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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금각대왕 은각대왕 5 - 미안하네 친구, 자넬 祭物로

오늘의 쉼터 2016. 6. 27. 16:55

제11장 금각대왕 은각대왕 5


- 미안하네 친구, 자넬 祭物로




“은각이 옥황상제라고?”

 

식탁 위의 촛불이 너울거렸다.

금각대왕은 말없이 내 앞에 놓인 유리잔에 손수 포도주를 따라주었다.

시종이 디저트로 신선한 과일 푸딩을 가져왔다.

나는 포도주 맛을 음미하면서 충격을 되새겼다.

 

은하계의 주민들이 ‘유우디(玉帝)’라고 부르는 옥황상제는 태상노군이 주재하는

천상의 종교평의회에 의해 10년마다 한 번씩 선출된다.

그러나 10년의 임기는 긴 시간이다. 방대한 천상 연방의 행정조직과 군대를 움직이는

옥황상제의 권력은 태상노군보다 훨씬 크다.

은각이 그렇듯 명실상부한 은하계의 지배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좀 맥이 빠졌다.

 

옥황상제가 나의 죽음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까지의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적이 있다는 것은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니까.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군.”

 

“1400년은 긴 세월일세. 한심한 영혼들은 100년도 지루해서 견디지 못해.

1400년을 살아남을 수 있는 활력을 가진 인간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 거의 없어.

사람들은 유행에 뒤진 옷을 입고, 자기에게는 편안하지만 젊은이들이 보기에는

소굴 같은 집에 살면서, 한 번 머리에 집어넣은 딱딱한 생각만 반복하며 살지.

그러나 세상은 변하네. 그것도 금방 금방 눈부시게 변하지.

그러면 사람들은 삶이 재미없고 무가치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야.

마법사들도 대부분 200년쯤 살다가 죽고 마네.

충분히 더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에 지쳐서 죽는 거야.

나는 동생을 이해해. 미천한 요마(妖魔)에서 천신(天神)의 최고위직까지 올라가고야 말겠다는

욕망이 그 녀석을 지금까지 살아 있게 했어.”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된 거지? 당신은 별로 출세하지도 못한 것 같은데.

예전과 똑 같은 금각대왕으로, 똑 같은 연화동에 살면서 1400년씩 버틸 수 있는 비결은 뭐야?”

 

금각 대왕이 나의 빈 잔에 다시 포도주를 채워주었다.

 

“동생과 반대되는 정열이지.

더 우월한 존재로 올라가는 대신 연약함과 불안과 부정확한 지각의 열등한 존재로

내려가고 싶은 정열. 그래서 목표는 인간적인 감정의 맛을 더 깊이 느끼는 거야.

동생은 마왕에서 신선이 되었다가, 다시 신이 되어갔네.

나는 마왕에서 인간적인 영웅이 되었다가 영웅성 자체가 상황과 편의의 산물임을 깨닫고

결국 철저한 인간이 되었어.

나는 자주 아무 책임도 의무도 없는 이름없는 인물이 되어 여행을 하네.

시와 그림과 음악은 나의 가장 큰 벗들이지.

최근에는 원하는 영화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쾌락에 빠져들었네.

돈만 있다면 영화사 사장이야말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회적 존재가 아니겠나?”

 

금각 대왕의 말을 듣고 있다가 나는 갑자기 육체와 마음 양쪽이 세차게 비틀리면서

뭔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높은 탑 위에서 지상으로 추락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쿵 소리를 내며 식당의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에 쓰러졌다.

눈 앞이 핏빛을 띤 아지랑이로 뒤덮여 있었다.

 

“이 …… 이 포도주에 …… 무얼, 뭘 …… 넣었나?”

 

뻣뻣이 서서 나를 내려다보는 금각 대왕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미안하네, 친구.

우주의 영약을 다 훔쳐먹은 자네는 금강불괴(金剛不壞)의 몸을 가지고 있어서

평소 독살을 전혀 경계하지 않더군.

그 자신감을 이용했네. 포도주에 탄 것은 청산가리보다 100배쯤 더 독한 메타 시안화물이야.

자네를 죽일 수는 없지만 마약을 먹은 것처럼 일시적으로 활동을 마비시킬 수 있지.”

 

“왜 …… 왜 이런 짓을 …… .”

 

“정말 미안해. 사적인 감정은 전혀 없네.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인간적으로 변해버린 것이겠지.

나는 사막과 폐허로 변해버린 이 별을 두고 떠날 수가 없어.

부디 이 별의 재건을 위한 제물이 된다고 생각하시고 용서해주시게.”

 

“도대체 …… 그게 …… 무슨 말이야 …… 망할 자식 …… ”

 

“초공간에서 나오는 방사능과 괴물들의 침입을 막아서 이 별을 살리려면 동생의 힘이 필요해.

노선을 달리한 뒤부터 동생과 사이가 악화되었지.

그래서 자네들을 동생에게 넘겨주고 서로 화해할 생각이란 말야.”

 

말을 마친 금각대왕은 손뼉을 쳤다.

식당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하들이 가로 세로 50센티 정도의 정사각형 박스를 가져왔다.

모든 초능력을 무력화시킨다는 크립톤 광석을 섞어 만든 철제 상자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몇 분안에 질식해 죽을, 1밀리미터의 숨구멍도 없는 그 상자에

나는 빨래감처럼 밀어넣어졌다.

잠시 후 상자는 트럭인 것 같은 자동차 화물칸에 실렸다.

 

“천상 연방에 이 내용을 송신할 테니까. 초공간의 구멍에 가서 대기해라.”

 

금각 대왕의 지시가 끝나자 트럭은 출발했다.

캄캄한 가운데 옆에서 들리는 모기만한 소리로 팔계와 오정,

그리고 스승도 똑 같은 상자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상자 안에서는 변신술도, 분신술도, 심지어 여의봉까지도 말을 듣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트럭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급정거했다.

운송의 책임을 진 장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괴인들이다, 식인종들이 나타났다. 모두 전투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