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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보석의 섬과 꽃피는 여자들 1 - 빈두행성으로…

오늘의 쉼터 2016. 6. 28. 16:04

제12장 보석의 섬과 꽃피는 여자들 1


- 빈두행성으로…


나는 불길이 침범하지 않은 깨끗한 땅에 죽은 금각대왕을 파묻었다.

파초선과 호리병, 칠성검과 황금승, 사만대 등을 챙겨 압축캡슐에 간직한 뒤

나는 스승을, 팔계는 오정을 업고 가까운 도시로 갔다.

지구의 20세기 중엽과 닮은 도시의 번화가에 <손님의 정체를 묻지 않는 휴식처>라는

긴 이름의 호텔이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 투숙했다.

 

스승과 오정이 완쾌되기를 기다리면서 팔계와 나는 1주일 동안 호텔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이상하게 마음이 착잡해서 스승의 눈을 피해 술을 마셔야 했다.

신문과 라디오는 금각대왕의 실종을 알리는 기사로 떠들썩했다.

어딘가에서는 식인 종족들이 습격하고, 또 어딘가에서는 거대한 사룡이 출현했다는

보도가 사흘에 한 번 꼴로 나타났다.

그 때마다 용감한 마법사들이 달려갔고 또 희생되었다.

 

나는 금각대왕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숨을 몰아 쉬면서 나에게 파드마 행성을 부탁했었다.

감당하기 힘든 괴물들이 늘어가는 이 행성은 장차 어떻게 될까.

거의 모든 별에서 요마들의 재앙이 벌어지는 이 우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나는 죽과 채소 무침으로 식사를 하고 있는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요마들은 많고 놈들의 힘은 갈수록 굉장하군요.

그런데 이상해요.

옛날에는 이럴 때 여러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와서 우리를 도와주셨잖아요.

급할 때는 천신이든 지살(地煞)이든 청하는 대로 달려와서 보호해주었는데

지금은 우주가 왜 이리 적막한가요?”

 

“아바타(化身) 프로그램이 정지되어서 그렇단다.

부처님과 보살님들께서는 이제까지 서방정토에 계시면서 아바타,

즉 인간이나 동물의 형상을 띤 화신으로 우주에 나타나셨지.

그러나 초공간의 재앙이 일어나면서 모든 존재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아바타 데이터가 사라져버렸어.”

 

스승은 한숨을 쉬다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나를 쏘아보았다.

 

“오공아, 우리가 보는 모든 세상은 마야, 즉 환화(幻化)란다.

생의 끝없는 윤회(輪廻) 속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환상이지.

모든 존재들은 또 그 속에 나타나는 허깨비이고 환영이고 신기루야.”

 

“세상은 인터넷의 웹 페이지이고 우리는 그 위에 만화의 등장인물처럼 잠깐 뜨는 아바타이군요.

우리의 집착하는 모든 것들이 구름처럼 안개처럼 그렇게 덧없고 속절없는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오정이 끼어들었다.

부러졌던 뼈들이 거의 아물어서 오정의 목소리는 원기가 넘쳤다.

 

“비유하자면 그렇다. 하지만 오정아, 그 덧없고 속절없는 기억들이 중요하단다.

이 세상이 아바타 프로그램으로 극락에 표상되지 않으면 부처님도 보살님도

이 세상으로 들어올 수가 없으니까.

우리가 서역에 가는 이유도 그 때문이야.”

 

“우리는 <모든 생명체들의 패턴>을 찾아 극락에 가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그렇지. 하지만 <모든 생명체들의 패턴>이라는

프로그램은 극락에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다.

그것은 우리가 먼 길을 고생하면서 배운 이 세상 여러 존재들에 대한

기억이 극락의 원리에 따라 재구성된 것이야.

<모든 생명체들의 패턴>은 부처님과 보살님 들의 화신(化身)을 나타나게 하는

아바타 프로그램,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에 올바른 질서를 부여하는 5원소 프로그램,

우주의 여덟 방면에 요마들을 막을 호세팔방천(護世八方天)을 배치하는

로카팔라 프로그램 등으로 이루어지지.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덧없는 세상에서 겪은 고행의 기억 없이는 불가능하단다.”

 

1주일이 지나자 오정과 스승의 부상은 모두 나았고 화상을 입었던 곳도 말끔해졌다.

우리는 지구의 1937년형 캐딜락 12기통을 닮은 검은 자동차를 하나 사서 다시 길을 떠났다.

 

3주에 걸친 여행은 고달팠다.

마실 물도 없는 황량한 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도중에 거대한 사룡이 2번 습격해왔고 코끼리의 10배쯤 되는 검은 색의 괴수도 달려들었다.

우리는 그 때마다 금각 대왕이 물려준 무기들을 이용해서 놈들을 제압했다.

마침내 우리는 가장 넓은 대륙을 횡단해서 우리가 목적하는 항구에 도착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우주의 물방울’이라는 뜻을 가진 빈두 행성.

파드마 행성의 대양 한 가운데로 나간 다음 바다의 초공간을 통과해야 했다.

우리는 180톤 짜리 요트를 하나 구입했다.

배의 이름은 ‘황금의 눈을 가진 자’를 뜻하는 히란약샤 호였다.

뱃머리가 날씬하게 빠진 그 배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기에 별로 미덥지 못했다.

애당초 우리는 300톤이나 350톤 정도의 여객선을 찾지만 초공간의 재앙이 있은 뒤

 해상 무역이 거의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는 미풍을 즐기면서 사흘을 항해한 뒤 무서운 폭풍우를 만났다.

막 아침 노을이 떠오르는 동틀 무렵이었다.

우리는 최대한 정연하게 돛을 접어 묶고 이물을 바람 부는 쪽으로 돌린 뒤 배를 세웠다.

천지를 진동하는 바람 소리와 파도소리가 이어졌다.

폭풍은 모두에게 똥물까지 게워 올리는 뱃멀미를 선사한 뒤 겨우 멎었다.

나침반과 컴퍼스를 들고 한참 해도와 씨름하고서 우리는 간신히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초공간의 구멍을 통과하자 빙산이 떠다니는 차가운 바다가 보였다.

빈두 행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