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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사오정의 의혹 3 - “꽃의 혼백을 따라가면…

오늘의 쉼터 2016. 6. 28. 17:47

제13장 사오정의 의혹 3


- “꽃의 혼백을 따라가면…


황금의 숲(金林)은 수정처럼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골짜기에 있었다.

시냇물은 황금빛 나뭇잎을 단 천상의 은행나무 숲을 흐르다가 저지대로 들어서면

은빛 아지랑이에 가려 사라졌다.

숲은 시냇물이 다른 산에서 내려온 물줄기와 합쳐지면서 은빛 여울의 강(銀河江)을 이루는

평야 지대로 이어지고 있지만 어디까지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스승님, 정신을 바짝 차리세요.

 언제 천상의 초병(哨兵)들이 공격해올 지 모릅니다.

게다가 이 숲은 경계가 없어요.

경계가 없다는 건 판단의 기준이 되는 모든 틀이 사라진다는 뜻이죠.

시시각각 넓이가 변하기 때문에 숲을 통과하는 데

하루가 걸리기도 하고 1년이 걸리기도 해요.”



나는 옛 기억을 더듬어 말했다. 스승은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숲을 빠져나간단 말이냐?”



“삼장법사님, 그냥 정처 없이 가시면 됩니다.

가다 보면 꽃의 혼백(花魄)이 우리를 안내할 거예요.”



나 대신 스승을 안심시킨 것은 명왕비의 딸 연련이었다.



“잎잎이 춤추는 은행나무 사이, 몸을 뒤트는 풀잎 사이,

혹은 발끝에 채이는 패랭이 꽃 사이 잠깐 잠깐 반짝거리는 15 센티미터 정도의 소녀가 있어요.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옥 같이 매끈한 살결을 가진 소녀예요.

꽃의 혼백은 항상 더 많은 물과 더 많은 빛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니까

그 뒤를 따라가면 숲을 벗어날 수 있어요.”



숲은 갈수록 울창해졌다. 대수롭지 않은 상처라고 생각했는데

이랑진군이 만든 용의 아가리, 구룡신아에 물린 곳이 불같이 화끈거렸다.

날씨는 봄날처럼 온화했지만 팔계도 몸을 덜덜 떨며 걷고 있었다.

어쩐 일인지 사오정만은 똑같이 구룡신아에 물렸으면서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꽃의 혼백들을 어김없이 찾아내었다.

결국 그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고 앞장 서서 일행을 인도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해가 저물었다. 따뜻한 밤바람이 골짜기를 향해 불어왔다.

달이 뜨자 눈 앞의 어둠이 조금 가장자리로 물러나면서 희미한 회색 지대가 펼쳐졌다.

머리 위의 나뭇잎들이 살랑거리는 소리와 은은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팔계가 또 배가 고프다고 칭얼대었기 때문에 우리는 길에서 벗어나

여러 그루의 나무가 함께 엉켜 있는 바위 그늘에 앉았다.



연련이 불빛과 연기를 내지 않는 휴대용 버너에 불을 피웠고 팔계가 물을 끓였다.

오정이 등짐에서 수프 가루를 꺼내 끓인 뒤 빵을 데워 같이 먹었다.

하루 종일 걸은 끝이라 저녁은 매우 맛있었다.

풍이 불어왔고 그다지 춥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냥 그 자리에서 담요를 뒤집어 쓰고 자기로 했다.

청명한 밤하늘에는 별들이 눈부셨다.



“오공아, 천상은 정말 아름답구나.”



천상이 초행길인 삼장법사가 담요를 둘둘 말아 망토처럼 걸치고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요. 은각의 탐욕으로 물들어 있지만 천상 자체는 은하계에서 가장 멋진 곳이지요.

날씨가 따뜻한 편이지만 사실 아직은 천상의 겨울이에요.

봄이라면 정말 금상첨화일텐데. 다른 별에서는 볼 수 없는 갖가지 꽃들이 만발해서

숲과 들과 강이 모두 눈부시게 빛나지요.

제가 옛날 천상에서 근무할 적에 …… ”



나는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말을 끊었다.

등 뒤에서 무슨 소리가 나의 귓바퀴를 스쳐갔기 때문이다.

돌아보자 재빨리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조그마한 불빛 두 개가 보였다.

나는 그 곳을 향해 힘껏 몸을 날렸다.

그리고 어둠에 싸인 그림자 하나를 무릎으로 짓이기며 힘껏 틀어 잡았다.



“왠 놈이냐!”



“아이구구구! 대성(大聖)! 대성! 접니다.

저, 비장방(費長房)이에요.”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니 머리에는 반달 모양의 관을 쓰고 몸에는

그럴싸한 도복을 입고 손에는 용두장을 든 노인 하나가

목덜미를 잡혀 죽는다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비장방?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 .



“어휴, 부하 직원도 까먹으셨습니까?

옛날 대성께서 제천대성부(府)의 주인으로 계실 적에

연회와 접대 담당을 맡았던 영신사(寧神司) 비장방입니다.”



“아, 비장방! 자네가 여기 왠 일이야?”



“왠 일은 무슨 놈의 왠 일입니까.

이 금림이 제 근무처라고요.

숲에 나타나실 때부터 대성이 오신 걸 알고 쭉 감시하고 있었습죠.

아직 위에 보고하지는 않았습니다요.”



잠이 들려던 일행이 모두 깨어났다.

비장방은 내 옆에 앉아서 원망 섞인 넋두리를 늘어놨다.



“대성께서 홧김에 천상을 분탕치고 나가신 후 우리 제천대성부의 선리(仙吏)들은

인사고과에 붉은 줄이 북 그였습죠.

저만 해도 이 날 이 때까지 이런 산림지기로 전전하고 있어요.

그 동안 옥황상제가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 도무지 승진이 되질 않아요.”



“미안해. 비장방. 자네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어.

이 번에 내가 서역에 갔다 오면 은각도 물러나야 할 거야.

내가 새 옥황상제께 잘 얘기해줌세.”



나는 진심으로 미안해서 간곡하게 말했다.

비장방은 두렵고 놀랍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손을 저었다.



“그런 생각일랑 아예 마셔요.

옛날에 모시던 정을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제가 눈감아 드릴 테니 돌아가세요.

 이 숲만 벗어나면 대성은 큰일 납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