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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보석의 섬과 꽃피는 여자들 5 - “은각을 죽여 남편…

오늘의 쉼터 2016. 6. 28. 16:35

제12장 보석의 섬과 꽃피는 여자들 5


- “은각을 죽여 남편…


돌씨 부인의 눈동자 안에서 혀를 낼름거리는 촛불의 불꽃이 춤추고 있었다.

부인은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시간 속에서 얻은 생명은 시간과 더불어 낡아가요.

삶이란 결코 숭고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죽음과 환생의 회전 운동이에요.

그렇지만 아무리 많은 죄악과 결점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할지라도 모든 생명은

우주 에너지의 유일무이한 표현이에요.”

 

돌씨 부인은 눈빛을 빛내며 우리를 하나 하나 바라보았다.

 

“여러분의 나이는 1400살에서 1500살에 이릅니다.

여러분 같은 존재들을 은하계 사람들은 <오래된 자들>이라고 부르지요.

우주 에너지의 오래된 표현들이라고 할까요.

어떤 오래된 자는 옥황상제가 되어 자기 생명의 본질을 전 우주에 투사하려 하고 있어요.”

 

나는 킁킁 콧김을 내뿜으며 말을 받았다.

 

“예, 은각 대왕이 옥황상제가 되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그 촌놈이 그렇게 출세한 걸 보니 은하계에 인재가 고갈되었군요.”

 

그러자 신선한 빵가루를 입힌 파슬리와 송로버섯을 열심히 먹고 있던 팔계가 불쑥 끼어들었다.

 

“예전엔 무서운 놈들이 우글거렸죠.

통천하의 영감대왕, 금두동의 독각시대왕, 보상국의 규목랑 모두 쟁쟁한 마법사들이었어요.

사타령의 청사자, 백상, 금시조 세 놈들은 또 어땠고요.

청사자의 뱃속에 삼켜져 고생하고 희한한 병에 빨려 들어가 죽을 뻔 하기도 했어요.

정말 악마 같은 놈들이었어요.”

 

나는 디저트로 나온 샤베트를 숟가락으로 떠먹다가 부아가 나서 소리쳤다.

 

“넌 좀 가만히 있어. 이 오라질 돼지야! 사타령에서 고생한 것이 너였냐? 나였지.

네 놈은 짐을 나누어서 해산하자고 떠벌렸잖아.

그 때 <오정아, 넌 다시 유사하로 가서 사람이나 잡아 먹고 살아라.

나는 고로 행성의 여편네한테로 가겠다.

백마는 팔아서 스승의 관(棺) 값으로나 쓰자>고 했던 놈이 누구야?”

 

“형은 참 할 일도 없어. 왜 그런 쓸데없는 일까지 다 기억하고 그래. 대충 그러려니 하지.”

 

우리가 옥신각신하자 돌씨 부인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생명이란 시간 속에서 물질로 변한 정보예요.

그것은 전적으로 우연과 자유에 맡겨져 있죠.

우리는 우연하게 에너지와 만난 DNA정보이고

요마는 다른 생명체들의 체계 속으로 끼어든 스펨 메일이죠.

오래 살아서 비범한 에너지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자가

모든 생명을 통제하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은각대왕을 말씀하는 겁니까?”

 

“그래요. 그 폭군은 우주에 암흑을 가져왔어요.

그 자는 요마들의 출현을 구실로 이제까지 느슨하게 교류하던 천상 연방을

일사불란하게 조직하고, 무기들을 전파하고, 도사들을 모두 사업가로 바꿔놓았어요.

나는 초공간의 재앙도 그 자가 꾸며낸 일이라고 믿고 있어요.

그의 기도(企圖)는 우연 속에 성립해서 시간과 더불어 소멸해가는 생명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어요.”

 

“저희더러 어쩌란 말입니까?”

 

나는 시무룩하게 되물었다.

은각 이야기를 듣자 새삼스럽게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 나이를 먹도록 나는 뭘 한 것일까.

은각처럼 은하계를 호령하는 것도 아니고 한 행성을 가꾸며 등 따시게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야망, 그리움, 후회 같은 것들이 가슴에 가득 괴어왔다.

돌씨 부인은 나의 감상은 아랑곳 없이 본론을 꺼내었다.

 

“은각을 없애주세요.

나의 남편 부동명왕은 은각의 손에 죽음을 당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을 더욱 강력한 마법사로 만들어 남편의 원한을 갚고 싶습니다.”

 

돌씨 부인의 매끈한 얼굴에는 결연한 의지가 넘치고 있었다.

 

“여러분은 오래된 자들이지만 은각과 싸우기에는 공력이 부족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더 높은 경지에 도전할 용기는 없습니까?”

 

“있습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언제든지.”

 

나는 숟가락을 식탁에 던지며 힘을 모아 말했다.

팔계와 오정도 동의했지만 스승은 눈을 내리깔고 입술을 약간 오므린 채 고개를 저었다.

 

“살생을 원하고 계신다면 거절하겠습니다.

우리는 출가자입니다.

출가자가 그런 식으로 세상에 개입하는 것은 순리를 거슬리는 짓입니다.”

 

침묵의 정적이 식탁을 지배했다.

돌씨 부인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좋아요. 최후의 선택은 여러분들에게 맡기겠어요. 나를 따라오세요.”

 

부인은 우리를 저택 1층으로 안내했다.

앞장선 돌씨 부인의 그림자가 벽 위에 길게 늘어졌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아무 것도 없는 크고 하얀 방이었다.

사방은 자연석을 깎아 만든 하얀 돌벽이었고 바닥에는 반투명의 대리석이 깔려 있었다.

대리석에는 이런 팻말이 붙어 있었다.

 

<부동명왕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 명왕의 아내에게 죽으리라.>

 

우리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팻말 옆 대리석 바닥에 한 남자가 누워 있었다.

그것은 칼과 채찍을 쥐고 형형하게 외눈을 빛내고 있는 부동명왕의 시체였다.

 

“여러분은 일생일대의 시험을 치르고 힘을 얻어야 합니다.”

 

“시험이라고요?”

 

“생의 환각, 즉 마야를 다시 체험하면서 가장 무서운 적인 여러분 자신과 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어둠을 제압한다면 공력이 강화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내면의 눈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면 예지력이 배가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져서 쓰러진다면 여러분은 여기서 죽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