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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금각대왕 은각대왕 6 - 요괴들은 우릴 잡아…

오늘의 쉼터 2016. 6. 27. 17:00

제11장 금각대왕 은각대왕 6


- 요괴들은 우릴 잡아…


쿵쿵쿵 땅을 울리며 대지를 가로지르는 발자국 소리와 꾸욱 꾹꾹 하는 짐승 같은 괴성이

사방에서 일어났다.

한 편 괴성에 대항하는 날카로운 총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악마가 소리치는 듯한 길고 커다란 비명 소리도 들렸다.

그러자 온 몸의 털이 뻣뻣하게 일어서고 피가 얼어붙었다.

메타시안화물에 중독된 나의 의식은 현실과 혼미한 환상 사이를 헤매면서

짐승과 악귀의 아수라장이 빚어내는 끔찍한 이미지들과 씨름했다.

 

나는 자꾸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다.

치명적인 독극물을 마신 뒤 쇠상자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태아처럼 팔다리를 접고 등을 구부린 채 거의 숨도 못 쉬고 완전한 어둠 속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데 바깥에는 상황을 알 수 없는 살육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쇠약한 몸 때문에 공포는 점점 커져갔고 심장의 박동은 점점 작아졌다.

그러는 사이 운송 장교의 목소리가 적을 물리치는 마법의 주문을 외우기도 했다.

그러다가 차츰 총소리가 뜸해지고 괴성이 높아갔다.

이윽고 총소리가 완전히 멈추었다.

 

뭔가가 내가 있는 짐칸으로 거칠게 뛰어올라왔다.

어떤 강건한 팔이 내가 갇힌 쇠상자를 가볍게 들더니 땅바닥에 메다꽂았다.

나는 아파서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곧이어 여러 개의 팔들이 돌 같은 것을 들어 상자를 마구 후려갈겼다.

이윽고 잠금 장치가 부서지면서 상자가 활짝 열렸다.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온 몸이 종기와 고름으로 뒤덮인 털복숭이 얼굴의 괴인(怪人)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짙은 잿빛의 피부에 더러운 머리카락, 주물러 비틀어놓은 듯한 사지. 단 한 사람도

정상적인 외모를 가진 인간이 없이 한결같이 흉악한 인상에다 토할 것 같은 악취를 풍겼다.

 

괴인들 뒤에는 비참하게 사지가 뜯겨나간 병사들의 시체가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몇몇 괴인들은 시체의 팔다리를 하나씩 들고 먹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나의 주변에 몰려들어 유심히 나를 관찰하면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이윽고 괴인들 사이에서 다른 자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신장 3미터 정도의 뚱뚱보가 걸어나왔다.

그는 가슴과 복부에 벌집처럼 총알 구멍이 나서 피가 흐르고 있는 데도 끄덕도 없이

사지를 움직이고 있었다.

나를 본 그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이 눔은 안히 …… 안히야. 따, 따, 따른 거 …… 따른 거 …… 여러 봐.”

 

뚱뚱보가 잘 발음되지도 않는 혀 짧은 소리로 말하자

괴인들은 나를 집어 던지고 다른 상자에 달려들었다.

커다랗고 날카로운 돌들이 내 곁에 있던 상자들을 차례로 부수었다.

사오정, 저팔계가 땅바닥에 뒹굴었고 마지막으로 삼장법사가 상자에서 튀어나왔다.

그러자 뚱뚱보의 붉은 눈이 크게 떠지더니 흥분한 어조의 혀 짧은 소리가 속사포처럼 터져 나왔다.

 

“저 눔히다, 저 눔히다. 최종 …… 최종 수행자. 저 눔 …… 먹으면 우리 …… 다 나아 …… 쩐부 ……

나아.”

 

그러자 괴인들의 입에서 목청껏 외치는 환성이 터져 나와 밀물처럼 벌판을 휩쓸었다.

생각해 보면 과거의 서역행에서 많이도 겪은 상황이었다.

오랫동안 수행을 한 삼장법사를 잡아먹으면 장생불사의 초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우리에게 덤벼들던 요괴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그런 미신을 믿는 괴물들이 있다니!

 

“흰 살! 흰 살! 먹자! 먹자!”

 

“불에 구워! 구워 먹자!”

 

“피 빨자!”

 

“소생(蘇生)의 피!”

 

“소생의 피!”

 

도무지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의 환성은 절규에 가까웠다.

귓바퀴로부터 머리 속까지 윙윙 울림이 전해질 정도였다.

괴인들은 우리가 실려온 트럭을 맨주먹으로 부수더니

쇠로 된 차축을 뽑아 우리의 손발을 묶어 걸었다.

우리는 장대 위에 달린 괴나리 봇짐처럼 차축에 매달려 어딘가로 운반되었다.

 

“형, 살려줘 ……. ”

 

어지간한 팔계도 이 흉측무쌍한 괴물들 앞에선 기가 질리는 지 연방 나를 부르며 울부짖었다.

오정은 죽은 듯이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스승만은 손발이 묶여 몸을 공처럼 웅크린 와중에도 염불의 외우며 뭔가를 명상하고 있었다.

스승의 침착한 모습을 보자 나도 제정신이 들었다.

 

나도 눈을 감고 호흡을 조절하면서 나의 몸을 강력하게 사로잡고 있는

체내의 독극물을 방출하려고 했다.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정신의 에너지와 신체의 평형감각 사이에서 불화가 일어났고

좀처럼 체내의 내공은 모여지지 않았다.

나는 절망하면서도 계속 호흡법을 시도했다.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 이윽고 성과가 있었다.

목에서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어느 정도의 검은 구정물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그러는 사이 전리품이 된 우리 일행은 괴인들의 마을로 들어섰다.

넓은 광장을 중심으로 불결하고 먼지 많은 오두막들이 동심원의 형태로 번져가

커다란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적어도 200여 호는 될 듯했다. 오두막의 미로를 지나 광장에 이르렀을 때

팔계의 울음소리는 절정에 달했다.

 

마을의 남녀요소들이 모두 나와 우리를 구경하며 힐쭉 핼쭉 웃어댔다.

그런 길 끝, 광장의 한 가운데에는 보기만 해도 끔찍한 느낌을 주는 여자들이

거대한 바비큐용 구덩이를 만들고 숯불을 피우고 있었다.

바로 우리를 구워먹을 구덩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