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서유기2

제12장 보석의 섬과 꽃피는 여자들 6 - 전생의 나 자신을…

오늘의 쉼터 2016. 6. 28. 16:41

제12장 보석의 섬과 꽃피는 여자들 6


- 전생의 나 자신을…


두르가 여신이 손을 들자 갑자기 하얀 방이 캄캄해지며 모든 빛과 소리가 사라졌다.

만트라를 암송하는 것처럼 여신의 목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들려왔다.

 

“이곳은 부동명왕이 안식하고 있는 보석의 섬. 피조물들이 우글거리고 삶의 영광이 빛나는

마야의 장막 아래 신성한 에너지가 잠자고 있습니다.

자, 가십시오. 삶의 꿈에서 벗어나 번뇌사단(煩惱捨斷)의 힘을 얻으십시오.”

 

여신의 말이 끝나자 먼저 몸이 마비되었다.

그 다음에는 등뼈의 양쪽으로부터 부동명왕의 조각상에서 표현된 것 같은

 환상의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돌아보니 삼장법사도, 팔계도, 오정도 모두 불길에 휩싸여 타오르고 있었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사이에 부드러운 경련이 일어나면서 몸뿐만 아니라

사고(思考)까지 마비되어 갔다.

감각이 사라지고 욕망이 사라지고 생각도 사라졌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빛도 소리도 없는 공간이 매우 밝다고 느끼는 순간

확, 하는 환청과 함께 머리 끝에서 뭔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나의 애스트럴 보디, 즉 유체(幽體)였다.

유체가 된 나는 2차원 같은 편편한 공간을 헤엄쳐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나아가자 높이의 감각이 돌아왔다.

나의 머리 위 드높은 허공에 주위의 공기가 세차게 빨려 들어가는,

찬란한 태양 같은 빛 덩어리가 있었다.

나의 유체는 그 빛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갔다.

꽝 하며 유체마저 부서지는 것 같은 충격과 함께 그 빛의 벽을 뚫는 순간

나는 낯선 시공간 속으로 들어왔다.

 

초원이었다. 푸른 융단을 깐듯한 드넓은 초원이 지평선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오른쪽의 숲에서는 바람에 휘날리는 키 큰 미루나무 잎새들의 속삭임이 은은하게 들려왔다.

말할 수 없이 광대하면서도 지극히 오붓한 모순된 감정이 마음 속에 일어났다.

그리움 같은 느낌도 있었다. 마음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나무 한 그루가 눈 앞에 가까이 다가왔다.

그 나무 밑에는 단추도 끈도 자크도 없는 이상한 옷을 입은 남자가 아름다운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

 

때마침 초원을 스쳐가는 바람이 여자의 앞머리를 휘날렸다.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흐트러진 채 웃는 여자의 모습이 못 견디게 사랑스러웠다.

남자는 나와 똑 같은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고 여자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매우 강기(剛氣) 있어 보이는 남자의 얼굴을 보다가 나는 문득 이것은 나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자 나의 의식은 둘로 분열되었다.

여자를 안고 있는 남자의 의식과 그것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 나의 의식,

두 개의 의식이 내 마음에 동시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돌아오셨군요. 그리운 분.”

 

여자의 얼굴에 엘로이즈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러자 가슴 한 구석에 새겨진 깊은 상실감이 사라지면서 벅찬 환희가 피어났다.

 

“내 사랑, 내가 잠시 넋이 나갔던 것 같아. 여기가 어디지?”

 

“우리 전생(前生)의 전생이에요.

제 4의 천계, 제냉담천(除冷淡天)이에요.

위부세계에서 오는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항상 평온하며 항상 서늘한 천국이에요.”

 

그 말을 듣자 차가운 유리 벽 같은 것이 느껴졌다.

무정한 시간이 만든 적대적인 힘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내 사랑, 나는 여기 머물 수 없소.

나는 어떤 악당이 일으킨 초공간의 재앙으로 당신을 잃었다오.

나는 현생의 당신을 다시 만나러 극락으로 가야 하오.”

 

“가지 마세요.

당신이 살던 우주에서 제가 죽었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이대로 저와 사랑을 나누면서 이 초원과 바람과 하늘과 하나가 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으신가요?

여기서 모든 것들은 조화의 찬가를 부르고 있어요.

굳이 저를 버리고 혼돈의 진흙바닥을 헤맬 필요가 어디 있나요?”

 

“왜냐하면 내가 그것을 이미 겪었기 때문이오.

이 천국은 흘러간 과거일 뿐이오.

나는 현생에서 당신을 비참하게 잃었고 아직도 그 고통을 느끼고 있소.

나는 우주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당신을 앗아간 힘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철저히 때려부술 것이오.

나는 그런 성격이오. 손오공이란 말이오. 단 5분만이라도 나는 손오공으로 살고 싶소.”

 

말을 마치자 지평선 끝으로부터 오렌지 빛이 섞인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영혼을 공중으로 날려 보내 다음 전생(轉生)의 장소로 데려가는 무상(無常)의 바람이었다.

나의 유체는 다시 떠올랐다가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환한 빛의 세계로부터 점점 더 빛이 약한 세계로 빨려드는 듯한 공포를 느끼며 떨어져갔다.

6개의 세계를 윤회 전생하며 무수한 카르마들이 나를 가로막았다.

천계, 인간계, 수라계(修羅界), 축생계(畜生界), 아귀계(餓鬼界), 지옥계(地獄界).

그러나 사람의 눈을 뽑고 살을 발라 뼈를 추리는 지옥에서도 나는

내 진아(眞我)의 부르짖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손오공이다. 단 5분만이라도 진짜 손오공으로 살고 싶다.”

 

모든 윤회 전생이 고통이었다.

여섯 세계의 카르마들은 모두 처절하게 아픈 지옥의 카르마와 연결되어 있었다.

고통을 참지 못해 비명을 지르면서도 나는 끝없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나의 유체는 호흡하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육체 속에 깃들었다.

보석의 섬에 있는 두르가 여신의 방으로 돌아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