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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보석의 섬과 꽃피는 여자들 4 - 이 황홀한 여인이…

오늘의 쉼터 2016. 6. 28. 16:28

제12장 보석의 섬과 꽃피는 여자들 4


- 이 황홀한 여인이…


오정의 말에 스승은 옴마니반메훔의 진언(眞言)을 외웠다.

나는 깜작 놀라서 물었다.

 

“명왕(明王)이라면 불문(佛門)에서 여래, 보살 다음으로 모시는 신이잖아.

일체의 마귀들을 항복시키는. 그런데 그런 신의 배우자가 왜 이런 곳에 있지?”

 

“정확한 사정은 저도 몰라.

하지만 힌두교도들이 시바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부동명왕은 본래 불보살과는 사는 곳이 달랐어.

부처님의 가르침이 우주에 크게 떨쳐서 자비(慈悲)의 배를 띄우고 응보(應報)의 노를 휘저어

고해(苦海)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던 시절에는 부동명왕도 부처님을 잘 받들었지.

그러나 초공간의 재앙이 일어나 요마가 창궐한 근래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풍문이야.”

 

그러자 비 맞는 두꺼비처럼 넋을 잃고 그저 두 눈을 디룩거리고 있던 팔계가 빈정거렸다.

 

“야, 사오정! 소설 쓰지 마. 저렇게 젊고 예쁜 여자가 부동명왕의 마누라라고? 헛, 참, 말도 안돼 …… ”

 

“둘째 형은 눈을 어디 달고 다니는 거야. 저 방의 본존상(本尊像)을 좀 봐!”

 

그 소리에 우리 일행의 시선은 일제히 방안을 향했다.

그러고 보니 남녀의 애욕이 표현된 무수한 부조들 안쪽에 거대한 본존상이 있었다.

한 손에는 날이 시퍼런 혜도(慧刀)를, 다른 손엔 기다란 채찍을 거머쥐고 형형한 외눈을 번득이며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온 몸의 근육을 터질 듯이 긴장하고 있는 신상(神像)이었다. 정

수리의 머리 다발은 왼쪽 어깨에 늘어져 있고 몸 주위는 이글거리는 불꽃에 싸여 있었다.

 

아찰라나타, 부동명왕이었다. 오정은 콧김을 킁킁 내쉬며 말을 이었다.

 

“형들은 진짜 사람이 저렇게 예쁠 수 있다고 생각해?”

 

우리의 실랑이는 갑자기 그쳤다.

돌씨 부인이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구리 보온기가 든 서어빙 카트를 끄는 시녀들과 함께

돌아왔기 때문이다.

식탁 위는 아이리스, 난초, 튤립 등으로 장식되고 불꽃이 너울거리는 촛대가 놓였다.

저택 안의 가까운 곳에서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왔다.

이윽고 신선한 채소들과 과일로 만든 샐러드가 놓이면서 식사가 시작되었다.

고기는 전혀 없었다.

 

가슴이 깊게 패인 크림색 실크 드레스를 입은 돌씨 부인. 아름다운 꽃들.

촛불의 불빛을 사방으로 반사하는 커다란 크리스털 잔들.

손잡이가 따뜻하게 데워진 칼과 포크. 식탁 위의 모든 것이 매혹적이었다.

 

“식탁을 미국식으로 꾸며봤어요. 마음에 드시나요,

삼장법사님? 속가에서 당신은 미국인이었지요?”

 

돌씨 부인의 말에 우리는 당연하게 숨이 멎었다.

때 맞춰 피아노 음악도 그치고 식탁에는 갑자기 정적이 감돌았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왜 제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시죠?”

 

돌씨 부인은 앵두 같은 입술로 웃음을 머금었다.

순간 봄빛을 내뿜는 요염한 얼굴 위에 샛별처럼 눈동자가 반짝이고

붉디 붉은 입술이 춤추듯 움직였다.

옆에서 보고 있는 나까지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가슴 속에서 색정이 뜀박질했다.

경국지색(傾國之色), 나라를 기울게 할 만한 미모라는 비유도 돌씨 부인에 비하면

하찮은 표현이었다.

스승이 양미간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

 

“다, 당신은 정말 두르가 여신이군요.”

 

우리는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손발을 떨었다.

지구에 인간이 나타나기 전인 아득한 옛날.

우주 정복을 꿈꾸던 마신(魔神) 마히사를 죽인 무적(無敵)의 아름다운 여전사,

두르가. 열여덟 개의 팔과 네 쌍의 눈동자를 가지고 삼지창, 칼, 원반, 투창, 활, 포승, 번개, 철퇴 등

온갖 무기를 휘두르며 마히사의 마족 부대를 혼자서 전멸시켰다는 대살육전의 주인공이었다.

 

“우리가 듣기에 당신은 …… 전설의 당신은 팔이 …… ”

 

“아, 열여덟 개의 팔 말인가요? 그걸 지금 다 꺼낼 필요가 있나요?”

 

돌씨 부인은 다시 부드럽게 웃었고 우리는 매료되고 말았다.

그녀는 의자에 더 깊게 앉으며 더할 수 없이 편안한 표정으로 두 다리를 뻗었다.

 

“그런 것들이 아주 재미있게 느껴지던 시기가 있었죠.

한꺼번에 열여덟 개의 팔을 움직인다든지, 걷지 않고 날아다닌다든지,

정신력만으로 물건을 움직인다든지 하는 일에 재미를 붙이곤 했죠.

하지만 그런 것들은 결국 조잡한 것이었어요.

인간의 몸과 그 몸을 움직이는 인간의 동작이야말로 아름답지요.

인간적인 육체의 움직임에는 순리(順理)가 있고 순수(純粹)가 있고 우미(優美)가 있어요.

그렇지 않은가요?”

 

그 말에 긴장했던 우리의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가령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음식을 입으로 가져올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샐러드를 먹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른손으로 포크를 써서 먹는 것 아니겠어요?”

 

그 말에 나는 유쾌해져서 노골적으로 웃고 말았다.

도무지 그녀의 존재감에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한없이 강한,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강한 힘을 가진 여자가 저렇게 조용하게 웃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진정으로 압도되는 기분이 들었다.

삼장법사는 돌씨 부인을 향해 경건한 태도로 합장했다.

 

“저희에게 무슨 가르침을 베풀어주시려고 하시는지요?”

 

“여기서 여러분들을 기다린 것은 나의 힘을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어서예요.

몇 가지 이유로 여러분들은 나를 끌어당기는 데가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