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서유기2

제12장 보석의 섬과 꽃피는 여자들 2 - 그림같은 대저택에…

오늘의 쉼터 2016. 6. 28. 16:13

제12장 보석의 섬과 꽃피는 여자들 2


- 그림같은 대저택에…


빈두 행성의 바다는 차고 맑았다.

우리는 차가운 겨울비와 눈보라 등 여러 가지 날씨를 겪으면서 남쪽으로 닷새간 항해했다.

기온은 점점 내려가 옷을 닥치는 대로 껴입어야 했다.

이윽고 배는 빈두 행성의 남극에 가까운 위도에 도착했다.

 

수평선을 따라 시야가 미치는 모든 곳에 두꺼운 얼음이 덮여 있었다.

커다란 얼음 덩어리들이 암초처럼 떠다니고 그 뒤는 눈가루가 날리는 하얀 빙원(氷原)이었다.

얼음 덩어리들을 피해 배를 남쪽으로 몰아가자 테이블 모양의 낭떠러지를 형성한

넓은 빙하탁(氷河卓)이 앞길을 가로막았다.

 

나는 근두운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보았다.

빙하탁은 남쪽으로 4킬로미터 가량 뻗어 있었다.

그 너머로 비교적 잔잔한 수평선이 보였지만 그 끝은 다시 첩첩이 쌓인 빙산이었다.

나는 배로 돌아와 오정을 채근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해? 우리가 찾는 초공간의 구멍이 어느 방향에 있냐고?”

 

“그걸 …… 잘 모르겠어.”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오정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초공간의 구멍은 마니드비파, 즉 <보석의 섬>이라고 부르는 섬 한 가운데 있어.

위도와 경도를 보면 섬은 이 근처인데 …… 그 사이 이 별의 기후가 변했나 봐. 정말 모르겠는 걸.”

 

“그런 멍청한 대답이 어디 있어. 자세한 지도를 클릭해 봐.”

 

“자세한 지도 없어. 이 별은 말이지, 자료가 거의 없어.

방문한 사람들은 있지만 다시 나온 사람들이 없대.”

 

“오정이 말을 들으니 어째 으스스하다.

날씨도 지랄 같고. 다른 길로 가보자. 예감이 안 좋아.”

 

감기에 걸린 팔계가 누런 콧물을 훌쩍거리며 말했다.

그 때 뱃머리에서 풍덩 하는 소리가 들렸다.

살얼음 낀 갑판을 걷던 스승님이 미끄러져서 바다에 빠져버린 것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곧바로 심장마비를 일으켜 다시는 물 위로 떠오르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절대절명의 순간에 스승의 몸 속에 숨어 있던 게체들이 신속하게 나와 주인을 보호했다.

스승은 우리가 건져 올릴 때까지 게체들이 만든 따뜻한 불의 장막으로 감싸여 있었다.

나는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바다가 게체들의 불꽃에 녹는 것을 보고 얼른 무릎을 쳤다.

 

“좋은 생각이 났다. 빙원을 녹여서 섬으로 가는 입구를 찾아보자.”

 

“엥, 뭘로? 뭐로 이 엄청난 얼음들을 녹여?”

 

“파초선이 있잖아.”

 

금각대왕이 쓰던 파초선은 본래 호세팔방천(護世八方天)의 하나인 동남방의 수호신

화광천(火光天)의 무기였다.

주문을 외우면서 파초선의 손잡이를 쥐고 흔들면 눈이 멀 정도로 밝고 뜨거운 삼매진화가

솟구쳐서 진로에 있는 모든 물질을 태우고 에너지를 소산시켜버린다.

 

나는 압축캡슐을 열어 파초선을 꺼내 들고 뱃머리 끝으로 갔다.

눈 앞에는 끝없이 펼쳐진 빙원과 병풍처럼 둘러친 빙하탁, 주름살처럼 첩첩이 쌓인

빙산들이 보일 뿐이었다.

나는 발화(發火) 주문을 외우면서 파초선을 휘둘렀다.

그러자 눈이 멀 듯한 섬광이 무시무시한 원추형의 불길을 만들며 발사되었다.

불길은 그것에 닿은 모든 얼음덩어리를 소멸시켰고 갑자기 생긴 공백 속으로 콰르릉 하며

빙편(氷片)들이 떨어졌다.

빙원 한 가운데로 거대한 운하가 나타나서 삼매진화에 달아오른 바닷물이 모락모락

수증기를 피워 올렸다.

우리는 바람을 안고 그 운하를 통과했다.

한참을 나아가자 얼음 한 조각 없는 탁 트인 바다가 나왔다.

우리는 갑자기 어리둥절해졌다.

날씨가 거짓말처럼 온화해졌던 것이다.

 

머리 위에서부터 이상 징후가 감지되었다.

남쪽에서부터 수많은 새들이 날아왔는데 그것은 아열대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깃털의 무리들이었다.

싱그러운 미풍이 불어왔고 하늘은 청명했으며 남쪽 수평선에는

엷은 안개가 끼었다가 없어졌다가 했다.

그러다가 돛대 위에서 팔계가 내지르는 기쁨의 소리가 들려왔다.

 

“육지다! 우현 뱃머리 쪽에 육지가 보인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키를 돌렸다.

북쪽과 동쪽에서 미풍이 불어와서 우리는 곧 해변으로 다가가게 되었다.

순간 우리는 섬의 아름다움에 충격받았다.

 

섬을 뒤덮은 소나무 숲에는 생명의 기운이 넘치고 있었다.

매미 소리! 빙산으로 둘러싸인 내해(內海)의 섬에서 놀랍게도 매미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날개를 가진 이름 없는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백사장 주변의 바다는 진주빛 터키석처럼 빛났고 멀리 보이는 산들은 잿빛에 가까운

청색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놀라움은 시작에 불과했다.

잘려나간 산등성이처럼 생긴 곶을 돌자 섬의 동쪽 면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궁전! 궁전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어마어마한 대저택이 있었다.

한낮의 햇살을 받아 눈부실 정도로 하얗게 빛나는 저택은 화려하면서도 깔끔했다.

높은 기둥들이 만드는 주랑이 있고 주랑 위에 테라스가 있었으며 프랑스 풍의

여닫이 창문이 있는 무수한 방들이 있었다.

작은 관목들과 꽃들이 들어찬 저택 주변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 때 돛대 위에서 갑판으로 쿵 하며 팔계가 떨어졌다.

팔계는 코피가 터지고 이마에 멍이 든 얼굴로 부들부들 떨면서 대저택의 한 곳을 가리켰다.

 

“너, 너, 너무 예쁘다 …… 저 여자들 …… 저게 사람이야? 선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