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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금각대왕 은각대왕 8 - 최후의 결투를 벌이는…

오늘의 쉼터 2016. 6. 27. 17:10

제11장 금각대왕 은각대왕 8


- 최후의 결투를 벌이는…


불의 폭풍, 불의 격류였다.

천지는 온통 시뻘겋게 쏟아지고 뜨겁게 치솟고 황황히 소용돌이치는 불의 바다였다.

물로도 끌 수 없고 흙으로도 덮을 수 없는 삼매진화(三昧眞火)의 불. 괴인들은

두 손을 얼굴 앞에 교차시키고 피화(避火)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그들의 마법이 만든 보이지 않는 방화벽은 거센 불길을 이기지 못했고

괴인들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불덩어리가 되어갔다.

 

달려도 달려도 불길 속이었다.

근두운을 목청껏 불렀으나 전자기의 구름 수증기로 만들어진 근두운은

이렇게 무서운 불길 속으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

나의 피화 마법이 만든 방화차폐막은 점점 위축되어 등과 머리가 불길에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속아서 마신 독극물 때문에 나는 평상시 힘의 절반도 발휘할 수 없었다.

 

불길과 연기로 숨이 막혀왔고 눈 앞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달릴 수 없다는 절망이 찾아왔다.

그런데 여기서 죽는구나 싶은 순간 팔계가 나를 부축했다.

팔계는 내게서 오정을 받아 오른팔에 끼고 왼팔로 나를 붙들면서 최후의 구간을 내달렸다.

우리 넷은 소사(燒死) 일보 직전에서 간신히 불바다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리는 온 몸이 그을음투성이가 된 상태로 정신 없이 연기가 미치지 않는 저지대를 향해 굴러 갔다.

 

“헉, 헉, 천지가 다 타버리겠네. 이 팔계 같은 건 통돼지 구이가 되겠어.

형,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이 놈의 별은 처음부터 재수없었다고.

그러길래 금각인지 별각인지 믿으면 안된다고 했잖아!”

 

팔계의 비난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오정의 몸도 심하게 그을었는데 스승은 천만다행으로 화상(火傷)을 면하고 있었다.

게체들이 재빨리 스승의 몸을 감싸서 불길로부터 보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치솟는 불길 위로 구름을 탄 금각대왕이 나타났다.

 

“거기 원숭이 놈아! 천하의 제천대성이 불이 무서워 꽁무니를 뺀단 말이냐?

비겁한 놈! 이왕 이렇게 된 것 사내답게 자웅을 겨뤄보자!”

 

금각대왕은 의도적으로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저, 뒈지지 못한 마왕 놈! 화가 머리 끝까지 났으나 한 마디라도 발설하면

그의 호리병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것을 생각하고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나는 근두운에 뛰어올라 여의봉을 휘두르며 금각 대왕을 마주쳤다.

팔계도 쇠스랑을 들고 내 뒤를 따랐다.

금각 대왕은 오른손에 칠성검을 쥐고 왼손에 파초선을 들고서 우리를 대적했다.

 

그러나 싸우기를 이십여 합에 이르렀는데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우리도 지쳐 있었지만 수백 명의 괴인 마법사들을 물리치느라

공력을 소비한 금각 대왕도 기진맥진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금각대왕은 파초선의 화공(火攻)에 자기 부하들이 타 죽을 세라

단신으로 왔기에 더욱 불리했다.

초조해진 그는 악수(惡手)를 두었다.

 

“에잇, 돼먹지 않은 행각승! 이게 모두 네 탓이야!”

 

몸을 솟구친 금각이 왼손을 뻗어 파초선을 부채질하자

맹렬한 불의 폭포가 지상에 있는 삼장법사를 향해 쏟아졌다.

아차 싶은 마음에 현기증이 엄습해왔다.

그러나 불덩이가 되어버리려는 찰라 눈을 감고

좌선의 자세를 취한 스승의 몸에서 하얀 불꽃들이 튀어나왔다.

하얀 불꽃들은 사람 비슷한 형상으로 변하더니

일제히 두 손을 들어 파초선의 불길을 향해 앞으로 뻗었다.

 

삼매신풍(三昧迅風)!

 

우우우웅 소리를 내며 모든 것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듯한 태풍이 일어났다.

이제는 하얀 불꽃의 게체가 되어 스승을 보호하는 업금강들의 특기인 삼매신풍이었다.

파초선이 만드는 삼매진화의 불길은 산을 허물어뜨리고 쇠를 녹이며 물로도

흙으로도 끌 수 없는 무서운 마공(魔攻)이었다.

그러나 지옥에서 온 흡혈귀 업금강들이 발출하는 삼매신풍의 바람은

삼매진화의 방향을 되돌리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금각 대왕의 몸뚱어리가 감전을 당한 듯이 파르르 떨었다.

곧이어 검은 연기가 나면서 경련하듯 뒤틀리던 금각 대왕의 몸은 타고 있던

구름으로부터 지상으로 떨어져내렸다.

너무나 갑작스런 사태의 돌변에 우리는 잠시 숨을 죽였다.

 

땅에 떨어진 금각의 배에는 삼매진화의 초열(焦熱)이 만들어낸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오장육부가 모두 타 없어지면서 등뼈의 일부분까지 사라져버렸다.

치명적인 상처였다.

사지를 뻗고 몸을 뒤틀면서 사람의 소리 같지 않은 이상야릇한 신음을 내던 금각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었다.

 

“으으 …… 스, 스, 손오공 …… ”

 

가슴은 벌렁벌렁 뛰었으며 죄여진 입술 사이로는 악다문 이빨이 허옇게 드러났다.

나는 그가 임종 직전임을 깨닫고 손을 잡아주었다.

급한 맥이 고동치고 있었다.

 

“미안 …… 해 …… 이 별을 …… 소생시키려고 …… 그랬어. 이, 이젠 …… 틀렸군.”

 

금각은 덜덜 떨리는 손을 귓구멍에 넣어 뭔가를 끄집어내더니 나를 주었다.

조그만 종이뭉치였다.

펼쳐보자 파초선과 호리병, 칠성검, 황금승 등 자신이 자랑하는 가공할 무기 4가지를

다른 사람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방호 주문(防護呪文)을 푸는 암호라는 것을 알고 나는 놀랐다.

 

“부탁 …… 해. 서역 …… 행에 성공 …… 하면 부디 내 별을 …… 내 별을 돌봐줘.”

 

말을 마치자 금각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