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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보석의 섬과 꽃피는 여자들 3 - 뇌쇄적인 몸이 뭔가…

오늘의 쉼터 2016. 6. 28. 16:21

제12장 보석의 섬과 꽃피는 여자들 3


- 뇌쇄적인 몸이 뭔가…


저택이 보이는 동쪽 해안에 십여 명의 젊은 여자들이 서 있었다.

팔계와 똑같이 나도 번개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좀처럼 느낀 적이 없는 에로틱한 감정이 내 속에서 일었다.

 

인간 종족의 여자들. 비키니를 입은 여자도 있고 파란 바다 빛깔의 랩 스커트를 걸친 여자도 있었다.

여자들은 수영을 하거나 어깨를 드러낸 형형색색의 원피스를 입고 진주빛 피부를 선탠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남자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여자들은 해풍에 검은 머리를 부드럽게 흩날리며 육감적인 루비 빛 입술과 하얀 치아를 반짝이면서

웃고 있었다.

 

여자들의 머리 위에는 낭랑하고 교태로운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여자들의 발 아래에는

신기루 같은 잔물결이 부서졌다.

 

오정이 키를 잡고 해안의 조그만한 부두에 배를 대었다.

부두 돌난간에는 연꽃과 코끼리의 조각이 새겨져 있어 어렴풋하게나마 종교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부두에 발을 딛자 여자들이 배 앞으로 걸어왔다.

여자들 사이에서 몸에 착 달라붙는 붉은 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나와 아름다운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시죠? 어떻게 첩첩의 빙원을 뚫고 이 섬까지 오셨나요?”

 

여자의 자태는 너무 관능적으로 아름다워서 신비롭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나이는 어떻게 보면 20대 초반 같았고 또 달리 보면 40대 후반 같았다.

통통하고 발그레한 뺨에 짧고 컬이 굼실대는 머리카락, 풍만한 둔부와 육감적인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새침한 입매와 진지하면서도 대담한 눈길에는 날카로운 지성이 담겨 있었다.

 

나는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팔계는 완전히 넋이 나갔고 스승까지도 양미간에 두 손을 합장하고 경을 외고 있었다.

붉은 원피스의 여자가 가진 뇌살적인 염기(艶氣)는 같은 여성이며 수행에 수행을 거듭한

스승조차도 괴롭히고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것은 사오정이었다.

옛날부터 스님의 풍모가 있다 하여 사화상(沙和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는 있었지만

지금은 범속(凡俗)을 초월한 품격 같은 것이 느껴졌다.

언제나처럼 맑고 덤덤한 사오정의 얼굴을 보자

오정이 그동안 대체 어디서 저런 수행을 쌓았는지 궁금해졌다.

이윽고 스승이 여자에게 대답했다.

 

“소승은 동방 은하계의 지구로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하러 서방 은하계의 극락으로 가는

수도승입니다.

이 세 사람은 소승의 제자들이지요.

여행 중에 이 지역의 빙해(氷海)를 헤매다가 지쳐서 이 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이 섬의 산봉우리를 향해 가야 합니다.”

 

“여기는 보석의 섬이 맞습니다만 산봉우리까지는 그렇게 서둘러 가실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곧 날이 저물 텐데 오늘 밤은 저희 집에 묵어가시지요.

저는 이 섬의 주인 돌(突)부인이고 이 아이들은 모두 내 동생들입니다.”

 

스승은 거듭 사양했으나 팔계가 손사래를 치며 날뛰었다.

 

“스승님, 오래 파도에 시달리셨는데 무리하시면 안됩니다.

사양 말고 어서 들어가시지요.

저는 정말 지쳐서 더 못 가겠어요.”

 

스승은 팔계에게 끌리다시피 저택으로 올라갔다.

돌계단을 올라가 정원에 이르자 저택의 거대한 주랑 앞에 눈처럼 흰 식탁보를 씌운 테이블이 있고

그 위에 다섯 사람 분의 식기가 놓여 있었다.

마치 우리가 오기를 미리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듯 했다.

주위에는 붓꽃 향기와 흡사한 이름 모를 꽃들의 향긋한 내음이 바로 아래 자갈이 깔린 길

끝에서부터 테이블까지 번져오고 있었다.

 

테이블에 앉은 우리는 주랑 안쪽 좁은 복도 너머에 커다란 원형의 방이 있음을 보았다.

방안에는 생명력이 넘치는 자태를 지닌 수많은 남녀의 존상(尊像)들이 희미하게 스며드는

햇빛에 반사되고 있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방안을 훔쳐보던 우리는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길이 1미터 정도의 돌을 연이어 조각한 고부조(高浮彫)의 조각들은 인간적인 생명력의 극치를

신격화한 것이었다.

즉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욕정의 파도가 물결치는 실루엣처럼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우미한 곡선들을 이루고 있었다.

성교 직전에 서로를 유혹하는 남자와 여자의 표정,

애욕의 열기가 그대로 전해질 것 처럼 적나라한 성교,

그리고 성교 직후의 사랑스런 표정들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이 때 여자들이 차와 음식을 가지고 왔다.

 

“부인 …… 이 집은 …… ”

 

삼장법사가 말을 하려 하자 돌씨 부인은 왼손을 들었다.

말을 하지 말고 가만 있으라는 표시였다.

이 요염한 여자에게는 관록이랄까,

사랑스러우면서도 결연한 태도 같은 것이 있었다.

그녀는 은제 찻주전자와 다기, 설탕 그릇, 그리고 먹음직스러운 빵과 케익,

과자들을 권하고 다시 안으로 사라졌다.

순간 여자의 뒷통수에서 머리카락 사이로 사람의 눈 같은 것이 번쩍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사오정도 같은 것을 보았다.

오정은 갑자기 손발을 떨면서 낯빛이 창백하게 질렸다.

 

“스승님, 큰일 났습니다. 저 여자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 아니라니?”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신명(神明)입니다.

저 여자가 자신을 돌씨라고 했지요? 저 여자의 본명은 두르가.

부동명왕(不動明王)의 아내라고 전해지는 금강무아불모(金剛無我佛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