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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금각대왕 은각대왕 2 - 사람은 안보이고

오늘의 쉼터 2016. 6. 27. 16:36

제11장 금각대왕 은각대왕 2


- 사람은 안보이고


연꽃의 별, 파드마 행성으로 들어서자 청회색 융단 같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날

렵한 운동화처럼 생긴 공중 부양 자동차 ‘나가’는 바다를 가로질러 누런 황토지대로 상륙했다.

 

저물녘이었다.

태양은 후덥지근하게 달아오른 대지 너머로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우리는 황량한 벌판, 거대한 바위 언덕,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오두막집들의 폐허,

야생의 양귀비 밭을 지나갔다.

길은 작은 시내를 몇 번인가 가로지르고 언덕을 넘으면서 끝없는 지평선을 향하고 있었다.

 

“이상하다. 가뭄이 들었나? 연화동(蓮花洞)이 이렇게 무더운 곳이 아니었는데?”

 

팔계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의구심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천년이 넘게 지났지만 금각대왕, 은각대왕과 대결했던 기억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은각의 공간압축마술에 걸려 호리병 속의 액체로 녹아버릴 뻔하기도 하고

금각의 자동결박(結縛)마술에 걸려 황금승으로 목이 졸려 죽을 뻔하기도 했다.

사방 30리를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지옥으로 만들어버리는 파초선의 마법은

요즘도 악몽에 나타난다.

오행(五行)의 조화 속에 피워내는 파초선의 신화(神火)는 물로도 끌 수 없고

흙으로도 덮을 수 없었다.

돌이 벌겋게 익고 개울이 모두 마르며 지상이 온통 새빨간 흙으로 변해버리는

불의 대재앙. 우주에서 가장 무서운 그 불길 속에서 나는 소중한 털을 다 태워버리면서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고생한 나머지 기억에 생생한 산천이건만 연화동은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풀과 나무들이 사라지고 공기는 사막처럼 건조하고 뜨거웠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고나 할까. 산천이 태초의 황무지로 돌아간 듯했다.

이따금씩 머리 위를 스치듯이 날아가는 박쥐처럼 생긴 새들을 제외하면 살아 있는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풍경이 무려 삼천리가 넘게 이어졌다.

 

“파드마 행성은 아직도 금각대왕, 은각대왕이 지배하고 있어.

그런데 초공간의 재앙이 일어난 이후 여러 종류의 요마들이 침입해서 행성의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다고 나와 있어.”

 

컴퓨터로 우주 하이퍼넷의 자료를 검색한 오정이 알려주었다.

 

“글쎄, 그 행성 사람들이 어디 있냐구?

사람들은 고사하고 짐승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아.

아, 저기 저 산을 보니 생각나는군.

 여기 큰 강이 흐르고 있었잖아. 강물이 어디로 가버린 거야?”

 

조금 더 가자 캄캄한 밤이 찾아왔다.

우리는 거대한 바위 밑에 모닥불을 피우고 야영하기로 했다.

텐트를 쳐서 스승을 모시고 모닥불 옆에 침낭을 깔았다.

오정은 금방 세상 모르고 잠이 들어 드르렁거렸는데 팔계는

잠시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 불평을 했다.

 

“형, 잠이 와? 하루 종일 굶었잖아.

눈 앞이 핑핑 돌고 뱃속이 다 꾸륵꾸륵해.

어디 가서 뜨끈한 밥 한 그릇만 얻어오자.”

 

“이 밤중에 누가 밥을 준다고 그래. 그냥 자.”

 

“구름을 타고 번개처럼 날아가보면 어딘가에 도시가 있지 않겠어?

미리 앞 길을 정찰하는 것도 좋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침낭에서 기어 나왔다.

우리는 자동차의 동력을 이용해 사방 2백 미터 길이의 전기 경계선을 설치하고

나의 터럭으로 경비로봇 둘을 만들어 스승의 텐트 좌우에 배치했다.

 

구름을 타고 가던 방향으로 삼천리 정도를 더 날아가자 사방 일천리가 넘는

거대한 산맥이 나타났다.

밤의 어둠 속에서도 팔계와 나는 금방 그 산을 알아보았다.

바로 금각, 은각이 사는 평정산(平定山)이었다.

 

“잘 됐어. 녀석들을 두들겨 깨워서 빨리 저녁밥 좀 내놓으라고 하자.”

 

싸움 끝에 정든다고 사생결단의 대격전을 치른 나는 그 뒤 금각, 은각과 막역한 친구가 되었다.

두 마법사 형제도 어지간히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부류인지라

나와 그들은 은하계 곳곳에서 오다가다 만났고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나눈 적도 많았다.

 

그런데 평정산을 향해 근두운을 낮추려 할 때였다.

귀에 꽂아둔 이어폰에서 비상 경보음이 맹렬하게 울렸다.

팔계와 나는 안색이 달라져 구름을 뒤집었다.

근두운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력으로 왔던 길을 되짚어 쏜살같이 날아갔다.

 

“큰 형, 팔계 형, 살려줘!”

 

야영지에는 상상도 못했던 최악의 사태가 기다리고 있었다.

텐트, 모닥불, 자동차가 모두 엉망으로 부서져 나뒹굴고 있었다.

스승은 보이지도 않았고 오정은 날카로운 이빨이 잔뜩 난 아가리를 쳐든

거대한 사룡(蛇龍)에게 칭칭 휘감겨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안 그래도 푸르죽죽한 오정의 안색은 더욱 짙푸르게 보였다.

사룡은 길이 50미터도 넘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괴물이었다.

긴 옆구리에는 서른 개씩의 날카로운 발톱들이 달린 작은 다리들이 허공을 할퀴고 있었다.

 

나는 여의봉을 뽑을 겨를도 없이 막 오정의 머리통을 씹으려는 사룡의 아가리로 뛰어들어

양 손으로 위아래의 턱을 힘껏 부여잡았다. 다

음 순간 팔계의 강력한 쇠스랑이 사룡의 눈을 강타했다.

사룡은 몸부림을 치면서 고개를 휘저었고 몇 개의 다리로 나를 갈겼다.

그 서슬에 묶여 있던 오정이 풀어졌다.

나는 100여 미터 떨어진 곳까지 튕겨나간 뒤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