이 수리될 수 있다고 믿지 않지만 걱정하지 마시오.

그래도 극락으로 가시겠다면 존경하는 최종수행자께 길 안내인을 붙여서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겠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불쑥 은각의 말을 끊은 것은 쩌렁쩌렁 울려 퍼진 삼장법사의 불호였다.

나는 혼곤한 잠 속에서 꿈길을 헤매다가 거칠게 흔들려 깨어난 사람처럼 움찔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삼장법사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다시 불호를 염했다.

스승이 이 한 마디에 불어넣은 공력은 너무나 엄청나서 말이 들리는 범위 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순간 은각의 목소리가 만든 환상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혼원마음(混元魔音). 우리가 듣고 있던 은각의 목소리는 강력한 최면과 세뇌의 기능을 가진

우주적 에네르기의 음공(音功)이었고 삼장법사의 불호에 의해 그 최면이 깨어진 것이었다.



감쪽같이 속은 것을 안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나는 귀에서 여의봉을 뽑자 마자 단숨에 돌로 된 테이블을 내리쳐 박살내버렸다.

그리고 여의봉의 끝을 재빨리 은각의 턱 밑으로 겨냥했다.



“이 살가죽만 뺀질한 늙은 거짓말쟁이야! 그 뱀 같은 혓바닥을 잘라버릴 테다.

네 놈 밑에서 근위군단을 지휘하라고? 하, 이 손오공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하지만 나는 네 놈을 너무 잘 알지.

당장 서역으로 가는 초공간의 통로로 안내하지 않으면 마누라 년과 함께 빈대떡을 만들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