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서유기2

제13장 사오정의 의혹 4 - “사오정, 너의 신통술이 수상해”

오늘의 쉼터 2016. 6. 28. 17:52

제13장 사오정의 의혹 4


- “사오정, 너의 신통술이 수상해”


“어쩌고 어째? 이 망할 자식아, 감히 어느 놈이 나를 이긴단 말이냐?”



“아이구, 이렇게 때리시면 바른 대로 말할 수가 없잖아요.

휴우 …… 그 놈의 뿔뚝 성미, 여전하시군요.

제 말씀은 대성께서 옥황상제가 된 은각 대왕과 싸워서 승리하신들 무슨 소용이 있냐,

이겁니다.

은각이 사라지면 더 멍청한 독재자나 고루한 보수주의자가 뒤를 이을 거예요.

대성께서 그런 놈들한테 죽 쒀주실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비장방은 두터운 눈꺼풀에 덮인 작은 눈을 날카롭게 반짝이면서 천상의 정치적 역학 구조를 설명했다. 천상에는 순수한 ‘도사’ 출신의 초능력자들과 ‘요마’ 출신 초능력자들로 양분되는,

두 개의 정치 세력이 존재한다.

만약 요마 출신인 현직 옥황상제 은각이 실각한다면 다시 도사 출신의 누군가가

집권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따지고 보면 대성이나 은각 대왕이나 다 밑바닥부터 고생해서

기어올라온 분들 아닙니까.

뭐 은각으로는 불안해서 못 살겠다는 둥, 천상을 천상답게 백성들이 안심할 수 있는

정치를 해라는 둥, 이 따위 소리를 하는 놈들은 모두 기득권층들이에요.

대성께서 은각 대왕과 사생결단을 내신다면 그런 놈들의 장단에 놀아나는 겁니다요.”



비장방의 천연덕스런 설명에 나는 적잖게 마음이 흔들렸다.

과연 나의 본색은 ‘화과산 수렴동의 원숭이 왕’으로 천상의 기득권층들에게

자주 요마로 취급되곤 했었다.



전통적으로 천상의 지배 계급은 ‘초절자(超絶者)’ 혹은 ‘타오(道)를 추구하는

신앙인’이라 불린 도사(道士)들이다.

도사들은 생산 과잉과 소비 위축으로 경제적 위기에 봉착한 은하계에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대안을 제시하면서 우주의 권력을 잡았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와 그들의 실상은 얼마나 달랐던가.



본래 도를 닦는 이유는 공정하면서도 한쪽으로 편들지 않고,

평이하면서도 사사로움이 없으며, 자연스럽게 흐르되 내세우는 것이 없고,

현실을 따르되 법도를 어기지 않는, 물 같고 바람 같은 자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도를 닦으면 닦을수록 많은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더 철저하게 현실에 얽어 매이고 만다.

도가 높아진 자신과 도에 이르지 못한 타인을 구별하고 수십 년 쌓은 공력을 찰나의 방심에

무너뜨리지 않게 노심초사하면서 점점 더 속물이 되어가는 것이다.

천상에 있을 때 내가 만난 대부분의 도사들 그런 아니꼬운 인간들이었다.



“은각과 싸우지 않으면 어떻게 하란 이야기야? 나는 스승님을 모시고 서역으로 가야 해.”



“아, 말로 하시면 되지요.

말로. 꼭 피 터지게 싸울 필요가 있나요.

소생이 은각 대왕에게로 안내를 합지요.

두 분이 본래 막역한 친구 사이 아니십니까.

술 한 잔 기분 좋게 나누시면서 사정을 얘기하시면

은각 대왕께선 두 말 없이 서역으로 통하는 초공간을 열어주실 겁니다요.”



“닥쳐라!”



꽝 하고 사오정의 채찍이 땅을 쳤다.

순간 열변을 토하던 비장방의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다.

사오정은 채찍을 꼬나 쥐고 두 다리를 다부지게 벌린 채 비장방을 추궁했다.



“이 거짓말쟁이 놈아! 네가 정말 이 황금 숲의 산림지기야?

천상 행정부에서 너의 위치를 정직하게 말해 봐.

우리 일행을 안심시켜서 순순히 은각의 덫으로 데려가려는 네 놈의 흑심에 속을 줄 아느냐?”



사오정은 우리 일행을 돌아보며 엄숙하게 말했다.



“스승님 그리고 큰 형, 이 놈 말을 믿지 마세요.

우리가 서역으로 가서 모든 생명체들의 패턴을 가져오면 무제한으로 열렸던

초공간은 닫히고 재앙은 사라져요.

이 초공간의 재앙을 조장한 것이 은각 대왕인데

우리를 순순히 서역으로 보내줄 것 같습니까?

이 녀석은 우리를 유인하라는 은각의 밀명을 받고 있는 겁니다.”



“아닙니다. 억울합니다. 대성! 이건 너무 심합니다!

소인 어디까지나 대성을 모시던 옛날의 정리로 말씀드렸어요! 정말입니다!”



나는 미심쩍은 눈으로 사오정을 쏘아보았다.

사오정이 이랑진군을 죽일 때부터 생겨난 의혹의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

천상에서 벼슬을 한 나조차도 긴가 민가 하는데 사오정은 어떻게 비장방에 대해

저토록 확신을 가질 수 있나. 나는 강한 불신을 얼굴에 드러내며 고개를 저었다.



“비장방은 내가 아끼던 부하야. 나는 사오정, 네가 더 의심스럽다.”



“큰 형! 무슨 바보 같은 소릴 하는 거야!”



“보석의 섬에서 네가 이랑진군을 죽인 방법은 태극도(太極刀)였어.

태극도는 천상의 도술 가운데서도 가장 도력이 높은 최고의 기밀이야.

네가 정말 내 동생 사오정이야? 내가 알기로 사오정은 천상 근처에 간 적도 없고

그런 도술을 배운 적은 더더욱 없어.”



“그런 어리석은 추리가 어디 있어.

부동명왕의 가루라염공은 우리의 유체(幽體)로 하여금

모든 전생(前生)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무수한 윤회 속에 축척된

우리 진아(眞我)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이야.

형이 내 전생을 다 알아?”



흥분한 사오정은 눈썹을 치켜 뜨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 서슬에 놀란 비장방이 재빨리 나의 등 뒤로 숨으면서 속삭였다.



“손 대성, 살려주세요. 천상의 도사들은 변신술에 능하죠.

수십 년을 같이 살아도 정체를 모른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